야베스의 기도 - 역대상 4:9-10
담임목사 김종웅
야베스의 기도
역대상 4:9-10
2013년 3월 3일 주일 낮 예배
No. 95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역대상 4장입니다 9절에서 10절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아멘
○야베스 기도의 중요성. 축복 원리가 성경적이다. 부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이 쓴 야베스의 기도와 헤럴드 스미스 [Harold Ivan Smith]가 쓴 야베스의 축복 원리의 책, 두 가지의 야베스에 대한 책이 있다. 어느 책이 더 성경적이고 유익한 책인가 살펴보기.
아마 여러분들이 제일 잘아는 이름 성경에는 한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익숙한 이름 야베스 또 야베스의 기도로 유명하지요, 이 같은 본문을 가지고도 쓴 책이 보면은 상당히 좀 다른 내용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부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이 쓴 야베스의 기도를 잘 압니다 공전의 힛트를 쳤지요. 사실은 그 책보다도 훨씬 더 성경적이고 우리의 신앙에 유익한 책이 헤럴드 스미스 [Harold Ivan Smith]가 쓴 야베스의 축복 원리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온 건데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지지 안 했어요, 그런데 사실은 그 야베스의 축복 원리를 보면은 복을 받는 원리 이런 의미가 아닌데요 제목은 그랬지 만은 정말 유익해요. 우리 한국에 교인들은 또 우리 한국 사람들은 브랜드를 굉장히 신뢰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이름이 있는 사람이 이야기 하면은 진리 인줄 알고 큰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님이 말씀하시면 진리 인줄 아는데 그렇지 안 해요, 책도 많이 팔린 부루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가 유익한가 그렇지 않습니다. 몇 권 팔리지 안 했지 만은 헤럴드스미스가 쓴 야베스의 축복 원리가 훨씬 성경적이고 또 여러분들에게 유익합니다. 왜 이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드리는가 하면은요 예전에는 우리가 교회를 선택하고 이럴 때에도 어디에 가야 정통인가 이런 것이 기준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어디에 가야 이익이 되고 은혜가 되고 이런 것이 기준이 되다 보니까 진리에서 많이 멀어 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것이 열심히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른 신앙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1. 잘못된 신앙은 우리의 삶을 억압하고, 학대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올바른 신앙을 통해서 자유와 다른 사람의 평강 천국을 경험하는 삶이 중요하다.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기도는 해결의 열쇠라는 체계에 들어가게 되면 자유와 평강이 없고, 삶이 피폐하게 된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강조하듯이 왜냐하면은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종교성이 있어요, 그런데 잘못된 신앙은 우리의 삶을 굉장히 억압을 하고 또 그 신앙이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또 학대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것 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신앙을 통해서 우리가 자유와 다른 사람의 평강,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하는 삶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왜 이렇게 되여 졌는가? 불과 이삼십 년 밖에 되지 안 했습니다. 미국의 실용주의가 교회 안에 이래 들어오면서 꿩 잡는 게 메 다는 사상, 굿 좋은 것은 항상 크고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 인줄 알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행복 하려면은 진리 안에 있어야 되요. 오늘도 이 야베스의 기도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거든요, 제가 왜 부루스윌킨슨의 기도가 잘못되었는가 여러분 이런 것 아셔야 되요. 그 내용은 뭐냐 하면은 이런 것 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갔더니만 완전히 소설이에요, 천국 문에 이제 베드로가 천국을 가이드 하면서 투어를 해 주었대요, 그래 이곳 저곳 보니까 너무 좋더라는 거에요, 그런데 어느 한 켠에 가니까 건물이 이래 하나 있는데 그 건물을 안 보여 주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 사람이 베드로에게 좀 보여 주세요 이러니까 베드로가 하는 소리가 안 보는 게 좋을걸 이러는데, 사람은요 하지 말라면 더 하잖아요, 그래서 꼭 좀 보여 달라고 하니까 베드로가 보여 주기는 주는데 후회 할거다 이러면서 보여 주었대요, 문을 쫙 여니깐 선물 상자가 그 창고 가득히 채워 져 있었대요, 아 이래서 안 보여 줄려고 했구나, 그런데 그 선물 꾸러미마다 이름이 쭉 적혀 있는데 자기 이름도 딱 적혀 있는 선물 상자가 있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덥석 잡아서 펼쳐 보려고 하니까 또 베드로가 한다는 소리가 안 보는 게 좋을걸 보면 후회할걸, 아 후회해도 좋으니까 한번 보자고 해서 턱 펼쳐 보니깐 그기에 하나님이 자기가 지상에 있을 때에 줄려고 했던 선물 목록이 쫙 적혀 있는데, 자기가 그 수많은 선물 목록 중에 몇 개만 구해 가지고 몇 개만 받고 아주 빈곤하고 피폐한 삶을 살은 것을 후회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기도 많이 해서 더 많은 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야베스와 같이 이런 것이 또 여기에서 아멘 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 교회는 역시 수준이 있는 것 같아. ㅎ ㅎ ㅎ 여러분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 원하는 것이 신앙 생활 참 부루스윌킨슨의 이야기는 우리의 구미에 맞아요, 왜 맞는가 하면은 우리는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바를 다 이루지 못하면서 살잖아요.
그래서 우리 속에 언제나 답답함이 있고 빈곤함이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제한된 능력을 극복하면서 사는 것을 굉장히 복이고 원하는 바라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 들이 제대로 안되니까 여러분 신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기도의 행위를 통해서 그것을 이루는 것을 하나의 종교적인 행위고 그런 것 들이 우리 속에 유익이라고 생각하니까 문제란 말입니다. 그래서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기도는 모든 것의 해결의 열쇠다 이런 것이 여러분들의 사고 체계에 딱 들어가게 되면은 그렇게 되면은 좋은데, 그런 것 들이 잘못 되여 져서 종교적인 목적은 잘 이루지 만은 개인의 삶의 자유와 다른 사람의 평강이 없고 또 그런 신앙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삶을 피폐해 지게 하는 것이 참 많아요.
2. 야베스의 기도는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다 허락 했다고 했는데 문자 주의로 적용을 해서, 점 보는 것 같은 것들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착한 가나안 땅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땅이 아니었다.
그러면 여러분 목사님 야베스의 기도는 뭐란 말입니까? 오늘 야베스가 여기 있는 대로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그가 원하는 것을 기도한 것을 다 허락 했다고 했는데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러면은 목사님은 이 말씀 안 믿습니까, 이래는데 여러분 이 말씀을 제대로 알려면은 성경 말씀에 기록된 삶의 정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되요, 그래서 베드로서에서는 성경을 억지로 풀지 마라고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요즘은 제자 훈련에 역기능 중에 하나가 성경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문자 주의로 적용을 해서 마치 어디에 가서 선택할 때에 침 튀기는 대로 가는 거와 같은 점 보는 이런 것 들이 있다 말입니다.
성경 해석이라는 것이 여러분 왜 목사님에게 이곳에 와서 설교를 들어야 되는가, 또 목사님이 목사가 되려면은 최소 한도로 12년 정도 공부를 해야 되는 이런 과정을 겪는 것은, 이 성경에서 기록된 말씀의 정황을 제대로 알아서 그 의미를 제대로 선포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그런 제대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될 때에 여러분들의 삶의 자유와 평강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하는 복된 신앙 생활이 되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 참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굉장히 힘든 사람이 뭐냐 하면은 말을 곶이 곶대로 듣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제가 뭐라고 그래요? 개떡같이 이야기해도 찰떡같이 좀 알아들으라고, ㅎ ㅎ ㅎ,
여러분 우리 성경도 마찬가지 입니다 문자 주의가 제일 위험한 거에요, 그러면 오늘 이 여러분들의 역대기를 쭉 읽으실 때에 이 정황을 먼저 아시려면은, 역대기를 조금 성경을 읽은 사람들은 사무엘서 하고 열왕기서의 내용이 반복되고 있네 이런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이 반복이 아니고요 역대기는 언제 기록을 했는가 하면은 신학자들이 보편적인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갔다가 70년 만에 돌아왔을 때에 이 사람들이 각자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때에, 에스라 라고 하는 위대한 신학자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해서 그 사람들에게 주면서 이스라엘의 부흥을 이루려고 한 것이 역대기에 기록의 목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포로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예루살렘을 그렇게 가고 싶어서 왔는데 그들이 도착한 가나안 땅에는요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땅이 아니었어요.
3. 70년 만에 돌아온 고향 땅에는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을 확고히 함으로 공동체를 통해 삶 속에 근심과 환난을 벗어나게 하려고 역대기를 기록한 것이다. 역대기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족보 중 유다 지파를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학개서나 서가랴서나 말라기서에서 다 나오는 이야기 들인대요 70년 만에 돌아왔을 때에 집이 있었습니까 논밭이 있었어요? 또 70년 만에 돌아온 자기의 고향 땅에는 다른 사람들이 와서 떡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요, 그래서 돌아와서 정말 열정을 가지고 성전을 건축해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고 4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주변 사람들의 방해, 그리고 자기집도 없고 논도 없고 하니까 먹고 살길이 참 복잡했다고요, 그래서 4년 만에 성전 건축을 그만두고 각자 자기 살길을 찾아 나간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그런 세월이 쭉 몇 십 년 흘렀다고요, 그러다 보니까 일부 몇 사람은 잘살게 되었지 만은 대다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난하고 궁핍한 삶을 살아갔다고요. 그때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통해서 무얼 이야기 하는가 하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을 확고히 함으로 말미암아 공동체를 통해서 개인의 삶 속에 있는 근심과 환란을 벗어나게 하려고 이 에스라를 통해서 역대기를 기록한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역대기를 여러분들이 쭉 읽으시면 앞에 족보가 쭉 나오는 이유는 왜 족보를 기록했는가 하면은, 뿌리를 알게 해서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강한 공동체가 되려면은 정체성이 확고해야 됩니다.
저 해병대 출신은 아니지 만은요 해병대가 나쁜 것 중 집단 위기는 나쁘지만은 한가지 여러분들이 배워야 할 것은 해병대는 정체성이 강하잖아요. 아무나 해병이 될 수 있었다면 나는 해병이 될 수 없다 빨간 모자 빨간 명찰 이런걸 통해서 해병이란 정체성을 강하게 하니까 개인은 약해도 응집력이 있기 때문에 강한 군대가 되는 거에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랬든 거에요, 자기네들이 수고하고 노력 한 것 들이 다 주변 사람들에게 빼앗기는 것이 뭐냐 하면은 각자 자기가 살길을 찾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역대기를 기록하게 한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역대기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족보 가운데 유다 지파를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고,
또 유다지파 가운 대에서 다윗과 솔로몬을 굉장히 중심인물로 다루고 있단 말입니다. 왜냐하면은 다윗 시대 솔로몬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서 세계가 꼼작 못하는 그런 강한 나라를 이루었기 때문에 그 나라를 꿈꾸면서 역대기를 기록한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역대기에 보면은 다윗이 밧세바[Bathsheba] 를 범한 것이나 솔로몬의 실수 이런 것 들은 하나도 기록을 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이런 것이 성경은 여러분 뭐 하늘나라 이야기 해가 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기록을 한 것 이기 때문에 성경을 잘 보면은 세상이 다 보여요. 우리나라도 지금 경제 대국 세계 10대 열광이 됐을 때에 예전에는 우리 어릴 때에는 UN day 해서 UN이 뭐 어쩌고 저쩌고 이랬는데,
여러분 뭐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은 그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그때에 기업인이나 노동자나 모든 사람이 하나로 묶었거든요, 그 묶을 때에 누구를 중심에 내세웠는가 하면은 이순신을 내세웠잖아요, 그래서 저도 우리나라 역사 인물 가운데 이순신을 가장 존경하게 만들었단 말입니다. 왜 이순신을 그렇게 했는가? 이순신 보다 더 위대한 장군들 많은데 더 위대한 사람 많은데 이순신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아니하고 여러분 헌신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지금도 우리나라에 가장 아름다운 통영을 충무시라고 했다가 다시 통영으로 환원을 하기도 하지 안 했습니까, 바로 그런 부분들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이 말씀이 어떤 의미냐 하면은 역대기에 이런 기록에 목적을 알고 믿어야 되요. 그래서 역대기에 여러분 그기에 보면은 7절에 보세요 헬라의 아들들은 세렛과 이소할과 에드난이요, 고스는 아눕과 소베바와 하룸의 아들 아하헬 종족들을 낳았으며 뭐 그 다음에 낳았으며 소생이며 뭐 이래 쌓다가 9절에 와서는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요렇게 주석이 있다 말입니다.
4. 이스라엘 백성 열두 지파가 연합이 되지 못하고 각 지파가 자기 소견대로 자기 살길을 찾은 시대가 사사시대 이다. 추수 때 블레셋이 메소포타미야가 모압이 암몬이 에돔이 와서 다 빼앗아 갔다. 사사 시대는 분열, 위기가 만연한 시대였다. 모두 자기 살길을 찾아서 나갔지만 야베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난 뒤에 여러분들이 또 그 다음에 보면은 수하의 형 글룹이 므힐을 낳았으며 뭐 이러다가, 13절에 한번 가보세요 13절에 가면은 그나스의 아들들은 누구라고요 옷니엘 자 저를 보세요 옷니엘이 누구지요 옷니엘이 누구냐 하면은요 첫 번째 사사잖아요, 갈렙의 조카이자 사위였지요 근친 결혼 했지요, 그래서 메소포타미야왕 구산 리사다임[Cushan Rishathaim]이 8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을 하는데 옷니엘을 통해서 구원해서 40년 동안 평화를 가져다 준 이스라엘 최초에 사사가 옷니엘 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야베스는 옷니엘 바로 앞에 있었든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사사 시대에 사람이란 말입니다. 이 사사 시대는 어떤 시대냐 여러분 사사기를 읽으면은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더라 이래 놨어요.
그래서 참 점잖은 표현인데 제가 성경 개론을 이야기 하면서 뭐라고 그랬어요 사사 시대는 한 마디로 사람들이 자기 쪼 대로 행하는 시대였다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각자 자기가 살길을 찾아 나선 이스라엘 백성 열두 지파가 연합이 되지 못하고 각 지파가 자기 소견대로 자기 살길을 찾은 시대가 사사시대 이였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지파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각자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농사를 지어서 추수 때가 되면은 블레셋이 쳐들어오고 메소포타미야가 쳐들어오고 모압이 오고 암몬이 오고 에돔이 와서 다 빼앗아 가는 거에요. 여러분 사사 시대는 분열의 시대고 극대의 위기가 만연한 시대였다 이 말입니다. 그래 야베스 시대에 이 야베스 시대에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은 사사 시대니까 공동체는 뒷전에 있고, 자기 혼자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그런 시대인데 야베스 만큼은 그러지 아니했다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들이 제가 이 삼일절 기념 예배인데요 삼일절 기념 예배에 이 야베스의 기도를 쓴 이유는 우리가 기도해서 하나님 기독교에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복 주시어서 기도 응답으로 세계 열광 이런 의미가 아니에요. 이 삼일절에 얼마나 합당한 말씀인지 몰라요.
이 사사 시대에 모든 사람이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았는데 야베스 만큼은 그러지 안 했다는 거에요. 그럼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그기에 보면은 9절에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가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름을 야베스라 하였는데,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이래 놨는데 여러분 우리 나라 사람들도 이름에 다 의미가 있습니다. 히브리인들도 그래요 그런데 저는 이름이 뭐냐 하면은 김종웅인데 새벽 종자에 수컷 웅 이라서 저는 사실은 새벽에 종치는 사찰이 되야 되는데 목사가 되었어요 ㅎ ㅎ ㅎ. 그런데 여러분 좀 서양사는 사람들은 머리가 작아서 그런지 참 머리 나쁜 것 같아, 이름도 뭐 짓는 것 보면은 그저 브라운 테일러 뭐 직업이나 색깔 이런 것 했다 그것도 또 안 돌아가니까 뭐 하는가 하면은 2세 3세 이러더라고, 그런데 히브리 인들도 우리나라와 같이 이름에 의미가 있다 말입니다.
그런데 이 야베스라는 이름은 뭐냐 하면은 도저히 우리가 지어서는 안 되는 이름이에요 고통을 불러오는 자라는 의미에요. 그래서 이 야베스 그 어머니가 그 이름을 지었는데 아버지가 지은 것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지은 것도 아니고 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면은 이 야베스는 태어날 때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든지 또 아니면은 저는 볼 때에 사사 시대 이였기 때문에 그 위에 형제들도 있었지 만은요 아버지가 전쟁에 나가서 죽임을 당하고 어머니가 이 아이를 배고 있을 때 유복자로 태어난 아이가 야베스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가집니다. 그래서 이 아이를 낳았을 때에 남편은 전쟁에서 죽었으니까 내가 어떻게 먹고 살까 해 가지고 이 아이를 고통을 불러오는 자라는 이름을 지은 거에요. 이런 상황 속에 있었든 야베스 이었지 만은 그 형제들은 모두다 여러분 귀중한 자라는 말은 모두다 자기 살길을 찾아서 나아갔지 만은 야베스는 그런 삶을 산 사람이 아니에요.
5. 야베스 만큼은 가정과 나라를 위해서 산 사람이다, 그래서 귀중하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가 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여기에 우리의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개인의 삶을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도록 테두리를 강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의라는 것이다.
형제보다 귀중하다고 하니까 여러분들이 야베스는 형제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전부 자본주의 논리 경제 논리로 가치판단 하는 겁니다 우리 이거 변해야 되요. 하나님 믿으면은 경제 논리로 가치판단 안 해요, 그래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가는 것이나 이 모든 것을 경제 논리를 배격하는 이야기잖아요. 여러분 우리 사회가 지금 무엇이 문제입니까? 교회가 세속화라는 것이 성장하고 부흥하고 발전하고 잘 살면은 귀한 것 이라고 생각해요. 성경은 얼만큼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삶이냐 이것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야 되요 그게 달라져야 됩니다. 교회가 만 명 백만 명 모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열명이 모여도 모인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유익이 되는 교회, 교회가 사회에 유익이 되는 그 가치를 따져야 됩니다.
우리나라의 기업이 여러분 일년에 몇 조 매출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그 사회에 얼마나 기여를 하는가 이것이 중요해요. 기독교인의 여러분 기업은 우리 회사가 우리 매출액이 우리나라에서 일등 이등의 목표가 아니고, 내가 이 회사를 통해서 우리 기업 원들에게 가장 봉급을 많이 주는 회사를 만들겠다 이런 가치를 가져가야 되요, 야베스가 그런 사람이었단 말입니다. 왜 존귀한 자였는가 하면은 형제들보다 형제들은 아버지가 없는 각개 전투로 인생을 살아가야 할 때에 지 살길을 찾아갔지 만은, 야베스 만큼은 어머니와 가정을 위해서 산 사람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산 사람입니다 그래서 귀중하다는 거에요.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되는가 하면은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여기에 우리의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 다음에 말씀이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그 다음에 뭐에요 나의 지역을 넓히사 내가 속해 있는 나라의 공동체가 든든히 세워 져서 주의 손이 그 공동체를 통해서 나를 도움으로 말미암아 나로 환란에서 벗어나서 근심이 없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를 들으신 겁니다. 어쩌면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옷니엘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인지 몰라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은 여러분 쌀독에 먼지가 변해서 쌀 되게 하는 하나님 아니에요 그러면은 그것은 샤마니즘 이에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 하나님의 영이 있는 교회 하나님의 영이 있는 공동체를 통해서 개인의 환난을 벗어나서 근심이 없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으셔야 되요.
성경은 이 관점에서 봐야 되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만드신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개인이 확보하지 못하는 환난, 개인이 극복할 수 없는 환난 그래서 자기가 극복할 수 없는 환난으로 인한 근심 이것이 공동체를 통해서 해결되도록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신 겁니다. 국가의 존립이 그런 것이다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나면은 내 살길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귀하게 여기고 세워 진 공동체는 개인의 삶을 환난에서 벗어나서, 근심이 없도록 테두리를 강하게 가져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의라는 겁니다.
6. 하나님의 나라와 의의 공동체를 통해서 내가 지금 환난에서 벗어나서 근심이 없게 하려고 하는 삶, 개인들은 공동체를 세우는 삶,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뜻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늘 야베스의 기도 야베스의 삶을 우리가 살아야 하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여러분 뭐라 했는가 하면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이럴 때에도 머리 아파요 뭐라는 가 하면은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나라와 의의만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 종교적인 목적을 이루어 가는 데에는 엄청나게 좋은 이야기지만은 원래 그 말 아니에요 여러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는 내 살길 자기 혼자 살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의를 구하라, 그리하면은 네가 환난에서 벗어나서 근심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그런 말씀이거든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전부 개인이 염려해서 환난을 벗어 날려고 하는 각개 전투하는 인생 속에, 예수님 하시는 말씀이 그건 이방인들의 삶이에요. 하나님의 나라와 의의 공동체를 통해서 내가 지금 환난에서 벗어나서 근심이 없게 하려고 하는 그 삶,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는 이 삶이 이 공동체를 통해서 해결되도록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거지요. 그래서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개인의 환란과 근심을 없도록 하게하고,
개인들은 공동체를 세우는 삶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뜻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부분 아셔야 되요, 여러분 성경은 저 죽어서 가는 하나님의 나라 이야기 아니에요, 목사님이 여러분 경제를 여기서 정치를 이야기한다 그러지 마세요 성경만 알면 경제 정치 보여요, 우리나라가 지금 여러분 이런 부분도 보세요, 대단히 죄송하지만은 참 존경해야 되는데 여러분들이 제가 이럴 때에 그 비하면 안 되요. 바로 되라고 하는 것이지 제가 책망하는 것이지 정죄하는 게 아니에요. 삼성이 37조를 가지고 있다고 존경 받고 자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걸 가지고 국민들의 삶을 책임 지려고 해야 되요, 여러분 이명박 정부가 외환 위기 속에 극복을 해서 세계 이렇게 잘했다 자랑할 것 아니에요.
모든 세계의 경제가 내수 진작으로 가는데 수출로 거꾸로 가서 이겨 나갔지 만은, 앞으로 여러분 제가 볼 때에 앞으로의 경제는 수출이 아니라 내수가 진작이 되여 져야 나라가 잘 살게 되여 집니다. 그 짐을 박근혜 정부에 떠넘겨 놓은 거에요. 그 내수가 진작이 되려면은 기업들이 뭐 해야 되요, 일자리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자기 기업의 물건을 살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내수 진작이잖아요. 이 사명을 가져야 되는 거에요, 경제 공항 이라는 게 제가 경제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은 이런 거 아니에요? 기업이 자기 살길 찾으려고 직원들 해고해 버리고 봉급 적게 주니까 여러분 제품은 많이 만들었는데 내 회사 상품을 사 줘야 할 국민들은 직장이 없으니까 돈을 못쓰고 못 사잖아요. 그러니까 공장에 물건은 싸이고 그러면서도 경제는 안 돌아가는 것이 공항이잖아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늘 야베스의 기도 야베스의 삶을 우리가 살아야 되는 거에요. 기독교가 들어간 곳이 세계의 여러분 지구본을 뺑 돌려보면은 기독교가 들어간 곳이 다 잘살아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 주었다 이래 버리면은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 집단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왜 잘사는가 바로 이런 부분이에요 야베스와 같은 사람을 야베스와 같은 사람이 주의 영이 있는 사람이고 야베스와 같은 시대를 도래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기독교가 들어가면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 살길을 찾아가든 사람들이 공동체를 위해서 살고,
세워 진 공동체는 모든 개인의 사람들에게 환난에서 벗어나서 근심이 없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의의를 실현하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기독교가 들어간 사회가 강하게 된 거에요. 이 원리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복 주어서 그렇다, 자기 살길 찾아가면서 자기 기득권을 유지 하려고 하는 것에 사용하면 안 되지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 3.1 절 우리나라가 기독교가 2%가 안 되는 그때에요 독립 선언문 작성 할 때에 민족 대표 33인중에 열 여섯 명이 기독교인 이였습니다. 그때에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교회만이 아니라 나라가 살아야 개인이 환난에서 벗어나서 근심이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았든 시대였어요. 오늘날 기독교가 하나님께서 잘 믿으면은 복 준다 우리만 잘된다.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세계의 일등의 교회가 되었다, 이삼십 년의 실용주의로 인한 번영 신학이 이삼십 년 만에 한국에 들어온 거에요. 우리 어릴 때에는 그러지 안 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교회를 갈 때에 어디에 가야 잘되고 잘 성장하고 이런 것이 아니고 바르게 믿는 겁니다. 여러분 이거 깨달음이 있어야 되요 정말 방송 설교 틀어 보고 이러면은요 대책이 없습니다 저도 목사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 같아요. 여러분 기도해서 하나님이 먼지가 변해서 쌀이 되게 하는 것은 샤만의 하나님 인간이 만든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은 주의 영이 있는 사람, 주의 영이 거하시는 교회를 통해서, 역사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7. 하나님은 사람과 교회와 국가를 통해서 환난과 근심이 없도록 하신다. 야베스 시대 사사 시대는 사람들도 형제들도 자기 살길 찾는데, 야베스는 가정과 나라를 위해서 환난 근심 없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가족의 안위를 확보하려 함은 죄인들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다.
헤럴드 스미스가 쓴 야베스의 축복 원리를 보면은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이 참 좋았대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는데 홍수가 막 쏟아지는데 하나님 이 홍수 가운데서 나를 건져 주실 것을 믿습니다, 비를 만드신 하나님 하고 이래 기도 했대요 책에는 이렇게 안 나와 있지요, 그래서 비가 막 쏟아지니까 그 사람들이 와 가지고 빨리 피하세요 곧 집이 잠깁니다. 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구해 주실 것인데 내가 왜 피하냐고 있었대요, 비가 점점 더 와서 물이 이제 집이 다 잠기니까 지붕으로 올라갔대요, 지붕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면서 소방 본부에서 헬기를 보내서 밧줄을 내줘서 이러니까 그기에 기도하고 앉아 가지고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홍수 가운데 나를 건져 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은 산을 옮길 만한 능력이 있다고 그랬고 하나님을 바라는 자에게 구원이 있다고 했는데, 저는 이 홍수 속에 이 집이 잠길지라도 나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했는데 비가 더 와 가지고 꼬로록 해가 익사해 가지고 죽었대요. 그래 가지고 천국에 딱 가서 하나님께 항의를 했다는 거요, 하나님 믿는 자는 능치 못함이 없고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긴다고 했는데, 저는 사람들이 왔을 때에 하나님 믿고 피하지도 안 했고 헬기가 왔을 때 그거 잡지도 안 했는데 내가 왜 죽어야 됩니까,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야 이놈아 내가 사람 보내 주고 헬기 보내 줬는데 너는 그때 뭐했나 내가 보내 준 것 잡아야지 이랬대요.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세요,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세요, 하나님은 국가를 통해서 여러분들의 삶에 환난과 근심이 없도록 만드는 거에요. 그런데 야베스 시대는 사사 시대는 사람들이 전부 자기 살길만 찾는 그런 시대에 야베스는 자기 형제들 중에서도 전부 자기 살길 찾는데 야베스 만큼은 가정과 나라를 위해서 나라가 든든히 세워 져서 내가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한 거에요. 예수님 말씀대로 하면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기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의를 구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나라고 의의라는 것은 세워 진 나라가 개인의 환난을 벗어나서 근심이 없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의다 이말 입니다.
존재의 목적은 교회와 국가 가정의 존재의 목적이 개인의 삶의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라를 만드신 목적이고, 교회를 만드신 목적이고 이스라엘을 만드신 목적이고 가정을 만드신 목적이고, 교회는 그런 국가에 하나의 쌤풀 이라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 우리 이 부분 아셔야 됩니다, 큰 교회 중요한 것 아니에요, 우리 교회 겨자씨 헌금 하나님 나라와 의의입니다 저는 오늘날까지 목회를 해 오면서 이것이 보였기 때문에 목회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에게 제가 죽고 없어지는 그때에도 제 한가지의 소망은 뭐냐 하면은 내가 어려울 때에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생각하면서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삶을 살았노라.
여러분 저와 당 회가 해야 할 일은 개인의 삶에 환란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의 목적이고, 여러분들은 내 살길을 찾아 사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신앙, 진짜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나라의 안위를 통하여 개인의 삶에 안위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세워 진 가정을 통해서 그 가정에 속한 가족의 안위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 저마다 자기 살길을 찾아가는 죄인들의 세상 속에 하나님이 하시는 음성이에요.
사오십 년 전에요 교회는 강대상에 태극기 있었어요, 삼사십 년 전의 기도원마다 구국 재단이 있었어요 왜 이래 되어 버렸습니까, 왜 우리 교회만 눈에 보이고 왜 나만 보이는 사단의 역사입니다 꿩 잡는 게 메가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가 능력이 부족해서 자기의 삶에 환란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인생 속에, 주님이 십자가에 보혈의 피 흘려 주어서 성령을 함께 나눈 그리스도의 성령의 공동체를 통해서, 개인의 삶에 환란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려고 당하신 그 고난 그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 마음속에 채워 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땅에서도 평안을 누리기를 바라고 오늘날 우리 나라나 오늘날에 우리 한국 교회는 나라의 부강과 교회의 성장이 목적이 아니라,
세운 공동체가 개인의 모든 삶에서 환난에서 벗어나서 근심이 없게 하는 것이 교회에 존재의 목적이고 국가의 존재의 목적이 되는 그런 변화의 역사가 오늘 이 야베스의 기도를 보면서, 뭐 대통령 듣지 않으니까 놔둡시다, 국회의원 안 들으니까 놔두자 고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의 마음속에서라도 새겨 지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두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그곳에 함께 하시는 주님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비록 적은 사람들이 모였지 만은, 세워 진 공동체를 통해서 개인의 환란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도록 몸 버려 세우신 주님의 교회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저마다 자기 혼자 잘살려고 가지고 있는 것을 만족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자신에 삶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하는 세상 속에, 우리가 무엇이 간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주권 믿기 때문에 십의 일을 구분하여 주님 앞에 드리기도 하였고 감사의 예물도 드리고, 때로는 우리 가운데 연약한 지체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시대에 없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교육을 위해서 겨자씨 헌금도 드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예물 주님 받아 주시고 주님 교회가 든든히 세워 져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교회를 통해서 경험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강한 울타리가 되여 질 수 있도록 이 예물에 복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 성도들이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은 영을 나눈 가족이었기에 우리 김정철씨의 그 사지 속에서 눈물로 기도를 들으시고 또 이렇게 퇴원하여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리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정말 우리 교회는 한 지체의 고통이 모든 사람의 고통이 되어 지고 한 지체의 영광이 모든 사람의 즐거움이 되는 아름다운 성령의 공동체가 되도록 자기의 의의 자기 자신을 주장하기보다는 십자가의 은혜의 감격이 있는 예배 감격이 있는 신앙이 되도록 말로 설득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는 복된 교회 삼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죽음의 권세에서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내주 위로 교통 충만 하심이 저마다 자기 살길을 찾아가는 세상 속에서 공동체를 위하여 헌신하고 세워 진 공동체가 개인의 모든 삶에서 환란에서 벗어나 근심 없는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오늘도 교회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헌신하며, 또 나라가 개인의 삶에 안녕과 번영을 보장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믿음의 권속들 위에 이 나라 위에 이 아버지 하나님 모든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방방 곳곳에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