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인가? 스토커인가?(주일 설교문)창 50:15-21
담임목사 김종웅
팬인가? 스토커인가?
창 50:15-21
2013년 10월20일 주일 낮 예배
No. 128
하나님 말씀 창세기 50장입니다. 15절에서 21절까지만 우리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아멘
● 창세기를 마치며 4가지 사건과 4명의 인물에 관하여, 야곱이 죽은 후 보복이 두려워 형들이 요셉에게 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이다.
금년에 우리가 창세기를 쭉 묵상해왔습니다 이제 오늘 마지막 시간입니다. 마지막에 보니까 창세기는 우리 네 가지의 사건 네 명의 인물에 관한 말이지요, 창조와 타락과 홍수와 바벨탑의 사건 그리고 12장부터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관한 생애, 오늘 50장에 와서는 이제 4대 족장 중에 야곱도 죽고 요셉도 죽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이 죽으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 형님들 요셉의 형님들에게 두려움이 왔어요, 왜냐하면은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했는데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어서 어째 잘 살게 되여 졌는데 아버지가 죽으면은 옛날에 우리가 자기에게 잘못한 것을 보복하지 않을까, 이래서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이제 형님들이 요셉에게 가서 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입니다.
1. 야곱의 유언, 요셉은 형들에게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까 한다, 야곱147세 요셉110세에 죽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명령 유언을 남겼습니다. 옛날에 우리들이 당신에게 행한 그 허물과 죄를 돌리지 말라고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주라고 아버지가 명령하며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요 그 말을 들은 요셉이 눈물을 펑펑 쏟아요, 요셉이 왜 울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고 나중에 죽어서 요셉에게 가서 한번 물으려고 합니다. ㅎ ㅎ 요셉이 울자 형님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엎드려 경배하면서 우리는 이제 당신의 종이다 이제 형이 아니다 이러니까 요셉이 하는 말이 형님들 두려워하지 마세요,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까 라고 말을 하면서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다음에 오늘 읽지는 안 했지 만은 요셉이 죽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요셉이 요절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고 또 아버지 야곱도 147세를 살았고 나중에 모세도 120세를 사는데 요셉은 110세에 죽습니다. 죽으면서 형님들보다 먼저 죽어요, 아마 무슨 병이 있었든지 어쨌든 간에 형님들에게 이런 이야기 하는 겁니다. 형님들 내가 여기서 죽어도 나를 이곳에 묻어놓았다가도 백골이 되어서라도 가나안 땅에 대려 가세요, 이러고 이제 이 모든 창세기가 마감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연히 우리 한국사람이라면은 이런 생각해야 됩니다. 왜 우리가 이스라엘 유대인의 조상인 야곱의 이야기 요셉의 이야기를 읽어야 되고 왜 그것이 성경말씀인가 여러분 무조건 뭐 아멘 할 것이 아니라 무조건 아멘 하면은 이단에 넘어가기가 쉬어요, 여러분 먼저 우리가 그런 것들을 알아야 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는 신본주의 하나님의 역사를 주간해간 구체적인 역사거든요, 그기에 하나님의 역사에 인간이 주체가 될 때에 일어나는 많은 잘못된 것들도 성경에 기록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 유대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제가 쭉 강해하면서 랍비들의 해석은 이런 해석이었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제 해석이 아니고 구약의 모든 역사를 예수님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2. 예수님의 말씀을 바울이나 신약에 서신서에 기록자들은 어떻게 받아드리게 되는가 이 관점에서 봐야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천국을 맛보는 복된 신앙생활이 되여 짐.
그리고 그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바울이나 신약에 많은 서신 서에 기록자들은 어떻게 해서 받아드리게 되었는가 여러분 이 관점에서 봐야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고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야 여러분들이 땅에서도 구원받은 기쁨을 누리고 천국을 맛보고 또 우리가 속한 교회가 이 세상에 있지만은 천국을 맛보는 그런 복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여 져요. 그러지 아니하고 유대교와 같이 믿으니까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인생의 짐도 무거운데 종교적인 짐까지 턱 지게 된다고요, 여러분 이 랍비 들의 해석이 어떠했는가 제가 여러분들이 이제 또 이야기 하면은 이 말을 가지고 랍비 들은 거짓말에 관해서 이야기를 쭉 하고 있어요, 예수님 당시에 랍비도 그렇고 현대의 랍비도 그렀습니다.
1) 요셉이 아버지 야곱에게 형들의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 한적이 없다 성경에도 없다.
무엇을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은 야곱이 이제 죽고 나니까 형님들이 요셉에게 가서 옛날의 우리의 잘 못과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말라고 아버지가 유언을 하고 죽으셨다 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여러분도 성경을 쭉 봐서 알겠지 만은 그 일은 있긴 있었지 만은 요셉이 아버지 야곱에게 옛날에 자기가 이렇게 당했다는 이야기가 성경에 없어요, 또 형님들도 그 이야기가 없다고 그러니까 이 랍비들은 뭔가 하면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형님들이 지금 요셉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러면서 거짓말을 어디까지 해야 되는가 이런 것을 논하는 것이 랍비 들이에요, 그러니까 오히려 그런 일들이 많은 논쟁이 일어나서 시끄러워지는 거에요 유대교는, 오늘 예수를 믿으면서도 우리가 교파싸움 많은 논쟁은 유대교와 같이 그렇게 인본주의적으로 해석해서 그래요.
2) 랍비들의 해석: 과거의 사건은 괜찮으나 현재의 거짓말은 안 된다(현재 친구가 돈 빌려달라는데 있으면서 없다고 하면 안 된다)
참 재미있는 것은 랍비 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고 앞에 보면은 아버지가 가나안 땅에 묻으라고 해가지고 70일만에 장례를 지내고 70일장을 하지요, 묻고 돌아오다가 요셉이 옛날에 자기가 형님들이 던져 넣은 구덩이에서 한참 쳐다보고 왔다는 거에요 그게 랍비 이야기입니다 성경에도 없고 어디에도 없어요, 그래서 형님들이 간이 덜컹 내려 앉아가지고 지금 그런 거짓말을 했다 아버지가 유언 했다고 그러는 거에요, 그러면서 이야기가 뭔가 하면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한 사건 때문에 오늘 분쟁이 있고 싸움이 있을 것 같으면은 거짓말을 해서 화평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참 괜찮은 이야기지요 그지요 그러면서 거짓말 중에서도 옛날에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사건 때문에 우리가 전부 오늘 싸우잖아요,
참 힘든 것이 그런 것이잖아요, 그런데 오늘의 화평을 위해서 과거의 사건을 거짓말해도 된다 이러면서 또 랍비들이 그러고 나면 사람들이 전부 자기 합리화에 빠지잖아요, 그러니까 뭐라 하는가 하면은 현재일은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래 설교하는 거에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에요 현재일 여러분 유대교인이 되면은 이대로 따라 가야 되요, 뭐라는 가 하면은 현재 친구가 살기 어려워서 돈 빌리려 왔는데 돈이 있으면서 없다 이런 거짓말 하면 안 된다는 거에요, ㅎ ㅎ 여러분 정말 그런 것도 우리가 사는 대에 조금은 도움은 되지만은 그런 원리주의적 그런 생각은 논쟁을 불러 일으켜요,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보면서 무얼 봐야 되는가 하면은 제가 창세기를 강해하기 전에 우리 교회에서 민수기를 먼저 강해 했어요,
3. 민수기를 먼저 강해를 한 것은 민수기 관점에서 창세기를 봐야 하기 때문, 예수님이 오셔서 구약에 계시된 하나님이 내다 라고 하심.
왜 민수기를 먼저 했는가 하면은 연대적으로는 창세기가 앞서지만은 그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을 했는데 왜 했는가 하면은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엉망진창 살거든요, 그래서 너희들이 구원받은 사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것은 잘 못이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믿었든 하나님 야곱이 믿었든 하나님 이삭이 믿었든 그 하나님 믿어야 된다고요, 그런데 우리 아브라함 야곱 이삭은 이렇게 엉망진창 살았지 만은 하나님은 이렇게 구원을 이루어 가셨다 라고 이야기를 해주는 거에요 설교하는 것이 창세기란 말입니다.
그래서 민수기 관점에서 창세기를 보는 거에요,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랍비들이 자꾸 유대교적으로 해석하니까 이상하게 되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사실은 구약에 계시된 그 하나님이 내다 라고 말씀을 하신 거에요, 그런 것들을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시작되는 회복이 있는 잔치에서 말하는 것이고, 또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쉼이 있는 잔치에서 여러분에게 본질을 말해준단 말입니다. 그러면은 오늘도 여러분 여기에서 보면은 그 관점에서 보면은 오늘 여기에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은 이런 이야기에요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데 당연히 아버지가 죽으니까 형들이 그때부터 이제 공포에 싸일 것 아니겠어요, 그게 우리 인생이지요 뭐 우리모두도 연약하든지 모르든지 해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잖아요,
4. 심판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할 수만 있으면 선을 행하라.
그래서 임시방편 그것이 봉하여졌다가도 나중에 또 어떤 사건 때문에 그게 또 분쟁의 불씨가 되잖아요, 자 그럴 때에 요셉이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요셉의 신앙의 고백이 중요한 거에요, 요셉이 뭐라는 가 하면은 형님들 그러지 마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내가 어찌 하나님을 대신 하리까 이런다고요, 여러분 예수를 믿는 사람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예수 믿고 천국의 삶을 경험 해보려고 해보면은 여러분들이 뭘 해야 되는가 하면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데 내가 받은 상처 그것을 되로 받고 말로 갚아 줄 수 있는 그 시점에 어떤 고백을 해야 되는가 하면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겠습니까, 이런 고백이 있는 사람이 영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천국에 가면은 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거에요, 오늘날 교회가 왜 복잡한가 하면은 자기가 하나님 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은요 심판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거라고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신 거에요, 그런 것을 모르고 유대교에서 보면은 유대교나 예수님이 오시는 그 당시 로마는요 자기가 잘 못한 것을 참으면은 그건 노예들이나 하는 짓 이라고 봤어요, 그런 것은 올바른 시민의 자세 역량이 없는 사람이라고 봤든 겁니다. 그래서 유대교에 십팔번의 기도제목 기도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주기도문을 하듯이 유대인은 십팔번 기도문을 가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데 그기에도 보면은 이방인을 멸하여 주시고 우리를 괴롭힌 자를 멸하여 달라고 하나님 앞에 이런 기도해요,
여러분들이 교회에 와서 여러분들에게 잘 못한 자를 멸하고 벌하여 달라고 하는 것, 또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유대교인과 같은 거에요, 기독교인들은 뭐해야 되는가 하면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그 심판을 하나님께 맞기는 자에요, 이것을 깨달은 야곱이 그런 이야기 하는 겁니다. 야고보가 야고보서에 보면은 우리는 율법에 심판자가 아니다 우리는 율법의 준행자라는 거에요. 유대교의 골수분자였든 바울이 여러분 힘을 길러서 나를 괴롭힌 사람에게 말로 줘야 된다고 생각했든 바울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예수님을 통해서 계시되는 그 하나님을 성령 받고 깨닫고는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다 로마서 12장에요, 그래서 모든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너희들은 할 수만 있으면은 선을 행하여라, 여러분 참 그기에도 원래 주의적이 않지요, 여러분 보기 싫은 사람에게 오리를 가자 하면 십 리를 가고 예수님이 그런 말씀 하시잖아요 바울은 아니까 그런 이야기 하는 겁니다. 되도록 이면은 선을 행해라, 여러분 그것 그냥 깨달은 것 아니에요, 예수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을 계시 또 성령 받고 난 뒤에 바울이 하는 이야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와서 하나님 제대로 만나면은 여러분 하나님 앞에 심판 맡기는 거에요, 왜 그래야 되는가 인간은 공정하지 못하잖아요, 인간은 유전 무죄 무전 유죄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
1) 개인적인 윤리는 이기적이다, 보복은 보복을 낳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신앙이다. 예수님 앞에서 바리새인들은 의를 자랑했으나 세리들은 죄인이라 했다.
우리 개인적인 윤리만해도 우리는 얼마나 이기적이에요, 그래서 내가요 하나를 당하면 하나 갚아 줘가 속 시원한 사람 저는 하나도 못 봤어요, 그래서 레위기 19장에 그런 이야기 하는 거에요, 너 이빨 하나 뺐거든 상대방 이빨 하나만 빼야지 왜 옥수수 왕창 빼려고 하느냐, 이는 이 눈은 눈 이런다고, 여러분 사람들은요 교통사고 났으면 차만 고쳐주면 되는데 그러지 안 하잖아요 그게 인간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하나님께 맞기는 거에요, 나는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거에요, 그래야 공평한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이는 이 눈은 눈은요 보복의 법이 아니에요, 죄인인 우리들이 얼마나 공정하게 살아가야 되는가 하는 것을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이것을 알지 못하고 해교에서는 지금도 그 지꺼리 하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오면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은 내가 심판자가 될 수 없는 공정하지 아니하고 나는 이기적인 자임을 나는 항상 모든 사물을 어긋나게 본다는 것을 아는 자에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의를 자랑했지 만은 세리나 죄인들은 나는 죄인이라 그랬어요, 구원받은 자의 삶의 자세와 하나님 만난 사람의 자세에요, 교회에 다니면서 나는 참 괜찮다 하나님 제대로 안 만난 거에요, 인간 제대로 모르는 거고요, 여러분 사람들에게 실망하는 것 여러분 잘 못이에요, 사람 믿은 잘 못이지요, 그래서 제가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섬김의 대상이라 하잖아요, 사람에게 실망하는 것은 전부 자기가 사람 믿었다가 실망 하는 거에요, 우리가 얼마나 여러분 참 그런 것 하면은 이 세상에 전부 이기적인데 모든 잘못은 쌍방 과실이지 일방 과실이 없잖아요,
요셉과 형들 사이에도 보세요 그래서 제가 창세기 31장 원문을 여러분들에게 제대로 해석 해 준거에요, 37장에 형님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구덩이에 던질 때에 왜 죽이려고 했는가 그 원문에는 왔다 갔다 한 거에요 아버지의 사이에 형들 사이에 그건 그냥 심부름만 왔다 갔다 한 것이 아니라 말을 왔다 갔다 옮긴 거에요, 잘 못을 옮겼다는 그 말도 상대방의 명예의 심각한 손상을 줄 악성 루머를 왔다 갔다 했다는 거에요, 그러니 형님들이 안 그래도 여종의 아들로 태어나가지고 억울한데, 쓸데없는 루머까지 아버지한테 하니까 화가 난 거에요, 물론 죽이려고 한 것은 잘 못이지 만은 그 원인 제공이 요셉에게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자기생각을 안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으면은요 자기 잘못 생각 안 하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까 이런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일방적으로 잘 못하는 사람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도 잘 못 한 것이 없지만은 우리의 잘 못을 자기가 담당하신 거에요, 그런 하나님이니까 경외가 일어나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언젠가는 한번 이야기 했지 만은 얼마나 여러분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에요, 이런 이야기는 자주 해도 괜찮은 것 같아요, 단체 사진 찍었는데 자기만 잘 나오면은 잘 나온 것이고 암만 배경 좋고 다른 사람 다 잘 나와도 자기 눈 감으면은 이 사진 버린 것이고,
우리 정장로님 낙씨 좋아하는데 여러분 사람 그렇잖아요 언제 한번 이야기 한 것 같아, 낙씨 좋아하는 사람은요 일주일 동안 낙씨 갈 생각하고 일 견뎌나가는 거에요, 금요일 날 낙씻대 탁 챙길 때에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데요, 그래서 탁 던져놔 놓으면은요 천하에 이런 날이 있었는가 싶었는데 그 밑에서 뭔가 파다닥 하고 물고 나면은요 그래 손맛은요 세상에 그 맛이 없데,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좋은 게 뭣인 줄 아세요, 옆 사람 월척 낚다가 놓치면은 자기가 낚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거래요, ㅎ ㅎ 우리 그런 인간이에요,
2)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선을 행하라.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하면 내 감정이 상대방에게 지배 당한다고 심리학자는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심판을 하려고 하니까 이 세상이 엉망진창이잖아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니까 엉망진창이니까 지금 뭐라는 가 하면은 봐라 요셉은 보복할 수 있는 그 순간에도 뭐라는 가 하면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까 했다고,
하나님 제대로 만나면은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 교회 다니면서 그래야 되요, 오늘날 교회에 그저 남에게 말 한마디 들으면 말로 갚아버리고 이래 버리니까 교회나 세상이 다를 것 없잖아요, 그러면서도 오늘날 하나님 경외하면 복만 받는다는 이야기 하니까 얼마나 세속화 되었어요, 일반 세상에 학문이 심리학자도 이런 이야기 하는 거에요, 내가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하면은 내 감정이 상대방에게 지배를 당한다고 이야기를 해요, 다시 말하면 무슨 말이냐 하면은 심리학자 이야기가 이런 말이에요, 내가 우재만 장로님이 미워서 잠이 안 온다 이러면은 뭐냐 하면은 내가 우장로님 에게 내 감정이 종속되고 지배 당하는 거라는 거에요, 왜 내가 그렇게 지배당하며 살아야 되느냐라는 거지요, 오늘도 여러분 정말 우리가 그러려면은 그건 이론이고 안 되잖아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주일날 와서 뭐라 해야 되는가 하면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까, 여러분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요 원수 갚는 것은 맡기고 나는 할 수만 있으면은 내 능력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 그 사람 천국 갑니다 그 사람은 땅에서도 천국을 맛봐요, 그런 교인들은요 모여 있으면은 그런 교회는 두 세 사람이 모여도 천국을 맛봐요, 오늘 우리교회에 등록 하신 분들 하나님 대신 하지 마세요, 안 하고 다니시는 분들 하나님 대신 하려면은 하나님 믿지 마세요, 교회에 다니면서 여러분들이 요셉과 같이 나에게 상처 준 사람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까 해서 내가 가는 곳마다 화평케 되고 피스메이크 가 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우리 복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람 모여있으면은요 교회 좋지.
5. 요셉을 해치려 했으나 하나님께는 선으로 바꾸사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하나님을 만나고 경외하며 생명을 존중하는 공동체가 되야 된다.
두 번째로 여러분 그러면서 요셉이 뭐라는 가 하면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날과 같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려 함이다 라고 말을 해요,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었든 것이 자기가 가나안 땅에 묻히기를 원하는 바램이 요셉에게 평생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창세기를 이야기 하면서 창세기의 기록의 목적이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에게 가나안 땅 가자 그 말 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 가나안 땅 가는 것을 지리적으로 가나안 땅 가면 유대교에요, 가나안 땅 가자는 그 신본주의 삶을 살아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해요, 하나님의 중심의 삶을 살려면은 하나님을 만나야 되요 하나님을 만나느냐 안 만나느냐는 하나님의 대한 경외의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에요,
그런 말 속지 마세요 뭐 이렇게 체험 고백으로 받아드리는 거에요 십자가에서, 회복이 있는 잔치에서 여러분들에게 그런 것 하는 거에요, 우리교회에 여러분들이 들어오시면은 옛날에는 그랬어요 옛날에는 예배당이 이래 안 했어요, 지금은 인간 중심이 되니까 여러분들 의자를 편하게 앉잖아요, 그래서 성가대 찬양을 해도 앉아 있으니까 내가 만약에 찬양 받고 평가 받는 것 같아요, 여러분 그건 로마 카토릭이 맞는 것 같아요, 그 중심에 교황이 앉아 있어서 그렇지요, 옛날에 여러분 교회에 예배당은요 이 앞이 지성소 하나님의 존전을 상징해요, 그래서 밖에서 탁 들어올 때에는 천국으로 들어와서 앞으로 한걸음한걸음 나오면서 하나님께 나가는 것으로 형상화해요, 여러분들이 그냥 우리교회에 들어올지 몰라도 딱 들어오시면은 그기에 타일에 흰 타일로 구분 되어 있어요, 현관이 그게 뭐냐 하면은 야곱의 사닥다리에요, 하나님의 존전 으로 한걸음한걸음 올라오는 거에요, 그래서 성가대가 제일 뒤에 있잖아요 천주교는 그래서 성가대가 찬양을 통해서 회중들의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거에요, 우리 즐겁게 하려고 부르는 것 아니에요 찬송, 왜 그래야 되는가 그게 중요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은 요셉과 같이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겨요,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 우리 한국에서는 하나님 경외하면은 복 받는다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버리니까 이런 말이 먹히지를 안 해요 참 답답해요,
하나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이야기가요 그렇게 오래된 신학이 아니에요, 하나님 만나게 되면은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의 경외의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되면은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겨요, 그래서 창세기나 성경전체를 보면은 하나님을 계시해주고 그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삶을 살았는가 그런 공동체가 이스라엘의 공동체가 되야 된다 라는 이야기에요,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 하도 하나님 경외하면은 복 받는다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하는 거에요, 창세기 보면은 여러분 보세요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에 큰 차이는 어디 있는가 여러분 기독교 여기 하나님 믿는 사람하고 세상의 차이는 뭔가 그것 아셔야 되요.
6.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십보라와 부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된 신앙이 있었기에 남자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다 그 안에 모세도 있었다.
세상은 창세기 여러분 보시면은 여러분 아브라함이 그랄 지방에 가잖아요 그랄 지방에 갔을 때에 자기 아내 사라를 보고 누이동생 이라 하자 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여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없기 때문에 너 차지하려고 나 죽일 가봐 겁난다 이래요 그것이 세상이에요, 그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교회 다닌 분들 기억나시지요, 형님들이 딱 요셉 앞에 엎드릴 때에 살려달라고 그러니까 뭐라는 가 하면은 요셉이 나는 여호와를 경외하기 때문에 당신들은 생명을 보존하게 될 거다, 왜 성경을 보면서 이런 말씀은 흘러가는 그게 본질입니다. 출애굽기 1장에 보면은 바로가 추상 같은 명령을 내려요, 히브리 산파들은 히브리 여인이 아들을 놓으면은 다 죽여라, 그런데도 요즘 소설을 써 하나님을 미사일과 같은 존재로, 그렇게 명령을 내렸지 만은 하나님은 십보라(zipporah)와 부아(puah)를 통해서 휙 명령을 내려가지고 모세를 살려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 이러니까 선민사상이 나오는 거요, 성경을 자세히 보세요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 200만 명이에요 남자만 약60몇만 이었으니까요, 그러면 200만 명 되는 도시에 오늘날 애들 적게 낳아도 산부인과가 몇 개 필요해요, 당시는 애를 열명 놓는 그럴 때인데 십보라와 부아만 산파가 아니었어요 수많은 산파들이 있었지 만은 출애굽기 1장 17절에 보면은 십보라와 부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기 때문에 남자아이들을 살렸다는 겁니다.
모세만 살린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 자기가 죽을지라도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없다 생명을 죽일 수 없다고 했든 십보라와 부아의 참된 신앙이 그 속에 모세도 있었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 바꾸세요 여러분 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아셔야 되요 그게 회복이 있는 잔치에요, 이번에도 회복이 있는 잔치를 2시부터 하는데 집사님 한 분이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의도가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하면서 자기 간증을 해요 자기가 우리교회에서 회복이 있는 잔치를 열 몇 번을 들었는데 들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그것 모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거요,
여러분 이것 모르면 안타까운 거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다시 한번 들으세요 스텝으로 봉사 안 해도 좋아요, 왜 그래야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잘난 사람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자기에게 잘 보이는 사람에게 복주는 그런 하나님만 이야기 하니까 하나님의 경외 많이 안 생기는 거에요, 십자가에가 왜 하나님의 계시의 사건인가 성령의 강림이 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교회를 만드시는가 교회가 뭔가 소극적인 종교생활이 아니에요 여러분, 제가 요즘 한국교회사를 깊이 또 연구하는데 많이 달라요 옛날하고 지금하고 이런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되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사람의 생명을 존중이 여겨요, 한국교회사를 이래 해보니까 우리나라 근대화가 박정희 대통령만이 아니에요, 여러분 누가 한 사람에 의해서 되어집니까,
사람들의 사고의 변화와 사회적인 제도와 관습의 변화가 일어나서 총체적으로 되는 거에요, 그 밑바닥에 뭔가 여러분 미국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미국선교사님이 미국의 노예 혁명 이런 것들이 그냥 일어난 게 아니에요, 인간은 다 환경에 지배를 받잖아요, 그래서 미국에도 남부는 목화를 따야 되니까 노예가 있어야 되고요, 북부 시카코나 뉴욕은 공업화가 되니까 저 남부의 노예들을 일꾼으로 써야 되는데 그기에 매여 있으니까 안 되니까 노예 해방 시킨 거에요 자기 필요해서 그 이면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근대화가 일어난 거에요, 우리나라 근대화 우리나라 신분의 제도 농경사회의 여러분 무슨 농로제도가 고착 되가 있으면은 아무리 새마을 운동해도 안 되었어요,
우리나라의 신분의 제도가 철폐가 되면서 산업화 근대화가 일어났는데 또 이 근대화를 사탄이 아주 교묘하게 만들어서 지금 한국교회와 한국이 많은 병패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 제가 그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생명을 정말 기독교가 전파되는 곳에 사람이 눈에 밟히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세요, 여러분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에요 그래야 되요, 지금 여러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잘 산다 하지만 지난주에 분노가 일어나더라고 나는, 여러분 직장 다니다가 뭐 퇴출을 당할 수도 있고 사업을 하다 부도 날수도 있잖아요 그러고 나면 사람이 한동안 멍 했다가 정신차리고 하는 일이 대부분 트럭 하나 사가지고 식당에 식 자제나 과일 팔고 이런 일 하는 거요,
그런데 저 부산 울산 쪽에 우리나라 대기업이 유통 그것 까지도 빼앗아 먹는 회사에요 그게 우리나라에요 그래 힘이 드는 거에요, 사람이 눈에 안 보이는 거에요, 천만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이야기 하면서 새벽기도 어떤 나라보다 열심이라고 하면서 왜 하나님 경외하는 것이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만난 것 아니에요,
1) 초기의 한국의 기독교 신분제도 철폐, 동학의 천도교, 파락호 김용환
하나님 안 만나도요 제대로 된 인간들은 우리나라 그런 거에요, 우리나라에 여러분 뭐 우리교회에도 등록한 장로님이 훈장 받았다는데 건국훈장을 받은 김용환 선생 안동 파락호에요 파락호 알지요, 집안 말아먹은 별명이 파락호인데요 나중에 안동에서 18만평 재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 현재의 돈으로 200억이나 되는 재산인데 그것을 독립자금으로 쓰면은 금방 잡혀 가잖아요,
그래서 노름판을 전전하면서 자기 무남독녀 그 큰 부자가 시집 보내는데 돈이 없어가지고 시댁에서 농사라고 준 돈까지 빼앗아 가지고 노름판에서 탕진한 것 같아가지고 그 땅 김후웅이 평생에 가슴에 안고 살았는데 나중에 그 파락호가 아버지가 일본의 눈을 피하여 독립자금을 대려고 한다는 것을 안거에요 건국훈장 줄 때, 그 사실을 알았든 사람이 해방 후에 이야기 하니까 선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을 가지고 뭘 내세워 이래서 한참 뒤에 그 훈장을 받았어요, 그 훈장을 받으면서 그 무남독녀 딸 김 후웅이가 우리 아배 참봉나리 라는 시를 지은 거에요,
그럭저럭 나이차서 16세에 시집가니
청송 마평 서씨문에 혼인은 하였으나
신행 날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신행 알 농 사오라 시댁에서 맡긴 돈
그 돈 마저 가져가서 어디에서 쓰셨는지?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 날 늦추다가
큰 어매 쓰던 헌 농 신행 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그로부터 시집살이 주눅들어 안절부절
끝내는 귀신 붙어왔다 하여 강변 모래밭에 꺼내다가 부수어 불태우니
오동나무 삼층장이 불길은 왜 그리도 높던지
새색시 오만 간장 그 광경 어떠할고
이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 간장 녹였더니
오늘에야 알고 보니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독립군 자금 위해 그 많던 천 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하나뿐인 외동딸 시댁에서 보낸 농 값 그것마저 바쳤구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내 생각한 데로 절대로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 진데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이게 불과 40-50년 전에 우리나라에요, 우리 한국에 기독교가요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한 사람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믿으면은 복 받는다는 이상한 물신주의 속에 들어가니까 자신의 행복도 없고 오늘도 여러분 하나님 만난 것 아닙니다 그러면은, 회복이 있는 잔치에 참여해서 다시 십자가가 왜 하나님의 계시인 줄 아세요 성경보세요, 이 요셉이요 가나안 땅을 그렇게 바란 것은 지리적 본향의 가나안 땅 아니에요,
2)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나를 해 하려는 것을 선으로 바꾸사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속에 사람 귀한 줄 안다. 등산도 해서 하나님이 지은 자연을 보고 하나님 경외함을 갖자.
나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내 생애를 함께하신 모든 사람이 나를 해하려고 하나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그 하나님을 만나고요 요셉이, 형님들 걱정하지 마세요 울었든 거에요,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까, 이번 가을에 등산도 좀 가세요,
정말 하나님이 지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요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속에 사람 귀한 줄 아시라고요, 뭐 그런 기업이 있더라도 여러분들이 장사를 하든 무엇을 하든 그래도 사람 밟히는 사람 이게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되고, 요 조그마한 물결이 여러분 그래 되면은요 참 내가 죽어도 행복해요, 그게 십보라와 부아의 삶이었어요, 이것 잃어버린 거에요 저는 옛날에 한번 단풍을 보면서 그런 생각했어요, 그 단풍이요 우리가 볼 때에는 아름답지만은 그 나무에는요 고통의 진액이 나오는 거라는 거에요, 그게 여러분 뚝 끊어지면은 단풍이 되지 않고 말라버리면은 비참하잖아요, 인생 살면서요 안 죽으려고 바둥거리고 안 받으려 하는 것은 낙엽이에요 단풍은 때가 되면은요 자기 스스로에서 그 액을 내가지고 자꾸 본체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빨갛게 익어간다는 거에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이 저는 그래야 된다고요, 그래서 제가 저 지난주 하나하나 버리며 살자 내 속에 진액으로 해서 그러면 인생이 빨갛게 익어가는데 그냥 꺾어진 가지에 붙어서 말라 비틀어진 그런 누런 인생 그런 것 좋아하지 마세요, 천국 하나님 보여야 되요 오늘도 여러분 그 하나님 알아서 여러분들이 비록 내가 살았든 흔적이 몇 사람에게 보여지지 않더라도 여러분들 주변에 기억되는 사람들마다 저 사람 하나님 무서운 줄 알아서 사람 눈에 밟히며 살았노라, 이런 사람이 천국에 입성하고 입성하는 그때에 예수님이 안아줄 때 주님 내가 살은 것이 맞네요 모두가 성공하려고 하는 그 세상 속에 나 선택해서 그래 살게 하신 것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한국은요 창세기를 마치면서 여러분 가슴에 담으세요 팬이 있는가 하면 스토커가 있어요, 하나님의 팬이 되야 되요, 스토크는요 자기 우상을 괴롭히는 자잖아요,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쫓아 다니는 자잖아요,
펜은 자기의 섬기는 우상 때문에 행복해 해요, 또 그가 하는 이야기라면은 뭐든지 쫓아가요 저는 우리 예배가 펜 싸인 하나님의 펜 싸인 회가 되야 되요,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 때문에 행복해 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요 행복할 수 있어요, 또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라면은 죽더라도 지키는 사람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지 말고 사람이 눈에 밟히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되어서 여러분들이 구원의 기쁨과 우리 교회가 천국의 맛은 못 보더라도 냄새라도 맡을 수 있는 그런 교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봉헌기도◈
나 살려고 남 죽이는 세상 내 호주머니의 한 푼은 중요하고 다른 사람의 수중의 수 만금은 하찮게 여기는 세상 속에 우리를 불러서 그것이 파멸과 멸망의 길임을 알고 사람의 생명이 물질보다도 귀함을 알게 하사 존귀한 생애 가치 있는 생애를 살게 하고 하나님의 의가 점점 확대되도록 우리를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예배에도 우리가 사람의 말 사람 만나지 않고 존귀하신 하나님 존 전에 나오게 하시고 또 나오면서 우리의 생애를 주님 앞에 드리는 헌신의 결단으로 귀한 예물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아버지 하나님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과 교회를 통해서 역사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바라는 평강이 우리의 삶에 안전이 그저 생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하여 우리의 피부로 느껴지는 그런 구원을 얻는 복된 신앙 생활이 되도록 드린 헌금이 주님의 몸 된 교회 든든히 세우고 이 교회가 여기에 속한 영을 나눈 귀한 지체들의 삶을 보장하는 대에 잘 사용 되어져서 하나님 아버지 강한 제국이지만은 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과 땀으로 세워진 바벨탑과 제국인 세상 속에 한 알의 밀알이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몸 된 교회에 귀한 구원의 도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사단에 속한 자를 하나님께 속하도록 십자가의 보혈 흘려주시고 우리를 대속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만 복을 준다는 선민의식에 젖어있는 유대인들에게 친히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악인이나 선인에게 골고루 비를 주는 하나님 쓸모 없고 무익한 자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참된 하나님을 계시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해서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지금도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우리가운데 내주하여서 십자가를 통하여 계시되는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드려서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것이 삶의 본분임을 알아서 가치 있는 생애를 살게 하고 주님의 교회를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교회로 만들어 가시는 성령님의 감동 위로 교통 충만하심이 하나님에게 스토크 노릇 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팬이 되어져서 우리를 얽어 매는 많은 것들에서 자유 함을 얻고 교회를 통하여 천국을 맛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의 이름으로 모인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