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잘못된 선택(주일 설교문)마태복음 5:17

차주희 2014. 4. 24. 22:17

 

 

 

담임목사 김종웅

 

 

 

잘못된 선택

마태복음 5:17

2014 4 20일 주일 낮 예배

                                                                                                                                                                               No. 154

하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입니다, 17절 한절입니다 우리 의미를 생각하면서 다같이 함께 합독 하겠습니다.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예수님을 유대교의 계율을(안식일 계명, 성전 모독)어겼다고 배교자에게 집행하는 나무인 십자가에 메달아 죽였다. 단원고 교감은 죽어야 할 순간에 삶을 선택했고, 살아야 할 순간에 죽음을 선택한 잘못된 선택이었다.

여러분 세월호의 선장의 잘못된 판단 또 선택 행동이 무고한 사람을 죽게 만들고, 또 전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가 그 문제만이 아니고, 또 다른 단원고 교감의 잘못된 선택 참 우리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단원고 교감은 그 침몰한 세월호에 탔었고 단원고등학교에 수학여행에 총 책임과 기획을 했든 분입니다, 살아났는데 그는 진도 야산에서 또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면서 자기의 유해를 아이들이 죽은 그 바다에 뿌려주면은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겠다 이런 유서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저는 그가 너무나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은 그는 배에서는 자신이 죽을지언정 한 아이라도 더 건지는 선택을 했어야 되는데 그때는 자기가 살려고 나오고 아이들이 죽었습니다, 또 살아서는 정말 자기가 생명이 붙어있는 한 아이들에게 참된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 삶을 선택했어야 되는데 쉬운 죽음을 선택한 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존재하는데 그 선택이 너무나 찰라 적인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겁니다.

 

1. 예수님은“목숨을 버릴 때가 있고 살아야 할 때가 있고, 율법을 지켜야 할 때가 있으며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라고 하시면서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셨다.

고난주간을 마치면서 금요일 날 우리는시선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그 시선 이라는 영화를 보면은 조요한 이라고 하는 선교사 십여 년 전에 의료선교로 갔다가 반군에게 잡혀서 그 반군이 성경을 도끼 칼로 난도질을 하면은 살려주고 그렇지 아니하면은 죽이겠다는 말을 듣고 자기의 종교적인 신념을 버리고 도끼 칼로 성경을 내리쳤습니다, 신앙양심의 가책과 하나님에 대한 반감으로 그는 십여 년 동안 그곳에서 선교 팀을 상대로 사기를 치면서 먹고 살아갔습니다, 두 번째 그는 동일한 상황을 직면했습니다, 선교 팀들을 자기가 인솔하는 선교 팀이 반군에게 잡혔는데 똑 같이 동일한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그때에 죽음을 선택을 하고 성경을 내려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꺼꾸로 매달려서 채찍 속에 또 마지막 총 한발에 죽임을 당하지만은 참 평온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렇게 고통스럽고 무서움 그 순교 죽음을 직면하면서도 편안하게 맞이했든 것은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과 양심을 버리지 않는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 선교 팀을 인솔하였든 목사님은 죽음의 공포가 시시각각으로 밀려와서 모든 선교원 들이 살려고 신앙의 양심도 버리고 자기의 본색을 들어낼 때에도 자기만큼은 죽음을 선택하는 끊임없는 선택을 하면서 올바른 삶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에 자기가 도끼 칼로 성경을 내리치면은 자기를 따라왔든 선교 팀이 살아나고, 자기가 종교적인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을 치지 아니하면은 자기를 믿고 따라왔든 모든 선교 원 들이 죽임을 당하는 그 순간에 그는 자기의 종교적인 신념을 버리고 도끼 칼로 성경을 내려칩니다 그래서 모든 선교 원들의 생명을 살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은 죽음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때에 올바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예수를 믿는 것이고, 또 오늘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여러분들이 감동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죽음을 선택할 때에 비겁하게 삶을 선택하는 일이 없어야 되고, 또 우리가 삶을 선택해야 할 때에 죽음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이 없도록 진리 안에 거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는 유대교가 유일했습니다, 유대교에서 요구하는 모든 종교적인 규례를 예수님은 어겼습니다, 유대교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가장 소중히 여깁니다, 왜 소중히 여기는가 여러분들에게 언제 이야기 하게 되겠지 만은 어쨌든 간에 생명을 걸고 안식일을 지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이삭을 따먹을 때에 따먹도록 했습니다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회당에서 안식일 날 손 마른 자를 고치셨습니다, 그것은 유대교의 율법으로 보면은 배교이고 율법을 어기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는 사람이었습니다.

 

2. 헤롯이 46년 동안 아름다운 성전을 짓는 것을 예수님은 헐라,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셨다. “시선”이란 영화는 하나님을 선택하면 선교원들이 죽임을 당하는 순간엔 자기의 종교적인 신념을 버리고 성경을 도끼 칼로 친 것이 예수님의 모습임을 그 영화에 담고 있다.

그래서 반쪽 유대인이었든 헤롯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고대의 역사가 건축가들이 헤롯이 지은 성전을 보지 아니하고는 지상에서 아름다운 건물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하는 그런 아름다운 성전이 46년 동안 지어져 가고 있는데 모든 유대인들이 소망하고 갈망하는 성전을 예수님은 뭐라는가 하면은 무너져야 된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교의 눈으로 볼 때에는 배교자였고 이단자였기 때문에 율법을 어기는 자였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에게 처형을 하는 나무인 십자가에 메달아 죽인 겁니다, 그렇게 판단하고 예수님을 정죄하는 그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하러 왔다 지금 이렇게 말씀 하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들 그 성교 팀에 인솔자가 모두 다 죽음의 공포에서 자기 살 길을 찾을 때에는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의 종교적인 신념을 위해서 죽음을 선택했지 만은 또 자기가 종교적인 신념으로 하나님을 선택을 하면은 모든 선교 원들이 죽임을 당하는 순간에는 자기의 종교적인 신념을 버리고 성경을 칼로 친 것이 예수님의 모습임을 이장호는 그 영화에 담고 있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저는 그 시선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또 단원고의 교감의 잘못된 선택을 보면서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여러분 참 우리가 선택하며 걸어가는 이 모든 일들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하게 했다라는 말은 율법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도 우리를 위하여 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본질이 전도된 유대교에게 본질을 회복시키신 예수님입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적인 규례나 어떤 종교적인 퍼포먼스 보다는 어떤 종교적인 목적보다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것이 생명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선택의 길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당시 예수님 당시에 종려주일에 예수님이 올라 가실 때에는 모든 유대인들이 환호를 했습니다. 호산나 우리 왕이시여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모든 인류를 살리는 십자가의 길에는 모두다 떠나버렸습니다,   

 

3. 사람의 생명을 선택하는 예수님의 길은 환호 받는 길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선택해야 할 자리가 그런 자리이다.시선 죽은 종교인 회교와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극명[克明]하게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1장에 종려주일에 기록이 있는가 하면은 12장부터는 예수님을 떠나는 모습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 곁에는 이방인 헬라인 몇 사람만 남아 있었습니다. 십자가에는 베드로도 예수님을 외면하는 자리였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생명을 선택하는 예수님의 그 길은 단순한길이 아니고 사람에게 환호 받는 길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이 선택해야 할 자리가 그런 자리입니다. 단원고 교감이요 그 침몰하는 배에서 한 아이는 밀어내고 자기가 그 아이의 자리에 들어가는 선택, 외롭고 힘든 선택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선택입니다 그래서 자기 살려 한 겁니다. 살아나서 아이들에게 참 스승으로서의 모범을 보이면서 교육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드는 선택입니다. 때로는 내 가족을 외면해야 되고 때로는 아이들에게 오해를 사기도 해야 하는 그 길이고, 어느 누구도 자신의 옳은 행동에 대해서 환호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교육자의 길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안 했습니다. 참 멋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죽어서 아이들과 함께 그곳에서 아이들과 수업을 하겠다고 하는 얼마나 멋진 말을 남깁니까, 그러나 그건 옳은 선택이 아닙니다. 쉬운 길입니다 어려운 길은 살아서 아이들에게 자기의 생명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그런 길 입니다.

 

제자들도 알지 못했고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 외로운 자리였습니다, 오늘 여러분 저는 시선이라는 영화와 진도의 사건을 보면서 너무나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장호는 잘 아는 데로 제 젊은 날의 영화감독의 아이콘입니다, 별들의 고향, 어둠의 자식들 온 인기를 한 몸에 받다가 그는 대마초로 4년 묶이고 그 이후에 실패의 나락에 떨어져서 집도 날라가고 아내도 떠나고 재혼하는 정말 엄청난 삶을 10년 동안 온 몸으로 체험했든 사람입니다. 조요한의 선택 속에 자신의 생애를 담아놓은 것 같았습니다. 또 그 시선 은 죽은 종교인 회교와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극명[克明]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오늘 머리 깎인 삼손과 같이 힘을 잃어버린 한국교회 생명을 잃어버린 한국교회에 어떻게 생명을 불어넣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저는 시선 이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죽은 회교는요 자신들의 종교적인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생각이 다른 기독교교도들을 죽이는 종교입니다.

 

1)    예수님은 종교적인 규율 예전 퍼포먼스[performance] 보다는 사람의 생명이 소중한 것을 말씀합니다. 생명 있는 종교는 자신의 종교의 신념을 버릴지라도 사람이 사는 일이라면은 그것을 선택하는 종교가 생명이다. 반군의 가족도 병 고쳐주는 것이 생명이다.

여러분 우리한국교회가 교회에 우리의 신앙의 종교적인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서 생각이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있지 않아요, 기독교는 생각이 다른 그 반군의 여동생의 눈 멈 을 고쳐주는 것이 생명입니다, 죽은 종교는 자신들의 종교적인 신념을 구축하기 위해서 단기선교팀원들의 생명을 단보로 해서 돈을 요구하는 종교입니다. 여러분 죽은 유대교는 백성들의 피고름을 짜내서 화려한 예루살렘성전을 짓는 것은 죽은 종교입니다. 안식일 날 배가 고파서 허기진 사람들에게 안식일에 밀이삭을 따먹으면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죽은 종교입니다. 거룩한 회당에서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는 것을 지키는 율법은 종교적인 목적은 이루는 죽은 종교의 모습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종교적인 규율 예전 퍼포먼스[performance] 보다는 사람의 생명이 소중한 것을 말씀합니다. 생명 있는 종교는 자신의 종교의 신념을 버릴지라도 사람이 사는 일이라면은 그것을 선택하는 종교가 생명이라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 이 부활절에 우리가 화려한 말의 잔치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때때로 세월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라는 대한민국 호를 황해 하는 책임자가 대통령이라고 봅니다. 정치인은 선원이라 봅니다.

 

4. 대한민국 선거는 감동을 주는 정치인에게 표를 준다. 되고 나면 모든 것이 퍼포먼스 이었음을 알고 실망하고 정치냉소주의가 흐르고 있다.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버리면은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을 때에는 그 신념을 버린다. 소돔과 고모라성은 의인 열명이 없어서 멸하였다.

그 사람들 말 참 잘합니다, 국민들과 대중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하는 사람에게 환호하며 표를 줍니다. 그래서 어쩌면은 대한민국의 선거는 누가 백성들이 원하는 말을 하느냐의 싸움입니다. 또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감동을 주는 정치인에게 표를 줍니다. 그래서 한 무명의 정치인의 눈물이 대통령을 만들어 내기도 한 겁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은 많은 퍼포먼스를 행합니다. 평소에는 피하여갔든 달 동내를 찾아가서 무릎 꿇고 손을 잡아주기도 했고, 평소에는 귀찮다고 발로 찼든 아이들을 가슴에 안기도하고 평소에는 처다 보지도 안 했든 떡 복기를 아이들과 함께 먹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표를 주어서 대통령이 되고 정치인이 되지만은 그가 대통령이 되고 정치인이 되었을 때 그의 말과 그의 모든 행위는 하나의 퍼포먼스 이였다는 것을 알면서 실망을 하기를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정치냉소주의가 흐르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여러분 우리나라의 정치의 현실만입니까? 성경은 온 이 세상이 배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세월호 속에 승선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목사는 선장입니다 교인들은 선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하실 때 그 소돔과 고모라성에 죄악 때문에 멸하는 것이 아니고 의인 열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장이 없고 선원이 없는 배이기 때문에 파선 당한다 이러는 겁니다.

 

마치 대한민국호에 대통령과 정치인들 선장과 선원들이 화려한 말의 잔치 멋있는 퍼포먼스로 그들의 목적을 이루었지 만은 정작 오른 선택을 해야 할 때에는 정권보다는 국민을 보고 정치하겠다고 하였지 만은 되고 난 뒤에는 국민보다는 권력이 눈에 보이는 것을 보면서 실망하듯이, 오늘날 여러분 우리 한국교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종교였습니까? 목사님들은 설교를 잘 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붇습니다. 교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교인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교회는 수많은 퍼포먼스를 행합니다, 오지에 선교사를 파송 하는 일도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도 합니다.

 

그런데 왜 요즘 교회가 사람들에게 실망을 가져다 줍니까? 그것이 말의 성찬이었고 퍼포먼스 이였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서 실망하기를 시작하는 겁니다, 이제는 더 이상 종교적인 규례나 화려한 사역에 관심을 가지지 마라는 것이 시선이 말하는 겁니다. 인솔목사님이 때로는 모든 사람들이 살려고 할 때에는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위해서 죽음을 선택했지 만은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버리면은 모든 사람이 살아나야 할 때에는 도끼 칼로 성경을 쳤습니다, 조요한 선교사는 살려고 신앙을 버렸고 살은 삶은 사는 것이 아닌 삶 이였습니다, 죽음을 선택한 그 순간은 평화를 얻는 순간이었습니다.

 

5. 하나님은 우리가 짓는 예배당 우리가 행하는 선교 구제 관심이 없다, 얼마나 네 옆에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느냐? 에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어 주셨고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에 회복을 위해서 성찬을 행하게 하셨다.

여러분 신앙은 죽음을 선택해야 할 때와 삶을 선택할 때에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진리인 성경을 알아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그런 부분에 너무 많은 것들을 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짓는 예배당 우리가 행하는 선교 우리가 행하는 구제 관심이 없습니다, 얼마나 네 옆에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느냐? 예수님은 사람을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종교가 생명을 잃어가면은 종교의 목적을 위해서 사람을 수단화하고 도구화 합니다, 회교가 그렇지 않습니까? 회교의 목적을 위해서 사람을 자살폭탄테러범으로 만드는 겁니다, 오늘 우리교회가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화려한 말과 멋있는 퍼포먼스에 환호했든 국민이 정작 그것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고 권력을 위한 것인 것을 알면서 실망하듯이 교회의 화려한 말과 교회에 향하는 모든 사역이 사람이 배제되고 하나님을 빙자한 종교적인 목적이 될 때 실망하는 겁니다. 종교개혁을 부르짖는 소리는 많지만은 교인을 귀하게 여기는 소리는 적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그러셨듯이 우리는 사람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겨야 됩니다. 사람을 종교적인 목적을 위하여 도구와 수단화 시키지 마세요 이런다고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또 죽은 종교 됩니다.

 

또 다른 자기 의가 나타나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러지 안 했습니다, 성령을 보내어주어서 김씨 이씨 박씨가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시는 가족을 만들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어 주신 겁니다, 누가 사람을 귀하게 여깁니까? 가족입니다 저 집에 저장애인만 없어도 편안할 텐데 하는데 그 가족 된 자들은 그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어 주셨고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에 회복을 위해서 성찬을 행하게 한 겁니다, 제가 언젠가는 여러분들에게 수요일 날 이야기했지요, 성찬식은 천주교가 화려한 퍼포먼스로 사람들을 억압할 때 종교개혁자들은 아니라고 약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원래 교회는 설교와 함께 성찬이 있는 예배였습니다, 제가 우리교회에 성찬식 자주하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습관이 될 가봐 이것이 하나의 종교적인 퍼포먼스가 될 가봐 일년에 두 번만 하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 오늘 이 성찬을 떼면서 여러분들 속에 이온세상이 교회가 나의 조국이라는 생각이 없는 사람은 성찬에 손을 넣으면은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고 예수님의 피와 살을 모독하는 겁니다,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여러분들의 조국이고 여러분들의 가족이라는 생각이 없는 사람이 성찬을 떼는 것은 예수님의 거룩하신 구원의 사역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지금도 저는 이 세월호에 참담한속에 매스콤에 말의 성찬에 차고 넘칩니다, 여러분 제가 설교문 요약에 어제 11시 넘어서 몇 문장을 지웠습니다, 왜 비난의 화살이 교회에 쏟아질 것 같아서, 무슨 문장이었는가? 단원고에 자식을 잃은 부모가운데 기독교인이 있다면은 내 자식의 생명이 소중한 만큼 20센치 앞이 보이지 않는 혼탁한 바다 30분 있으면은 저 체온으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그 바다 대한민국에 조류가 2번째로 세서 언제 떠내려갈지 모르는 그 바다에 내 아들을 살리기 위하여 잠수하는 그 잠수부도 내 아들과 같이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기독교인입니다, 이런 이야기 돌 맞을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성찬을 떼고 나면은 내 자식이 귀한 만큼 남의 자식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성찬에 참여할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수화 왔는데 53일 날 수화가 골프를 해서 우승을 바라는 마음을 아빠인 정재훈씨만큼 가질 때 성찬에 능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거나 종교적인 규례에 있지 않다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내 생명이 귀하면은 다른 사람 생명도 귀합니다, 내 호주머니에 돈이 귀하면은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에 돈도 귀한 줄 아는 자가 기독교인 입니다. 우리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일년에 두 차례 중에 한번 행하는 이 성찬이 종교적인 퍼포먼스나 화려한 말의 성찬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져서 헬라인도 유대인도 이방인도 하나님의 한 가족 되게 하였든 그 오순절의 역사가 우리 안에 일어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독교가 사람이 율법을 위한 것이나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종교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을 회복할 때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한국기독교가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8년 동안 종교적인 목적이나 예배당을 위해서 여러분들을 이용하지 안 했습니다. 화려한 프로그렘을 위해서 여러분들을 조금도 사용할 마음 없었습니다, 많은 내적 갈등이 있었지만은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은 우리교회 다닐 때에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그 모습 저의 그 모습 하나 보기를 바랍니다.

 

1)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는 부모,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는 자식이 가족이다, 가족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자만이 성찬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화려하지 않고 인기 없는 이야기이고 박수 치지 않으며 그게 생명의 자리이다.

거쳐간 수많은 부교역자 사랑을 주었지만은 욕하고 떠난 교인들 있을 때에는 내 가족과 같이 보았습니다, 오늘도 여러분 가족의 눈으로 보세요, 남을 위해서 생명을 버리려 하지 말고요, 왜 교회생활이 힘듭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약점과 허물 그것 가지고 우리 말 잔치 하잖아요 비수인데 가족이라면은 그러겠습니까,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는 부모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는 자식이 가족 아니겠습니까, 큰일 하려고 하지 마세요 가족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자만이 성찬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정말 그건 화려하지 않습니다, 남들에게 인기 없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박수 치지 않습니다. 그게 생명의 자리입니다.

 

오늘도 정말 우리가 저는 김씨도 박씨도 최씨도 모두다 다 하나님의 하씨가 되는 그런 성찬이 되어져서 정말 여러분 남 죽어야 내가 사는 세상 속에 오아시스가 되는 이름만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인생에 쉼의 자리가 되고 여러분 사랑하면 남는 것은 배신감입니다, 남을 도와주면 남는 것은 배신감입니다, 그러나 가족에게 행한 것은 가족은 배신감을 이기게 합니다, 우리 찬송가 586장입니다. 아멘

 

◈성찬예식◈

우리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가운데서 건지시려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 드립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든 밤에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받아 먹어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이 자리에도 오셔서 이 떡에도 한가지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고 하셨은즉 이 신령한 예식에 동참하는 자들마다 영생의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떡과 이 잔은 우리모두를 영원한 하나님의 가족 되게 하신 주님의 몸과 피입니다, 남 죽어야 내가 사는 세상 속에 더불어 살아가도록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만드시기 위하여 주님이 흘리신 살이고 주님이 흘리신 피입니다, 유대교는 사람을 종교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고 도구화했습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수단이었지마는 예수님은 율법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종교적인 목적이 우선이 아니라 종교적인 목적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천하보다도 귀하게 우리를 여기십니다 온 천하하고도 바꾸지 않는다고 합니다. 젖 먹는 아이를 어미는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경제적인 논리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나서는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목동에게는 그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은 남아있는 아흔아홉 마리의 어떤 양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기의 자식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지은 한 가족임을 알지 못하는 데에서 죄악으로 관영하고 세상의 배가 파선되어져 가는 겁니다, 여러분 가족은 가족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은 죽음을 선택하는 거에요, 한갓 민물인 가시고기도 자식을 위해서 자신의 온몸을 내어주는 겁니다. 내 자식만 자식으로 보면은 종교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은 내 자식이 귀한 만큼 남의 자식도 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내 생명이 귀한만큼 다른 사람의 생명도 귀하게 여깁니다, 내 돈이 귀한만큼 다른 사람의 돈도 소중하게 여깁니다, 내 명예가 귀한만큼 다른 사람의 명예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거듭난 자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도록 우리를 영원한 가족으로 만든 겁니다, 혈연의 가족은 죽음과 함께 끝나는 가족이지만 성령으로 하나님의 가족 된 우리는 영원한 가족입니다, 죽음이 갈라놓지 못하는 가족입니다, 한국교회가 교인들이 듣고 싶은 말에 성찬이었습니다. 교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퍼포먼스 이였습니다, 누가 교인들이 듣고 싶은 말 교인들이 감동하는 퍼포먼스를 행하느냐에 따라서 교회의 싸이즈가 결정되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정치가들의 말과 정치가들의 퍼포먼스에 실망한 국민과 같이 세상은 더 이상 교회의 그러한 모습에 속지 않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선교 팀의 인솔자 목사님은 죽음을 직면해서 모두가 살려고 할 때에 신앙의 신념을 위해서 초연이 죽음을 선택한 일들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팀원들이 살아야 할 그때에는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버리고 도끼 칼로 성경을 난도질 합니다, 자신이 살려고 종교적인 신념을 버린 조요한 선교사의 십년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그 순간은 세상 어디에도 맛보지 못하는 평안의 순간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고 삶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교감은 배에서 아이들의 자리에 대신 들어가고 아이를 살리는 선택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선택이었지만 그걸 선택했어야 했습니다, 살았으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고 환호하지 않더라도 참된 교육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 번민과 갈등 속에서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 속에서 쏟았든 정성을 주었든 아이가 배신하는 배신감속에서 변치 않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자살을 선태 하는 것보다 어려운 선택입니다,

 

회교는 죽은 종교입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신념에 달성을 위해서 기독교를 인질로 삼아 돈을 요구합니다, 자신들의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상대방에게 그 신념을 버리라고 강요 합니다, 생명이 있는 기독교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종교적인 신념이 다른 반군의 여동생도 대려 와서 수술을 시켜주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생명이 있는 기독교는 종교적인 목적에 달성을 위해서 사람에게 피와 땀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예루살렘성전 속에는 수많은 교인들의 피와 눈물이 있는 겁니다, 그런 유적문화를 주님은 생명 있는 기독교가 아니라는 겁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져 죽으면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에 환호하지만은 썩은 씨앗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없습니다,

 

그 썩은 씨앗 외로운 자리입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자리입니다, 환호가 없는 자리입니다 그 씨앗에, 생명과 열매가 맺히는 겁니다, 수많은 사람의 눈물과 피와 땀과 고통으로 인하여 세워지는 바벨탑에 사람들은 환호합니다, 그 탑을 쌓은 자는 영웅이 됩니다, 그러나 그 쌓은 탑은 언젠가는 시멘트 덩어리가 되어 사람에게 짐이 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으로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오늘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고, 오늘 나와 다툰 사람이 있으니 오늘 내가 시기한 사람이 있으니 나는 주님을 사랑안한 사람,

 

나를 미워한 사람을 용서 못했고 내게 화낸 사람을 이해 못했고 나를 시기한 사람을 싫어했으니 나는 주님을 사랑안한 사람 매일 이렇게 살아가면서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한다니 나는 참으로 행함이 없는 사람 주님을 사랑안한 사람, 오늘 나의 마음은 재물에 있고 오늘 나의 생각은 자녀에 있으며 오늘 나의 발길은 세상에 향했으니 나는 주님을 사랑안한 사람, 나의 생각은 항상 주님을 앞섰고 나의 찬양은 항상 빈 마음이었고 나의 생활은 언제나 감사를 잊었으니 나는 주님을 사랑안한 사람,

 

매일 이렇게 살아가면서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한다 하니 나는 참으로 믿음이 없는 사람 주님을 사랑안한 사람. 세례를 받으시고 교회를 여러분들의 가정 교회가 여러분들의 조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받지 못한 분이 있으면 손을 들어서 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이루신 하늘의 평화가 땅에 임하는 놀라운 성찬 예식에 감사하면서 우리 다같이 화답의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잔치에 참여하였습니다, 비옵나니 우리로 하여금 이 참된 생명의 양식을 항상 갈망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로 하여금 다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 항상 믿음으로 준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봉헌기도◈

하나님 이 세상에는 우리의 삶에 형태에 적합한 사람들은 많은 자원을 가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있는 것까지도 잃어버리는 애통함이 있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 수고한자의 분복을 누리기도하고 게으른 자는 가난하되 능력이 부족해서 예기치 않는 사고로 인하여 어려운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위하여 우리의 수입의 십의 일은 하나님께서 별도로 책정하여 우리에게 맡김을 알아서 주님 앞에 드려서 우리가운데 약한 자에게 소망이 되어지고 모든 삶을 평균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헌금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이 헌금이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서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확보할 수 없는 삶의 안전을 공동체를 통하여 누리며 살아가서 하늘의 평안을 맛보는 복된 교회로 삼아주시옵소서. 입으로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는 교회가 아니라 더웁게 해주는 교회, 배부르게 해주는 교회,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하라는 말하는 교회가 아니라 약한 자들에게도 강하게 될 수 있는 모든 제도를 만들어가는 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가운데 내주하신 성령의 역사하심이 오늘도 우리모두가 하나님의 지음 받은 한 가족임을 알아서 모든 사람의 가치 평가를 가족의 눈으로 봄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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