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성경적 역사관(6월22일 주일 설교문)예레미야애가 3:19-39

차주희 2014. 6. 27. 13:33

 

 

 

 

담임목사 김종웅

 

 

 

성경적 역사관

예레미야애가 3:19-39

2014 6 22일 주일 낮 예배

                                                                                                                                                                   No. 163

하나님의 말씀 예레미야애가 3장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말씀이고 또 여러분들이 이 말씀 보면은 참 오늘 말씀에 참 은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번 읽겠습니다 같이 19절에서 39절입니다,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29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34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

35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6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37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

38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아멘

 

총리지명자의 역사관과 신앙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의 역사관이다, 이런 역사관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회가 욕을 먹는다. 잘못된 민족주의, 유대교의 선민 사상, 사대주의적인 생각들 이걸 넘어서야 된다.

 

요즘 참 우리 예수 믿는 것 어떨 때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일들이 우리 속에 참 많이 있는 그런 시대인 것 같아요, 여러분 총리 지명자가 또 한국 대표적인 교회에 장로님인데 그의 역사관 신앙관이 도마 위에 올라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또 패널들의 하는 이야기를 보면은 또 뭐 한국에 대부분의 교인들의 신앙이 그런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가집니다, 그분이 뭐 친일파 저는 절대로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 보면은 좀 우리 한국계 교인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잘 못된 민족주의가 그기에 있어요, 그리고 유대교의 선민 사상이 좀 포함 되어저 있고 그리고 사대주의적인 생각들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 한국의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생각 입니다 이걸 넘어서야 되요, 그래서 오늘 성경 전체를 우리가 좀 보면서 우리가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말씀을 좀 전하려고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참 좋아하셨다. 그 인간을 사탄이 유혹해서 깨뜨려 버렸다.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구원이다. 세상은 부패와 포악이 가득해서 하나님께서는 노아홍수를 통하여 쓸어 버렸다.

또 여러분들이 그런걸 보면서 무조건 기독교인이라고 변론해서도 안 되고요 또 뭐 비판해서도 안 되지요, 무엇이 잘 못되었는가 알고 정확한 대안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려면은 성경전체를 여러분들이 보시는 눈이 있어야 되요, 부분을 보니까 자꾸 그런 오해가 일어나는데 성경 전체를 보면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는데 참 보시기에 모든 것이 좋았더라 이럽니다,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고도 하나님이 참 좋았는데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이래요, 하나님 보시기에 제일 안 좋은 것이 여러분 독처 외로움입니다, 지옥에 가면은 철저한 소외가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은 여러분 우리가 원래 하나님께서 그래서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해서 하와를 만들어서 두 사람이 연합하여 한 몸 되게 한 것 물론 결혼제도인 것 같지만은 좀 더 포괄적으로 봐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은 공동체로 만드시고 그 아름다운 모습은 좋은 공동체의 모습 속에 있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여러분 참 우리가 살면서도 그렇잖아요, 뭐 어떤 아름다운 여자라도 어떤 건강한 남자의 몸이라도 세월이 지나면은 다 시들해 지잖아요, 그런데 참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의 삶의 모습을 보면은 참 귀하고 아름답다 이러잖아요,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 분명히 두 사람이지만은 한 가지의 생각을 가지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가도록 만드셔서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아름답다고 그랬어요, 그랬든 그 인간을 사탄이 유혹을 해서 깨뜨려 버렸어요, 그래서 창세기 3장에 가서 보면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또 4장에 가보면은 가인의 족보가 나오고 5장에는 아담의 족보가 나오는데 타락을 해서 사람들이요 서로 혈연끼리 연고끼리 뭉쳐서 서로 싸우는 것 이것이 세상이다 이 말입니다 타락한 세상.

 

그저 밥 먹고 학교 가고 공부하는 것이 세상이 아니고요 이 세상은 성경이 말 할 때에 서로 자기들만 잘 살려고 싸우고 찌지고 볶고 하는 것이 세상이다, 여러분 그것 아셔야 됩니다.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원래 아름다운 그런 공동체의 모습으로 회복시켜 나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렇게 세상이 자꾸 타락을 하니까 아담의 족보나 가인의 족보의 계열이나 모두다 서로 자기 잘 먹고 잘 살려고 찌지고 볶고 싸워서 창세기 6장에 가보면은요 부패와 포악이 세상에 가득하더라 이랬어요, 여러분 그건 뭐 여러분 노아시대나 지금 시대나 동일한 거에요, 사람들은 폭력적이고 그 다음에 사람들은 부패 하고 이런 것들이 세상에 가득해요, 이런 세상을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고 노아 홍수를 통하여 쓸어 버렸어요, 여러분 그것 아셔야 됩니다.

 

2. 하나님은 무지개 언약을 하셨다. 이단은 무지개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전체의 구원사에 대한 이해의 결여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공동체를 통하여 새로워 지는 것이 선택 받은 자들의 사명이다. 사람위에도 사람 밑에도 사람 없는 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다.

그 부패한 세상을 하나님은 쓸어서 노아를 통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였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난 뒤에 하나님이 어찌했다고 그래요? 한탄하셨다 그 심판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어요, 그래서 노아홍수를 일으키고 난 뒤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슨 약속을 주었는가 하면은 무지개 언약을 주었어요, 그래서 그 무지개를 통하여 다시는 이런 심판을 하지 않겠다 이러신 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이단들은 또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이런 이야기하지요, 이 죄악 된 세상 쓸어 버리고 신천신지를 만드셔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였다, 이거는 무지개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전체의 구원사에 대한 이해의 결여 때문입니다. 또 그런 이단이 아니라도 사람들 속에 정치가들이나 교회에도 그런 것 있지요.

 

인적 쇄신이나 제도나 법에 개혁을 통해서 새롭게 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무지개 언약을 믿지 않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대통령 암만 바꾸어 봐도 그 나물에 그 밥이지요, 법 암만 바꾸어 보세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에요, 그래서 세상은 오늘 설교제목을 그랬어야 되는데 그 나물에 그 밥이에요 ㅎ ㅎ ㅎ 그 뭐 여러분 이런 것들을 아셔야 된다고요, 그래서 앞으로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목회를 하면서도요 누구를 바꾸면은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 앉으면은 새로워 질 것 같지요? 그 나물에 그 밥이에요 교회도, 교회에 암만 제도 바꾸어 보세요 그 나물에 그 밥이에요, 하나님은 그러한 제도를 하지 않고 어떻게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갔는가 하는 것이 창세기 12장 부터에요.

 

아브라함을 부르셔 가지고, 그 나물에 그 밥인 세상 속에 그렇지 않는 공동체를 통하여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기를 바랬어요. 그래서 그런 공동체를 통해서 여러분 세상을 부끄럽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의 방법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런 것을 가지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특별한 선택 받은 민족이다 선민 의식이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민족이다 이런 것들은 다 유대교적인 발상이에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은 분명히 아브라함을 부르면서 뭐라 했는가 하면은 모든 민족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그 밥에 그 나물인 세상이 아브라함의 공동체를 통하여 새로워 지기를 바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고 선택 받은 자들의 사명인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자손들도 여러분 나중에 가서 보면은 정말 또 세상하고 비슷하잖아요, 이삭이 야곱을 편애하게 되고 또 에서와 그런 갈등이 있고 또 야곱의 12아들도 얼마나 많은 시기와 질시 속에 동생을 팔아먹고 이런 일들이 잃어 나잖아요, 교회도 여러분 그런 거에요, 교회라고 깨끗한 것이 아니고 세상하고 같아요, 이런 속에 하나님의 뜻이 뭔지 우리가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400년 동안 또 뭐 성경에 그 여러분 해석에 따라서 430년이라고도 해요, 애굽에 노예가 되게 했어요, 그들이 노예로 갈 때에는 왜 갔는가 하면은 두 가지지요, 하나는 기근 때문에 여러분 교회도 먹는 문제가 어렵고 사는 문제가 어려워요 기근 때문에,

 

그래서 늘 애굽으로 가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고 잘 먹고 잘 사는 마음, 오늘 참 우리 박집사님이 그 부분에 대한 기도를 잘 하셨는데 그래서 그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갔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이 되었는데, 애굽 사람의 노예가 된 거에요, 그래서 그 노예로서 처절한 경험을 해보는 거에요,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밑에 사람없는 것이 하나님이 원래 지으신 인간이에요, 여러분 사람을 보면서 힘있는 사람이라고 고개를 90도로 숙이고, 없는 사람이라고 고개를 뒤로 젖히는 것 참 보기 안 좋잖아요, 어린아이나 누구에게나 다 같이 대해야 되요, 저도 참 되도록이면 그러지 않으려고 그래요, 전화를 받으면서 상대방에 따라서 내 목소리의 톤이 달라지면은 얼마나 그 좀 그런 모습이에요,

 

3. 가나안 땅 새로운 공동체에서는 애굽에서의 노예 때를 잊지 말라, 십계명의 정신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지 말도록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다, 그래서 십계명의 전문에 나는 너희를 애굽에서 구원해 낸 하나님이다 라고 하셨다.

그런데 애굽에는 그렇고 세상에는 그렇잖아요, 세상은 남들 위에 지배를 해야 내가 잘 사는 세상이고 그 노예 라고 하는 그런 극단적인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체험하게 된 거에요, 왜 체험했는가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을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할 때에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은 십계명이나 모든 계명에서 너희가 애굽에서 당하였든 고통을 결코 잊지 말라, 그것은 애굽을 보복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나물에 그밥인 세상에서 너희가 한번 당해 봤지, 너희가 노예 되어봤지 그런데 너희가 들어가는 가나안 땅에서 새로운 공동체에서는 사람 위에 사람 있는 그런 사회 만들지마 이런 말이거든요, 너희가 애굽에서 당하였든 고난을 잊지 말라, 하는 것은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의 공동체가 그나물의 그밥인 세상에서 빛이 되게 하기 위해서 십계명을 주신 거에요. 여러분 그거 아셔야 되요, 그런데 그 십계명조차도 여러분 뭐 옛날에 계명이니 어쩌니 안 해요, 또 그리고 그 십계명도 힘없는 사람들에게 준 계명이 아니에요 사실은, 여러분 그때나 지금이나 법 위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잘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자기의 것을 많이 치부를 하니까 없는 사람이 어려워 지니까 하나님께서 도둑질 하지 말라 이랜 거에요. 수요일 날 제가 여러분들에게 소요리문답을 하면서 십계명 그래 이야기했잖아요, 도둑질 하지 말라를 여러분 장발장이 배가 고파서 빵 하나 훔쳐먹는 그래서 징역 가지 말라 이런 말이 아니에요,

 

너희들 먹고 살만한 너희들이 들어가서 사는 그 공동체에는 먹고 살만한데도 남의 것을 탐하거나 도적질 하지 말라, 부유한 자들에게 하는 이야기에요. 우리 그런 이야기하잖아요 큰 도둑은 다 빠져 나가고 이상해요 세상에 거물은 큰 고기는 다 빠져 나가고 왜 잔챙이들만 다 걸리는 거물인지?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는 작은 고기는 빠져 나가고 큰 고기를 거두려고 하는 말씀이에요, 십계명을 여러분들이 제대로 알아야 되요,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는 사람은요, 맛을 아는 부유한 사람들이에요, 그런 계명을 주어서 그 십계명의 정신은 힘을 가진 자가 힘을 가지지 못한 자를 억압하지 말도록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면서 그래서 십계명에 전문에 나는 너희를 애굽에서 구원해 낸 하나님이다,

 

이 말씀은 너희가 애굽에서 힘이 없을 때 당해 본적 있지, 너희들이 가서는 그러지마 이런 말씀이에요. 그리고 신명기에 보면은 또 인간 사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살아야 할 제도를 주시는데요 우리 교회에 깁재도 집사 말고 사회적인 제도를 주는데 이 세상에는요 두 가지 권력이 존재해요, 하나는 정치적인 권력이에요 물론 거기에는 경제적인 권력까지도 포함시켜도 되요, 그래서 그 정치적인 권력과 두 번째의 또 권력이 뭐냐 하면은 종교적인 권력도 있어요, 여러분들이 지금 세월호를 보면서 우리가 아는 것이 종교적인 권력이 얼마나 정치적인 권력보다 강함을 여러분들이 보잖아요, 정치는 여러분 자기 보스가 힘 잃어버리면은 그 다음부터 배반을 하는데 이 종교적인 권력에는요 배반조차 안 하잖아요 지금,

 

1)    정치적인 왕에게는 병력을 많이 가지지 말라,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먹고 사는 정치적 권력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부패와 타락은 정치와 종교적인 권력이 있었든 제사장들의 치부가 부패와 포악이었다.

정말 무서운 것이 종교적인 권력이에요 인간 사회에, 그래서 신명기 17장에서 18장에 보면은 정치적인 권력에 대표자인 왕이 있잖아요, 그 왕에게는 뭐라는 가하면은 너는 병력을 많이 가지지 말라 그래요,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 그 병력을 왜 많이 가지지 마라는 가 하면은 다른 나라를 침략해 가지고 먹고 살려고 하는 그런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지 말라는 거에요. 지금 여러분 일본을 보시면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해석할 줄도 알아야 되요. 일본의 헌법이 정확한 성경적인 헌법이에요, 일본의 헌법이 평화 헌법이잖아요, 그래서 일본은 다른 나라에게 전쟁을 일으킬 군사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평화 헌법이에요, 그런데 일본의 군대는 자위대잖아요,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만큼만 군사를 가지라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왕에게 너희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정도의 병력을 가져야지 더 가져서 다른 민족을 억압을 해서 그것을 빼앗아서 먹고 산다면은 너희들이나 그나물에 그밥이나 같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민족주의로 흘러서는 안 되는 것이 그런 것이다 이 말입니다. 또 종교적인 권력 제사장들에게는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잘 아시지요 모든 땅을 다 나누어 주고는요 제사장들에게는 레위지파 에게는 기업을 주지 안 해요, 종교적인 권력을 가지고 치부의 수단을 삼지 못하도록 탁 해 놓은 거에요, 이스라엘의 역사에 보면은 항상 부패와 타락은 정치적인 권력을 가진 치부와 종교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든 제사장들의 치부가 부패와 포학이었어요, 여러분 유병언이 보세요 그 종교적인 권력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했습니다, 또 그런 그는 내버려두더라도 교회는요 재산을 가지면 안 되요 교회는, 여러분 그것 아셔야 되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한국 교회가요 엉망진창입니다, 교회 재산 없는데 싸우는 교회 별로 없어요, 강서에 대표적인 교회, 강남에 대표적인 교회, 강북에 대표적인 교회, 강동에 대표적인 교회, 지금 다 들어가 보면 뭐 제사장이 권력을 가진 치부해서는 안 되는데 치부해서 땅을 가지고 있기 때문 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지금 이제 분기별로 제직회를 하잖아요, 왜 제직회를 하는가? 재정 보고하고 이러려고 하는 것만 아니에요, 앞으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어떻게 쓰실지 몰라도 모르겠어요 저는 장로님들의 반대가 있어도 반듯이 그렇게 할거에요, 분기별로 재정을 결산을 해서 남는 것들은요 우리 안에 어려운 사람이든지 교회의 복지를 위해서 다 소비하는 것으로 갈려고 그래요, 많이 모으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절대적으로 종교적인 권력을 가지고 땅을 소유해서는 안 되요. 자 그러면 이 두 권력에 하나님께서 견제의 기능으로 준 것이 선지자라는 말입니다.

 

4.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 하라는 것이다. 미가야 선지자는 바른말 하다가 고생의 물과 떡을 먹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짐을 선포한다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열국에 흩어 버리고, 빛과 소금이 되는 말씀은 천대까지 유지가 된다 하셨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사회적인 계급 중에 하나가 선지자거든요 이 선지자들은 신명기 18장에 보면은 자기 말 하지 말고, 하나님이 네 입에 준 말씀만 하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면은 정치적인 권력 종교적인 권력이 또 힘을 발휘해서 세상과 비슷하게 나갈 때에 그래도 진짜 선지자들이 언제나 왕이나 제사장들에게 경고를 해요 쉽지 안 해요, 이 사람들은 권력이 없는 사람이에요, 백성들이 말씀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지 아니하면은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선지자들이 타락을 해서 정치적인 권력과 종교적인 권력과 야합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뭐라는 가 하면은 흩어 버릴 것이다, 신명기 28장에 이랜 거에요, 그래서 미가서 선지자도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뭐라 그래요? 저 거짓 선지자들은 입에 먹을 것이 있으면은 평화를 이야기하고 입에 먹을 것이 없으면은 전쟁을 이야기한다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제사장이나 여러분 왕에게 빌붙어서 사는 그들에게 아부하는 그런 선지자를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미가야라고 하는 선지자는 어쨌습니까 내가 왕에게 바른말 하다가 고생의 물과 고생의 떡을 먹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짐을 선포하는 거에요.

 

오늘날 여러분 교회는 여러분들의 입에 맞는 정치적인 권력과 종교적인 권력을 가지는 어떤 그런 것에 대한 올바른 말씀 선포해야 되요, 듣기 싫어도 듣게 해야 되요, 지금 보세요 지금 여러분 돌아가신 분이 지금 문제된 교회에 왜 우리 교회가 왜 목사님이 권력과 있는 자에게 기웃거리느냐는 겁니다. 여러분 그래 되면은 하나님께서 흩어 버릴 때에 문창극이 이야기했듯이 우리나라를 일제와 육이오 되게 한다 그게 아니에요, 교회가 예수님이 말씀하잖아요, 소금이 맛을 잃으면은 길거리에 버려서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신명기 28장에는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면은 세계의 열국에 흩어 버릴 것이다 삼 사대 만에,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하면 너희들이 천대까지 유지가 되리라, 오늘도 교회가 세상에 어떻게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하는 것을 아셔야 되요.

 

지금 여러분 우리가 지금 이렇게 교회가 흩어짐을 볼 줄 알아야 되요, 왜 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에요, 하나님께서는 6.25와 일제를 통해서 우리 민족을 처서 우리 민족이 세계에 우수한 민족 그런 민족주의가 아니에요, 우리의 그러한 나라의 세상에 그나물에 그밥이은요 죄의 결과로 그런 고통이 오는 거에요,

 

5. 예레미야애가는 자신의 잘못으로 고난 당하는 것을 하나님 원망하지 말라.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이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은 본심이 아닌 구원이라는 것임을 예레미야는 알고 있다. 심판은 회복이 안 되고, 징계는 회복의 역사가 있다.

그래서 예레미야애가 339절에 보면은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 이런다고요, 그러나 이런 고난이 올 때에 한가지 성경은 뭐라고 그래요,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은 교회가 그래도 끝나지 아니함은 이단들은 교회 끝난다 하는데, 끝나지 아니함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한가지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징계하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생하고 고통 당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예레미야가 이걸 아신 거에요 회복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는 곧 구원이라는 거에요. 이 개념도 여러분이 잘 가져가야 되는 것이 역사를 보는 눈만이 아니고요 여러분들의 삶에도 마찬가지에요, 한국 교회 교인들은 신앙적으로나 세상에서 항상 심판만 보는 거에요. 그 심판이 아니고 징계라는걸 몰라요,

 

그 차이를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면 이런 거에요. 심판은 파멸이고 회복이 되지 안 해요, 그럼 징계는 회복의 역사가 있어요. 그걸 아는 게 하나님의 본심을 아는 거에요, 제 그 잘아는 목사님이 독일에 유학을 갔다가 선교사로 있다가 한국에 왔어요, 수십년 전에 이야기지만은 왔는데 얘가 초등학교 4학년 우리 영실이 하고 같았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4학년짜리가 자기 아버지 선교사에게 이러드레요, 아빠 한국은 참 이상해 독일하고 달라 이러드래요, 뭐가 이상한데 이러니까 얘가 한다는 소리가 한국에는 숙제를 안 해 가면은요 매 맞고 끝 난데, 독일에는 숙제를 안 해 가면 매 맞고 또 해 가야 된데, 독일은 하나님의 징계고요 한국의 매는 심판이에요, 여러분 이 심판은 잘 보세요 왜 회복이 안 일어나는가 하면은 여러분 나를 보면 알아요, 이 심판이 한 두번 있잖아요 그러면 면역이 일어나요, 본심을 모르기 때문에 어떤 면역이 일어나는가 하면은 에이 한찰 맞고 말지 노는 거는 재미있는데,

 

여러분 지금 이래서 우리가 지금 회복이 안 되는 거에요, 지금 우리나라 정치도 보세요 국민들에게 한번 맞고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는데 회복이 안 되는 겁니다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 거에요. 여러분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교회가 잘못될 때에 흩어지고 그 다음에 여러분 밟힐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 밟히게 하는 그 속에 하나님의 눈물을 알 때 다시는 그러지 안 해야지, 오늘 여러분 이런 회복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때려서 민족주의 사대주의 여러분 선민사상과 결부된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6.25가 일제를 보는 것이 아니고 시대를, 오늘 우리 한국 교회가 얼마나 세상에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가 한국 교회가 종교적인 권력이나 권력을 행사로 휘두르고 있는 모습은 아닌지,

 

정치적인 권력에 아부하고 있는지는 아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먹을 물을 마실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교회, 그래서 때리는 그 하나님의 눈물을 보아서 우리가 당하는 이 고통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 역사를 이어 가는 귀한 신앙을 가져야 되요. 두 번째로 여러분들에게 그런 공동체에도 있지만은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당하는 고난에도요 죄와 고난을 1:1 로 가져가면은 큰일 납니다, 그 말이 뭐냐 하면은 모든 고난은 죄의 결과라고 보는 거에요, 그런 것이 유대교에요 그렇게 되면은 교회 안에서 뭐 하는가 하면은 누가 잘 못되면은 저 사람은 우리가 모르는 죄를 지었는가 보다, 정죄가 일어나고요 또 자기 스스로에게는 죄책감으로 인하여 낙심이 일어나요,

 

개인적으로 여러분들이 오늘도 한번 여러분들 스스로를 살피세요, 내가 개인적으로 잘 못해서 당하는 고난이 있어요 그건 회개해야 되요, 무슨 이야기입니까 담배 피워서 폐암 걸려 놔 놓고 하나님이 하셨다 하면 안 되요 그건 자기의 죄의 결과에요, 또 한가지는 여러분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그러고 유기적인 관계라고 말 했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교회가 세상에 빛이 되어야 될 이유,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내가 아무리 잘 해도 타인이 잘 못해서 내가 당하는 고통이 있잖아요, 나는 사업 제대로 했는데 어떤 미친놈이 나에게 부도수표 난발해서 내 사업 망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좋은 공동체를 위한 사명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되요. 또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나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 고난을 당하는 것도 있어요

 

6. 간접 흡연으로 병이 걸릴 수도 있고, 내 잘못으로의 고난은 회개하고, 나면서 소경 된 자는 죄가 없는데도 고난이 있을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있다,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위대한 영광의 삶을 우리에게 들어내기를 원하신다.

여러분 그런 사람들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내가 뭘 잘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 이래 가난해야 됩니까 뭘 잘못했기 때문에 내가 이런 병에 걸렸는지 뭘 잘못했기 때문입니까, 그럴 때에 내가 담배 안 피웠는데도 폐암에 걸렸거든요 누군가의 간접 흡연일 수도 있고 그런 것도 없고 그랬을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있어요, 나면서부터 소경 된 자도 있잖아요 누구의 죄 때문이냐?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내속에 고난이 있을 때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위대한 영광의 삶을 우리에게 들어내기를 원했어요, 흔들리지 말고 오늘도 여러분 정말 더 이상 우리 한국 교회가 정치적인 권력이나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종교적인 권력을 가지고 치부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

 

극단적인 대립하는 그나물에 그밥인 세상 속에 교회는 좀 힘이 없더라도 서로 제가 그 설교 전문으로 홈페이지에 실어 놨는데 그기 그 말이 있어요 설교를 좀 짧게 하려고 제가 그렇게 합니다. 콘스탄틴누스가 왜 기독교를 공인 했는가 교회가 별로 부유한 자도 없는데 가진 자들이 나누기도 하고요, 권력을 가지고 짓 눌리지도 않는데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 진 거에요 자기가 추구했든 로마의 제국이 그렇게 가야 된다 생각했든 거요, 오늘날 교회가 제사장의 권력을 가지고 치부의 수단보다는 저는 우리 교회가 그래 생각해요, 하루속히 분기별로 여러분들에게 예산이 짜 져서 잉여예산이 우리 가운데 약한 자에게 힘이 되기도 하고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인 복지를 이루어 가는 데에 사용 되어져 가는 그런 교회 지금 우리 이런 거 한번 해도 되나 구숙현 권사님이 문막땅 200평을 교회에 기증하셨어요.

 

그 문막 ic 나가서 바로 옆에 좋은데에요 앞으로는 우리 예산이 좀 되면 그런 데에 전원주택 되어서 목사님 서재 만드는 게 아니고 ㅎ ㅎ 누구나 좀 힘들면은 가서 쉬었다가 회복하고 돌아올 수 있는 이런 것들 이런 모습을 통해서 보편 복지냐 선별 복지냐 싸우는 한국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회복해야 할 교회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 한국은 무너져야 된다 이런 것도 아니에요, 그런 죄악 된 세상을 하나님은 더 이상 파멸시키지 않고 선택 받은 백성들을 통하여 부끄럽게 만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 속에 새로운 사명을 가지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 가운데 약한 자에게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기도하고 말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배부르게 하는 교회 더웁게 하는 교회가 되어서 세상을 부끄럽게 할 수 있는 생명이 있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세워 주시옵소서 우리 가운데 약한 자에게 힘 더하여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 있다고 없는 자 무시하지 않게 하시고 없다고 있는 사람 비난하지 않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다운 에덴 동산에서 주님이 만드신 그 좋은 공동체의 회복이 있도록 하나님의 본심 하나님의 눈물이 예배 때마다 보여 지는 귀한 은혜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정치적인 권력 종교적인 권력을 휘둘러서 사회의 강자 약자를 양산해서 파멸해 가는 세상 속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모든 사람의 노예 됨을 친히 몸으로 보여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그 무궁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징계 속에 하나님의 눈물을 알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주님 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들의 생애와 가정과 이들의 삶 속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