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마음의 할례-신명기 10장 22-22절 (주일 설교문)

차주희 2015. 3. 7. 12:55

 

 

 

담임목사 김종웅

 

마음의 할례

신명기 10 12-22

2015 3 1일 주일 낮 예배

                                                                                                                                                No. 199

하나님 말씀은 우리 신명기 10장 입니다 우리 신명기 강해 오늘 열번 째 입니다. 12절부터 22절 까지 우리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

21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 눈으로 본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22 애굽에 내려간 네 조상들이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아멘

 

하나님 나라와 새 생명의 환희. 삼일절은 내 권리도 주장하는 그런 나라가 되지 못한 억울함이 터져 나온 것이 삼일절인데 재현해야 된다. 유대인으로 이스라엘 백성이란 이유로 식민지로 억울함이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 가서 그런 억울한 나라를 세우면 안 된다 라는 말씀.

 

우리 오늘이 삼일절이지요 여러분들 기억에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정말 우리 신앙인들은 이런 것들 알고 지켜야 됩니다. 우리가 기념이라고 할 때에도 단순히 1919년 삼일절 모든 국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 했든 날이구나 이정도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재현 해야 되요.

그때에 우리 민족이 어땠는가? 어땠습니까? 일본의 식민지로서 한 10년 지내보니까 암만 열심히 일을 해도 수고의 대가를 받지 못했고, 사람 대접 못 받았거든요 억울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독립해서 내 수고한 것 정당한 대가를 누리기도 하고, 내 권리도 주장하는 그런 나라가 되야 되겠다, 그 억울함이 터져 나온 것이 삼일절이거든요. 여러분 참 우리가 그런 것을 보면서 그때 그 마음을 통해서 독립을 이루었는데 또 여전히 우리는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암만 노력을 해도 그 노력의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고, 또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누구에 의해서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내 운명이 고정되어 버리니까 억울한 거에요.

 

내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고 싶지 안 했잖아요. 그건 정말 정해 진 것인데 그것 때문에 내 일생이 다 그대로 정리가 된다고 하니까 억울하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명기를 여러분들이 쭉 강해하는데 지금 열 번째 하면서 그 마음을 아셔야 되요. 너희들 애굽 땅에서 어쨌어? 식민지로 노예로 있었기 때문에 너희들이 암만 노력을 해도,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났다는 그 하나의 이유 때문에 기득권층이 되지 못하는 억울함이 있었잖아. 너희가 노력한 것 주인에게 다 돌아가 버린 것 있잖아, 그런데 너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서 가나안 땅에 갔는데 그곳에 가서 그런 억울한 나라를 세우면 안돼.

 

1. 신명기를 주신 목적은 어려움을 겪을 때 손 잡아 주는 그런 나라가 되야 된다는 것이 목적이다. 누구도 억울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고 주님이 오신 거라는 말씀. 복음이 있으면은 사람이 본어개인 되고 거듭나게 된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킴으로 말미암아, 정말 누구든지 열심히 일을 하면 일한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고,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더라도 자기가 열심히 하면은 얼마든지 잘 사는 그런 나라가 되고, 살다 보면은 본의 아니게 정말 부도가 날 수도 있고, 어려움을 겪을 때 손 잡아 일으켜 주는 그런 나라가 되야 돼. 그것이 신명기를 주신 목적입니다. 그건 과거에 그런 것만이 아니고 오늘도 마찬가지거든요. 우리가 지금 예전엔 조금 못살아도 지가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 갈수 있었고, 또 열심히 공부를 하면은 자기 나름대로의 뭔가 이룰 수도 있었잖아요.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분들도 그렇잖아요. 정말 시골 촌뜨기 이었지마는 이를 악물고 공부 하고 살아온 결과로 그래도 이만큼 살 수 있는 희망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희망이 사라졌잖아요. 이런 나라가 불공평한 나라 공정하지 못한 나라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가면은 어느 누구도 억울함이 없는 그런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에요. 그러면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어느 누구도 억울하지 않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맛이라도 보도록 주님이 오신 거다 이말 입니다. 그저 종교적인 규례와 전통을 지키고 그저 어떤 기독교의 세력의 확장을 위해서, 주님이 오신 것이 아니에요, 본질을 지금 잃어버린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들 속에 정말 우리나라가 이제 교인이 많아 지고, 예배를 드리고 이럴수록 정말 공평한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 안에도 이루어져야 되지마는 교회로부터 세상으로 점점 확대 되어져 가는 그런 축복이 우리가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서 더 우리 가운데 가까이 와 닿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가? 저는 보면서 교회가 종교성만 있어요, 그 안에 있는 복음이 살아 진 것 같아요. 옛날에는 교회가 희망이 있었거든요, 나라가 희망이 있었거든요, 왜 그런가? 복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있으면은 사람이 본어개인 됩니다 거듭나게 되요. 거듭나게 되는 것은 주일날 주일 성수하고, 여러분 뭐 교회 봉사하고 그런 외형적인 것이 아니에요. 가치관의 변화가 생겨요.

 

우리가 부르는 찬송에도 보면은 그런 찬송 있잖아요, 주안에 감추인 새 생명 얻으니 그 다음에 뭐에요 이 전에 좋든 것 이제는 값없다, 교회에서 이런 것 경험했었거든요. 옛날에는 내가 남들보다 더 많아 가져서 소비의 즐거움으로 살았는데 그게 별 것 아닌 줄 알았다 이말 입니다 교회 생활하면서. 예전에는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남들을 많이 지배하는 것이 복인 줄 알았는데, 주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보니까 그것이 별 것 아니다 이런 것을 알았다는 거에요.

 

2. 예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어야 귀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 가치가 변화 되고 말씀의 능력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됨. 가치관의 변화 삶의 변화가 있으려면 모든 것은 상대적인 진리이고, 성경만이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 드리고 일점 일획의 변화가 없고 진리의 말씀이 선포 되야 된다.

 

그래서 그런 것을 교회에서 경험하고 맛을 보고 나니까 찬양이 그렇게 절로 나오는 것이고,

생각만 해도 하나님 감사하고, 하나님 좋아했다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회 와서 하나님 믿고 뭐 하는가 하면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해서 더 많은 소비의 즐거움으로 살고, 남들 보다 더 많은 사람을 위해서 굴림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천국이고 복이라고 해 버리니까 이전에 좋든 것이 이제는 값없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더 그것을 집착하게 만들어 버리니까 자유도 없고 누림도 없고, 기쁨도 없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들 속에 예수님이 여러분들 삶의 주인이 탁 됨으로 말미암아 정말 그런 것이 교회에서 경험되는 그런 귀한 은혜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에도 어떤 목사님이 제 방에 와서 한 두 시간 대화하고 차 먹고 이러는데, 목사님 왜 금요일인데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금요일 날 자기가 일해야지 왜 교회 와 있느냐고.

 

우리 정말 전제가 잘못된 게 많아요. 그러면서 요즘은 교회가 좀 늘었습니까? 그래서 아 목사님 교인 100 200명 너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해요? 예수 믿고 교인들이 행복 해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여러분 그러려면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고, 여러분들의 가치가 변화 되야 되요. 말씀의 능력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되요. 그런데 왜 요즘은 그런 것이 없느냐? 첫째는요 여러분들 스스로를 한번 살펴보세요. 오늘도 성경본문에 그런 말씀을 하는 거에요, 12절에 보세요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뭐라고요 네 행복을 위해서 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되는가 하면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그런데 그 행복이 환경에 의한 행복이 아니에요. 공정한 공동체가 세워 지고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우리가 가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환경은 그대로인데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짐으로 행복해 지는 거에요. 여러분 요즘 이런 게 희기 하잖아요. 왜 이성의 발달과 함께 교인들이요 성경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심방 우리 박하자 집사님 이사해서 갔는데 어머니가 일흔 넘었는데 아 이야기 들어 보니까 내가 하나님인 줄 아는 것 같이 섬기더라고, 여러분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가치관의 변화 삶의 변화가 있으려면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상대적인 진리이고요, 성경만이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 드려야 되요.

 

목사님은 강단에서 상대적인 진리를 선포하는 자가 아니라, 일점 일획의 변화가 없고 알파와 오메가가 되고, 그 어떤 변화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 선포 되어져야 되요. 여러분들은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드리게 되면은 정말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는 은혜가 있는데, 요즘은 계몽주의 이후에 인간의 지성이 발달하면서 성경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과학과 지식으로 판단하면서 우리가 그런 가치관의 변화가 없어진 거에요. 여러분 이번에 중직자회 1과에서도 정말 얼마나 성경이 변함이 없는 진리인가를 이제 출발을 해 나갈 거에요. 이런 것은 목사님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물론 이 근간에는 정말 목사님들이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한 잘 못된 것도 있어요.

 

3. 하나님의 말씀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드렸고,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사도였기 때문이다 이게 기적이다. 내 생각이 틀렸네요 하나님의 말씀이 옳네요. 여기에 아멘이 나와야 됨.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변화가 안 일어나는 거에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은 데살로니가 교회라는 교회가 바울이 말할 때 이래 말해요. 아가야에서 본이 되는 교회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들을 한번도 빠트릴 수도 없는 그런 좋은 교회이다. 너희들에게는 내가 무슨 할 말이 없다. 그러면서 그 데살로니가 교회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은 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드렸기 때문이고,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사도였기 때문입니다 이게 기적이에요. 기적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사람이 여러분 이런 것도 아는 게 진리이거든요. 사람은요 자기가 경험한 것 밖에 몰라요. 그런데 그 조그마한 경험한 것을 절대시해 버리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아이들에게도 내가 경험한 것 가지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데 내 경험한 것 아니에요.

 

어제도 아들이 아빠 이런 이런 일을 해야 되겠는데 아빠 생각은 어때요? 이래서 그것은 내가 이제 스물 일곱이기 때문에 아빠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아빠가 살아온 세월하고 네가 살아가는 세월은 다르다고 했어요, 그러나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의 이야기밖에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해요. 내가 경험한 것이 다인 줄 알고 자식들에게 강요해 버리잖아요. 얼마나 우리가 완악한지 몰라요 교만한지 몰라요. 그래서 셩경에 그런 말을 하는 거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목을 곧게 하지 말아라. 너희들이 정말 세워 지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런 나라를 모세가 세우기를 원했고 하나님이 세우기를 원했지마는 이스라엘의 역사 보세요 엉망진창이 되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은 곧 가서 동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예수를 믿어도 정말 이전에 좋든 것 이제는 값없다 주 따라 가는 길 험하고 멀어도 여러분 이런 어떤 찬양이 우리 속에 사라진 것이 쓸데 없는 진리 사회적인 통념이나 내가 경험한 것을 기준으로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 근간에 한국의 목사님들의 책임을 저는 부정하지 안 해요. 우리 교회는 아멘이 별로 없는데요, 정말 어떤 교회 가보면 아멘 안 해야 될 때도 아멘 이고 목사님 재채기만 해도 아멘 해요. 그거는 비 성경적이에요. 교인들을 우매 하는 것이 좋은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 경험과 사회적인 통념이 얼마나 잘 못되었는가를 알고 성경에 비추어서, 아 그러네요 내 생각이 틀렸네요 하나님의 말씀이 옳네요. 여기에 아멘이 나와야 되요. 그런데 이런 일들이 사실은 기적은요 다른 게 기적이 아니에요. 여러분 그래서 모세가 지난주 또 여러분 읽어라 해도 안 읽으셨지요? 신명기 읽으면서 지난주 어떤 말씀에 줄 끄어 져 가 있어요? 9 24에 보면 뭐라고 그래요? 내가 너희를 알든 그날부터 너희는 뭐했다고요 항상 여호와를 거역했다고.

 

4.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살리는 길이다. 토라인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말씀을 가지고 613가지의 해야 될 것 안 해야 될 것 가렸다 그게 미신화에요. 사회가 공정하고 합리성이 있는 나라가 되려면 로고스라 생각했는데, 예수님의 바탕 위에 서야 된다.

 

사도행전 7장에 가보면은 스데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교를 할 때에 똑 같은 이야기 해요. 너희가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목을 곧게 하지 마라, 너희들은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여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죽였다. 듣기 좋은 소리요 듣기 안 좋은 소리요? 안 좋은 소리 오늘날로 치면 무슨 말이냐 하면 오늘 목사님이 치는 설교 하시네 하면서 돌멩이로 스데반을 죽인 거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살리는 길이에요. 아직 감이 잘 안 오는 모양이네. 제 이야기 할게요 여러분들은 자녀들에게 부모가 지 행복을 위해서 말을 하는데 말하는 것 듣습니까 안 듣습니까? 그럼 자녀 말고 자기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 들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안 있고 강남에 살았겠지요 ㅎ ㅎ ㅎ.

 

아이들 텔레비 보는데 테레비 그만 보고 공부해라 하면 예 알겠습니다 제가 참 잘못했네요 하고 책상에 가는 얘들 봤어요 안 봤어요. 그런 얘들이 있으면 기적이에요. ㅎ ㅎ ㅎ 그게 우리라고요. 여러분들이 주일날도 내가 듣기 좋은 소리를 들으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진리의 말씀으로 이끌림을 받아야 되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그래서 오늘 이 말씀대로 오빠 한번 믿어 보시고, 이제는 여러분들이 좀 그래 살아 보세요, 주 따라 가는 길 험하고 멀어도 찬송을 부르며 뒤따라 가리라 하려면은 이전에 좋든 것이 이제는 값없이 되어야 되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이러면 당연히 여러분들 생각 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야 되는가 하면은 목사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자기가 하는 말인지 어떻게 압니까? 이래야 되요,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뭐다 하는 것을 야셔야 된다고.

 

유대인들이 그러지 못했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성경에 있는 활자인 줄 알아요. 그래서 이 토라인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말씀을 가지고 이 사람들이 뭐했는가 하면은 613가지의 해야 될 것과 안 해야 될 것을 가렸어요 그게 미신화에요. 그걸 해설한 것이 탈무드고요 오늘도 한국 교회가 그런 거에요. 성경 보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리는 것이 신앙인 줄 알아요. 하나님 말씀 그런 것이 아니에요. 말씀이라는 자체가 뭐냐 하면은 로고스라는 것 제가 이야기 했지 않습니까, 성경적인 개념을 여러분들이 제대로 가져가려면은 사전 찾아서 나오는 개념이 아니라 사전의 그 개념을 성경의 기록자가 차용을 해서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되요. 그래서 설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에요. 설교를 하려고는 10년을 공부를 하고 평생 아셔야 된다고요.

 

그런데 요즘은 한국 교회도 보면은 미국 한번 갔다 오더니만 목사 된 사람들이 있어요. 여러분 그러니까 사전 찾아 가지고 의미 이야기 해 버리니까 교회가 세속화 된다고요. 로고스라는 것이 제가 당시에는 뭐냐 하면 온 우주 만물의 합리성을 가져다 주는 원리를 말하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너희가 여러분들에게 쉽게 이야기하면은 정말 우리가 사는 사회가 공정하게 되어지고 합리성이 있고 멋있는 나라가 되려면은 그 사람들은 로고스라 생각했거든요, 그것이 예수야 예수님의 바탕 위에 서야 되 이런 말이거든요. 그런데 예수님 이야기를 하면은 그저 예수 믿고 천당 가고 예수 예수만 이야기 하면 되는 줄 알아요.

 

5. 선지자가 자기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해도 증험과 성취함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 아니라 선지자의 말이다 예수님만이 진정한 선지자시다. 하나님만이 너희의 존재의 근원이심을 받아 드려라.

 

그래서 어떤 분들은 설교하면 맨날 예수 십자가만 이야기 것이 여러분 성경적인 줄 아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뭐다는 모르는데, 여러분 오늘도 그런 메뉴를 가지고 분별할 줄 알아야 되요. 신명기 18장을 펴 보세요. 18장 할 때 열 여덟째 강의 때 여러분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겠지마는 지금은 간단하게만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면은 고 뒤에 몇 장 넘기면은 있으니까 20절에 보세요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21절에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그렇지요 목사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자기가 임의로 하는 말인지 어떻게 알리요 하잖아요. 고 뒤에 보면은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한다고 해도 뭣이 없고 뭣이 없으면 증험이 없고 성취함이 없으면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뭐라고요, 선지자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말이다. 그래서 너는 그런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말이거든요, 자 이 말씀을 가지고 어떤 분들은 아 우리 목사님은 표적이 있어 증험이 있어 기도하면은 병 나아, 목사님은 기도 발이 쌔 가지고 목사님이 축복하면은 복 받아 이런걸 증험이라고 하면 안 되요, 증험은 표적은 목사님이 기도를 하면은 100% 다 나을 때 표적이지요, 어쩌다가 한번 낫는 것은 표적이 아니에요,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어쩌다가 한번 맞는 것을 예언의 성취라고 보면 안 되요. 교인들이 이런데 많이 넘어가는 것 같아요. 우리 목사님 말씀 안 들었더니만 내가 사업이 안 되는 것 같아, 그런 말은 두려워하지 말아요.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되요.

 

그래서 제가 회복과 쉼이 있는 잔치적에 한번씩 하지요. 저는 예언의 은사가 있는데 제가 예언한 것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목사님 말씀 믿어야 돼. 오늘도 예언 하면은 이 자리에 100년 후에 앉아 있을 사람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한번 맞춘 것을 가지고 하면 안 되요. 여러분 이 신명기의 말씀에 의하면은 예수님만이 진정한 선지자에요. 18장 할 때 제가 다시 할거에요. 예수님은 여러분 기도를 했을 때에 안 나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풍랑이 이는 바다를 향하여 잠잠케 할 때 잠잠케 되었어요. 예수님은 그런 초월적인 능력이 그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우리가 듣는 거에요.

 

예수님이 18장 할 때 여러분 정말 중요한 겁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것이 어떻게 100%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도 제가 말씀을 드릴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목사님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선지자임을 교인들에게 선포하는 거에요. 내가 참된 선지자임을 들어내는 게 아니에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참된 선지자를 들어내려고 하다가 교인들을 자기를 따르는 교주가 되는 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오늘 신명기 18장 이 말씀은 예수님만이 진정한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분의 말과 그분의 구원을 우리가 받아 드리는 것이 믿음이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가 그 말씀을 경외하고 따르는 것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 했잖아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것이 뭐냐 하면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누가 된 거라고요 아바아버지가 되신 것 그것 믿으셔야 되요. 성경의 모든 말씀이 뭐냐 하면은 예수님이 참된 선지자로서 하나님이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 되신 것을 우리에게 가리켜 준거에요. 하나님의 백성들과 이방인의 백성의 차이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 드리느냐 안 받아 드리느냐 차이에요.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하나님만이 너희의 존재의 근원인 것을 받아 드려라 돈이 아니다. 뭐하면은 절대적으로 너희에게 복 준다고 말하는 그건 인간이 만든 신이다 이런 말씀이에요. 여러분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되면은 정말 변화됩니다.

 

6. 영적인 눈이 열려야 된다. 하나님 말만 들어도 인생의 무거운 짐 다 내려지는 하나님과 연합됨을 아는 자,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자다. 바울이 유대교의 랍비가 거듭나고, 성령으로 인하여 아바아버지를 모시는 가족이다 라고 고린도 교회에 말해 준 것이.

 

자 여러분들에게 쉬운 이야기 할게요, 여러분들이 이전에 좋든 것이 새로워 지고 예수 안에 새로운 생명 얻으려면은 바로 예수님이 진정한 선지자로 그분이 우리에게 이루신 십자가의 도를 받아 드리는 거라고 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오늘 한국 교회에 선포되지 않는 거에요. 그저 십자가를 하나의 요술 렘프로 생각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자 여러분 오늘도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게 뭐냐 하면은 이런 거하고 같아요, 옛날에는 어릴 때는 여러분들이 부모라는 것에 대하여 개념을 알지 못할 때에는 부모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릴 때는 뭔가 하면은 아빠 이것 해 줘, 안 해 준다 하면은 낳아 놓고 뭐 하는 거야, 이것도 못 해주면서 행복하지 않거든요. 그 부모를 부모라고 부르기는 부르는데 부모를 모르는 거지요.

 

그러다가 여러분들이 성숙 되고, 여러분 새로워 지면은 부모라는 존재가 오늘 나를 있게 하신 존재임을 알 때 부모로 인하여 내가 행복해 지잖아요 이런 거 모르나? 엄마 말만해도 세상에 모든 시름이 다 해결이 되는 것 있잖아요. 그게 암 야다에요. 하나님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정보를 아는 거에요. 하나님 하자만 들어도 세상에 그 인생의 무거운 짐이 다 내려지는 것 하나님과 연합됨을 아는 자에요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거에요.

 

우리 한 주간 살면서 그것 잊어버렸다 이곳에 와서 우리가 그것 회복할 때 또 새로운 힘 얻으러 가잖아요. 여러분 이것 선포해야 되는데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십일조 하면 하나님 복 줘 그래서 십일조 하면 남들보다 더 큰 교회 짓고, 교회를 전시 행정하고, 퍼포먼스로 만들어 버리고, 그런 것 아니에요 여러분, 두 세 사람이 모여 있는 그 곳에서도 정말 여러분들이 예수를 헬라적인 앎이 아니라 히브리적으로 알아서 어머니 아버지가 옛날에는 나를 낳아 놓고 왜 이런 것도 못해 주고 책임 못질 거를 나를 낳았어 이랬든 자들이 내가 오늘 나를 있게 하신 어머니 아버지 생각만 떠올려도 지치고 곤한 심령이 회복이 되는 그런 교회와 예배가 되야 되요. 예수님이 그것 위해 오신 거에요.

 

해야 되느냐 안 해야 되느냐 모세 오경을 가지고 토라를 가지고 미신화 만들고 또 이런 경우는 이래야 된다 저런 경우는 저래야 된다, 탈무드를 가지고 수 많은 사람들을 얽어 매는 유대교에게 하나님 그런 것 아니에요. 왜 성령을 보내어 주었습니까? 성령 받으면은 종교적인 몰입 현상 엑스타시 현상을 경험하라고요 아니에요. 성령 받으면은 원하는 것 다 이루어지는 도깨비 방망이 주려고 아니에요.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너희들이 옛날에는 네 가족만 보고 혈연과 연고를 통해서 서로 뭉쳐서 대립하며 공멸하는 세상 속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지은 한 가족임을 알게 하려고 그래서 바울이 종교적 유대교의 랍비 이었다가 거듭나고 난 뒤에 그는 성령으로 인하여 내가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 그랬고 고린도 교회 교리를 가지고 예수 잘 믿어 가지고 서로 싸우는 교회에 대해서 너희는 한 성령으로 한 아버지를 모시는 가족이다. 라는 것을 말 해주는 거에요.

 

7. 성령으로 인한 교회의 공동체가 뭔지 모르기에 교회가 세상에 빛이 못 된다. 예수님이 참된 선지자로서 그분을 나의 삶에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만이 온 우주 만물의 합리성 코스모스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로고스인 것을 받아 드려야 된다, 하나님은 재판을 변개하지 않으신다.

 

세상의 문제는. 여러분 자 이제는 여러분들이 눈이 달라져야 되요. 교회 다니면서 이것 해야 되느냐 안 해야 되느냐 이런 것 가리려고 교회 다니지도 말고요, 우리의 세상의 통념 자본주의가 우리를 지배했든 200-300년 우리 한국에는 한 100년 어간에 그때에 사회적인 가치를 가지고 서울 대학이 좋은 대학이고, 통장의 액수가 너는 사람이 성공이고 이런 것 지우라고요, 우리 지금 많이 보잖아요. 국무총리 안 되었으면 더 행복했든 사람도 있을 테고, 대통령 안 되었으면 더 행복할 수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전부 그런 어떤 사회적인 통념에서 그것 좇아가다가 행복하지 못하거든요, 왜 성령으로 인한 가족 받아 드리라고 하니까 안 받아 드리는 거에요. 여러분 정말 한번 받아 드려 보세요.

 

산천도 초목도 새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참된 선지자로서 그분을 나의 삶에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만이 온 우주 만물의 합리성 코스모스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로고스인 것을 받아 드릴 때 그래도 여전히 자기 새끼만 눈에 보이잖아요. 김씨는 김씨만 보이잖아요, 이래 놔도 또 가서 뭡니까 하나님 좋은 말씀이지만 그래도 내 새끼가 좋은 대학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옆집에 공부 잘 하는 것 저거 교통 사고 나서 수능 망치기를 원합니다. 그러고 나면 오 할렐루야 기도의 응답이다 아 그게 무슨 행복이 있어요. 예수님의 행복은 그런 게 아닙니다 여러분. 죄인을 사랑 하자가 아니에요. 여러분 이야기 하잖습니까 손양원 목사님이 아들을 죽인 자를 양자로 삼는 사랑의 원자탄이 아니라고요 예수를 믿으면 그래 된다고요. 여러분들 자식 둘 이가 싸워서 하나 죽였는데 이것 사형선고 내릴 겁니까? 끌어안지요. 그게 십자가의 능력이고 성령의 능력이고 힘으로도 능으로도 못하는 여호와의 신의 능력이라고요.

 

가난한데도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행복해 할 수 있는 것 가족이지요. 그래서 오늘도 성경에 보면은 공 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면은 과부와 고아를 돌보고, 뇌물을 받고 재판을 변개하지 않는 것. 여러분 왜 가족이 좋아요? 외모로 안 보잖아요. 요즘은 하나밖에 없어서 모르지요, 옛날에 자식 많이 두었을 때 옛날 어른들이 그러잖아요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그게 가족이에요. 성령 받고 하나님 받으면은 그런 마음이 생기는 거에요. 가족지간에 여러분 둘이 싸웠을 때에 아버지가 뇌물 봉투 찔러 주는 놈 편들면은 그게 무슨 가족이에요. 아버지 공정하지요 뇌물에 눈 안 어둡지요 하나님이 그런 분이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뭐해요 봉투 찔러 주면은 내편 들어 주는 하나님인 줄 알고 여러분 이런 것 아세요, 우리 교회는 예배 때마다 헌금 안 돌리잖아요, 왜 돌리는 게 정상이지만 왜 안 돌리는가 하면 봉투 찔러 주면은 편들어 주는 하나님 뇌물의 하나님을 교인들이 인식할 가 봐 어렵더라도 가는 거에요. 다른데 보세요 월삭 예배 드리면 다 감사 봉투 와요. 거듭나게 되면은 그것 거둬 가지고 즐거워하지 안 해요. 대단히 죄송하지만 여러분들의 행복을 위해서 제가 이야기 할게요. 제 어머니가 하신 말씀대로 애들은 말 안 하면 모른다고, 여러분 이번에도 설에 교회에서 교역자들에게 보너스 이래 줬는데 저는 그 보너스를 우리 딸이 은행에 있는데 새 돈으로 바꾸어 왜 명절 때 새 돈 나오잖아요 오천 원짜리로, 돈 없는 분 내 방 따고 들어가면은 어느 어느 곳에 오천 원짜리 새 돈 다발이 있으니까 가져갈 사람 가져 가세요.

 

왜 했는가? 월삭 예배 때 얘들 데리고 오라 했는데 다 용돈 줄려고요, 그런데 아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사무실에 들어가서 그 자리에 딱 쳐다보면은 그것 받고 즐거워하는 얘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백 만원 애가 홀딱 써는 것 보담 도 일년 내내 행복할 껴. 이런 게 있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그랬어요, 그렇다고 해서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때가 있는 거에요, 이것 항상 기억하세요. 가정에 여러분 세 살 먹은 아이에게 스무 살 먹은 아들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게 하잖아요. 저는 한국 교회가 보면은 교인들을 전부다 서른 살 좋은 직장에 다니는 그런 아들 노릇만 하라고 하니까 세 살 먹은 아이들은 죽는 거에요 지금.

 

8. 모든 자녀를 내 자녀로 받아 드리고 내 가족으로 받아 드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 거듭난 사람의 증거다.

 

여러분 교회에 여러분들이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자기 자식의 눈이 보여야 되요. 그러나 자식이 제 나이가 되어서 이제는 성숙되면은 그 다음에 던져 버리세요. 그리고 모든 사람을 내 자녀와 같은 마음으로 품으면서 살아가 보세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그런 거에요. 여러분들이 목사님 저는 아직까지 어리고 가족의 대한 책임이 많습니다 예 그걸 감당하는 것이 그러나 여러분들이 어떤 마음이 있어야 되는가 하면은 이 자녀들이 성숙되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은 이제는 내가 그 짐에서 벗어나서 더 많은 사람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자녀로 받아 드릴 수 있는 사람, 영적인 성숙과 육 적인 성숙 그런 사람들이 이 땅에 지도자가 되고, 기성 세대가 될 때 젊은 사람들 존경 안 하겠어요? 내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에 이제는 내 자식 이남 삼녀 내 자식 둘 셋만 책임지는 그런 것에서 벗어나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의 모든 자녀를 내 자녀로 받아 드리고 내 가족으로 받아 드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 거듭난 사람의 증거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소유의 기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가족으로 받아 드림으로 말미암아 주면서도 즐거워하는 것이고요, 가난해도 행복한 거고요, 부 해저도 상실의 두려움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의 그 기쁨.

 

오늘도 여러분들 말씀 이것 지키면은 복 준다 그게 아니고 말씀의 주최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그 구원을 받아 드려서 우리 교회는 여러분들이 정말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 능력껏 감당해서 하나님 생각만 해도 행복해 질 수 있는 한 주간의 여러분들의 참 인생의 무거운 짐이 주일날 이 한 시간의 예배가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그런 귀한 예배가 되어서 여러분 또 한 주간 살아가는 힘이 436장과 함께 여러분들 속에 주어지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육신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육신의 생명을 위해서 물질을 주심을 믿습니다. 생명을 수단으로 해서 우리의 생명을 영위하게 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그래서 이 물질을 통해서 누리기도 하고, 나누기도 해서 행복한 삶을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 되심을 고백함으로 누리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이 물질에 있는 줄 알고, 쌓다가 만 쌓다가 만 자신의 생애를 허비하는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또 한편에는 금욕주의가 경건이라고 생각하며 아버지 하나님 정말 행복해야 할 인생을 자기 학대로 지내는 어리석은 인간의 사상도 있습니다. 헌금을 드릴 때마다 물질은 생명을 영위하는 하나님의 수단임을 알아서 그 수단을 제대로 사용해서 내 자신의 누림과 나눔이 교회에 편만 해져서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다시 살아도 이 이상을 살 수 없는 그런 시간의 연속이 되고 역사가 되도록 목이 곧은 우리의 마음을 녹여 주시고, 외형적인 할례만을 추구하는 우리들에게 성령으로 마음의 할례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망극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내주 위로 교통하심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계시해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셔서 내 자식만 눈에 밟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식 잘 기르고 모든 사람을 내 혈육의 가족으로 바라보게 하는 성령을 받은 거듭난 자들의 삶과 그들의 생애와 이러한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하여 자신의 피를 흘려 세우신 주님의 몸 된 교회 우리가 구원해야 할 세상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