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디로 가나요? (1)신명기 11장 8-12절(주일 설교문)
담임목사 김종웅
당신은 어디로 가나요? (1)
신명기 11장 8-12절
2015년 3월 8일 주일 낮 예배
No. 200
하나님의 말씀 신명기 11장입니다 8절에서 12절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8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9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10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11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아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경제적으로 부유한 삶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적 가치관에서 보는 가치 평가다, 성경은 그렇지 않다. 행복과 풍요로움은 환경에 있지 않다.
우리가 흔히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또 젖과 꿀이 흐른다고 하니까 그곳에 가면은 산양의 젓이나 석청이 많다 그런 말이 아닌 것은 알지요. 은유적인 표현이지요. 풍요롭고 좋은 땅이다 그런데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들 보면은 왜 그곳을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을 생각하다가 가서 보면은 굉장히 건조하고 정말 여러분 황폐한 땅이잖아요. 광야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인가? 아니면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하나님이 해 준다는 말인가? 그걸 문자적으로 보니까 지금도 이스라엘은 그곳이 약속의 땅이다 이래서 메시아가 오면은 가나안 땅 감림산에 온다고 해서 그 땅을 절대로 포기를 못하는 겁니다.
굉장히 잘 믿는 것 같지마는 문자 주의는 말귀를 못 알아 듣는 사람이다 이래 보면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또 한국에 있는 교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경제적으로 부유한 삶을 말하는 줄 알아요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가치관에서 보는 가치 평가에요. 그런데 우리가 그런 것이 잘못 되었다 하는 것은 지금 우리 너무 잘 느끼잖아요. 경제적으로 잘 살고 건강하다고 해서 사람이 결코 행복하지 않거든요.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행복은 사람의 풍요로움은 환경에 있지 않다는 것 우리가 21세기 자본주의 거의 모든 약점이 들어 난 시대에 우리가 알고 있는데 아직까지 한국에 있는 교인들은 그것에 세뇌되어 있는 것 같아 여러분 사실 그렇잖아요.
1. 땅과 신앙 체계: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은 우리가 굉장히 풍요로운 삶 자족하는 삶. 풍요로움은 누림과 나눔이다. 나누어 쓴 만큼 행복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경제를 가르칠 것인가 한 5부작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다큐프라임 프로에 다 담지 못한 것을 책으로 된 내용.
우리가 굉장히 힘들고 어렵다 아 이것은 죽는 것보다 못하다 하는 삶. 사업이 부도나거나 가난해 졌을 때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힘든 오늘이 어떤 사람에게는 한번만 살아 봤으면 하는 날이 될 수 있다고요. 여러분 정말 마지막 말기에 처한 사람에게는 오늘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시간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모른다고요. 여러분 가난하다고 아무리 돈이 많으면 뭐합니까? 이건희씨 지금 여러분들의 삶을 그렇게도 부러워한다고요. 그러기 때문에 건강이라든지 여러분 뭐 부유함이라든지 이런 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이 개념부터 바뀌어야 되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에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은 우리가 굉장히 풍요로운 삶을 살아요. 그런데 그 풍요로운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국민소득이나 내 지갑에 돈이 많은 풍요로움이 아니고요, 어떤 풍요로움이냐 하면 자족하는 삶.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누릴 줄 알아요. 자족이라는 것은 여러분 그냥 생각만이 아니고, 내가 천원이 있으면 천원을 누릴 줄 알고 만원이 있으면 만원을 누릴 줄 아는 삶이 자족하는 삶입니다. 예수 믿는 삶이 그런 삶이에요. 우리가 지금 그런 부분에서 떠나 있는 것은 젓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개념을 자본주의적 가치관으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누릴 줄 아는 삶이 자족하는 삶이고 풍요로운 삶이에요.
우리나라는 너무 어려워서 그랬는지 또 그래 자본을 모으기 위해서 저축 정신을 어릴 때부터 우리가 얼마나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까? 지금도 뭐 연예인들을 저축상 이러는데 저축이 선인 줄 알아요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나중에 제가 좀 이야기하겠지마는 자본주의라는 책 다 읽어 보세요, 우리가 사는 사회가 자본주의잖아요. 이 자본주의 속에 성경을 어떻게 구연해 나가느냐 하는 것을 아셔야 되요. 그런데 자본주의에 살면서도 자본주의가 뭔지도 몰라요. EBS 의 한 PD 가 여러분 돈이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경제를 가르칠 것인가 이래서 한 5부작으로 여러분 자본주의에 대한 다큐프라임 프로를 만드는데 이분이 10년 동안 경제학 서적을 천 권을 읽고 일년 육 개월 동안 세계적인 경제학 석학들을 만나 가지고, 만들었는데 그 다큐에 다 담지 못한 것을 책에 잘 해 놨어요.
그기에 하나 보면 이런 이야기 있어요,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조건 부모들은 돈만 주면 저금하라 하잖아요. 그러니까 나중에 그 자본주의 사용 설명서라는 책도 있는데 그기에 보면 그런 것 나와요 재미 있는 예들이 나와요. 나중에 커서도 아이들이 돈을 어떻게 지출을 해야 될 줄을 모르는 거에요. 어릴 때부터 돈을 줘 가지고 자기가 그 돈을 지출하는 훈련을 시켜 주어야 되는데 무조건 저금만 하라 해 놔 놓으니까 성인이 되어 가지고 돈을 벌어 가지고 어떻게 썰 줄을 모른다고요. 그러니까 이 자본주의 사회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이 된 거에요. 우리나라가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돈을 잘 지출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되는데 한번도 훈련 받거나 규정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저 낭비를 안 하는 것을 잘 지출하는 건 줄 알아요, 잘 지출하는 사람은 자기의 수입을 가지고 자기가 가장 행복한 적정한 범위의 지출과 타인과 함께 잘 지출할 때 행복의 최대치가 나오거든요. 이런 것들을 어려서부터 자기가 관리하게 하고 해보게 해야 되는 거에요.
2. 애굽 땅과 가나안,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하나님을 경외하면 왜 그렇게 행복한 풍요로운 자족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 애굽 땅은 물 대기함과 같은 땅. 가나안 땅은 비를 땅이 흡수해 버리는 땅. 사는 땅에 따라서 가치관이나 문화가 형성이 된다.
자 한번 잠깐 옆길로 갔지마는 여러분 어쨌든 간에 지금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은 왜 그렇게 행복한 풍요로운 자족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 이것 아셔야 됩니다. 오늘 성경 신명기 11장을 통해서 제가 두 번에 걸쳐서 다음주와 설교할 터인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홈페이지에도 설교를 올리지마는 CD 로 제작해서 여러분들이 차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좀 연세 드신 분들을 위해서 소책자를 만들어서 여러분들이 전도용으로도 좀 사용하게 하려고 해요. 여러분 특히 오늘 주일 다음주일 설교는 여러분들이 반듯이 여러분들이 또 듣고 들어야 되고, 또 전도할 때에도 사용해야 됩니다.
오늘 여러분 여기 먼저 10절과 11절에 보세요. 10절에 보면 내가 들어가 차지하려는 땅은 내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다. 자 10절에 보면은 애굽 땅은 어떤 땅이냐 하면은 채소밭에 발로 물 대기함과 같은 땅이다 이래요. 가나안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다 땅이 흡수해 버리는 땅이다라고 말을 해요. 여러분 이 땅이 중요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자산을 널리기 위해서 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땅 사는 땅에 따라서 가치관이나 문화가 형성이 됩니다.
여러분 저는 충청도 분들 이래 대하면은 속을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은 거기가 삼국의 요충지가 있어서 상대방이 어느 지방인지 몰라서 잘 자기를 안 들어내잖아요. 지정학적인 위치가 만들어 내는 삶의 양태란 말입니다. 그러면은 애굽 땅은 나일강이라는 거대한 땅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할 때에 홍수가 나면은 우리는 참 농사를 다 쓸어 버리는 거라 생각하는데, 예전에 이집트 문명이 발생한 것은 나일강 때문인데요, 나일강은 범람을 하고 나면은 땅을 굉장히 비옥하게 합니다. 그래서 씨앗을 뿌리면은 그대로 추수가 나요, 그래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신이 필요가 없는 거에요. 좋은 왕이 뽑아 지고 그 왕이 좋은 정책을 펴면은 살기가 굉장히 풍요로운 세상이 된단 말입니다.
그래 애굽 땅은 채소밭에 발로 물 대기함과 같다 강을 다스리는 자가 여러분 세상을 다스린다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여러분 바로 이런 의미를 말한다고. 그래서 애굽 땅에는 신이 없는 거에요 실질적으로 바로가 신이란 말입니다.
3. 세 초부터 세말까지 여호와가 돌보시는 땅 신본주의. 요셉이 국무총리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있었기에 만민의 생명을 구원한 자가 되었다.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체계가 만들어 낸 세상 지금 자본주의는 인본주의이다. 그 가치 체계를 알아야 예수와 하나님이 뭔지? 안다.
창세기에 보면은 요셉 한 사람 국무총리를 잘 뽑으니까 온 세계를 먹여 살리잖아요. 훌륭한 요셉이 온 세계를 먹여 살려요. 그런데 요셉이 그렇게 할 수 있었든 것은 요셉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걸 여러분들이 창세기에서 놓쳐 버리면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했더니만 국무총리가 되었다 이래 버리면은 자본주의적 성경을 보는 거에요.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기 때문에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에 만민의 생명을 구원한 자가 되었다 이걸 보셔야 되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중요한 거에요.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대통령 뽑으면 이 나라 잘 산다 할 때에 신앙으로 출발했다가 자본주의로 가는 거에요. 또 기독교가 아니라 종교에서 자본주의로 가는 거에요. 왜 그 하나님을 장로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안 하는가 하는 것을 기독교냐 불교냐 이것으로 따져요.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느냐 안 여기느냐를 가지고 평가를 해야 된다고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릴 거에요.
오늘은 여러분들이 한가지 아셔야 되는 것이 애굽 땅은 인본주의 땅인데 12절에 보면은 하나님이 돌보는 땅이 아니에요.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체계가 만들어 낸 세상에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돌보는 삶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이렇게 힘이 드는 거에요. 국민소득은 높고, 월급은 제가 대학을 졸업할 때하고 지금 본봉 비하면은 열 배가 많은데 그때보다 열 배가 많으면 열 배 더 잘 살아야 되는데 그때보다 더 못 살거든요.
자본주의 허상이 만들어 낸 것 때문이에요. 우리 그런 것 몰랐잖아요 그 책에 다 나와요. 일단은 여러분들이 인본주의는 지금 자본주의는 인본주의란 말입니다. 가나안 땅은 산과 골짜기에서 하늘에서 비를 주지 아니하면은 살아갈 수 없는 땅이에요. 그래서 가나안 땅에는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이 있고 농사를 지을 때 기우제를 드리는 거에요. 오늘도 성경에 보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은 거기에 여러분 14절에 보세요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하게 내린다. 하나님을 너희들이 사랑하고 잘 섬기면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서 너희들이 풍요롭게 되어지고, 그 16절에 보면은 그 뒤에 보면은 다른 신을 섬기면은 하나님이 진노해서 하늘을 닫아서 비를 내리지 않게 하여서 땅의 소산이 안 냄으로 너희가 속히 망할 것이다. 이런 것이 신본주의적인 가치관이잖아요.
그러면서 여러분 12절에 보면은 이렇게 말한다고 하나님이 돌보시는 땅이라 가나안 땅은 그래서 새 초부터 새말 년 초부터 년 말까지 하나님께서 눈이 항상 그 위에 머무는 땅이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지금 신본주의적인 신앙을 가져야 되요. 그러면 그 신본주의 중에서 우상하고 여호와의 신앙의 차이는 다음주에 제가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릴 겁니다. 그 가치 체계를 알아야 예수가 뭔지? 하나님이 뭔지 알아요. 한국 교회는 바알에게 이름만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 하고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어렵다 이런 말입니다. 누릴 줄도 모르고 나눌 줄도 모르고 경제 소득은 높은데 삶은 더 팍팍해 져 가는 이런 일들이 있다 이 말입니다. 지금 우리 여러분 한국 교회 보세요 얼마나 인본주의적인가?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릴 때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인정하고 이곳에 와 있습니까? 아니잖아요. 국민 일보에 여러분 그저께인가 나왔어요, 창조를 믿는 한국의 교인들은 10명중에 6명밖에 안 된데요 성경의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이래 된다는 것을 모른다 말입니다 지금.
4. 인본주의(애굽과 자본주의)와 신본주의. 중직 자 교육: 성경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는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는 인본주의 계몽주의 사상과 산업혁명이 만들어 낸 산물의 경제 체제에요. 예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다.
그래서 이번에 중직 자 교육 오늘 하는 것이 성경을 당신은 정말로 절대적인 진리로 믿는가? 이것에 대해서 한다고요. 우리 교회가 중직 자들이 성경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지 아니하고 교회 가 버리면은 교회는 또 다른 자본주의 사탄에 놀이터가 되어 버린다고요. 그 해답을 오늘 여러분들이 가져가셔야 되요. 아 여러분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보시는 땅은 여러분 예전에 한번 보세요 예전에는 그래도 우리가 가난해도 좀 살만했고, 교회에 다니면 행복했든 이유는 전부 교회를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들이나 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요 교회에 반드시 새 옷 입고 나왔고요 헌금도 다려서 했고 모자 못 씁니다.
뭐 이렇게 자세 잘 못 되었다 난리 납니다. 또 하나님이 겁이 나서 정말 말도 가려 하고, 태도나 모든 것을 제대로 했다고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 모두가 그런 신본주의적인 사상은 잘 못된 거라 생각한다고 왜 자본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 자본주의 책을 보면은요 여러분들이 반듯이 읽으세요. 그 정도는 또 아이들에게 반듯이 읽고 교육을 해야 됩니다. 제가 보면서 야 이런걸 내가 왜 이제 봤는가 할 정도였어요. 자본주의가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250년밖에 안 되었어요. 250년밖에 안 되었다는 시점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상이요 250년 전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이 인류의 역사 아래 나타나는 때였어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경제 체제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는 인본주의 계몽주의 사상과 산업혁명이 만들어 낸 산물의 경제 체제에요. 그러니까 인본주의 계몽주의 오면서 신은 죽었다고 그러고 여러분 사람들은 이성을 중요시 여기게 되었다 말입니다. 그전에는 무조건 하나님이 그래 하셨다면 끝나 버렸는데 이성을 발달시키면서 사과가 왜 뜨러 지지 연구해 보니까 중력이 있다 말입니다. 그런 것이 여러분 물래 방아를 만들어 내고, 바퀴를 만들어 내고, 다 자연의 법칙을 통해서 삶을 유용하게 만드는 과학이 그때부터 발전하면서 우리의 삶이 이렇게 풍요로워 진 거에요. 그런데 그 책에 보면은 우리가 왜 이렇게 월급은 오르고 이런데 우리가 팍팍하냐 하면은 우리는 지금 허상의 세계에 살고 있어요, 그 허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말은 이런 말이에요. 그 책 읽으라 해도 안 읽으니까 제가 설교 시간에 이런 것까지 해야 돼. ㅎ ㅎ ㅎ
5. 실물경제 있는 그대로의 가치 물물 교환부터 1770년 영국 이런 데에서, 금으로 가치를 측정해서 나누고 금을 보관소에 맡기고, 지금의 금융 거래까지의 내용. 통장의 계수만 올라가는 자본주의, 마음만 부자. 물가는 자본주의 체계에서는 끊임없이 오를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이게 만약에 100원 이면은 옛날에는 이것하고 이래 바꾸었잖아요. 그러니까 항상 경제라는 것이 실물 경제 있는 그대로의 가치가 주고 받았는데 1770년 영국이나 이런 데에서 뭣이 생겼는가 하면은 이래 귀찮잖아요. 또 가치척도도 정확하게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금이라는 것을 놔두고, 서로 가치를 측정해서 금을 가지고 나누었다고요. 그런데 이 금이 휴대하기도 불편할뿐더러 위험하잖아요. 그래서 금을 자기집에 보관하기 힘드니까 금 보관소 튼튼한 금고가 있는 사람에게 금을 맡겨 놨다 말입니다. 금을 맡겨 놨는데 이 사람은 보관증을 주는 거에요. 이 보관증을 가지고 사람들은 서로 이제 물건을 나누기를 시작을 한 거에요.
그런데 이 금 보관한 사람이 가만히 보니까 10명이 금을 보관했는데 보관증을 써 주었는데 다 안 찾아가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을 가지고 이자 놀이를 하는 거야. 그래 사람들이 보니까 요 금 보관소가 부자가 되는데 가만히 보니까 될 이유가 없는데 금 보관했는데 무슨 이자가, 그러니까 자기가 맡긴 것을 가지고 이자를 만들어서 부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항의를 하니까 그러면은 내가 받은 이자 중에 너에게 얼마 좀 줄게, 이렇게 사람들과 타협을 한 거에요. 그래서 오늘날 은행에 대출이 이자가 발생한 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거기에 중요한 자본주의의 함정이 있는데 이것이 100원이면은 이자는 만약에 10원을 준다고 하면은 10원주는 이자는 실물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없는 거잖아요. 그저 약속에 의한 신용이 만들어 낸 허상이잖아요.
나중에 10%를 찾아가려면은 줄 것이 없잖아요. 그래서 뭘 만들어 내는가 하면은 돈으로서 그 10%를 때우는 거에요. 그래서 증권과 또 결탁되는 이유도 나오더라고. 김영란 법이나 전부 모든 것이 자본주의 체계 아래서 그 허점을 파고들어서 우리가 부여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권력자 자본 가들이 많은 것을 치부해 버린다고요.
여러분들이 지금 돈을 가지고 물건을 사는데 여러분이 돈 은행에 있다는 믿음으로 가지고 서로 숫자만 주고 받는 것이지 실물 안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 숫자가 100원을 투자하면 그 100원을 대출 대출 하면 100원이 나중에 이 세상에 돌아다니는 돈은 1만원이 되고, 10만원이 되어서 돌아 다니는데 실물은 1000원밖에 없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돈은 천 만원이 되어 버리면은 10원의 가치를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올려야 되겠지요. 그러니까 물가는 자본주의 체계에서는 끊임없이 오를 수 밖에 없는 거에요. 그러면 월급은 오르는데 물가도 덩달아 더 올라 버리니까 왜 옛날에는 노동이 부가가치를 만들어 냈잖아요 내가 일을 해야지 이제는 자본주의 돈이 돈을 만드는 금융이 상품이 되는 시대가 돼 버렸잖아요.
그러니까 돈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가져갈 수 밖에 없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똑 같은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자원 불변의 법칙에서 자원은 같은데 돈은 이만큼 커지니까 돈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이 가져가 버리니까 월급이 암만 올라가도 물가를 전혀 따라갈 수 없다고요. 짜장면이 여러분 3백 오십 배 오르는데 월급은 거기에 몇 배 오르는가 하면은 한 20배밖에 안 오르니까 옛날보다 더 살기가 팍팍한데도 우리는 통장에 계수만 올라가니까 마음만 부자인 거에요. 눈으로만, 삶은 팍팍하고, 이것이 자본주의에요. 그래서 그 EBS 에서 공영 방송에서 한 겁니다 좌파 이야기 아니에요.
6. 미국의 리먼브라더스 사건 탐욕이 빚어낸 것. 욕심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그 발전이 소수에게만 쏠린다. 미국은 1%를 위한 99% 존재한다. 은행 지급 준비율의 내용. 종교인과 권력자와 자본가가 결탁한 유대교에 대해서 예수님이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 하셨다.
그래서 거기에 대안이 뭐냐 하면은 복지인데 이게 안 되는 것이 여러분 이제 거기서부터 성경으로 가야 되는 겁니다. 그 은행가나 제가 여러분에게 인본주의에서는 다스리는 요셉 한 사람서니까 다 서듯이, 훌륭한 왕이나 훌륭한 정책만 펴면은 풍요롭고 잘 사는 사회가 되는데 그것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이에요. 거기는 탐욕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여러분 옛날에 미국에 리먼브라더스 사건의 생길 때에 탐욕이 빚어낸 것 할 때에 왜 탐욕인지 몰랐잖아요 그 책 보면은 왜 탐욕인가 하는 것을 안다고, 그런데 그 탐욕은 어떤 경우도 인간에게 없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김영란 법이나 무슨 법을 만들어 내도 인간은 끊임없이 허점을 파고들어서 자기 욕심을 채우기 때문에 뭐 띠고 뭐 띠고 하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법이 되어 버리는 거에요. 경제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본주의로 돌아가야 되는 것은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자기 그 제한성을 극복하려고 욕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요. 욕심이 없는 인간은 죽은 인간이란 말입니다. 죽어야 욕심이 없는 거지요. 살 소망이 없어야 욕심이 없는 거지요. 그런데 그 욕심은 끊임없이 인간을 이렇게 발전은 하게하는데 그 발전이 소수에게만 쏠리게 한다고. 그래서 미국은 1%를 위한 99%가 존재하는 거에요. 우리가 전부 유학을 미국 갔다 오니까 미국 따라 가고 있는 거에요. 그러면 거기에서는 복지만이 대안이다 같이 산다 이랬는데 복지라는 제도를 만드는 것도 인간이거든요, 그렇지요 여러분. 그러기 때문에 또 다른 욕심과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 자본을 만들어 내는데 권한을 부여하는 정치인들과는 결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일 처음에 결탁도 그래 생겼더라고. 금 보관하는 사람들이 중국 황실이 전쟁으로 인하여 돈이 없으니까 그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면서 뭐 했는가 하면은 그 자기가 빌린 만큼 보관증을 더 써 줄 수 있는 권리를 준거에요.
그게 오늘날 뭔가 하면은 은행의 지급 준비율 이해 되시지요. 지급 준비율이 10%정도 되야 되는데 우리는 3.5%에요. 여러분들이 100원을 저금해 놔 놓고 은행에는 뭐만 있는가 하면은 3원 50전만 있는 거에요.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돈 달라 하면 은행은 파산 뱅크런이 일어난다고요. 제일 무서운, 그러면 그 준비율 가지고 돌리니까 은행은 엄청나게 돈을 버는 것이고, 그 지급 준비율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권력자들이니까 권력자들은 그 자본가들하고 결탁하지 우리들하고 결탁하겠어요. 그래서 자본주의는 실물이 없는 허상이어서 끊임없이 경제를 확대해 가는 그걸 확대해 가지 아니하면은 자본주의는 굴러 가지 않고 그 즉시 망하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러려면은 복지를 해야 된다는데 복지를 정책 하는 사람도 인간이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어디로 가야 되는가?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지요. 돈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지요.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지요. 옛날에는 돈을 가지고 있거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늘 무서운 줄 알았다고요. 옛날에는 교회에 오면은 무슨 소리 했는가 하면은 여러분들의 욕심을 채워 주는 종교와 권력과 자본이 결탁한 설교가 있은 것이 아니고, 그런 욕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 지옥 가 이른 게 있었는데, 그 소리 가지고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들은 듣기 싫잖아요. 또 인간의 지성을 가지고 지급 준비율을 교회는 인간의 의를 이야기하는 설교의 장이 되어져 버리니까 우리 모두가 힘이 든단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 그런데 넘어가지 말고 하늘 무서운 줄 알아요. 자 그 하늘이 하나님만이라는 것은 다음주에 여러분 이야기 하겠고, 오늘 이 시간은 예배 때마다 하늘 무서운 줄 아는 신앙을 회복해야 되요, 어떻게 예수님이 말씀 하셨잖아요. 종교인과 권력자와 자본가가 결탁한 유대교에 대해서 예수님이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 했잖아요. 여러분들의 생명이 소유에 있지 않아요. 눈에 자본주의 비늘을 벗기고 한번 보세요. 돈이 내 생명을 1초를 연장시켜 줄 수 있는가? 돈이 내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아니라는 것을 알잖아요.
7. 어려워서 죽겠다는 시간도 어떤 사람은 살고 싶어하는 시간. 아이들에게 저금만 시키려 하지 말고, 지출의 훈련도 시켜야 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있어야 되요, 하나님 부르는 날 인생의 대차 대조표가 플러스 마이너스가 제로가 되는 삶.
여러분들이 돈 없어서 지금 그렇게 죽겠다고 하는 이 시간도 제가 이야기 하잖습니까, 어떤 사람은 한번만 살아 봤으면 하는 그 시간이라고요. 내가 이래 사느니 죽겠다고 하는 내 몸도 어떤 사람은 내가 한번만 내 발로 땅을 디디고 서 봤으면 하는 그 몸이라고요. 잃어버렸을 때 알잖아요. 우리는 설교를 통해서 그것을 회복해야지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자족하는 삶,.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몇%를 써야 내가 가장 행복하고, 그 이상을 쓰면 행복이 없는 낭비가 되는 것을 알게 해야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나만 쓰는 것 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쓸 때에 더 행복이 극대화된다는 것도 경험 해보게 해야지요. 그래서 나중에 아이가 여러분 회사 회장이 되고 의사고 되고 변호사가 되어서 큰돈 벌었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돈이 어떻게 해야 가장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지출을 제대로 해 나갈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되지요. 그게 교회란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월삭 예배를 마치고, 월삭 예배 전에 당 회원들끼리 모여서 제가 한국의 교회는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존재하는 종교인 것을 제가 알았어요. 그게 뭐냐 하면은 교회 건물을 크게 짓고 성장만 시키면 끊임없이 그런데 교인들은 크고 성장하니까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자본주의적 가치관에서 이래 보면서 허하단 말입니다. 생명의 부유함은 없단 말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그런 거잖아요. 여러분 적절한 규모가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700석이기 때문에 저는 1000명 정도가 가장 우리 교회의 모든 교인들을 행복해 할 수 있는 maximum 의 규모라고 봐요. 그러면 1000명 정도면은 헌금이 지금 나오는 형태로 보면 얼마가 나오느냐면은 한 달에 1억 5천 나옵니다. 1.5 곱하면 되요. 그러면 그것 가지고 뭐 빚 갚고 교회 뭐 널리고 그건 전부 자본주의 가치에요. 자본주의는 빚을 갚으면 무너지는 사회더라고, 어떻게 해야 되는가? 우리 교회의 기본적인 지출을 내가 재정 부에서 달라 했어요 해보니까 6천 만원 정도에요 한 달에 지금 우리 교회가 수입하고 지출이 똑 같아요.
그러면 6천 만원 정도 하고 나면은 여러분 교회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한 달에 한 1억 정도를 이제 쓰는데 교인들을 위해서 써야지요. 당 회는 모여서 다음달에 1억은 우리 교회의 어려운 사람들에 장학금을 다 나누어 주자고, 우리의 삶의 싸이클을 따라서 우리 교회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자, 또 이번에는 여름 수련회 하는데 이것을 다 투자하자고, 이번에는 이것을 가지고 어린이 바둑 교실 하는데 얼마를 하고, 뭘 하는데 얼마를 하고, 그 달에 들어온 것은 그 달에 다 소비하는 형태, 그게 주식회사 아닌 교회 아니겠어요. 저는 그런 교회가 되려면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있어야 되요. 내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함을 아셔야 된다 말입니다.
저 자본주의라는 책을 보면서 야 내가 자본주의 겉만 알았구나, 복음은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것에 있어요.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지도자들의 잘 못된 환상 속에서 자기 호주머니 털리는 줄 모르고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것만을 보면서 끊임없이 환상을 심어 준다고요. 내 호주머니에 천원 넣어 놔 놓고 뒤로 천백 원을 빼앗아 간다고요. 여러분들의 월급이 천원 오르면은 통신비 올라가고 뭐 올라가고 물가 올라가고, 요즘은 담뱃값 올라가 가지고, 담배 피우는 사람들 빨리 담배 끊으세요. ㅎ ㅎ.
천원 올려 줘 놔 놓고 천오백 원 지출하도록 만들어 버리니까 힘들잖아요. 어떻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가지고 없는 사람이나 보따리 싸 들고 죽는 것 아닌 것을 알아서, 하나님 부르는 그날 우리 인생의 대차 대조표가 플러스 마이너스가 제로가 되는 삶. 교회는 한달 마다 저는 그래 생각해요. 한달 마다 대차 대조표가 제로로서 다음달을 이월시키는 그런 교회 세상에 빛이 안 되겠어요. 여러분 독일은 그렇더라고요, 독일은 내가 직장을 잃어버리잖아요, 그 책에 나와요 직장을 잃어버리면은 1년 동안 내가 받든 봉급의 90%를 주는 거에요. 그리고 나라에서 그 사람에게 이런 직장을 가라 이런데요.
그런데 그 직장은 나는 적성에 안 맞습니다 하면은 또 1년 동안 90% 월급을 그대로 준데요. 그러면서 두 번째로 여기 가라 이러는데 안 가면은 그 다음에는 국물도 없데요. 그 맞잖아요, 얼마나 합리적인 거에요. 저는 우리 교회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직장을 잃은 어린 사람들에게는 단기간에 1년이면 1년 동안 그 사람에게 생활비 보존 해주고, 집사님 1년 동안 열심히 일자리 찾으세요. 그런데 1년 동안 교회에서 생활비 기본적인 것은 주니까 놀고 먹는 사람에게 또 1년 여유 주고 그 다음에는 국물도 없게 만들어 버리면 다른 교회 가겠지만 ㅎ ㅎ ㅎ. 그러나 또 능력이 부족해서 안 되는 사람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큰 돈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낸 헌금 가운데 그래도 최소 한도로 한 달에 얼마씩이라도 이렇게 죽을 때까지 줄 수 있는 이게 우리가 가족 아닙니까?
다음주일 이야기 하겠지만 여러분 교회는 그 동안에 종교성만 가지고 있었든 거에요. 여러분 오늘도 회복이 있는 잔치 제대로 들으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제대로 가르쳐서 돈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어릴 때 받았든 저축만이 선이라고 하는 굉장히 악입니다. 저축은 하나님 모르는 저축은 악입니다. 아이들에게 지출의 훈련도 잘 시켜 주어서 건강한 사회인이 되고, 우리 교회는 정말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것이다 하는 것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희망이 금년 한 해에 여러분들이 두 명 전도하세요. 우리 집 헌금해서 여러분 죽어서 가는 천국이 어떻게 우리 가운데 이루어 지는가 하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우리 교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드린 예물이 우리 가운데 실직한 자에게 일정한 기간 힘이 되는 물질이 되게 하시고, 타고난 능력과 구조 속의 능력이 부족해서 살길이 막막한 자에게 평생 동안 기본적인 삶의 조그마한 보탬이 되는 물질로 쓰여서 죄악 된 세상 속에 하나님의 의를 들어내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영원한 가족이 되게 함으로 하늘에서 이룬 그 하나님의 나라를 땅에서도 맛보게 하시는 성령님의 내주 교통하심이 오늘도 하늘 무서운 줄 아는 신앙을 회복해서 사람의 생명이 소유에 있지 아니함을 알아서 정말 아버지 하나님 땅에서 구원의 생명이 향기를 맡아 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