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어진 일과 드러난 일(신명기 29장 2-9절)주일 낮 예배 설교문
담임목사 김종웅
감추어진 일과 드러난 일
신명기 29장 2-9절
2015년 9월 20일 주일 낮 예배
No. 228
하나님의 말씀 신명기 29장 입니다 2절부터 9절까지만 제가 읽겠습니다 눈으로 따라 읽으시며 마음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2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3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6 너희에게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7 너희가 이 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와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8 그 땅을 차지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나니
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아멘
○언약에 충실한 삶: 기독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나님 노릇 해 주실 것에 대한 믿음의 삶, 피차 섬김의 삶과 오늘 행복한 삶을 살게 되며 우리 마음에 자유와 평안이 넘친다. 이스라엘의 실패의 이유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모르기 때문.
이나리라고 하는 기자가 쓴 칼럼을 읽으면서 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뭐라고 했는가 하면은 자기는 사춘기 시절에 종교 아마 기독교인 것 같아요. 영향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가 하면은 내사 잘 못살면은 어떻게 하지? 그렇게 해서 영원한 벌을 받으면 어쩌지? 이런 공포에 싸여서 살았대요. 그러다가 자기가 무신론을 선택하면서 그런 공포가 점점 희석이 되고 없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해요. 혹시 여러분들도 예수를 믿으면서 내가 잘 못살면은 하나님에게 벌 받으면 어떻게 할까? 또 그러다가 내가 지옥 가면 어떻게 할까? 이런 무거운 짐이 여러분들을 짓누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다가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한번 두 번 빠지다 보면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도 없어지고, 점점 희석이 되어져서 오히려 그런 두려움도 없이 살아가는 것. 이런 무신론자가 되는 그런 경우도 참 많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게 기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말 여러분 기독교는 어떤 것이냐 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의 마음에 정말 자유가 있어요. 그리고 평안이 넘칩니다. 이게 기독교의 신앙인데, 그러지 못한 것 왜 그런가? 신앙의 출발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 생활을 하고, 그것을 잘못하면 하나님께 혼난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은 종교 생활이 아니에요.
1.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한 삶을 사는 것이 기독교의 삶이다. 신실하신 그 하나님을 다시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을 위탁해야 된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삶, 언약의 신실한 삶은 피차 섬기는 삶. 욕심 살인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는데 서로 다투고 싸운다.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한 삶을 사는 것이 기독교의 삶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것은 저는 성경이라는 말보다 언약서라는 말이 훨씬 더 본질을 잘 표현하는 말이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참 우리 한국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경도 우리가 살아온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만들어 낸 가치관으로 판단을 해서 각색 해 버려요. 그것을 여러분 성경의 원래의 의미를 찾는 것이 영적인 싸움이고 사탄과의 전쟁입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뭔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선이고 그러지 아니하면은 악이고, 그리고 뭔가 성과를 내면은 그건 선한 일이고, 성과가 없으면은 무의미한 일이고 악이고, 이런 이분법 윤리적 이분법의 사로잡혀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일을 안 하면은 굉장히 악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여러분 성경은 왜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되는가? 언약의 신실한 삶이 뭔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인데, 왜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가 하면은, 내일 행복 하려고 오늘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를 믿으면 히브리적 통시적 시각을 가지는데요, 그게 뭐냐 하면은 정말 오늘 행복한 삶을 사는 겁니다. 내일은 하나님께 맡겨 놓고요. 그런데 내가 뭘 이루려고 하다 보니까 오늘 불행하다고, 그러니까 평생 불행한 삶을 삽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은 자본주의적 사관이나 실용주의적 사관으로 정말 뭔가 Que sera sera 이런 삶을 사는 것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안 해요.
정말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정말 오늘 하루하루가 여러분들의 삶의 정말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되야 되요. 그러기 위해서 교회에 와서 한 주간 우리가 일 하다 보면은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어져서 지치고 곤한 영혼들이 하나님 잊어버리거든요. 와서 신실하신 그 하나님을 다시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을 위탁해야 된다고요. 그리고 예수를 믿는 삶, 언약의 신실한 삶은 피차 섬기는 삶이에요. 내 삶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삶도 소중한 줄 알고, 나 살려고 남의 눈물 안 흘리게 하면서 정말 아름다운 평화의 삶을 사는 것, 누가 이런 삶을 삽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삶이지요. 우리 손흥민이가 독일에 있다가 이제 영국의 토트넘으로 갔어요.
첫 깨임을 영 제가 봐도 망친 것 같아, 그래서 온갖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는데, 둘째 깨임에서는 두꼴 넣어 가지고 평점 9.2점 받았대, 그런데 참 재미있는 사진이 하나 실렸어요, 손흥민이가 꼴을 넣고 ceremony 좋아하는데, 그 바로 뒤에 라멜라 라고 하는 선수가 이래 보고 있어요. 그러면서 라멜라의 썩소 이래 놨더라고. 저는 그걸 보면서 야 참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지 안 했나? 여러분 우리가 어릴 때에 아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애는 저거 교통 사고 나서 이번에 없어지면 좋겠다, 전학 안 가나? 여러분 이런 것이 다 그런 거잖아요.
나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없어지면 내가 그 자리에 가는 줄 아는데 절대로 그렇지 안 해요. 손흥민이가 없어진다고 라멜라가 절대로 주전 차지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그 실력을 갖추어야 되는 거지, 손흥민이 없어지면 그 다음에 손흥민 보다 더 실력 있는 사람이 와서 자기는 영원한 후보로 밀릴 수 있어요. 내 앞에 아이가 전학 간다고 해서 내 실력이 늘어나는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그래 사는 것 같아요. 왜 그런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에서는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는데, 서로 다투고 싸우는구나.
2.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어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실하게 하나님 노릇 하셨다. 언약에 실패하면 애굽에 내렸든 재앙이 너희들에게 임할 것이다. 감추어진 일은 여호와께 속하였고, 나타난 일은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율법의 말씀 행하게 하심이라.
그런데 교회 와서 여러분 하나님만 믿으면 남을 이길 수 있다고 그러고, 그 자리 도달한다고 하니까, 야고보서 하고 얼마나 반대의 삶을 삽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으로 인하여 정말 오늘 행복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과 화해하고 평화의 삶도 살지 못하는 것이, 우리 한국 아니냐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이 말씀 성경은요 29장 1절은 그 앞에 절로 히브리 성경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제가 안 읽었는데, 신명기는 이른 것 하라 하지 말라, 이런 규례의 말씀이 아닙니다. 언약의 말씀이에요 이것 아셔야 되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어서 40년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실하게 하나님 노릇 해 주셨어요.
그것이 전반에 있는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 때문에 200년이 지나고 난 뒤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어요. 또 그 아브라함의 맺은 약속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 새로운 약속을 하셔서 40년 동안 하나님 노릇을 잘 해주셨어요. 맛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셨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어요. 그런데도 이 사람들은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언제나 욕심을 부리고 서로 싸우다가 실패한 삶을 산 거에요. 그래서 신명기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직전에 모압에서 새로운 언약을 채결해서 또 내가 너희에게 하나님 노릇해 줄 테니까 너희들은 오늘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과 섬기는 복된 생애를 살아라. 라고 하는 것이 신명기의 말씀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성경에 이래 쭉 보면은 그 다음에 뭐라는 가 하면은 이 언약은 아직 나지 아니한 너희 후손들과도 맺은 언약이고, 너희 안에 있는 이방인들과 모두와 맺은 언약이다 라고 말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여러 가지 이 언약의 실패할 것을 전망하고 있어요. 너희들이 실패하면 이런 저주가 있다, 애굽에 내렸든 모든 재앙이 너희들에게 임할 것이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재앙이 너희들에게 임할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또 실패할 것을 말하는데, 그런데도 나는 너희에게 신실한 하나님이 될 거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여러분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패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후손이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 성경 본문에 있는 대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멸망 당한 이스라엘을 보면서, 왜 저들이 저래 되었나?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한다고. 우리가 지금 그런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에게. 그럼 오늘도 정말 여러분들이 왜 이런 이스라엘의 실패가 있었는가 하는 것을 신명기 29장 29절을 한번 보세요. 신명기 오늘 이 말씀 여러분들 가슴속에 잘 새겨야 되요. 거기에 보면은 감추어 진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에 이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3. 드러난 일은 표적. 감추어 진일은 표적의 의미: 10가지 재앙을 통해 구원한 사건은 역사적으로 드러난 일. 아말렉 싸움에서 승리는 이스라엘이 의로워서가 아니고,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때문. 이걸 아는 것은 감추어진 일. 앉은뱅이와 소경, 풍랑이 잠잠, 포도주 사건은 드러난 일.
자 저를 보세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신실한 삶을 살지 못하고 실패했는가 하면은 감추어 진 일과, 들어 난 일을 몰랐기 때문이에요. 그 드러난 일은 뭐냐 하면은 그 앞에 있는 3절 4절 또 오늘 읽은 본문에 보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노예로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10가지의 재앙을 통해서 그들을 구원해 낸 사건을 말하는 거에요. 그건 역사적으로 드러났지요. 홍해를 건너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들어간 것도 드러난 일이에요.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맛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것도 드러난 일이에요. 그리고 또 오늘 29장에도 말하는 바와 같이 바로 모압 땅에 오기 전에 바산왕옥과 헤스본왕 시혼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도 드러난 일이에요.
그럼 감추어 진 일은 뭐냐 하면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언약 아래서 일어난 것과, 그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것은 감추어 진 일이에요.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고, 광야 40년 동안 그들의 삶을 지켜 주셨고,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는가 하면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거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로워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때문에 그런 거에요. 이걸 아는 것이 감추어 진 일을 아는 거에요. 왜 이 일을 알아야 하는가 하면은 그래야 만이 너희들이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에요. 저는 우리 한국 교회 교인들이 이것 모르는 거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분명히 맛나와 메추라기로 먹고,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건너기도 했고,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도 했는데, 그 모든 원인이 자신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때문에 그 신실하신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알지 못한 거에요. 그러다 보니까 그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자기가 살아가려고 하다가, 실패한 삶을 산 거에요. 그래서 모세와만 말하겠느냐 라고 하고, 서로 비교하고 고라와 다단의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또 맛나 먹으면서도 우리가 기력이 쇠하여 죽겠다고, 애굽에 있을 때는 가마솥 곁에서 상추와 부추와 마늘을 먹었는데, 이런 이야기들 한다고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정말 오늘 하루하루의 주어진 이 생애가 얼마나 복되고, 귀한 건데 이것 알지 못하고, 늘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언약의 신실하신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감추어 진 일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왜? 모르는가? 목사님들이 감추어 진 일이 뭔가를 말을 안 해 주는 거에요.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주일성수 잘하면 복 준다, 못하면 주일성수 안하고 한식이라고, 성묘가면 차 뒤집어 진다. 이러니까 그런 거에요 여러분. 자 여러분 이 말씀을 오늘 감추어 진 일, 들어 난 일, 예수님 십자가도요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풍랑이 이는 갈리리 바다를 잠잠케 하고,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한 것은 드러난 일이에요. 그 감추어 진 일은 뭐냐 하면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모든 예언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메시야가 되시고, 하나님 노릇 해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것을 아는 것이 감추어 진 일이에요.
4. 메시야가 오면 병자들이 낫을 것에 대한 예언을 하신 것.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진 것을 보게 하는 것이 싸인이다.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하신 것 700년이 지나서도 하나님은 일점일획의 변화가 없고, 천지가 없어져도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 하나님을 계시해 주신 것은 감추어진 일.
그런데 십자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령의 강림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제가 오늘도 여러분들이 어디에 가서 집회에 참석하거나 성경 공부 하거나 기도원 갈 때에 목사님에게 허락을 맡으세요, 하는 것은, 바로 이 감추어 진 것을 올바른 신학 안에서 볼 줄 알아야 되거든요. 안 그러면 흩어져 버려요,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여러분들이 요 단어는 머리 속에 기억 하세요. 싸인 이라고 그래요, 표적이라고 그러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위 데몬스트레이션 데모라고 한다고,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 싸인과 데몬스트레이션 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니까, 드러난 것 가지고 뭐라는 가 하면은 하나님 기도하면은 병 낫고, 기도 하면은 미래를 알고, 기도를 하면은 예지적 능력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 말입니다.
자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어떻게 되는가 하면은 그 이나리 기자와 같이 예수 안 믿는 것이 오히려 공포에서 해방되는 삶 사는 것같이 돼 버리는 다고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린 대로 제가 손가락질하는 것 이게 표적 지시지요, 싸인 이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손가락을 봐야 되요? 국화꽃을 봐야 되요? 국화꽃을 봐야지요.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싸인을 뭘 가르치는가 하면은 내가 소경의 눈뜬 것은, 구약성경 이사야 35장에 메시야가 오면은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날 것에 대한 예언을 하신 거에요. 그러면 그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진 것을 보게 하는 것이 싸인이다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소경의 눈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하는가 하면은 7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하신 그 예언이 700년이 지나도록 하나님은 지나서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게 된다 말입니다. 아멘 하나님은요 일점일획의 변화가 없고, 천지가 없어도 자기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소경의 눈 뜨게 하고, 앉은뱅이가 걸은 것은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에게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약속의 신실하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드러내신 거에요. 그래서 그걸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은 내일 행복 하려고 오늘 불행한 사람을 안 사는 거에요.
하나님이 인도 하심을 믿고, 오늘 감사하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미완료형 기도 하지 말고 완료형으로 하세요 라는 거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사건이 무얼 지시하는가 하면은 이사야 25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면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오래 저장하였든 포도주로 연회를 베풀 것을 예언 했는데, 그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 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약속을 700년 동안 지나도 변하지 아니하고, 지키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감추어 진 일이라 말입니다. 목사님이 하는 일이 뭐냐 하면은 신학이 왜 필요 하는가 하면은, 드러난 일을 올바로, 감추어 진 것들을 알게 하는 거에요. 그게 계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어디에 가서 여러분 그 어느 목사님은 40일 금식 기도를 세 번 해 가지고, 능력 받아서 모든 예언하는 것 마다, 다 이루어지고, 저도 여러분들에게 예언을 했잖아요. 내 예언은 절대로 틀리는 법이 없어요. 오늘 여기 있는 사람 100년 후에 살아 있을 사람 아무도 없다고. 이런 예언이 맞는 거지 뭐 여러분 그렇게 하면은 잘 되고, 자녀 대학가고, 이런 게 아니라 말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이런 예언을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죽어도 천국에 가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을 때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거지요. 내 자식이 대학을 떨어져도 그 아이의 삶을 신실하게 해 주실 그 하나님을 믿을 때에 우리는 오늘 감사하고, 다른 사람 섬기는 삶을 사는 거에요.
5.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왔으면,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사는 것.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언약을 이루신 것을 믿는 것. 내가 좀 더 열심히 하면, 다른 사람이 편해 지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섬김의 삶이 언약의 신실한 삶이다.
오늘도 여러분 여기에 29장에서 지키면은 봐라 안 지키면은 모든 재앙이 임한다. 이런 말 아니에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한 줄 아느냐? 언약을 믿지 안 했기 때문에. 또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이나 이 모든 것들을 데모라고 하는 이유는요 제가 이것도 여러분들에게 했지 않습니까? 저는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의해서 죽는 그 해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대학 시절은 거의 체류탄이 난무하는 시대라고. 유신철패 독재타도 왜 했습니까? 민주화를 위한 겁니다. 민주화가 되었으면은 데모를 통해서 민주화를 이룬 거에요. 데모는 무엇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 말입니다. 그러면은 그 다음에는 뭐 해야 되는가 하면은 민주시민다운 삶을 살아야 민주화가 가져다 준 축복을 누리는 거에요. 저는 민주화가 되었는데도 지금도 데모를 통해서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촛불 시위나 이런 것 하는 게 아니고 뭐 해야 되는가 하면은, 민주다운 시민은 올바른 투표에 있어요. 저는 한번도 투표를 빠진 적이 없어요. 왜 여러분 우리가 그랬는데, 대통령 내 손으로 뽑자고 한 거에요. 대통령은 내 손으로 뽑아야 나를 무서워하는 대통령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투표 안하고, 고향 사람이라고 찍어 주고, 나하고 친하다고 찍어 주니까 국민을 겁 안내는 거지요. 여러분 젊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니까, 김재동이나 이렇게 sns 막 동요하니까, 국회의원들이 쏟아 내는 것이 뭐냐 하면은 젊은 사람들 취직하는 법 쏟아 내잖아요. 민주화의 목적은 민주시민다운 삶을 사는 것이고, 예수님이 여러분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위한 하나님의 나라의 시위였다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왔으면,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사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사는 것은, 주일성수 꼬박꼬박 하고, 십일조 꼬박꼬박 내는 것만이 아니에요. 그런 것은 다 자기 복 받으려고도 해요.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사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언약을 이루신 것을 믿어서 언약의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거에요. 그래서 내일 일은 하나님께 맡겨 놓고, 오늘 행복하게 사는 거고요. 내 힘으로 살아가려고 남의 눈물 흘리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서 가족인 줄 알아서, 다른 사람이 내가 좀 더 열심히 하면, 다른 사람이 편해 지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면서 사는 피차의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 언약의 신실한 삶이에요.
6. 결과로 선과 악을 가리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히브리인들은 통시적으로 본다. 호주 브로니웨이 라고 하는 간호사의 이야기. 하나님 성경은 우리와 맺은 약속이고, 우리는 그 약속을 언제나 저버려도, 하나님은 한번도 자신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지켜 나가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반대거든요. 왜 성경을 실용주의나 산업화가 만들어 낸 가치관으로 각색을 해 버려요. 열심히 일한 자 선이고, 안 하면은 악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도 결과가 나오면은 선이고, 아니면은 악이고, 그게 여러분 진리면은 그렇게 살아가세요. 그게 진리가 아닌 것은요 히브리인들은 통시적으로 모든 것을 봐요, 마지막으로 봐요. 여러분 호주 브로니웨이 라고 하는 간호사는 주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활동했든 분입니다. 이분이 호스피스는 마지막 임종 환자들을 돌보는 것 아니에요, 임종 환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 모든 사람들이 떠나면서 아쉬워한 것을 다섯 개가 있다고, 펴낸 책이 있습니다. 무얼 아쉬워했는가? 대부분의 남자들은요 너무 열심히 일한 것을 전부 후회하면서 죽었대요.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내 아이가 성장하는 것도 보지도 못하고, 아내와 동지애를 누리면서 사는 그런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죽는대요.
남자나 여자나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아쉬워하는 것은 남의 기대에 부흥하느라고, 자신의 삶의 솔직하지 못하며 살은 것들을 후회한대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그러잖아요. 목사님 눈치 보면서 신앙 생활 하지 마세요.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 능력으로 살아가세요. 신실하신 하나님 믿는 거에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살았다, 억눌려서 살아온 것을 후회한대요. 화가 나면 화가 나는 표현도 해야 되고, 화가 나는 표현을 할 때에도 그 사람을 용납할 수 있는 사랑도 있어야 되요. 옛 친구들과의 우정을 잊어버린 것이나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복을 위해서 더 노력하지 못한 것들, 이런 것들이 죽으면서 사람들이 행하는 다섯 가지의 후회래요.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신명기 보면서 이런 말씀을 지키면 복 받고, 안 지키면은 저주받는다, 봐라 오늘도 보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질병을 너희에게 더한다고 하지 안 했나? 이게 아니라 말입니다. 하나님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약속이고, 성경은 우리는 그 약속을 언제나 저버려도, 하나님은 한번도 자신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지켜 나가시는 그 하나님. 왜 우리가 이것을 믿어야 되는가? 그걸 믿을 때, 내 힘으로 뭔가 이루면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노릇 해 주심을 믿으면서, 오늘 살아 있음에 행복해 하고. 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고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피차 섬기면서 사는 평화의 삶,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구원이고, 신앙이다 말입니다.
여러분 이제까지 살아온 생애의 참 나는 만족한다.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 참 멋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 그냥 사세요. 그러지 아니하고 늘 미래의 대한 불안 때문에 오늘 불행한 사람,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시기와 질투가 생기는 자존감이 낮아지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오늘 제 이야기대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셔서 여러분들의 생애 하루하루가 후회하지 않는 복된 생애를 사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금년에 여러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백성이 누구냐? 신명기 주제입니다.
◈봉헌 기도◈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해도 취하지 못하는데 서로 다투고 싸운다고 합니다. 마땅히 생각할 것의 이상을 생각하지 말고, 주신 분복의 만족하며 살아 라고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이 보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내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다가 후회하다가, 천국에 들어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 성도들이 그 신실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교회를 통해서 경험하도록 드린 예물이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 노릇 하는데 잘 사용 되어지게 하여 주시고, 오늘도 아브라함과의 맺은 언약을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케 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의 삶을 주시기 위하여 지신의 몸을 제물로 드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알파와 오메가 되신 그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하심을 십자가를 통해서,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드러난 일 속에 감추어 진 일을 계시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자신의 언약의 신실함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언약의 신실하심을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피차 섬김의 평강을 맛보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성경의 역사의 드러나는 일속에 감추어 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깨닫고 받아 드려 천국을 맛보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