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두 가지 맛 (천국 맛, 지옥 맛)요 3: 17-21절 (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6. 4. 14. 18:20

 

 

 

 

 

담임목사 김종웅

   

두 가지 맛 (천국 맛, 지옥 맛)

요한복음 3 17-21

2016 4 10일 주일 낮 예배

                                                                                                                                                      No. 258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아멘

 

●사람의 일생 / 출생이 지배하는 사회와 죽음이 지배하는 사회. 벌써 받은 심판과 구원. 왜 천국을 맛보는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는가? 가출한 자녀와 탕자와 같이.

 

이번 주에 오늘 설교를 한 4편 정도 준비한 것 같습니다. 주중에 준비했든 것 또 수정하고 또 어제 저녁에 수정하고 오늘 새벽4시에 일어나서 또 수정하고 1부 예배 마치고 수정하고 설교를 잘하려고 그런가 그렇지 않습니다. 설교는 목사의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되거든요. 그래서 내 말이 얼마나 더 많이 들어가 있는가? 되도록이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하면 더 밝히 드러낼까? 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도 여러분들이 이제 2부나 3부나 성가대 위해 박수치는 것 아닙니다. 박수치는 것은 하나의 공연으로 보거든요, 하나님께 드림이 되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성가대가 제일 뒤에 서서 성가대의 그 찬양이 성도들의 마음을 담아서 이 강대상을 천상이라 생각하고,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그런 홈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 동안 이제 제가 쭉 놔둔 것은 성가대의 격려도 있어야 되지만은 좀 필요해서 놔두었는데 이제는 정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이 참 중요하겠다 이런 생각합니다. 또 성가 대원 스스로도 박수 받으려고 있는 것 아니거든요, 여러분들이 잘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 앞에 정말 경배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아름다운 찬양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참 우리가 사람의 일생이라 이러면은 태어남이 있습니다.

 

1. 죽음 이후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도 우리의 인생의 한 부분이 된다. 죽음이 우리를 지배하는 삶을 살게 되면 우리가 남들보다 의로워도 타인을 정죄하는 일이 없게 된다. 죽음의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될 때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 종교는 죽음 이후의 새 세상을 말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여러가지 삶들이 있습니다 희로애락이 있지요. 그리고 죽음도 우리의 삶의 일부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도 우리의 인생의 한 부분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출생 이후의 죽음까지 우리의 생애를 참 복되고 아름답게 살려면은 죽음이 우리를 지배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출생이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삶을 살면은 지옥의 맛을 보며 살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금 수저 흑 수저 하고 힘들어 하는 것은 출생이 한 개인의 삶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집에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모든 생애를 좌우해 버리잖아요. 여러분 죽음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되면은 우리가 가난해도 참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부유해도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죽음이 우리를 지배하는 삶을 살게 되면은 우리가 남들보다 의로워도 타인을 정죄하는 일이 없게 됩니다. 내가 좀 여러가지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위로와 소망을 얻게 되는 놀라운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지금 청년들의 실업이나 많은 사회의 문제들이 생기지요, 이런 문제를 사회학적으로나 경제학적으로나 정치공학 적으로 풀려면 풀어지지 않습니다. 죽음의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될 때에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여러분 만약에 재벌들이 오늘 죽는 줄 알면은 그렇게 안 살겠지요. 또 여러분들이 지금 염려하고 걱정하는 많은 것들이 오늘 내가 죽는 줄 안다면은 그것이 염려가 되겠습니까?

 

우리가 죽음이 우리의 지배하는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일에 염려하는 겁니다. 우리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서 소비의 즐거움으로 살려고 하는 것도 여러분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면은 그래 살지 않습니다. 좀더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될 겁니다. 우리가 천년만년 살 것 같이 지금의 생각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 모든 문제가 파생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남들보다 위에 올라가서 많은 사람 위에 굴림 하는 쾌감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는데, 그것 오늘 죽는다면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가지지 못해서 가장 귀하게 가지고 싶은 그것도 실제로 어떤 관점에서 봐야 되는가 하면, 내가 오늘 죽는다는 관점에서 보면은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덜 귀한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가치가 전도되고, 질서가 거꾸로 된 세상에 살아가면서 힘든 것은 우리가 죽음이 지배하는 삶을 살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출생이 삶을 지배하는 사회의 구조를 만들어 버립니다. 여러분 이렇게 죽음이 지배하는 삶을 살도록 종교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 종교는 이 땅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이후의 새 세상을 말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모든 종교는 죽음 이후의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 죽음 이후의 것을 가지고 오늘을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런데 종교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을 하나님의 심판, 신의 심판이라고만 생각하는 종교입니다.

 

2. 성경적인 심판 죽음을 제대로 알면 우리의 생애가 건강 해지고 아름다워 진다,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인 죽음이 심판이 아니고 구원이라는 것,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다. 평생 절망의 사건이 그 가정에 행복으로 바뀌는 에너지를 주는 삶.

 

이런 종교를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은 이 세상을 헛되고 헛되다고 생각합니다. 허무주의로 갑니다. 또 금욕주의로 갑니다. 또 그 반면에 여러분 쾌락주의 종교적인 열광주의 라고 합니다. 죽으면 끝나는데 하고 Que sera sera 그냥 흥청망청 살아가고 아무 규제도 없이 본능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도 죽음에 대해서 심판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이런 것들을 성경적으로 잘 알지 못하니까 고린도전서 이런 대에도 보면 교회 안에도 열광주의 자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쾌락주의 금욕주의 허무주의가 팽배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적인 심판 죽음을 제대로 알게 되면은 우리의 생애가 굉장히 건강 해지고 아름다워 집니다. 여러분 오늘도 성경 본문에 보면은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다. 마음에 꼭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모든 종교는 죽음을 신의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노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이 세상에 당하는 여러가지 불행한 일들도 신의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이 있으면 우리는 아파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또 너무 심하게 되어지면은 자신의 삶을 모두 해체 해 버리는 삶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 구원하려 하심이다. 또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이냐 하면은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인 죽음이 심판이 아니고, 구원이라는 겁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그저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 아니면 교리에 갇혀서 놓쳐 버리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참 정말 행복하게 살아가고 정말 우리의 누림이 있고, 나눔이 있고, 그 다음에 남들 위에 굴림보다는 섬김의 삶을 살아가려면은 우리의 죽음이 심판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그 심판은 우리에게 곧 구원임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세상에 여러가지 로마제국의 멸망이라든지 바벨론제국의 멸망이라든지 어떤 한 기업이 부도가 나서 도산한다든지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려서 죽는다든지,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그 심판이 곧 그 사회의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이런 부분들을 알 때에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겁니다. 지난주일 오늘도 광고가 나갔지마는 우리 교회에 유치 부에서 뛰어 놀든 7살짜리 설준모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무엇으로 위로가 되고, 무엇으로 여러분들 그런 것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제가 장례식 내내 입관예배 발인예배 임종예배 전부 같은 성경 구절을 가지고 같은 말씀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여러분 거기에 가서 한번 엄마 손을 잡고 울어 주는 것, 함께 슬퍼해 주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리는 것이거든요,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할 그 절망의 그 사건이 그 가정에 행복으로 바뀌는 에너지를 가져야 됩니다. 그러려면은 준모의 죽음이 결코 그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요 구원임을 받아 드려야 됩니다. 참 하기 어려운 이야기 했습니다. 여러분 7살 먹은 아이 7살까지는 정말 천진난만하게 부모에게나 유치부나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줍니다. 미운 7살이라고 하지만은 7살 먹은 미운 짓은요 그것도 사랑스러운 것이 7살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좀 들어가면은 이제부터는 그 아이에게 실망할 일밖에 없습니다.

 

3. 하나님은 의인을 자신 곁으로 불러 편히 쉬게 한다고 하셨다. 한 지체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한 지체의 영광을 함께 즐거워 하자고 했다. 성령 안에서 우리가 가족으로 생각하면서 그 속에 함께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는 것.

 

 

그래서 이사야 57장에 보면은 하나님은 의인을 자신 곁으로 불러서 편히 쉬게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슬픈 겁니다. 우리의 생애를 제가 여러분에게 출생에서부터 희로애락의 우리의 삶, 죽음 그 이후에 가 모든 것이 우리의 일생이라는 것이 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 이런 것입니다. 오늘도 제가 이 예배 전에 가장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유치부 교사들이지 않겠어요? 지난주일 까지 눈에서 밟혔든 애인데 그래서 유치부 교사들에게 제가 가서 다시 또 그런 말씀 드렸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이를 미국 유학을 보낼 때에 인천 공항에서 눈물 흘리지 않는 부모 없겠지요.

 

그래서 여러분 유학을 보내고 난 뒤에 돌아서서 집에 올 때에는 더 이상 울지 않습니다. 왜 그 아이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숙된 모습으로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날 것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 입니다. 이제 그때부터 헤어진 것을 울면서 식음을 전패하고 아무것도 안 한다면은 그 이상한 부모 아닙니까? 그때부터 이 아이를 뒷바라지 더 좋은 모습으로 부모의 모습으로 만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이를 미국 유학 보내는 부모의 심정이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가 여러분들이 종교를 가져야 할 이유고 그 종교 중에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죽음이 결코 심판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이 짧은 말씀이지만 그런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이번에도 참 저는 목회를 하면서 참 잘했구나 그저 설교를 할 때에 정말 듣는 것인지 안 듣는 것인지 그런 생각을 했는데도 이번에 참 여러분 준모의 소식을 듣고 수요일 날 여러분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7살 아이를 잃은 서지원 집사를 위해서 우리가 함께 기도하자고, 서지원 집사의 기도의 내용들이 뭐였습니까? 엄마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 힘을 얻고 새로운 생애를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말씀이 믿어 지고 받아 지도록, 임종 예배 때 엎드려서 말씀은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겠지요 성령님만이, 그런데 수요일날 참 많은 분들이 와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 지체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한 지체의 영광을 함께 즐거워 하자고 우리 교회의 목회의 철학이 결코 헛되지 안 했구나, 이런 생각 가졌습니다.

 

저도 새벽3시에 일어나서 발인 예배를 여러분 일찍 드리는 바람에 여러분들도 다 4시쯤은 일어났는데 그 장례식장에 교인들로 가득찬 모습을 보면서 참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구나 옛날 어른들이 콩나물 시루에 물주면은 물이 다 빠지는 것 같아도 콩나물이 쑥 성장하는 거와 같다 더지만 정말 끊임없는 말씀이 이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는구나, 여러분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유력한 사람이 죽었을 때는 담임목사가 가고, 우리 서집사가 우리 교회에 등록 한지는 1년 밖에 안 됩니다. 그것도 예배를 참석하다가 안 하다가 드문 드문 이러지만, 정말 그런 어떤 사회적인 지위를 보지 않고, 나와의 관계를 보지 않고, 성령 안에서 우리가 가족으로 생각하면서 정말 그 속에 함께 슬퍼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모습, 여러분 우리 참여하지 못한 분들도 저는 안온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못했거나 아이면은 신앙이 어리거나 여러분 아이들 어린 아이들은요, 집이 어찌되었든 간에 엄마 아버지가 죽었든 간에 그 상관 없습니다. 지한테 먹을 것이 있고 장난감만 있으면은 즐거운 겁니다. 철이 들면은 여러분 집에 큰 위엄이 있고 어려움이 있으면은 그것이 자기의 슬픔이 되는 거지요. 신앙도 그런 겁니다. 교회 예배 잘 드리고 교회 위해서 큰 기여하고 그런 사람이 신앙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 교회의 한 지체된 자들의 그 아픔을 함께 아파 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참 이런 일들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결혼식이나 뭐 돌이나 기쁜 일은 함께 뭐 즐거워 안 해도 되지요.

 

그런데 이런 힘든 이들에게 혹시 부조가 힘이 드는가? 그래서 오늘 당회가 있을 때 제가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장례식의 부조는 개인이 하지 마세요, 구역별로 무아서 하고, 선교회 별로 모아서 해야지, 돈이 없어서 슬픔에 참여 못하는 일은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분 우리가 참 이 모든 것들을 오늘도 보시면서 이 말씀, 예수님은 우리에게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우리가 모두가 멸망 당하고 끝났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대로 살거나 우리는 정말 여러분 허무하게 인생 금욕주의로 사는 것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 심판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 가치 있는가 하는 것을 알면서 살아갑니다.

 

4. 인간이 만든 가치 체계를 깨트려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 체계와 질서 구조를 누리며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형벌을 우리 대신 받으셔서 면제된 구원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새롭게 살 수 있다. 바울은 생전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아 교인들이 늘 시비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가치의 체계에 순응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체계를 깨트려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 체계와 질서 구조를 누리며 사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 이 말씀 참 가슴에 담아야 됩니다. 한국 교회는 죽음을 하나의 심판과 파멸과 멸망으로 생각해 버리고, 부도나는 것을 하나님께 심판 받은 거라 생각하고, 병들어서 죽는 것을 심판이라 생각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을 대신 받는 그래서 우리는 그 형벌의 면제된 구원이 우리 속에 있음을 알므로 말미암아 그 무엇으로도 위로 받을 수 없는 세상에서 예수 때문에 새로운 힘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고, 우리가 죽음과 심판이 없다면은 왜 우리가 이렇게 살겠습니까?

 

다시 이야기하지만 여러분들이 염려하는 것, 오늘 죽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염려가 얼마나 쓸데 없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가지고 싶어하는 것, 오늘 죽는다면은 그게 뭐 그래 의미가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고자 하는 그 자리에 올라감이 오늘 죽는다면은 뭔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인생은요 모든 사람이 염려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서 소비의 즐거움으로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굴림과 억압의 쾌감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인생이, 또 그러한 삶을 위해서 출생을 좋게 만들려고 하는 인생, 종교는요 인생이 그것만이 아니다, 죽음이 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그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히브리서 9 27절에도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다,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겁니다. 그 이후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그런데 그 심판을 예수님이 친히 받으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이다 이걸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요 참 모든 기독교인들의 삶의 하나의 모범이 바울인데요 바울은 예수 때문에 자신의 모든 부귀영화 버리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은 자기에게 참 많은 시비를 합니다. 바울은 참 한이 많은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은 마티아를 뽑을 때 사도의 자격은 예수님의 살아생전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음과 부활의 목격자여야 되는데, 바울에게는 살아생전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교인들이 늘 시비했습니다.

 

자기가 개척한 교회조차도 바울은 사도의 자격이 없어서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수제자였기 때문에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서 선교비를 받으면서 했는데, 바울은 예수 때문에 이혼을 당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다. 나는 미말에 처한 종이다. 사도중에 맨 끝에 앉은 종이다 라고 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자기를 반대하고 자기에게 그렇게 애먹인 사람들조차도 형제라고 하면서 그들 때문에 기뻐하며 살며, 그들을 위하여 어떤 역경도 겪으며 살았든 삶은 고린도전서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오늘도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여러분들에게 원하는 바를 성취하려고 나온다면은 죽은 종교를 믿는 겁니다.

 

예배는 죽은 자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는 겁니다. 날마다 우리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 죽음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에 이른 것을 보면서 우리의 생애를 조망해야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만약에 고린도전서 15장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나 버린다면은 여러분들 말로 하면은 예수 믿으면 천국 가고,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가는 것으로 끝나 버린다면은 나 이제 예수 믿어서 천국 가게 되었는데 뭐 그렇게 사랑하며 살겠습니까, 먹고 마시고 놀지 뭐,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가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은 뭐 여러분 그렇게 살아요, 먹고 마시자는 거지요.

 

5. 바울은 풍부와 궁핍에 처할지라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비를 주신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기에 바울은 만인을 사랑하며 산다 했다.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는 것과 타인에게 하나님 노릇 하려 함이 죄다.

 

바울이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가는 운명이 정해 진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누리며 천국의 맛을 누리며 살게 되는데 자기가 배고픔과 매맞음과 헐벗음과 또 때로는 자기가 부유에 처할지라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나의 능력이기 때문에 내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 내가 믿는 자는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비를 내려 주는 그 하나님이시기에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는 만인을 사랑하며 산다는 겁니다.

 

자신의 생애 속에 사랑보다 귀한 것이 없는 생애를 산 겁니다. 로마서 6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지요, 그 죄가 뭐라고 했습니까 제가, 인간이 정한 종교적인 규범을 어기는 죄 아닙니다. 그러면은 종교적인 목적은 이루어 갑니다, 주일 한번 빠지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고 그러면 사망이라 생각하면은 모든 성도들이 주일 예배를 잘 지키는 교회는 될지 몰라도 생명 있는 그리스도인은 만들지 못합니다. 인간들이 만든 사회적인 규범인 윤리를 잘 지키는 것을 선이고, 어기면은 죄라고 생각하면은 사회적인 질서는 이루어 갈지 몰라도 인간이 만든 법 중에 얼마나 사악한 법들이 많습니까?

 

그 법이 우리를 얽어 매는 족쇄가 되는 법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훌륭한 국가는 만들어 질지 몰라도 인간에게 생명을 더하지는 못합니다. 그 죄는 창조주 하나님 우리는 피조물인데 우리가 하나님같이 되려고 하는 겁니다.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려고 하는 것이 죄입니다.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 노릇 하는 것이 죄입니다. 저 사람 왜 저래 살지? 왜 저 모양이야, 그거는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겁니다. 의로운 사람일수록 우리가 얼마나 타인에 대한 정죄가 많습니까? 제법 산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그 죄는 사탄이 시키는 겁니다.

 

사탄은 우리의 사업을 부도나게 하고 우리에게 죽음을 주고, 질병을 주고 그렇지 않습니다. 더 근본적인 것, 네가 네 인생의 하나님이되, 네가 네 인생의 주인이되, 네가 모든 타인에게 주인이되, 죄의 삯은 사탄이 시킨 일을 했기 때문에 사탄이 우리에게 지불한 대가는 사망이라는 겁니다. 그 사망도 생물학적 죽음만이 아니에요. 영원한 하나님과의 존재에 분리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이 왜 염려합니까? 우리의 유한한 자원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품에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많은 것을 욕심을 낸다고 성경에는 그렇게 말하거든요, 욕심을 내도 취하지 못하고 살인해도 얻지 못할 것들을 잡으려고 하는가?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에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으면은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오늘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오늘 이 말씀 보시면서 이것 모르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았느니라. 죽어서 지옥 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면은 지옥의 맛, 여러분들이 염려하지요, 그것은 지옥을 맛보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욕심이 생기지요 지옥을 맛보고 있는 겁니다. 남들 위에 굴림하고 싶지요? 지옥을 맛보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6.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으면 어떠한 종교적인 목적이나 인간적인 목적의 달성보다도 사람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 성경을 통해서 내 자신을 안다는 것은 경험된 것. 목사님이 22살 때에 사고로 국군수도통합병원 중환자실 20일간 의식이 없었든 이야기.

 

믿으면은 돈보다 사람이 눈에 밟힙니다. 믿으면은 일보다 사람이 귀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것을 믿으면은 어떠한 종교적인 목적이나 인간적인 목적의 달성보다도 사람이 중요하게 여겨 집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그가 가지고 있는 평화와 기쁨과 행복을 빼앗을 수 없는 겁니다. 우리가 아는 것 하고 경험하는 것 하고는 다르거든요. 히브리적으로는 안다는 야다 라는 말은 경험을 말하는데, 헬라 적으로 안다는 말은 지식을 말해요. 한국의 교인들은 모두 성경을 너무나 지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 성경을 통해서 내 자신을 안다는 것은 경험된 겁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아는 것은 경험한 것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7살짜리 아이가 짧은 인생을 살다가 갔을 때에도 그 엄마의 생각보다는 자신의 입장과 Overlap 이 되어서 눈물이 납니다. 7살짜리를 두고 있는 부모는 그 상황 속에서도 내 아이가 죽은 거와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겁니다. 인간은 경험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여러분 죽는다는 것도 경험 해보지 못하니까 그저 죽으면 끝난다 그래요. 저는 예수 안에서 죽음을 경험해 봤어요. 여러분들이 딴 것은 몰라도 이 부분에는 제가 여러분들의 관점에서 저를 판단하면 안 됩니다. 저는 22살 먹었을 때에 국군수도통합병원 중환자실입니다. 그곳은 전군 60만중에 내일 죽을x 들만 가는 곳입니다.

 

얼굴을 온 몸을 붕대로 감고 의식 불명으로 20일 동안 있었습니다. 의식이 없다고 못 알아 듣는 것 아닙니다. 제가 경험한 것으로는 의식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문득 문득 정신이 돌아옵니다. 우는 소리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 되지요. 머리는 이만큼 부었지요, 뇌 부종으로 뭐 죽기 일보 직전입니다, 또 하나 가는구나 하고 또 정신 잃고 있습니다, 정신이 잠깐 돌아왔을 때 의사가 하는 말이 이x도 죽겠지, 뇌 부종이 너무 심했거든요, 코가 없었거든요 여러분 머리를 다쳐도 연세 드신 분들은 다쳐도 살 확률이 있습니다. 왜 뇌 안의 용량이 줄어 듭니다, 22살짜리는 꽉 차 있기 때문에 교통 사고 나서 머리 다치면은 그냥 가는 겁니다.

 

온 머리뼈 다 어그러졌지요, 양안 실명 된다고 하더라고 다친 부위로 봐서, 시신경 다 나가고 다 나갔을 거니까, 죽음 딱 붙었지요, 그때 들었든 생각은요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와 함께 아무것도 가지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 공부 1등하는 것 공부 잘하는 것 돈 그게 뭐 필요해요 지금 죽는데, 또 하나는 아무도 미워 지지 않고요 그렇게도 싸우고 미웠든x도 보고 싶더라고요, 사람이 제일 귀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람들이 죽을 때 그런 이야기 합니다. 누구누구도 좀 데리고 오너라, 대부분 누구누구 보고 싶다는 사람이 평생 자기에게 상처 준 사람, 그 사람도 보고 싶다는 겁니다.

 

7.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며 내 생애와 세상을 봐야 된다. 이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론이 아닌 삶의 실존이다. 그 정죄는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사랑한다. 악은 빛을 미워함은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면서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그 시각으로 우리가 내 생애를 보고 세상을 봐야 됩니다. 이게 교회의 사명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재벌들이나 정치인들 높은 사람들 강남에 있는 교회들에게 죽음으로 인생을 보지 않고, 지금의 세상에 더 집착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도 지금의 세상에 복을 주는 하나님으로 변경해 버리니까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니까 동백에 사는 힘없는 우리들이 힘든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이론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실존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그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었는가?

 

죽음 이후의 우리의 그 구원을 선물로 주었는가 왜 믿지 않는가? 19절과 20절에 이래 말합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다, 왜 안 오는가? 빛이신 그리스도적 구원과 하나님의 방법보다는 세상의 방법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그 틀에 적응하는 인본주의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오면은 자신의 사악함이 들어 나거든요, 여러분 염려하는데 그 염려는 사탄이 여러분들에게 지불한 대가 라고 생각할 때에 내가 하나님 안 믿고 있구나 하는 것 드러날까 봐 이말 안받아 드리는 거에요.

 

우리 모두는 영원한 가족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여러분 영원한 가족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은 내가 그 동안 믿어 왔든 모든 신앙의 체계가 부수어 지거든요. 또 한 지체의 아픔을 함께 아파해야 하는데 그 삶 살기 싫거든요, 더 많은 것을 소유해 가지고 내가 교회 헌금 왕창 해 가지고 사람들에게 Spotlight 를 받는 이런 생애를 살고 싶거든요, 내가 뭔가 교회에 큰일을 해 가지고, 사람들에게 내가 부각되는 것을 살고 싶거든요. 그래서 영원한 가족이라는 말씀을 받아 드리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지옥의 맛을 보고 사는 거에요. 옛날 예수 안 믿는 어른들도 올라가지도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 했는데, 하나님 믿으면 올라갈 수 있다 이래 버린다고요.

 

죄 지은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사람이 심판입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참 회피합니다, 그래서 죽는다는 이야기를 제일 듣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공동묘지가 언제나 저 구석진데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 속에 있는 구원을 아는 서양의 문화는 교회 안에 무덤이 있습니다, 집안에 무덤이 있습니다, 동래 가장 복판에 공동묘지가 있고 공원입니다. 그래서 서양은 우리보다 사람 대접 받으며 사는 세상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 이 말만 하지 말고요 하나님의 그 말씀이 우리 속에 어떠한 제도와 문화가 되는가 아셔야 됩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실존이고 구원은 우리의 삶에 실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와서 여러분 오늘 이후에 오늘 죽는 것 같이 사세요. 여러분들 속에 목사님 이 세상에 그래 살다가 어찌하려고요, 하나님 그래 무책임한 분 아닙니다. 오늘 죽는 것 같이 살아도 살 수 있도록 교회를 선물로 준겁니다. 자신이 몸 버려서 성령으로 교회를 준겁니다. 여러분 이런 것 하고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말씀을 탕자의 비유를 가지고 말합니다. 탕자가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큰 죄입니다.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유대교 법에 금지된 겁니다. 왜 그렇겠어요? 우리나라도 지금 그러지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유산 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버지의 간섭을 받기 싫다는 말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다는 말입니다.

 

8. 탕자가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가출한 결과 돼지 쥐엄 열매 먹는 삶을 산 것이다. 아버지가 원하는 규범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원하는 그 조건만 지키면 하나님의 부유함을 누리게 된다. 출한 아이에게 네 부모가 너를 얼마나 사랑 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세상.

 

제가 그랬습니다 어릴 때, 초등학교 때 저는 제일 부러웠든 아이가 고아였습니다, 지 마음대로 해도 누가 뭐라 하지도 안 하고, 저는 해만 지면은 동래에서 엄마가 밥 먹어라 과음 지르면 안 가면 혼납니다, 이 애는 그런 부름도 없고 지 혼자 밤 늦게까지 놀아도 누구 하나 할 수 없는 게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그저 공부해라 동생하고 이래라 하는 게 너무 잔소리로 들리고, 그래서 저도 한번 가출 해 봤습니다. 15일 동안 가출한 결과 이가 서말 이더라고 ㅎ ㅎ, 탕자가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가지고 가출한 결과 돼지 쥐엄 열매 먹는 삶을 살은 겁니다. 이 말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해 주실 것을 믿지 안 했더니만 암만 많이 가져도 염려하며 사는 빈곤한 삶을 살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을 믿지 아니하고 독립 선언 했더니만 많은 것을 소비하려고 자기가 수고한 것을 누려 보지도 못하고, 평생 통장에 숫자 늘어나는 것 보고 좋아했지 한번도 써 보도 못한 삶을 살아갔다 이 말입니다. 평생 높은 자리 올라가서 많은 사람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자기 자리 빼앗을 가 봐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이 돼지 쥐엄 열매 먹는 삶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선언 한 삶입니다. 여러분 그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거기에 가면은 먹을 것이 많고, 부유함이 있습니다, 누림이 있습니다, 나눔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원하는 규범을 따라 살아야 됩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규범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라는 겁니다. 형제들끼리는 돈보다도 형제를 귀하게 여겨라 이게 아버지가 원하는 그 조건만 지키면은 하나님의 부유함을 누리게 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여러분 가출한 아이에게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는 유일한 것은요 네 부모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너에게 회초리 때리는 것이 심판이 아니고 너에게 구원이다 이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이것을 받아 드리면 아버지 집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설교를 하면서도 참 이런 말 하기가 힘든 게 요즘에는 가출한 아이들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더 큰 지옥으로 보내는 가정도 참 많습니다.

 

아이를 앵버리 시키고 학대하고 저희들끼리는 맛있는 것 먹으면서 아이들에게는 먹을 것 주지 않는 가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네 부모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말을 참 해주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이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그 규제 부모의 그 요구가 싫어서 지 마음대로 살려고 가출한 아이들에게는 그 아버지의 규제와 부모가 원하는 그 삶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것인가 하는 것, 네가 공부 안 할 때렸든 것이 그것이 심판이 아니고 구원이라는 것을 받아 드리기 위해서 집으로 돌려보내는 순간 그 아이의 삶에는 풍요로움이 있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교회는 없는가, 우리 교회는 그런 교회가 아닌가 심히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9. 교회는 어떠한 프로젝트나 화려한 건물과 힘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보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해야 된다. 죽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로마를 깨뜨렸다. 알렉산드리아 지역에 흑사병 자를 기독교인들이 돌보다 자신도 전염병에 걸려서 죽었다는 것.

 

여러분들이 아버지 노릇 해주심을 믿으면서 살아가는데 그러려면은 아버지 집인 교회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또 다른 앵버리가 되어서는 안되거든요. 부모는요 진짜 부모는요 좋은 집 사는 것보다 자식이 귀하게 보이거든요, 교회는 어떠한 프로젝트나 어떠한 화려한 건물과 어떠한 힘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보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해야 되거든요. 그렇게 느낄 때 만인이 만인에 대해서 교인이 교인에 대해서 서로가 하나님 노릇해 줄 때 비로서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 되고 안식이 되는 겁니다. 우리 교회 지향하는 것이 그런 겁니다. 바벨탑 쌓는 것 아닙니다. 오늘도 여러분 정말 큰일 하는 것에 너무 미혹됩니다.

 

나는 내 임기 중 안에 나는 이렇게 위대한 일 했어, 백성의 고혈입니다. 사랑해서 해야 됩니다. 여러분 오늘도 사랑하기 위해서 신앙 생활 해야 됩니다. 그러려면은 여러분들의 죽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임을 받아 드려야 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천국을 맛보는 신앙 생활이 되고, 이제는 여러분들이 사회가 정했든 내 현실의 삶에 집착하도록 하는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말고요, 바울과 같이 날마다 죽는데 그 죽음이 뭡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고 구원의 자리임을 믿어서 여러분들의 지금 생각하는 모든 가치판단을 하시고, 비록 내가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아갈지라도 세상과는 완전히 반대로 살아갈지라도 교회라는 울타리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삶을 그나마 조금 더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은혜의 그래서 어떤 교회가 세상을 부끄럽게 했는가?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했지요, 로마가 기독교의 지배를 받았든 것은요 기독교가 로마보다도 더 강력한 정치적인 힘이나 경제적인 힘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로마를 깨뜨렸다고요, 기독교의 역사의 제가 이야기 했지요, 알렉산드리아 지역에 흑사병이 돌아서 모든 로마의 시민들 그렇게 고고하게 윤리와 도덕을 자랑하든 자들도 가족 중에 그 전염병이 걸리면 길거리에 지 살려고 버릴 때 문헌에요 기독교인들은 피를 한 방울도 나눈 적이 없는데 그 전염병 자를 돌보다가 자신도 그 전염병에 걸려서 죽을 때에도 기뻐하며 죽었다 이 힘이 뭘까?

 

그게 콘스탄틴누스의 고민이었습니다. 누가 그 삶 살 수 있습니까? 죽음 이후에 천국 구원이 있음을 믿는 사람이고, 오늘도 여러분 예배 때마다 우리가 함께 또 한 주간 살아가면은 눈에 보이는 이익에 급급해서 살수밖에 없지만 주일에 와서 내 한 주간에 삶을 다시 말씀으로 돌이켜 보면서 내가 염려했든 삶을 기대로 바꾸고 가지지 못해서 억울했든 것을 자족으로 바꾸고 굴림 하지 못해서 당하였든 자존심을 종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치유 되어지고, 그래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다가 예수님 만났을 때에 참 나 잘 살았지요, 그런데 세상에 집착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 참 힘들었습니다 주님, 이 고백이 예수 사랑하심은 찬양을 통해서 회복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봉헌 기도◈

 

죽음이 심판 문이 아니오 구원임을 믿어서 세상에 집착하며 살다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붙잡을 수 없는 헛된 인생의 야망에 사로잡혀 시간을 낭비하는 우리 인생에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우리의 생명의 주관 자 되심을 알아서 돈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론보다도 사람을 세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오늘도 말씀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러한 생애를 살아가는 자들이 땅에서 보호받도록 몸 버려 세운 교회임을 알아서 드린 예물이 우리와 지체된 자들에게 하나님 노릇 하는 아름다운 풍성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오늘도 성령의 교통하심과 모든 성도들이 돈의 힘보다는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하나님의 심판이 구원으로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천국을 맛보게 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데도 심판으로 인하여 종교적인 목적은 달성하고 세상이 원하는 틀 속에서 살아가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친히 계시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우리 모두가 성령을 나누어 가진 영원한 가족임을 알아서 한 지체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한 지체의 영광을 함께 즐거워하게 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려서 내가 내 인생의 자리에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 앉아서 돈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교회의 한 구성으로서 교회가 하나님 노릇 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내 자리를 잘 지켜 나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땅에서 천국을 맛보도록 몸 버려 세우신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