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영으로 드리는 우리 교회 예배 (요 4: 1-42절)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6. 4. 29. 00:10

 

 

담임목사 김종웅

   

영으로 드리는 우리 교회 예배

요한복음 4 20-26 (1-42)

2016 4 24일 주일 낮 예배

                                                                                                                                                           No. 260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아멘

 

참된 예배: 예수님의 사역과 신앙 고백. 영은 하나님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 성 초월성을 의미. 구약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그가 성령을 보내 주신다는 약속. 구원이 예수님에 의해서 말씀하신 것이 복음서와 사도행전, 이와 같은 구원을 설명한 것이 서신서.

 

모든 종교는 예외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모든 종교의 예배는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알지 못하고 예배에 참여하면은 예수 믿는 기쁨 구원이 가져다 주는 유익을 누리지 못합니다. 또 성화가 일어나지 안 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는 것이기 보다는 종교적인 기관이 되어서 여러분들을 억압하고, 또 교회 생활이 굉장히 힘이 들어 집니다. 그래서 참된 예배가 뭔가? 하는 것을 알고, 예배의 삶을 사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오늘은 영으로 드리는 우리 교회 예배 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영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하니까, 케이크 [Quakers] 교도나 아니면은 영성 운동가들이 주장하는 대로 촛불을 켜 놔 놓고, 어떤 신령한 분위기 속에서 자기를 깊이 성찰하는 이런 예배가 영으로 드리는 예배인 줄 알아요.

 

그래서 어떤 종교적인 몰입 현상이나 방언이나 환상을 보는 것이 영적인 예배인 줄 알아요. 그것은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낸 잘못된 예배입니다. 우리가 영으로 드리는 예배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오늘 본문 24절의 말씀을 잘 이해 해야 되요. 24절에 보면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이렇게 선언을 하지요. 우리 교회에도 예배를 드릴 때에 왕이신 나의 하나님 찬양을 하고 나면은 금년의 성구와 그리고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라고 여러분들에게 선포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라 하니까, 하나님은 어떤 신령한 어떤 영적인 것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것은 헬라 이분법적을 생각하는 겁니다.

 

1. 하나님은 영이시라 라는 말은 존재론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속성이 영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다 이런 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 무한하신 분 초월 자이시며, 범접하지 못하는 그 하나님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 신령이란 성령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요한이 하나님은 영이시라 라는 말은 존재론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속성을 말하는 거에요. 그러면 하나님의 속성이 영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다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거룩하다는 것도 신령한 것이 아니고, 구별된 분이다. 우리 인간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분이다 이런 말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은 초월하신 분이다. 우리와 같이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나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사랑이 부족해서 남을 미워하고 정죄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분이 아니라 사랑이 무한하신 분입니다 이런 것이 초월 자에요.

 

여러분들이 정말 예배 자가 되려면은 이 하나님의 초월성과 거룩성 이것에 대해서 만남이 있어야 되고, 알아야 된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다 보면은 어떤 분야에서 우리와 족히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에게는 우리가 경외하는 마음이 들잖아요. 바로 예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정말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은 좋고, 나에게 손해가 되면은 참 싫고 미워 지는데, 우리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아니하고 사랑이 무한대인 것을 성경을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접하면서 야 참 하나님은 이런 분이구나, 범접하지 못하는 그 하나님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런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니까 그저 하나님에 대한 경외의 마음이 없이 예배의 순서에 참여만 한다고요.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이런 부분들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고, 그 다음에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할 때에 옛날 성경 버전은 영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했어요. 그래 신령이라 하니까 이번 번역이 훨씬 더 잘 되었어요. 어떤 신령한 산신령과 같은 존재인 줄 알아요. 이 신령은 성령을 말해요. 그리고 진정 지금은 진리라고 했는데, 어떤 신학자들이나 주석가들은 예수님이라고 하면서 예배는 성령과 예수님이 중심 되는 예배를 드려야 된다라는 말을 하는데, 요한복음에서 이 진리라는 말은 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23절에도 보면은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 이렇게 말한다고,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초월하신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에 의해서 보내어 진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드리는 예배가 진짜 예배입니다. 사마리아교나 유대교는 야훼 야훼하고 뭐 어떤 예배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은 모조품이고 가짜 예배다, 이런 말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모조품 가짜의 예배를 참여하는 자안가? 정말 나는 하나님의 그 존귀하시고 거룩하시고 나와 전혀 내가 감히 범접하고 그분의 생각을 상상할 수도 없는 그분이 내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알아서 이제는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제는 내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중심으로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다스림의 굴복하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가? 오늘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그래서 이런 예배로 들어오실 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억압들이 있거든요. 그것에서 정말 자유하게 되는 거에요. 가난한 게 문제가 되지 않고요, 부유한 것이 여러분들의 삶의 하나의 불행의 요건이 되지도 않고, 죽음조차도 극복할 수 있는 이런 자유의 삶, 그래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보면서 야 저 사람은 어떻게 인간의 희로애락에서 초월해서 사는 자인가, 이런 사람은 그 무엇으로도 불행하게 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거든요. 예수님은 이런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 또 드리도록 우리 가운데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예배라고 하면은 그저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이 자리에 와서 앉아 있고 그 다음에 예배의 순서에 동참하는 것이 예배 보러 왔다 그건 예배 보러 구경하러 온 겁니다.

 

2.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구원의 사건을 우리 속에 재현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예배에 참여해서 세상의 것 때문에 일희일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때문에 행복한 삶의 대한 감사.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하는 마음 그 마음으로 예배가 시작된다.

 

우리 교회에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리는 취지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예배에는 여러분들이 지금 모든 교회들이 비슷하게 순서를 하는데, 처음에는 그 모든 순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구원의 사건을 우리 속에 재현하고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그 동기는 사라져 버리고, 형식만 남아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 형식에 여러분들을 참여하게 하려고, 주일날 교회와야 복 받아, 안 오면은 벌받아, 하나님의 말씀 잘 들으면 복 받아 기도하면은 이루어져, 전부 조건을 갔다 부친 거다 말입니다, 불행이에요. 그래서 그 예배에 참여해서 종교적인 목적은 잘 이루어 가지만은 예수 안 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고요.

 

저는 여러분 정말 이래 목회를 해 오면서 86년도 제가 신학을 했는데, 30년 동안 예배의 형식도 많이 달라져, 이제는 정착을 했다고요, 정말 우리 교회에 드리는 이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 줄 알고, 예배에 여러분들이 참여해서 좀 이제는 세상의 것 때문에 일희일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 세상에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 예수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는 신앙 생활 살다가 주님 만나는 그런 신앙 생활이 되야 되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한번 점검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이런 영으로 드리는 예배를 드리려면은 우리 교회에 들어오시면서 여러분들이 이 현관문을 들어오면은 타일 바탕에 흰색으로 이렇게 줄이 쭉쭉 있습니다.

 

교회당까지 들어오는데, 위에는 천장에 형광등으로 이렇게 쭉 되어 있어요, 이게 뭐냐 하면은 야곱의 사닥다리 루스땅에서 돌베게 배고 자는 그 야곱에게 하늘로서 사닥다리가 연결된 거와 같이 여러분들이 이 예배당에 들어올 때에 지난 한 주간 동안 내 능력이 부족하고 내가 아는 것이 적고, 내가 사랑이 부족해서 정말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습니까? 그래서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온다는 마음으로 들어오라고 해 놓은 거에요. 이제까지 주일날 교회에 오시면서 여러분들이 이런 마음으로 참여해 보았는지요? 예배는 여러분 죽은 예배가 아니에요. 하나님에게 잘 보여서 우리에게 뭔가 소원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고향인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세상에 살다 보면은 찢기고 상하고 정말 이 경쟁 사회에 뒤쳐져서 낙심하고 할 때에 떠오르는 것이 뭐냐 하면은 어머니의 품이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세상에 그런 이야기하데요, 엄마라는 말 세 번 듣고 안 우는 사람은 심장에 돌로 지어 진 거라고, 그만큼 우리 죄인들이 사는 세상 유한한 인간이 사는 세상은 우리가 힘이 드는 겁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얼마나 우리가 불안한 삶을 살아갑니까? 예측을 하면은 더 무서운 것이 인생이지요. 옆 사람을 사랑하고 화해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려고 하는데 내 속에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나에게 언제나 하나님 노릇 하라고 상대방에 대한 내 가치관으로 판단 정죄하기 때문에 얼마나 힘듭니까 여러분.

 

그래서 주일날 우리가 예배에 나올 때에도 하나님 제가 그 사랑의 하나님의 품에 나옵니다, 이렇게 예배에 출발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생애 삽니다. 예배는 이런 거에요. 여러분들이 들어와서도 막 교인들하고 인사하고 이런 것 아니거든요, 여러분 청와대 대통령이 초대해서 갔을 때에 그 초대의 자리에 대통령이 착석하고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는요 그 온 사람들끼리 잡담하고 인사하고 이러는 것 아니거든요, 옛날에 차지철씨는 그런 사람들 탁 봤다가 나중에 마치고 쪼인트까고 이랬다고요, 쪼인트라고 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지요 군대 용어에요. ㅎ ㅎ 여러분들 하나님 앞에 예배에 나올 때에는요 그 마음으로 와 가지고 사람들에게는 가벼운 목례만 하고요 하나님 앞에 집중해야 되요. 

 

예배를 마치고 우리가 한 가족이 된 것에 대해서 박수치며 환영하며 밥 먹으면서 또 밥 먹을 때 지난 주일 이야기 했듯이 줄 서지 말고요 먼저 모여서 이야기 하다가 적을 때가서 줄 서서 밥 먹으면 이런 교재기 있어야 된다고요, 그래 여러분들이 와서 예배가 시작할 때 왕이신 나의 하나님 하고 찬양을 할 때에 참 지난 한 주간 동안도 나는 행하는 것이 실수고 정말 실수투성이고 잘 못된 것이지만 하나님의 의로운 손으로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 나를 다스려서 오늘 이렇게 이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네요. 그 하나님의 왕 되신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하는 마음 그 마음으로 예배가 시작이 되는 겁니다.

 

3. 내 힘으로 살려다가 쥐엄 열매 먹는 삶 속에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나님과의 가로막힌 죄를 해결하심으로 나의 아버지가 되신 것, 그 십자가의 사건이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 것을 받아 드리는 것이 신앙의 고백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사도신경을 고백을 할 때에도 정말 사도신경을 주문이 아니에요, 전능하시고 천지를 만드신 우리 하나님 그분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고백하고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어서 내가 하나님 되려고 하다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됨으로 말미암아 탕자와 같이 내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다가 쥐엄 열매 먹는 그 삶 속에서 예수님을 보내어 주어서 하나님과 나와의 가로막힌 모든 죄를 해결하심으로 다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 것,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그 사건이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 것을 받아 드리는 것이 신앙의 고백이에요. 믿는다는 것은 감정의 작용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그 구원의 사건을 제가 받아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이제는 내 육신이 새롭게 부활할 때에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지식의 제한이 있는 그래서 남들의 말과 대화를 하면은 더 오해가 싸이는 이런 유한한 존재가 아니라 얼굴만 맞대어 봐도 상대방을 100% 알게 되는 그 부활의 첫 열매에 내가 들어갈 줄로 믿습니다. 내가 예수 믿어도 언제나 대화를 하면서 내 중심적이 되어서 상대방의 말에 이해하기보다는 오해를 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뜰어져 가고 외로운 삶을 사는데 그 삶의 끝자락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내 이 육신이 그 모든 죄 안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완전히 얼굴만 대화가 없어도 상대방을 모두 이해하는 마치 어머니는 아이들을 말 안 해도 학교에서 돌아오는 그 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다 아는 그런 만남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될 것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요.

 

그리고 우리가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김씨 이씨 박씨로 나뉘어져서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뭉쳐서 더 가지려고 서로 다투는 세상 속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지으신 한 가족인 것을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이루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 드리고 주님의 재림과 함께 그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에 대해서 고백을 해야 된다고요 사도신경의 고백이 이런 거라고요. 이 고백을 한자에게 목사님의 설교는 여러분들에게 만담 어떤 분들은 아 목사님 한 주일 동안 힘들었는데 와서 교회 와서 목사님의 소리에 좀 내가 Relax 해지기를, 그런 것 아니에요 여러분, 정말 여러분들이 구약의 이 성경의 예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일어났고 그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는 것이 무엇이며 믿음으로 받아 드렸을 때 내 속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변화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의 가치와 그 가치가 우리 속에 교회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 되어지며 실현된 교회가 세상의 무엇이 잘 못되었는가 하는 것을 밝히 보여 주는 메시지의 선포.

 

그리고 여러분들이 헌금을 드릴 때에도 복을 받는 게 아니거든요, 신명기에 보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한 공동체이지마는 세상에 살아갈 때에 인간이 정해 놓은 틀이 있습니다 사회에, 그 틀에 적합한 사람은 성공하고 적합하지 못한 사람은 실패하는 겁니다, 얼마나 웃기는 겁니까 여러분, 자기의 가정에는 그 가정의 틀에 적합한 사람은 성공하고 뒤처진 사람은 낙오자가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가정은 오히려 약한 자를 돌보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너희들이 세상에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러면 안 돼. 그래서 헌금 제도 준거 거든요. 그것도 부정하지도 안 해요.

 

4. 신명기에는 네가 재물 얻는 능력을 네 능력으로 얻었다 하지 말라, 하나님이 너에게 재물 얻는 능력을 주신 것이라 한다.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 하시느니라.

 

우리나라는 그래도 좋은 대학 나와야지 능력을 인정받고, 좋은 집에 태어남이 능력이 인정이 되어져서 많은 것을 소유하고 그러지 못하면 경쟁에서 낙오하고, 이게 우리가 육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세상 속에 우리의 삶이에요, 그런데 너희들 믿는 너희들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하여 너희들의 육체가 변해지기 전까지는 10 1은 내놔, 그래서 그것 가지고 약한 자들도 희망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그게 가족이야, 그래서 신명기에 보면은 네가 이렇게 재물 얻는 능력을 네 능력으로 얻었다 하지마라, 하나님이 너에게 재물 얻는 능력을 주었어, 10% 세금 징수하는 거에요. 그 징수한 것을 가지고 교회가 교회다워져서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에 경쟁에 처졌을 때에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노릇 하는 것을 경험하는 가족의 공동체를 만들고요, 우리가 이렇게 하고 난 뒤에 여러분들이 예배를 마치고 우리 교회 같은데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다짐하잖아요.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서 끊을 수 없다, 이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야 되거든요, 이 험난한 세상에 내가 눈을 부릅뜨고 입을 다물고 어떤 놈이 나에게 비수를 들이댈지 모르고 나에게 들이대 봐 나는 라멕과 같이 77배로 그에게 갚아 줄 꺼야, 이런 무장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이 세상에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은 우리가 되로 받고 말고 갚아 주는 인간이잖아요. 그런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으면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정말 천금이 생길 일이 있더라도 이 일 때문에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게 된다면은 그 일을 선택하지 않는 겁니다.

 

그것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다짐이에요. 여러분 우리나라에 지금 권력을 가지고 있고, 지식을 가지고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그 능력을 가지고 내가 살아가는데, 내가 이 일을 행하면은 또 다른 한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일들의 결과가 나타나면은 그 일 안 하는 거에요, 이게 예배 자의 삶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히브리서에 보면은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고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 하시느니라.

 

매일 나와서 주여 하고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고 뭐 우리가 땅끝까지 복음 증거하고 뭘 하고 교회가 이래야 된다고 해 놔 놓고는 막상 자기의 삶에서는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 만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삶을 산다면은 하나님은 가증한 예배라는 겁니다. 그 삶을 누가 살아갑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아 드리는 자, 예수님이 죽음 이후에 부활의 놀라운 은혜의 삶이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 것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는 자만이 그 삶 살아가는 거지요. 여러분 저도 친구 목사들 몇 천명 모이는 목사들하고 운동도 하고 이래 보면은요, 잔인해요 자족을 모르더라고요, 저는 조금 되면은 그 때문에 좀 안 된 사람의 마음도 헤아려서 감정을 보살펴 주려고 하는데 그게 성령 받은 거에요.

 

5. 죽음도 삶도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라는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나아가면 남에게 눈물 흘리게 하지 않는 삶을 산다. 구역 예배 때 이 Shearing 이 있어야 된다. 주일날 주신 이 말씀이 소화가 일어나야 된다.

 

상대방의 약점이 보이면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그것 죽이고 성취하는 자, 우리 사회가 이런 사람 만들어 내잖아요. 굶주린 이리 때를 만들어 내잖아요 교회가, 왜 내 삶의 안정과 행복이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죽음도 삶도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라는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면은 남에게 눈물 흘리게 하면서 살아가는 일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 믿음만이 포기가 됩니까? 그렇게 살아가려면은 그렇게 살아도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 격려하고 힘이 되는 공동체의 소속이 되야 되요.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어서 교회를 만든 겁니다.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은 나 혼자 살려고 발버둥치고 잔인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걸 우리는 흔히들 Hungry 정신이라 하지요. 여러분 저의 친구도 미국에 이민을 가서 이야기를 하더라고, 매일 뭐 제임스딘 이런 영화만 보니까 미국 아이들은 그저 기성 세대에 반항하는 줄 알았는데, 미국의 힘은요 중산층의 자녀들은 저래 살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나? 할 만큼 아이들이 순종적이고 착하데요, 여러분들은 매일 뭐 학교에서 총기 난사 이런 거만 보는데 대다수의 중산층의 자녀들은 그런 자녀 라더라고요. 그래 이 친구가 미국에 가서 살았는데 그 공원에서 고등 학생들이 데모를 하드래요, 그런데 어른이 그 데모하는 아이들에게 가서 뭐라는 가 하면은 이 공원은 우리 주민들이 쉬는 장소인데 너희들이 여기서 이러면 되냐? 이러니까 이 아이들이 우리가 그런 생각을 미쳐 못했네요, 하고 사과를 하면서 접더라는 거에요. 가정에 소속된 자의 성품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가 정말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가정이 되면은 우리가 이 세상에 그런 사람으로 변모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런 교회 만들자고 10년 동안 예배 마치면서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은총 받은 자여라, 이 찬양 한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 찬양을 그냥 하면 의미가 없어요, 정말 우리 교회가 이 세상의 중산층의 있는 그 중산층의 가정이 뭐냐 하면은 가족을 보호하는 교회가 되어져서 교인들이 행복해 하는 삶을 사는 교회가 되어져서 우리 교회 교인들은 그 가족의 힘 때문에 남 눈물 흘리게 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되겠다, 이런 교회 우리 되자, 이게 예배를 마치고 하는 거에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구역 예배 때 여러분들이 이 Shearing 이 있어야 되요. 주일날 주신 이 말씀이 소화가 일어나야 되요. 똑 같은 설교를 들어도요 다 달리 들어요, 인간은 제한된 능력, 인간의 언어라는 것은 공간의 제한 속에 있기 때문에 전달하는 순간 변질이 일어납니다. 여러분들이 듣는 순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 말씀이 오해가 일어나요, 그게 목사의 한계에요. 그런데 구역예배 때 여러분들이 각자의 설교의 말씀을 쭉 들으니까 자기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든 것들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말씀이 나에게 영혼의 양식이 되어져서 내가 어떤 것들을 바라보는데 그 바라보는 가치판단과 내 삶의 선택에 그 말씀을 따라서 살게 하는 힘을 얻는 거에요. 수요일 날 저녁 기도회 때 나와서 뭐해야 되는가?

 

6. 육을 가진 인간의 한계 때문에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해야 된다. 성화라는 것은 더욱 하나님의 모습이 우리 속에 드러나야 되는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요한이 이 말씀을 왜 했는가 하는 의도를 이해 하려고 듣는 순간 요한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이 비로서 들려 진다.

 

우리가 그렇게 알지만은 육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하나님에게 도우심을 구해야지요, 그게 수요 기도회에요 저녁에.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점점 성화 되어져 가야 되요. 성화라는 것은 더욱 하나님의 모습이 여러분들 속에 드러나야 되는 거에요. 우리 교회의 예배가요 이런 모이는 것이나 이런 어던 형식은 최소화 하면서 여러분들이 그 말씀에 의해서 여러분들의 속에 하나님의 영이 점점 하나님을 닮도록 잘 짜여져 있는 거에요. 그런데 이걸 알지 못하고 여러분들이 이 속에 그냥 들어오기만 하면은 성화가 일어나는데 들을 기회도 없고 없어, 여러분 수요일 날 기도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왜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거든요, 하나님과의 올바른 대화가 있으면은 하나님과 아주 친밀한 관계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도도 꼭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화법하고 같은 것 같아요. 저는 우리나라 국회나 모든데 가 소통이 불통이 되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하면은 화합이 일어나지 않는가 하면은 어릴 때부터 대화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 주장을 하는 자아에서 자기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능력만 기르는 거에요. 그러니까 관계의 회복이 안 일어나는 거에요. 여러분 헬라 철학이나 이 모든 것들을 보면은 대화법을 굉장히 중요시 여겨요. 우리나라 대통령이 불통이다 그것 별로 중요한 것 아닙니다.

 

지금부터라도 여러분들이 대화법을 배워야 되요, 그래야 모든 사람들과 관계가 좋아져요, 대화는요 잘 듣는 데서부터 시작을 해요. 말잘 하는 게 대화 잘 하는 게 아니에요. 잘 듣는다는 것은 뭐냐 하면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말을 듣는 거에요. 어떤 사람은 그저 잘 듣기는 듣는데, 전부 자기 입장에서 들어요. 그러니까 하나도 그 말이 들어오지 안 해요. 설교를 들을 때에도 전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전통과 자기의 경험에 의해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니까 들어오지를 않는 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도 요한이 이 말씀을 왜 했는가 하는 의도를 이해 하려고 듣는 순간 요한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이 비로서 들려 지는 거에요.

 

설교를 들을 때에도 목사님이 왜 저런 말씀을 하는가 하는 의도를 여러분들이 잘 파악해서 들을 때에 그 말씀이 귀에 들어오는 거에요. 그리고 여러분 말을 할 때에도 뭐해야 되는가 하면은 제일 먼저 그렇게 듣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감사하고 칭찬이 먼저 있어야 되요, 이게 대화법입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사회생활 잘 하게하려면은 이 훈련 어렸을 때부터 시켜야 됩니다. 이 세상에 여러분 선과 악이 쫙 가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아디아포라 라고 하는데요 제가 경험한 것은 정말 선인도 51% 51번 선한 생각하고, 49번 악한 생각합니다. 정말 악인도 악인은 51번 나쁜 선택하고 49번 좋은 선택해요. 이 세상에 어떤 인간이 100% 선과 100% 악이 있습니까?

 

그래서 상대방이 이야기 할 때에 왜 싸움이 일어나는가 전부 관점의 차이거든요, 그래서 내가 내 주장이 이렀지만 저 사람이 이야기할 때에 이런 거구나 해서 그 사람의 주장의 옳음의 대해서 공감해 주고 칭찬해 주고 감사한 것을 먼저 말해야 된다고요, 그리고 그 사람의 옳은 이야기에 대해서 내가 잘못 생각한 것에 대해서 회개하고 뉘우침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내 주장을 하는 거에요. 기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러분들이 주일날 주신 이 말씀을 가지고 수요일 날 기도할 때에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 들어가려면은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와 다른 정말 진리 되신 그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온전하심을 찬양해야 되요 그게 기도의 시작이에요 이게 많아져야 되요.

 

7.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과 인자와 선하심 때문에 나를 용납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 사랑이 이렇게 표현 된다, 나의 한계와 나의 이런 것들 잘못됨을 하나님 앞에 자백해야지요. 그리스도가 너희에게 성령을 보내어 줄 때에 자녀, 늙은이, 젊은이에 대해 요엘서에서는 각각 예언을 했다.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사람은 기도에 감사가 없는 거에요. 왜 없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으로 듣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수없이 그렇게 설교했지마는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전통이 탁 자리잡으면은요 절대로 안 들어가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에게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거에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들이 감사해 보세요, 이제는 내가 잘나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과 인자와 선하심 때문에 나를 용납하신 그 하나님 생각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사랑이 이렇게 표현 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보면서 나의 한계와 나의 이런 것들 잘못됨을 하나님 앞에 자백해야지요.

 

하나님 이런 것 정말 잘못 살았습니다, 내 생각이 옳은 줄 알았습니다, 내가 믿는 게 진리인 줄 알았습니다, 진리를 믿어야 되는데, 그러면서도 나는 항상 의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나를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거에요. 주님 내 지식으로 알 수 없으니까 나에게 지혜를 주어서 이 말씀을 받아 드릴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다스려 주시옵소서, 이런 삶을 살아 갈수 있도록 우리 교회가 더욱 더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인하여 이제는 힘있는 자들이 그 힘을 가지고 미가서대로 하면은 밤새 궁리하다가 날이 밝으면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가지고 악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재벌들이 청년들을 바라볼 때에 자기 손자와 자식과 같이 여겨 질 수 있는 이 복음이 우리 사회에 편만 해져서 죽어서 가는 천국만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오늘 요한복음 4장이에요. 예수님은 모세가 주는 물은 너희들이 다시 목 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텐데 성령을 받으라 그러면 여러분들 속에 이런 게 아니에요, 요한의 입장에서 보면은 예수님은 성령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시는 분이에요. 왜 요엘서 2 28절에 보면은 요엘이 요엘 시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민이 잘사는 국민소득이 높은 시대였는데, 지도층은 잘살고 종교인들은 잘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허덕이며 내일의 희망이 사라진 시대였다고요, 그때에 하나님께서 너희 세상을 심판하리라, 그 심판이 너희에게 곧 구원이 되는데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너희에게 보내어 주어서 그 그리스도가 너희에게 성령을 보내어 줄 때에 남종과 여종에게 물 붇듯이 보내어 주면은 너희의 자녀들은 장래의 일을 말하게 될 것이며,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될 것이며, 너희의 젊은이는 이상을 보게 될 거다. 이 예언이 있었든 거에요.

 

이 예언이 요엘은 어떻게 이루어 질지도 모르고 써 놓았지마는 요한은 예수님이 오셔서 사도행전 2장에 성령으로 인하여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의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구약의 그 말씀들이 예수 안에 이렇게 이루어졌군요 이걸 안거에요. 구약은 하나님께서 죄인 된 세상을 심판해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줄 것에 대한 예언이고요,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그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그리스도로서의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신 것을 말씀하는 것이고요, 서신서는 그것을 설명하고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그래서 이 요한복음 복음서를 보면은 요엘서 2장에 말씀하시고 난 뒤에 예수님은 누가복음에 뭐라는 가 하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것은 여러분들이 믿으나 안 믿으나 사실이에요.

 

8. 그리스도가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온 구원의 사건과 같이, 성령이 이 지상에 강림하는 놀라운 구원의 사건이다. 바울이 구약의 말씀이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 이런걸 알았다. 가족은 내가 힘들고 무너지는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가족이다, 교회는 그런 것이다.

 

제가 마치 어릴 때에 내 아버지는 나를 사랑 안 해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아버지는 자기의 심장이라도 나에게 줄만큼 사랑했든 아버지거든요. 그걸 받아 드리나 안 받아 드리나 따라서 세상이 완전히 새롭게 보이거든요, 예수님이 그 구원을 우리에게 이루셨어요. 그러나 그 구원을 받아 드리게 하시는 이는 성령님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아버지가 약속한 것이 임할 때까지 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라, 그 약속을 믿고, 사도행전 1 14절에 제자들과 어머니 마리아와 여자들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에 오순절에 하늘로부터 불 같은 성령이 바람같이 임하였습니다. 각 사람위에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온 구원의 사건과 같이 성령이 이 지상에 강림하는 놀라운 구원의 사건이에요. 그 성령님이 이 땅에 오자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에 2장에 보면은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에게 필요를 나누어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니까 온 백성의 칭송을 받으니까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시리라. 이 성령의 강림으로 인한 예수 그리스도가 보내어 주시겠다고 하는 그 성령이 이 땅에 오셔서 이제는 모든 사람이 김씨 이씨 박씨로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 안에서 가족이 되어져서 놀라운 유무상통의 공동체가 이루어진 거에요.

 

이걸 보면서 바울이 구약의 말씀이 그런 말씀이었구나, 예수님이 이루신 이런 구원이었구나, 이걸 안 거에요. 오늘도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든 재산을 팔아서 목사님 발 앞에 갖다 놓고 나누느냐 아니에요,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이단이라 말입니다. 성경은 뭔가? 그것을 왜 구원의 사건으로 봐야 되는가 하면은 이런 것 하고 같아요, 여러분 우리 교회에 목회의 기조를 잘 이해하셔야 되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예수 믿는 것은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로 상대방을 받아 드리는 겁니다. 우리 교회 등록하는 것은 우리 교회 회원이 아니라 가족으로 받아 드리는 겁니다 라고 할 때에 어떤 분은 목사님 맨날 가족을 뭐 이야기하는데 뭣이 가족입니까? 목사님의 말을 좀 들으세요. 자기 관점에서 고집 부리지 말고요.

 

여러분 가족은 보세요, 평소에는 가족은요 어떨 때는 힘들어요 같이 산다는 게 형제지간 이지마는 저도 없는 집안에요 형제 많은 집에 나오니까 저 형만 없어도 내가 새 옷 입을 건데 저것만 없어도 내가 이것 다 먹을 건데 그러지만 언제 가족이 피눈물보다 진해 라는 것이요 막다른 골목에 달했을 때 그때 가족의 힘이 나타나는 거에요. 사람들은 내가 필요할 때는 떠나고 필요 없을 때는 찾아오지마는요 잘 나갈 때는 나를 찾아오고 내가 외로울 때는 나를 떠나는 것이 사람 이지만은요 가족은 내가 잘 나갈 때는 비켜섰다가 내가 힘들고 무너지는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가족입니다. 교회는 그런 겁니다.

 

9. 우리 인간과는 전혀 범접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그 구원을 받아 드림으로 말미암아 그분 앞에 내 삶을 의탁해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사회적인 그러한 생각에서 내가 매여 있는데 거기에서 노임을 받는 것.

 

여러분들이 문제가 없고 잘 나갑니까? 교회에 생활하는 것이 짐이 되야 됩니다. 언제 우리 교회를 맛보는가? 세상사는 사람들이 외면할 때 저는 한번도 외면한 적이 없습니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립니다. 예수의 힘은 그때 느껴 지는 거에요. 여러분 가족은 어린 아이들과 어른을 중요시 여겨요, 가족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 능력이 부족해서 그 틀에게 내가 달리는데에 그 기준이 부족해서 경쟁에서 뒤처질 그때에 가족의 힘이 나타나는 거지요. 우리 교회 한번 보세요, 직장 잘 다니고 사업 잘하고, 이런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서 좀 부담스럽고 짐이 되야 되요, 떠나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지가 그러는가 한번 두고 보세요. 교회는요 아이들과 어른들이 중요해야 됩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틀에게 즉응이 약해서 처지는 경쟁에 처지는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에 앉아야 되요. 제가 여러분 우리 교회가 성령님이 임하셔서 가족이라는 말이 그런 말입니다. 오늘도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Quakers 교도들이 들이는 그런 예배가 아니에요. 템풀스테이에서 풍경 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묵상해서 내가 어떤 종교적인 엑스타시 현상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인간과는 전혀 범접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그 구원을 받아 드림으로 말미암아 그분 앞에 내 삶을 의탁해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사회적인 그러한 생각에서 내가 매여 있는데 거기에서 노임을 받으며,

 

세상에는 힘있는 자를 소중히 여기고, 내가 능력이 있고 힘이 있을 때는 나한테 와서 수 많은 사람들이 인사하고 찾아오지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그 순간에 찾아오는 가족과 같은 그러한 삶의 예배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가도록 주일날 예배를 드릴 때마다 그저 덜렁 덜렁 오시지 말고요, 한 주간 여러분 내일 일을 알지 못해서 얼마나 불안하게 살아왔습니까? 위태 위태 하게 살아왔잖아요. 안다고 해도 정리 해고되는 것을 안다고 해도 내가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 공포 속에 살아왔잖아요. 그 차디찬 세상입니다 어디에서 위로 받겠어요, 우리를 창조하셔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신 그 하나님의 품 안으로 주일날마다 한걸음 한걸음 오면서 여러분들의 마음이 치유가 되어지고,

 

여기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다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의 가치의 삶, 깨달아서 구역예배를 통해서 더욱 그러한 삶을 서로가 격려하고 그런데 우리가 알면서 못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수요일 날 와서 하나님 알지만은 행할 능력이 내 속에 없습니다, 힘 주시고 나 혼자 하도록 아니하고 주님이 몸 된 교회를 세워 주셨는데 우리 교회가 이제는 더 이상 세속의 어떤 집단과 같은 인간의 동호회나 향우회가 아니고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가 회복이 되어져서 우리가 쉼을 얻다가 주님의 재림의 그날 남들이 싸우지 않는 그 고난의 싸움을 살아가서 주님 영접받는 새 힘을 얻는 이런 예배가 끊임없이 여러분들 속에 시작 되어져야지요.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여러분들에게 도전 받으라고 하는 거에요.

 

목요일 날 목사님들 성경 공부 할 때에 목사님은 우리하고 생각이 좀 다르네요, 여러분들이 세상사는 사람들하고 이야기 할 때에 어떻게 우리하고 생각이 이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교인이 되야 되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신앙의 연조가 더해 갈수록 더욱 더 여러분들 속에 하나님의 냄세가 나는, 이번 주에도 참 행복한 거는요 참 우리 장로님 된 분들이 참 자기 맡은 사람들 이렇게 하면서도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요, 또 어떤 분은 휴가까지 내 가지고 같이 갔다 왔는데 돈이 있는 분은 자기 돈 가지고 없는 사람은 저한테 장로님들 이야기 하세요 목사님 제가 이번에 격려 해주고 싶은데 이러면 교회 재정이든 딸라 빚이든 내 가지고 그렇게 우리 행복하게 사는 거에요. 이 믿음 더욱 굳세지는 귀한 주일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창녀의 소득과 개같이 벌은 자의 소득을 받지 아니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성도들 일보다는 사람이 눈에 밟히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임을 압니다. 남의 눈물 흘리게 하지 아니하며 내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 경쟁이 심한 이 사회 속에 얼마나 힘든 일임을 압니다. 주의 재림이 없고 주께서 보내어 주신 성령님이 이루신 교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힘들고 타협 하기다 쉬운 때 입니다, 그러지만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에 우리가 망하지 아니하고 오늘도 우리가 생존함을 아침마다 새롭기에 더 많이 가지지 못해서 발버둥치는 세상 속에 구분하여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열납해 주시고 우리 가운데 어린 아이들과 연세 드신 분들과 경쟁에서 자질이 부족해서 낙오된 자들에게 새 힘을 주는 복된 교회의 방축을 잘 쌓아 나갈 수 있도록 은혜 주시고 강한 자 부한 자들 손을 오물이지 않도록 주님 만날 날이 멀지 않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사회가 부가 한쪽으로 쏠려 나가는데도 교회는 그것을 복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그 속에 포함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가짜의 복음을 파괴할 수 있는 연약하지만 강한 교회를 세우는데 주님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한 주간도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의 생애가 되기를 소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김씨 이씨 박씨 흑인 백인 남자 여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극한적인 대립으로 공멸해 가는 세상 속에서 없어져야 내가 살 것 같은 그가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가족임을 알도록 자신이 친히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 그 무한하신 은혜와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우리 모두가 영원한 가족임을 알도록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창조하신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어 주어서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 하고 자신의 모든 생애를 통해서 우리가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하나님을 계시해 주시고 그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을 받아 드렸습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하고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구나 라는 평가를 받으며 사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들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