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종교적 스톡홀름 증후군(요한복음 12장 36-43절(1-50절)주일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6. 8. 20. 08:16

 

 

 

담임목사 김종웅

 

   

종교적 스톡홀름 증후군

요한복음 12 36-43 (1-50)

2016 08 14일 주일 낮 예배

                                                                                                                                                        No. 276

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9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4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아멘

 

●정치적 스톡홀름 증후군과 종교적 스톡홀름 Stockholm 증후군과 아버지 Complex, 요한의 증후군에 대한 해설,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영광을 얻는 것이고, 이 세상의 왕에 대한 심판이고 백성들에 대한 구원이라고 한다, 하나님과의 대화의 기도.

 

1973년도 8 23일부터 28일 약 5일 동안 스웨덴의 수도 Stockholm에서 은행 인질 강도가 일어났어요.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은 그 인질범들을 잡아서 재판장에 세웠을 때 인질들이 그 인질범을 옹호하고 변론하는 그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우리는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Stockholm 증후군이다, 라고 말을 해요, 분명히 자기에게 위협을 강한 인질범들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것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가, 여러 심리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하고, 또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이렇게 새겼는데 여러분 우리 이모든 것들은 왜 그런가 하면은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1.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의 존재인 하나님과 함께해야 되는데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에게는 불안이 있다. 인간의 욕구에는 가장 중요한 안전에 대한 욕구이다. 불안해서 의존하려는 것이 있다. 큰일을 하고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을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여러분들이 어떤 인간이나 하나님에 대한 정의를 성경적으로 해야되요. 우리가 유한한 존재 제한된 존재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우리는 모든 것이 부족한 거에요. 여러분 지식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 사람은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간 사회의 오해가 일어나는 겁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우리는 사랑이 우리 속에 부족해요, 우리는 사랑이 부족해서 미워하는데 자꾸만 사랑하라 하니까 짐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수명에서도 생명에서도 모든 것이 제한된 존재에요. 반면에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에요. 우리가 이런 제한된 존재들은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의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과 함께해야 되는데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에게는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면은 불안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은 다 불안해요, 그것이 인간의 실존이고 그 이유는 우리가 제한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이야기해요 부자들은 아무 걱정도 없고 아무 불안이 없는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가지고 있거나 많이 알면 알수록 더 불안한 것이 인간입니다. 왜 자기의 제한된 능력을 가저보고 알게 되면은 깨닫게 되거든요.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요 어떠한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불안해 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 살다 보면은 조그마한 위기만 와도 불안한 것은 그만큼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구에는요 가장 중요한 욕구가 안전에 대한 욕구입니다.

 

이 심리학적으로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뭐 우리 인간의 욕구들이 많이 있잖아요, 1차적인 생리적인 욕구, 뭐 우리 배설의 욕구, 그 다음에 식욕, 성욕 이런 것들 그보다 좀 더 높은 차원은 자아실현의 욕구,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자신들이 다 해 준다고, 뭐 여러가지 욕구가 있지만은 학자에 따라서 여러 단계가 있지만은 여러분 가장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가장 기본이 뭐냐 하면은 안전에 대한 욕구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안전을 갈망하게 되어 있어요,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은 그 안전에 대한 욕구 때문에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나 어떤 존재에 대해서 사람들은요 의존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것이 스톡콜롬 증후군이라고요, 자기가 인질에 잡혀서 가장 위기의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인질범을 잘 달래고 그에게 잘 보여야 자신의 생명이 보존된다고 생각 하는 욕구 때문에 그 편을 드는 거에요. 이런 것들이 여러분 그러한 어떤 범죄 상황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는 정치적으로도 많이 있다고 봐요, 좀 이런 것들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깨달아야 되요. 그래서 정치인들은 자기를 신뢰하고 표를 얻으려고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해요. 옛날에 우리가 그랬잖아요, 북한의 위기를 북풍이라 그러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은 지금 대통령 바꾸면은 세상이 어떻게 될지 미래가 알지 못하여 불안하기 때문에 표를 찍는 거지요.

 

정치적인 성향에도 보면은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보수 성향이 있데요, 그 이유는 뭐냐 하면은 바꾸면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 때문에 안전에 대한 욕구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는 거에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잘 이용해서 욕심을 채우는 것이 인간의 죄성 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지도자들은 사람들 백성들이 자기를 믿도록 학벌도 속이고 자기가 행한 일을 과대 평가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를 신뢰하게 만든다고, 왜 그래야지 나를 따르고 나를 세워야만이 네가 불안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이에요. 중요한 것은 이런 잘 못된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요 어떤 큰 일을 하고,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을 추종하는 경향이 있어요.

 

2. 성경에는 의인은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다. 이기적인 욕심을 채워 나가는 해롯왕과 그와 결탁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이들이 추구하는 바 성전을 주님은 무너트리고 3일만에 자신은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여러분 이세상에 성경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의인은 없고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어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신앙 생활을 제대로 알면은요 그렇게 쳐다볼 사람 없습니다 사람은 똑 같아요, 그런데 인간은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자꾸 자기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부각시키려고 한다고요,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교회에도 있습니다, 모든 종교적인 스톡홀름 증상이 있다고요, 여러분 그래서 교회에서도 뭔가 하면은 또 다른 종교에서도 여러분 인간의 어떤 종교적인 스톡홀름의 현상을 만들어 내는데 그게 뭐냐 하면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고요.

 

네가 그러면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잘 못돼, 잘 달래고 잘하면은 너를 안전하고 보존하게 해 줄꺼야. 이러한 신앙을 셋팅하게 되면은요 그 다음에 그러한 신앙을 샛팅하게 된 자의 손가락을 따라서 사람들은 움직여요, 그래서 위대한 종교적인 업적을 이룬다고, 여러분 이런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간의 실존의 모습이에요.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에도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그 유대인들을 불안하게 해서 뭘 만들어 내는가 하면은 정치가들과 결탁해서 위대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을 해요. 그래서 1세기에 여러분 그 역사가들은 이런 말을 기록을 해 놓고 있어요, 뭐라는 가 하면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지 못한 자는 이 지상에서 아름다운 건물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게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아름답고 멋있는 성전, 예수님 당시에 46년 동안이나 지어 온 그 성전을 예수님은 허물어 버리려고 오셨다고 그랬어요.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이해 해야 되요. 바로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다 또 이런 위대한 일을 해서 이런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면은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고 여러분들의 삶을 안전하게 할거다. 하는 그래서 자신의 모든 이기적인 욕심을 채워 나가는 해롯왕과 그와 결탁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이들이 추구하는 바를 주님은요 무너트리고 3일만에 자신은 성전을 건축하겠다 이랬든 거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요 이런 감정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 잘 믿었더니만 복 주고, 못 믿었더니만 벌 준다 이런 신앙이 사람들에게 셋팅이 되어 있으면은 종교적인 위대한 업적은 이루지만은 성경이 말하는 진리 안에서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가 없다고요, 오늘 여러분 이 말씀 요한복음 12장의 말씀이 바로 그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스톡홀름 증후군을 없게 해 버리고 진리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가져오신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이 12장의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내용을 보면 뭐냐 하면은 잘 알잖아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그 집이 베다니[Bettany]에 있었다고요, 그 베다니에 예수님이 그 집에 들어갔는데 나사로도 앉아 있었고, 마르다는 일을 하고 있었고,

 

3. 마리아는 나드기름을 가지고 예수님 머리에 바른다고, 가룟유다가 300대나리온의 큰돈을 허비하느냐고 하니까 예수님은 놔두어라 나의 장사를 준비하는 거라 했다,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죽음 장례는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이 우리 가운데 드러나는 것이다.

 

마리아는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했는데 거기에는 그런 것이 없이 오늘 본문에는 뭐냐 하면은 그가 나드기름을 가지고 예수님의 머리에 바른다고, 그러니까 가룟유다가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300데나리온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야 되지 않느냐는 거에요. 300데나리온 300x50,000원 해 보세요 얼마인가, 그 큰돈을 왜 그렇게 허비하느냐, 라고 말을 할 때에 예수님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놔두어라 나의 장사를 준비하는 거다, 내 장례를 준비하는 거다 그랬어요,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을 때에 제가 늘 본문을 읽으면서 뭐라는 가 하면은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캣취[Catch]를 해야 성경을 제대로 읽은 거라 한 거에요. 문자적으로 믿는 게 아니에요.

 

이걸 가지고 하나님 앞에 그 귀한 나드기름을 부으니까 주님이 그를 축복해서 어디에나 그의 이름이 남게 되고 하나님 복 준다, 이래 버리면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하고는 다른 종교적인 목적을 이룰 수 있어요. 우리는 그 동안 그런 신앙이 우리 속에 너무 많이 지배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는 제일 귀한 것 드려야 되고, 옛날에는 헌금도 다려서 드려야 되고, 그래서 오늘날 이래 한국이 이렇게 종교적인 위대한 업적은 이루었어요, 그런데 그 속에 정말 구원이 있는가, 이제 그런 것들이 먹히지 아니하니까 교회에 점점 비어져가는 현상이 생긴다고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이 바로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과 같이,

 

우리 모두는 유대교와 같은 하나님을 믿지 말고 유대교가 믿는 그 하나님 믿지 말고, 유대교와 같은 신앙 생활 하지 말고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고 예수님의 장례를 우리가 받아 드리고, 신앙 생활하라 이런 말이에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고 그 장례에 우리가 동참하는 게 뭔가 하는 것을 알아야 올바른 신앙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것 하고 난 뒤에 종려주일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오신다 하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 삼으려고 하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이스라엘의 왕이여 라고 고함을 쳤다고요, 그런데 요한은 뭐라는 가 하면은요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그 의미를 알았다고 말하는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 이 모든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죽음 장례는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시는 거다, 그럴 때에 여러분들이 영광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본질이 우리 가운데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계시된 그 하나님의 영광의 본질을 우리가 보는 것이 영안이 열려지는 것이고,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신앙이고 그런 사람에게는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놀라운 은혜의 삶이 시작이 되는 거에요. 자 이말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을 할 때에 예수님의 그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이 십자가 매달릴 때 얼마나 아팠을까 왠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여러분 이러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십자가를 보는 게 아니에요.

 

4. 십자가에 계시되는 그 하나님의 본질을 너희에게 보여 주러 오셨다 라고 하는 것이 12장에 있는 말씀이고 요한복음의 말씀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신령한 것이 아니고 인간과 구별되었다, 인간과 다르다 이런 말이다.

 

오늘 요한복음이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은 그 장례는 예수님이 왜 오셨는가? 십자가에 죽으러 오셨어요. 왜 십자가에 죽으시러 오셨는가, 유대교가 구약성경을 잘 못 이해 해 가지고 정말 교인들을 학대해서 위대한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데 이것은 아니라는 거에요. 왜 짓는가? 인간의 연약한 심성을 위한 스톡홀름 증후군이 나타나서 그런 일들을 할 때 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고 여러분들에게 십자가에 계시되는 그 하나님의 본질을 너희에게 보여 주러 오셨다 라고 하는 것이 12장에 있는 말씀이고 요한복음의 말씀이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 잘 믿으면 복 받고, 못 믿으면 벌 받는다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연약한 불안을 건드려서 인간이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안전에 대한 욕구를 충족해서 자신이 이야기하는 종교적인 업적을 이루어서 자신의 어떤 목표를 세워 나가려고 하는 잘못된 거에요.

 

여러분 십자가는 뭔가?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이 하나님의 본질이 우리 가운데 나타난 것이고, 그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의 신앙은 어떤 모습이 되어지고, 그랬을 때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되는가 이런 것 아셔야 되요, 이것 어려운 것 아니에요,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는 또 우리는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이라고 할 때에 그 거룩 이라는 것은 신령한 게 아니에요, 어떤 분들은 목사님이 화를 내면은 목사님이 신령하지 못하다고 하는데, 예수님은요 화를 얼마나 잘 냈는데요, 베드로도 화를 잘 냈는데,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욕을 예수님은 입에 담지 못하는 욕을 해요. 그런데 그분을 거룩하다고 그래요.

 

거룩하다는 것은 신령한 것이 아니고 인간과 구별되었다, 인간과 다르다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할 때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할 때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아버지 하고는 구별된 아버지다, 우리 인간과는 구별되신 분이다 이런 말이에요. 그 구별된 것이 어디에서 나타났는가 십자가에서 나타난 거에요. 우리 인간은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인간은요 저는 저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죄인이라는 것이 언제나 가치 있는 것에 투자를 하고, 가치 있는 행동을 하려고 그래요. 왜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행한 것에는 반듯이 그것에 따른 효과나 보상이 나타나는 그런 일들을 하려고 해요 이게 인간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참 힘이 드는 거에요. 회사에 들어갔을 때에도 처음에는 내가 새로운 지식을 가지가 들어갈 때 내 가치를 인정하지만은, 세상이 변해서 또 다른 새로운 지식을 가지고 오면 내 가치가 떨어지니까 나는 밀려난다고, 이게 인간의 슬픔이에요. 교회에도 그런 것들이 얼마나 비일비재 합니까,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은 그런 나하고 다르더라고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 여러분 우리 살아 보면 참 인간만큼 가치 없는 것이 없는 것 같아요. 그건 내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을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개는 밥 주는 주인을 알아보는데요, 사람은요 몰라봐요.

 

5.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계시되는 그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으시는 홀로 완전하신 분이다, 그래 하나님은 절대자시다. 십자가에 계시되는 하나님은 인간과 어떤 것도 공유되지 않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에게 모든 가능성을 바라보는 순간 구원이 나타난다.

 

어릴 때 아버지 아버지 하고 따르든 것도 크고 나면은 지 혼자 큰 줄 아는 게 인간이에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우리를 인도했는데 우리는 그 주인을 알지 못해요, 그런 무가치한 자를 위해서 하나님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아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이런 것들을 요구한다는 것은 종교인들이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거지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계시되는 그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안 해요. 왜 그분은 홀로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 하나님은 절대자이지요.

 

그런 하나님이 그 쓸모 없는 자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셨어요. 그게 십자가에서 계시되는 하나님이에요. 그 십자가에 계시되는 그 하나님은 인간과 어떤 것도 공유되지 않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에요, 이 하나님 알라는 거에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 하나님 안 받아 드렸어요, 왜 그 하나님은 인간을 불안하게 하지 않거든요,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거든요, 인간이 따르고 존경하려면은요 어떤 자를 따르는가? 앞에 내가 이야기 했잖아요, 두려움과 불안을 조성하는 자를 신뢰하게 되어 있어요. 이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스톡홀름의 증후군이에요. 정치에도 있고 종교에도 있어요.

 

그래서 한국에도요 교인들을 불안하게 하고, 그 안전이 하나님께 있다고 하는 교회는요 사람들이 많이 모여요. 그래서 모인 사람들로 인하여 큰 일을 해요, 그러면 그 일을 한 사람은 위대하게 보여서 그 사람 말 잘 들으면은 내 삶이 보장될 것 같이 생각해서 더 모여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그 하나님을 말하면은요 사람들은 모이거나 따르지 안 해요. 그래서 이사야의 말에 오늘 요한이 인용하는 거에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그 뒤에 보면 뭐라는 가 하면은 이 세상에 그래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하면서 그 영광이 뭐냐 하면은 십자가의 매어 달림이고,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한 알 그대로 있으면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말하면서 뭐라는 가 하면은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이 임금이 쫓겨나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계시 해주신 그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드시고 우릴 존재하게 하시고 오늘날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그 하나님을 알게 될 때에 우리가 의존하였든 인간의 지도자들이 쫓겨나는 거라는 거에요. 그래서 인간이 만든 어떠한 업적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거에요. 그래서 뭔가 하면은 내가 땅에서 덜리면 모든 사람이 내게로 이끌리라.

 

땅에서 들리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어달릴 때에 그 놋뱀을 보듯이 쳐다보는 것은 인간에게서 가능성을 찾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모든 가능성을 바라보는 순간 구원이 나타나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스톡홀름 증후군에서 우리는 자유 하게 되는 거에요. 여러분 이런 자들은 어떤 목회가 진짜 목회인가, 저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서 제가 목사가 되고, 오늘날까지 신영광 교회 백석대학 교회, 여기 왔을 때에 교인들을 이용해서 어떤 목적을 이룰 종교적인 목적을 이루는 목회가 내 속에 순간 순간 유혹이 오지만은 그 것 접는 것 했어요. 뭐해야 되는가 여러분들 내가 지향하는 바를 행하려면은 여러분들을 불안하게 하면 되요.

 

6. 어떤 것도 억지로 하는 것이나 인색한 마음으로 하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게 아니다, 예수님은 46년 동안 화려하게 짓는 성전을 보면서 그 속에 억압과 학대 속에 이루어진 교인들의 피와 땀을 보신 것이다.

 

그 불안의 요소를 하나님으로부터 해결할 수 있다고 하면은 이룰 수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들 속에 학대가 일어나요. 학대는 뭐냐 하면은 내 능력에 지나치게 헌신하게 된다 이말 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멋있어져요, 목사는 유명 해져요, 교회가 유명 해지는 것이 아니라 쉼과 회복이 유명 해져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는 거에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나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그 나를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이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면은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안 해요. 내게 주신 내 능력 마땅히 생각해야 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고, 주님을 섬기게 되요.

 

여러분 우리 교회 이런 신앙 생활 하려고 우리 교회 등록하셔야 되는 거에요. 큰일 하려고 하면 안 되요, 하나님만 크시면 되요. 목사님의 능력 필요 없어요, 여러분들의 능력이 필요 없어요. 하나님의 능력이면 충분해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 돈 많이 벌어서 많이 한다 욕심이에요, 돈이 없으면 내 자리를 지킨다, 이 자리를 지킬 때도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지켜야 되요. 어떤 것도 억지로 하는 것이나 인색한 마음으로 하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게 아니에요 정말 우리 이런 신앙 생활을 하면서 같이 걸어가 보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있는 분들은 시간을, 좀 여유가 있으면 좀 더, 은혜 앞에는 투기가 일어나지 안 해요.

 

얼마나 많은 신앙의 투기가 있는지요, 그 투기를 가지고 큰일을 행하면은 위대하다 생각하는 잘못된 관념이 참 많아요. 그런 유대교에 예수님은 46년 동안 화려하게 짓는 성전을 보면서 그 속에 억압과 학대 속에 이루어진 교인들의 피와 땀을 본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자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십니다. 이것은 인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거에요. 우리가 가장 하나님의 사랑의 가까운 엄마에게도 자식을 볼 때에 누구 자리에요 그래서 싹수가 있는 자식에게 투자하려고 해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잖아요, 우리가 자식에게 왜 서운해요? 투자했는데 거기에 따른 반대급부가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그 아버지 엄마하고 다른 하나님 아버지 제가 보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제가 그래 이야기하는 거에요. 배반할 줄 알면서 키우는 것이 자식입니다, 배반할 줄 알면서 목회하는 것이 목회여야 된다고요. 왜 우리 그 길 걸어가야 되는가,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우리 성가대에도 마찬가지에요, 대학 교회에서는 성악 교수가 3명 있었습니다, 작곡가 성악가 그것도 다 유학 갔다 오고, 지휘했습니다 성악 교수가 성가 대원이에요, 음대 성학 전공하는 얘들이 열명이 앉아 있어요, 40명의 성가대가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겠어요, 그것 받으시는 하나님 아니에요. 그 학생들에게 장학금 이라는 명목으로 성가대 세웠어요.

 

7. 내 몫에 태인 십자가만큼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귀한 나드향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머리 위에 장례 준비는 그런 것이다. 무엇이 귀한 줄 알아야 된다.

 

하나님은 자원하고 기쁜 마음, 우리의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않으려고 내 모습 이대로를 받으시는 그 하나님 앞에 행하는 그것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제가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중심을 보는 하나님, 여러분들 모르겠어요, 저하고 신앙 생활하는 날 동안에는 마땅히 생각해야 할 이상의 생각 품지 말고요, 내 몫에 태인 십자가만큼만 하면 되는 거에요. 그 신앙을 하지 아니하고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 있을지라도 성경은 그렇게 말해요. 내가 너희를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고 하고, 심판할 일이 있는데 마지막 날에 심판한다고 하여, 오늘 맨 마지막에 보면 여러분 거기 보세요.

 

47절부터 같이 읽습니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이 말씀도 예수를 안 믿고, 뺀질 뺀질 하게 신앙 생활하면 지옥 가 이말 아니에요. 그래 되면 또 다른 학대가 일어나요, 그래서 두려움으로 지나친 신앙의 투기가 일어나는 겁니다. 마지막 날의 심판이 뭔가? 이것도 여러분들이 잘 이해 하셔야 되요, 저는 그 마지막 날에 심판을 이렇게 이해하면서 내길 걸어가고 있어요.

 

요즘은 참 목회가 편해요, 80년대만 해도요 교역자들이 염을 했어요, 저도 염 많이 했어요 여름에요 교통 사고 난 시신을 염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에요, 또 마지막 임종이 있으면은 항상 새벽이든 밤이든 목사님 불러서 달려가서 임종을 해 주었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제가 임종을 제가 본적은 없지만은 많은 사람의 임종을 보았어요, 그 마지막 날에요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이 후회 없는 생애를 사는 것 같지요? 제가 본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많이 한 사람일수록 내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대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지만 하루하루 은혜로 산사람은요 참 후회 없이 살다 갑니다 이래요, 그게 심판이에요.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다른 사람 목사님 눈치 안 보고, 교인 눈치 안보고 내 능력껏 행한 사람은요 참 내 잘 살았구나, 예수님 잘 믿었구나 이 놀라운 상급을 받지만은요, 하나님에게 벌 받을까 봐 두려워서 그걸 셋팅 시켜 놓은 목사님의 눈치보고 교인 눈치 보면서 능력도 안 되면서 억지로 그일 한 사람은요 주님 만날 때 내가 언제 그것 요구했어?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어요. 내가 왜 그렇게 살았던가, 오늘 여러분 여기에 이 귀한 나드향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머리 위에 장례 준비는 그런 거에요. 무엇이 귀한 줄 알아야 되요. 내 몸을 불살라서 순교하는 것이나 온 세상을 구제하는 것이나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게 아니에요.

 

오늘 예배에 와서 여러분 이 생각 해 보세요, 내가 오늘 죽어도 내가 염려하는 것이 진짜 염려 할만한 것인가, 내가 오늘 죽어도 내가 이루고자 했든 그것이 반듯이 이루어져야 할 일인가, 오늘 세상이 멸망 당하는데 내가 그렇게도 원했든 자식 서울 대학 가는 게 뭐 그래 의미가 있어요, 큰 집 가지는 게 뭐가 의미가 있어요, 많은 사람에게 구제하는 게 뭐가 그렇게 큰 의미가 있어요,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이 자유를 주신 것은 우리 각자의 환경은 다 달라요, 그저 내 몫에 태인 그것에 만족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그 일만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내가 좀 했다고 다른 사람에게 생색낼 것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여러분 원망할 것도 없이, 그런 삶을 쭉 살아가서 주님 만날 때 참 나 예수님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인생 참 행복하게 살았다고.

 

8. 십자가에 달린 주님만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다. 그 가치 없는 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리는 순간 원망하지 않고, 오늘의 이 시간이 귀하고 오늘 만나는 사람이 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그 일을 행해 나가는 것이다.

 

참 우리나라 사람들은요 그 집이 뭐라고 집 산다고 그 인생 다 보내 버리고 부부싸움하고 다해 버리잖아요, 우리가 그래 살려면은 하나님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지 마세요, 내 아버지보다 내 어머니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도 우리 교회에 교인 한 분이 출국을 할 때 제가 그랬어요, 하나님 모르는 것 아니다, 아시는데 그런 것들은 뭔가 하면은 하나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주신 시련이고 힘이다. 인간이 여러분들이 말하는 영웅들은요 시대와 환경이 만들어 내는 것이지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니에요. 조용기 목사가 동백에서 2천 년대의 목회를 했으면은 절대로 그 교인 못 만들어요, 산업화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 때 그 도시에 몰려들 때 그 시골에서 보따리 싸 가지고 대저동 저 골짜기 갈 수 밖에 없잖아요. 그럴 때 장로계는 거룩 거룩 하는데 북치고 장구치고 하니까 인생의 한이 거기 가서 쏟으니까 사람들이 거기로 모이는 거에요.

 

환경이에요 여건이에요, 시대에요. 누구만이 위대한가 십자가에 달린 주님만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에요. 그 가치 없는 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리는 순간 원망하지 않고요, 오늘의 이 시간이 귀하고 오늘 만나는 사람이 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그 일을 행해 나갈 때 그 마지막 날에 내가 왜이래 살았던가 가 아니에요, 주님 때문에 하루 하루 참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 하나님을 믿으라는데 유대인들 안 믿었어요, 누가 믿었는가, 유대인들이 그렇게 구원받지 못하는 헬라인 몇 명이 예수님을 뵙자고 하고 와서 믿었어요. 오늘도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려서 높아서 올라가도 못하는 나무를 쳐다보다가 평생 인생을 허비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그 분복 안에서 참 행복하게 살다가 마지막 날에 심판은 뭐라 그랬어요 지옥 가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어디 예수 믿으면 지옥 가요? 아이구 내가 그것도 알지 못하고 맨날 뭐 내가 이래 좀 그래 후회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사람들에게 불안을 조성해서 안전에 대한 욕구를 위하여 종교인들이 만든 신을 유대인들에게 셋팅 해서 이 지상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보지 못한 자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봤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능력에 지나친 헌신을 요구했든 유대인에게 주님은 그 성전을 허물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 성전 속에 유대인들의 피와 눈물을 보시며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여 주셨지만 완고한 인간의 마음에는 그 주님을 받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선입견과 전통이 너무나 견고했기 때문에 받아 드리지 못했습니다. 헬라인 몇 명이 예수님을 뵙고자 하고 그들이 구원을 얻은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도 세상은 인간이 정한 룰에 가치 있는 자에게 투자를 하고, 쓸모가 없으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 힘듭니다, 세상의 왕들은 더 많은 사람을 이용해서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서 많은 추종자를 얻으려고 하는 주님은 십자가의 들림으로 그 왕들을 쫓아내고 인간의 왕들 속에 학대당하는 자들을 주님께로 이끄는 구원을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주님 이곳에 와서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을 알게 하여 주시고, 받아 드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고 늘 우리의 인생의 결론이 땅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았느냐를 결산하시며 심판하시는 주님을 알아서 내 몫에 태인 십자가만큼만 지고 마땅히 생각해야 할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아니하고 주님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오늘도 우리의 닫혀 진 마음을 열어 주시고 움켜 진 손을 펴서 주님께 드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 각자의 몫을 통해서 세워 진 공동체를 통한 우리의 불안한 삶이 평안과 안전으로 이끌어져 가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를 세우는 귀한 도구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목사님 눈치 보지 않는 신앙 생활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태하고 게으를 때마다 마지막 심판 때 부끄러운 구원을 당하지 않도록 주님의 재림을 믿어지게 하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오늘도 이 구원을 위하여 그 십자가의 중한 고난을 겪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유한한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서 자신의 종교적인 목적을 이루어 가는 유대교의 그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트리고 십자가에서 친히 제물이 되셔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인간을 창조하신 우리의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을 계시해 주시기 위하여 낮고 천한 이 땅에 와서 모든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 주지만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유대인들의 그 멸시와 조롱을 받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망극하신 그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 하여서 세상의 지식으로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고 받아 드리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내 모습 이대로를 받으시는 주님 안에서 인간의 모든 요구와 기대에서 자유 하게 되어져 평생 예수님 때문에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다가 마지막 날에 주님 제가 주님 때문에 행복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하고 주님 맞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우리 각자가 자신의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짐으로 개인이 확보하지 못하는 삶의 안전을 함께 도모하며 살아가야 할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