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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등지게

차주희 2011. 11. 26. 09:19

 

 

 

 

 

 

 

 

 

 

 

 

 

 아버지의 등지게

 

 

 그건

늘 거기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내가 살던 외양간 처마 밑에는 늘 팔자다리를 하고 선

아버지의 등지게가 있었습니다.

그 지게는 아버지 어깨에 굳은살이 박히고 무릎관절이

무뎌지도록 아버지 등에 업혀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등지게를 업고 나가시면 온 가족 식량인

쌀가마부터 누렁이 여물까지 별의별 것을 다 짊어지고

들어오셨고,무었이든 아버지 지게에 업혀 오기만 하면

우리집 마당은 한참동안 배가

불렀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그해겨울에는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릴 만큼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막 교문을 나서는데,

교문 옆 문방구 앞에 추레한 차림의 아버지가 등지게를 지고

계셨습니다. 두툼한 담요까지 싣고 말입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행여 친구들이 보고 놀릴까 싶어

애써 못 본 척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의 속마음도 모르고 나를 보자마자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아이고, 우리 공주님! 여기여,여기!"

"에이, 아빠는. 창피하게 학교에는 왜 오셨어요?"

"우리 딸 데리러 왔지, 아부지가 이렇게 지게차까지 대령했는디."

순간,

나는 아버지가 굳이 자가용이라고 우기는 그 등지게에

위에는 절대로 올라타지 않으리라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빼고 말고 할 틈도 없이,

아버지는 나를 번쩍 들어안아 지게위에 앉혔고,

친구들이 볼까 봐 부끄러워하는 나를 담요로

칭칭 동여매셨습니다.

 

 

 

눈 덮인 산길을 따라 십오 리 이상

걸어야 하는 딸 걱정에 지게 지고 마중 나온 아버지는,

그리 따뜻해 보이지 않는 홑겹 외투와 검정 털신을

신고 계셨습니다.

게다가 매운 추위로 아버지 이마에는 고드름 같은 땀방울들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아버지가 혹독한 눈보라를 뚫고

내게 오신 이유를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것은

작고 가녀린 막내딸에게 가난한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표시였는데

말입니다.

그 막내딸이 장성해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없습니다.

외양간 누렁이도, 아버지 등에 업혀 다니던 싸리나무 등지게도,

가진것은 없어도 마음 하나만은 부자라고

외치시던 구릿빛 얼굴의

내 아버지도.....

====행복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