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578

교훈이 되는 가을에 좋은 열매 맺는 삶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이라는 시가윤동주 시인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 시를쓴 시인은 뇌성마비 시인 김 준엽씨로 확인 되었습니다. 김 준엽 시인은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겁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느냐고 물을 겁니다. 그때 자신있게..

좋은 글 2021.02.11

오래도록 영원히 좋은 사람

어느 누가 그랬던가요. 사랑은 주어도 주어도 끝이 없다고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거라고 설령... 하루종일 주어도 모자란 듯 싶고 지금 방금 주어도 금방 또 주고 싶어서 가슴에 미련마저 남게 하는 사람 그렇게 주어도 주어도 아깝지않은 사랑을 주고 싶은 이가 바로 내사람 당신이랍니다. 잠시도 잊을 수 없기에 그리움이 스며들고 그 그리움속에 숨겨진 멈출 수 없는 사랑이 이렇게 애타게도 당신만을 찾아 부른답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좋은 사람 내 조그마한 가슴속에 쉬임없이 행복을 주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도 오로지 당신뿐이기에 나.. 이렇게도 당신이 좋기만 하답니다. 어쩌면..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내가 살아갈 삶의 의미도 마음에 그 어떤 행복도 느낄 수가 없답니다. 그것은 나 혼자가 아닌 언제나 내 곁에..

좋은 글 2021.02.11

우리의 삶의 행복

사람들이 자꾸 묻습니다. 행복하냐고... 낯선 모습으로 낯선 곳에서 사는 제가 자꾸 걱정이 되나 봅니다. 저울에 행복을 달면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면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단 1%만 더 가지면 행복 한 겁니다. 어느 상품명처럼 2%가 부족하면 그건 엄청난 기울기입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1%가 빠져나가 불행하다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약간의 좋은 것 1% 우리 삶에서 아무것도 아닌 아주 소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 할 때의 평화로움 따뜻한 아랫목 친구의 편지 감미로운 음악 숲과 하늘과 안개와 별 그리고 잔잔한 그리움까지. 나는 오늘 그 1%를 행복의 저울 쪽에 올려놓았습니다. ..

좋은 글 2021.02.08

나성룡이라는 젊은이가 교수형을 면하게 된 이야기

나성룡이라는 젊은이가 교수형을 당한 이야기 조선시대 광해군 (1575~1641)때 나성룡이라는 젊은이가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다. 효자였던 그는 집에 돌아가 연로하신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광해군은 허락하지 않았다.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나성룡에게 작별 인사를 허락할 경우 다른 사형수들에게도 공평하게 대해줘야 했다. 그리고 만일 다른 사형수들도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하기위해,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가, 멀리 도망이라도 간다면 국법과 질서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광해군이 고심하고 있을 때 나성룡의 친구 이대로(李大路)가 보증을 서겠다면서 나섰다. “전하, 제가 그의 귀환을 보증합니다. 그를 보내주십시오.” “대로야! 만일 나성룡이가 돌아오지 않는다..

좋은 글 2021.02.06

♣ 참 아름다운 우정 ♣.. .. .. .. .. ..

좋은 글 ♣ 참 아름다운 우정 ♣ 조선시대 광해군 (1575~1641)때 나성룡이라는 젊은이가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다. 효자였던 그는 집에 돌아가 연로하신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광해군은 허락하지 않았다.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나성룡에게 작별 인사를 허락할 경우 다른 사형수들에게도 공평하게 대해줘야 했다. 그리고 만일 다른 사형수들도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하기위해,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가, 멀리 도망이라도 간다면 국법과 질서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광해군이 고심하고 있을 때 나성룡의 친구 이대로(李大路)가 보증을 서겠다면서 나섰다. “전하, 제가 그의 귀환을 보증합니다. 그를 보내주십시오.” “대로야! 만일 나성룡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찌하..

좋은 글 2020.08.31

진정한 보배(청렴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

중국 송나라 때 지방의 한 벼슬아치가 보석 감정인을 찾아왔습니다. "이 옥이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지 감정해 주시오." "이 옥은 너무도 구하기 힘든 진귀한 보석입니다." 사실 그가 옥을 감정한 이유는 송나라 재상 '자한'에게 청탁을 할 때 바칠 생각이었습니다. 당시 송나라는 명재상 자한의 바른 정치로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었고, 백성들은 모두 자한을 존경하고 칭송했습니다. 다음날 그는 그 옥을 가지고 자한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구하기 힘든 진귀한 옥입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소중하게 보관해 왔지만, 이제는 자한님께 바치고자 합니다." 그러나 평소 청렴함을 강조하던 자한은 이를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 옥을 보배로 여기고 있으나, 나는 탐내지 않는 마음을 귀한 보배로 여기고 있..

좋은 글 2020.07.28

슈몰크 목사님의 이야기(내 주여 뜻대로♬악보 )

내 주여! 뜻데로 행 하시옵소서 글 조 처음 내 주여! 뜻데로 행 하시옵소서 온 몸과 온 영혼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 하셔서 뜻데로 하소서. 이 찬송은 오래전에 독일의 어느 농촌에서 목회를 하시던 슈몰크 목사님이 이 시를 썼는데 이 시를 쓰시고 그가 소천을 하신 후에 백년이란 세월속에 묻혀 있다가 어느 작곡을 하시던 목사님의 눈에 뛰여 이 찬송을 작곡하여 지금 우리가 지금 이렇게 부르게 되였습니다. 그 사연은 아래 와 같습니다. 독일의 어느 작은 농촌에 교회가 새롭게 개척되여 주변의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되였습니다. 당시에는 구교인 로마의 카톨릭과 개신교회 간의 갈등이 심했습니다. 개신교회가 날로 부흥이 되니까 모든 카톨릭 신부나 신자들은 긴장하여 개신교 사람들을 ..

좋은 글 2020.06.21

예배 시간을 알리는 교회 종소리(미국 22대 대통령)

대통령 스티븐 그로버 클리블랜드 (Stephen Grover Cleveland) 미국의 제 22대 대통령인 클리블랜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감옥에 있던 죄소 하나가 깜짝 놀라 외쳤습니다. "클리블랜드가 대통령이 되었단 말인가?" 동료 죄수가 묻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젊었을 적 클리블랜드와 상당히 친한 친구였네, 그가 프린스턴 대학을 2등으로 졸업하던 해에 내가 1등을 했었지, 그와 나는 함께 변호사로 일했었지. 어느 날 내가 그를 찾아가 술을 마시러 가자고 청하자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나를 따라 나섰지, 우리는 함께 길을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회에서 예배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어, 그때 클리블렌드는 교회로 가야겠다고 말하더군. 그래서 내가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나?" 클리블랜드는..

좋은 글 2020.06.21

꿈을 가진 젊은이(오영석 박사)

♠ 꿈을 가진 젊은이 ♠ 전남 해남 시골마을에 오영석 소년은 가난하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되었다. 40일간 작정 기도를 드린 후 “하나님 진학의 길을 열어 주십시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 겉봉에 주소도 없이 ‘하나님 전상서’라고 적힌 이 편지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우체국에서 생각 끝에 해남읍 교회로 보냈다. 목사님의 주선으로 이 소년은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신대의 조직신학 교수가 되었다. 그가 한신대학교 전 총장 오영석 박사이다.

좋은 글 2020.06.20

값진 만남 (작은 성경 책과 2분전)

값진 만남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에프스키는 1821년 모스코바에서 출생했다. 그는 28살에 잘못된 정치 집단에 가입하여 일하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열차에 실려 시베리아 움츠크로 호송될 때 토불스키라는 시골 역에 잠시 정차했다. 사형수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장교 부인들이 따뜻한 차를 따라주었다. 그때 어떤 부인이 도스토에프스키에게 작은 성경책을 주었다. 도스토에프스키는 시베리아 움츠크 감옥에서 성경을 읽었고, 그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껴 예수를 영접했다. 그는 그의 형에게 쓴 편지를 보면 “형 나는 다시 태어나 최고의 이를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총살형 2 분전에 황제의 사면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후 왕성한 작가생활을 하게 되었고, 최고의 작가가 되어 [죄와 벌] [까라마조프의..

좋은 글 2020.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