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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살린 세분 / 李舜臣, 李承晩, 朴正熙

차주희 2012. 8. 13. 12:19

 

 

 

 

우리나라를 살린 세분 / 李舜臣, 李承晩, 朴正熙

 

★ 李舜臣, 李承晩, 朴正熙 ★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 경제를 먹고 사는 중이다.라고
강력하게 말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그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박정희 시대의 성공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오늘의

풍요와 여유를 만들 수 없었다.

그것으로 해서 이룰 수 있었던 근대국가의 면모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걸핏하면 그것을 내세우는 것으로 노벨상도 타고

온갖 재화를 자기 금고에 쌓아놓고 명문 私學

(사학)에 기념관을 짓고지방도시에

컨벤션센터를 짓고 온갖 명예와 부귀를 누리는

이른바「민주화의 주역」으로서의 무대 생활을

한껏 누리는 전직(前職) 대통령의「만고의 호강」

도 박정희 경제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궁정동 사건으로 박정희 시대를 끝내고도

몇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북유럽을 여행했을 때 그 곳 언론인 한 사람과

만나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다.

 

외신 담당 부국장을 한다는 그는

한국에 관한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후진국으로 출발한 나라 중에는 군사 쿠데타를

겪은 나라가 많다.

그런 나라들은 하나같이 정치 혼란을 겪고

경제는 정체되고 마는 과정을 겪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는 원인은 쿠데타 주역들의

부정부패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박정희 라는 사람의 덕이다.

 

그는 부정부패로 혁명의 말로를 그르치지 않은,

세계사에서 몇 안 되는 군인 출신 지도자다.

 

그래서 한국은 저개발국을 벗어났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는 지반을 쌓았다.

거의 세계에서 유일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말을 그 언론인은 했다.

 

<그는 부정부패로 혁명의 말로(末路) 그르치지 않은,

세계사에서 몇 안 되는 군인 출신 지도자다.>

<그도 생전에는 부정축재 의혹도 샀었고 무엇보다도

민주화를 막은 독재의 혹독함이 비판을 샀으며

특히 시해 당할 당시 청와대 안에서 나온 수억 원에

이르는 현금 가방이 화제가 되었던 일도 있다.

그만한 액수면 부정의 의심도 받을 수 있다.

한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하는 말을 그 언론인에게

반론 삼아 나는 해보았다.

 

그러자 그는 조금 냉소에 가까운 미소를 짓더니

『보통 나라를 다스리는 특히 군사 쿠데타 같은

것을 치른 주역이 챙기는 부정축재의 규모란

그런 정도가 아니다.

 

박정희 떠난 이후 그가 스위스 은행에 숨겨 놓은

재산이 있다든지 국유재산을 송두리째

챙겨서 사유(私有)화한 내용이

드러났다든지 한 일이 없지 않은가.

 

"그는 부정축재의 혐의를 조금도 받지 않는,

세계사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쿠데타의 주인공이다. "라고 말했다.

 

그 이후 몇 몇 사람의 전직 대통령들이 일으킨

통치자금

은닉 소동을 보며

그 외국 언론인이 한 말이 노상 기억나곤 했다.

 

 

그 언론인은 내가 어설프게 제기한

『박정희 시대의 유보된 민주화』의 공과에

대해서도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경제적 生存力(생존력)이 없는 사회의

민주화란 허망한 구호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겪은 시대에 대한

유치하고 부실한 나의 인식이 부끄러웠다!

 

마하트마 간디가 말했다는

7가지 악덕(惡德)」이 있다.

 

 

1. 철학 없는 정치

2. 도덕 없는 경제

3. 노동 없는 富()

4. 인격 없는 교육

5. 인간성 없는 과학

6. 윤리 없는 쾌락

7. 헌신 없는 종교.

 

6번과 7번은 개인적인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라는 지도자는 적어도 이중 5가지의

악덕은 저지르지 않은 통치자였다고 생각한다.

 

하늘이 우리를 위해 그를 보낸 것은

救援(구원)이었다고 생각한다.

 

 

박정희를 기리는 이런저런 모임이 자발적으로

생겨나서 꾸준히 이어간다.

 

오늘처럼 左派(좌파)들의 악랄한 발악에 시달리는

세태를 보며 위안과 희망을 찾다가

생각해낸 일인 것 같다.

역사를 통해 이런 분들을 하늘이 보내준 것은

우리를 버리지 않는 어떤 섭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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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고,

舜臣(순신)이 살아 있습니다.

어떤 문학보다 비장하고 아름답다.

 

 

.일 전쟁의 海戰(해전)에서 거대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쳐부수고 승전을 이끈

「도고 헤이하찌로(東鄕平八郞)라는

일본의 해군장수가 있다.

 

 

연합함대를 이끌고 그가 승전을 했을 때 그를

치하하며『장군은 영국의 넬슨 제독이나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같은 해전의 영웅이다.

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도고 제독은

이런 내용의 대답을 한다.

 

『나를 넬슨 제독과 견주는 말은 혹여 가능할지

모르겠지만조선의 이순신 장군과는 견줄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가히 軍神(군신)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인데 거기에 어떻게 이 사람을 견주겠는가?

라고....

 

실제로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맞아 물리치는 일은 일본

해군으로서는 일본국의 멸망과 직결되는 일이었다.

 

해군력으로 비교할 때

열 배도 넘는 배와 군사력을 러시아는 지니고

있었고 그 해군이 어마어마한 대열을 조직하여

여순 앞바다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그 러시아 해군을 살려서 블라디보스톡으로 보내면

일본과 전투는 끝장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의 패전은 기정 자실이다.

단 한 척의 군함도 살아서 일본 앞 바다를

지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전 일본열도가 生死(생사)의 결전을 기다리며

러시아 함대가 지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드디어 해전이 시작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한 일본 함대 사관은

출전을 앞두고 무릎 꿇고 간절한 기도를 한다.

그리고 나서 말한다..

 

『나는 승리할 수 있게 해 달라고조선의

軍神(군신) 이순신 장군에게 빌었노라!

 

『나는 승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조선의 군신 이순신 장군에게 빌었노라』.

 

결의에 차서 자신의 武運(무운)을 지켜달라고 빈

대상이 이순신 장군이었음을 말하고 출전한 것이다.

 

그 해전에서 기적처럼 일본은 이겼다.

아마도 이순신 장군에게 빈 그 사관은 조선의

충무공 이순신이 돌봐 주시어서 승전할 수

있었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이순신이 얼마나 위대했으면 그 분 때문에

혼 줄이 난 일본의 후예들이 이런 생각을

지니게 되었겠는가?.

 

이순신 장군은 우리민족을 지키기 위해

하늘이 보낸 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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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승만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이 태어날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民族運(민족운)이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바로 그가 미국 쪽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치는기회를 갖지 않았으면

우리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

 

지도자의 역량 중에서 특히 나라를 잃고

식민지 처지에 떨어져버린 조국을 건져

근대국가로 만들어가는 기틀을 마련해야 하는

지도자가가져야 할 역량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시대를 보는 통찰력이다.

 

그리고 구국의 열정과 그것을 실현 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이승만은 바로 그 때!

그런 능력을 가지고 발휘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 역사의 신이

의지를 갖고 바로 그때 보낸 인물이 이승만이라고

생각한다.

 

이승만이 아니었으면 김일성 부자가 이끄는

죽음의 공화국에 우리는 던져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것이 그들이고

그래서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은 60년 동안

이를 갈며,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되었던

나라처럼 만들려고 갖은 음모를 꾸미고

아직도 그것을 진행 시키고 있다.

 

이승만만 아니면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

같은 것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절치부심하며 원통해 하는 세력이

여전히 「촛불정국」에 얹혀 이 나라를

어떻게 해보려는 모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왜 오늘의 행사에는 「승만 리」의

이름조차도나오지 않는가?.

나는 그것이 이해할 수가 없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한국의 날」행사를 함께

진행했던 젊은 교수 한 사람이

최근에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이 날을 주도한 한국인 교수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아서 이 행사는「민주화」이후의

한국을 중점적으로 소개한 행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한 노신사가 참가했다가

행사를 마칠 무렵 젊은 교수를 붙들고

질문을 하더라고 한다.

 

 

그는 우선 자기를 소개하면서 젊어서

현역 시절에는 상공에 종사했었노라고 했다.

그가 젊은 시절 그러니까 50년대의 어느 시기에

미국 각 연방을 대표하는 상공인들로 구성된

경제 사절단의 일원이 되어

일본의 초청을 받고 투자를 타진하기 위한

방일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은 미국에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대대적인 기획을 하여 초청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일본에 들렀는데

어떤 연고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아주 간곡하게 일본의

일정을 마치면 한국에도 한 번 들러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는 것이다.

 

본래의 일정에도 없었거니와 한국에 대한

관심 같은 것은 거의 백지 상태여서

전혀 내키지 않는 걸음이었지만

하루나 이틀만 연장하면 들를 수 있다는

이 요청이 하도 집요해서

마침내 한국에도 걸음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찾아온 한국에서 「승만 리」를 만났고

그가 하는 훌륭한 영어의 투자 유치가

어찌나 열정적이고 애국적이고 진지한지

당시에 함께 온 미국 상공인 전원이 반해 버렸다.

 

그래서 정작 일본에서 별로 성과가 없었던

투자 약속이 한국에서 거의 전원이 한 건씩

성사를 시키는 성과를 내고 돌아가게 되었다.

 

그 이후 자기는 한국에 대한 관심을 평생 이어

왔고 특히「승만 리」에 대해서는 후진국

정치지도자지만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정치지도자임을 확신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이 대학에서 갖는다는「한국의 날」

행사를 일부러 찾아 왔는데

왜 오늘의 행사에서는「승만 리」의

이름조차도 나오지 않는 것이냐?.

나는 그것이 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노신사의 질문을 받고 40대의 젊은

한국인 교수는 무안하고 부끄러워

어물어물 변명하고 피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고백했다.

 

<이 건국의 지도자를 보내준 神은 오늘의

이 땅을 응징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나 않을까?>

 

이 승만을 독재의 화신처럼 몰아서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세력에 의해서

너무 폄하 당하는,이 건국의 지도자를 보내준

신은 오늘의 이 땅을 응징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나 않을까.

 

다른 것은 몰라도 그는 청렴한 거인이었다.

파란 눈의 부인 이름으로 스위스 은행에

돈을 감춰 두었느니 어쨌느니 하는 말도

그의 재임 시절에 악의적으로 퍼져 있었지만,

그는 정말 개인적으로 아무 치부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시대가 끝난 뒤에 다 드러났다.

 

남편이 세운 나라에서 살기를 원하며 객지를

떠돌다가 노년에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던

프란체스카 여사가 입고 들어온

리넨 속옷이 이화장 기념관에는 전시되어 있다.

 

우리네 옛 여인들이 입었던 속곳과 너무도 흡사한

이 속옷에는 겉에다 손수건 만하게

덧대어 붙인 주머니가 있다.

 

이 주머니에 그는 한국에 돌아오면 반드시 하고

싶었던 틀니를 만들 비용을 꽁꽁 접어 넣고

들어 왔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너무도 훌륭하고 값은 싼 한국의 치과기술』의

혜택을 보았다.

 

의치를 해 넣고 나서 너무도 마음에 들어 한 그는

외국인 친지들이나 외교가의 사람들을 만나면

반드시 권고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치과 시술을 반드시

받으시도록 하라.

당신에게 크게 이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임종을 맞게 되었을 때

양자인 아들 내외에게

그분은 꼭 한 가지 당부를 했다.

 

『마지막 순간이 오면 내게 저 의치를 반드시

끼워 달라. 그래야 저승에 가서 아버님을

만났을 때 보여드리고 자랑을 할 수 있으니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임종을 보아주는 병원에서도 난감해 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 당부만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손자들의 양말을 기워서 신겨 가며 검소한 삶을

유훈으로 남긴 시어머니 프란체스카 여사의

이야기를 그의 며느님은

지금도 눈물을 흘려가며 회고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 역사에서 보기 드문 “자비로운”

지도자였다!

朴承用

포괄적 국가와 수탈적 국가

全 세계에서 가진 나라(haves)와 가지지 못한 나라(have-nots), 즉 貧國(빈국)과 富國(부국)간의 隔差(격차)는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구매력 기준으로 평가해 보면 미국의 평균소득은

아프가니스탄의 50배이고 짐바브웨의 100배이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

동안 세계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하였지만 아직도 10억 이상의 사람들이

極貧(극빈)의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이다. 제리드 다이어몬드(Jared

Diamond)와 데이빗 로빈손(David Robinson) 등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런 경제적 격차의 이유를 문화적 및 지리적 조건에서 찾으려고 한다.

지리적으로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에 隣接(인접)하고 문화적으로

시민정신이 성숙한 지역에서 현대적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최근에 MIT의 대런 아세머그루(Daron Acemoglu)교수와 하버드 대학의

제임스 로빈슨(James Robinson)교수는 그들의 共著(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에서 경제발전의 조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하고 있다. 그들은 경제발전의 지리적 문화적 조건 대신

경제에 대한 정치의 영향을 연구하는 제도경제학(institutional economics)

을 근거로 하고 있다. 지리적 문화적 조건이론으로는 동일민족의 분단국가

인 남한과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인접국가인 미국과 멕시코의 경제적

격차의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격차의 원인에 대해서 아세머그루와 로빈슨교수는 대단히 놀라운

진단을 한다. 즉, 어떤 정부는 故意的(고의적)으로 경제를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약하고 순응적인 제도(institution)의 국가에서는 지도자의

收奪(수탈)을 억제할 길이 거의 없다. 이런 나라에서는 국민총생산액이

寄生(기생)적 엘리트에 집중되고 투자와 혁신이 위축된다. 아세머그루와

로빈슨교수는 이런 나라를 수탈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s)의

나라라고 부른다. 반면에 包括的(포괄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s)의

나라에서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투자와 노력을 권장한다. 포괄적

정부가 출현하면 큰 富(부)가 뒤따르게 된다.

“자비로운” 지도층의 존재가 후진국 경제발전의 열쇠

산업혁명의 源泉(원천)인 영국이 이러한 학설의 주요한 증거를 제공한다.

中世(중세)시대의 영국과 스페인 君主(군주)들의 絶對主義(절대주의)사이

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우연에 의해서 차이가 크게 나게 되었다.

유럽의 세계탐험이 시작되었을 때 영국의 王室(왕실)은 민간 사업가들에게

무역을 委任(위임)하였다. 반면에, 스페인은 해외통상을 국가가 장악하였다. 新大陸(신대륙)의 富(부)는 스페인의 독재를 鞏固(공고)히 하였지만

 영국에서는 상인엘리트(merchant elite)를 양성하게 되었다.

이들 신흥 엘리트들은 1668년의 명예혁명에서 군주제도에 反하는 쪽으로

저울이 기울도록 하는데 一助(일조)하면서 토지귀족들의 세력을 相殺(상쇄)

하고 이로 인해 권력의 다원화를 확보하면서 경제성장의 씨앗을 뿌렸다.

이와 같이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용인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제도 안에서 영국인의 창의성과 재능의 자유로운 발달이 가능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권력의 多元主義(다원주의,pluralism)는 앵글로

색슨 국가들(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도 轉移(전이)되고 뿌리를

내리면서 부유한 산업국가를 만들어 내었다.

수탈적 지배는 스스로를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스페인이 지배하는 新대

륙에서는 수탈이 권력 엘리트의 힘을 강화시켰다. 스페인의 수탈적

지배모델

을 물려받은 南美에서는 혁명과 독립도 이러한 폭정으로부터의 탈출을

가져오지 못하였다. 독립이나 혁명을 통해 새로이 등장하는 지배세력은

舊 制度(구제도)의 혜택을 유지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민생활 수준의 향상에 진심으로 관심과 열정을 가지는

“자비로운” 지도층의 不在(부재)는 정치적 개혁과 창조적 파괴를

불가능하게 하고 이로 인해서 경제성장은 멈추게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포괄적 지배자는 혁신과 새로운 피를 권장한다.

이것이 창조적 파괴를 가능케 하여 기존의 산업을 동요시키고 정치 경제적

권력을 분산시킨다.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분산은 대단찮은 사람도

계층상승이 가능케 하는 상향적 移動性(이동성, upward mobility)과 사회적

流動性(유동성, fluidity)을 높여서 경제성장을 가속화시키게 된다.


러시아가 실패한 근본적 이유

불행하게도 역사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러한 “자비로운” 지도자나

지도세력이 나타난 예가 거의 없다. 폭정과 빈곤에 시달리는 민중에게

해방과 번영을 약속하며 권력을 장악하는 ‘혁명지도자’나 ‘민족해방주의자’

도 수탈적 제도를 堅持(견지)하기는 마찬가지여서 국민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지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새로이 등장하는 지배엘리트들도

거의 예외 없이 권력과 富(부)를 독점하면서 민중의 삶을 향상을 위한 경제

건설에는 微溫的(미온적)이거나 熱意(열의)가 부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西歐(서구) 선진국 20여 개 국가들-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포괄적 제도를 정착시켜서 선진 산업국의

건설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되어 독립한 아시아나

아프리카 및 남미의 나라들은 거의 모두 수탈적 국가로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동부유럽과 아시아 및 남미의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수도 없이 많은 혁명을 겪었지만 여전히 서방 선진국과의 경제적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 중 많은 나라는 아직도 極貧(극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17세기 개혁군주 피터 大帝(대제)이후 체제나 정권을 초월해서 서방선진국

을 따라잡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 해온 나라이지만 서방과의 경제적 격차는

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 러시아는 인구가 많고 국토가

광대하여 강대국이긴 하지만 한 번도 선진부국의 대열에 든 적이 없다.

러시아가 그 많은 개혁과 참혹한 공산주의 혁명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된

것은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수탈적 국가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는

경제발전을 이끄는 핵심적 추진동력인 진정으로 “자비로운” 지도자나 지도

세력이 등장한 적이 없다. 帝政(제정) 러시아 시대나 공산주의 소련시대나

현재의 민주화 시대에도 러시아의 지배엘리트들은 국민을 하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자기보다 하인이 더 잘살고 더 부유해지도록 노력하는

주인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민중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억압과

부패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의 끈질긴 부패의 원인은 러시아 국민이 뇌물을 지불하도록

유전적으로 프로그램화 되어있기 때문이 아니고 국가가 아직도 국민을

국가의 주인(masters)이 아니라 封臣(봉신, vassals)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법집행관들의 업무는 국민에 대항해서 그들의

우두머리(국가원수)가 體現(체현, personified)하고 있는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는 푸틴(Putin)이 집권한 이후 거대한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장악한 前 KGB 要員(요원)들에게 특별히 발달 해 있다. 진실로 연방보안

국의 고위관리들은 자신들을 새로운 귀족계급-군주에게 충성을 바치고

 家臣(가신)들을 거느린 領主(영주)들의 계급-으로 묘사하고 있다.

현재 北 코카서스(Caucasus) 駐在(주재) 러시아 대표인 前 러시아

검찰총장은 푸틴 面前(면전)에서 “우리는 대통령 각하(sovereign)의

백성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민간(private hands)소유의

재산을 (수탈하여) 자신들의 소유로 재분배하는 것을 도둑질이 아니고 그

들의 권리로 간주한다. (《The Economist》2008년 11월27일字)〉

한국의 국민소득은 2012년 현재 서방선진국인 이탈리아나 스페인보다 더

많으며 수년 內에 일본이나 미국까지도 추월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極東(극동)의 이름도 없던 극빈의 나라가 러시아가 300년 몸부림쳐도

달성하지 못한 경제 부국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은 5.16

군사혁명의 결과이다. 군사혁명이 일어난 1961년이 한국이 수탈적

나라에서 포괄적 나라로 轉移(전이)되기 시작한 分岐點(분기점)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軍人들, 거룩한 지도자

5.16혁명의 軍人들은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에 “진심으로 관심과 열정”을

가졌다는 점에서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자비로운” 군인들이

었다. 그들이 국민의 빈곤탈출을 혁명의 주요 목표로 하였다는 것은

革命公約(혁명공약) ④항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에 잘 나타나 있다.

貧困(빈곤)으로 부터 탈출하여 물질적 풍요를 누리려는 것은 인류 공통의

욕망이며 소망이다. 자연은 언제 어디서나 山海珍味(산해진미)를 베풀어

주는 지상낙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이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韓半島(한반도)는 70%이상이 山岳(산악)이고 홍수와 가뭄이 잦아서 지배층

을 제외한 대부분의 민중들에게는 “보릿고개”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되었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의

나라였다. 처절한 가난의 恨(한)이 민족의 恨이 되었던 나라였다. 그런데도

국가는 “가난은 나라도 구할 수 없다”라며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였다.

그러나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가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 “구슬이 서말

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듯이 국가라는 조직이 있어야 국민의

 힘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가난

의 해결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빈곤국가의 지도자와 지도

층은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경제건설에 열의가 부족하거나 아예

국민을 수탈한다. 그래서 국가의 지도자와 지배세력이 경제건설에 진정한

 

열정을 쏟지 않기 때문에 민중은 언제나 가난할 수밖에 없다.

박정희 장군을 비롯한 5·16의 군인들은 “보릿고개”의 悽絶(처절)한 恨을

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국가를 장악하기 위하여 (그들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였던) 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간주된다. 군사혁명은 목숨

을 걸고 하는 것이다. 義(의)로운 목적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念頭(염두)도 내지 못할 만큼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혁명군을 이끌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 역사에서 보기 드문 “자비

로운” 지도자였다. 어린 시절 가난의 지옥을 직접 겪으며 성장한 그는

한국민족 5,000년의 念願(염원)인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不撤晝夜

(불철주야)로 분투하다가 목숨까지 바친 “거룩한” 지도자였다. 그는 “잘

사는 것”을 國政(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하였다. 당시에 전국 坊坊曲曲(방

곡곡)에 울려 퍼졌던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가 그와 국민의 “잘 살아 보려는 恨”을 정확히 나타냈었다.

아마도 세계 역사상 이런 노래를 국민과 함께 부르며 부강한 나라 건설에 一

路邁進(일로매진)한 지도자는 朴 대통령이 유일할 것이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라는 朴 대통령의 悲願(비원)이 현실이 되어 오늘날 한국은 개도

너무 잘 먹어서 비만에 걸릴 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朴 대통령의 “잘 살아보세”의 꿈은 한국으로 하여금 세계 7大

무역대국, 5大 공업국가,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奇績(기적)을 이루어

내었다. 그리하여 한국은 “근로 연령(working life) 以內(이내)에 개발 원조

를 받던 나라에서 富國(부국)이 된 유일한 나라로서 대부분의 貧國(빈국)

에게 성장의 모델이 되었다.” (《The Economist》2011년 11월12일字)

그래서 민중의 배고픔의 恨을 풀어주기 위해 일어선 5.16혁명의 군인들은

위대하였고 “우리도 잘살아 보세”의 꿈을 이루기 위해 身命(신명)을 바친,

그들의 혁명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은 거룩한 것이다.

 

동백 2012-08-03 오후 4:56
진정한 리더!지도자!박정희를 그리워함...

sto46 2012-08-03 오후 1:05
60대후반나이입니다...
5.16혁명을 생생히 기억 하며 혁명공약도 달달 외운 세대입니다...
오늘의 풍요가5.16혁명이 없었다면 어림도 없지요...
보리고개를 넘 는다고 한숨도 마니쉬엇거든요...
혁명 이후세대는, 그어려?든 세월을 몰라,지금 방종 하는게 안타가워요...
좋은 역사 지적 감사 합니다...
역사교육을 있는그대로 교육 해야 되는데.....

ob도사 2012-08-03 오전 9:10
박승용선생님, 감사합니다. 5.16정신을 너무나 잘 표현하시고 '잘살아 보세'노래까지 인용하여 젊은 세대들에게 역사의식을 잘 심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제2의 박정희 같은 인물'이 당선되어야 경제는 물론, 국민
윤리의식도 선진화하여 2단계 도약을 할 수 있을텐데요- - -, 기대해 봅니다.

보현산 2012-08-03 오전 8:36

5.16 구테타, 독재자라고 떠들어 대는 자들은 보릿고개에 태어나지 않은 자들이다.
그 시대에 5.16혁명이 없었다면 지금의 같이 정치자를 하여 아직도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레인맨 2012-08-02 오후 5:53

감사합니다. 박선생님. 사랑합니다. 박대통령님.
모든 것을 내어준 진정한 리더, 섞여서 혼탁하지 않은 거룩한 리더라는

칭호가 어울리십니다.


해리슨김 2012-05-14 오후 2:20

"朴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으로 오늘날 한국은 개도 너무 잘 먹어서 비만에

걸릴 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영혼이 부족한 후임 대통령은

국민정신을 비만하게 만들었으니 그 죄를 어이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