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마 6: 25-34 (3)

차주희 2013. 5. 24. 01:00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담임목사 김종웅

 

인간이 바라는 천국,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3

 본문: 마태복음 6 25-34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우리는 예배 때마다 주기도문을 암송합니다. 그런데 주기도문을 자기 소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외우는 주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단순히 예배를 위한 예전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기도문이 이 땅에 천국을 이루기 위한 기도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에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에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주기도문을 주문과 같이 암송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국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천국을 꿈꾸는 사람들이지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주기도문으로 찬양을 하고 암송을 하는데도 교회에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 결과 교회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며, 사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주기도문 강해를 통해 주기도문의 올바른 의미를 깨닫고 우리의 신앙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 교회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 즉 천국을 만들기 위한 기도문을 보면,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 기도의 대상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분명히 가르쳐주십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천국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올바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한 유대교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기보다 ‘시오니즘(Zionism)’이라 불리는 강한 민족주의적 집단 이기주의자들입니다. 그래서 유대교는 천국의 특징인 평화와 공존보다는 독선과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은 유대교인들이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근원도 가만 살펴보면 역시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을 우리가 제대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먼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우주 밖에 멀리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표현은 유대인들의 수사학적 표현이지요.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표현의 의미는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시고 우리의 지혜와 능력을 초월하시는 분” 이라는 뜻입니다그러므로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할 때마다, 우리가 믿고 기도드리는 하나님은 우리의 지혜와 지식을 능가하고 시공을 초월해 계시는 초월자이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초월자이신 하나님을 믿으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시험에 빠질 일도 없습니다. 오히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지요. 사실 이 세상의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초월자 하나님을 믿으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시험에 들거나 좌절하는 일이 없어집니다. 유대교인들은 초월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그분께 기도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자기들 수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좌절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광야 40년의 유대교이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라 유대교는 기적을 일으키는 초월자 하나님만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기적이 필요할 때만 초월자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하였던 것이에요. 이런 모습은 구약의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 교회의 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하지 않나요?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유대교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올바른 기도의 대상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국이 이루어지려면, 즉 예수님이 이 땅에 이루려고 하신 천국을 우리가 경험하며 살려면, 내 수준으로 하나님을 강요하거나 평가하지 말고 초월자이신 하나님, 내 생각으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에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좌절하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할 일이 없어지고, 항상 기뻐하며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대하며 살아가는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두 번째 “우리 아버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라는 호칭을 통하여, 초월적인 존재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내재하셔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의 오해와 유대교의 오해는 나의 탐욕을 채워주는 나만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왜 이렇게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프리카의 기근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북한의 굶주리는 동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왜 이런 일들이 해결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초월자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을 알지 못하고, 나만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초월자 하나님이며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도 않는 일부 사람들이 탐욕을 부리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겐 양식이 남아돌고, 어떤 사람들은 일용할 양식이 없어 굶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UN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가 약 70억입니다. 그 중에서 아프리카에는 한 끼 양식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지요. 한국만 하더라도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이 1년에 8조원이 넘게 들어가고, 선진국에서는 잉여 농산물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의 반대쪽에서는 한 끼 양식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많다니 얼마나 웃기는 세상입니까?

 

 

 심지어는 보관연도가 지난 쌀을 굶주린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자 하는데도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복잡한 상황이 연출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모든 문제들은 초월자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해서 생기는 인간의 탐욕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음식이 남아 골치가 아프고, 다른 쪽에서는 음식이 모자라서 문제인 현상이 생기는 것이지요.

 예수 믿는 자들만이라도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마다, 모든 인류의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것을 믿는다면 이 세상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시면서 제일 먼저 우리의 기도의 대상을 가르쳐주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가르쳐주신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얼마 전 국민의 심판으로 정권에서 쫓겨난 리비아의 독재자 가다피와 이집트의 독재자 무라바크의 뉴스를 들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가다피의 재산은 150조이고, 무라바크의 재산은 75조라고 합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상상도 안 가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지요.

 가다피가 150조를 가지고 있는데, 리비아 사람들도 모두 부자입니까? 그럼 이집트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아마 리비아 국민들이나 이집트 국민들은 ‘조’라는 어마어마한 단위의 개념이 상상조차 가지 않을 겁니다. 가다피나 무라바크의 재산은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많은데, 많은 국민들은 하루 한 끼의 양식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지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가다피나 무바라크나 우리 모두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그들만이 아니라 예배 때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할 때마다 우리 모두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기도 제목도, 우리의 삶도 달라져야지요.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고 그분에게 우리의 필요를 간구해야 하고, 간구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 모두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서도 걱정을 하고, 걱정이 되니까 자신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염려가 쌓입니다. 염려가 쌓이기 때문에 당연히 탐욕적인 사람이 되지요.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국이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이 땅에 이루어지지 않고, 인간이 바라는 천국에 대한 갈망만 존재하는 것이에요.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지요.

 교회 옆에 술집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교회는 매일 철야를 하면서 술집이 망하도록 기도했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 날 술집이 망해서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자 술집 주인이 교회에서 술집 망하라고 기도해서 자기 술집이 망했다고 법원에 손해 배상 청구를 했다고 합니다.

 재판 과정에서 술집 주인은 교인들이 기도를 해서 하나님이 자기 술집을 망하게 했다고 하자, 목사님께서는 재판장에게 “기도한다고 기도한 대로 다 됩니까? 기도해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재판장이 기도해서 술집이 망한 것은 아니지만, 술집 주인은 하나님을 믿고 목사님과 교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답니다. ㅋㅋㅋ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지요.

 

 여러분,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사람들은 닥친 현실 때문에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지나간 일들 때문에 걱정하지도 않지요.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닥치지 않은 미래의 일 때문입니다. 그것은 미래를 모르는 인간의 한계 때문이지요. 그리고 설령 안다고 해도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염려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염려를 합니다. 이런 염려 때문에 오늘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쌓아 놓으려는 탐욕적인 기도를 드리게 되지요.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들조차 미래를 미리 당겨서 염려하지요.

 왜 그렇습니까? 염려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살자고 다짐한다고, 그 염려가 저절로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염려는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오는 증상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증상을 다스리려고 하기보다 원인 자체를 없애야 염려가 사라지지요.

 염려의 근본 원인은 “유한한 인간이 영원한 하나님 같이 되고자” 하는 죄 때문입니다. 그 이면에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모든 일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불신앙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즉 모든 인류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불신앙이지요.

 

 그러므로 염려하지 않으려면 먼저 염려가 되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찬송가에도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기도할 때마다 우리 모두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지, 나의 탐욕을 채워주는 신, 내가 만든 신에게 기도하면 염려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기도를 하면서도 더 탐욕적인 삶을 살게 되어 이 세상이 공평해지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지요.

 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더 탐욕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의 반복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기도의 대상을 분명히 알고 기도하는 것은, 열심히 기도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자기 능력으로 살아가려 하기 때문에 탐욕을 갖게 되고, 그 탐욕으로 자신뿐 아니라 모두가 공멸해 가는 세상, 기도의 대상을 올바로 알지 못해서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려면,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초월자이시며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많은 사람에게 증거해야지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초월자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임을 믿게 되어, 탐욕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고 서로 섬김으로써 모든 인류가 양식의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해야지요.

 

 이제부터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우리 모두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국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한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를 통하여 천국을 맛보는 신앙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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