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무엇을 쓰셨을까?
요한복음 8장 1-11절
2016년 06월 26일 주일 낮 예배
No. 269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아멘
●삽입구 / 초막절의 두 행사(물 긷는 것과, 촛불 행진)을 통하여 종말의 메시아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하는 중간에 삽입 절이다. 간음에 대한 율법과 바리새인. 현대 바리새인의 질문. 율법과 하나님 나라. 율법의 정신이 실종된 유대교의 실상.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예수를 시험함 이러라.
여러분 그 7장 맨 끝 53절에서부터 보면은, 또 8장 11절에도 보면은 괄호로 처져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은, 원래 요한복음에는 이것이 없었는데 후대에 이 내용을 삽입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괄호로 해 놓은 겁니다. 여러분 그럴 때에도 여러분 이 말씀이 삽입되었을 때에는 중요한 의도가 있는 겁니다. 7장 52절에서 8장 12절로 바로 연결이 되면은 내용이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왜냐하면은 초막절에 두 행사 유대인들에게 초막절에는요 실로암 못 가에 가서 물을 길어 와서 제단에 붓는 그런 행사가 있었고, 또 밤에는 여인들이 성전에서 마당 뜰에서 횃불을 밝히며 행진하는 것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두 행사를 통해서 예수님이 쭉 말씀해 가신 건데 중간에 이렇게 삽입을 해 놓은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내용에 있어서 이것이 하나의 해설이 되는 겁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은 율법과 하나님의 나라의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예수를 믿으면서 우리가 율법을 지켜야 되느냐? 은혜로 구원을 받는데 그래서 행위냐 은혜냐 믿음이냐 이런 논쟁이 참 많아요, 그 관계를 여러분이 정확하게 알면은 그런 논쟁이 없어지겠지요, 오늘도 여러분 이 말씀의 내용인 적선 이런 겁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계시는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음행한 여인을 붙잡아 왔어요.
1. 예수님은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하려고 안식일 범한 것을 이야기 하느냐, 라고 말씀 하신 것이다. 음행한 여인에 대하여도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다, 예수님께서 일어 나셔서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는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세워 놓고 묻는 겁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는데 율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하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예수님에게 이렇게 물은 거에요. 6절에 보면은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이렇게 말한 겁니다. 우리가 한 두주 세주 전에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지마는 그 앞에 보면은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시고, 자리를 들고 가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이 안식일이라서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그 사람을 책망하고 그것을 명령한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예수님은 그들에게 뭐라고 그랬습니까 7장에도 그러잖아요, 너희가 할례를 행하려고 안식일을 범하는데 나는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하려고 안식일 범한 것을 가지고 이야기 하느냐? 라고 말씀을 한 거에요. 여러분 이 말씀의 근거해서 이 내용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겁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죽이라고 하면은 38년 된 병자에게는 안식일을 지키는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해 놔 놓고, 이 여인은 율법 어겼다고 죽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또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그냥 놔 두라고 한다면은 당신은 말이지 하나님의 율법을 그렇게 어겨도 되느냐 거짓 선지자가 아니냐? 이렇게 모함하고 시험하려고 한 겁니다.
저도 종종 우리 교인들에게 듣는 질문은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은 우리가 교회의 여러 가지 규례를 안 지켜도 좋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어요. 왜냐하면 전부 그런 분들은 그저 이런 종교적인 규례를 지키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제가 그 규례의 본질과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한 건데 오해해서 나를 시험에 빠뜨리려는 의도는 없는데 결과는 그렇게 되는 거에요.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하면은 몸을 굽히고 아무 말씀 안 하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이렇게 쓰셨어요. 그러면서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는 먼저 돌로 치라, 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여러분 여기에 먼저라는 말도 굉장히 중요한데 설교 핵심에서 벗어날까 봐 제가 넘어갑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바로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다시 땅에 글을 쓰시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무엇을 쓰셨을까? 이랬지마는 사실 고민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이 무엇을 쓰셨을까 을 제목으로 할까, 죄 없는 자 돌로 치라 할까, 이랬는데요 죄 없는 자 돌로 치라는 말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라서 무엇을 쓰셨을까 이랬다고요, 여러분 무엇을 쓰셨을 것 같아요? 굉장히 중요한 말씀 저는 그래 생각해요, 이 사람들은 레위기 20장 10절에 보면은 율법의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명하였거니와 했는데 이 말하는 율법은 레위기 20장 10절을 말하는 거에요.
레위기 20장 10절에는 무슨 말씀이 있는가 하면은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한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한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래 놓은 거에요. 이 사람들은 이것을 확대 해석을 해 가지고 또 이 말씀의 하나님이 주신 의도를 알지 못하고 음행한 여인은 반드시 죽일 것이다, 라고 생각을 했고, 또 이 말씀대로 하면은 여러분 간음이라는 게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상대가 있어야 되잖아요, 남자도 와서 함께 죽이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에 빠트리려고 그 여인만 데려와서 죽이려고 했단 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땅에 쓰신 글이 뭐냐 하면은 저는 볼 때에 레위기 19장 18절 원수를 갚지 말고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2.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이시다. 당대에 과부가 되고 고아가 된다는 것은 곧 죽음이다. 곡식을 추수할 때에도 과부와 고아가 먹고 살도록 좀 놔두라 하셨다, 그 여인이 그렇게 살았든 현실에 너희는 책임이 없느냐?
너희들이 믿는 그 하나님은 이웃을 자기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율법이 모든 율법의 정신이지 않느냐, 또 신명기 10장에도 보면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이시다. 정말 불공평한 세상 어쩌면은 예수님 당시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은 오늘 이 시대와 거의 같은 거에요. 힘이 있는 사람들은 그 힘을 가지고 모든 자본을 독식함으로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살아가기 어려운 그 현실에서 하나님은 그런 죄인들이 만든 사회적인 틀을 깨기 위해서 신명기의 법을 주셨거든요, 그것이 실행되지 아니했을 때에 스가랴서에는 뭐라는 가 하면은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안 그러면 하나님께서 심판 하신다 라고 말씀을 한 거 거든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 책 다시 읽어 보세요, 작년 한 해에 신명기를 가지고 우리가 묵상한 것, 더불어 사는 사회, 신명기 강해 해 놨는데요 신명기의 그 말씀은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법을 주신 것은 없는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법을 준 거에요. 그 법을 지켜야만이 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신명기의 법에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요, 당대에 과부가 되고 고아가 된다는 것은요 곧 죽음에 이르는 것하고 같은 거에요. 오늘날은 여인들에게 여자들도 자기의 직업을 많이 가졌지만요, 우리 얼마 전만 해도 여자들이 사회생활 거의 못했잖아요. 하물며 옛날에는 땅도 옛날에는요 이스라엘에게는 아들에게만 상속되는데 혼자가 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거에요.
그래서 신명기 법에는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너희가 짓지 아니한 집에서 거하고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에서 소출을 거두고 너희가 배 부르게 되거든 절대로 나를 잊지 말라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이런 말 해 놓은 거에요. 너희들이 곡식을 추수할 때에도 중앙에만 해라, 밭 가장자리에는 놔 두어라,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살도록 과부와 고아가 먹고 살도록 좀 놔두라고 신명기는 말하고 있는 거에요. 너희가 추수를 해 가지고, 그 추수 단을 옮길 때에 어쩌다가 추수한 단이 떨어지면은 그것 뒤 돌아가서 줍지 마라. 하나님께서 네가 추수해서 가져가다가 떨어트린 것은 과부와 고아들도 먹고 살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러신 거야 이래 놓은 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이런 법을 그렇게 중요시 여기며 모든 것을 법의 잣대로 갖다 대는 이스라엘에게 오늘 지금 예수에게 데려 온 한 여인은 과부란 말입니다, 이 여인이 음행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주님은 땅에 써신 거에요. 죄 없는 자 돌로 이 여인을 치라는 말은 이 여인이 혼자 사는 이 여인이 음행을 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너희는 책임이 없느냐, 이런 말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정말 잘 알아야 되요. 여러분 저는 교회를 이렇게 교인들과 상담하면서 저도 목사이면서 또 목사의 아들로서 많이 듣는 소리가 그거에요. 목사님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 생활은 힘들어요, 신앙 생활은 너무나 좋은데 교회 생활은 힘들어요.
3. 비판을 받지 아니하거든 비판하지 말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예수님이 거룩한 것 진주라는 것은 율법 신명기의 법이다. 교회는 거룩한 진주가 있으니까, 이걸 가지고 주일성수 11조 안 하느냐 판단 정죄한다.
왜 그런 줄 아세요, 세상은요 세상은 잣대가 없어요, 그래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요 우리가 어릴 때에 정말 마음대로 사는 것을 영웅이라 생각했다고, 왜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기준이 아주 바르거든요, 그래서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누가 탓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편하다가 교회에 들어오니까 성경에 기준이 딱 생긴 거에요, 그런데 이 기준이 정말 귀하고 값진 건데 우리가 그 값진 보화와 진주를 개들에게 던지고 돼지 앞에 던지는 거와 같이 신앙 생활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뭐라는 가 하면은요 비판을 받지 아니하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은 너희가 비판으로 받을 것이다.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의 티를 빼리라 하면서 결론으로 뭐라는 가 하면은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고 그래요,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예수님이 거룩한 것 진주라는 것은 율법이에요, 신명기의 법이에요, 여러분 법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겁니까, 무질서가 좋은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오늘날도 우리나라도 그 좋은 법이 우리를 찢고 상하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어떻게 찢고 상하게 하는 겁니까, 힘 있는 사람은 그 법에 저촉 안받아요, 힘 없는 사람만 받아요.
그런데 원래 그 법의 재정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은 힘 있는 사람이 그 법을 무시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고요 힘 있는 사람이 그 힘을 가지고 약한 사람을 억압하지 못하도록 주신 법인데 나중에 실행할 때는 그 법의 정신은 하나도 없어져 버리고, 참 우리가 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겁니까, 누가 그런 이야기 했대요, 법은 아주 촘촘한 그물인데 큰 고기는 다 빠져 나가는 것이 법이래요. 작은 고기만 다 걸린대요, 그게 사회만입니다. 사회는 정확한 법이 없기 때문에 지 마음대로 살아도 누구 탓하는 사람이 없는데 뭐, 교회는 거룩한 진주가 있으니까, 이걸 가지고 다 판단해요, 왜 주일성수 안 하느냐, 11조 안 하느냐 왜 금하냐 사랑 안 하느냐, 판단 정죄 하거든요.
그래서 교회 오면은 뭔가 벌거벗긴 느낌과 누가 나를 잘못하는 것 없나 감시의 눈초리로 보는 거와 같은 이런 긴장감 유대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거룩한 보화 진주를 우리를 찢고 상하게 하는데 사용되고 있다고요, 왜 여러분 어떤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면은요 힘이 생겨요, 권위가 생긴다고요, 목사님도 여기에서 여러분들에게요 율법적인 설교를 하면은 교인들은 그때부터 목사님을 두려워하게 된다고요. 목사님이 눈초리가 한번만 돌아가도 뭘 지적할까 봐 그래서 규범을 잘 지키게 되요, 그런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야고보서는 이렇게 말한다고요,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자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라고 말을 하면서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 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4. 율법을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 한 분만이시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판단 자가 아니라 준행 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모든 판단은 하나님이 하시고 우리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 인들의 삶이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시기로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간데 이웃을 판단하느냐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그 율법을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 한 분만입니다. 사람에게 그 판단 권을 주지 아니한 거에요. 우리는 그 율법을 준행하는 자가 되어야 되요. 오늘날 이것이 안되니까 신앙 생활은 참 쉬운데 교회 생활은 어려운 겁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여러분들의 설립의 어떤 우리 교회 주제도 보면은 교회를 통하여 맛본 하나님의 나라를 이웃에게도 전하고 재림과 함께 완성될 그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중에 바라보자. 여러분 천국이 되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은 여러분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되요, 물론 목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판단 자가 아니라 준행 자가 되려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시험의 올무에 걸릴 때에도요 전부 자기가 판단해요, 에덴동산에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을 줄 알면서 하나님은 왜 만들어 놓았느냐고, 인간이 하나님을 판단하는 겁니다. 왜 사랑 많으신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가, 질문 자체가 잘못된 거에요. 우리 속에 이런 질문들은 다 사탄이 우리에게 우리가 하나님 되려고 하는 겁니다, 다 판단 자가 되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사회 생활 할 때도 그래요, 여 우리 당회에서도 뭘 하지만요 건축에 관한 것은 내가 전문이 아니거든요, 원장로님이 전문인 거에요. 원장로님이 무슨 말을 할 때에 내가 판단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잖아요. 우리 차량은 임장로님이 전문이에요.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을 가지고 어떠니 저떠니 판단하는 것은 웃기는 거잖아요.
여러분 목회도 마찬가지에요, 목회의 전문은 목사인데 교인들이 그것을 가지고 판단해요, 그러니까 목회가 어려운 거에요. 여러분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권자고 지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모든 판단은 하나님이 하시고 우리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이에요, 지금 이 말씀이 그런 말씀이에요, 너희들은 하나님이 주신 그 거룩한 율법 그 진주를 가지고 네가 하나님이 되어서 이웃에게 네가 마음대로 정죄하고 판단하는구나, 그 율법은 너희가 준행 자가 되어야 돼. 신명기의 법은 빠져 나가라고 준 것이 아니고 가난한 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너는 정말 지금 그런 삶을 사느냐, 네가 만약에 그런 삶을 사는 은혜 받은 자 하나님의 자녀라면은 오늘 현장에서 간음한 이 여인이 그 삶을 살았겠느냐?
여러분 우리 사회가 지금 맨날 그래요, 틀이나 모든 것들은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기 좋은 틀을 잡아 놔 놓고 없는 것들은 게을러서 그렇데, 그게 정치가들의 입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들의 입에서도 있다는 것은 이 말씀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설교를 쭉 하면서 참 교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은요 듣기는 듣고 아는데 막상 자기가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때는 잊어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구체적인 예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또 하면은 상처가 될까 봐 참 많은 조심이 있지만 제 어머니가 그러더라고요 어느 정도 크고 나니까 얘들은 말 안 해주면은 모른대, 그래서 자신의 말을 이야기해 주면서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점점 사람이 되어 가는 나를 보면서.
5. 우리 교회가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당회에서 좋은 안건을 내 놓기도 한다. 또 목사님은 교인의 삶의 어려움이 눈에 보인다. 예수님은 그 거룩한 율법을 주었는데 추수하면서 가장자리 남겨 놨어? 이렇듯이 교회의 차 운행의 문제에 대한 배려.
이제 우리 교회도 이제는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도 해 주어야, 정말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을 알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분 우리 교회에 지난 당회에 우리 교회 버스에 여러분들이 거의 안 타니까 우리 관리 위원장 되시는 임장로님이 뭐라는 가 하면은 목사님 이제 그 운행하지 말고 내가 그냥 운행하도록 할게요, 여러분 위원장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당회에 안을 내 놓았어요, 여러분 어느 것이 교회에 유익이겠습니까, 우리 그 임차를 넣어 주고 있는 것이 낳습니까, 그때 제가 그런 이야기 했습니다, 장로님 참 교회를 사랑하고 귀한 건의 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그런데 정말 여러분 임장로님 교회 사랑하는 것, 장로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사람들은 압니다, 저는 그 본 마음을 알아요, 또 장로님은 일이 보여야 되요. 그런데 목사는 사람이 보여야 되거든요, 제가 뭐라 했는가 하면은 그 우리 뻐스하시는 분이 김승국 집사님이 마흔 여섯인가에 명퇴 하셨어요 좋은 직장을, 얘들 고등학교 대학교 보내야 할 그런 나이에, 그래서 그 뻐스를 해 가지고 학원 하면서 주일날은 교회하면서 그것 가지고 정말 얘들 양육하는 거에요. 저는 여러분 그것보다 집사님이 보이는 거에요. 모르겠어요 여러분들은 목사님이 뭐 또 교인하나 떠날까 봐 그 상관 없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거에요, 그 집사님의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냥 하자, 졸업하고 나면은 그 집사님이 교회에 사례를 주는 것도 안 받으려고 할 때가 안 오겠나, 여러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에요 교회는 그래야 되는 거 거든요.
여러분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여러분들 각자의 책임이에요, 여러분들 조금 편 하려고 교회 차 안 타잖아요, 누구를 판단하고 정죄하겠습니까, 우리가 그만큼 설교를 듣고 알아도 나의 판단과 선택에는 전부 자기 중심적인 것이 우리들이거든요, 오늘 이 간음한 여인이 여러분 그런 것은 율법으로 정죄해서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라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은 너희에게 그 거룩한 율법을 주었는데 너희들 추수하면서 가장자리 남겨 놨어? 곡식 떨어질 때 뒤 돌아가서 주어 가지 안 했어? 그래서 이 여인은 그런 짓 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거야. 오늘 우리 사회가 여러분 무엇이 마당을 쓸어도 그렇게 촘촘하게 쓸어 가 버리니까 우리 모두가 힘이 드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뭐라는 가 하면은 하나님이 저 장로님에게는 예수 잘 믿어서 신앙 생활 잘해서 율법 잘 지켜서 교회 예전 잘해서 축복했다고 하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 자입니까, 유대교입니까, 바뀌어야 되요. 정통과 규례를 가지고 사람을 얽어 매는 교회가 좋은 교회가 성결한 교회가 아니고요, 일보다 사람이 보여야 되요. 이번에도 여러분들에게 맥추감사를 하면서 저는요 우리 교회도 참 차량도 노후가 되고, 그 다음에 교회도 들어오면은 타일도 깨지고 손봐야 될 것 많거든요, 그래 지난번에 임직 자들에게 제가 자유롭게 하세요, 임직 그것 하는 모든 행사 비용은 자유롭게 나누고 감사 예물은 자연스럽게 하세요 했더니만 여러분 정말 정성껏 했어요.
그런데 못한 분도 참 많더라고 보니까, 저는 한 명도 안 했다고 생각 안 해요 못했다고, 그때 좀 나왔으면 그일 하려고 했는데 좀 부족했어요. 또 그러다가 또 차입금 3천 만원 좀 갚아야 되요, 한 천 만원 남았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맥추감사는 좀 그래 하는데 정성껏 하자 이래요, 또 여러분들이 정말 어렵거든요, 목사는 구름 위에 살기 때문에 모르는데 저는 가끔 땅에 내려와서 보니까 어렵더라고, 회사에서 명퇴, 자영업 자는 자영업 자대로 그래서 저는요 여러분들이 하시는 만큼만 가지고 하려고 그래요, 안 하면 좀 불편하면 되잖아요, 이거는 행함이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영원한 가족의 눈으로 보면은 그래요.
6. 세상의 모든 사람이 못되고 나쁘다 해도 모든 엄마는 그럴 리가 없다고, 그랬을 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신다. 한 인간의 고통에 모든 사람이 사회적인 책임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천국은 해 됨도 상함도 없는 곳이다.
이게 성령의 충만함이고 지배함인데 자꾸만 엉뚱한 소리하고 있거든요, 여러분 제 어머니는요 이러더라고 세상의 모든 엄마는요 세상에 모든 사람이 저놈은 못 된 놈, 안 된 놈 해도 엄마는 그래요 그 자식에게 우리 아들이 그럴 리가 없다고, 그래서 엄마 생각하면 눈물 나는 거에요, 그런데 분명히 잘 못된 일이 눈에 들어 날 때는 이래요, 우리 아들이 그랬을 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꺼야,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해요. 성령 받으면 하나님 마음 가진다 했어요, 여러분들이 이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 마음을 가지는 거에요. 교회를 종교적인 전통과 규례를 가지고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쫙 나가는 교회가 좋은 교회 아니에요.
그래서 교회를 성결하게 가꾸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가 아니라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실족해서 잘 못한 일이 있을 때,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랬다면은 남에게 말하지 못할 무슨 이유가 있을 꺼야, 이 마음이 여러분들에게 있느냐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이 말씀이에요. 우리는 판단 자가 아니에요, 얼마나 많은 목사님이나 교인들이 판단 자가 되는지요, 왜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 영원한 가족인 것을 모르거든요, 가정은 좋은 거요 일보다 사람이 보여요. 돈보다 사람이 보이는 것이 가족입니다 콩가루 집안 말고요, 우리 교회가 콩가루 집안 되야 되겠습니까?
유대교는 콩가루 집안이 되니까 사람보다 율법이 중요했고, 종교적인 전통과 규례가 중요했든 겁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지금 하시는 말씀이에요 땅에 쓰신 것이 뭐냐? 남의 아내와 간음한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함께 죽이라고 하는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는 그들에게 그 여인이 지금 그런 짓을 했을 때에는 누가 창녀로 살면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거룩한 신명기의 법을 얼마나 지켰느냐, 그 여인이 그렇게 한 것에 대한 너는 사회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도 정말 우리 사회가 이런 사회가 되도록 우리가 기도 해야지요, 해 됨도 없는 상함도 없는 나라가 되도록.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은 좋은데 교회 생활은 힘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전부 율법에 입법자가 되는 거에요 재판관이 되는 거에요, 준행 자가 되지 않고, 그래서 어떤 사람의 뭐 하나만 잘 나면은 온통 까벌리고 상처 주고 수군수군 하는 것이 우리 교회 말고 오늘 한국 교회 현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엄마는 뭐라고 그래요, 우리 아들이 그랬을 때에는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참 저는요 예수님이 함께했든 그 공동체에는 당대에 사람들이 사람 취급 안 했든 세리와 창녀와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앉아 있을 자리가 없는 깨끗한 교회를 만든다고 그런 사람들이 올 자리가 없어요.
죄 없는 자 돌로 치라는 것은 여러분들의 양심을 호소하는 게 아니에요. 한 인간의 고통에 모든 사람이 사회적인 책임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성령의 충만함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거에요. 하나님의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는 것은 사람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사랑하는 자리로 내려오는 거에요. 성령의 충만함이라는 것은 방언을 하고 종교적인 몰입 현상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가족의 눈으로 이웃의 허물을 보는 것이 성령의 지배함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큰 프로젝트를 하고 내 목회 뭐 30주년에 이런 일을 이루었다, 좋은 교회 아닙니다. 바꾸세요 이제는 좋은 교회의 가치를.
뭐 가난한 사람을 많이 구제해 주고 이런 게 아니에요. 전부 좋은 교회 판단을 자본주의적 가치관이나 아니면은 사회의 운동의 가치관으로 판단해 버린다고요, 천국은요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곳이에요,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곳은 인간이 재판관에서 준행 자로 내려올 때 가능한 겁니다. 좀 더러워지면 어떻습니까? 아멘 242장 찬양 하겠습니다.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죄인들이 사는 세상에 앞 가장자리의 것은 추수하지 말고 놔 두라 고아와 과부의 몫이니라, 네가 추수하다가 떨어진 곡식단은 뒤 돌아서서 줍지마라, 그것이 생계의 절박한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사회가 없는 사람의 피눈물을 흘리게 해서라도 부자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교회에서 정한 규례를 따라서 11조만 많이 하면은 축복 받았다고 하는 헛된 복음 때문에 빗자루로 먼지를 싹 쓸어가는 죄인들이 사는 세상이 되어져 버렸고, 이런 세상에서 동백에는 힘 없고 가난한 사람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 한번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으면서 살아가면서도 나보다 못한 사람을 가족의 눈으로 보면서 율법의 정신을 준행하기 위해서 귀한 예물을 드린 것입니다. 주님 열납 해 주어서 우리 사회가 먹고 살기 위해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잘 하는 일, 다른 사람에게 주익이 되는 일을 찾는 사회가 되는데 자그마한 모퉁이가 되는 교회의 노릇을 하도록 주님 그 은혜의 얼굴을 이곳으로 향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진주와 같은 율법을 하나님의 자리에서 타인을 정죄하는데 사용함으로 찢기고 상한 유대교에 주님 친히 오셔서 율법의 준행 자가 되도록 자신의 몸을 찢어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를 영원한 가족 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한 영혼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사 하루를 천 년같이 천 년을 하루같이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모든 사람은 사람의 잘못을 보지만 그 잘못의 동기를 보게 하여 주시고, 모든 사람은 영웅이 되려고 큰일을 벌리지만은 일보다 사람이 보이도록 우리 안에 아름다운 교통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오늘도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판단 자가 되지 아니하고 준행 자가 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교회를 성결하려고 다른 사람을 판단 하지 아니하고, 준행 자가 되려고 하는 은혜의 심령 위에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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