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 담임목사
명칭과 별칭
창 36:1-8
2013년 9월 1일 주일 낮 예배
No. 121
하나님 말씀 창세기 36장입니다 우리 1절에서 8절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1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2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3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
4 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
5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태어난 자들이더라
6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7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8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아멘
1. 판단하고 선택하는 문제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기준이 되야 순종하는 삶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죄를 도말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부활하시고 또 성천 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며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또 불의한 세상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 것을 믿는 자 들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2천년 전에 예수님의 모든 사역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야 되고, 또 교회는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는 곳이어야 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여러분들이 오래 해보면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기 보다 또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은 차라리 아니함만 못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이 겪어져요,
왜 우리가 그런 것이 일어나는가 아셔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라고 그들을 불러 주셨는데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은 하나님의 나라보다 정말 엉망진창인 삶들이 그들 속에 있거든요, 그를 때에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이 불안정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요, 구원 받은 우리들이 신앙이 어리고 또 아니면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종교생활을 하고 거듭난 자의 삶을 살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구원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과 교재 하는 삶을 살 때 천국을 누리게 되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거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오늘을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우리가 사는 사회적인 통념이나 또 우리가 살면서 인간들이 만들어낸 그 이미지에 함몰 되여 져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인데도 진리보다는 그런 이미지와 편견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루신 그 구원을 우리가 누리지 못하며 살아갈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왜 그런가? 제가 참 많은 고민을 하면서 오늘날까지 목회를 해오는데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뭔지를 모르는 것 같아요.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해야 할 이유도 모르는 것 같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말은 성경문자를 따가지고 그 문자대로 쭉 우리가 이래 사는 것 그렇게 산다면은 늘 책을 이래 뒤져 봐야 되잖아요. 부목사님들 채용하려고 여러분 이렇게 면담을 해보면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성경말씀에 어떤 구절에 영향을 받고 그것을 레마 이러면서 그런 이야기 하더라고,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려면은 먼저 여러분들이 아셔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많은 판단해야 할 문제와 선택하는 문제가 있어요,
그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는 삶, 그것이 말씀에 순종하는 거에요.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에 그 일에 가치판단이나 또 우리가 선택할 때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나 사회적인 통념으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해야 되요, 참 요즘 제가 책을 너무 많이 읽으니까 엉덩이가 아파요 사실 ㅎ ㅎ ㅎ 이번에도 제가 책을 쭉 읽은 탈무드에 보니까
1) 에돔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에돔사람이나 랍비 엘리쟈도 도움을 받기도 하고 서로 주기도 했으나 성경적이지 못했다.
랍비 엘라쟈라고 하는 사람이 쓴 글이 있어요 그 글에 보면은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이 엘라쟈가 해변을 이래 쭉 걸어가요, 그런데 배가 하나 파선이 되어서 한 사람이 때 목을 타고 이제 조난을 당해서 바다가로 오는데 모든 것 옷가지 다 날아가고 맨 몸으로 바닷가에 이래 도착을 했어요, 그래 랍비 엘라쟈를 만나서 뭐라는 가 하면은 나는 에돔 사람인데 내가 이렇게 파선을 당해서 이래 맨 몸으로 이렇게 조난을 당했는데 나에게 옷을 좀 주고 먹을 것을 주고 좀 호의를 베풀어 주세요, 그가 딱 보니까 랍비들 있잖아요 반달모양 쓰고 유대인인줄 알고 성경대가니까 성경대로 사는 줄 알고 그렇게 자기가 에돔 사람이라고 벌거벗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했대요, 그러니까 이 랍비가 하는 이야기가 나는 너에게 그런 것 주기보다는 네가 에돔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보다도 더한 수치와 고통을 당하기를 원한다 이랬대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하면은 내가 보니까 당신은 참 영예로운 사람이고 너무나 후덕하고 좋게 여겨진다 나에게 좀 당신이 덕을 베풀어주면 좋겠다,
이러니까 이 엘라쟈가 기분이 좋아서 자기가 입고 있든 외투를 벗어주고 자기집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으로 대접을 했다는 거요, 그런데 나중에 이 사람이 왕이 되었는데 그 왕이 되어서 자기지역에 자기 통치 관할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다 몰살하라는 명령을 내릴 때 유대인들이 엘라쟈가 랍비에게 와가지고 당신이 황제에게 가서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했는데 가서 보니까 그 황제가 예전에 조난당했든 그 사람이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 엘라쟈가 그 황제에게 우리 민족을 몰살을 시키지 말고 구원해달라고 이러니까 이제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는 거에요, 내가 옛날에 그랬을 때에 너의 성경 신명기 23장 7절에 보면은 에돔을 미워하지 말라 너의 형제니라,
내가 그 말을 믿고 네가 랍비고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사람인줄 알아서 내가 에돔 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호의를 베풀어 달라할 때에 당신은 거절을 하지 안 했나, 그러면서 한다는 이야기가 내가 당신네 민족을 용서해 주는 것은 성경 때문이 아니고 당신이 나에게 베푼 호의 때문에 당신 민족들을 내가 이번에 긍휼이 여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드라는 거요, 여러분 우리가 그 말씀에 보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에 대해서 얼마나 원수로 여기고 삽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에돔에 가지고 있었든 이미지 이거든요, 그런 그들에게 모세는 에돔을 미워하지 말라 너희 형제니라 애굽을 미워하지 말라 너희가 그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았든 좋은곳이니라 신명기에 이렇게 말씀을 해도 그 말씀을 따라서 어려움에 처한 에돔 사람에 대한 가치평가나 그 사람에 대한 행동을 선택할 때에는 신명기의 말씀이 랍비에게도 없는 거요,
2. 고백 회개 구원받고 성화되면은 모든 것에서 자유 하게 됨. 말씀은 실상 이미지는 허상.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따라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왜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간들에게는 자기 중심적으로 많은 이미지를 만들어가요, 어떻게 보면은 오늘날 현대에 우리가 지금 고통 당하고 힘든 것 이런 것들이 다 하나님의 진리에 말씀 하나님 앞에서 우리자신을 발견하기 보다는 인간이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어 가려고 하기 때문에 힘 든다는 겁니다. 그 이미지에는 얼마나 많은 오해들이 있는지 몰라요, 또 지도자들은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미워하는지도 모른다고요, 그럼 그런 것들을 하나님 앞에 와서 깨닫고 하나님의 진리 안으로 들어가야지요,
요즘도 보면은 여러분 현대사회에 자본주의 사회에 이미지 메이킹 자기의 이미지를 얼마나 잘 만들어서 얼마나 많이 파느냐에 따라서 자기의 삶이 성공 되여 지고 복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 우리가 그런 것들 때문에 매여서 내 이미지 관리 하려고 얼마나 힘들었느냐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와서 여러분들이 보세요, 이 바리새인들은 얼마나 많은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서 그 이미지로 먹고 살았습니까, 그러면 세리나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나는 죄인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이미지를 포기해 버리거든요, 여러분 목사님의 삶도 힘든 것이 뭐냐 하면은 목사라는 이미지 관리 하려면은 힘들어요, 그런데 우리는 다 죄인이잖아요 다 똑 같잖아요,
저와 여러분들의 만남도 이미지와 이미지의 만남으로 하니까 힘든 거에요, 뭐 장로님 권사님 된다고 해서 다 영화로운 단계까지 간 것 아니잖아요, 정말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좋은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시잖아요, 여러분들이 교회 생활에서 그런 삶의 교제[交際]가 있을 때에 교회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 정말 우리가 지금도 여러 가지 살기 어려운 것들 한번 보세요 여러분, 우리가 지금 아파트에 사는데 아파트값이 왜 이래 비싸요? 장동건이나 이영애 김태희 때문이잖아요, 아파트 선전하려면은 동백지구는 이런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아파트는 이런 특징이 있고 살기가 편하고 좋습니다 이래야 되는데 그래 안 하잖아요,
어떻게 합니까 장동건이가 애기를 않고 아주 만족한 모습을 가지고 아파트 선전하거든요, 뭡니까 질보다는 내가 저 아파트를 사면은 장동건이하고 행복하게 살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켜서 살게 하잖아요, 그러니까 장동건이가 더샾이라는 아파트를 십 년째 지금 광고로 먹고 살면서 자기는 빌딩 가지고 살면서 우리는 그 돈 장동건이한테 다 줘 버리잖아요, 이영애 구년 동안 쟈이 아파트 하다 이번에 잘렸어요 왜 결혼해서 이제 상품가치가 없으니까,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아웃도어 여러분 성경을 보면서 이런 것 까지도 생각해 보시라고요, 그저 여러분 하나님이 천국에 산다고 하니까 우리가 이 땅 떠나서 저 멀리 살아가는 것이 아니에요,
이 세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하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는 거에요, 제가 한 15년 전에 영원무역이라는 요즘 티비도 그런 것 하면 안 된다는데 교회도 그런 것 하면 되나? 아웃도어를 처음 해서 많이 팔렸어요, 그때 제가 노스페이스라는 것을 고어택스자켓을 하나 사는데 30만원 줬거든요, 그래 30만원 주니까 그때에 다운 안에 있는 자켓을 공짜로 끼워주더라고 그런데 요즘은 그 하나에 70몇 만원에 그것도 2-30만원에 판다고요, 왜 이래 올랐습니까, 여러분 그런 것 조인성이나 이런 애들이 입고 폼 한번 재니까 그것 입으면 자기도 조인성 되는 줄 알아,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그런 이미지에 함몰 되여 져 살아가고 가치 판단 예수 믿으면은 그런 것들이 허물어져요.
우리교회에 대학교회에 있다가 이곳까지 따라와서 신앙생활 하다가 호주 가서 이제 4년6개월 만에 다시 한국 들어온 김지연집사가 수요일 날 인사를 쭉 하고 가족이 이래 와서 밥 먹으면서 이래 했는데 참 가서 죽을 고생 했는데 돈 다 날리고, 아버지가 강남에서 사업하고 부유하게 살았다가 결혼하고 가서 했는데 거기에 가니까 편한 것은 뭐냐 하면은 떨어진 옷을 입든지 무엇을 입든지 그것 가지고 사람 판단 안 한다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천만의 기독교인 우리가 뭐 지금 이런 이야기 하기 전에 과연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것이 얼마나 우리 속에 자리 잡아가고 있는가 좀 이런 고민이 교회 다니면은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오늘도 우리가 전부 유교적인 명분주의 이런 것에 함몰 되여 져서 우린 예 때문에 우리의 삶이 얼마나 허해 져가고 있습니까, 사회는 여러분 옷 사면은 여러분들의 옷 요즈음은 그래서 잘 보이는 뒤에도 노스페이스 해놓더라고, 대학교회에 어떤 집사는요 그런 사람 있어요 교회에 딱 오면은 새 옷 입고 오면은 이것 뒤집어보는 취미 있는 사람 있습니다, 뭐 우리가 그런 것만이 아니에요 또한 여러분 이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얼마나 그렇게 교회 마저 지금 브랜드화 시키고 이렇게 하느냐 말이에요,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서 여러분 사람들은 그 이미지를 위해서 명칭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상대방과 대적하기 위해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별칭을 만들어서 이 집단이기 싸움이 일어나게 하는 겁니다.
그런 것에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하나님 안에서 제대로 되여 지면은 그것이 우리가 죄인의 고백 회개 구원받고 칭의 하고 성화되면은 그런 것에서 자유 하게 되여 져요, 어떻게 말씀 들어야지요 그 말씀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하여 가능한 것이겠지요. 우리나라 정치만 해도 보세요 교회가 천만이 있으면서도 교회가 뭐 우파 뭐 무슨 당 그러면 안 되요, 여러분 정치인들은 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데 탁월한 기술 기업은 그 이미지를 만드는데 얼마나 탁월한 기술을 발휘해서 우리를 현혹되게 합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어떻게 해서 김영삼 대통령 되었어요 모르겠어요 지금 사람 변했는지 몰라도요 지금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 된 김기춘씨 초원복국 사건 아시지요, 우리가 남 이가 그 한마디 때문에 김영삼 영남을 여러분 힘을 모아서 대통령 된 결과가 누구만 잘 되요 김현철이만 부자 된 것 아니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은혜 받으면은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따라서 살아가야 되는 거에요, 성경 속에 그런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어요, 교회생활을 하면서도요 저는 그래 생각해요 이번에도 제가 하반기에 지금 대대적으로 좀 한국교회에 개혁을 위한 세미나를 하려고 그래요, 그 세미나의 목표가 뭐냐 하면은 교회는 똑같고 목사는 똑같지 뭐 더 좋은 교회 덜 좋은 교회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지요, 목사님 똑 같지요 뭐 더 훌륭하고 덜 훌륭한 목사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여러분 교회 다니면서 그래야 되요, 성령 받고 은혜 받으면은 더 좋은 사람 덜 좋은 사람이 점점 엷어져야 되요.
그저 그 동안에 우리는 기복주의 그런 어떤 자본주의 논리의 이미지에 해가지고 뭔가 좀 자기에게 잘 해주면은 세상에 이런 사람이 없고 못 해주면은 그런 나쁜 놈이 없고 이런 것들 때문에 교회생활이 힘이 드는 겁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그런 이미지 조작을 굉장히 많이 해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살지 아니하게 하는 겁니다. 동물 중에 제일 억울한 동물이 저는요 늑대라고 생각해요, 음흉하고 못된 남자를 뭐라고 그래요? 늑대와 같다고 그러지요 그래서 내가 늑대를 찾아봤어요 늑대의 속성: 늑대는 평생 한 마리의 암컷과 사랑을 한대요, 늑대는 자신의 암컷과 새끼와 부하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동물이래요, 늑대는 사냥을 하면은 암컷과 새끼와 부하에게 먼저 양보하는 동물이랍니다. 늑대는 무리가 굶주리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호랑이라도 몰살을 각오하고 싸우는 것이 늑대래요,
늑대는 재혼을 하더라고 이전의 배우자의 새끼를 절대로 버리는 법이 없데요, 늑대는 인간이 먼저 그들을 괴롭히거나 자신이 굶어 죽기 직전이 아니면 공격하는 법이 없데요, 그런데 남자는 뭐라고요 여러분 우리가 이런 이미지들 개 같은 자식 이러는데요 개만큼만 돼보세요, 주인 안 버리잖아요 주인 알잖아요, 오늘도 우리가 이 교회에 생활을 하면서 이런 이미지들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많은 낭비를 불러 일으키고 얼마나 우리에게 분쟁을 초래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요. 성령충만 우리가 영성을 회복해야 되는 것은 그런 인간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버리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는 것이 영성의 회복이 되야 되요.
1) 모세가 에돔을 미워하지 말라는 것은 평화를 위해서임. 에서와 야곱에게도 나쁜 이미지를 심어서 자자손손 가져가니 이스라엘과 아랍이 원수로 살아감.
그러려면은 그걸 예수님은 자기를 뭐 하라고요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라는 말이 그런 말이에요, 우리가 너무 신학적으로 이렇게 되여 지니까 그런 거지요. 지금 우리가 좀 넓게 봐서 세상 이제 오늘 야곱 다 마치는데 야곱이 이스라엘의 조상이잖아요 열두 아들 여러분 야곱과 에서도 한번 보세요, 성경에 그런 왜곡들이 참 많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되요. 우리는 지금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 만은, 모세가 에돔을 미워하지 말라 한 것은요 평화를 위해서 한 거에요 그것 아셔야 되요, 여러분 우리 이스라엘이 왜 에서와 원수가 되었는가 하면은 에서는 에돔 이고 에돔은 거칠고 못되었고 폭력적이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이미지를 심어준 거에요.
또 아랍은 이스라엘은 아주 교활하고 나쁘고 언제나 우리의 것을 빼앗아 가는 이미지를 심어서 그것을 자자손손 그것을 가져가다 보니까 이스라엘과 아랍이 이래 원수가 된 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한번 잘 들여다보세요. 태어날 때에 야곱이 에서의 발목을 붙잡고 태어났어요, 그건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냥 그렇게 태어나서 몇 초 상관으로 동생이 되었으면은 하나님 믿으면은 그것을 받아드려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걸 부정하고 뭐해요 늘 형을 이기려고 하고 형의 것 빼앗으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형의 약점 굉장히 엑티브한 다혈질적인 그건 캐릭트 이잖아요 나쁜 것 아니에요, 그걸 이용해가지고 장자의 명분을 빼앗아 버려요,
그기 까지도 좋은데 아버지 속여가지고 엄마하고 공모해가지고 아버지로부터 모든 축복을 가로채잖아요, 그것 때문에 외삼촌에게 도망 가지요, 잘못한 것 없으면 도망갈 것 뭐 있어요 잘못했기 때문에 도망 가는 거지요, 야곱이 에서 에게 잘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아요, 20년 동안 그곳에 가서 살고 다시 돌아올 때에 얼마나 두려웠습니까, 그래서 선물 보내고 막 이를 때에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다가 또 보면은 에서는 뒤끝이 없는 사람 같아, 그저 동생얼굴보고 선물 보면서 그 화난 것이 다 살아져요, 그래서 와가지고 야곱이 형님 얼굴 보는 것은 하나님 얼굴 보는 것이다 하고 비비고 내주여 이러니까 그냥 에서가 아유 옛날에 그런 생각 안하고 그저 자기의 쌍둥이 동생이라고만 생각해서 같이 더불어 살아가요,
오늘 성경 여러분 본문에 보면은 지난주에 이 설교를 했기 때문에 오늘 이 설교를 할 수 있는 거에요, 지난주 가나안과 통혼금지라는 것 했잖아요 오늘 이 언약의 측면에서 보면은 오늘 성경 보면은 에서는 어쨌는가 하면은 햇족속 히위족속 이쪽으로 시집 장가간 것은 잘못이에요, 그리고 또 오늘 동생에게 땅을 양보하고 가는데 가나안 땅 그냥 버리는 것 언약의 관점에서 보면은 나쁜 거에요, 그러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여러분 보세요 6절에 보세요, 에서가 자기 아내와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어디로 갔다고요 다른 곳으로 갔어요 내 터전 비켜준 거에요, 아브라함이 롯 하고 재산이 많을 때 비켜주었잖아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비킬 때에 있는 땅이 가나안 땅이고 롯은 요단 들로 간 거에요,
에서는 지금 거꾸로 된 거에요, 그래서 언약의 관점에서 지난주의 설교를 여러분 먼저 인정을 하고 그러면 인간적으로 보면은 아브라함과 같이 양보의 마음이 에서 에게 있었든 거에요, 그리고 여러분 이런 이스라엘백성들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가지고 애굽으로 갔을 때에 제일 먼저 나와서 아말렉과의 전투를 하는 거에요,
2) 바울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고 공중권세 잡은 자와의 싸움이다 라고 말함(아말렉과의 전투는 쓸모 없는 거다)
아말렉과의 전투를 할 때에 그 전투 하면 안 되는 전투에요, 그래서 나중에 신명기 23장 7절을 모세가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 그 성경을 보면서 뭐라 그래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를 할 때에 여호수아가 이겼고, 그 손이 내려오면은 여호수아의 군대가 졌는데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바칠 때 마다 승리했다,
그래서 모든 목사님의 손을 아론과 훌과 같이 밭치고 기도하면은 승리가 있다 소설이에요 여러분, 그 말씀 속에 있는 것이 뭡니까 아말렉과의 전투는 쓸모 는 거에요 가나안이 중요한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제가 앞에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에요, 장동건이의 광고비는 쓸모 없는 거요 여러분들의 집 사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에요, 장동건이 광고비 오히려 줄여서 여러분들의 아파트 원가 내려주는 것이 더 귀한 거라 말입니다. 오늘도 교회가 이미지를 목사님의 이미지는 교회의 이미지 관리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낭비된다는 것을 아셔야 되요 여러분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박범신의 소금의 소설 속에도 있지 만은요 우리에게 100을 드려 줘 나놓고 1000을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이고 악한 영이라말입니다.
지금도 여러분들이 우리나라 잘살게 해주려고 한다 이런 것 보다는 우리나라 백성들의 삶이 건강하게 가는 것이 성경적인 것이에요. 이제는 유교적인 예 예 습관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진리 안에 들어가야지요. 그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가데스바네아에서 38년 지내고 에돔을 둘러가려고 할 때에 에돔사람들이 왜 여러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길을 안 비켜주었겠어요, 이전에 38년 전에 아말렉과의 전쟁에 후유증입니다. 여러분 그 뒤에 보면은 36장 16절에 보세요 고라의 족장 가담의 족장 그 다음에 뭐라고요 에서의 후손이 아말렉 족장이라 하잖아요, 그 바람에 이스라엘백성들이 마음이 상해가지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합니까.
그럴 때에 모세가 신명기에서 지금 그런 이야기 하는 거에요, 우리의 싸움은 가나안과의 싸움이지 에돔과 애굽과의 싸움이 아니다, 여러분 그것을 바울은 뭐라고 그래요,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공중권세 잡은 자와의 싸움이다 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오늘도 여러분 교회가 한번 보세요 오늘도 교회를 브렌드화 시키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 되야 되는데 교회끼리 다투다가 무너지는 거지요,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교회 안에서 서로 이미지와 자기를 위해서 싸우다가 보니까 정작 해야 할 일들을 못하고 있는 거에요, 이렇게 보면 여러분 옛날 성경이 옛날 이야기도 아니고 죽어서 가는 천국의 이야기도 아니에요,
그래서 모세가 에돔 미워하지 말라는 거에요, 나중에 여러분 그 유대교가 잘못 만들어낸 에서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극이 역사적인 비극이 창출되는지 몰라요, 사울과 싸웠든 아각왕 있잖아요 헤렘의 전쟁인데 그 바람에 사울이 왕위를 잃어버렸지요, 바벨론 시절에 보면 더 큰일이 벌어집니다, 바벨론 시절 여러분 에서도 알지요 이스라엘을 몰살시키려고 했든 하만이 아각자손 에돔의 자손이었다고요, 잘못 만들어낸 이미지가 얼마나 역사에 고통을 가져다 주는가 그런 것도 알지 못하고 우리 한국사람들은 한국 기독교인들은 완전히 정말 웃겨요 저는, 그저 이스라엘 하면 큰집과 같이 좋게 생각하고 아랍하면 괜히 나쁜 놈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솔직히 한번 보세요 기독교를 박해하고 예수님을 죽인 자들이 유대교에요, 바울이 선교여행 다닐 때에 로마가 초창기에 기독교를 박해 안 했습니다, 유대교가 기독교를 다 박해했어요, 처음에는 로마는 기독교를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을 해가지고 모든 풍습이나 교리를 인정해 주었어요, 그런데 유대교가 다니면서 합법적 종교 유대교의 분파가 아니다 이래가지고 기독교가 박해 받은 거에요, 2천 년의 교회의 역사 가운데 십자군의 전쟁이나 얼마나 많은 박해를 했습니까, 그런 것들을 우리가 변명하면 안 되지요, 복음에서 떠난 잘못된 이미지가 만들어낸 역사의 비극 생각해야 되요, 그래서 예수님은 뭐라고 그랬어요 혈통으로나 육적으로나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난자들이다, 오늘도 여러분 예수 믿고 나면은 우리의 가치판단이 혈연에 매이지도 안 해요, 연고에 매이지도 안 해요.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이 지은 한 백성임을 알아요, 여러분들이 성령 받은 사람 그 안에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종교적인 규범에 성실하고 얼마나 자본주의 가치에서 많은 것을 모았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니까요, 교회 안에서도 여러분 참 교회에 어려움 보면은 인간적으로 보면은 나와 남이지만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은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잖아요, 자식들은 저하나 편하면 되요 그러나 부모는요 못난 자식 때문에 우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거듭나고 성령 받게 되면은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지음 받은 한 가족임을 알아요, 그래서 사람을 사회적인 신분이나 혈통으로 차별하지 안 해요, 그래서 여러분 성경을 너무 교리적으로 보지 마세요,
로마서나 다 뭐라고 그래요 바울이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하지 말라 그래요, 야고보도 차별하지 말라 그래요, 그걸 요한은 혈통으로나 육 적으로 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표현만 달리할 뿐이에요. 오늘도 여러분이 정말 우리가 이 야곱을 이제 떠나면서 우리 속에 우리라는 집단을 위해서 사람들은 명칭을 만들어서 연대의식을 가지려고 하고 상대방에는 별칭을 주어서 대항하려고 해요, 여러분 경계층을 만들려면 그걸 박해할 때에도 전혀 죄책감까지도 가지지 않게 해요,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우리가 남이라는 남 이가 때문에 복음에서 멀어져 있는 겁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이렇게 사회적인 신분 사회적인 모든 것들로 사분 오분 되어서 서로 경상도 말에 그런 말 있어요 꼬시래기 지살 뜯는다고, 꼬시래기 지살 뜯는 세상 속에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에게 이루신 거에요.
참 재미있지요 여러분 게 옆으로 걷는 게 말이에요 게 그릇에 담아 놓으면 뚜껑 필요해요 안 해요? 뚜껑 닫을 필요 없데요 왜 한 놈 올라가면 한 놈이 끄집어 내리니까 뚜껑 닫을 필요 없다는 거요, 그게 오늘날 우리의 모습 아니냐 말입니다 한국교회모습이 아니냐는 겁니다 유대교의 모습이 아니냐 말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다면 남 잘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해주세요, 교회 안에 더 좋은 사람도 덜 좋은 사람도 없어야 됩니다. 더 좋은 교회 덜 좋은 교회도 없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도 세워져 가는 교회가 대한민국에 하나쯤은 있어야 된다고 봐요, 오늘도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여러분 그러잖아요 어리면은 왜 엄마는 형아 만 좋아해 하지만은 엄마는 형아 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잖아요, 그 부모의 마음을 아는 자 알 때에 자식이 큰 자식이 된 거에요 이게 성화란 말입니다. 에서와 야곱의 관계를 보면서 그 속에 인간의 죄 성과 비극을 볼 줄을 알아야 되요, 오늘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말씀을 따라서 판단을 하세요 그것이 뭡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느니라, 이 구원을 이루시고 우리모두에게 정말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땅에서 경험하게 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마음 저와 여러분들 속에 생기고 이런 사람들이 구원받은 자입니다. 아멘
◈봉헌기도◈
아버지 하나님 사단은 이웃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만 바라보게 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하여 이미지를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낭비하게 합니까, 또한 우리에게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주어서 파당과 분당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경제인 정치인 참 많습니다. 심지어 여기에는 종교인들까지도 함께 합류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 에서의 잘못된 이미지를 그린 유대교의 지도자들 이스라엘의 잘못된 이미지를 준 아랍의 여러 지도자들 그들에 의해서 세계의 화약고 공멸해나가는 세상을 바라 보면서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으시는 그 하나님 우리 모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한 것을 깨닫게 하신 성령님 오늘도 주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벗어버리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의복을 주님 앞에 벗어버리는 시간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 사람들의 평가와 눈초리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는 자유의 삶 주님 안에서 발견케 하여 주시고 아버지 하나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 만이요 사람은 섬김의 대상임을 알아서 교회 안에서 이 조그마한 빛이 어두운 세상을 비추어 나가는데 이 예물이 귀하게 쓰여지게 하여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더 좋은 교회 덜 좋은 교회도 없는 더 좋은 목사 덜 좋은 목사가 없는 더 좋은 교인 덜 좋은 교인이 없는 모든 교회는 똑 같고 모든 교인은 똑 같은 아버지 하나님 이런 아름다운 하나님의 보편적인 구원이 우리 가운데에 이루어져서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게 하시고 파당과 분쟁과 다툼이 있는 세상 속에 하늘의 평강을 들어낼 수 있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주님 2천년 전에 만들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우리성도들이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 우리가 만들어낸 여러 가지 이미지로 가치평가하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 정말 아버지 하나님 예수 믿는 축복을 예수 믿는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드린 헌금이 헌금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애를 드리는 우리의 시간 되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오늘도 사단의 권세에서 우리를 사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삼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우리를 향한 지극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가운데 내주하여서 명분과 허울과 이미지를 파괴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드리는 하나님을 알아서 우리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내 모습 그대로를 서로가 용납하는 복된 교회 만들어 가시는 성령님의 감동과 위로와 교통과 충만하심이 더 좋은 사람도 덜 좋은 사람도 더 좋은 것도 덜 좋은 것도 없는 하늘의 가치와 평강과 질서를 누리며 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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