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스크랩] ☆징크스와 종교적 선입견-담임목사 김종웅(2014.1.5 주일 낮 설교문)갈라디아서 1:1-3

차주희 2014. 1. 10. 11:22

 

 

 

담임목사 김종웅

 

 

징크스와 종교적 선입견

갈라디아서 1:1-3

2014 1 5일 주일 낮 예배

                                                                                                                      No. 139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before 바울과 after 바울의 변화; before 바울은 유대교의 랍비 이었고, after 바울은 사도가 되었다. 교인 바울에서 신앙인 바울로 변화된 것이다.

우리 송구영신 예배 때에 갈라디아서를 금년 한해는 상반기는 아마 쭉 함께 묵상하려고 한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이 대충 눈치 채었겠지 만은 제가 한해는 구약성경 한해는 신약성경 이렇게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사건과 인물중심이기 때문에 설교를 할 때에 한 시간 동안 2 3장 어떨 때는 열 장 까지도 해도 되지만 또 신약성경은 말씀이 중요합니다, 로고스 대신에 예수그리스도의 말씀 그래서 아주 한절 내지 세 절 잘근잘근 씹어서 우리가 함께 먹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듣고 나면은 갈라디아서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다 암송은 못해도 그래도 말씀을 쭉 마음에 그릴 정도는 있게 되리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먼저 우리가 갈라디아서 말씀을 쭉 보시면서 생각 한번쯤은 해야 되는 것은요 원래 이 갈라디아서는 AD49년 또 좀 늦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은 신약성경 자체가 복음서가 더 늦게 기록이 되었습니다 바울서신 보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약 30년이 지나면서 성경이 이렇게 쓰여지기를 시작을 했어요, 예수님 당시나 초대교회 때는 성경 하면은 구약만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여러분 보세요 구약성경을 읽는 유대교 또 기독교인들도 구약성경을 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성경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 성경 속에서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엘 엘리온 하나님 야훼하나님 하나님의 여러 명칭들이지요 똑같이 그 하나님을 믿어요,

 

1. 유대교와 기독교 신관의 차이: 유대교는 바리새인들이 만든 종교이다. 예수님은 구약을 잘못 해석해서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한 유대교에 올바른 하나님을 계시해 준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엉터리라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고, 또 유대교를 개혁해서 기독교가 된 거에요, 여러분들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분명이 알고 믿어야 구원의 기쁨이 있고 여러분들의 삶 속에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는 그런 신앙생활이 됩니다 종교생활 말고요, 그리고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생명과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는 유대교와 같은 신앙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성경을 보면서 유대랍비들이 해석 하듯이 성경을 그래 해석해서 그런 하나님을 믿기 때문 입니다. 똑같이 하나님 불러도요 예수님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믿어야 되요. 그리고 우리는 유대교와 같은 종교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되요.

 

갈라디아서를 보면서 여러분들 속에 저는 그런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정말 나 예수 잘 믿었지, 그리고 우리교회가 정말 이 세상을 조금씩 조금씩 변화 시켜서 나갈 수 있는 그런 생명과 능력을 회복하셔야 되요, 그러지 아니하면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면은 왜 그런 변화가 복음이 뭐고 교회가 뭐고 구원이 뭐고 을 잘 알려면은 여러분 유대교가 뭐고 기독교가 뭔가 그 차이를 아셔야 됩니다. 그 차이를 그저 하나님을 야훼라 한다 뭐 여호와라 한다 뭐 이런 차이 정도 예배에 예전에 차이 정도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차이를 잘 알려면은 바울의 변화를 알아야 되거든요, 바울은 유대교의 최고봉인 랍비 이였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 이였어요, 우리는 바리새인 하면 못된 놈 이러지만은 유대사회에서는 참 존경을 받는 종교인들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그 유대교의 랍비로서 바리새인으로서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아서 죽이는 일에 선봉을 섰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바뀌었거든요 그가 어떻게 바뀌고, 바뀌고 난 뒤에 그의 삶은 어떠했고 어떤 영향력이 있었는가 하는 것을 갈라디아서를 우리가 묵상하면서 종종 좀 함께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참 지금은 여러분들이 예수를 이렇게 믿는다 하고 기독교인이지만은 유대교적인 신앙이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자기가 변화된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웠는데 교인들이 자꾸만 유대교로 넘어갑니다. 또 교회에는 유대교 율법주의자들이 와서 바울이 전한 복음은 가짜고 내 말이 맞다 해서 교인들을 미혹을 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교인들이 그 미혹을 따라서 잘 넘어갑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6절에도 보면은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은 나중에도 보겠지 만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참 나 이해 안 된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내가 진짜 하나님과 복음을 전했는데 왜 그렇게 빨리 또 옛날로 넘어가서 유대교로 그래 되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1)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신이 사도가 되었다. 바울은 예수님이 계시해주신 그 하나님이 맞다 라고 각처에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웠다.

그러면서 오늘도 일절에 보면은 여러분들이 가슴에 새겨야 되는 것이 뭐냐 하면은 바울이 여러 서신 서에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이래 이야기 하거든요, 그럼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왜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이 사람에게 받은 것도 아니오 사람을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신이 사도가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유대교가 성경 보는 것 잘못되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맞다.

 

유대교에서 말씀하든 그 하나님이 아니고 예수님이 계시해주신 그 하나님이 맞다 라고 생각을 해서 그는 각처에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웠어요, 갈라디아 지역은 저 터키북쪽과 남쪽지역 두 군데 다 갈라디아 지역인데 그 지역에 교회를 세웠는데 바울이 교회를 세우는 갈라디아 지역 교회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거짓사도 바울은 이들은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와서 교회에 뭐라는 가 하면은 바울이 전한 복음은 가짜다, 우리말을 들어라 이런 거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무얼 내 세웠는가 하면은 왜 우리가 진짜냐 하면은 우리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은 선교사다,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에서 파송 받은 것이 아니고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 받은 거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2. 예루살렘교회가 아닌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 받은 바울이 인정하지 않는 그들에게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파송을 받은 거야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한다. 바울은 사도로서의 자격은 미달이었다.

그러면 여러분 예루살렘교회가 기독교의 모 교회였거든요, 그 교회의 초대 담임목사님이 베드로였고 2대가 야고보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수제자와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이런 사람들이 출석하고 담임했든 교회 그래서 모든 교회에 모태라고 하는 교회에서 파송을 받았으니까 우리가 진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바울이 파송 받은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저 위쪽에 있는 변두리교회였거든요, 그 이름도 없는 그런 교회였다고요, 그러면서 바울은 엉터리다 하니까 바울이 지금 내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예루살렘교회의 사람들이 파송한 것이 아니고 나는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파송을 받은 거야 지금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말미암아 라는 말은 사람에게서 낳다 라는 말은 뭐냐 하면은 이 사람들이 또 이야기 하기를 우리는 예수님의 12제자인 사도로부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의 12제자나 예수님에게서 받은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엉터리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실질적으로 여러분 사도라는 직분은 초대교회에 두 가지의 자격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은 예수님의 살아생전에 가르침을 받은 자여야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자만이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바울은 예수님의 살아생전에 제자가 아니었잖아요, 그때는 바리새인으로서 예수님을 증오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든 자의 위치에 있었잖아요, 그리고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는 만났지 만은 그 예수님은 예수님이 부활승천 하시고 난 이후에 부활의 예수님이었다고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전의 부활의 목격자의 자격으로서도 미달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바울이 여러분 참 굉장히 가슴이 답답했어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 기독교가 한가지 아셔야 되는 것이 제가 윤리가 아닙니다, 사회적인 덕목을 교회에서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 자주 하잖아요, 그런데 교인들 중에 또 목사님들 중에도 그런 사람 많습니다 자기를 겸손하게 여기기 위해서 바울은 봐라, 성경의 신약에 대부분을 기록한 사람이 자기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라고 하는 이런 겸손한자다, 우리도 겸손해야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 그런 말씀이 아니에요, 여러분 어떤 분들은 뭐 교회의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고개 많이 숙이면 겸손한 줄 알고 자기를 자꾸 낮추면 겸손한 줄 아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1)    바울은 사도이지만 예수님의 가르침도 받지 못했고 예수님 승천 이후에 경험 했기에 사도로서는 팔삭둥이와 같은 자격의 흠이 있는 자기의 한탄의 말이다. 스스로 사도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바울이 만삭되지 못하여 낳다 라는 말은 앞에 이야기 한데로 자기는 사도는 사도이지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 없고 또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험을 했지 만은 다메섹 도상에서 승천 이후에 예수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도로서는 팔삭둥이와 같은 그런 자격의 흠이 있는 그런 자기의 한탄의 말이에요, 그리고 또 목사님들이 자신을 미 말에 처한 종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겸손한 척 하는데, 미 말에 처한 종이라는 말은 그런 말이 아니고요 사도는 예수님의 12제자 앞에 그 자격으로 딱 그쳤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 자신을 그 사도의 반열로 스스로 자기를 올려놓는 거에요, 그러면서 자기 다음에는 사도가 없다고 탁 잘라 말하는 거에요.

 

그 미말에 처한 종은이라는 멘 마지막 꼬랑베기 있는 사도다 이런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은 여러분 열차를 이제 타고 가려고 하는데 열차는 출발을 했는데 다른 사도들은 다 출발 전에 타서 열차를 타고 가는데 자기는 열심히 달려와서 달리는 열차를 잡고 뛰어 타고 자기가 타자 이제 더 이상 탈수 없는 그런 절박한 상황을 말하고 있는 거에요, 그럼 왜 바울이 그렇게 자기를 사도의 반열에 올려 놓으려고 했는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되요. 자기를 그런 사도의 반열에 올려 놓으려고 한 것은 사도가 되어서 자기가 좋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바울이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사람들이 바울은 사도로서의 자격이 없기 때문에 혼자 다니고 또 선교 비도 교회에 요구하지 못하고,

 

자비량으로 다니고 이런다고 하면서 바울을 자꾸 깎아 내릴 때에 바울이 뭐라는 가 하면은 내가 선교 비 받을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니고 베드로와 같이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은 나는 다른 사람 실족 할 가봐 그렇게 안 한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그러지 안 했나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 권리를 주었는데 내게도 그런 권리가 있지만은 내가 안 한다 왜 복음이 훼손될 가봐, 자 여러분 요기 이 말씀 참 중요한 지금 제가 무슨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여러분들이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외형적인 겸손이 아니고 바울이 왜 자기를 사도의 반열로 그렇게 속하게 되려고 하는가 하면은 사도의 말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에 권위를 기록된 성경의 권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 보면 그러잖아요 바울이 쓴 글이고 마가가 기록한 것이고 에스겔이 기록한 것이고 이사야가 기록한 것이잖아요.

 

오늘로 치면 목사님이 기록한 것이라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성경이라 보고 일 점 일 획의 변화가 없다고 우리가 믿거든요 왜 그래야 되는가 하면은 그래서 사도는 그 기록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부여되기 때문에 사도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거에요, 여러분들이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저 큰 믿음교회나 엉뚱한 교회 다니지 마세요, 하나님에게 직통 계시 받고 이미 바울은 자기로부터 기록될 하나님의 말씀은 끝나고 이제는 목사님들이 뭐해야 되는가 하면은 계시나 환상을 보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잘 뜻을 전달해서 설명하는 것 조명의 은사가 있는 거에요 이것을 조명이라는데,

 

2)    바울이 유대의 랍비 바리새인으로서 하나님은 내가 만든 하나님이었고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니었고 그 신앙이 억압 학대하는 신앙이었는데,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되는 복음을 위한 말씀을 알고부터는 모든 것에 자유 하는 신앙생활이었기에 말씀의 권위를 위해서 사도권을 그렇게 변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바울이 왜 이렇게 자신의 주장을 그렇게 강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려고 했는가 이것 아셔야 되요, 왜 그러는가 하면은 자기가 옛날에 성경을 보면서 유대의 랍비로서 바리새인으로서 볼 때에 그때에 하나님은 내가 만든 하나님이었지 나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아니었고 내가 그때의 믿음은 내 신앙이 나를 억압하고 나를 학대하는 신앙이었는데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되는 복음을 위하고 성경 말씀을 알고부터는 내가 이제 모든 것에 자유하고 죽어서 가는 천국만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는 신앙생활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말씀의 권위를 위해서 자기의 사도권을 그렇게 변론하고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비록 안디옥 교회에서 자기는 베드로로부터 야고보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고 무명의 아나니야로부터 자기가 이해된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지 만은 바울을 가르친 자가 아나니야 아닙니까 무명의 용사 아닙니까, 그런데 내가 믿는 그 하나님이 맞는 것이고 그 하나님을 믿는 내 신앙과 같은 이런 신앙 내가 말하는 그 하나님의 나라가 너무나 진짜이고 그런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 때문에 바울은 자기의 말에 사도로서 여러 가지 경험 그 자격이 부족해서 만삭되지 못한 팔삭둥이 사도고 내가 멘 마지막 꼬랑베기에 있는 그런 사도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보면서 그러면은 바울이 왜 변화되었는가 왜 유대교가 아니고 기독교인가?

 

왜 그러면은 기독교인들이 초대교회에도 그렇게 유대교로 넘어가서 바울이 너희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넘어가게 되냐 이상하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을 아셔야지요. 그 유대교 랍비나 바리새인들은요 구약성경을 보면서 각색을 한 거에요, 어떤 각색을 했는가 하면은 여러분 그저 예수 믿으면은 복 받는다 잘 될 거야 덕담수준의 기독교 믿지 마세요, 구약성경을 보면서 전부 각색해요 지금도 그런 각색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QT을 조심해서 해야 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제가 가르쳐준 매뉴얼 따라서 해야 되요 성경해석을, 여러분 뭐 왜 그렇게 유대교가 매력이 있는가 여러분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아셔야지요, 참 제가 대학교회에서 목회 할 때에 참 웃기는 권사도 다 봤어요, 뭐 여러분 뭐라는 가 하면은 기도 할 때에 기도 시키면 하나님 아버지 쏘크라테스가 자기를 알라고 했는데 오늘 쏘크라테스의 말을 따라서 자신을 알게 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 쏘크라테스요 여러분들이 아는 진리로 하면은 참 발가락 사이에 때만도 못하는 존재임을 알아야 되요 여러분들이, 인간의 실존 여러분들의 실존은 성경은 뭐냐 하면은요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거에요 이것 아셔야 되요,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만난 사람은 나는 피조물이라는 고백을 해야 되요, 또 우리는 죄인이라는 말은 에덴에서 쫓겨 난 죄인이라는 말은 우리는 피조물로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서 살아가는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유한한 존재임을 하나님과 성경 앞에서 발견하지 아니한 사람은 거듭난 사람 아닙니다,

 

3. 헬라적 학문의 방법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지식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박사만 따면 어깨에 힘들어가는데 히브리적으로 박사를 따게 되면 어깨가 내려간다.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되는 하나님을 만나고 바울이 종교적인 선입견과 눈에 비늘이 벗겨졌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유한한 존재인 인간입니다 대답을 쓰는 것은 그것은 신학교에서 답은 100점이지만은 히브리적으로는 0점이에요, 이것을 잘 아셔야 되요 정보를 제제공하는 것 아닙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보면은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요, 학문이 전부 헬라적 학문에 방법으로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지식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박사만 따면 어깨에 힘들어가는데 히브리적으로 박사를 따게 되면은 어깨가 내려가요, 무슨 말이냐 하면은 여러분들이 제한된 존재라는 말은 어떤 의미냐 하면은 아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불안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요,

 

자 여러분 참 2014년을 밝아오는 2014년을 맞이했지만 불안하잖아요 왜 불안해요? 시간과 공간의제한속에 존재하는 인간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이 이번 앞으로 금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불안하잖아요 또 여러분들이 금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것을 알아도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불안하잖아요, 그래서 인간의 실존은 불안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은 뭐냐 하면은 불안을 해결하려고 살아가고 불안을 해결된다고 하면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걸어요, 그래서 무당이나 종교나 여러분 이런 사람들이 그 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미끼를 던져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게 한다고요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녀가 서울대학 가기를 다 바라잖아요,

 

그런데 얘가 들어갈지 못 들어갈지 모르니까 불안하잖아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 사회는 그 불안 때문에 내 자녀 서울대학 우겨 넣으려고 자기의 수고의 분복을 누리지도 못하고 다 허비해 버려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도 하는 이유가 이런 것에 있는 거에요,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은 자 잘 들으세요 유대교는 어떤 하나님을 각색했는가 하면은 성경을 가지고 인간이 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는 능력 제한된 능력이기 때문에 인간이 불안한 심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경에 있는 하나님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없는 그 일을 이루게 하는 하나님을 만들어버린 거에요 그게 우상입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녀가 자꾸 서울대학 하니까 그렇다 조금 더 높입시다 하버드로 합시다, ㅎ ㅎ ㅎ 하버드에 들어갈 능력이 없잖아요,

 

내가 넣게 할 능력이 있어요 없어요? 없잖아요 그러니까 자식 생각하면 불안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것이 매력이 있는가 하면은 내가 할 수 있는 그 일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없는 내가 원하는 그 일을 이룰 수 있다면은 얼마나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그런 간증하잖아요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냐 하면은 40일 새벽기도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열흘 금식 할 수 있어요 없어요? 그것은 할 수 있잖아 마음만 먹으면 그래서 내가 열흘 금식기도하고 내가 40일 새벽기도 하면은 내가 도저히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내 아들을 하버드에 넣어줄 수 있다고 하니까 얼마나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유대교로 다 넘어가는 거에요. 그것을 만드는 거에요 어떻게 만드는가 하면은 봐라 아브라함은 요런 종교생활을 하고 요런 종교를 하니까 하나님이 요렇게 해주었다, 야곱도 그랬다 요셉도 그랬다 전부 이렇게 만드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종교적인 선입견을 가지게 한다고요 마치 징크스와 같이, 어떤 사람들 이런 사람 있지요 여러분들은 오늘 아침에 양말을 신을 때 오른쪽양말 먼저 신었습니까 왼쪽양말 먼저 신었습니까? ㅎ ㅎ ㅎ 어떤 사람은 꼭 오른쪽 양말부터 먼저 신는 사람 있습니다. 왜냐하면은 오른쪽양말 먼저 신는 것을 자각한날 좋은 일이 생겼거든 그런데 어떤 날에는 보니까 왼쪽양말을 먼저 신은 날에는 아주 안 좋은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매일 그래 생각을 안 하다가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 돌이켜 보니까 아 오른쪽양말 신을 때 마다 좋은 일이 생겼다 그러면 뭐가 생기는 거에요? 징크스가 생기지요.

 

여러분 그런 간증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간증을 많이 들으면 안 되요, 그러면 종교적인 선입견이 생겨요, 그것이 사실이면 괜찮은데 그런데 그 얼마나 매력적이에요, 오늘 여러분 좋은 일이 날지 안 좋은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불안 하잖아요, 그래서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뭐는 내가 할 수 있어요? 양말을 오른쪽을 먼저 신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그일 먼저 하면은 좋은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니까 매력적이잖아요 이것이 유대교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종교적인 목적은 잘 이루어져 갔는데 그 신앙이 억압을 한 거에요. 그런데 기독교는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 아니거든요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되는 하나님을 탁 만나고 나니까 바울이 눈에 있는 그 종교적인 선입견과 비늘이 벗겨진 거에요.

 

4. 기독교의 하나님은 영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오감으로 경험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다. 하나님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의 대상이시다.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이다.

그래 여러분 무슨 이야기냐 하면은 이런 이야기에요 여러분 하나님 보고 싶어요 안 보고 싶어요? 보고 싶지 그래서 예수님 제자도 예수님에게 뭔가 하면은 자꾸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하니까 선생님 선생님 하나님 한번만 보여주세요 그러면 내가 절대로 신앙 안 버리고 그대로 할게요 이러니까 예수님이 뭐라는 가 하면은 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다 이러는 거에요, 여러분 자 여기에서 제 책 1권에도 있지만은 우리 예배를 드릴 때 마다 제가 뭐라고 그래요? 하나님은 뭐라고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기독교에 하나님은 영이라고 믿어요, 자 그러면은 전부 존재론적으로 보니까 문제인데요

 

요것도 나중에 많은 이야기 해드릴게요, 여러분 공기를 본 사람 있어요? 공기본사람 있으면 손 한번 들어보세요, 사랑을 본적이 있어요 그럼 공기 있어요 없어요 사랑이 존재해요 안 해요 존재하잖아요 real이에요, 이 세상에는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오감으로 경험할 수 없지만은 존재하는 것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이세상에 가치 있는 것들은 우리가 눈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보다도 경험되지 않는 것들이 훨씬 더 가치가 있어요, 왜 눈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 되요, 우리가 눈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변하지 안 해요,

 

여러분 다이야몬드와 금이 왜 귀합니까? 변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사람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은 무엇으로 아는가 하면은요 변하지 않을 때 가치가 있어요, 조금 이익이 되면 해해 했다가 나쁘면 이러면 가치 없는 인간이에요. 좋으나 싫으나 언제나 한결 같은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모습하고 되고 난 뒤에 모습이 달라지는 사람은 가치가 없는 사람이에요, 목사가 되기 전과 목사가 되고 난 이 후에 여러분 태도가 달라지는 것은 가치가 없는 거에요 이해되시지요, 이 세상에 보이지 아니하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이말 입니다. 하나님은 왜 존귀하고 가치가 있는가 하면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아멘

 

그래서 하나님은 믿어야 되는 거에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의 대상이에요, 참 나 목사 되어서 제일 힘든 것이요 아이구 사랑 보여 달라고 공기 보여 달라는 사람 참 그것은 있는 것을 믿는 거에요 하나님 믿는 거에요, 그런데 그것을 자꾸 감정을 통해서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문제에요, 자 그러면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은 그래 막연한 믿음을 준 것이 아니에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겁니다. 바울이 그것을 안거에요, 그럼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뭐냐 그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 이랬다고, 여러분 우리가 회복이 있는 잔치 때 다 배웠지요,

 

5. 바울의 변화: 하나님의 행위는 두 가지 창조와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이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바울은 믿음으로 바꾼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행위는 두 가지에요, 창조와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이에요, 자 요것 꼭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물질의 복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변두리 일이에요, 목사님이 여러분들의 심방하는 것은 변두리 일이에요, 목사님은 성경을 제대로 알아서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본질적인 일이에요, 자 여러분 요 말 잘 들으세요 우리 하나님은 그래서 바울이 그것을 깨닫고 로마서 4 17절에 이래 놓은 거요, 옛날 내가 바리새인일 때에 내가 유대교의 랍비 일 때에 성경 보면서 아브라함이 이래서 복을 받았고 저래서 복을 받았다 했는데 아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믿은 그 하나님은 내가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알게 되니까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든 것이다 이렇게 바꾼 거에요,

 

여러분들도 오늘부터 그렇게 바꾸어야 되요, 자 그러면 여러분들이 천지는 없는 것을 있게 한 것은 창조 인간의 역사 이전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할 수 없지만 부활은 인간이 경험한 것이잖아요. 사람들의 착각이 자꾸 예수 믿으면은 죽은 자가 살아난다 하니까 소생을 생각하는데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무생물이 유생물이 되는 겁니다. 왜 부활이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이고 그 일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하면은 이 무생물은 이 무생물에 생명이 들어가려면은 우주에 내재하는 어떤 존재나 에너지나 어떤 지해와 지식으로 가지고 불가능해요, 뭐 요즘 생명의 근원 힉스 이런 것 뭐 찾는데 절대로 생명은 우주 내에 존재하는 것으로 불가능한 거에요.

 

만약에 이것이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가 된다면은 이것에 우주 밖에 있는 초월한 존재의 전능함으로 행한 일이에요.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시신이 되면 무생물이에요, 무생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하나님만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 그 하나님이 자기에게 잘 보이면은 복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 되신 그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기 때문에 내 말이 진짜다 이런 말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이런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인가 이런 것은 회복이 잔치 때 반듯이 참여해서 들으세요, 그러면 그 하나님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은 오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은 아 부활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 생명 없어요.

                                                                                                                     

히브리적으로 여러분들이 뭐 해야 되는가 하면은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드리게 되면은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은 여러분들의 삶에 가치가 창조되고 행복이 일어나요, 자 교회는요 하나님의 나라는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물었어요, 언제 하나님의 나라가 옵니까 하니까 예수님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아니고 너희 안에 있느니라 이랬어요, 또 여기에 너희 안이라는 엔 헬라어로 엔이고 영어는 윗딘 어몽 뭐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고 있어요 전치사를 사전 찾아 아는 의미가 아니에요, 굉장히 영원적인 존재에 의미인데요 바로 이런 것이에요, 이 기독교를 여러분들이 너무 뭐 영적인 이런 것이 아니고 그 초월의 세계가 우리가운데 내재한 것이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은 구원이고 교회이고 천국이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려고 저 에덴동산 찾으려고 저 중동지방에 헤매는 것 쓸모 없는 일이에요, 에덴동산은 시간과 공간이 초월 되었고 범죄함으로 우리가 시공의 세계로 들어온 거에요, 그 시공의 세계에 들어와서 존재했든 것이 에덴동산 밖에 있는 중동에 역사가 시작이 된 거에요, 자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제대로 오늘은 오프닝 이니까 여러분들이 조금 시간이 가더라도 정확하게 들으세요, 조는 사람이 세 사람만 있으면 그만 하려 했는데 너무 잘 들어요, 자 여러분 요 부분이 요것을 알게 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우리가 자꾸만 그런 것들을 시공에 존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가치를 변경하는 것이 기독교의 세속이고 유대교에요, 그럼 그것은 변하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그랬지요, 자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그 너희 안 이라는 말은 어떤 말이냐 하면은 우리의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하면은 불교가 되 버립니다,

 

6. 하나님의 나라는 실존하는 나라이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용납하신다. 불교는 해탈이라 한다. 기독교는 사랑이라는 것 그 사랑은 수용이다. 예수님께선 삭개오 막달라마리아 그냥 받아주셨다, 그러니까 변화 되었다.

사명대사가 도 닦으러 중국으로 가다가 비가 와서 동굴에서 목말라서 한 모금 먹으니까 아이 일어나니까 해골바가지의 물을 먹고는 그 물이 아침에 보니까 해골 바가지라서 토하면서 아 해탈 마음에 있구나 기독교 그런 것 아니에요 여러분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니에요, 그래서 결단하는 말 쓰면 안 되요 실존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떤 하나님이냐 하면은 여러분 하나님이 왜 좋은가 하면은 자꾸만 우리아들 서울대학 보내줘서 이런 물질적인 하나님 말고요 여러분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용납하세요, 아멘 이것 아셔야 되요, 여러분 어떤 존재가 좋은가 하면은 그래서 제가 기독교는 사랑이라는 것 그 사랑은요 수용이에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을 수용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좋은 것은요 자꾸만 그 하나님에게 잘 보이면은 복 준다고 하는 유대교 구약성경 각색한 그들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보여준 것이 뭐냐 하면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셨어요, 삭개오 그냥 받아주었어요 막달라마리아 그냥 받아주었어요 그러니까 변화 되요,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여러분 받아주는 사랑이 있어야 되요, 좋은 교회하고 안 좋은 교회가 그런 거에요, 자 여러분 요다음에 또 요것보다 조금 더 이야기 하겠는데 두 사람이 졸아서 대강 마쳐야 될 것 같아, ㅎ ㅎ ㅎ 여러분 이븐알렉산더에 나는 천국을 보았다 책을 읽어보세요 우리 김원수 집사님이 이야기 해서 했는데 그기에 보면은 다 맞는 것이 아니고 정신과 의사인데 임사체험을 안 믿었다가 자기가 임사체험하고 난 뒤에 천국은 실존한다 하나님은 실존이다 하고 쓴 책인데 많은 천국을 보았다는 책 가운데에서 그래도 성경적으로 합당한 책이 그것 하나더라고 내가 보니까,

 

그기에 보면은 뭔가 하면은 자기가 죽어서 갔는데 그 천국은 어떤 곳 이었는가 하면은요 분명히 내가 이래 보는데 말을 안 해도 사람이 100% 이해가 되고 내가 용납이 되더라는 거에요 그게 천국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좋은 교회는 건물이 화려하거나 여러분 여기 와서 뭐 점심때 불고기 주는 그런 교회가 아니고요 좋은 교회는 내가 말을 안 해도 내가 상대방에게 용납이 되는 교회 그런 교회가 좋은 교회에요, 여러분들이 인간관계 그것이 신앙생활이에요, 여러분들의 영성과 성화가 그렇게 일어나야 되요. 왜 우리가 용납을 못하는가 하면은 받은 상처 내 경험 때문이요, 그런 것들이 나를 용납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일날 날마다 회복이 되여 져서 하나님이 나를 지배함으로 나도 그런 모습으로 점점 나아가야 되요,

여러분 이런 성화가 일어나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보세요 여러분 참 제일 불행한 사람이요 남의 꼬라지 못 보는 사람 이놈은 이래서 싫고 저놈은 저래서 싫고 모든 것을 수용하는 사람 자신이 행복해요, 우리가 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 하면은 그기 이븐알렉산드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 하고 있어요, 말을 안 해도 알아지는 것 여러분 우리가 지금 제가 여러분들에게 설교하잖아요 제가 지금 굉장히 힘이 들어요 왜 힘이 드는가 하면은 알게 하려고, 그런데 여러분들이 왜 내 말을 100% 못 알아듣는가 하면은 이 말은 시간과 공간을 통과해서 여러분들 속에 들려져요, 시간과 공간을 통과하는 순간 말에 왜곡이 일어나기 시작해요 이해되시지요, 저는요 어떤 교회를 지향하는가 하면은 내가 목회를 좀 해서 이제 첫날은 이래 하지만 마지막 주에는 저 이래 설교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알지 ㅎ ㅎ ㅎ 내가 뭘 말할 가 알지 끝,

 

그것보다도 한해 더 지나고 난 뒤에 그 다음주일날은 내가 알지가 아니고 응? 하면 응! 이해되시지요, 여러분 갈라디아서를 보면서 우리교회가 이래 되야 되요, 만 명 모으려 하지 말고요 큰 재정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뭐해야 되는가 하면은 말을 안 해도 나를 받아주는 사이 아멘, 참 힘든 것이요 뭐든지 설명해야 알아듣는 사이 참 힘이 듭니다, 설명해도 받아드려 지지 않는 것은 더 힘든 지옥입니다, 우리하나님은 여러분 저 하나님 너무나 좋은 것이 하나님은 내가 밤 새도록 하나님에게 말해도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하시는데 나를 다 받아 드려줘, 무슨 말인지 모르나 ㅎ ㅎ 그런데 어떤 하나님은 자기가 말하고 난 뒤에 하나님에게 다 들었대 나 그런 하나님 싫어요,

 

제 하나님은요 한마디도 말씀을 안 하는데 나를 100% 받아줘요 하나님의 나라에요, 창조의 하나님과 생명의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고 우리가 회복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가 그런 나라에요, 여러분 사회에서 참 힘들었잖아요, 그저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입에 목 젓 세워가면서 침 튀겨가며 이야기해도 못 알아주니까 답답하잖아요, 우리가 성령을 함께 나눈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받아드려서 여러분 모든 사람은 여러분들을 오해해도 교회 안에 우리끼리는 내편 들어주는 그런 하나님의 인간의 관계, 성령으로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받아드리고 나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사람,

 

오늘도 여러분이 이곳에 와서 목사님 만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만나서 내 모습 이대로를 받으므로 말미암아 이제는 여러분들이 기독교를 내 자녀가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학 보내주는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좀 지나지만은 내 자녀가 서울대학 안 가도 멋있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시는 예수님을 믿으세요, 사회적인 비용 많이 줄어들지요, 교회가 그 사명 가져야 되는 겁니다. 내가 젊은 날 100억을 안 모았더라도 노후가 걱정 없는 사회 눈에 보이지 않는 창조의 하나님을 사람들이 믿음으로 받아 드릴 때 저는 우리교회가 갈라디아서를 보면서 여러분 설교는 응, , 로 끝나고 여러분들의 사이에서는 누가 뭐 어쩌고 저쩌고 하면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설령 그러면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려서 하나님이 우리의 왕 되심을 정말 기뻐하는 그런 신앙생활이 2014년 회복되는 은혜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봉헌기도◈

주님 우리가 이 물질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한 줄 아시지요, 그러나 나의 나 됨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제물 얻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 우둔한 우리에게 알게 하여 주셔서 주님 앞에 굴복함으로 내가 얻는 소득을 누릴 줄도 알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나눌 줄도 아는 복된 생애 물질의 노예가 아니라 지배하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러한 삶을 살아가도록 주님께서 몸 된 교회 세우심을 믿습니다. 구별하여 드린 물질이 교회가 세워져서 우리의 모든 삶이 참 땅에서도 교회를 통하여 평안한 복된 신앙생활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없고 혈육은 없을지라도 예기치 않는 사고를 당하고 힘든 일을 당했을 때 교회 때문에 마음 든든하고 어린 자녀 두고 주님 앞에 가는 그 순간에도 교회가 있기 때문에 자녀걱정 하지 않을 수 있는 이런 교회로 회복되는 귀한 역사 있게 하시고 이런 교회 관이 한국교회를 개혁할 수 있도록 우리교회를 쎔풀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죽음가운데 부활하심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확실히 우리에게 인식하게 하심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하심과 우리가운데 내주하셔서 영을 함께 나누어 가지게 함으로 설명을 안 해도 우리가 서로가 상대방에 편들어주고, 설명을 안 해도 상대방을 용납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케 하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오늘도 교회는 주님이 몸 버려 세우신 교회임을 알아서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 초월된 그 하나님의 나라를 교회를 통하여 맛보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 피로 값 주고 사신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출처 :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글쓴이 : 차주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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