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종교적 아집과 그 믿음
갈 1:18-24
2014년 2월 9일 주일 낮 예배
No. 144
하나님 말씀 갈라디아서 1장 18절에서 24절입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아멘
●바울은, 그 전에는 유대교도로서 이스라엘 즉 혈연 공동체(선민사상)를 중요시했든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종교인에서 신앙인으로 거듭났고 참된 하나님을 만나면서 굉장한 자유를 얻었다. .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요 잘 들으세요, 갈라디아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또 이 우리가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회복해야 됩니다. 그러나 전체에서 여러분들이 한가지 아셔야 되는 것이 갈라디아서를 우리가 함께 묵상할 때에 종교인에서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고 새로워져야 되요. 왜 그래야 되는가 하면은 종교인은 여러분들이 종교적인 여러 가지 짐을 지면서 살아가게 되여 져요, 신앙인은 내 자신이나 나의 감정이나 우리사회의 여러 가지 통념이나 이런 것에서 아주 자유 하게 되여 져요, 여러분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가야 예수 잘 믿었지 이런 이야기 하게 되는 겁니다. 우린 그저 남이 장에 간다고 나도 장에 따라가면 안 되요 그런 신앙 아닙니다.
1. 바울은 유대교의 최고봉이었고 랍비이자 바리새인이었다, 그때는 하나님의 교회가 유대교인줄 알았는데 예수님 만나고 난 뒤에 성령의 공동체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인줄 알았다.
우리가 정말 사회적인 여러 가지 통념들 우리는 미국의 실용주의라든지 아니면은 샤마니즘 적인 사고라든지 유교적인 가치관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아주 편만해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우리를 굉장히 옥죄고 있다고요, 그래서 정말 인간에게 누리는 그 자유 그리고 다른 사람하고 평안 이런 것을 못 누리고 살아가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그 동안 맛보지 못한 그런 것을 맛을 봐야 되요,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우리가 쭉 보는데 오늘도 전반에는 지난주일 본 것을 제가 복습을 할겁니다. 왜 하는가? 아이들 공부 잘 하기를 바라지요, 그런데 요즘은 선행학습 시키는데 선행학습 공부 못합니다 복습을 해야 되요, 소화가 되야 건강하게 되거든요.
여러분들이 아무리 좋은 음식 많이 먹어도 그 음식이 소화가 되지 아니하면은 우리에게 건강을 가져다 주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도 여러분들이 수요예배 오시고 이러는 것도 뭔가 하면은 하나의 소화에 작용이에요, 또 너무 그럴 것 같아서 다음주부터는 제가 이제 다음주 말고 그 다음주부터는 신명기 구약을 가지고 우리가 좀 보려고 해요 그것도 의도가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다시 이제 갈라디아서로 와서 보면은 지난주 종교인들 바울이 종교인에서 신앙인으로 바뀌었거든요, 그래서 예전에는 자기가 믿는바 자기의 삶이 자기를 굉장히 이렇게 억압을 했어요, 그랬다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뒤에 참된 신앙인이 되고 참된 하나님을 만나면서 굉장한 자유를 얻었거든요, 그래서 자유의 복음이 갈라디아서 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전의 전통에 익숙해나 노니까 돌아가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너희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에서 그런 말씀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여러 가지 간증이나 말씀을 우리가 지난주 보면은 여러분들께 제가 말씀을 드릴 때에 여러분들이 이 말에 변화하고 생각을 달리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바울의 관점이 달라졌다 그랬지요, 구약성경을 보면서 유대교의 최고봉이었어요, 랍비이자 바리새인이었어요, 그때는 하나님의 교회가 유대교인줄 알았는데 예수님 만나고 난 뒤에 성령의 공동체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인줄 알았어요, 그럴 때에 여러분들은 외형적인 유대교 그 다음에 외형적인 기독교 이렇게 해버리면은 그 본질을 알지 못하는 거에요, 유대교는 구약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혈연공동체로 만들어버린 거에요,
1) 구약성경은 원래 야회신앙의 중심인 신앙공동체였다. 하나님께서는 선인 악인 유대인 헬라인 모두에게 비와 햇빛을 내려주신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예배고 그래서 그것을 받아드리기 위해서 무릎을 꿇는 것이 예배에서 준비된 마음이다.
할례를 받으라는 것도 유대인이 되야 된다는 거에요 아브라함의 피를 받아야 된다는 거에요, 그런데 원래 구약성경은 야회신앙을 중심으로 한 신앙의 공동체였어요, 이것을 바꾼 것이다 이말 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예수를 믿으면서 기독교인들이 왜 그렇게 세상에 빛이 되지 못하고 여러분들이 예수 믿으면서도 예배에 와서 이렇게 우거지상으로 앉게 되는가 하면은 여러분들이 혈연공동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구원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예수 믿고 난 뒤면은 여러분들이 혈과 육이 죽어지고 다시 여러분들에게 성령으로 인한 아이덴티티 의 새로운 변화가 생겨야 되요, 그러면은 어떤 변화가 있는가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그 변화 가져야 되요,
예전에는 내가 내 배에서 난 아파서 난 그 자식만이 눈에 밟히는 사람이었다면은 성령 받고 난 뒤에는 내 배에서 난 자식도 중요하지만은 남의 배에서 난 자식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그것이 신앙공동체에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거든요, 옛날에는 유대인에게만 비를 내리고 햇빛을 준다고 생각을 했고 유대인의 피가 아닌 자들은 율법을 지키지 아니 했기 때문에 개나 소나 돼지와 같이 생각했든 바울이었는데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보니깐 하나님은 선인이나 악인이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 모두 비를 내려주시고 햇빛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알면은 여러분 1권 책 읽어 보셨지요? 답을 쓸 때에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진화가 아니다 이런 논쟁 별로 중요한 것 아니에요,
그것은 헬라적 학문의 방법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것을 히브리적으로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사람은 나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다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창조의 하나님을 아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내 자신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도 하나님이 지은 최고의 걸작품인줄 알아서 다른 사람의 생에도 존중히 여기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자기 어떤 가치관 사회적인 통념 그 다음에 그 사회적인 통념으로 인한 자기 비하 남들 지배하려고 하는 생각 이런 것에서 참 자유 하게 되어 져요. 여러분 정말 행복 하려면은 여러분들 자신을 사랑하고 내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애도 존중하게 될 때 그런 사람이 세상에서 맛보지 못하는 행복을 누린다고요,
그런 삶이 있어요, 바울이 그런 삶을 살은 것이고 또 예수를 만난 사람들마다 그런 생애를 살아갔어요, 기독교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단 말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보세요 와서 여러분들이 온갖 걱정이 뭐냐 하면은 전부 자기중심적인 에고이즘[egoism]에서 시작이 되잖아요, 그것을 턱 벗어버리는 순간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책임질 것을 믿을 때에 여러분들의 모든 근심이 이 시간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가면서 후련함 인생의 무거운 짐이 턱 내려지는 것이 있다고요, 오늘 그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예배고 그래서 그것을 받아드리기 위해서 무릎을 꿇는 것이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예배에서 준비된 마음이다 말입니다. 바울이 지금 그런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리고 여러분 열성신학이라고 했지요,
2. 요한복음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 생각해서 십자가에 죽였든 바울이 부활의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뒤에 자기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빚진 자다라고 했다.
열성신학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자기네들의 종교적인 관섭 규례에 맞지 아니하는 것을 처단하는 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했다고요, 그래서 지난주일 요한복음을 보면서 예수님에 대해서도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어요,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십자가에 죽였다고요, 그랬든 여러분 바울인데 부활의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뒤에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은 자기는 구원의 빚진 자다 이런 거에요, 여러분들이 그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예배 때 회복 안 하면은 이 예배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 동안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이런 것에 너무 익숙했잖아요, 남 죽여야 내가 산다고,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힘이 들었습니까,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고, 나의 불행이 다른 사람의 행복이 되니까 이것이 죄인들이 사는 사회의 구조였다고요, 그런데 하나님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해보니까 자신은 모든 사람에게 헬라인이나 유대인에게나 모두 다 빚진 자다, 오늘 내가 이렇게 잘 살게 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섬기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 주었을 때에도 그 사람들이 나에게 채무자가 아니고 내가 채무자가 되는 삶, 여러분 우리나라에 제가 복지라는 것도 기독교는 보편복지 선별복지 이런 것 아니에요, 우리가 복지라는 것이 뭡니까? 나라 돈 가지고 우리 좀 줘 놔놓고 받는 사람 자존심 상하게 하는 것 그것이 세상의 복지에요, 그런데 기독교는 도와주는 사람이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 채무의 마음을 가지는 거에요,
여러분 성령 안에서 이것 어떻게 여러분 내가 결심한다고 가지겠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내 속에 안 오고는 어떻게 살겠어요, 이런 가치관의 삶을 우리 사회에 하나 둘 늘어가게 될 때에 여러분 얼마나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하나님의 의가 실현된 복된 생애를 삽니까, 예수님이 그 공동체를 가져다 주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요,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이런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니까 성공하게 되면은 그걸 일어 버릴까 봐 두렵고 내가 또 성공을 하면 더 큰 성공이 있는 사람 때문에 자기의 이룸을 누리지도 못하는 그런 얼마나 여러분 참 악순환 속에 살아갑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룬 것을 누릴 줄도 알아야지요 자기가,
1) 하나님 안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가 이것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함. 열성신학은 남 죽이고 나 살고 다른 집단 죽이고 자기 집단만 이루려고 하는 신학이다.
그래서 예수 믿고 난 뒤에 지난날 과거 때문에 오늘 불행할 필요도 없고 닥치지 않은 미래 때문에 미리 염려할 것 없고 오늘 하루 행복하게 살면은 여러분들의 생애가 참 행복한 겁니다. 또 우리사회의 가치도 왜 힘든가? 전부자본주의 실용주의적 가치로 필요에 의한 가치를 선택하잖아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 돈 벌 때에는 사회에 쓸모가 있고 나이가 들어서 은퇴하면은 사람의 가치를 비하시켜 버리고 그러니까 나이가 들면서 정말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고 자신의 생애를 수고의 대가를 누려야 할 사회가 엉망진창 되 버리는 거에요,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는요 어떤 사람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가 이것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 하는 거에요,
그래서 오늘도 2부 예배 때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여러분들의 인생의 설계를 새로 바꾸세요 열성신학 이런 것 가지고 하지 말고, 빚진 자의 신학으로 그래 저도 제 삶을 턱 돌아볼 때에 30대에는 그저 온갖 것 주어 담았어요, 40대에 제가 대학교에 있을 때는 주어 담은 것을 잘 정리를 했어요, 50대 이곳에 와서 그 정리된 것을 서툴게나마 하나하나 여러분들과 함께 이루어갔어요, 60대에는 뭐하고 싶은가? 그 이룸이 다른 교회 한국교회 여러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려고 한다고요, 참 얼마나 멋있어요, 여러분들 제가 오늘도 1부 예배 마치고 식사하면서 집사님과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여러분들의 생애도 그래야 된다고요,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에요, 열성신학은 남 죽이고 나 살고 다른 집단 죽이고 자기 집단만 이루려고 하는 신학이에요,
여러분들 참 그래서 우리교회에서도 윷 놀이하고 뭐 이럴 때 낼 때 제가 그런 이야기 하잖아요. 작년에도 뭐 우리 이럴 때에 돼지고기 이렇게 쫙 삼겹살 파티도하고 이랬는데 제 양복도 구멍 나고 코트도 이랬어요, 그래서 제가 앞으로 만나 주일날 해라 양복 그 불티 해서 하니까 아깝더라고, 여러분 그럴 때에도 제가 그랬잖아요, 어떤 교회에 가면 아 우리집사님 하나님 잘 믿어가지고 복 받아가지고 여러분들 모두다 고기를 내고 이러면 그 집사를 막 영웅시하잖아요, 저는 뭐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 한 점 먹을 때에도 내가 거지인가 이런 마음 들게 하는 교회도 있잖아요, 정말 여러분 은혜 받으면은 내가 냈는데 먹어주는 사람에게 너무 고마운 거에요, 왜 이 먹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낼 수 있는 물질을 나에게 주셨다, 본어게인 될 때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생각입니다,
3. 바울이 3년 동안 아라비아로 간 것은 지금 다마스크스 주변 길리기아 수리아 지방을 다니며 자기가 만난 예수님과 하나님을 증거 해서 가장 고귀한 자유를 가져다 주기를 시작한 것임.
바울이 그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헬라인이나 유대인에게나 복음을 전했지 만은 자기가 그랬다는 거에요, 그리고 지난주일 여러분들에게 바울이 그렇게 하고 난 뒤에 아라비아로 갔다 이랬잖아요, 혈육과 의논 안 했을 때에 그랬을 때에 성경해석 잘 해야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만나고 난 뒤에 아라비아에 가서 3년 동안 사막에서 기도하고 영성 훈련을 했다 소설이고 무역 지 입니다 뭐 무역입니까 가서 수련해서 종교적인 수행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여러분 교회에 신앙생활 하면서 신앙생활을 종교적인 수행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요,
종교적인 수행은 아니고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 복음의 능력을 믿고 전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이에요, 여러분 세상에 이래 보면서 정말 평생 자기가 돈 모아가지고 써 보도 못하고 그것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그 다음에 뭐 자기 뭐 유명한 것 이런 것 나타내는 사람을 보면서 불상하잖아요 그런 것에 메여 사는 것을 보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니고 천하보다도 고귀한 인생을 사람들에게 하나님 알게 하고 이런 것이 교회의 사명이고 그것이 신앙생활인 거에요, 이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는요 바로 뭐 했는가 하면은 아라비아에 갔다라는 말은 다메섹은 지금 다마스크스 입니다, 다마스크스 주변이 옛날에 나바티안 왕국이고 그 왕국일대를 아라비아라 그런 거에요.
그래서 그 길리기아 지방과 수리아 지방을 다니면서 자기가 만난 예수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증거 해서 여러 가지 사회의 제도와 잘 못된 가치관으로 억압받고 눌림을 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고귀한 자유를 가져다 주기를 시작한 거에요, 여러분 그러나 여러분 죽은 종교는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런 이야기 했잖아요 죽은 종교는 종교적인 수행이나 그런 등급을 매기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돌 중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면은 뭐 그것 말 같이 여기지 않잖아요, 그러나 수행도량 거하고 면백 하고 이랬든 성철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하니까 오 굉장한 설법이구나, 교회 다니면서도 복음의 진리 자체의 가치가 있어야 되는데 그것을 담는 그릇을 보면 안 되요 여러분,
4. 바울은 하나님 만나자 바로 3년 동안 전도했고, 이제 게바를 방문하려고는‘정보를 얻기 위해서’의미임. 이방인의 교회와 유대인의 교회가 하나의 교회가 되게 하려고 사적으로 확인.
여러분 살면서 나중에 조금 있다가 다시 보겠지 만은요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가 눌리는 거에요, 바울은 그 하나님 만나자마자 바로 전도했어요, 3년 동안 전도를 하고 오늘 이제 여러분들과 보는 것이 18절을 한번 보세요 보실 때에 자 펜 꺼내야겠지요 오늘 18절에 방문이라는 것 게바를 방문이라는 말에 동그라미를 치시고 23절에 그 믿음이라는 곳에 동그라미를 치세요, 그리고 저를 보세요 자 제가 여러분들에게 제 이야기하면 안 되잖아요, 오늘 여러분들이 보시면은 그 후 3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할 때에 바울이 자기가 그렇게 유대교가 구약성경을 보면서 혈연공동체로 열성신학으로 만든 그 하나님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를 통하여 계시되는 그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공동체를 탁 경험하고는
바울이 3년 동안 그 아라비아 계통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3년 후에 예루살렘에 게바 게바는 베드로의 히브리식 이름이잖아요, 만나려고 방문하려고 갔다 이래요 그런데 게바라고하는 이름은 조금 종교적인 것이나 모든 직급을 없애는 무색 무취한 좀 무시하는 말이에요, 그런데 바울이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가? 어떻게 보면 바울은 우리교회로 치면은 장종욱 전도사고 베드로는 나 정도 되는 것인데 아 장종욱 전도사가 나보고 김종웅목사님 안하고 김종웅목사 이러는 것하고 같은 말이에요, 자 여러분 이 말을 바울이 이렇게 한 것은 교만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지금 갈라디아의 교회에 온 사람들이 인간적인 그런 것들을 가지고 굉장히 신성시하고 유력시한단 말이에요,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입니다.
자 오늘도 여러분들이 세상에 살면서 어디 뭐 여러분 그 하버드대학 나오고 박사학위 가지고 또 뭐 어디 사회적인 직급이 높다 이러면은 괜히 우러러보는 것 여러분들이 너무나 사회적인 통념에 내가 갇혀버린 거에요, 예수 믿으면은 그 어떤 인간도 구원 받아야 할 죄인으로 보여져요, 물론 제가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존경하지만은 그런 사람들을 신성시하고 그럴 것 없다 이 말입니다 아멘, 자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사회가 여러분 보세요 예수를 믿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어디에 가면 내가 서울대학 나왔다면 갑자기 존경하게 됩니다 그것 아니에요 여러분, 어떤 사람인가 서울대학 할아버지를 나왔더라도 자기만 알면은 가치 없이 여겨야 되요,
초등학교밖에 안 나와도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을 존경해야 되요, 이 변화가 여러분들 속에 있어야지요, 여러분 여기에 부모들 자식 기를 때에 자기만 알거든 과외 시키지 마세요, 어릴 때 그래도 동생 좀 돌봐주고 친구 좀 볼 줄 아는 이런 얘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사회지도층이 되야 되요, 여러분 예수님 안에서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 그런 거에요, 여러분 살면서 괜히 그런 어떤 이력에 주눅드는 것이 자기의 비하와 행복을 못 누리잖아요, 어떤 이력 앞에서도 여러분들이 참 이루신 것을 인정하면서 존경하면서도 주눅들지 않는 사람 그 자유가 있다니까요,
저는요 뭐 어느 대통령이나 어느 사람들 앞에 가서 기죽지 안아요, 참 수고한 것을 인정은 하지만은 여러분은 여러분이에요, 교회에 와서도 아이구 목사님 앞에 뭐 여러분 내숭떨 것 없어요, 목사나 여러분들이나 같아요, 단지 한가지 그 목사님의 오는 말씀이 하나님 말씀일 때에 굴복하는 거지요, 여러분 우리는 종교적인 수행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수행했느냐에 따라서 나의 영성과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본 어개인 신분이 단번에 변화되는 거에요, 기도 많이 하면은 주의 영이 더 있다 지금 뭐 동한 거 합니까 겨울에 그런 것 아니에요, 바울이 그런 변화가 있어요, 그래서 그 사회적인 종교적인 그런 것으로 다 지배 받는 사회 속에 게바를 방문하려고 할 때에 자 여기 방문이라는 말은 자 오늘 요것 하나는 가져가셔야 되잖아요,
굉장히 중요한 이것은 내가 게바를 알고 지내려고 알고 지냄으로 말미암아 그에게서 또 다른 정보를 얻으려고 이런 말이에요, 자 그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이걸 아셔야 되요 바울은 사실은 복음을 완벽하게 알았지 만은 예수님의 공생에 대한 디테일함은 모르거든요, 항상 안 했거든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바울이 베드로에게 조금의 정보를 얻으려고 하고 또 베드로와 알고 지내려고 한 것을 여러분들이 이걸 잘 못 보면은 줄대려고 한다 이래 생각해버리면은 정말 성경 잘 못 아는 거에요,
1) 바울이 게바를 알려는 것은 바울이 전한 에베서교회 갈라디아교회 고린도교회 들은 바울의 교회가 된다. 그래서 자기가 세운 교회이지만은 유대인의 교회 예루살렘교회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게바를 알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 합니까 줄 대려고 얼마나 아둥 바둥 해요 대도 못하면서 또 댄다고 해도 별로 덕도 없고 줄대봐야 어디로 가게 됩니까? 가는 곳 몇 군데 없어요, ㅎ ㅎ ㅎ 여러분 그래서 뭐 우리 뭐 어떤 대학에도 무슨 경영자가 저 줄 대는 거잖아요, 이 얼마나 힘들어요 그렇게 살려고 하니까, 줄 안대고 살려고 해야 자유가 있지요, 그런 것들은 그런 노력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되여 져야 되요. 바울이 여기에 게바를 알고 지내려고 하는 것은 어떤 생각이었는가 하면은 앞에도 이야기 했지 만은 베드로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서로 이렇게 영역을 만들어 놨어요, 그러면은 바울이 전한 교회들 에베서교회 갈라디아교회 고린도교회 이런 교회는 바울의 교회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가 새운 교회이지만은 유대인의 교회 예루살렘교회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게바를 알려고 이랬든 겁니다.
여러분 아주 우리 한국교회 지금 필요한 말씀 중에 하나에요, 여러분들이 헌금에 대한 것도 아셔야 되는데 바울이 나중에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하면은 자기가 세운 모든 이방인 교회에게 예루살렘교회를 향한 헌금은 너희가 반듯이 해라 나는 안 줘도 좋다, 내가 갈 때에 너희들이 헌금을 해서 그 자리에서 하지 않도록 미리 헌금준비 해놔라 이러니까 그 바울이 세운 교회교인들이요, 지금 여러분도 마찬가지잖아요 헌금 이야기하면 괜히 마음이 안 좋잖아 ㅎ ㅎ 그러니까 바울보고 돈만 아는 목사다 뭐 이런 이야기 많은 오해를 했어요, 삯 군이다 그 엉뚱한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끝까지 예루살렘교회에 그 예루살렘이 그 당시에 아가보의 그 예언으로 그 시대에 굉장히 흉년이 들어가지고 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고요,
그 선교헌금을 보내려고 했든 것은 예루살렘교회와 자기가 세운 이방인의교회가 다 하나의 교회 예수님의 교회가 되게 하려고 한 거에요, 내 아성을 쌓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요, 실질적으로 헌금은 그런 의미가 있어요, 예전에 우리나라도 70년 뭐 저 80년 초반까지만 해도 해외여행 갔다 온 것은 굉장했어요 왜 여권자체가 안 나왔잖아요, 뭐 우리가 지금 이북 폐쇄라고 이야기 하지만은 우리나라도 불과 20-30십 년 전에는요 해외여행 못 갔어요 여권자체가 안 나와서, 한번 나가려고 하면 뭐라 하는가 하면은 자유연맹 가가지고 교육도 또 몇 시간 받아야 되고 이랬다고요, 그때에 통일교에서 한국에 지도층목사님들에게 여권을 내가지고 미국여행 L.A에 모시고 갔었습니다,
그래서 호텔에 딱 가서 뭐라는 가 하면은 사실은 우리는 통일 교다, 목사님들 여기 와서 우리통일교가 섬기는 돈을 가지고 미국여행 잘하고 돌아가시든지 아니면은 가시려면은 비행기삯 호텔 삯 내고 개인적으로 가세요 이랬어요, 통일교가 왜 그랬는가 자기네들의 돈을 가지고 쓰면은 통일 교와 기독교가 같은 종파다 그런 의미가 내포 되여 져 있습니다.
5. 바울이 이방인의 교회에 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준 것은 예루살렘교회와 이방인의 교회가 다 성령을 함께 나눈 예수님의 교회이다 그것 때문이다.
바울이 이방인의 교회에 헌금을 해서 예루살렘교회에 가져다 준 것은 예루살렘교회와 이방인의 교회는 다 성령을 함께 나눈 예수님의 교회이다 그것 때문이에요 쉬운 것 아니지요, 여러분 여러분이 살면서 힘든 게 뭔가 하면은 요만큼 하고 사람들이 이만큼 알아주기를 바라 억압이 있잖아요,
예수 믿고 나면은요 남이 안 알아줘도 주님 아는 것 은혜 때문에 가는 사람은 참 자유가 있지요, 지금 우리한국교회가 문제가 뭐에요, 내 아성을 쌓기 위해서 교회를 브랜드화 해가지고, 모르겠어요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비난하지 말고 비판은 할 줄 알아야 되요, 목사님들이 뭐 성역40주년 내가 뭐 100만 명 모이는 그 쓸모 없는 일이에요, 그것 나중에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해가 수고한 것 다 까먹고 가잖아요 지금, 내가 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래서 우리교회에 제가 뭐 우리교회에 설립에 날 자를 지금 정확하게 안 잡는 이유도 못 잡는 이유도 그 뭐 중요해요 예수님이 세우신교회의 설립이 중요한 거지요, 우리교회 연역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 바울이 지금 게바를 알려고 라는 이야기는 내가 세운 개척교회가 내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로 돌려드리기 위함이에요,
여러분들의 생애 우리나라 지금 여러분 이런 것 보면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 정치학 경제학 다 보여요, 전 참 안타까운 것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얼마나 큰일 많이 하고 훌륭한 분들입니까 그런데 다 까먹어서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잖아요, 왜 예수님이 하신 말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 아니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의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할지라도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한다, 그 말이 뭔가 하면은 자기 아성을 쌓는 사람 하나님 모른다는 거에요, 저는 우리국민들 속에 우리정치의 지도자들이 남으려면은 내 아성을 쌓지 않으려고 해야 됩니다. 그것이 미국의 링컨이나 이런 사람들이에요,
큰일 많이 했지요 여러분들 생애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말 우리가 보면서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자기아성을 쌓으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 여러분 인생 살면서 전부 자기만 자기테두리를 쌓으려고 하니까 모든 사람이 다 경쟁의 대상이 되가지고 또 이루어도 나보다 더 쌓은 사람 앞에 가면 주눅들고 예수님은 그런 구원을 우리에게 만들지 안 했어요, 바울은 예전에 열성신학이고 유대교에 있을 때에 혈연공동체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전부 다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거듭나고 보니까 내가 그렇게 눈물로 세웠든 교회들이 혹시 나만 아는 내 교회가 되어지면 내가 바울이 그런 이야기 하고 있어요, 내가 하나님 앞에 일을 하고 도리어 버림 바 될까 봐 두렵다,
1) 영성과 경건의 훈련이 예배 때마다 부인 되 져서 생애가 내 아성을 쌓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걸어가신 그 걸음이 보여야 된다고 하심. 바울이 게바를 알려고 한 것은 내가 세운교회가 내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로 돌려드리려고 한 것임.
남은 구원하고 나는 버림 바 될까 봐 두렵다 그래서 내 몸을 쳐 날마다 복종한다, 여러분들의 영성과 경건의 훈련이 예배 때마다 날마다 여러분들이 부인 되 져서 여러분들의 생애 생애가 내 아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걸어가신 그 걸음이 보여야 된다니까요, 우리 사이가 힘든 게 자기아성을 쌓으려 그래요, 교회가 여러분 정말 눈물 나는 일이잖아요, 서울대학 총장이 누군지 모르잖아 그런데 서울대학은 유명하잖아요, 서울대학교 병원장이 누군지는 몰라도 서울대학 병원은 유명하잖아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의 목사님이 누군지는 몰라도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는 유명해져야 되요. 어떻게 유명해야 되는가 그 교회교인들은 갔더니만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자식도 귀하게 여기더라고,
이런 교회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이런 것이 소문이 나야 되요, 여러분 우리가 지금 우리나라가 보세요 행복하지 않잖아요, 한국교회가 80년대 90년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성장할 때 한국교회가 뭐 했는가 하면은요 전부 총동원주일 했습니다, 총동원주일 할 때 강사들이 와서 교인들에게 간증이 뭐냐 하면은 목사님 자랑 내 교회자랑 하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영웅 된 목사님만 나오고 내 교회의 아성은 커져다 보니까 주님이 설 자리가 없어진 거에요, 우리나라에 여러분 보세요 눈물로 이런 것 기도해야 되요, 복음의 능력이 이런데 있어요, 삼성공화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삼성 때문에 모든 나라의 기업들 중소기업까지 잘 되는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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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울이 내가 게바를 알려고 하고 방문하려고 하고 그를 알고 지내려고 한 것은 줄 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운교회가 내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교회로 돌려드리려고 한 거에요, 그래서 내가 거짓말이 아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보면은 뭐라는 가 하면은 그리스도안에서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옛날에 우리가 믿는 그 믿음을 박해하든 자가 멸하려 든 그 믿음을 전한다 그 정관사가 있는 거에요, 그 믿음이 뭐냐 하면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구원의 사건을 전하는 것이지 우리교회 목사님 우리교회를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용 한번 해 보십시다. 여러분들의 자녀가 나중에 기업을 해도 자기의 기업이 아니고 나라가 부강한 일이라면 내 기업은 망해도 좋다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는 기업가들이 종교인이 아니고 기독교종교가 아니고 신앙인 기업이라 이 말입니다.
우리당이 정권을 잡지 못해도 국민들이 행복하면 돼, 이번 지방자치에도 여러분 그래야 되요, 알고 지내려고 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내가 세운 교회이지만은 바울의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의 교회로 돌려드리기 위해서요, 3년 동안 다니다 보니까 전부 바울 바울 하고 유대인 교회하고 서로 편가름이 쭉 여러분 봄철에 얼음 갈라지듯 찍 갈라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3년 동안 아 이것 아니구나 하고 바울이 게바 만나러 간 거에요 이해 되셨습니까, 여러분 이 한국교회 지금 눈물기도 해야지요, 여러분들의 신앙에 회개해야지요, 오늘부터 정말 우리교회에 다니는 분들은 목사님 자랑이 아니고요 저는 이런 것을 자랑하고 싶어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교인들은 자기배속에서 난 자식이 눈에 밟히는 만큼 다른 사람의 자식도 귀하게 여기더라 그 어떤 사람 앞에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사람, 어떤 사람 앞에 약한 자도 무시하지 않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 이 복음이 우리 안에 이루어져야 되요, 그러려면 여러분 정말 십자가 앞에 가서 십자가십자가 눈물연명 아니에요, 예수님이 참 좋아야 되요,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 자유를 누려봐야 되요, 그래서 예전에는 교회가 한국교회가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이런 것만 예수님만 생각해도 눈물이 나고 예수님이 좋았는데 요즘은 뭔가 하면은 예수님 때문에 내 자식이 좋은 대학가고 예수님 때문에 내 사업이 잘 되고 예수님 때문에 받은 복, 복 복 복 복자씨만 보이니까 문제지요, 오늘도 여러분 예배 때 그 믿음 해결하세요,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 삶의 정말 여러분들을 본 어개인 시키는 능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아멘
◈봉헌기도◈
하나님아버지 굶어 죽는 예루살렘교회를 개 취급 받았고 짐승 취급 받았든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안에서 교회교인이 되고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헌금은 잊지 말라 한 것은 자기의 아성 이방인의 교회가 바울의 교회가 되지 않고 예루살렘교회나 이방인의교회나 다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하여 헌금만 안다 돈만 안다 자격이 없다 엉뚱한 소리 들으며 오해를 들으면서도 끝까지 아버지하나님 그 일을 행하였기에 오늘날도 유대인의 교회나 한국에 있는 교회나 일본에 있는 교회나 러시아에 있는 교회나 미국에 있는 교회가 다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는 아름다운 역사가 바울의 눈물의 헌금 속에 있음을 압니다. 오늘도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나의 시종의 하나님을 믿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우리가 잘못 그려서 아버지하나님 종교적인 아성을 쌓을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믿는 바가 우리를 억압하고 학대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오늘도 주님 앞에서 이 헌금을 드릴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의 혈과 육이 죽어져서 이제는 내 몸에서 난 내 자식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식도 눈에 밟히는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
아버지하나님 나와 나의 성향이 같은 사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임을 알아서 정말 가지고 있어도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하나님의 의가 실현된 세상, 없어도 무시당하지 않고 있는 사람 비난하지 않는 새로운 가치의 세계가 주님의 흘리신 보혈 지금도 보내어주신 성령님으로 우리가운데 존재하는데 오늘도 우리교회가 이런 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그 믿음을 전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되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 되어져 아무리 쌓아도 개인의 삶에 안전을 확보하지 못하는 세상 속에 세워진 공동체가 개인의 삶에 안전을 가져다 주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안전의 욕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서 해결됨으로 하늘에서 누려야 할 그 하나님의 평화와 공평을 땅에서도 맛보는 교회 삼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모두를 하나님이 지은 한 백성임을 알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보혈의 피 흘려주시고 지금도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아름다운 예배 때마다 그 영의 교통하심이 있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사람을 신분과 소유로서 평가하지 않고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고 모든 사람이 저놈만 없어도 우리나라는 잘되 하는 그 사람도 돌아오기를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우리가운데 내주하여서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의 삶을 살게 하시고 갈등과 분쟁의 세상 속에 섬김과 나눔의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도록 영의 공동체를 창조하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오늘도 줄을 대기 위해서 게바를 알려고 올라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교회이지만은 내 교회가 되지 않고 예수님의 교회가 되기를 원해서 3년 후에 자기만을 바라보는 교인들을 보면서 아차 이것이 아니구나 베드로를 만나서 교제의 악수를 함으로 자신의 아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려고 하였든 바울과 같이 이 지상에서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만 눈에 밟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눈에 밟히고 내가 하는 기업 내 직장만이 아니고 나라가 보이고 인류가 보이는 믿음의 권속들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들마다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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