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에베소서 6:4
2014년 5월 4일 주일 낮 예배
No. 156
오늘 하나님 말씀 오늘은 신약성경 에베소서 6장 4절입니다. 우리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아멘
○주의 교훈; 자신을 사랑하면 행복한 사람이 되고, 타인을 사랑하면 행복한 사회가 된다. 오늘 말씀 우리 가슴에 담아야 되는 것,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
짧은 말씀이니까 우리 가슴에 다시 담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우리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4월은 참 잔인한 달이었든 것 같습니다. 4월 5일부터 대한민국이 정지된 것 같고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있는 그런 감정이입[感情移入]이 우리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그렇게 슬퍼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요, 또 산 사람은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부터는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될 줄로 압니다. 우리가 참 생떼 같은 아이가 죽은 것을 슬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은 내 품에 있는 자식 살아있는 내 자식 이 자녀들을 죽음보다도 더 못한 자리로 우리가 밀어 넣고 있는 부모는 아닌지? 우리가 살펴 봐야 됩니다.
1. 어른들의 잘 못을 반성도 하고, 어린이 주일에 품 안에 있는 자식들 더 못한 자리로 넣고 있는 것 아닌지? 어린이 날을 맞아 살펴야 할 것임. 세월호 침몰 후 학부모의 마음 아픈 편지 내용.
우리 어른들의 잘 못으로 인하여 이런 비극이 일어났지만은 또 우리가 그런 것을 반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은, 내 품 안에 있는 자식 우리주변에 있는 자녀들 그들도 그보다 더 못한 자리로 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이 어린이 주일날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될 줄로 압니다. 그러지 아니하려면은 오늘 말씀 우리의 가슴에 담아야 됩니다, 두 가지 이지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오늘 이거 구원파와 같이 깨닫기만 하지 말고요 돌이켜서 그런 부모가 되고 그런 어른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오늘 우리 함께 생각하려고 합니다.
진도에 세월호가 침몰되고 이틀인가 삼일 있다가 인터넷에 올라온 편지가 한 장 있었습니다. 그 부모의 편지인데 여러분들의 목회서신란에 제가 올려놨는데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먼저, 너희는 꽃이다 이 땅에서 태어난 어미들의 눈물과 웃음을 먹고 자란 귀한 꽃이다, 슬픔은 슬픔대로 미운 정이 들고 기쁨은 기쁨대로 고운정이 들어 내 몸 한 조각을 받아 함께 웃고 함께 울던 나보다 나 같았든 우리아들 이제 그만 그 어두움의 물보라를 뚫고 힘차게 걸어 나오너라, 제발 이 어미가 부탁한다, 얘야 너 혼자 그 깊은 고통의 긴 터널을 어찌 감당하려 하느냐, 이제 제발 그 추위의 멍에를 내려놓자구나, 열심히 공부만 하라고 강요했든 이 어미의 죄가 깊다면 용서해주렴,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채근 댔든 말도 이젠 정녕 다시는 하지 않으마,
그저 건강 하라고 건강보다 더 큰 재산은 다시 없는 거라고 사골국 우려내고 잘 익은 깍두기 한 종지 내어, 매우면 매운 대로 물로 씻어 먹여주고 고추 한 큰 술 곱게 썰어 호호 불어 속 풀고 아프지만 말라고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으마, 그래도 차마 피지도 못한 이 어미의 피와 살이 거친 해일을 이기고 이제는 너를 지켜주마, 고단하다고 곤궁하다고 이 시대에 하나를 감당하기도 벅 차다고 동생 하나 안겨주지 못한 이 어미의 삶까지도 아껴주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든 소중한 우리아들, 이 세상에서 남을 이기는 방법과 출세만이 최고라고 고집하며 그릇된 삶을 가르치며 속절없이 지낸 세월이 돌이켜 보니 어디에도 빌 곳이 없구나, 용서해다오 가여운 우리아들 다시는 잘 못된 생각을 너에게 강요하지 않으마, 다시는 너를 생존의 전쟁터에 떠밀지 않으마, 얘야 이제 그만 고통의 사슬을 벗고 이 어미 품으로 돌아와 안기지 않으련 제발 부탁한다 우리 아들, 여러분 여기에 보면은 자녀를 노엽게 하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지 못한 어미의 그 절절함이 묻어있는 말이지요,
2. 성경에 모든 명령은 강자에게 하는 명령이다, 품 안에 자녀 어린이라고 할 때에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며, 부모가 짐이 될 때 공경하라는 말이다. 초등학생이 부모 공경하란 말이 아니고, 팔십 넘은 노모가 쉰 살 먹은 아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왜? 아비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했는가? 부모가 강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모든 명령은요 강자에게 하는 명령입니다, 신명기에 십계명을 할 때에도 제가 도둑질 하지 말라 라고 할 때에 장발장과 같이 정말 굶어서 허덕이는 사람에게 한말 아니라고 했지요, 먹고 살만 하면서 남의 것을 탐하고 남의 것을 도둑질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에요 여러분, 6장 앞에 보면은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할 때에 지금 초등학생이 부모를 공경하라 이말 아닙니다 여러분, 교육은 시켜야 되겠지만 부모가 짐이 되고 부모가 힘이 될 때 공경하라는 말이에요, 또 역으로 오늘 아비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은 팔십 먹은 노모가 쉰 살 먹은 아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이 말 아닙니다, 이제 젊은 부모가 내 품 안에 있는 자녀 그래서 어린이라고 할 때에 그 규정을 중고등학생까지 하지 않고 초등학생까지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중고등학생이 되면은 아버지 이길 힘도 있거든요 엄마 이길 힘도 있잖아요, 그래서 반항할 수 있는 이성도 가지게 되잖아요, 그래서 초등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이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 초등학교에 학생들을 둔 부모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요, 또 중 고등부 학생을 둔 부모도 그래야 됩니다. 요즘 우리가 사회에 참 많이 보잖아요, 내가 놓은 자식이라고 또 뭐 여러 가지 많은 사건들 어른이 해서는 안될 여러 가지 많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런 악함은 없더라도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인지를 몰라서 자녀를 노엽게 하고, 그 결과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이 자녀를 망치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거든요,
1) 자녀들의 능력에 지나친 것을 요구하지 말고, 사소한 규제로 자녀들을 얽어 매지 말며, 편애하지 말라는 말씀.
그럼 노엽게 하지 말라 여러분들에게 몇 년 전에 설교한 내용이지만 다시 가슴에 담으세요, 첫째는 자녀의 능력에 지나친 요구를 하지 말라는 거에요, 이이들이 제일 분노함이 내가 암만 노력 해도 안 되는데 그 능력에 지나친 요구를 할 때에 힘들잖아요, 여러분 회사 다닐 때에 여러분들의 직장상사가 능력에 지나친 요구를 할 때에 억울하고 답답하잖아요 그것 생각해야지요, 우리는 자녀들에게 공부 잘 하는 것 요구를 하지만은 여러분 내 자녀의 성적이 나쁠 때에 부모들의 눈에 끼인 콩깍지 벗어나야 되지요 어떻게 벗어나야 되요? 자기 보면 알지요 내 학교 다닐 때 몇 등 했는가 보고 자식에게 그 이상 요구하면 안되겠지요, 여러분 공부라는 것도 저는 그래 생각합니다.
우리부모들은 모두다 얘는 머리는 좋은데 하면 되는데 라고 하는데요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것도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능력입니다 그거 아셔야 되요, 여러분 머리 좋지요 그런데 여러분 책상에 앉아 있는 것도 그 아이의 능력입니다, 그 안 되는 것 요구하면 안 된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믿는 사람만이 정말 저는 자녀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 이래 생각합니다. 하나님 믿는 게 뭡니까? 내가 불안전한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하나님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두 번째로 사소한 규제로 자녀를 얽어 매지 말라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녀를 로보트로 만드는 것을 사랑이라 생각해요 아닙니다,
사소한 규제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에게 죄를 지을 능력까지 부여해주신 하나님 믿으세요, 참 저도 세 명을 키워보니까 큰애에게 미안해요 왜 미안한가 하면은 몰라서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다 노엽게 하는 거에요, 그래서 큰 애하고 참 많이 싸운 것 같아요 왜 나는 그게 사랑인줄 알았거든요, 참 또 이중적이에요 그 이중적인 게 뭐냐 하면은 저도 목사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알아서 아이에게 자율성을 부여한다고 해서 내가 받은 상처 너는 목사 아들이 목사 아들이 이 말이 듣기 싫어서 내 자녀들에게는 목사 자녀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목사 자녀이기 때문에 교회 다니는 것 이런 것 굉장히 싫어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 목사 딸이기 때문에 주일날 가는 간부수련회 못 가서는 안 된다, 네 스스로가 안 가는 거는 하지만 이랬으면서도, 또 대학에 들어가서 내가 돌이켜 보면은 왜 그렇게 통금시간을 해서 그것 때문에 그렇게 많이 싸웠는지 모르겠어요, 통금시간이 지나고 그 애들의 문화는 그때가 문화더라고 내가 보니까, 여러분 그 아홉 시를 지나서 통금시간 아홉 시 하다가 열 시 열한 시 하다가 자꾸 양보를 했었거든요, 늦게 들어와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어릴 때부터 선하게 분별력을 가르쳐 주었다면은 스무 살 넘어서도 부여해야 되잖아요, 오늘 여러분 이런 생각들 부모들이 하셔야 되요, 그리고 세 번째로 편애하지 말아야 되요, 편애는 비교하지 않는 가운데서 나타나는 거잖아요,
3. 교훈은 주의 말씀으로 하는 교육이고, 훈계는 행동으로 하는 교육이다. 주의 교훈은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며, 잠언서에 아이를 초달 하지 아니하면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어요, 교훈은 주의 말로 하는 교육 훈계는 행동으로 하는 교육 이렇습니다 원문은, 왜 우리가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되는가? 그럴 때 주의 교훈이 뭡니까 여러분 주의 교훈은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아이들에게 요구하고 교육하는 것 중에 딱 하나가 뭐냐 하면은 자신을 사랑하도록 해야 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때 때리기도 해야 됩니다, 잠언서에 말하고 있거든요, 아이를 초달 하지 아니하면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공부 못한다고 때리지 말고요,
공부를 못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때 때려야 되요, 왜 자신을 사랑해야 되는가? 크면서 살면서 자신을 사랑해야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볼 때, 두 번째로 왜 하나님이 타인을 사랑하라고 해요,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타인을 사랑하는 사회가 되야 행복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소득 5만불 소득이 행복한 사회가 아니고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타인도 사랑하는 사회 행복한 사회입니다, 그래서 그걸 끊임없이 말하고 학교성적 묻지 말고요,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그것을 말로 타이르고, 또 그렇게 안될 때 또 때로는 어린아이들을 채찍질 해서도 가르치고 또 부모 스스로도 뭡니까 훈계 행동으로 부모도 자기자신을 사랑해야지요,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게 뭡니까? 공부 못하는 내 아이도 사랑하는 거지요, 그걸 인정해주는 거지요, 또 타인이 공부 잘 하는 것 시기하고 질시하지 않는 부모의 모습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참 성경에 복 있는 사람은 했는데 그 복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했잖아요, 오늘도 우리가 세가지 부모가 하지 말아야 할 것,
첫째는 자녀의 능력에 지나친 요구하지 말고요, 사소한 규제하지 말고 편애하지 말고 자녀들 교육을 뭐로 해야 되는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 우리가 이런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 자녀들을 잘 길러서 우리 사회가 좀 행복한 사회 우리생애를 다시 살아도 이와 같이 살 수 없다고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삶이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부모로부터 출발되는 어린이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축도◈
한 아이를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자신의 아이를 노엽게 하지 않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함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를 원하는 부모들과 부모를 공경하고 하나님이 주신 은총을 따라서 가장 행복한 생애를 살아가야 할 믿음의 귀한 자녀들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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