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육체를 따라 난 사람, 성령을 따라 난 사람(III)주일 설교문 - 갈라디아서 4:21-5:1

차주희 2014. 9. 25. 20:16

 

 

 

담임목사 김종웅

 

 

 

 

육체를 따라 난 사람, 성령을 따라 난 사람(III)

갈라디아서 4:21-5:1

2014 9 21일 주일 낮 예배

                                                                                                                                                          No. 176

우리 하나님의 말씀 갈라디아서 5 1절만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갈라디아서 이제 마치는데 5 2절부터는 삶에 관한 겁니다. 앞에는 교리적인 건데 5 1절이 중심 주제절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좀 암송하면 좋은 것 같습니다. 다같이 읽습니다.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5:1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행복을 어떻게 놔 두었는가 하면은, 남에게 기여를 하거나 기부를 할 때 행복을 느끼게 하셨다. 기여와 기부는 돈만이 아니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모두가 기여와 기부가 된다. 야고보서는 믿음에서 말의 소중함도 말하고 있다.

 

지난주일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에 거듭난 사람일지라도 생존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반듯이 돈이 있어야 되고요, 교회나 예수 믿어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면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돈은 우리에게 생존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은 행복을 느끼게 하지는 안 해요. 그래서 부자라고 행복한 거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행복을 어떻게 놔 두었는가 하면은, 남에게 기여를 하거나 기부를 할 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때에 행복합니다. 여러분 이런 것들의 세계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한번 이것은 말로 해서 알아듣는 것이 아니고요, 그렇게 한번 살아 보면은 아 이런 게 행복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기여하고 기부하라고 하면은 돈으로만 하는 줄 알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라도 여러분 참 우리 그러잖아요, 남 잘되는 것 못 보는 것이 죄인 아닙니까, 그래 또 누군가가 나 말고 친하면은 질투심이 일어나고 속이 뒤틀리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기 가서 요 말하고, 저기 가서 저 말해서 사이를 꼭 벌여 놓습니다 그런다고 내편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여러분 서로가 오해해서 원수가 될 지경에 있는 사람에게 이 사람에게 가서 좋은 이야기 해주고, 저 사람에게 좋은 이야기해 줘서 원수가 될 사이를 친구가 되게 하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 보면은 믿음에서 말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어요.

 

1. 천하를 가진다고 행복하지 않다. 세종로의 세월호와 헤비타트의 기부  / 지난 주 행복. 뉴욕 교민 회장 브루클린 상공회의소 회장 김성환의 마서스 비니어드(Martha’s Vineyard)섬의 생존 기, 그곳에서 정착하게 되었다 라는 이야기 , 레위기 25 47-48장의 말씀.

 

여러분들이 그런 삶을 살아 보세요, 그러면은 내가 예수 잘 믿었지 비로서 여러분들 속에 이런 고백이 나오고 행복이 뭐다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저 교회 다니면서도 많은 것을 소유해야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절대로 온 천하를 가진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생각을 바꾸세요, 저도 지난주 전혀 사례를 받지 않고 교통비만 드는 신학교에 제가 가서 강의를 하는데 조금 만날 목사님이 있어서 경복궁 옆에 북촌이 참 좋잖아요 시간이 머무는 곳 같잖아요, 그곳에 가서 커피 한잔하고 앞에 세종로로 걸어왔습니다. 세종로로 걸어와서 세월호에 있는 사람들의 천막 뭐 그분들이 옳고 그렇고 이런 것은 저는 판단하고 싶지 안 해요,

 

여당이나 야당의 입장도 아니고 그러나 그 사람들의 아픔을 그래도 함께 느껴 줘야 되지 않겠나 해서 가서 싸인도 하고, 또 조금 나오니까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 지어 주는 해비타트 운동하는 사람들이 회원모집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에 얼마씩 하겠다고 하고 회원도 가입하고 그렇게 제가 한 주간을 지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 주일날 듣고 그냥 잊어버리면 안 되요, 여러분들이 조그만 신경을 써서 보면은 내 한 주간의 삶에 주일날 목사님의 설교가 분명히 이런 의미였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요, 뭐 그런 것 제가 중요한 것도 중요하지만은 그 목사님 통해서 참 좋은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뉴욕 교민 회장을 지내고 또 브루클린 상공회의소 의장을 지낸 분인데 김성환씨래요, 그분이 한 이야기들을 저에게 해 주더라고요, 자기가 이민을 가서 살기 어려울 때에 그 미국 동부에 큰 섬 대부분 이렇게 다리로 연결이 되어 저 있는데 그 섬은 경치가 너무 좋아서 휴양지라서 일부러 다리를 안 놓는 다네요 가까이 있지만은, 주민은 약 만 8천명 정도 사는데 마더스비니어드라는 그런 섬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마 영어 이름이기 때문에 기억이 없는지 몰라도 신문지상에 이 섬이 자주 오르내리는 것은 알게 될 겁니다. 케네디나 그 다음에 클린턴이나 부시나 지금 오바마 대통령이 여름에 휴양 가는 그런 좋은 휴양 섬 입니다.

 

주니어케내디도 그곳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지요, 자기가 이민 가서 그곳에 가서 터전을 잡는데 유색인간은 하나도 없었대요, 그래 자기가 가서 하는 것이 뭐 야채 장사 아닙니까 이런 것을 하는데 그 섬에 있는 백인들이 자기를 쫓아내려고 매일 뭐 거기 와서 교통순경이 진을 치며 스티커를 끊고, 그 다음에 좀 뭔가 행패를 부리고 이래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대요, 그래서 자기하고 좀 친한 사람에게 이야기 했더니만 이 섬에 한국 사람이 한 사람 있는데 그 사람 찾아가서 의논을 해보라 이러 더래요, 그래서 찾아갔더니만 어릴 때에 유대인에게 입양이 되어서 자기 남편이 치과인가 그런데 한국계 유대인이었답니다. 그래서 자기의 하소연을 하니까, 참 피라는 것이 그런 진함이 있지 않습니까, 자기가 유대인 커뮤니티에 이야기해서 도울 수 있으면 도와 주겠다, 이래 가지고 지나고 났는데 그 다음날부터 자기 고 마트에 의자를 내놔 놓고 유대인 변호사가 매일 번갈아 와서 앉아 있는 거에요, 그래서 교통순경이 스티커 끊으러 오면은 나는 이 집에 고용된 변호사다라고 하면서 그 사람들을 그렇게 하고, 또 행패를 부리면은 나는 이 집에서 돈을 받고 고용된 변호사다 하고 사람들이 번갈아 가면서 그래 있으면서 자기의 이제 그곳에서 정착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유대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뭐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에요, 유대인들은 성경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거든요,

 

2. 유대인 (형제)중 한 사람이 가난하면 유대의 커뮤니티는 그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혈연적 관계 유대인만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예수님(성령님)이 오셔서 인종과 사회와 구분을 넘어서 그러한 공동체(교회)를 형성하신 겁니다.

 

지난 수요일 날 여러분들이 레위기를 우리가 전체적으로 살펴보았지 만은 레위기 25 4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내 형제 중 한 사람이 가난하게 되어서 거류인의 종이 되었을 때에 그 사람은 자기 형제들에게 속량[贖良]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니까 여러분 어떤 사람이 유대인 중에 한 사람이 가난하게 되면은 유대의 모든 커뮤니티는 그 사람이 살아가고 또 그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의무가 있다는 거에요, 이게 유대인입니다 굉장히 무서운 거지요, 그 사람들은 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디에 가든지 유대인들은 열명만 넘으면은 회당을 짓고 그런 커뮤니티를 형성하잖아요,

 

그런데 그 유대인들의 문제는 뭐냐 하면은 혈연적 관계 유대인만을 그렇게 생각하는 거에요, 그 외의 종족은 여러분들이 지금 중동에서 보다시피 다 없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유대교에 예수님이 오셔서요 유대교와 같은 그런 공동체 커뮤니티 교회를 만드신 거에요, 성령님이 오셔서 만드신 거에요, 그래서 교회를 향하여 뭐라 했는가 하면은 한 지체의 아픔을 우리 모두가 아파하고, 한 지체의 영광을 모든 사람이 즐거워한다. 그리고 이 교회는 유대인들과 같이 유대인만이 아니고 기독교인만이 아니고요 인종과 사회와 모든 구분을 넘어서서 그러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겁니다. 여러분 갈라디아서를 이제 금년 한 해에 우리가 보면서 여러분들 마음속에 오늘 본문 남아야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그럼으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라는 말씀,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지금 주제 성구인 나중에 이제 삶에 대해서 우리가 다시 보겠지 만은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러면서도 여러분들 머리 속에 그려 지는 한 모습이 있어야 되요, 그 그려 지는 모습이 유대인들은 그렇게 똘똘 뭉쳐 있는데 우리가 보았지요, 여러분 그 교회는 갈라디아 교회는 처음에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여러분 이 구분 정말 넘기 어려운 구분입니다. 종교적 민족적 구분이 모든 전쟁은 민족 분쟁이고 종교 전쟁 아닙니까,

 

그것을 넘어선 공동체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의 강림으로 만들어 지고 갈라디아교회가 그런 교회였다고요, 여러분 그런 어떤 민족적 차별도 넘어서고 그 다음에 또 뭐라고 그래요? 남자와 여자 여러분 남자와 여자는 아시지요 평생 원수인 것, 여러분 참 평생 그래서 그런 이야기 하더라고요, 뭐 이것 설교 시간에 할 말은 아니지만은 여러분 참 이 내세에 다시 태어나서도 그건 윤회설입니다 믿으면 안 됩니다. 부부가 되기 싫거든 사랑하라는 거에요, 왜냐하면은 전생에 원수가 다시 부부가 되기 때문에 ㅎ ㅎ ㅎ 그런데 여러분 우스운 이야기지만은 그만큼 남자와 여자가 여러분 화합한다는 것이 쉽지 안 해요, 그런데 남자나 여자나 이래요, 사회적인 신분 자유 자와 종 절대로 함께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오늘 만나 주일 이라고 하면서 캐주얼 복을 입었잖아요, 왜 그런가 의복은 인간에게 항상 신분을 나타내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자유 복을 입음으로 말미암아 신분을 내려놓고 사람 대 사람의 만나자 선교회는, 구역에는 그래서 만나 주일이 있는 것 아닙니까,

 

3. 성령이 이 땅에 오심으로 혈연과 신분을 넘어서서 자유 자와 종 모두다가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거에요. 법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유대교이다. 바울은 너희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

 

여러분 지금 우리 사회도 이런 갈등이 많잖아요, 자유 자와 종 지금은 뭐 여러분 이런 것도 극복 못하는 것 보면은 교회가 좀 문제가 많아요, 자유 자와 종도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거에요, 오늘날로 치면은 고용주와 피 고용주 지배자와 피 지배자가 어떻게 한 밥상에서 같이 밥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성령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놀라운 일이었다고요, 갈라디아서에서 여러분들이 그 그림을 보면서 그런 것을 신앙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야지, 딴것 목적 삼으면 안 되요, 그래서 분열된 세상 속에 어떻게 하면은 그렇게 화합하는가? 그 유대인의 커뮤니티 같은 것이 우리가 언제나 바라는 나라고 교회의 모습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그 유대인의 커뮤니티같이 혈연과 신분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는 공동체가 된다면은, 지금 우리가 사회에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지요.

 

사교육의 문제나 무슨 문제나 다 해결이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생각이지만은 어떻게 이루어 가는가? 오늘 바울은 너희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고, 그 공동체를 깨트린 유대 율법주의를 향하여 저주를 받을 거라고 퍼 붇고 있거든요, 여러분 그 공동체를 이루려고 할 때에 법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는 것이 유대교의 율법주의 입니다. 그 법은 유대인에게만 주는 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법이 참 소중합니다. 법이 없으면은 생존할 수 없어요 인간은, 그 법은 우리에게 많은 질서와 생존과 번영을 가져다 주는데 중요한 것은 사람이 법보다 중요하다는 거에요,

 

유대교는 처음에 법을 제정 할 때에는 사람 중심으로 법을 만들었는데 나중엔 그건 없이 법의 제정에 취지는 사라져 버리고 법만 있고, 그 법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유대교였다고요, 그래서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은 그리로 들어가지 마라 이런 말이거든요, 제가 여러분 소요리 분답 하면서 십계명 제가 강의할 때였지요, 여러분 뭐 1계명 2계명 다 알지요, 도둑질 하지 말라 전체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제가 뭐라 그랬어요, 수요일 날 제가 소요리 문답하면서 이야기 했지요, 왜 십계명 주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다고요, 자기가 수고한 것 먹지 못하고 빼앗기는 자기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노예로 살았다고요,

 

4. 모세오경에 나는 너희를 애굽에서 종 되었든 자를 구원해 낸 여호와니라, 그들이 가나안으로 갈 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었어요. 먹고 살만 하면서 도둑질 하지 말라는 것. 성령의 능력과 보혈의 능력이 법의 태두리 안에서 허덕이는 약한 사람들에게 자유 함을 주었다는 말씀.

 

그 사람들이 이제는 자유의 땅 신천 신지 가나안으로 갈 때에 시내산에 왔을 때에 십계명을 주었어요, 그래서 그 십계명 앞에나 여러분 모세오경에 보면은 나는 너희를 애굽에서 종 되었든 자를 구원해 낸 여호와니라, 왜 그 말을 전문으로 하는가? 너희가 들어가는 땅에는 너희가 종으로 살면서 자기 권리도 찾지 못하고 억울하게 당했잖아, 그래서 너희가 가는 그 땅에는 그런 사회적인 신분 때문에 고통을 당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 법을 주신 거라고 했지요. 그래서 십계명에 여러분들이 도둑질 하지 말라, 이 말은 여러분 먹고 살만 하면서 도둑질 하지 말라 이 말이거든요,

지난 주일에도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렸지마는 배불러서 사냥하는 것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게 죄 성 이에요. 여러분 배부르면은 더 사냥 끼를 느끼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이 사회가 문제라는 거에요, 그래서 십계명은 그런 능력 있고 사회적인 강자에게 제안하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말씀 드린 대로 장발장이 배가 고파서 빵 하나 훔쳐먹는 도둑질 하지 말라 이말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것은 묵과해요, 이런 법인데 그 법을 하나님이 주신 제정의 목적과 취지는 알지 못하고 나중에 조문만 남아 가지고 사람을 얽어 메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힘이 약한 사람은 법 때문에 꼼작 달싹 못하고 힘있는 사람은 초복적인 삶을 사는 사회가 되었다고요,

 

그런 사회를 무엇으로 변화시키겠습니까? 성령의 능력과 보혈의 능력이 아니고는 결코 법으로 되되 것이 아님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유대교에서 오늘도 너희가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었다는 것이 뭐냐 하면은 그 법의 태두리 안에서 허덕이는 약한 사람들에게 자유 함을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힘있는 자나 없는 자가 더불어 살아가는 복된 하나님의 나라에 말씀을 갈라디아서에서는 이야기 한다고요, 여러분 이런 것들을 우리가 말이 쉽지 참 인간은요 자기의 관습과 전통 삶에 젖어 들었기 때문에 벗어 버리는 데에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도 오늘 만나 주일 우리 교회가 세워 지면서부터 있는 건데요 그래서 청바지 입고 티 입었다가 다시 이렇게 바꿔 입었어요, 왜냐 하면은 이 취지를 알지 못하고 동의하지 못한 사람이 또 목사님 뭐 이렇게 실족하는 것은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낳잖아요.

 

5. 예수 믿는 사람은 종교적인 예전이나 신념이나 어떤 규범도 사람보다 우선되면 안 되는 것이 복음이다. 종의 멍에 주일 성수가 여러분들을 얽어 메어서는 안 된다. 유대교는 안식일의 법을 가지고 사람을 얽어 멘다.

 

여러분들이 정말 그런 이야기를 할 때에 아니야 우리 교회는 그런 신분을 넘어서서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자유 자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다 한 식탁에서 밥 먹는 하나의 아름다운 표현이야, 이런 것이 완벽하게 있는 때가 되면은 저도 좀 그러려고 해요, 그래서 어떨 때는 좀 자유롭게 입었다가 이렇게 입기도 해요.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인간은요 기본적으로 법에 아주 익숙하고 젖어 들어요, 한가지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는 것은 종교적인 예전이나 종교적인 신념이나 어떤 규범도 사람보다 우선되면 안 되요 그게 복음입니다. 여러분 좀 우리 동백에 살면서 이해되는 이야기로 이런 이야기 있지요, 저는 이제 동백 초창기에 들어와서 살았습니다. 그때는 먼지가 펄펄 나고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동백에 살면서 서울만 올라가면 스티커 끊겼어요, 왜 그랬는가 동백에는 차를 몰고 가다가 신호 대가 있으면 그때는요 빨간 불은 빨리 갔고 노란 불은 놀래지 말고 갔고 파란 불은 그냥 갔거든요, 그것이 젖어 들어가 서울 가서도 그러다가 몇 번 스티커 끊겼어요, 여러분 우리가 그 신호 체계라는 것이 우리의 생명과 안전 질서를 위해서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지배해서는 안 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요즘 우리나라도 참 좋아졌어요, 그래서 좀 사람의 왕래가 적은 데에는 보행자가 여러분 이 버턴을 눌리면은 신호가 바뀌게도 만들고,

 

사람의 왕래가 적은 야간에는 전멸 등 하는 것 이런 것들이 그리스도 인들의 자유라고요, 여러분 이런 것 아셔야 되요. 여러분 우리가 이런 자유를 줬는데 왜 다시 너희가 그리로 들어가려고 하느냐? 규범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느냐? 이런 말이에요, 주일 성수라는 것도 여러분 그래요 주일 성수 여러분들이 종의 멍에가 주일 성수가 여러분들을 얽어 메서는 안 되거든요.

유대교는 안식일의 법을 가지고 사람을 얽어 메요, 그래서 종교적인 목적은 이루어 가지만은 진짜의 자유 함이 없었거든요, 안식일 세 번만 모든 민족이 다 지키면은 하나님 우리 민족을 최고의 민족으로 만들어 준다고 이런 이야기를 한 거에요 구약 성경을 가지고, 그래서 유대인들은 안식의 법을 굉장히 철저하게 지키고 뭐 사 먹지도 안 하고 심지어는 여러분 뭐 여러 가지 참 재미있는 것 많아요, 안식일에 여러분 엘리베이터에 버튼도 안 누르는 것이 유대인 입니다. 그런데도 이 어떻게 타는가? 안식일이 되면은 각층마다 자동으로 안 눌려도 열리고 닫히게 해 놨다고요, 여러분 안식일 날 음식을 사서는 안 되는데 집 안에서 주고 받는 것은 괜찮다고, 참 얼마나 웃기는 것이 유대교입니까,

 

그런 데에서 자유 하게 한 거에요, 여러분 주일 성수도 어떤 교회는 가면은 뭐 여러분 그러잖아요, 지금도 주일 성수를 잘 하면은 복 받고 안 하면은 벌받고, 제가 어릴 때에는 주일날 하늘에 올라가는 사닥다리가 있는데 한 주일 빠지면 그게 하나 떨어지기 때문에 그 다음에 못 올라간다, 뭐 이런 식으로 겁을 줘 가지고 철저히 주일 지키게 했거든요, 그러니까 그것이 얼마나 속박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일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지마는 인간은요 하나님 품을 떠난 인간은 생존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일을 절대시해요. 여러분 우리 뭐 장로 대통령 지낸 분도 일에 중독자 굉장히 불신앙적인 겁니다.

 

6.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인 줄 알아서 일은 하지만 안식하고 휴식하기 위해서 일을 해라, 그게 주일 성수의 취지입니다. 참 자유를 누리려면은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볼 줄 알아야 되요 성 육신이잖아요. 성령이 임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지은 한 가족임을 받아 드리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예수 믿고 주일 성수를 주었는가? 죽도록 일하고 어떤 사람은 여러분 매일 풍유만 하는 그런 세상인데 하나님께서는 뭐 했는가,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인 줄 알아서 네가 일은 하지만은 안식하고 휴식하기 위해서 일을 해라, 그게 주일 성수의 취지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강조하잖아요 예수 믿는 사람은 일하기 위해서 쉬는 것이 아니고, 쉬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 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출근할 때에도 주말에 쉴 것을 생각하면서 행복을 누리는 거에요. 주일날 여러분 교회에 와서 이런 것에 순종해 보세요 눈 탁 뜨고 딱 떴을 때 하나님 감사합니다, 만약에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지 안 했다면은 어떤 사람은 죽도록 일하고, 어떤 사람은 매일 풍유만 하는 세상이 되었을 터인데 오늘 나도 이렇게 일 한끝에 휴식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럴 떼에 여러분들이 자원하고 기쁜 마음에 신앙 생활이 되는 거에요. 너희가 다시 종의 멍에를 맞고 그리스도가 너희에게 자유를 주었다는 것은 모든 신앙 생활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라는 말씀이에요. 유대교는 법으로 사람을 얽어 메서 억지로라도 만들어 버려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이 갈라디아서를 보면서 저는 이 말씀이 여러분들 속에 남아야 되요. 정말 법보다 사람이 중요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와서는 목사님 눈치 누구 눈치도 볼 것 없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분량대로 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마라 성경은 이렇게 말 한다고요, 여러분 이런 변화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 속에 변화 되어야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메여야 되는데 하나님에게 자유 된 인간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또 다른 곳에 메여서 억압을 절개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여러분 그러잖아요, 여러분들 주변에 부자나 사회적인 신분이 높은 사람 그 사람 아무리 내가 아양 떨어도 우아하게 보여도 그 사람 안 도와 줍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를 가지게 사는 것이 인간이라고요, 우아한 것 모르나? 우라지게 아부하는 거라고 내가 이야기 했잖아요. 그런 것에 경외감을 가지는 것이 죄인들의 마음입니다. 성령 받으면은 그런 것 없어집니다. 하나님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한국 교회가 정말 이 갈라디아서를 보면서요 우리가 참 자유를 누리려면은 하나님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볼 줄 알아야 되요 성 육신이잖아요, 성령님은 우리 몸 안에 거하잖아요, 그런데 한국 교회는 사람은 안 보이고 하나님만 보아요 이것 변해야 됩니다, 유대교입니다 그렇게 되면은, 저는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 꿈꾸고 지금까지 온 거에요. 그러려면은 여러분들이 뭐 하라고 했습니까 제가, 예수그리수도의 구원의 사건을 받아 드려야 된다고 했잖아요. 그 구원의 사건이 뭡니까?

 

혈연적 관계 연고의 관계 생존을 위해서 본능적으로 그것을 좋아하는데,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지은 한 가족임을 받아 드리는 겁니다. 여러분 그런 것 있잖아요 가족이기 때문에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일찍 일어나서 새벽밥 지어서 애들 보내요 억지로 아니에요 즐거운 마음으로 해요 똑 같은 일이라도, 다른 사람 밥 해주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교회 식당 봉사나 여러분 성가대나 가족의 마음이 없으면은 짐이 됩니다 구원받은 것 아닙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가족의 눈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가족에게 도와 주었다고 남에게 생색 안 내잖아요.

 

가족에게 도움 받았다고 기 안 죽잖아요, 예수님이 이루신 성령의 교통하심이 여러분들이 예배를 시작할 때에 신앙의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성령의 교통하심과 가 그런 말이에요 거룩한 공회가 그런 말이에요. 갈라디아서를 보면서 여러분들이 그것 아셔야 되요, 성령을 좇아가는 것이 뭔가? 이제는 내 눈에 혈연과 연고로 보였든 사람들 생존을 위해서, 이제는 사람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눈에 밟혀야 된다고요, 여러분 유대교의 커뮤니티가 얼마나 좋은 겁니까, 그보다도 더 넓게 만드신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입니다, 여러분 갈라디아서에서 이 말이 날마다 남아야 되요, 남자나 여자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자유 자나 종이나 모두다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공동체 그것이 우리 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7. 하나님의 은혜이고 성령의 능력이고 보혈의 능력으로 이루어져야 됩니다. “시선” 이라는 영화의 내용은 신앙적인 신념과 양심을 따라서는 죽음도 불사하고 그기에도 행복이 있습니다, 그것을 저버렸기 때문에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아온 가이드였다.

 

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고 성령의 능력이고 보혈의 능력으로 이루어져 가야 됩니다. 그 보혈의 능력은 이제는 여러분들이 생존의 눈으로 보지 말고요, 참 사람들 보면은요 보여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사람을 이용하려 그래요, 가족은 사람을 이용하지 안잖아요, 섬기려고 도와 주려고 하잖아요, 저는 우리 여기에서 목회하면서 제 귀에 우리 공동체 안에 어떤 사람이 어렵다면은 결과는 안 나와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마음을 다해서 하려고 해 왔어요, 이제는 여러분들이 하셔야지요 서로간에, 서로간에 여러분 서로 마음이 서운한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에게 가서 좋은 말 해 주고, 저 사람에게 좋은 소리 해 주어서 연합하게도 하고요, 말로 부조도 못합니까,

 

내가 아는 인간적 네트나 이런 것들 설령 잘 못되어서 저 사람이 원망할지라도 저는 합니다, 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시선이 바뀌어야 되요, 저는 뭐 목사가 할 일이 별로 없으니까 취미가요 영화 참 잘 봅니다, 이번에도 보니까 모르겠어요 나는요 명량에 감동 못 받았어요, 워낙 지금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래서 그렇지, 재미도 없고 뭐 임팩트도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차라리 해적이 훨씬 재미 있더라고ㅎ ㅎ ㅎ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시선이라는 영화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언제 한번 말 했지요, 이장호 감독이 이십 년 만에 컴백해서 내놓은 영화인데요, 정말 좋은 영화인데 극장에서 너무 빨리 내렸어요, 여러분들이 꼭 한번 보세요 그 시선이라는 영화가 이런 겁니다, 어떤 의사가 예수 믿는 의사가 그 의료 선교로 떠납니다. 의로 선교로 가 가지고 그곳에 가서 납치를 당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 테러범에게 잡혀 가서 도끼를 가지고 성경을 내려쳐서 찢으면은 살려 주고 그렇지 않으면은 죽인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이 의사가 자기의 신앙적 신념과 양심을 저버리고 칩니다, 사람이요 자기의 신앙적 신념이나 양심을 버린다는 것은 죽는 것하고 같거든요, 그 아픔 때문에 이 사람은 자기를 자학 합니다,

 

어떻게 자학 하는가 하면은 한국에서 그곳에 단기 선교를 오는 사람들을 자기가 가이드를 하면서 사기를 치면서 살아요, 저는 그 사람의 마음을 백분 이해 하겠더라 고요, 여러분들이 어떤 신념이 무너졌을 때에 스스로 자학 하는 것이 인간이거든요, 그런데 어떤 교회의 목사님과 함께 선교 팀이 왔습니다, 똑같이 식당에 가서 만 원짜리를 이 만원 받으면서 하고 뭐 여러 가지로 사기를 칩니다. 선교 여행을 떠나다가 버스가 납치가 되었어요, 그래서 그곳에 가서 여러 가지 사람들 뭐 군상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나서서 인질범에게 돈도 주고 이랬는데 마지막에 협상이 뭐냐 하면은 거기에 테러[terror] 집단의 두목을 풀어 주라는 거에요, 풀어 주었는데도 인질범을 놔주지를 안 해요,

 

그러면서 그 테러범들이 뭐라는 가 하면은 똑 같이 이제는 더 이상의 협상의 카드가 없습니다, 그 가이드와 목사를 불러서 현지 어로 목사는 모르니까 네가 만약에 이 성경을 내리치면은 살려 주고 목사보고는 이 성경을 내리치면은 너와 함께 있는 모든 인질범은 살아난다, 그런데 치지 아니하면은 너는 살고 모두 다 죽는다, 그 풀려 난 그 사람이 보니까 과거에 자기에게 행했든 그 사람이 잡혔다가 이번 협상에 풀려 나서 똑 같은 조건을 제시하는 거요, 그런데 그럴 때에 그 가이드는 그날 성경을 치지 않고 자기는 꺼꾸로 매달려서요 온갖 피 칠을 하고 있는데, 참 그 연기가 쉽지를 안 했을 것 같아요, 참 평온하게 순교를 당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살면서요 자기의 신념과 종교적인 신념과 양심을 따라서는 죽음도 불사하고 거기에도 행복이 있습니다, 그것을 저버렸기 때문에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아온 가이드였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에게는 이 가이드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다르게 통역을 하면서 치라고 합니다. 그 목사님이 그 성경을 침으로 말미암아 그 뒤에 있는 많은 단기 선교 여행 팀은 살아난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자유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유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내 자신이 죽을지라도 종교적인 신념과 양심은 저버리지 아니해야 될 때가 있지만은 때로는 어떠한 법과 어떠한 신념조차도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 갈라디아서의 말씀입니다.

 

8.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그러나 어둠의 세력은 여러분들이 종의 멍에를 메도록 한다, 우리의 본성인 죄 성을 통해서. 규범이나 신념도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사람이 소중함을 알아서 세상 속에 한줄기 빛이 되려면, 보혈의 능력이 성령의 충만함이 함께 하셔야 된다.

 

오늘 여러분 우리 한국이 저는 볼 때에 너무 율법주의이고 너무 종교적이고 그래서 종교적인 목적을 따라서 교회는 잘 굴러 가는데 교인들은 참 힘이 듭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따라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어둠의 세력은 여러분들이 종의 멍에를 메도록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성인 죄를 통해서, 오늘도 여러분 우리 나라도 저는 그래야 된다고 봐요, 우리 교회가 정말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이 보여야 됩니다,

법도 사람의 생명과 질서를 위해서 준 것이지, 법을 위해서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양심도 공존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자기의 아집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관점에서 여러분 보세요, 우리 나라가 왜 화합하지 못하는가, 이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이 이런 것 남을 가 봐 안 하려 하다가 그냥 하지만은 이번에 뭐 박영선씨 이상돈해서 외연의 확대, 국가가 보이면은 그렇게 해야 되요, 당의 정체성을 흔들어서 없어진다, 48%의 민주당이니까 엉망진창 돼 버리는 거에요, 영원히 집권 못합니다, 때로는 거기에 여러분 보수와 자 진보가 어디 있으며 거기에 여러분 지역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령님이 오신 것은 보혈의 능력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신분 남녀의 성별의 차이 민족적 종교적 신분까지도 초월해서 한 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게 하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의 강림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커뮤니티인 갈라디아 교회에 유대교가 와 가지고 다시 율법을 가지고 강조할 때, 아니다 그리스도가 주신 그 자유를 할례를 받으라고 이야기 하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그들에게 법도 사람 때문에 있는 거야, 여러분 주일날마다 정말 그 자유를 주신 만큼 우리 교회에 신앙 생활 하면서 여러분 저는 다 용납하지만 용납 안 되는 것 있습니다, 사람 차별하는 것 용납할 수 없습니다, 또 용납 안 되는 것이 억지로 하지 마세요, 목사님 눈치보고 하지 마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나님 앞에서 보시고, 어떤 규범이나 종교적인 신념도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사람보다 소중한 것이 없음을 알아서 사람의 가치가 소유와 신분에 따라서 차등하는 세상 속에 우리 교회가 한줄기 빛이 되려면은 정말 교회에 다시 보혈의 능력이 성령의 충만함이 저와 여러분들을 감싸야 됩니다.

 

보혈의 능력과 성령의 충만함은 모든 사람을 모든 사건을 가족의 눈으로 보게 합니다. 가족의 눈으로 보면은 도움을 받아도 기 죽을 것 없고, 도와 준다고 해도 그럴 것도 없고요, 가족의 마음으로 보면은 내가 감옥에 갈지라도 법도 어길 수 있습니다, 사람 살리는 일이라면은, 자녀를 위하면은 내 평생 가지고 있는 신념도 포기할 수 있잖아요, 그런 역사가 이제 갈라디아서에 가장 중심인 5 1절에 왔는데 보혈이 성령이 저와 여러분들을 사로잡아서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면은 돈의 노예가 될수 밖에 없고, 돈의 노예가 되면은 사람을 이용하는 것으로 사람을 볼 밖에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보혈의 피로 정결케 하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 손에 있음을 알아서 사람을 이용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행복한 생애를 살아갈 수 있도록 비록 가지고 있는 것이 적은 우리들을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런 우리들이 살아가기에 힘든 세상 속에 주님 몸 버려 세우신 교회, 주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가 우리 가운데 우리의 커뮤니티 가운데 한 지체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은 직무 유기요,

 

어려웠을 때에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는 이 말씀이 잘 실천될 수 있도록 우리 교회도 싸이즈에 맞는 분량과 또 그저 우리 성도들이 자신의 은혜의 분량으로 섬겨서 짐을 나누어 짐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말로만 섬기는 교회가 아니라, 정말 우리 가운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더하여 주시고 정말 아버지 하나님 우리 교회에 속한 교인들이 목사님 나 죽어도 내 아내와 자녀는 교회가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눈 감습니다, 이런 교회의 모습을 통하여 세상을 부끄럽게 할 수 있는 생명 있는 교회를 만드는 한 알의 밀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한량없는 우리 주님의 은혜와 무궁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혈연과 연고로 나뉘어 다른 사람 죽여야 내가 생존하는 세상 속에 성령을 함께 나누어 가진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통하여 모든 인류의 안녕과 번영을 구하도록 우리 가운데 내주하신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모든 사람을 모든 사건을 가족의 눈으로 바라보아서 사람은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대상임을 알아서 발걸음 닫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생존이 공동체를 통하여 보장됨으로 다른 사람을 귀히 하는 행복을 느끼며 신앙 생활을 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어두움 속에 있는 이 세상이 밝아 지는 그곳까지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