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두 가지 오류 (14.10.5.주일 설교문)갈라디아서 5: 13-15

차주희 2014. 10. 10. 14:12

 

 

                                                                                 

 

 

 

담임목사 김종웅

 

 

두 가지 오류

갈라디아서 5: 13-15

2014 10 5일 주일 낮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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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갈라디아서 5장입니다, 13절에서 15절 같이 읽겠습니다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아멘

 

두 가지 오류: 방종의 자유와 방종의 위험이 우려로 인한 율법주의적 금욕주의, 법과 규율이 없어지면 혼돈과 무질서가 야기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위험의 요소가 은혜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이 은혜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성령의 충만함은 진리의 말씀이 지배하는 삶이다.

 

신앙은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 사는 삶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말씀이 여러분들을 지배하는 삶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반응이 기도입니다. 그러려면은 여러분들이 성경 말씀을 암송해야 되겠지요, 오늘 13절 짧은 성경 구절이고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니까 우리 다시 한번 읽으면서 꼭 여러분들의 마음에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다같이 한번 읽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아멘 다시 한번 더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아멘.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읽으면서 감동이 있고 감격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것들을 감동을 못 느끼는 것은 이 말씀의 배경을 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1.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메이는 의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유는 불안하고 누군가 결정해 주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하다가 하나님 자신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다.

 

오늘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 그냥 여러분 하는 말 같지만은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자유를 얻었어요, 그 감격이 오늘도 저와 여러분 속에 새롭게 되어 저야 되요, 왜냐하면은 유대교에서 성경 말씀을 보면서 굉장히 억압을 받는 신앙 생활을 했거든요, 또 유대교만이 아니고 예수님을 알기 전에 모든 사람들은 다 억압 속에 살아왔습니다, 특히 종교인으로서의 기독교인들이 그런 사람 많습니다. 무엇을 하면은 복 받고 또 무엇을 못하면은 벌받는다,

 

이래서 정말 받지도 못할 복을 다람쥐 채 바퀴 돌리듯이 늘 그렇게 전전긍긍하고 또 뭔가 좀 잘못하면은 자신의 능력이 안 되어서 못하는데도 죄책감에 눌려 살고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종교적인 억압의 상황 입니다 이 대표적인 것이 유대교였어요, 그 유대교는 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구약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잘못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자신의 말을 잘 들으면은 복을 주고 안 들으면은 벌을 준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각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계시 되어 저 있는 그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하다가 하나님 자신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올바로 계시해 주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우리 모두는 그런 율법에서 자유 함을 얻은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 하러 오셨는가 하면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요, 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지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으면서 잘 인식을 못하는 것 같아요. 아마 마치 6.25 를 경험 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은 공산주의의 억압에 체제에서 얻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모르는 것하고 똑 같은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얼마나 아프셨겠나 그것 울라고 십자가 달려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2. 예수님의 십자가에 고통을 통하여 율법의 억압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주셨다, 성경에서 인간이라고 할 때에 저의는 피조물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 이지만 우리는 무엇인가 의존하는 존재이다. 어떤 자유보다 독재에 억압을 받는 것을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고통을 통하여 율법의 억압 속에 있는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 자유를 누릴 때에 야 참 예수님 고맙습니다, 내가 예수님 몰랐다면은 얼마나 그런 억압에서 당연시 하면서 살았을까 이런 고백이 이 말씀을 암송할 때마다 여러분들 속에 생겨나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우리 교회가 완전한 교회도 아니지 만은요 그런 기쁨이 있어야 되요, 내가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다님으로 옛날에 그렇게 율법적인 신앙에 얽어 메였는데 참 자유를 주어서 고맙습니다, 여러분 이런 감사 있어야 되요, 목사님을 향하여서도 그런 감사 있어야 됩니다. 그건 나를 위해서도 아니고 여러분들 스스로를 위해서 에요, 여러분 참 이런 자유를 주었는데도 사람들은 그 자유를 누릴 줄을 잘 몰라요, 또 자유를 주면 불안해 해요 왜냐하면 사람은요 피조물이잖아요 인간은, 성경에서 인간이라고 할 때에 정의는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 자유자 이지만은 우리는 무엇인가 의존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무엇이든지 의존해야 되요, 여러분들이 혼자 있으면은 불안하잖아요, 그래서 결혼도 하는 것이고 동창회도 가는 것이고, 어디에 소속되어야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에게 소속되고 메이지 아니하면은 세상에 매여서 억압을 당한다고요, 그것이 종교 생활이고, 그런 거다 이말 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또 우리 교회에 처음 오는 분들 이런 분들 중에서도 자유를 주면은 아 이래도 되는가? 불안 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있는 피조성 때문 입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면은 그러잖아요, 알아서 하세요 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사람들에게 제일 무서운 말이 알아서 하라는 말이거든요, 자유를 주면은 사람은 불안해 해요, 그래서 뭔가 하면은 목사님이 정해 주세요, 목사님이 하라 해야 우리가 하지 이런다고요,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얽어 메는 잘못된 것인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유로운 결정보다 타인이 결정해 주기를 좋아하고요, 어떤 자유보다는 여러분 독재에 대한 억압을 받는 것을 오히려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인간인데, 이런 것들을 이용하는 자들이 독재자고 이단이고 교주다 이말 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정말 그런 부분 있어야 되요, 왜 우리 속에 그런 자유가 있어야 되는가, 우리 모두는 다 다르고 판단할 수 있는 이성도 우리가 가지고 있잖아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구역 장들도 목사님 구역 방학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이런 이야기 하는 분들 목사님이 결정 해주고 당에서 결정해 달라고 하는데, 여러분 저는 그러잖아요 구역 형편대로 하세요, 구역은 제가 구역 장에게 위임한 겁니다. 왜 그런가 하면은 젊은 부인들이 있는 구역에는 방학 때가 되면은 일이 참 많지요, 그래서 방학 말기가 되면은 소원이 뭔가 하면은 빨리 개학해서 애들 학교 안 가나 그런 분들에게는 구역 예배도 방학 해 줘야지요, 그런데 연세 드신 분들은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 구역 예배 드린다고 나들이 가고 사람 만나는데,

 

그것 방학이라고 안 하면은 구역이 얼마나 여러분 힘듭니까, 그래서 각자에 처지를 따라서 하나님 앞에 받은바 분량을 따라서 자유 하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제가 10월에는 우리 교회에 공휴일 날은 공식적인 예배를 안 드리잖아요, 그것은 뭔가 하면은 여러분들이 주일 성수는 교회가 분명히 지켜야 할 중요한 것이지만 나머지는 많은 것들이 옵션이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내가 보면서 참 그것은 한번 새벽 기도 하는 것보다 남편하고 늦잠 자는 게 낫고, 또 어디에 출타해도 교회에서 그렇게 하면은 마음에 부담 없이 가볍게 갈 수 있잖아요,

 

예수님이 이런 자유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거다 이말 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들 속에 정말 한 우리 교회도 4-5년 이래 지낸 분들은 이런 마음 가지세요, 참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 갈라디아서를 알지 못하고 이 갈라디아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목회 속에 있었다면은 억압을 당하면서도 그것이 당연시 여기고 그기 안주했을 텐데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허락하여 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이런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그 중한 고난을 겪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3.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자기 의로 생각하고 만족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는가 알아서, 자유를 주신 주님께 은혜의 감사하는 신앙인이 되야 한다. 자유를 너희들이 육체에 기회 방종의 기회로 삼지 말라. 가족의 공동체가 되게 한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이다.

 

그래서 사람들 속에는 언제나 신앙 생활 할 때에 항상 메이고자 하는 오류가 또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율법주의인데요, 그래서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잘 하는 것을 자기 의로 생각하고 만족 해하는 사람은 오늘도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는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 형편껏 (능력껏) 하나님 앞에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하라고 부르신 것을 생각하며 정말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그런 귀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또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다음에 뭐라 그래요?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마라, 방종에 위험에 대한 경고입니다. 사람에게 자유를 주면은 처음에는 두려워하고 어리둥절하다가 방종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로 부르심을 입었지 만은 그 자유를 너희들이 육체에 기회 방종의 기회로 삼지 말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교회에 여러분 4년 이상 다니신 분들 5년 이상 다니신 분들 이 말씀을 경고로 받아야 됩니다, 혹시 나는 그 동안 굉장히 율법주의적인 신앙 속에서 살다가 그 정말 교회 와서 참 자유를 얻었는데, 이제 이것이 혹시 내가 육체의 기회 방종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여러분들이 경고를 받는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왜 받아야 되는가 우리 모두가 이렇게 방종으로 흐르면은 우리가 얻은 그 귀중한 자유를 잃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민주주의가 참 좋고 대한민국이 좋은데 우리가 이 민주주의가 가져다 주는 자유를 방종으로 흘려 버리면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소중한 자유를 일어 버릴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거룩한 짐을 지며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짐이 가벼우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뭔지를 알아야 되요. 지금 여러분 참 이 두 가지의 오류 속에 왔다 갔다 하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하면은 근본적으로 보면은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 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가 천국의 티켓을 얻은 줄 알고, 또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은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해서 동키호태 와 같이 넘치고 못할 일이 없는 도깨비 방망이 받는 것이 예그리스도의 구원인 줄 알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제가 말씀을 드린 데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도말 하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아바아버지가 되게 하신 거요, 그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고 하늘 보좌 우편에서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우리 모두가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가 되게 한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입니다. 이걸 노치고 있어요, 보수신앙이나 자유주의 신앙이나 어디에서나,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뭐냐 하면은 예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는 성령을 함께 나누어 가진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로 받아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은 그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사는 것이 신앙 생활이지 종교 생활이 아니라 말입니다. 

 

4.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부르심을 입었는데 그것을 육체로의 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종 노릇 하는 기회로 삼아야 되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과 겨자씨와 같다, 하나님의 나라는 농부가 씨를 뿌리는 거와 같다 하셨다, 열매를 딸 때 농부의 기쁨이 하나님의 나라다.

 

여러분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 하면은 고 다음에 보면은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부르심을 입었는데 그것을 육체로의 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종 노릇 하는 기회로 삼아야 되요. 그런데 여기에서도 서로 사랑해야 돼 종 노릇해야 돼 섬겨야 돼 이래 버리면은 율법이 되어 져 버립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늘 종 노릇 하지 못할 때에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또 남들보다 더 좀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은 우리 교회에 우리같이 잘 믿는 사람이 어디 있냐 하고 우월 의식과 자기 의에 도취되어서 살고 이런 게 굉장히 많이 있지요.

 

교회는 여러분 종 노릇 하라는 게 아니에요, 사랑해야 됩니다 하는 것이 설교가 아니고, 여러분들이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로 받아 드리면은 종 노릇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종 노릇은 율법으로서의 종 노릇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거든요, 가족으로서의 여러분들의 종 노릇은 짐이 가볍고 즐거워요, 이런 신앙 생활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이것을 모르고 그저 율법 안에서 허덕이는 이런 종교 생활하는 사람 참 많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들의 가족에서 부모님은요 자녀들에게 영원한 종 노릇 하잖아요, 그런데 부모가 자식의 종 노릇 하면서도 힘이 들지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우월 의식을 가진다든지 죄책감 가지지 않게 되지요.

 

교회도 그런 겁니다 여러분 부모가 연세가 들고 이러면은요 오히려 자신에게 짐이 될지라도 부모님에게 끝까지 종 노릇 하잖아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보혈의 피에 대한 감사와 성령의 강한 역사 하심이 있는 초대 교회에는 그랬다고요, 이랬든 교회가 건조해 지고 말라 져 가지고 그저 사랑해야 돼 섬겨야 돼 이러니까 오히려 이런 말씀들이 짐이 되는 신앙 생활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능력에 지나친 것을 요구하지도 안 해요, 제가 여러분 목회하면서 제일 슬픈 이야기가 뭔지 압니까, 목사님 이제는 늙어 가지고 아무것도 못해요, 사람 뭐로 보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여러분 연세 드신 보모에게 30대의 장년의 능력을 요구 안 하는 게 가족이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에게 순종이라는 것은 카이로서의 순종이다 이랬잖아요, 주일 예배를 해야 되느냐 안 해야 되느냐 이런 순종이 아닙니다 때의 순종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얼마나 자기 의가 강한지 몰라요, 율법주의는 그런 거에요, 그래서 어떤 프로잭트를 이루고 뭔가 공기를 단축하고 이런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인 줄 아는데 그것은 유대교적인 하나님의 나라고, 그런 것들이 얼마나 사람을 억압했는지 모른다고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아 겨자씨와 같다, 하나님의 나라는 농부가 씨를 뿌리는 거와 같다 이랬어요.

여러분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은 뭡니까, 싹이 날지 안 날지? 눈물을 흘리면서 뿌리는 거에요, 옛날에 여러분 이 보리 고개가 있을 때에 그 종자의 양식을 빻아서 먹으면은 한끼의 배는 부르겠지마는, 그것을 땅에 심으면은 오늘 배가 고프잖아요, 그런데 그 심은 씨가 싹이 나서 열매를 맺을지 안 맺을지 모르고 농부는, 그것을 열매 맺게 하시는 것을 믿으면서 뿌린다고요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는 자, 그러면 그게 금방 자라 가지고 내일 아침에 큰 나무가 되어서 열매가 주룽 주룽 열리는가? 아니에요, 오랜 기다림이 있어야 되요, 그래서 그 열매를 딸 때에 농부의 기쁨,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이 그런 거에요.

 

5. 급성장하는 것을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왜곡(歪曲)된 전제가 우리에게 많이 있다. 성령 받으면 그렇다면은 신앙 큰 짐이 된다. 가족은 능력에 지나친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자기의 능력에 지나친 것을 가지고 여러분 무리하지 않는 것이 가족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에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이콜을 시키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종교적인 학대와 오류가 일어나는지 몰라요, 여러분 우리 교회가 제대로 되는 성장하는 교회에요, 왜 눈에 보이지 않지만은 여러분들이 보시면은 정말 처음에 와서는 자유를 주어서 좋다 했다가 그 다음에 방종으로 흘렀다가 한 사 오 년 되면은 자기의 능력껏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의 역할을 감당해 가거든요, 그러니까 양적으로 급성장하지 않지마는 그런 변화 속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저는 보여요, 여러분 그런 것을 가지고 뭔가 큰 일을 갑자기 이루는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왜곡[歪曲] 된 전제가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른다고요,

 

부모가 자식을 낳아 가지고요 금방 서른 살 빨리 되가지고 부려먹으려고 자식 놓는 부모 어디 있습니까, 이게 제대로 사람 노릇 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은 눈물로서 기다리면서 양육하는 것이 부모 아니에요, 그래서 성장하다 보면은 이제는 부모님의 은혜를 봐서 부모님이 연세가 드시고 침해가 걸려서 헛소리를 해도 엄마 내 곁에만 있어 줘 하고 부모를 모시는 것, 이런 것들이 내 혈연의 가족 속에만 아니고 인류의 역사 안에 인간 세상에 나타난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이루신 이 교회는요 여러분들이 믿으나 안 믿으나 존재해요, 그것을 그렇게 된 것을 받아 드리는 것이 믿음이에요.

 

그것이 그 믿음 속에 그런 구원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제가 예배를 드리면서 참 여러분들이 오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 들어요, 참 크게 능력도 없으면서 세상 자기 혼자 짐 지고 참 고생하며 한 주간 살았잖아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자 독식의 사회입니까, 그래서 내 수고의 대가를 못 받고 살았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교회 와서까지도 여러분들에게 슈퍼멘을 요구하고 성령 받으면 그렇다고 하면은 더 큰 짐이지요, 여러분 가족은 능력에 지나친 것을 요구하지 않고요, 자기의 능력에 지나친 것을 가지고 여러분 무리하지 않는 것이 가족입니다. 오늘 일부 예배도 우리 김정애 권사님 사위 곽채진씨 여러분 아시죠,

 

프로야구 선수 아주 유망주였지요 해태에서 부상당해서 은퇴해서 지금 중학교 감독을 하는데 제가 그랬어요 그 현민이 엄마보고 남편이 많은 연봉 받을 때 그때는 내 남편이고 지금 중학교 감독 되 가지고 받는 돈이 그때 치면 푼돈 아니겠어요, 그걸 가지고 오는 남편에게 당신 옛날에 연봉 어디 있어 더 큰 것을 요구하면 가족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적게 가져다 주는 연봉을 보면서 남편이 좀 무리할 때에 괜찮아 나는 당신이 많은 돈 가져다 주는 것보다 당신이 건강한 것이 좋아 이게 가족입니다. 성령 받으면은 그런 신앙 생활이 되어져요,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저는요 목사의 아들이었지마는 제가 빨리 장가가고 이랬든 것은 예수 안 믿으려고 그랬든 거에요.

 

6. 신학교에서 진짜 하나님이 누구신가 성경만 읽었는데 다시 알아보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고, 혈연의 가족보다 더한 영원한 성령의 공동체가 예수그리스도가 이룬 교회이고 구원이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선악과 따먹기 전 아담보다 더 완벽한 인간을 만들었다.

 

왜 아닌 것 같아 내가 볼 때 에는, 왜 그런 하나님 믿어야 되는가 그런데 제가 정말 그 험악한 세상 살면서 신학교 가서 하나님 진짜 하나님이 누굽니까, 성경만 읽었거든요 진짜 교회가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이 교회라면은 어떻게 순교하는 그 핍박 생활 속에서 존재했겠습니까,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의 강림으로 구약 성경과 성경을 보니까 내가 본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리를 요구하는 하나님이 아니더라고요, 구원이라는 것이 천국 가는 티켓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 혈연의 가족보다도 더한 영원한 성령의 공동체가 예수그리스도가 이룬 교회고 구원이더라고요, 여러분 이런 목회를 하면은 기다림의 눈물이 있습니다, 저도 이래 목회자들을 만나면은 뭐 제 주변에도 만 명이니 몇 천명이니 이런 목회자들 만나면은 아 참 이야기하다 보면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여러분들에게 해야 될 소리인지 안 해야 될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이런 분도 있더라고 간혹 교인들이 어려우면은 더 쥐어 짜야 된데, 교인들에게 시간을 빼앗아야 딴 생각 안 한데, 그것이 그 사람을 위한 복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정신병자 아닌가 싶어요, 여러분 정말 우리가 가족이라면 자기의 능력에 지나친 헌금과 헌신을 하면은 걱정해 줘야지요 하나님 믿어야지요, 여러분들이 자유 자식을 자식에게 그래 생각하면 안 되요, 모든 것을 해주는 것을 부모의 사랑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자식 망치는 것이고요, 얼마나 이기적인 신앙을 오늘날 젊은 부모들이 하는지 몰라요, 저는 제 아이들에게 좀 냉정합니다, 공부하게 해 주었으면 되었지요 뭐 더 이상 여러분 아세요.

 

자녀에게 하라 하지 말라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은 자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걱정을 해결하는 부모의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로브트가 되는 거지요, 뭐든지 자유로운 결정을 하지 못하고 엄마가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신앙은 그런 게 아니에요, 여러분 예수 믿으면서도 이런 분들 있지요, 성경을 보다가 왜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만들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고 하는데 선악과 따먹을 줄 알면서 하나님이 선악과 만들어서 인간 골탕 먹이는 하나님 잘 들으세요.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을 자유까지도 우리에게 주었어요, 저는 그 하나님이 너무 좋아요, 저는 교인들에게 뭐 죄 짓고 뭐 이렇게 벌벌 떨까 생각 안 해요.

 

좀 하면 어때요, 그 안에 성령님이 있으면 새로워 지는데, 저는 우리 하나님은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내 자신이 선악과를 따먹을 자유까지도 주셨어요, 그래서 그 선악과를 따먹으면은 고통 당할 때에 그 고통 당하는 나를 눈물을 흘리면서 지켜 보고 계시다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선악과를 따먹기 전 에덴동산의 아담보다도 훨씬 더 완벽한 인간으로 만드신 겁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이 그분 속에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 자녀도 그 하나님께 맡기세요, 그게 아브라함의 이삭을 제물로 바친 거에요. 여러분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자기 걱정을 해소하려고 하는 자녀를 통해서 해소함으로 자식을 망치는 부모의 이기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의 하나님 아니에요.

 

7. 성령이 역사하시면 가족으로 보여서 무리하면 걱정되고 능력에 지나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종교적인 율법 논쟁하라고 교회에 규율이나 법칙을 준 게 아니다. 논쟁하다 보니까 정작 가족으로서 서로의 종 노릇 하는 것은 잊어버리고 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때로는 주일도 빠지고 11조도 떼먹고 하지만은 우리 하나님은 기다리면서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해 나가는 능력을 그 마음속에 씨앗으로 심어 놓았어요, 그러려면 여러분 오늘도 여기에 사랑으로 종 노릇 하라, 예수 믿으면서 사랑하세요 종 노릇하세요, 아 저는요 옛날에 그 설교를 들을 때 마다 저 바리새인 싶고요, 또 성령 받으면 그게 내 속에 죄책이 되고 이러는데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겁니다. 성령 받아서 여러분들 속에 성령이 역사하시면은요 가족으로 보여 져요, 그러면은 무리하면은 걱정해요, 가족은 능력에 지나친 것을 요구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자유가 있습니다 교회가 그런 곳입니다. 그래서 뒤에 뭔가 하면은 모든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어졌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네 몸과 같이 네 이웃이 네 몸 가족이 되었다는 거지요 가족의 사랑이라는 거지요. 율법은 그것으로 완결 되었다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참 이것 회복하셔야 세상에 살면서 지치고 곤했든 여러분들이 회복될 거잖아요. 가족은요 서로의 어떤 것을 정말 눈치 안 보고 하잖아요.

 

오늘도 여러분들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여러 가지 그런 부분들, 15절 보십시다 성령께서 다 말 안 해도 여러분들 심령 속에 역사하겠지요,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이 말이 뭐냐 하면은요 제가 지난주일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했지 않습니까, 갈라디아서에 내용은 은혜로 구원받느냐 율법으로 구원을 받느냐 신분의 문제가 아니다 이 말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누리는 자유와 천국의 삶을 이야기하는 거다, 이게 여러분 요즘 가랄디아서의 새로운 해석이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왜 그것이 중요하냐 하면은 이것을 신분으로 볼 때에 논쟁이 얼마나 기독교의 2천 년의 논쟁이 뭐냐 하면은요 율법으로 구원을 받느냐 은혜로 구원을 받느냐 이 논쟁하는 거요,

 

율법으로 구원받고 은혜로 구원 받든지 무엇으로 받든지 구원 받으면 되지요, 그럼 구원받은 것이 뭐냐 이 싸움을 해야 되는데, 그 논쟁하다 보니까 정작 가족으로서의 서로의 종 노릇 하는 것은 잊어버리고 있는 거요, 그러니까 교회가 문 닫는 지경에 이른다는 거에요, 기독교가 안티 된다고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리 논쟁 하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종교적인 율법 논쟁하라고 교회에 규율이나 법칙을 준 게 아니에요, 기독교 역사 가운데 여러분 아시다시피 러시아가 볼세비키 혁명으로 소련이 되었잖아요, 그전에 러시아가 어떤 러시아였어요, 그 전에 러시아가 러시아 정교의 본산입니다, 기독교가 그렇게 왕성했는데 왜 공산주의가 들어와서 칠십 년 동안 고통 당했습니다.

 

러시아 정교가 말년에요 신부의 가운의 길이는 몇 센티 되야 되느냐 이 논쟁 가지고 몇 년 동안 싸웠든 교회입니다. 가운 입어야 되느냐 안 입어야 되느냐 몇 센티 그게 뭐 문제가 있어요, 여러분 경쟁이 심하고 성자 독식의 사회 그래서 러시아 제정 러시아의 말기에 영주들의 싹쓸이 경제로 인하여 수많은 농도들의 눈물을 신부가 봐야 되겠지요, 그랬으면은 공산주의가 들어올 자리가 없었겠지요. 오늘날 여러분 한국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열심히 예배를 드리느냐 율법으로 구원을 받느냐 은혜로 구원을 받느냐 이런 논쟁 더 필요 없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미 구원을 이루셨는데 이제 그걸 받아 드려서 여러분들은 가족의 삶이 되어서 눈치 보며 신앙 생활 하지 마세요,

 

교회는 더 이상 교인들에게 능력의 지나친 요구를 하지 마세요, 자유를 얻은 사람들은 이제는 누렸다면은 방종의 기회로 삼지 말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에 짐이 많구나 생각해서 그 짐을 나누어 지고 살아가는 이런 삶으로 될 때 문닫을 일이 없겠지요. 가끔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의 사고를 변하라고 하는 이야기에요. 여러분들이 정확한 판단이 있어야 대통령이 나라를 제대로 다스려요, 이번에도 여러분 참 그 뉴스 보면은 제가 미국이나 뭐 이런데 여행가면은 그런 참 길이나 이런 것이 참 후 져요 그지요, 그래서 가이드에게 물으면은 미국이 제정이 없데 그러면 같이 간 사람들 중에 웃으면서 우리 한국은 길을 얼마나 잘 닦는다고 자랑을 해요, 참 여러분 우리 미시령 터널 또 그 다음에 우리 여기에 용인 전철 얼마나 잘 닦아 놨습니까, 그것 보존한다고 수백억씩 들어가고 있거든요, 미국이 우리보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그 돈 가지고 사람 살리는데 쓰기 때문에 없어요 그게 가족입니다, 그게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삶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그 설악산 놀러 가면서 미시령 타고 쑥 갈 것 뭐 있어요 미시령 고개 넘으면 얼마나 좋은데 그걸 왜 터널을 뚫어 가지고 그 고생하느냐 이 말이에요,

 

8.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십자가 보혈의 피 리시고, 하나님이 아버지 되시고 우리 모두가 성령을 함께 나누어 가지고, 하나님은 각자의 삶 속에 존재함으로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이다. 장애인도 가난해도 늙어도 자본주의적 가치관에서 판단된 사람 속에 하나님이 보여야지요.

 

그런데 그런 것을 보면서도 그 뭐라 그러더라 뭐 닭 좇든 개가 지붕 쳐다보고만 있으면 뭐해요, 여러분들 스스로에게도 그러세요. 정말 우리가 여기에서 교회는요 사랑하라 종 노릇 하라는 것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십자가 보혈의 피 흘려 주시고 하나님이 아버지 되시고 우리 모두가 성령을 함께 나누어 가지고 그 하나님은 각자의 삶 속에 존재함으로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 입니다, 사람밖에 있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아무리 장애인이라도 아무리 못생겼더라도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리 무지렁이라도 아무리 늙어서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자본주의적 가치관에서 판단된 사람 속에 하나님이 보여야지요, 오늘도 여러분 갈라디아서에서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너희가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종 노릇 하라 율법으로 준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정말 타인의 눈으로 사람을 보면서 억압하고 성자 독식하는 사회 속에 하나님은 그 생명을 잃어버린 유대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만드시고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정말 자유로운 결정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땅에서도 경험하다가 우리가 천국에 탁 들어가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이 말씀 한 겁니다. 여러분 힘들 때마다 그 생각하세요, 저도 그래요 여러분 참 율법주의라 하니까 좀 더디고 힘이 들지마는 저는요 나중에 그래 생각해요,

 

주님 앞에 탁 갔을 때 주님 제가 맞았네요 그 말 듣고 싶어요 그 생각 나고 싶어요, 주님 만 명 모으는 목회가 아니고 사람이 밟히는 목회가 맞았네요 천국이 그런 곳이네요, 하고 천국에 들어갈 때 여러분들이 땅에서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졌든 그 고통이 면류관이 되는 거에요 기쁨이 되는 거에요. 상급은 보상이 아닙니다, 땅에서 우리가 얼마나 세상의 가치관과 다른 삶을 삶으로 흘린 눈물과 그 삶이 천국에 들어갈 때에 기쁨으로 변화되는 그런 상급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가족의 눈으로 보아서 방종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정죄하지 말고요 스스로 방종한다면은 육체의 기회로 삼는구나 하고 돌이키시고요,

 

또 여러분들이 정말 율법주의에 메여서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스스로 옭아 메어서 죄책감에 눌려 있는 사람이 있다면은 주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오늘도 예수님이 우리 모두를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로 만드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 드려서 교회의 어떤 사람도 가족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런 신앙 생활이 저와 여러분들 속에 있기를 바라고 그런 교회가 되어서 신앙 생활이 짐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일할 힘 허락해 주시고 재능 주시고 직장 주시고 삶의 터전 허락해서 우리가 먹고 살며 삶을 영위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이 복이고, 남들 위에 굴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착각하며 사는 세상 속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신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수고의 9는 내 자신이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나의 분복으로 허락해 주시고 101은 우리 가운데 영원한 하나님의 가족 가운데 어려운 자들과 함께 나누어서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더불어서 살아가는 복된 세상을 만들도록 귀한 제도를 허락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건물에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거하시는 줄 알아서 우리 교회가 겨자씨 헌금이 성전 건축으로 생각하고 또한 우리 모두가 함께 거주해야 할 예배당을 위해서 우리 집 헌금을 통해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마음이 있어도 형편이 여의치 못한 자들에게 아버지 마음의 부담을 사라지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 정말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는 자에게 육체의 기회가 아버지 하나님 기회로 삼지 아니하도록 그래서 내 짐이 다른 사람의 또 다른 짐이 되지 않는 아름다운 가족이 세워 져 나갈 수 있도록 은혜 주시고 우리 가운데 은영이 이제는 얼마나 남지 않는 젊은 나이의 삶 속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바라볼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고, 또 우리 신동우 집사나 우리 교회에 많은 육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몸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회복의 역사 주시고, 또 부모의 어려운 여건 때문에 본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고 출퇴근 하는 성도들 하나님 아버지 마음의 짐이 아니라 때를 따라서 부모를 섬기는 것이 기쁨이 되는 귀한 은혜 있게 하시고,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정말 우리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손들고 싶은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오늘 할일 잘 감당해서 아버지 하나님 나중에 웃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고, 포기하고 좌절하지 않도록 성령께서 그 마음을 붙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짐을 서로 지므로 말미암아 정말 어려운 자들에게 말로만이 아버지 하나님 부조하는 교회가 아니라, 실지로 그들의 삶의 비빌 언덕이 되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에게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육체의 기회로 삼지 않고, 서로 사랑으로 종 노릇 하는 아름다운 교회로 회복시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역사하여 주시고 이 예물이 주님의 교회에 방축을 든든히 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인간 속에 비교할 수 없는 것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혈연으로 연고로 뭉쳐서 서로 다투다 멸망 당하는 인생을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한 가족임을 알도록 성령의 교통하심이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로 받아 드리는 줄 알아서 사람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자유하며 육체의 기회로 삼지 아니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 피로 값 주고 사신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주님의 거룩한 몸인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