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요한복음 1장 35-39절
2016년 2월 28일 주일 낮 예배
No. 252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아멘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을 하자 세례요한을 따르든 두 제자가 예수님을 추종하기 위해서 따랐다. 요한복음의 여러 용어는 물리적인 현상을 나타내지만 그 안에는 영적인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님의 초청 / 나를 따르라 나를 추종하라.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증언을 하자, 자기를 따르든 두 제자 오늘 여기에 그 다음 본문에 보면은 한 제자는 안드레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또 한 제자는 이름을 말하지는 않지만 성경학자들은 요한이 아니겠나? 왜냐하면은 요한복음에서 자기가 쓰면서 자기이름을 쓰기가 뭣해서 생략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갔다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두 제자에게 오늘 예수님이 뭐라고 질문을 하는가 하면은 무엇을 구하느냐? 제가 요한복음을 여러분들이 읽으실 때에는 항상 요한복음의 있는 여러 용어는 물리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단어이지만은 그 안에는 영적인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갔다라는 것은 물리적인 공간으로 예수님을 따라갔다는 말도 되지만은 예수님을 추종을 하기 위하여 따라갔다, 예수님을 추종하는 자가 되었다. 라고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따르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이상한 질문합니다. 무엇을 구하느냐? 구한다는 말도 네가 무엇을 추구하기 위하여 나를 따르느냐? 라는 말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교회에 이렇게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와 있는 겁니다. 물리적인 공간에 여러분들이 와 있는데, 이 시간 요한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는 것은 네가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있느냐? 이런 말입니다.
1.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어느 세계에 속한 자 입니까? Identity 는 뭔가? 무엇을 위하여 예수를 믿는가? 당신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를 묻는다. 예수님이 와서 보라는 말은 너희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예수님의 정체성이 무언지 좀 확인 해 보라는 것.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리려 이 자리에 그냥 단순히 와 있지만은 예수님이 이런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는 왜 예수를 믿는가? 무엇을 위하여 예수를 믿는가?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이 한번쯤 여러분들 스스로에게 대답을 해 보세요, 내가 왜 예수를 믿는가? 무엇을 위해서 믿는가? 전부 내 자식 잘 되고, 사업 잘 되고, 직장 생활 편안하기를 바라면서 예수를 믿는다면은 정말 예수님을 추종하는 자가 아니라 이 말입니다. 또 그런 일들 때문에 시험에 든다면은 그것도 예수님을 추종하는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인간관계가 파탄이 나고 좀 마음이 상해서 실족한다면은 그것도 예수님을 제대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입니다.
정말 우리가 다시 한번 요한복음을 우리가 쭉 강해할 때에 언제나 여러분들 속에 이 질문이 있어야 됩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는가? 무엇을 위해서 예수를 믿는가? 그것에 대한 정확한 대답이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도 들어갈 수 있고 누릴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게 질문을 하자 두 제자가 예수님에게 다시 반문 합니다, 랍비여 당신은 어디에 계시오니까? 예수님이 머무는 곳이 어디냐 이걸 묻는 것 같지만은 그 말의 의미는 뭐냐 하면은, 예수님 당신은 어느 세계에 속한 자 입니까? 당신의 Identity 는 뭔가? 당신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뭡니까? 이것 묻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예수님을 기도하면은 응답하는 정도로 생각을 해서 여러분들의 힘이 부족해서,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을 초월적인 예수님의 힘을 가지고, 응답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땅에 속한 사람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이 질문부터 여러분들이 한번 해야 된다고요, 예수님은 어느 세계에 속한 분인가? 예수님의 정체성은 뭔가? 예수님의 Identity 는 뭔가? 말로만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입으로만 고백하지 말고, 그 고백이 예수님이 어떠한 정체성을 나타내는가? 질문 해야 됩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와서 보라, 라고 말을 합니다. 정말 가슴 칠 일이에요. 1980년대에 총 동원 주일 하면서 와 보라 표어 걸고, 교인들 끓어 모으라고 성경 말씀 있는 게 아니에요. 와서 보라 그래서 설탕 푸데 나누어 주고 선물 나누어 주고, 또 와서 예수님 때문에 기도 응답 받았다 복 받았다, 간증 듣고 전부 땅에 메인 겁니다.
예수님이 와서 보라는 말은 너희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예수님의 정체성이 무언지 좀 확인 해 봐라, 참 여러분 우리 이런 부분에 여러분들이 좀 비판적이라 생각하지 말고, 잘 들으셔야 됩니다. 옛날에 우리 한국 교회는요 축복 대 성회가 없었습니다. 축복을 위한 특별 새벽 기도가 없었습니다. 말씀 사경 이었어요. 어떻게 하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더 듣고 깨달을까, 그때에 진정한 기독교인의 모습이 교인들에게도 있었고, 교회에도 있었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걸어서 말씀을 깨달으려고 걸어왔어요. 지금과 같이 설교 30분에 끝나야 된다는 것도 없었습니다. 부흥회 하면은 2시간 3시간을 하고도 조금 더 해 달라고 하는 이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2. 그가 계신 곳을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거한다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 한다는 말씀. 요한복음은 언제나 모든 상징적인 말을 통해서 영적인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다. 영의 안식이 뭔지? 우리가 보는 이 물질 세계 속에 본질을 보는 것이 영이라고 한다.
축복 대 성회가 없었고, 심령 부흥회 입니다. 땅에 매여 가지고 땅에 것 때문에 울고 웃든 자들이 심령이 살아나서 이제는 이 세상에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기뻐하는 하늘의 삶을 살기 위해서 집회를 했어요. 여러분들이 오늘도 여기 와서 무엇 하러 오셨어요? 예수님의 정체성을 확인해서 그분과 함께 하기 위해서 오셔야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이 시간 좀 와서 내가 누구인지 확인 해 보라, 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그 초청의 말씀을 듣고 두 제자가 예수님이 계신데를 보고 오라고 말해요. 그 말은 뭔가 하면은 예수님이 어느 세계에 속한 분인가? 예수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이 땅에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고, 그가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거한다는 말은 예수님이 거하시는 그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 한다, 이런 말입니다.
우리가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에 동참할 때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 가려고 할 때,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가져오신 그 하나님의 나라에 내가 참여를 할 때에 라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거하니까 그 다음에 뭐라는 가 하면은 때가 10시쯤이었더라, 신학자들은 이 열 시를 로마의 열 시간인가 유대인의 시간인가? 뭐 많은 논쟁을 합니다 마는 그런 논쟁 의미 없어요. 요한복음은 언제나 모든 상징적인 말을 통해서 영적인 의미를 설명하는 겁니다. 때가 열 시였다는 말은 무어냐 하면은 유대의 시간으로는 금요일 오후 네 시 입니다, 안식의 시작을 말하는 겁니다. 정말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예수님이 속한 그 세계에 자기가 속하여 지려고 할 때에 비로서 그들 속에 안식이 시작이 되었다. 그들의 삶의 평안이 시작이 되어졌다. 이런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늘 염려하고 불안하고 걱정하는 것은 예수님이 속한 그 하늘의 세계에 속하지 아니하고, 땅에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이 얼마나 귀한 시간입니까? 여러분들의 인생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다시 살 수 없는 인생인데 정말 이 귀한 시간에 와서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거하시는 그 하늘의 세계의 천국의 세계에 동참함으로 이 세상에서 안식을 누리며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야 되지 않겠어요? 그러려면 요한복음을 통해서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어떤 Messiah이고 그분은 어떤 세계에 속하였으며, 예수님이 속한 영의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하는 것을 확인하고 함께 동참하려고 해야 됩니다.
교회의 어떤 비전에 동참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목적에 동참하는 것도 아니에요.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가져오신 그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는 자가 되야 됩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여러분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샬롬 평안 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건강하게 되기를 바라고, 다 그런 것들은 물리적인 현상이고 그 밑바닥은 평강입니다 샬롬 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인사는 샬롬 이고요, 우리나라도 안녕하십니까 평안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세상에 있는 사람들 물질 세계에 속한 사람들은 그 안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은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가져야지,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가야지, 건강해야지, 걱정이 없는 삶을 사는 줄 알아요, 여러분 위대한 착각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보는 것이 다인 줄 알아요, 교만하고 이기적인 인간은요 자기가 조금도 틀리는 오차가 없는 그런 자라고 생각해요, 그게 바리새인 아닙니까?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다고, 하나님 만나면은요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 못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좀 살아 보지만은 자 다시 후회하지 않으려면은 여러분들 좀 저보다 젊은 분들은 전부 걱정이 이런 걱정 일거요 어떻게 하든지 우리 자녀가 공부를 잘해 가지고 좋은 대학가기를 바라는 것. 여러분들의 걱정이 그것 빼고 나면은 뭐 있는 게 뭐 있어요? 그런데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 가는 것은 물질의 세계에 속한 삶을 보는 거에요, 영의 세계는 뭔가?
여러분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 가기를 바라는 것도 뭐냐 하면은 걱정하지 말라고, 오늘날 여러분 교회가 예수 믿으면 자녀 좋은 대학 가기를 바란다고 하는데, 그러면 절 보다도 못한 교회 됩니다 가슴 칠 일이에요. 사람들이 절에 갈 때에는요 이 세상의 물질의 세계가 너무나 힘들어서 마음의 안식을 얻으려고 가요, 정신의 안식 정도가 교회가 말하는 게 아니에요, 영의 안식입니다. 영의 안식이 뭔지? 헬라적 이분법으로 영의 세계가 있다는 둥 뭐 그런 게 아니에요, 우리가 보는 이 물질 세계 속에 본질을 보는 것이 영입니다. 여러분 이것 깨닫는 것이 영입니다, 내 자녀가 좋은 대학가기를 원하지만은 조금 연세 드신 분들 그런 분들에게 그런 이야기 하지요, 애 대학 들어가 봐 끝 나는가? 대학교 들어가는 즉시 또 싸움이 시작되고 걱정이 시작됩니다, 뭔 걱정이요? 10시까지 통행금지다, 12시까지, 1학년 동안에는 그 싸움 하다가 2학년이 되면은 취직 걱정 얘가 대학 졸업 해가 취직하겠나? 쉼이 없는 겁니다. 안식이 없는 겁니다.
3. 전도서에 그런 것들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은 그런 물질의 세계라는 것은 쇠하여 지는 것으로 일시적인 가치라는 것. 죽을 때까지 이 물질의 세계에 속한 안식이 없는 인간에게 예수님은 안식 평안을 준다 하셨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공의로운 속성이다.
그런 찰나에 안식을 예수님이 가져오신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전도서에 그런 것들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고, 그런 물질의 세계라는 것은 쇠하여 지는 것으로 일시적인 가치라는 거에요.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얼마나 일시적인 가치관에 교회로 만들어 버리니까 절보다도 못한 교회가 되는 거에요. 여러분 취직을 하면은 끝나는 줄 아세요? 좋은 직장에 취직하게 해주는 이기적인 내가 만든 신이 아니라 말입니다. 취직하고 나면은 또 부모들 결혼 정년 기에 있는 부모들은요 결혼 앞둔 자녀들은 그것하고 비교할 수 없는 걱정이 많다고 그래요, 결혼만 시키면은 끝납니까? 요즘 결혼식 해도 이게 언제 이혼 안 하고 잘 살아갈지?
애들이 잘 살고 손자 손녀 낳아 가지고 잘 산다고 해서 끝납니까? 이제 저도 그 나이가 스스이 접어드는 것 같아요, 어디에 가서 옷을 하나 사려해도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하면은 이것 죽을 때까지 있는 것도 다 못 입을 건데, 고쳐 입지 이 생각 들어요. 그러면서 슬슬 걱정되는 게 야 죽을 때 잘 죽어야 될 건데, 이 생각이 든다고요, 죽을 때까지 이 물질의 세계에 속한 인간은 안식이 없어요. 그런데 그 안식이 없는 그 인간의 세계 속에 예수님이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너희에게 평안을 준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영의 세계에 속하고 예수님이 추구하는 그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해야 대학 앞두고 있는 자녀든지, 취업을 앞두고 있는 자녀든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자녀든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인생이라도 안식을 누리는 거에요.
목사인 나도 잘 죽어야 될 텐데? 물질에 속한 내 인생을 보는 거에요. 내가 예수님에 속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순간 그 평안이 다시 찾아 오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그러면 예수님의 속한 영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는 이상한가? 아니에요 자꾸만 하나님의 나라를 천사라든지 귀신이라든지 이상한 존재로 만들어 버려요. 장차 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는 공의로운 나라에요. 자 이것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속성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공의로운 속성이에요. 여러분들이 이 물질의 세계에 모든 염려는 뭐냐 하면은요 공정하지 못한 죄인들이 만든 세상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 자녀들이 전문직을 가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라는 것이 뭐냐 하면은 자기가 수고한 대가를 정당하게 받으면서 살아가라는 것이거든요. 영에 속한 자의 행복과 영에 속한 자의 평강이 뭐냐 하면은 여러분 우리 인간은요, 정말 인간의 행복은 내가 수고한 것에 대해서 정당한 대가가 주어질 때에요. 인간의 불행은요 내가 암만 노력을 해도 내 노력의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지 아니할 때에 억울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겁니다. 잘못에 대해서도 내가 잘 못한 것 혼나는 것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잘못한 것 심판 받을 때 사람들은 억울해 하지 않습니다. 잘 못 안 했는데 심판 받으면 억울해 해요. 나는 조금 잘못했는데 이만큼(많이) 벌주면은 화가 나고 불행하다고 하는 거에요.
4. 예수님이 계시하신 그 하나님을 경외해서 그 하나님을 추종하며 따라가는 자는 복이 있다, 네가 네 손으로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치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굉장한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에요, 예수님은 이 땅에 무엇 때문에 오셨는가? 그 하늘에 속한 그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가운데 오셔서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 영의 나라를 만든 겁니다. 그러면 오늘도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추종하고 따라가는 것이 뭐냐 하면은 자신의 수고에 대해서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도록 예수 믿어야 되는 거에요. 그것이 예수님을 추종하는 삶이라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여러분들이 기도를 한번 살펴보세요, 하나님 우리 아들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 말이 뭐냐 하면은 우리 아들 자기가 노력한 것에 대해서 억울 한일 당하지 않고, 정당한 대가를 바라기를 바란다는 마음이지요. 내 아들 잘 되기를 바라면서 다른 사람들 잘못,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에요.
여러분 시편 128편 1절과 2절에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가 뭔가 하면 예수님이 계시하신 그 하나님을 경외해서 그 하나님을 추종하며 따라가는 자는 복이 있다, 네가 네 손으로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다. 자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의 눈에 낀 비늘이 벗겨져야 되요. 이제는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라는 것이 여러분 GNP가 높은 나라가 되는 것을 포기하세요, 우리 그것 당해 봤잖아요. 물질에 속한 자들은 GNP가 높은 세상을 추구해요, 왜 그건 물질의 세계니까, 지난 정권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747 보잉기 이름 비슷한 것을 가지고, 우리나라 4만불 소득 경제대국 7위 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벙벙하게 되어 표 찍어 주어 가지고 5백만 표 이상 났는데 우리나라가 4반불 이상 된다고 여러분 다 행복하겠어요? 영에 속해야 되요.
우리가 옛날이 좋았다 하는 이유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되요. 제가 젊은 날 제가 사회에 진출하는 그런 70년대는요 열심히 일을 하고 공부를 하면은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시대였어요. 국민소득은 2천불이 채 안 되는 나라였지만, 영의 세계가 있는 나라였다 말입니다. 그때는 미국을 동경했습니다 왜 했는가 기회의 땅이라고, 그곳에 가면은 삘딩 청소를 해도 접시 닦기를 해도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라고, 오늘 여러분 우리 나라가 그런 공의로운 세상을 이번 국회의원 잘 뽑으면 될까요? 대통령 잘 뽑으면 될까요? 우리나라의 훌륭한 기업가 버그 같은 기업가가 나오면 될까요?
그 사람들은 물질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치가가 잘 사는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물질의 세계였기 때문에, 그런데 거기에 평안이 없어요, 여러분 절에 가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고 해서 평안이 있는 줄 아세요? 내려오는 즉시 걱정입니다. 영을 추구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물리적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장소의 앉아 있는 오늘날 한국의 교회 교인들이 예수님을 추구하는 바를 추구해야 되요. 그게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나라는 영의 나라는 공의로운 나라에요. 여러분 역대하 7장 14절에 보면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5. 예수님의 Identity를 알고 그분의 정체성에 나도 동참하려고 하는지? 개인의 안식이 있고,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그 사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침로를 당한다고 한다. 정의가 없는 것에 중재자가 없어 이상히 여기더라. 주님이 걸어가신 좁은 길 골짜기가 클수록 희락이 크다는 것.
평안이 없는 이 세상에 하나님이 모든 사람이 평안한 하나님의 나라를 누구에게 맡겼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이름을 일컫는 하나님의 백성들, 그런데 그들이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기도하지 않고, 물질의 세계에 속한 정치가들이나 기업가들과 같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자기만 잘 살려고 기도해요. 이번에도 우리가 고난주간에 특별 기도할 때 공의로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별로 안 오겠지요, 이번 고난주간에 여러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기도의 제목도 다 들어 주시는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합니다 차겠지요 의미 없어요, 성경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그 땅을 고쳐 준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냐? 몸만 예배당에 와 앉아 예배를 드리는 물리적 공간에 있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인가? 남들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종교적인 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인가? 아니에요, 예수님은 어느 세계에 속했는가? 예수님의 Identity 를 알고 그분의 그 정체성에 나도 동참하려고 하는지? 개인의 안식이 있고, 그런 사람들의 의해서 그 사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침로를 당한다고 그래요. 저도 기독교 방송 틀어 보지만은요 참 이런 설교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사야 59장 14절과 16절에 보면은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땅에 떨어지고 정직이 나타나지 못하는 도다. 라고 말을 하면서 정의가 없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걱정하는 것이 뭔가 하면은 그러한 세상에 중재자[仲裁者]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더라.
공정하지 못한 세상을 보면서 그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의 심판과 인간 사이에 서서 중보기도 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이사야에서는 하나님이 이상히 여긴다, 그래서 중재[仲裁]가 그리스도를 준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이상히 여겨요? 교회에 나와 가지고 저렇게 열심히 기도하는데 복 못 받는가 이런 이상함을 보고 있습니까? 열심히 공부한 우리의 자녀들이 취직 자리가 없는 것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되자고 이 목회 하는 겁니다, 어른들의 책임이지요. 주의 영이 있는 주의 영이 속한 자의 책임이지요.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자들의 책임이지요. 열심히 일한 자들이 은퇴를 걱정하는 것을 보면서 이상히 여기지도 않는 목사라면은 어떻게 주의 영이 있겠다고 하겠어요.
하나님의 나라는 열심히 일한 자는 그 일한 대가의 쉼을 위해서 일하는 안식을 위해서 일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 좁은 길은 협착하고 힘이 들어서 남이 많이 찾지 않는 그 길이지만은 주님의 재림의 날 내가 걸어간 골짜기가 크면 클수록 산이 높은 희락이 있기 때문에 걸어가는데 그 주님의 재림이 없으면은 왜 천국 가려 하겠어요? 오늘 여러분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어떤 세상을 보면서 이상히 여겨야 되는가? 무엇 때문에 울어야 되는가? 내 자식 대학 떨어진 것 때문에 운다면은 땅에 속한 사람하고 뭐가 다르냐 말입니다. 내 자식 나이 들어 가지고 시집 못간 것 때문에 울고 기도한다면은 세상에 속에 있는 사람과 목사가 뭐가 다르겠어요.
6. 그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추종하라고 하는데, 교회는 우리 교회만 성장하고, 자기 자식만 잘 되면은 되는 줄 알아요, 정신의 세계보다도 더 영적인 세계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면, 이 물질의 세계는 결코 행복이 없다.
물리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두 제자에게 와서 보라는 거에요. 나는 어디에 속하였는가를 보라는 거에요. 요한복음을 보면서 여러분들의 그 눈이 열려져야 되요,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정말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이 일을 안 하려고도 하지 않고, 취직하려고 하는데 일자리가 없어서 마포 대교 가는 것을 보면서 눈물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야 되지 않겠어요 이 나라를 보면서. 그것 정치가들에 맡겨 놓겠어요? 심리학자들에게 맡겨 놓겠어요? 사회학자에게 맡겨 놓겠어요? 이제 우리 친구들도 다 거의 은퇴했어요. 얼마나 치열하게 일했습니까? 제 친구놈 중에는요 요즘은 아버지의 빚을 자식에게 상속이 되지 않는데, 우리 때는요 아버지가 빚진 것 자식이 다 갚기 위해서 동아 건설 가 가지고 저 리비아 가서 십 몇 년을 고통을 받으면서 아버지 빛 다 갚고, 자기 가족 했는데 은퇴하는 것 걱정해요.
여러분 그게 세상인데 그 세상을 원망 하기 전에 그런 세상을 보면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걸 이상히 여겨야 되요. 그런 세상을 원망하는 게 교회가 아니라 말입니다, 그게 세상이라 말입니다. 그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추종하라고 하는데 교회는 우리 교회만 성장하고, 자기 자식만 잘 되면은 되는 줄 알아요, 그래 되었다고 평안이 있는가? 죽을 때까지 평안이 없어요. 때가 열 시가 임하지 안 해요. 여러분 보다 귀한 가치를 볼 줄 알아야 되요. 물질의 세계보다 정신의 세계가 더 가치 있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물질의 세계는 정신의 세계에 지배를 받아요, 정신의 세계보다도 더 영적인 세계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면 이 물질의 세계는 결코 행복이 없습니다. 아셔야 됩니다.
저는 절에는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간다는 사람 볼 때 마다 한국 교회의 교인들이 복 받으려고 교회에 오는 교인들 보면서 부끄럽게 여겨요. 저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들이 절에 가는 사람보다 수준 낮은 그런 교인들이 되기를 바라지 안 해요. 내 혼자의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계가 죄인들에 의해서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세상, 사회학자들과 세상은 흑 수저 금 수저 라고 통탄을 하는데, 교회가 통탄하지 않으니까 얼마나 웃기는 겁니까, 미국의 경제학자는 70년대 유리 천장을 이야기를 했는데, 분명히 우리 사회는 천장이 없고 누구든지 돌아가면 올라갈 수 있지만은 유리 천장이 되어서 암만 부딪혀 봐야 못 올라간다고, 경제학자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 세상의 주인 된 하나님의 자녀 된 목사는 그걸 못 본다면 세상에 있는 사람보다 못하지요.
7. 요한복음은 물질의 세계보다 더 귀한 영의 세계로 우리에게 말해 준다. 이 물질의 세계 속에 담겨 있는 본질을 말하는 것, Arche 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기에 세계 20억이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님은 자기의 생명을 버려서 순교를 당하는데도 예수님을 따라갑니까?
요한복음은 물질의 세계보다 더 귀한 영의 세계로 우리에게 말해 줘요. 그 영의 세계는 세상에 이상한 종교가 말하는 영적인 세계 귀신의 세계가 아니에요. 우리가 보는 이 물질의 세계 속에 담겨 있는 본질을 말하는 거에요 아르케 [Arche]를 말하는 거에요. 하나님 알고 예수님이 귀하게 보이면은 여러분들의 눈물이 달라집니다. 그게 달라지는 순간 세상의 어떤 물질의 세계에 휘둘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됩니다.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제가 이야기 할게요, 제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에 제일 고민이 뭔 줄 아세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를 들어가는데 우리 중학교는 백선하나 있는 꽤 이름있는 학교라서 고민이 뭐였는가 하면은 부산 중학교 들어 가 가지고도 내가 딱지 이거 쳐서 되겠나?
초등학교 때 저에게 제일 귀했든 게 딱지였거든요, 지금 아이들 스마트폰으로 노는 거와 같이 그래 집에서 맨날 딱지 따 가지고 갔다 두면 엄마는 이거 쓸모 없는 이거 왜 가지고 왔냐 집도 좁은데 하고 버리려 하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귀해, 중학생이 되니까 엄마가 버리라 안 해도 버려 지더라고, 희한 하지요, 또 하나의 고민은 초등학교 때는 만화가 그래 좋았어요, 주일학교 가서 요절하고 이랬든 것은 뭐냐 하면은 주일학교 가서 요절 하면은 공책 주거든요 그럼 그 공책 가져가면은 문방구 가면은 옆에 만화방하고 같이 가는데 공책하고 만화하고 바꿔서 보는 재미 ㅎ ㅎ ㅎ 그 만화를 끊을 수 있겠느냐 했는데, 중학교 갔더니만 성숙하니까 그 만화방 가라 해도 안 가지고 당구장 가지더라고 ㅎ ㅎ ㅎ.
여러분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 좀 차원 높이 자고요, 자기 때문에 우는 문제 결국 그 눈물 없어지지 않습니다. 불공정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순간 여러분들의 삶에는 평강이 오고요, 우리가 발을 디디는 이 땅은 하나님의 나라가 침로를 당하여 가게 된다고요. 오늘 예수님이 묻는 거에요,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너는 무엇을 구하느냐?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느냐? 여러분들의 질문은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당신은 어떤 세계에 있습니까? 예수님은 어떤 분이기에 세계 20억이 예수를 믿는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어떤 분이기에 자기의 생명을 버려서 순교를 당하면서도 예수님을 따라갑니까?
요한복음을 강해하는 동안에 그 여러분들의 질문에 해답을 얻어서 보다 나은 영적인 가치관을 발견하고, 그것을 추구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물질의 것 때문에 울고 웃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다 차원[次元] 높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 주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열심히 공부한 자들은 취직 걱정 안 하고, 열심히 일한 사람은 은퇴를 기다리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믿는 사람 하나 늘어남으로 말미암아 좀더 확대 되어져가는 그런 삶, 분명히 이런 삶을 살려고 하면 저항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의 날 저항이 크면 클수록 천국의 입성의 기쁨은 크다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풍조는 나날이 갈리어져 우리 길을 걸어가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들이 되야 되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기도 강조 안하고 어떤 분들은 목사님 기도할 것 없어요, 왜 없어요 세상을 안 보니까 없는 거지 자기만 보니까, 자기만 보니까 기도 제목 없는 거요, 눈을 돌려 세상을 한번 바라보세요, 얼마나 기도할게 많은데요. 아멘
◈봉헌 기도◈
열심히 공부한 우리의 자녀들이 취직 걱정하는데 내 자녀만을 걱정하는 부모는 많지만 불의한 세상을 걱정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없음을 이상히 여기시는 아버지 하나님, 평생 뼈가 빠지게 일을 하고 은퇴하고 누리고 쉬기 위해서 은퇴를 기다리며 일해야 되는데,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되고, 은퇴 이후에 먹고 살일 걱정하는 이 땅을 보면서 자신의 은퇴를 걱정하면서도 공평하지 못한 세상을 보면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없음을 이상히 여기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 여기에 주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자들의 이 예물이 불의한 세상 흑 수저, 금 수저 유리 천장이 난무하는 이런 세상 속에 부자들이 쓰고 버린 낙수로서 얻은 물질 중에서도 좀 더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예수님을 좇아가기 위해서 기꺼이 지갑을 열고 주님 앞에 드린 예물입니다.
이 예물이 불의한 세상 속에 공의로운 하나님 나라의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부끄럽게 하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예물 위에 복을 더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제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자녀들은 대학을 가지 안 해도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고, 우리 자녀들의 시대에는 열심히 일을 하면서 은퇴를 기다리며 일을 하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되도록 진리의 말씀이 이 땅을 새롭게 하는 주의 강강이 되게하여 주시고, 아버지 하나님 종교적인 전통 내 조그마한 경험 나의 부분적인 지식으로 똘똘 뭉쳐서 진리의 말씀조차도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는 교만해서 내려와서 내가 얼마나 잘 못 믿는가를 깨달아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변화되는 그런 생명이 요한복음의 강해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흘러 넘쳐 나기를 바라고, 우리가 얻은 소득의 그 수많은 것들이 주님 위해서 드려 지는 이것만이 영원히 기억되는 것임을 깨달아서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고 드리며 개인 개인의 형편을 헤아릴 수 있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하나라도 세워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 예물이 그 동안 주님 교회를 세워 옴을 믿고 재림의 그날까지 우리의 믿음이 변치 않는 귀한 교회로 삼아 주시기를 원하오며 불의한 세상 속에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자신이 친히 제물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불의한 세상에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시기 위하여 친히 제물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공의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물질 때문에 울고 있는 우리들에게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 중에 바라보며 공의롭지 못한 세상을 보면서 이상히 여겨서 중제자가 되어지고 이 땅을 치료하기 위해서 고치기 위해서 기도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많은 사람들 참된 진리를 모른체 예수님 곁을 떠나갔지만 내가 만난 주님은 참 사랑이었고 진리고 소망이었소 난 예수가 좋다오 난 예수가 좋다오 주를 사랑한다던 베드로 고백처럼 난 예수를 사랑한다 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몸 버려 세우신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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