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인가?
요한복음 1장 43-51절
2016년 3월 6일 주일 낮 예배
No. 253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아멘
●구약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믿어야 한다 / 예수님을 따르는 빌립의 증언과 나다나엘의 반응과 예수님의 평가, 예수님께서 계시하는 천국의 신비를 알아야 한다.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기쁨이 있다는 것이며 예수님 때문에 기쁜 삶이 되어야 된다.
우리 로마서 14장 17절에 보면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다. 잘 먹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점심을 잘 먹어서 되냐? 이런 말이 아니고요 먹을 것과 먹지 못하는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이랬습니다. 우리 한국의 교회는 보면은 이것 먹어도 되고 안 먹어야 되는 것이고, 이건 해야 되고 안 해야 되고, 이런 것 따지는 것이 신앙 생활인 줄 알아요 그게 아니라는 거에요. 여러분 이 말씀에 이제 굴복하세요, 그러면서 뭐라는 가 하면은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기쁨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하는 이유는 왜 해야 되는가 하면은 참 기쁘기 때문이에요. 저는 목회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하면은요, 우리 교회가 큰 교회 저는 그게 별로 꿈이 없습니다. 선교사 몇 명 파송 하는 것 별로 꿈이 없습니다.
땅 넓혀 가지고 교회당 크게 짓는 것 부속 건물 짓는 것 별로 여러분 제 관심 분야가 아닙니다. 첫째는 내가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요, 또 우리 교회에 다니는 여러분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정말 기쁘게 신앙 생활해서 죽어서 가야 할 그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며 살도록 목회하는 거에요. 앞으로 저를 여러분들이 평가할 때에 그런 것 가지고 하세요. 자꾸 여러분들이 추구하는 바를 저를 통해서 이루려고 하지 말고요, 예전에 우리 한국 교회는 찬송가가 보면은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쉬운 마음뿐일세, 이런 찬송이 저절로 나왔다고요. 그런데 지금 왜 그런 게 없는가?
교회도 세상과 같이 그저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교인들을 막 몰아 부치는 거요 그것 회사지요.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곳이에요 기뻐야 되요 예수님 때문에. 옛날에는 목사님들이 이런 설교를 하고 이래 안 해도 예수님 때문에 참 기쁜 삶을 살았어요. 그래서 밤낮 불러도 늘 아쉬운 마음밖에 없는 그런 기쁨이 있었다고요. 이번에 제가 요한복음을 우리가 금년 한 해에 이래 묵상해 가는데, 그 요한복음에 있는 성경의 내용을 여러분들이 지식적으로 알면 뭐합니까? 그건 헬라적 앎이에요. 여러분들에게 요한복음의 내용의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예배나 성경 공부가 아니에요.
1. 그동안 믿어 오면서 가졌든 종교적인 신념과 가치관을 말씀 앞에 내려 놓는 것. 예수님과 함께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Identity 를 알고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함께 지향해 간다는 것, 빌립이 이런 변화가 있었다. 친구 나다나엘에게 너도 한번 와서 보라 한다.
예수님을 통하여 여러분들이 정말 웃을 일 없는 세상 속에 기쁨이 있고요, 세상을 보면은 집을 보면은 절망이 있는데, 예수님 때문에 소망이 넘쳐서 밤낮 예수님 찬양해도 늘 아쉬움이 남는 이런 신앙 생활 그것 회복해야지요. 왜 안 되는가? 우선에 여러분들이 한가지 알아야 되는 것이 참 우리는 목이 곧은 백성이에요 안 들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렇게 말했고, 너희가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했어요. 참 설교 말씀이 들려 지고 성경이 보여 지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 것을 알아야 되요. 왜 안 들려 지는가? 내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내 생각이 뭐냐 하면은요 사회적인 통념 사회적인 가치관으로 인하여 굳어진 내 생각입니다. 교회 다니다 보면은 교회 오랜 전통이 만들어 낸 습관과 관습이 있어요. 이런 것들이 내 생각이에요. 그래서 내 생각에 조금도 안 맞으면 고개 갸우뚱 하고 안 들으려고 해요. 그러니까 우리 속에 갱신이 일어나지 않는 거에요. 옛날에 교인들은 그런 전제들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말씀이 쑥쑥 들어가서 정말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 소망의 삶을 살았던 거에요. 요한복음을 하면서 여러분들이 먼저 내가 그 동안 믿어 오면서 가졌든 종교적인 신념을 내려놓으세요 말씀 앞에. 또 우리 사회의 통념이 만들어 낸 가치관 부자는 가치가 있고, 가난한 것은 별로 가치가 없고, 공부한 사람은 가치가 있고, 공부 못하면 가치가 없고, 이런 가치관을 다 내려 놓으세요.
그래서 말씀에 의해서 우리의 가치관이 새로워 져야 되요 그게 거듭남이에요. 여러분 이렇게 되어 질 때에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정말 이런 삶이 있다고요. 우리 교회도 보면은 몇 명이 보여요. 별로 그렇게 기뻐할 것이 없고, 주변을 보면은 절망할 일 밖에 없는데, 그저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 언제나 그 입에는 희망의 메시지가 나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것들을 한번 보셔야 되요. 어떻게 해서 우리가 그렇게 되어지는가? 사도들의 신앙의 고백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되거든요. 그러면 그런 부분들이 뭐냐? 오늘 설교 본문에 보니까 예수님이 갈릴리로 나가는데 빌립을 만나서 나를 따르라, 라고 예수님이 빌립을 초청 합니다
여러분 나를 따르라는 것은 제가 물리적인 공간 이동을 말하는 것도 있지만은 예수님을 추종하라, 이제는 내 삶이 잘 못되었다, 이제는 내 삶의 방향을 한번 전환 해보자, 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을 말해요. 오늘 본문에는 없지만은 지난주 여러분들이 본문에 보면 따라가서 뭐 하는가? 예수님과 함께 거한다고요,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Identity 를 알고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함께 지향해 간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 빌립이 그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때문에 희망이 없든 삶의 희망이 생기고, 예수님 때문에 기쁨의 삶이 이제 시작이 되니까, 친구 나다나엘에게 초청을 한다고요, 너도 한번 와서 보라.
2.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분을 우리가 만났는데 나사렛 예수시라, 빌립은 왜 예수님을 추종하며 따랐고 친구 나다나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이 세상을 공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줄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를 갈망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다.
우리는 막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라고 그러는데요, 여러분 전도도 어떤 사람에게 해야 되는가? 아무나 예수 믿어 지는 게 아니에요, 그 부분을 여러분들이 이해해야 되요. 그래서 나다나엘을 딱 초청을 할 때에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모세가 율법의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는데, 나사렛 예수시라 이렇게 말한다고요. 이 말이 굉장한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빌립은 왜 예수님을 추종하고 따랐고 친구 나다나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하면은 빌립의 일생은 저와 여러분들이 부자 되기를 바라고 좋은 대학 가기를 바라고, 내가 사업 잘 되기를 바라고, 이런 것이 인생의 본질적인 목적이 아닌 사람이에요.
저는 그것이 인생의 본질적인 목적인 사람은 교회 와서 거룩하게 하고 예배 열심히 드린다고 해도요 예수님을 제대로 추종하는 사람이 절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빌립은 그런 것도 육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있는 욕구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어떤 생각이냐 하면은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정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기다리는 거에요. 우리가 이래서는 안 되는데 정말 우리나라가 모든 사람이 다 살기가 좋은 나라가 되야 되는데, 이제는 내가 내 자녀가 좋은 대학가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우리의 이제 내 다음 대의 자녀들은 좋은 대학 가는 것 때문에 머리 싸매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까 하는 것을 머리 싸매서 사는 세상이 되야 되는데, 그런 세상을 위해서 성경을 읽어 보니까 구약성경에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 준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언제나 빌립은 읽으시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하면은 이 세상을 공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줄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아를 갈망하고 있었다고요. 저는 지금 우리 한국에 뭐 다 그런 거는 아니지만은 대부분 보면은 교회 왜 오는가? 사업 잘 되려고, 자식 잘 되려고, 남들보다 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그러려면은요 지금도 여러분들이 섬기는 회장님 집에 가서 청소 해주는 게 훨씬 나아요. 정말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 정말 예수님 때문에 이 세상이 공의로운 세상이 될 것을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되요. 그런데 저는 우리 한국에 이래 보면은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이건 이스라엘의 역사인데 왜 우리가 읽어야 돼? 모세는 이래서 복 받았네, 아브라함은 이래서 복 받았네, 잠언서를 보면서 이렇게 인간이 살아야 돼. 윤리와 규범이나 이런 것인 줄 알아요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이라는 말보다는 언약서라는 말을 좋아해요. 구약이라는 말은 약속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약속한 말씀이 성경입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다는 말은 신명기 18장에 보면은 작년에 제가 신명기를 강해하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렸어요. 모세가 죽기 전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어떤 말씀을 남겨 놓았는가 하면은 앞으로 너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어 주는데, 나와 같은 선지자를 하나님이 보내어 주시는데 너희들은 그 말을 들어라, 그러면 너희의 삶에 구원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것을 기록해 놓은 거에요. 여러분 모세가 어떤 사람입니까? 애굽에 노예 되었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그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신 분이 모세입니다.
3. 인간에 의해서 엉망진창이 된 세상을 하나님은 공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어 주겠다는 약속이 선지서이다. 예수님의 정체성이 구약에 예언 되어져 있든 그 메시아가 나사렛의 예수시다. 예수님이 성장은 나사렛에서 했지만 태어나기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니까 여러분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에 우리는 이 세상에 노예의 삶을 살잖아요. 여러분 살면서 좋은 대학가기를 바라는 것은 대학에 매인 자 입니다. 부자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돈의 노예입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권력의 노예입니다. 그 사람은 그 주인 된 것에 완전히 종 노릇 한다고요. 그래서 세상에 있는 사람은 돈의 종 노릇, 권력의 종 노릇, 우리 인간이 돈과 권력을 지배하면서 그런 것에 자유 한 삶이 있거든요. 여러분 어떤 사람이 부러워요? 별로 뭐 없어도 기죽지도 않고, 있다고 해서 힘줄 것도 없고, 전혀 그런 것 개의치 않는 속박이 없는 삶. 이런 삶이 실존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행복한 삶입니다.
여러분 이런 삶을 모세의 말에 순종하면은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겠다 하는 그 구원 자를 신명기를 보면서 기다렸다고, 수요일 날 우리 교회에 지금 소선지서를 제가 쭉 강해하는데, 소선지서 하나님이 죄지으면은 심판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연해 준다, 너무 피상적으로 보는 겁니다. 정말 인간에 의해서 엉망진창이 된 세상을 하나님은 공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메시아를 보내어 주겠다는 약속이 선지서입니다. 그래서 선지서를 읽으면서 지금 이 북한 핵 저것 이 땅에 금 수저 흑 수저 이런 것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세상을 구원해 줄 메시아에 대한 보내심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모르겠어요 뭐 그 사람이 박근혜가 될지 뭐 이명박이 될지 그런데 그런 게 아니에요.
바로 그렇게 공의로운 세상을 이루려고 하였든 그런 세상을 갈망하는 빌립이 예수님과 잠시 거하면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확인 해보니까 구약에 예언되어져 있든 그 메시아가 나사렛의 예수시구나, 서른 살 먹은 나사렛 동래에 사는 예수가 바로 구약성경에 계시하였든 그 메시아이구나, 하는 것을 알고 지금 나다나엘에게 말한 거에요. 그러니까 나다나엘이 뭐라는 가 하면은요 친구도요 유유상종 같아요, 나다나엘이 딱 하는 소리가 뭔가 하면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다고 했느냐? 여러분 나사렛은 변방[邊方] 이거든요 유대에서, 그래서 나사렛 사람들은 별로 선하지 못하다 이런 말이 아니에요.
나다나엘은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라고 이야기하니까 뭐라는 가 하면은 미가서 5장이 2절에 보면은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했는데, 네가 말하는 예수는 나사렛이잖아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성장은 나사렛에서 했지만 나기는 어디서 났어요? 베들레헴에서 났잖아요, 호적 하러 가서 아구스투스가 천하로 하여금 호적을 하라고 할 때에 마리아가 배를 이래 가지고 갔다가 여관이 없어서 구유에서 예수님을 낳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안태 고향은 베들레헴이거든요. 예수님의 그 베들레헴의 출신이라는 것을 기록한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심을 우리에게 알도록 그런 거에요.
4.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참으로 이스라엘이라 하는 말은 너는 정말로 참된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자녀이구나 이런 말씀. 너의 친구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그러니까 여러분 빌립이 또 뭐라는 가 하면은 내가 너한테 설명해 줄 것 없다, 너도 와서 한번 확인해 봐라, 와 보라 라고 말을 해요. 그러니까 이 빌립이 참 아무나 예수 믿게 되는 것이 아니고요, 열려 있는 영혼이었어요, 자기 생각에는 나사렛예수는 절대로 메시아가 될 수 없었다고 하지만은 친구 빌립이 구약의 모세가 기록한 율법에서 기록하였든 그 메시아 여러 선지자가 기록하였든 그 메시아가 나사렛 예수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내가 생각할 때에는 아는 지식으로는 베들레헴에서 나야 되는데 나사렛에는 절대로 메시아가 날 수 없는데, 그래도 친구가 와서 한번 확인이나 해 보라 하니까 간 거에요.
여러분들이 교회에 와서 정말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목사님의 설교가 좀 갸우뚱거려 지고 성경을 볼 때에도 이래더라도 한번 와서 정말 마음을 내려놓고 확인해 보시라 말입니다. 자기 주장하려고 듣지 말고요, 와서 다가오니까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뭐라는 가 하면은,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이래요. 여러분 이 말씀도 나다나엘은 성품이 참 진실한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예수님의 부름에 응했다, 이렇게 말하면 기독교는요 윤리가 되지요. 저는요 이 세상에 진실한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더라고, 절대로 사람은요 진실할 수 없어요. 참 목회를 해 보면은 수 많은 간접 경험 하는데 얼마나 교인들이 사기를 많이 당하는지, 왜 당하는가 하면은요 사람 말 믿었다가에요.
요건 설교하고 조금 벗어난 것이지만은 팁으로 내가 드립니다, 앞으로 누가 여러분들에게 와서 이것 하면은 정말 끝내 줍니다 이러거든요 한번 따라 합시다 옆 사람에게 이야기 해 줍시다 좋은 건 니나 하세요 ㅎ ㅎ ㅎ. 좋은 것 왜 남 줘요? 사람은 절대로 좋은 것 남 안 줘요. 그런데 여러분 진실한 것을 나다나엘이 이런 성품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면은 잘못이에요, 참으로 이스라엘이라 하는 말은 뭔가 하면은 너는 정말로 참된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자녀이구나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그 괄호 안에 있는 말은, 유대교를 섬기고 하나님 야훼를 섬긴다고 하면서 매일 예배를 드리고 열심히 이 사람들은 진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그 사람들은 간사한 사람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에게 잘 보여 가지고 하나님 호주머니 노리려고 하는 사람이지, 너는 진짜로 이스라엘 백성이구나 이런 말이에요. 왜 이런 평가를 했는가 하는 것도 제가 조금 있다 이야기 하겠지만, 그러니까 나다나엘이 예수님에게 뭐라는 가 하면은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당신은? 오늘 나를 처음 보는데 나는 벳새다 사람이고 당신은 나사렛 사람이라서 나를 잘 모르지 않느냐고, 그런데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라고 물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빌립이 너의 친구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내가 보았노라 라고 말을 해요, 그러니까 이 말씀도 뭐 신비하고 신통한 것을 좇아서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예수님은 신통력이 있는 줄 알아, 예수님의 신통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어떤 분들도 목사님에게 잘 섬기고 신앙 생활 잘 한다 하면서 우리 목사님은 신통력이 있어서 기도하면은 다 속이 보여, 이런 것 셋팅시켜 놔 놓으면 목사님 앞에 오돌오돌 떨거든요 ㅎ ㅎ 그런 신통력이 아니에요. 네가 무화과나무에 있을 때에 내가 보았노라 라는 말은 옛날 유대인들은 무화과 나무 아래는 율법을 토론하는 장소에요, 옛날에 우리나라도 보면은 회당이나 이런 것이 없을 때에 나무 그늘에 앉아서 공부 가르쳐 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무화과 나무 아래 있어서 구약성경을 가지고 서로 토론을 할 때에 예수님이 보니까 전부 헛소리하는데 빌립 만큼은 진짜 이스라엘 백성답게 자세를 가지고 있더라 이런 말이에요.
5.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어 준다고 베들레헴에서 오신다는데 그 메시아가 어떤 분인가 구약성경을 보며 토론하는 것을 보고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예수님이 칭찬하신다. 나다나엘이 랍비여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한다.
당대의 모든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하나님 말씀 잘 들어서 복 받아야 돼, 이렇게 살아야 바르게 살아야 돼, 하나님에게 잘 보여서 이렇게 종교 생활 해야 돼 이러는데, 빌립은 무화과 나무 아래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하면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어 준다고 했는데, 그 메시아가 어떤 분인가, 미가엘에 보니까 베들레헴에서 오신다고 했는데, 호세아에서 보니까 아모스에서 보니까 한 우두머리 밑에 두 백성이 함께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했는데 이런 것을 토론하는 것을 보면서 너는 구약성경을 보면서 인류를 구원해 줄 메시아를 기다리는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구나 하고 예수님이 칭찬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진짜로 예수를 믿으려면은요 예수님이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밤낮 불러도 늘 아쉬운 마음뿐일세 라는 이런 신앙 생활을 하려면은 예수님이 빌립과 나다나엘과 같이 구약에서 모든 인류를 구원해 줄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약속된 그 메시아이심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는 삶, 이 믿음 가져야 되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욕심과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질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포기하고 구약에서 예언 하고 있는 그 예언대로 예수님이 오신 분인가 하는 것을 믿어야 되요. 그러니까 나다나엘이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라고 고백을 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는요 여기에 뭐 교회에 주일날마다 나온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단정 못해요. 이 시간 여러분들 여러분들 스스로를 한번 돌이켜 보세요 지난 주일 제가 말씀 드린 대로 내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그런 대답을 가져야 되요. 예수를 믿는 것을 여러분들이 힘이 없어서 이루지 못하는 것을 초월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예수를 통해서 이루려고 예수를 믿는 사람인가? 진실한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참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그저 밥 한술 먹기 위해서 사는 인생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고귀한 생애인데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바른 길인지, 내가 걸어가는 이 삶이 다시 살아도 후회하지 않는 그런 삶을 내가 걸어가고 있는지? 이런 것 한번 생각해야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정말 그런 삶을 발견해야지요. 그러려면은 구약성경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왜 메시아를 보내어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는가도 아셔야 되고요, 그 구약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나사렛 예수에게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여러분들이 확인 해보고, 정말 예수님은 이제 사대성인중의 한 사람이나 기독교의 창시자가 아니라, 구약에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려고 하였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구나 하는 고백을 해야 되요. 종교를 유지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을 하면은 천국 가는 티켓 줄게 이런 것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여러분들에게 생활용으로 한다면은 이제는 내 자녀가 좋은 대학에 안 가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공의로운 세상을 우리에게 가져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받아 드리는가?
아니면은 잘 보이고 기도하면은 내 자녀는 좀 머리가 나빠도 나 닮아서 좋은 대학 보내 줄 수 있을 거라는 그 메시아를 믿는가? 여러분 한번 포기하시고요, 정말 구약에 예언 되어져 있는 하나님께서 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하는 그들에게 메시아를 보내어 주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에게 새롭게 하시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는가 하는 하나님의 마음도 아셔야 되고요, 그 메시아의 하나님의 약속하신 메시아가 바로 나사렛 예수시구나 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복음서를 보면서 확인하면서 목사님이 그렇다고 하기 때문에 그래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네, 라고 고백을 하면은 여러분들의 삶의 나의 소망이 예수로 변합니다. 나의 기쁨이 예수님 때문에 됩니다. 이런 신앙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됩니다.
6. 메시아가 낸 줄 아는 것 보다 더 큰일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요한복음에서 보게 될 거다. 하늘이 열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시가 시작 된다는 은유적[隱喩的]표현이다. 유대인들에게 토라 규범을 해석한 것이 미신화다. 그걸 랍비들에 의해서 적용한 것이 탈무드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렇게 고백하는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이 뭐라는 가 하면은 내가 너를 무화가 나무 아래에서 보았다고 함으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게 되리라. 이보다 더 큰 일이라는 것은 네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보내어 주겠다고 하였든 그 메시아가 내인 줄 아는 것 보다 더 큰일을 보게 된다 앞으로. 그래서 2장부터 시작이 되는 요한복음의 모든 내용,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이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신앙의 고백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예수님으로부터 보게 될 거다. 여러분들이 가장 알고 싶은 게 뭐에요? 천국은 어떤 곳이고 지옥은 어떤 곳인가를 알게 되겠지요.
하나님이 다스리는 그 천국 여러분들이 그렇게 보고 싶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요한복음 2장부터 21장에서 보게 될 거다 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다시 오늘 설교 본문으로 와서 예수님은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밤낮 불러도 늘 아쉬운 마음으로 찬송을 부르는 이런 신앙 생활을 하려면은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되는 그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경험해야 됩니다. 이거는 종교적인 몰입 현상이 아니에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뭐라는 가 하면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이런 말을 가지고 또 어떤 신비주의 자들은 영계[靈界]가 열려지면은 모든 게 보여 이래는데 존재론적으로 설명하면 큰일나요. 무슨 영계[靈界]가 열려요?
하늘이 열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시가 시작이 된다고 하는 은유적[隱喩的]표현이에요. 그러면 앞으로 예수님의 모든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들어내는 일을 시작하시게 된다, 어떻게 들어내는가? 인자 위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여기에 여러분 인자 위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되리라는 말도 예수님이 지어낸 말이 아니고요, 여러분들이 목사님의 설교도 항상 성경에 근거한 것이 되야 되요. 이 말은 유대교적 배경을 알아야 됩니다. 유대인들은 참 이스라엘하고 이스라엘의 차이를 제가 앞에 말씀을 드렸지만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입니다. 이 토라의 규범이에요, 그 규범을 해석한 것이 미신화에요.
또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 여러 랍비들에 의해서 탈무드인데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것을 보면서 유대의 랍비들이 이것은 참 이스라엘이 아닌 간사한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보면서 이렇게 각색을 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런 것들이 이제 외경이나 위경이나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이런 것들은 제 책꽂이에도 있지만은요 참 하나님의 나라를 굉장히 물질화해서 그리고 있어요. 그 여러분 이 사건은 탁 읽으시면서 여러분들이 구약성경을 창세기 28장의 사건을 묘사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알아야 되요.
7. 야곱이 에서의 칼날을 피해서 밧단아람으로 갈 때 루스땅에서 돌 베개를 하고 잔다. 유대인들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이스라엘이라고 명하는 야곱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들의 야곱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내가 너희가 보고 싶어하는 천상의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계시자다.
창세기 28장에 보면은 야곱이 에서의 칼날을 피해서 밧단아람으로 이제 도망을 가요 엄마 고향으로 갈 때 루스 땅에 와 가지고 나중에 벧엘이 되는데요 돌 베개를 하고 그곳에서 잡니다. 자는데 하늘의 사닥다리가 연결이 되어서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그 옛적에 성경을 들은 적이 있지요. 없나 창세기 28장 집에 가서 읽어 보세요, 여러분 우리 교회도 여러분들이 그냥 이렇게 예배당이 이렇게 쭉 들어오는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이 예배당의 컨셉은 제가 한 것이 아니고 우리 조장로님의 생각이 많이 들어져 있는데요, 제 철학의 세계는 현관에 있어요, 그 현관에 들어오시면 여러분들이 타일이 아마 하얀 타일로 몇 개 이렇게 되어 있고, 위의 찬장도 여러분들이 보시면은 사닥다리 형식으로 전등이 달려 있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어전으로 나아가는 사닥다리를 형상화한 거에요.
여러분들이 예배 때 교회당에 들어올 때마다 이제는 내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품 천상으로 나아간다는 마음으로 들어오라고 제가 고 마음을 담아 놓은 거에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참 아브라함이 그들의 믿음의 조상이라 생각하고 아브라함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으면은 지금 중동 문제 발생 안 합니다. 그러면 이스마엘도 에서의 족속도 모두가 아브라함의 한 가족이 되는데, 유대인들은 아브라함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이스라엘이라고 명하는 야곱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의 열두지파가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이 지금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들의 이러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들어내기 위해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 토라의 이 말씀을 자꾸 신격화 시킨 거에요.
마치 우리가 신라의 어떤 신라의 정통성을 위해서 기말 지를 만들어 내고 뭐 가야의 박혁거세를 만들어 내고, 뭐 여러 가지 이런 것 있잖아요, 뭐 이성계가 이제 이씨조선을 완전히 정통성을 위해서 용비어천가를 만들고 나중에 이러는 거와 같이, 그래서 또 김정은이는 뭐 백두의 혈통 이러는 거와 같이, 우리 이스라엘은 야곱은 다르다는 거지요. 그래서 봐라 창세기 28장에 보면은 이 사건이 무슨 내용이냐 하면서 교인들에게 이런 이야기 하는 거에요. 원래 야곱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상에서 하나님의 의자에 앉아 있는 그 하나님의 의자는 지금도 여러분들 찬송에 빛나고 높은 보좌와 이런 것들이 다 그런 것을 반영한 찬송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너무나 빛나기 때문에 천사들도 그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에 가려서 하나님의 아들 얼굴 한번 보고 싶은데 못 본다는 거에요. 그런데 한 천사가 지상에 내려와서 가만히 사닥다리로 연결이 된 지상에 내려와서 루스땅에 누워 있는 야곱을 보니까 그 천상에 자기네들이 그렇게도 보기를 원했든 하나님의 아들이 지금 누워 자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것을 발견하고 천사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천사들에게 이야기를 하니까 밤새도록 천사들이 하나님의 아들 얼굴을 한번 보려고 야곱을 보려고 오르락 내리락 했다는 거에요. 이런 설교를 하니까 유대인들은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자손이라는 생각을 그들이 가지게 된 거에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지금 하시는 말씀은 너희들의 야곱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내가 너희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천상의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계시자다.
8. 나를 통해서 빛나게 높은 보좌 안에 앉으신 하나님의 용안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의 모든 것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보아야 된다.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되는 그 하나님은 인간과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진실하신 분이시다.
앞으로 너희들은 나를 통해서 빛나게 높은 보좌 안에 앉으신 하나님의 용안을 보게 될 거다, 여러분들이 요한복음의 모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보셔야 되요. 그 영광의 광채가 여러분들에게 탁 보여 지면은요 여러분들의 눈이 캄캄 해져요. 마치 이런 것 하고 같아요, 강력한 태양을 가만히 쳐다보면은 우리가 일시적으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와 같이 여러분 이거 발견하게 되면은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사람이 달라진다고, 그런데 제가요 참 가슴을 치는 이유는 그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하나님을 이 지상의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전락시켜 버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제가 하나님은 자기에게 잘 보이는 사람에게 복 주고, 못 보이는 사람에게 벌주는 그런 하나님이라면은 천상에 있는 하나님과 다른 거에요.
그러니까 교인들이 자꾸 하나님에게 잘 보여서 복 받으려고 한다고, 하나님은요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되는 그 하나님은 인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분이세요. 절대로 인간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수 있는 진실하신 분이세요 인자가 많은 분. 예수님의 생애 속에 어떻게 그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보여 주고 있는가 하는 것을 목사님이 요한 복음을 하면서 가르쳐 줘야지요. 자꾸 예수님 만나서 병 나았다는 둥 이런 것만 하니까 병 나을 것을 기대했다가 죽으면은 실족하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지요.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는 그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는 전혀 다른 정말 그 광채의 하나님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내려놓을 때 보여요.
그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물질의 세계적인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고요, 전혀 다른 차원의 하나님의 나라가 보여요. 하나님은 인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분이세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지만은 지난 주에 제가 2부 때만 했나 3부 때만 했나 몰라도요 예수 믿고 예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지요, 제가 어릴 때 초등 학교 때 제가 여기에 벌써 욕심이 많이 들어 있잖아요, 얼굴에 보면은 그래서 딱지를 치면은 우리 어릴 때는 딱지 구슬 치기 밖에 더 있습니까, 제가 딱지는 왕이었어요, 우리 집에 뭐 부대로 이만한 부대로 3개씩 갔다 놓으니까 내 어머니가 야 이 좁은 집에 야 이게 뭐냐 갔다 버리라 해도 나는 그게 제일 좋은 거에요. 제 어머니는 이 딱지 가져다 놓으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이러면 밥보다 딱지가 더 좋은데 뭐.
그런데 중학교 딱 들어가려고 하니까 그래 제법 유명한 중학생이 되었는데, 우린 또 모토가 젊은 신사가 되자고 구두신고, 여기 또 선도 하나 있어, 어디에 가도 다 들어나, 중학생이 되가지고 저 딱지를 치고 딱지를 가지고 다닌다는 게 내가 생각해도 좀 꼴이 웃어 워, 그런데 중학교 딱 들어가서요 다른 가치를 발견하니까 그것 다 버려 지더라고요, 자 여러분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곳에서 정말 우리 아이가 이런 대학에 가기를 바라고, 공부 잘 하기를 바라고,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좀 더 취직 바라고 뭐 잘 되기를 바라고, 육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여러분들이 귀하게 여겨요.
9. 예수님을 통해서 계시되는 그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보이게 되면은 내가 그렇게 귀하게 여겼든 것이 별 것 아닌 것이 된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보면은 사명이 생긴다, 그 사명에 사로잡혀 살아야 된다. 걱정 되었든 것들이 예수님 때문에 완전히 회복되는 이런 것이 신앙이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모두다 이 세상에 범죄가 있고 불행하게 되는 겁니다. 왜 범죄가 생깁니까 돈 때문이지요 인간의 욕심이지요, 왜 여러분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돈이 없기 때문에, 나는 권력이 없기 때문에, 나는 이런 것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것에 여러분들이 집착해 가 있으니까, 교회 와서도 그것을 더 가지려고 집착하니까 땅에 매이게 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지난주일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것은 사람들을 더 물질에 매이게 하는 것인데, 절에는 정신 수양하러 가니까, 교회가 절보다 못한 거에요. 그런데 교회가 그것이 아니네요. 정신 수양한다고 세상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고요, 여러분들이 정말 예수님을 통해서 계시되는 그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보이게 되면은 내가 그렇게 귀하게 여겼든 것이 별 것 아니게 되어져요.
오늘도 목사는요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고, 수백명의 오만 일이 많이 생기잖아요, 저도 우리 교회에 어떤 분이 한분 등록했는데, 삼성 좋은 회사 다니다가 45살에 퇴직을 한 집사님이 등록 했다고, 이 예배를 드리는데 참 무겁고 이x세상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오늘 1부 예배 나왔다 들어가면서 목사님 제가 재취업 했습니다 하는데 아 너무 기분 좋아요. 좋은 일인데요, 자 보세요 정말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보면은 그 실직 가운데에서도요 소망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그게 그렇게 큰 문제로 와 닫지 않게 되어져요. 여러분들의 자녀가 공부를 못하는 것이 절대로 여러분들을 불행하게 하는 원인이 되지 못해요. 암에 걸려도 그 암이 나를 불행하게 하지 못하는 영광의 광채가 예수님의 생애 속에서 계시되는 하나님을 발견하면, 3월 달에 개봉되는 주기철 목사 일사각오 영화 보세요.
제가 금년에 여러분들에게 자꾸 사명을 고취하는 설교를 하는데, 인간이 정말 인간다워 지려면은요 사명에 사로잡혀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보면은 사명이 생겨요, 그러니까 여러분 옛날 김두완 같은 경우는 김두완 아버지 김좌진 장군은 대한 독립이라는 사명에 사로 잡히니까 아이가 청계천에서 거지 생활 하는 것도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고요. 우리가 대한독립을 하는 독립투사보다도 못한 기독교인이지 않느냐 말입니다 지금. 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은 구약의 예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그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되는 그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가나혼인 잔치에서부터 쭉 보게 되면은 또 그것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선입견을 내려놓고,
설교를 받아 드리는 순간 범사에 감사하는 여러분들이 지금 그렇게 집착하는 그 문제에서 자유하게 되어져서 야 내가 예수님 몰랐으면은 매일 원망하고 불평하는 생애를 살았을 텐데,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되는 그 하나님을 알고부터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생애를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예배에 오면은 한 주간 동안 세상일에 걱정 되었든 것들이 예수님 때문에 완전히 회복되는 이런 것이 신앙이에요. 이게 기독교의 2천 년의 역사 속에 있었든 생명이라 말입니다. 잘 모르겠거든 시작부터 내려놓음부터 시작하세요. 이젠 여러분들이 예수님 때문에 내 자식이 좋은 대학가고, 예수님 때문에 사업 번영되었다는 말은 귀에 딱 듣고요.
예수님 때문에 이제는 내 사업이 잘 될 때에 이 사업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삶을 살게 된 것에 대한 행복감, 내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도 떨어진 사람에 대한 배려의 마음 때문에 사람다워 지는 생애, 이런 생애를 살아서 정말 여러분 한번밖에 없는 생애잖아요. 제가 어릴 때 제 어머니에게 항의하는 표시는 나 밥 안 먹어요. 요즘은 밥 안 먹는다 하면은 그래, 이놈아 먹지 마라 이러겠지만 제 어머니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나 밥 안 먹는다 이러면 앞발 뒷발 다 덜어요. 한 두 끼 굶으면 굶어 죽는 줄 알아, 하시는 말씀이 뭐냐 하면 웅아 오늘 이끼 못 먹으면 평생 이 끼 못 먹는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이 행복하지 못하면은요 여러분들의 생애 속에는 이 시간의 행복은 없는 겁니다. 예수님 때문에 하루하루 지금 이 시간이 언제나 행복해 지려면은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되는 그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내가 그렇게 귀하게 여기든 세상의 가치들이 상대화 되어져가는 이런 신앙 생활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서 저와 함께 하다가 예수님 만나는 그날 high five 하는 그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주님 앞에 이 예물을 드렸습니다. 돈이 보이지 않고 돈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예수님이 보여 지는 은혜의 시간이 되어져서 나에게 주었든 재물 나에게 주었든 건강, 나에게 준 재능, 이 모든 것들이 사람답게 잘 사용 되어져서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기쁨이 아니라, 샘솟듯 솟아나는 희락의 삶을 살아가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축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늘 찬송을 불러도 아쉬운 마음 들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되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우리 눈데 비추어져서 이것 없으면 못살겠다고 하였든 세속의 모든 가치가 상대화 되어져서 우리를 얽어 매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자유케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 하심이 오늘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쉬운 마음뿐이라는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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