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김종웅목사~신은 존재하는가? - 롬 1:18-32 <II>

차주희 2013. 3. 24. 17:04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담임목사 김종웅

 

설교 : 신은 존재하는가? (ll)

본문 : 롬 1:18-32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아멘


 

6. 믿음은 순종하는 것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믿고 내가 직접 증명을 하지 않더라도 진리로 받아들이면 우리 속에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하지만 그저 복을 받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우상숭배적인 신앙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하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나 교회사를 보면 예수를 믿음으로써 경험하게 되는 새로운 세계가 있습니다. 성경을 그냥 믿고 받아들이면 여러분 속에도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돼요.

 

 2x3=6을 검토해 보고 믿으려고 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면 장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물건 한 개가 2원인데 세 개를 가져가면 왜 6원이 되는지를 검토만 하고 앉아 있다가는 물건 하나도 못 팝니다. 예수 믿는 것이 그런 것이에요. 믿음은 순종을 통한 수용으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희락의 나라입니다.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기쁨이 넘치기 때문이지요.

히브리서 11 6절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입으로만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실재론적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지요.

디도서 1 16절에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라고 기록하고 있고, 마태복음 7 21절에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순종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면 교회생활이 재미가 없고 유익이 없습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라는 것이에요.(삼상 15:22)

현대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불순종입니다. 순종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닌데, 계몽주의 사상 이후로 순종을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잘못된 사고방식이에요.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에 순종할 때 비로소 희락의 세계가 열리는 겁니다.

 

7. 하나님 사랑은 곧 자기 사랑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시작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즉 하나님이 나를 아름답게 만드신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부모님께 가장 큰 불효는 "어머니, 왜 나를 이렇게 낳았나요?" 하고 원망하는 것이며, 가장 큰 효도는 "나를 이렇게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가장 존귀하게 만드셨지만 창조 이후에 인간이 망가진 것입니다. 망가진 인간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지요. 그래서 불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면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나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고 받아들이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행복하게 되지요. 예수 믿는 복이 바로 이런 것이에요.

그런데 신앙에 자꾸 불순물이 들어와 우리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듭니다. 프로이드나 데카르트나 마르크스처럼 모든 것을 검토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세상적인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게 되고 결국 불행해집니다.

 

‘엄마는 왜 나를 170cm도 안 되게 키웠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기쁨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나는 다만 키가 작을 뿐 하나님 앞에서 누구보다 존귀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기쁨이 넘쳐나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인정하면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가끔은 세상의 가치를 가지고 자신을 판단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십니다. 인식의 오작동을 깨뜨리라는 것이에요.

마태복음 5 8절을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인식의 오작동이 생기면 하나님을 인정은 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해 오해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게 되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지요.

그리고 자신이 죄인인 줄 알지만, 바로 그 죄인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8. 무엇을 듣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이다, 이렇게 하면 복을 받고 저렇게 하면 벌을 받는다, 무조건 착하게 살아라… 이런 이야기만 늘어놓으니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지 않는 것이에요.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 10:17) 무엇을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듣는 것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자신을 사랑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기뻐하며 살게 되듯이, 자신이 섬기는 교회를 사랑하면 자연히 교회생활이 행복해집니다.

"우리 교회는 예배당이 좋고, 프로그램이 좋고, 목사님의 설교가 좋아서 맘에 든다." 이런 것은 진정한 교회 사랑이 아니라 불순물로서 교회를 보는 것이에요. 나만의 관점으로 좋았다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그 때부터 다른 것이 보이고 시험에 들지요.

 

그러나 청결한 마음은 본질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사람을 만날 때도 그의 본질을 보게 되지요.

여러분 중에 누가 저를 보고 "우리 목사님은 ~해서 좋아."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언젠가는 변할 수 있어요. 특별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저 목사님이기 때문에 존경해야 되는 겁니다. 저 또한 ‘어느 집사님은 ~해서 참 좋아!’ 이렇게 생각한다면 언젠가는 원수가 될 수 있어요. 불순물이 섞여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계몽주의적인 사고방식과 우상숭배적인 신앙을 걷어내고 하나님을 올바로 보게 된다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고, 나아가 타인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9. 집단 이기는 자기 사랑에 대한 착각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나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을 사랑하는 것은 나치즘이나 군국주의나 시오니즘이나 파시즘 같은 것이지요. 2차 대전을 일으킨 일본, 독일, 이탈리아가 그랬잖아요.

복음은 나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내가 섬기는 내 교회만이 아니라 같은 지역에 있는 이웃 교회도 내 교회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그랬어요. 미국 실용주의가 한국교회에 들어오면서 번영신학이 함께 들어와 저마다 개별적 교회의 부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되었고, 그 결과 내 교회만 사랑하게 만들었지요. 집단 이기를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에요.

 

집단 이기가 강할수록 폭발력이 강한 집단을 만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스스로의 분열을 초래해서 공멸하게 하는 사탄의 사랑이에요. 번영신학의 결과 스타 목사들이 생기면서 교회가 브랜드화 되었고, ‘우리 교회’만 생각하는 집단 이기적인 교회를 성장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 교회는 사랑하고 다른 교회는 사랑하지 않는 것은 집단 이기일 뿐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10. 의지적인 신앙, 맹목적인 신앙

하나님이 계신 것을 인정하는 것은 미개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혜로운 것이고 바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직접 증명하거나 경험할 수 없더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어야 됩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것은 맹신이 아니에요.

맹신은 인격적인 신앙의 반대말로 감정적인 신앙입니다. 지적인 신앙도 있고 감정적인 신앙도 있고 의지적인 신앙도 있는데, 우리 한국교회는 감정적인 신앙이나 의지적인 신앙을 좋은 신앙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습니까? 지금 이 순간 결단을 하시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라고 외칠 때 그 말에 따라 믿기로 결심한다면 그것은 의지적인 신앙입니다.

 

그리고 찬송이나 기도를 할 때 느껴지는 순간의 뜨거운 감정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신앙도 있는데, 이는 감정적인 신앙이며 맹신입니다. 이러한 맹신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문제예요.

또 독약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 보고 아나요? 가족과 여러 경로를 통한 간접 경험으로 아는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1억’을 준다고 하면 그 사실을 부인하기로 결단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결단하는 이유는 ‘1억’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결단을 한다고 정말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까요? 의지적인 결단과 본마음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수 믿을 때도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예수 믿으면 구원해 준다고 하니까 의지적으로 결단을 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신앙은 시간이 흐르면 흔들리기 쉽습니다.

 

11. 인격적인 신앙이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믿어질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구원 사건을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은 결단을 통해서 혹은 성경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다른 이들이 믿게 된 동기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격적인 신앙이에요.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제까지 함께 숨바꼭질 하고 말뚝박기 하고 얼음땡을 하며 어울려 놀던 동네 형이었어요. 그런 예수님이 느닷없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말이 당연하게 믿어진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잖아요.

하지만 제자들이 결국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가르쳐 주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고, 성경을 가르쳐 주는 것이고, 또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이에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믿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믿어지는 것은 결단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이에요. 이런 믿음은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 확신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믿는 바를 말해 줄 수 있지요.

확신을 통하여 삶이 변화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이러한 믿음이 바로 ‘인격적인 신앙’입니다.

 

12.“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런데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것, 윤리적인 삶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 혹은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했으니 복이 하늘에서 내려오길 기다리는 것일까요? 여러분,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일수록 훨씬 더 지혜로운 사람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1:28) 즉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로마서 129절에 기록된 대로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사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리에 없으면 수군거리며 그 사람 흉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 대해 무슨 말이 나오면 당사자에게 직접 가서 물어보라는 것이에요. 3자에게 묻게 되면 확실하지도 않은 이야기로 소문만 무성해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28절에서 이야기하는 수군수군이에요.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누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뭐라고 말할 경우 함께 수군수군할 것이 아니라 "무슨 이유가 있겠지."라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겠지.’ ‘나를 이렇게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혹 나에게 불리하거나 잘못된 일이 일어날지라도 ‘공동체에 유익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손길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발걸음 닿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우리 가운데는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이 분명 있어요.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축복을 믿는 사람이지요.

 

 

  13.진리는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

진리는 믿는 것입니다.

인간은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하며, 우리가 진리를 아는 즉시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의 속성을 지닌 진리를 알 수가 없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하루살이와 모기가 잘 놀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었는데 모기가 하루살이에게 "내일 만나." 이러니까 하루살이가 "내일이 뭔데?"라고 했대요. 내일이란 없는 하루살이로서는 모기의 세계를 알 수가 없는 것이죠.

인간이 알고 있는 진리라는 것은 진리 자체가 아니라 부분적인 속성을 통해 아는 것뿐입니다. 어떤 사람을 안다고 할 때도 그 사람의 속성을 아는 것이지 그 사람 자체를 다 아는 것이 아니잖아요. 여러분이 저를 안다고 이야기할 때에 저를 아는 것이 뭐죠? 저의 모든 것을 아는 게 아니라 부분적인 속성을 알 뿐이지요. 성격이 급하다. 키는 175cm. 몸무게는 쌀 한 가마가 넘는다... 고작 외모와 나이와 성격, 직업 정도를 아는 것뿐이잖아요.

 신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신론과 유신론 중 어느 것이 진리냐 하는 것은 속성을 보면 아는 것인데, 목사들이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는 다 안다고 주장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14. 신앙의 유익성

제가 전에 신영광 교회의 담임으로 있을 때 어느 법사를 전도하면서 진리의 속성 문제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사후세계나 신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부분적인 속성을 믿을 따름인데, 진리의 속성 중의 하나가 ‘유익성’이지요. 그 진리가 내게 얼마나 유익이 되느냐 하는 문제예요.

 불교는 윤회설인 반면 기독교는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합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맞는지 경험해 보고 알 수는 없기에 우리는 다만 믿을 뿐이에요.

 

그런데 어느 것을 믿느냐에 따라 유익성의 문제가 결정됩니다. 윤회설이 맞는다면 목사인 저는 다음 세계에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 희망이 있어요. 그러나 예수 믿으면 천국이고 안 믿으면 지옥이라는 것이 맞는다면 법사에게는 큰일이지요. 지옥행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에요.

췌장암 말기였던 법사는 저의 이런 말을 듣더니 심각해지더군요. 예수를 믿었는데 가서 보니까 천국이 없다면 그나마 본전이지만, 믿지 않았는데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자신은 지옥행이 확실하기 때문이에요. 결국 예수를 믿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것이고 유익이라는 판단이 선 법사는 저의 전도를 받아들여 예수 믿고 천국 가셨습니다.

 

이 세상이 힘들고 어려운 이유는 신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하늘 무서운 줄 알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요즘 교회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다면 우리의 언행심사가 많이 달라질 거예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이 세상에 살 때에도 유익이 됩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행복하게 살 수 있거든요. 하나님이 계신 것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천국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라며 하나님과 항상 동행하는 성도님 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http://www.shimchu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