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샘 곁의 무성한 가지의 삶의 결산
창 49:22-26
2013년 11월 17일 주일 낮 예배
No. 132
하나님 말씀 창세기 49장입니다 22절에서 26절 금년 우리교회에 주제성구지요, 우리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아멘
● 3대 절기: 유월절, 초실절, 수장절. 2종류의 사람
사람이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가나안 땅은 그렇습니다. 한 종류의 삶은 어떤 삶인가 하면은 기우제의 힘을 덧입어서 사는 삶이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농사 농경 사회이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고 가물면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기우제를 드리고 그 기우제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한 종류의 가나안 땅의 사람은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나안만이 아니고 교회 안에서도 똑 같습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하고 신앙 생활하지 만은 기우제를 드리는 힘과 같은 신앙의 힘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렵고 힘들면은 절대자에게 기도하면서 그 힘을 빌려서 이겨나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1. 하나님을 믿음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사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특별히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면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또 교회 안에서 사실 이런 사람이 많지 안 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참된 나라를 경험하면서 못산다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힘은 뭐냐 하면은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교회의 교인들이 그래야 됩니다. 내년에 주제성구도 제가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있는데요, 금년 한 해에도 여러분 우리교회에 저 주제성구 하나님께서 너를 도우실 것이요 내게 복을 주실 것이라 요셉에게 하신 약속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저 힘을 가지고 1년을 살아온 사람이 이 추수감사절에 정말 감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이 금년 한 해에 기우제 드리듯이 그 힘 가지고 살아왔는지 아니면은 저 말씀을 가슴에 새겨서 어떤 경우에도 저 말씀에 약속을 덧입고 살아왔는지 저 약속을 믿고 살아온 사람은 금년 한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신 것에 대한 감격이 추수감사절에 있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런 감격이 없다면은 어떻게 보면은 기우제의 삶을 많이 살지 안 했나 뭐 매일 기우제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어떨 때는 기우제의 삶을 살았다가, 어떨 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힘으로 살기도 하고 후자의 삶을 날마다 살아가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저런 삶을 살아야 되는가 하면은 이 세상에는요 만사형통이 없습니다 거짓말입니다. 대통령도 만사형통 하지 않고요 삼성 이건희도 만사형통 없습니다.
노숙자라고 여러분 늘 힘든 것도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있습니다, 인간이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에게는요 염려와 근심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기우제 드리듯이 그 신앙의 힘으로 사는 것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2. 요셉도 하나님이 지키실 것과 복 주실 것을 믿음으로 살았기에 노예의 신분에 있을 때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축복을 얻었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붙들고 그 힘으로 살아가야 됩니다. 요셉이 그런 삶을 살아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요셉은 채색 옷을 입었든 아들 중에서도 가장 대우를 받는 아들이었다가 노예의 신분으로 떨어졌습니다. 노예의 신분으로 떨어졌지 만은 그는 하늘을 원망하거나 환경을 탓하거나 자기를 그렇게 만든 형님들을 원망하며 살지 안 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원망한다고 되는 일 하나도 없거든요,
요셉은 하나님께서 지키실 것과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노예의 신분에 있을 때에도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쳤을 때에 우리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신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보상이 주어져야 되는데 오히려 노예보다도 더 못한 죄수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에도 그는 하나님의 지키심과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감옥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전부 성공하지요, 실패가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생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그곳에 있습니다. 또 살면서 여러분 가장 억울한 것이 뭐냐 하면은 정말 우리에게 힘 빠지고 우리에게 정말 아무 일도 못하는 무기력증에 빠지는 것이요 남들의 오해와 음모입니다, 정말 나는 그렇지 않는데 어떤 사람이 음모로 나를 오해하게 하는 것 요셉의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럴 때에 그 누명을 벗겨주는 것은요 엄청난 희망인데 그 희망도 오래 지나면 오히려 분노가 되기가 쉽습니다. 요셉은 자기의 오해와 음모 억울함을 풀어줄 기회를 붙들었는데 2년 동안 그 기회는 찾아오지 안 했습니다. 그런 경우에도 그는 그 기회만을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면서 산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최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석방되고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축복을 얻었든 겁니다. 여러분들이 언제나 기우제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야 할 이유가 그곳에 있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게 또 우리가 하나님 믿는 사람은 자신의 주어진 삶의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만이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요 이루었을 때에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가지고 보복한다든지 다른 사람 위에 굴림 한다든지 이러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상실의 공포가 옵니다. 이것은 가지지 못하였을 때 보다 더 큰 공포가 오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는 겁니다.
1) 요셉은 자기 힘으로 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형님들에게 보복 않고 탁월한 지혜 능력을 가지고 인류를 구원하는 역사를 이룬 것이다. 이런 사람을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고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로의 보복은 보복을 일으켜서 공멸해갑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았고 자기 힘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루어졌을 때에 결코 자기의 힘을 가지고 형님들에게 보복한적도 없고요 또 자기의 그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인류를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를 한 것입니다. 그는 바로의 7년의 풍년의 시대에도요 그냥 헛되게 누린 것 아닙니다. 흉년을 대비하는 그런 지혜의 삶, 이룬 것에 대한 자만이 없는 삶을 살았든 겁니다. 그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은 시련을 이기는 것만이 아니고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통하여 우리가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하는 삶, 하나님의 의의가 확대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기우제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여러분 한가지 또 있습니다.
그 한가지가 뭐냐 면은 여러분 이런 사람들은 성경은요 인간관계에서 가장 나쁜 것은 뭐냐 하면 최악을 배신으로 보는 겁니다. 그래서 가룟유다의 배신 단태신곡에도 있지 만은요 지옥가운데 제일 나쁜 곳에 있다고 이래 이야기 합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어디에 가서도요 사람들에게 배신하면 안 됩니다. 배신은 은혜를 망각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배은망덕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죄악은요 게으름입니다. 지옥은 아무것도 안하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보면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뭐 했습니까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그냥 가만히 사장한 겁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고 우리의 삶이 좋아지는 것은 왜냐하면은 이런 것 입니다.
3. 평화는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삶, 게으르지 않는 삶이며, 은혜를 배반하면 안 된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 한가지씩 하되 하나님의 은혜라 사역박람회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왜 평화가 있는가 하면은 여러분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개인에게는요 게으르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 이번 추수감사절 이 모든 것들 여러분 아셔야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면 안됩니다. 또 그리고 이번에 사역박람회라는 것이 그런 겁니다, 여러분들이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면은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지옥이 기다리고 내세에도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가지만 하면 됩니다, 짐을 나누어 지라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오늘날 여러분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는 익명성 아무것도 안 하려고 큰 교회에 묻히는 것 지옥의 신앙이고요, 내세에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이제는 성년입니다 7년까지는 우리가 아직 신앙이 어리고 교회에 주인의식이 약하기 때문에 그냥 다녔을지 몰라도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한가지라도 감당하셔야 됩니다. 사역박람회에 보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수요예배 참석하는 것도 여러분들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새벽기도 하루 지킴이 하는 것도 중요한 겁니다. 큰일 하려고 하지 마세요 큰 일하면서 메시야 되고 영웅 되려고 하면은 교회는 파괴됩니다. 그저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내가 할 수 있는 그일 한가지 하되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에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이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부활, 승천, 성령 강림입니다.
4. 성찬식은 아남네시스[anamnesis]는 성령강림으로 영원한 가족 공동체가 된 것을 재현하라는 것.
그래서 오늘 성찬식은요 이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중요한 예식입니다 종교적인 예식이 아닙니다. 나를 기념하라고 했을 때에 그 기념이라는 것은 여러분 기억하라 이런 말 아니에요, 아남네시스 [anamnesis]는 재현하라는 겁니다 재현이 뭡니까 여러분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우리가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가 된 것을 재현해내라는 겁니다. 이 성찬식에 참여하면서 우리 가족이 그런 것이잖아요, 가족은 하는 일을 가지고 서로 직급 차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서로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잘 감당해서 정말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족 아닙니까 영적인 가족이 그런 것 입니다. 이제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도 이 성찬 예식에 그런 아름다운 회복이 있어서 여러분들의 삶이 보다 더 강건해지고 또 여러분들이 속한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서로가 은혜에 감사하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남이 나보다 나은 것을 인정함으로 정말 복된 신앙생활 하다가 죽어서 천국에 갔을 때 이런 환희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내가 믿었든 그 신앙이 맞네요, 이런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는 입성이 내가 모르고 아이구 내가 그런 줄 알았는데 기우제 드리는 것이 신앙생활인줄 알았는데 하고 통탄하며 들어가는 어리석음이 아니고 감격 있는 신앙생활 되시기를 또 그러한 신앙이 회복되는 성찬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Drea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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