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미학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BC 170년경
유대종교를 말살하려고 대박해를 일으켰을 때
일곱 형제가 순교한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를 전율하게 합니다.
7형제를 차례차례,
목전에서 물레방아같은 수레바퀴에
매달아 돌렸습니다.
바퀴가 그리는 원 곁에는
커다란 쇠못이 거꾸로 박혀 있어서
한바퀴 돌 때마다 그 못이 살을 파먹었습니다.
그 쇠못에 몸이 갈기갈기 찢겨 죽었습니다.
또 몸에 군데군데 못을 박아 죽이고,
달군 가마에 볶아 죽이고,
쇠갈고리로 가슴통을 꿰어 매달아 죽이고,
온몸을 조각조각 점점이 자르고 돌방아로 깨고,
끓는 가마에 끓여 죽였던 것입니다.
기독교 교회사에 보면
"순교자의 시대"라고 불리우는 AD 64∼325년까지
무려 10회에 걸쳐서 큰 핍박이 있었습니다.
신약교회의 첫 순교자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었고,
사도 야고보는 칼로 목베임을 당했고,
예수님의 아우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예수를 증거하다가
돌세례를 받고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가 마지막 힘을 다해
"저들이 알지 못해서 그러하오니
용서해주옵소서!" 라고 외칠 때
그 옆에 있던 남자가 빨래방망이로 머리를 쳐
뇌수를 빠개어 죽였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드디어 목이 잘렸고,
이그나티우스는 로마에 끌려가
맹수의 밥이 되었는데 그의 최후의 외침은,
"나는 온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보다도
차라리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음을 택하겠노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대에
복음을 증거하다 붙잡힌 아다로는
굶주린 맹수에게 물려 온 몸이 찢긴 상태에서,
마지막에는 쇠의자를 불에 달군 다음
그의 벌거벗은 몸을 그 위에 앉힘으로써
그의 살이 연기를 뿜으며
타들어가는 고통을 당하며 죽어갔고,
아다로와 동시대의 성도였던 상크트는
철판을 빨갛게 달구어
그의 알몸을 지짐으로써
불고기처럼 죽였습니다.
서머나교회의 감독이었던
유명한 순교자 폴리캅은 죽음 직전에
"그리스도를 섬겼던 86년동안
그리스도께서는 한번도
나를 배반하시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그를 배반하겠는가!"
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는 결국 화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꺼지는 불로 나를 태워 죽이려고 하지만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을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그리고 마지막 기도를 올렸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부족한 종을
순교자의 반열에 넣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저같은 것이 이런 큰 고난을 당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해주셨으니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몇분후에 주님을 뵈올 생각을 하니
기대와 흥분으로 가슴이 벅찹니다."
결국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라고 할만큼
그리스도를 위하여 충성하다가 죽은
위대한 신앙인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어떤 역사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
순교당한 성도들의 수효는
최소한 5천만명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마다
이런 논쟁이 가열되어 왔습니다.
"저분은 꼭 살아 남으셔야 돼.
지도자를 잃으면
이 교회는 누가 이끌어간단 말인가?
무모하게 죽음을 자청할 것이 아니라
일단 살아남아서 박해가 끝난 후를
대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럴 듯한 논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걱정일 뿐,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모진 박해와 고문을 무릅쓰고
웃으면서 죽어가는 한 사람이
80년, 100년 동안 살아서
열심히 복음을 증거하는 10사람보다도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공개장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한 하나의 광고판입니다.
교회의 명예, 그리스도의 명예는
성도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상품을 보고 그 상인을 판단하듯이,
그 교회가 길러낸 사람들을 보고
그리스도를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교회가 가진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교인들의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말년에, 온몸이 성한 구석이 없이
형편없이 망가졌습니다.
눈이 침침해서 잘 보이지를 않았고
사지를 움직이기 힘들 만큼
몸이 무거워졌습니다.
제때에 먹지 못해서 위장병이 있었고
영양실조 상태에 처해졌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39대의 채찍을 5번씩이나 맞은 것을 비롯한
무수한 고문을 당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예수의 흔적" 이라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할 기회를 얻었다면
자랑스러워 하며 감사드릴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모습 뿐 아니라
죽음의 모습을 통해서도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겠습니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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