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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1) 마틴루터의 반박문95개 조항

차주희 2013. 9. 7. 20:18

 

종교개혁(1) 마틴루터의 95개 반박문 개제 비텐베르그 대학 교회

 

 

                           비텐베르크대학 교회모습


1517년 늦가을. 독일 엘베 강가의 조용한 대학도시 비텐베르크의 아침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시작되었다. 우유배달 마차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이른 아침의 정적을 깨뜨리는 사이 검고 긴 사제복을 입은 한 젊은이가 어디론가 분주히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단단한 체구의 젊은이의 손에는 둘둘 말린 큰 종이뭉치가 쥐어져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투지와 긴장감이 배어났다. 젊은이가 도착한 곳은 비텐베르크대학에서 교회로 사용하고 있는 대학교회의 정문이었다. 원래 이 교회는 그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성채에 부속된 ‘성채교회’(Castle Church)였다. 그러나 그곳에 대학이 설립되면서부터 ‘대학교회’로 사용된 것이다.

육중한 대학교회 문앞에 멈춰선 젊은 사제는 가지고 온 종이뭉치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종이가 펼쳐지자 며칠 밤 관솔불 밑에서 밤이 늦도록 한 자씩 써내려간 촘촘한 글씨들이 드러났다. 그는 펼쳐진 큰 종이를 대학교회의 문에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붙여놓았다. 성문 입구에 위치한 이 대학교회는 교수들과 학생들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곳이었고 교회 출입문은 대학에서 일어나는 행사를 알리는 게시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중부 독일의 매서운 추위가 밀어닥치기 직전 10월의 마지막 날 대학교회 정문에 장문의 게시문을 붙여놓은 젊은이는 그곳 대학에서 성서학을 가르치던 34세의 소장학자 마르틴 루터 교수였다. 그는 24세에 가톨릭교회 신부로 서품 받고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당시 신설대학이었던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성서학 교수로 재직중이었다. 당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젊은 교수 마르틴 루터가 대학 사회의 공용어인 라틴어로 정성스럽게 기록하여 대학교회의 문에 붙여놓은 게시물은 이렇게 시작됐다.

“비텐베르크대학의 교수인 마르틴 루터 신부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밝히려는 소망으로 아래와 같이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 성명서에 관해서 대학 안에서 토론하고자 합니다. 토론 장소에 참석할 수 없는 분은 문서로 의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당시의 현안에 대해서 대학내에서 학문적으로 공개 토론하자는 초청의 글이었다. 마르틴 루터가 제기한 공개 토론의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황의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던 ‘면죄부’에 관한 것이었다. 돈을 주고 사는 면죄부가 정말 인간의 죄와 이에 따른 하나님의 징벌을 면제해줄 수 있는가,또한 가톨릭교회 교황은 참으로 면죄권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마르틴 루터는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95개 조항에 이르는 장문을 통해서 그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95개 조항’에 나타난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제1조,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주님을 믿는 신자의 삶은 항상 참회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제2조,참회란 교회에서 성직자가 집전하는 ‘참회의 종교의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21조,교황의 이름으로 된 면죄부를 사면 죄의 형벌을 면죄 받게 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제27조,면죄부를 산 돈이 돈궤짝에 찰랑 소리 내며 떨어질 때 ‘연옥’에 있던 영혼이 연옥 밖으로 뛰어나온다고 설교하는 것은 허황된 거짓말이다.
제28조,면죄부를 산 돈이 돈궤짝에 찰랑 소리내며 떨어질 때 (교회의) 돈에 대한 탐욕만 늘어난다.
(27?28조는 당시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리던 사람들이 즐겨쓰던 말을 루터가 인용하면서 반박한 것이다.)
제45조,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에 참여하는 것이다.
제86조,엄청난 부를 소유한 교황은 (면죄부를 팔아) 가난한 크리스천의 돈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해야할 것이 아닌가.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항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제95조,크리스천은 많은 고난을 거쳐 천국에 가는 것이지 (면죄부를 샀다고) 안심하는 마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마르틴 루터는 장장 95개 항목에 이르는 긴 글을 통해서 교황의 면죄권과 면죄부의 효력에 대해서 단호히 ‘아니오’라는 입장을 천명했다. 그가 대학 안에서 공개 토론을 위해서 자기의 견해를 밝히는 95개 조항을 대학교회 문에 게시했을 때 그것이 몰고올 해일과도 같은 역사의 새 물결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교회개혁이라는 역사의 대변혁에서 자신이 주역을 감당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95개 조항’은 당시 가톨릭교회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지각변동의 진원이 되었고 1517년 10월31일은 교회사에 있어서 종교개혁이라는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박준서 박사(연세대학교)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교황의 교서와 교회 법령집들을 공개적으로 불사르며 종교의 개혁의 씨를 뿌렸던 마틴 루터[Marther Luther,1483~1546]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소개한다.

 

1>만유의 주님이시며 영원한 지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고  선포하신 그 골자는 성도들으 생애가 참회의 요소가 있어야 함을 의미하노라.
2>이 증인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례전적 참회[Sakra-mentlishen]곧 제사의 직권으로 수행하는 속죄의 고백이 있어야 함을 선언하노라.

3>오늘의 선언은 내적인 회개만을 뜻한 것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 법이다.만약 육신의 내적인 회개가 정욕까지도 정복하지 못한다는 그 회개는 무기치한 것이다.

4>그런 이유로 성도가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는 한 참회의 가치는 무용이며 징계 도한 계속될 것이며 성도의 생명이 끝날때까지 괴러움은 계속될 것이다.
5>교황은 그 직권으로 교회의 권위를 이용해서 징계나 그 어떤 벌도 용서할 권세를 갖지 못한다.

 

6>교황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사하셨다는 것을 선언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그 어떤 죄라도 사할 힘이 없다.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에도 부족을 느끼야 하며 오히려 업신여김[Verachten]을  당하게 될 때 그 죄 자체는 그대로 잔여하여 있는 것이다.

7>하나님은 그의 대행자인 제사의 권력에는 전적으로 복종을 하면서도 그 밖에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는 겸손할 줄 모르는 자의 죄를 결코 사하시지 않으신다.

8>교회 법은 징계를 전제로 할 때 그것은 신자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며 임종에 처한 사람에게는 어떤 부담이나 교회의 규저에 적용해서는 안된다.

9>그러므로 교황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죽음과 곤고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황은 오히려 자비를 베풀면 되는 것이다.
10>죽음을 맞이하는 자에게  연옥문제를 내세워서 종교상의 속죄를 응용하는 제사들의 행위는 아주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위인 것이다.

 

11>성경적인 죄의 적용을 연옥의 죄로 변질시키는 가라지 같은 행위는 감독들의 잘못임을 지적하고 싶다.

12>전례의 법대로 한다면 종교상의 벌은 회오의 증거로서 사면의 뒤가 아니라 전에 부과되었던 사실임을 알아야 한다.

13>임종에 처한 자는 죽음으로서 자유롭게 되며 교회 법령의 여러 요구에 대하여 이미 죽은 것이 되고 그 법령의 형벌에서 정당하게 자유 해방된다.

14>회개치 않는 죄인이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 삶의 심렬상태는 오직 공포를 초래할 것이며 그 불안전이 크면 클수록 공포도 도한 클 것이다.

15>여기에 불안과 공포는 연옥의 고통을 뜻하며 그것은 곧 절망을 듯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6>천국과 연옥과 지옥의 차이점은 구원의 확실과 절망에 이르는 상태와 절망의 상태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17>연옥이란 공포의 장소이며 그곳은 공포의 감소로도 해석할 수 있다.

18>이상의 지적들이 성경적 근거로서나 이성의 증거로서도 증명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인다.
19>구원의 예정성에 대하여는  확실한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으나 연옥의 영들에 대하여서는 그 어떤 것으로도 증명할 수 없다.

20>교황이 모든 죄에 문제에 있어서 완전사면을 공포할 때 그는 죄를 사면할 자격을 갖지 못한다.다만 그 자신에게 지은 문제에 대하여서만 용서적 사면을 의미해야 한다.

 

21>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교황은 인간의 모든 죄의 문제를 사면해 줌으로써 형벌로부터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잘못된 행위이다.

22>교황은 지옥에 있는 영혼에 대하여 그 어떤 형벌도 사할 수 없다.죄문제로 인한 형벌은 오직 성경적 방법으로서 현세에서 사함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23>모든 죄의 문제로 사면이 가능하다면 그는 완전한 사람이어야 하며  그 수는 극히 제한된 숫자일 것이다.

24>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사람들은 형벌로부터 해방된다는 무제한하고 어마어마한 약속에 의하여 버젓이 사기당하고 있는 것이다.

25>교회의 내세관은 잘못으로 인해 감독 교구 목사들까지도 그 영향력으로 잘못 되어가고  있다.

 

26>천국의 열쇠를 핑계삼는 일 은 아주 잘못 되었으나 영혼들에게 사죄를 가르치는 일은 잘한 점이다.
27>연보 궤안에  넣은  돈의 소리가 땡그랑  날 때마다 지옥에 간 영혼이 해방된다는 말은 인간의 확설에 지나지 않는다.

28>성도들이 헌금한 돈이 연보궤 안에서 땡그랑 소리를  낼 때  그 행위는 탐욕에 가득찬 행위일 것이다.그러므로 그 어떤 성직자의 대속의 기도도 불가능하며 하나님의 선한 뜻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29>마치 성 세베린과 파스칼리스에 관한 전설의 기록과 같이  영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그곳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는지를 누가 알것인가!.

30>누구든지 자기 참회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그가 지은 죄에 대해서 완전히 사면을 받았는지를 위의 행위들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31>진실로 회개한 사람이 귀한 것 같이 면죄증을 사는 사람도 사실은 거짓의 행위로 그리한 것이다.

32>면죄증서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친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교황의사면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의 은총이라고 설득한 사람을  모든 이들은 특별히 징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34>그 이유는 사면의 은총은 인간에 의하여 정해진 예전적인 사죄행위의 형벌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35>연옥에 가는 자들의 영혼을 신부의 중견적 역활을 통해서 드려진 사면장의 이유로 그들의 참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비성서적 교리임이 알아야 할 것이다.


36>진심으로 회개한 모든 크리스찬들은 참된  면허증서 없이도 혈벌과 죄책에서 완전히 사함을 받는다.

37>중생한 성도는 죽는 자나 산 자나 면죄증 없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회의 모든 영역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다.

38>하나님의 사면 선언이 교황에게 부여됐다면 교황이 주는 사면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39>면죄증에 대한 관대한 생각과 참다운 회개의 필요성을 동시에 사람들에게 권장한다는 것은 유능한 신학자에게  있어서도 매우 어려운 것이리라.

40>참다운 회개는 징계를 달게 받는다.그러나 면죄증에 대한 놀라운 사실은 징계를 등한시하고 슬픔을 가지려하는 행위까지도 가볍게 여기고있는 것이다.

 

41>사도계승과 교황 사면증을 받게 하는 행위를 선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알도록 설교해서는 안된다.

42>교황의 지도가 면허증을 미끼로 해서 그것을 자선 사업인양 교훈한 것은 교황의 잘못된 의도임을 크리스천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3>불쌍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는 면죄증을 사는 것보다 더 선한 일이라는 것을 모든 크리스천에게 교훈해야 한다.

44>면죄증으로 인간은 선하게 되지 못하며 사랑의 선한 행위로만이 형벌로부터 자유하게 디는 것이다.

45>오직 면죄증을 위하여서는 교황에게 돈을 바치고 가난한 자에게 관심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음을 크리스천에게 가르쳐야 한다.

 

46>딤전[5:8]의 교훈 같이 경제생활이 어려운 가족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을 저축할 수 있어도 결코 면죄증 때문에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7>면죄증에 대한 판매행위는 그 어떤 개인에게도 자유로운 행위일지 모르나 그것을 성도들에게 강요해서는 결단코 안된다.

48>경건한 신앙생활은 교황에게 면죄증을 사는 일보다 그 개인을 위해 훨씬 좋은 행위인 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9>교황의 면죄증에 대하여 관신을 두지 않는다면 옳은 행위이다.그러나 면죄증 문제로 하나님께 두러움을 갖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임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0>들으라.교황은 당신의 면죄증을 위해 설교자들의 행상행위를 묵인한다면 그것은 양의 가죽의 살과 뼈로써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진다는 사실은 차라리 그것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거이 나을거라고 크리스천들에게 교훈함이 좋지 않겠는가?.

 

51>교황사제들의 잘못 때문에 많은 돈을 빼앗긴 자들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을 파라서까지 갚아주어야 하리라.

52>교황 자신도 면죄증서로 영혼을 구원받지 못할 거이며 그 행위 자체도 헛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53>모든 교회에서 면죄증 문제가 묵인 된다면 그렇게 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적이 되는 것이다.

54>말씀을 증거하는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면죄증 문제를 더 깊이 다루는 행위는 부정을 행하는 것이다.

55>교황의 의중이 그 어떤 의식이나 행위 따위가 복음보다 앞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찬양한다면 그것은 바른 의사임에 틀림없다.

 

56>교황의 면죄 사건은 아직까지 교회나 그리스도인에게 표시되어 지지도 않았고 알려지지도 않고 있다.

57>위의 행위들은 현세적 보화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할진대 오히려 면죄증 판매인들은 이것을 쌓아 두자고만 하고 있다.

78>위의 잘못된 행위들은 항상 속사람과 겉사람에게 은총과 십자가와 죽음과 지옥에 관한 교훈을 혼돈시키고 있을 것이다.

59>성 로렌티어스는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보배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 시대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어의에

따라 말한 것이다.[st.alurentious는 258년 순교했다]

60>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주어진 교회의 열쇠는 장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61>왜냐하면 형벌의 면죄와 교황관리의 유보사건을 위하여서는 교황의능력에 적용된다고 봄이 좋다.

62>교회의 참 뜻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과 복음이 되는 것이다.

63>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이런  일들 때 증오의 사건이 있음을 지적한다.

64>이와 반대로 면죄증의 사건은 항상 나중된 것을 먼저로 하기 때문에 모순이다.

65>돈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옛날부터 전해오는 복음의 가치는 사람들이 낚던 그물에 비유된다.

 

66>그러므로 면죄증 가선 역시 오늘날에 와서도 재물 많은 사람들을 낚는  그물에 비유된다.

67>사실인 것처럼 가장 시키는 면죄증 설교자들은 이것이 가장 큰 은총이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을 것이다.

68>하나님의 심자가의 은총은 면죄증이 아무것도 아님을 교훈시키고 있다.

69>감독들 교구 목사들은 사도 계승의 면죄의 대리자가  아님을  적의를 갖고 받아들일 의무가 있다.

70>성직자들의 의무는 교황이나  자기들의 꿈을 설교해서는 안된다.

 

71>사도 계승의 면죄의 진리에 반대하여 말하는 자는 추방과 저주를 분별해야 한다.

72>다른 한편 면죄증 설교자들의 잘못되고 뻔뻔스런 말에 대항하는 자는 복을 받을 지어다.

73>교황은 어떤 방법이든지 면죄증 판매를 방해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분노로서써 책망할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것이다.

74>그것을 구실삼아 거룩한 사랑과 진리를 방해하려고 기도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교황은 심한 의분을 나타내어야 하리라

75>하나님을 능욕한 죄까지도 면죄증으로 사할 수 있다는 교황의 발언은 정신나간 발언이다.

 

76>우리들의 주장은 교황의 면죄증은 아무리 작은 죄라도 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77>베드로가 교황이라도  할지라도 면죄증과 같은  그 이상의 은총은  줄 수 없다.

78>현 교황이나 도는 다른 어떤 교황도 사실 면죄보다 더 큰 은총[고전12장]즉 가르치는 은사와 능력 혹은 병 고치는 은사는 가지고 있다고 본다.

79>교황의 팔로써 사용되는 십자가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독같은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십자가를 모독하는 행위다.

80>위의 가르침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묵인 된다면 이것이 감독과 교구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책임을 져야한다.

 

81>잘못된 면죄증 설교나 비방은 교황의 존경에 대한 것으로 응용되지만 그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쉬운 일이 아니다.

82>베드로의 성당을 짓기 위하여  보잘 것 없는 돈의 가치를 높이는 교황의 행위가 위대하면 왜 연옥을 비우지 못하는가?

83>구속 받은 사람을 위한 기도는 부당한 일인데 무엇 대문에 죽은 사람의 장례식이나 연기제를 계속 하는가? 도 무엇 때문에 교황은 그런 목적으로 교회에 바친 기부금 취소를 명령하는가>

84>경건치 못하면서도 하나님께 잘못을 범하고 있는 자를 돈으로 인하여 경건에 이르도록  하는 행위를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경건한 영혼에 대해서는 그 자신이 구속될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교황 자신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85>회개의 가르침은 교회에서 오래 전에  사라졌고 이제는 면죄증 덕분으로 구속된다는 사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86>제일 돈 많은 자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가난한 자들이 내는 돈으로 하지 않고 자기의 돈으로 성 배드로 교회당 쯤은 세울 수 있지 않는가? 
87>구속함 받은 자들에게 무엇을 구하려고 또한 무순 영적 은혜의 참여를 추구할려고 하는가?

88>교황은 신자들에게 사면과 은총의 참여를 지금 하루에 한번씩 행하는 것을 하루에 백번 실행한다고 한다면 교회는 더 큰 복을 받겠는가?

89>면죄증의 효과가 돈보다도 먼저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였다고 한다면 왜 중지했는가?그와 같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말이다.
90>교황은 수많은 세인들의 예리한 반기에 대하여 떳덧하게 이유를 들어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일들 때문에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신자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는가?

 

91>면죄증이 교황의 바른 정신에 따라 의도 되었다면 오늘의 이러한 어러움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92>택함받는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불안도 없는 상태에서 평안만을 부르짖는 예언자들의 외침은 모순이요  잘못이니 떠날지어다.

93>그러나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십자가를 강조하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겔13:10,렘614,8:11,살전5:3]
94>모든 신자들은 형벌이나 죽음이나 또 지옥 같은 고통을 통해서라도 오직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다르도록 해야 한다.

95>이와 같이 하여 그리스천으로 하여금 보다 많은 값진 고난을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는데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게 할지어다. 

 

 

*16세기 종교개혁은 그리스도교 세게의 분열을 가져왔다.이런  불행한 원인 을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의 시대적 배경을 언급하고 있지만 역사적 배경만으로는 규명하기엔 충분하지 않으며 마틴 루터의 [1483-1543]의 생애와 사상에서 설명될 수 있다.마틴,루터의 이러한 상반된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는 가돌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교회의 각자의  편한 시각에서 나오는 결과다.2차 비티칸 공의회의 일치교령에 나타난 교회일치  노력으로 오늘날가지 세 단계에 걸쳐 교황청,그리스도교 일치촉진평의회와 루터교 세계연명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이러한 분위기에서도 가톨릭교회사가들은 독설로 교황제도는 악마의 작품이며 교황은  그리스도의 적이라고 공격하던 프르테스탄트 루터 만 보고 비난하였던 자세에서 벗어나 종교개혁 이전의 가톨릭루터에 관심을 두고 종교개혁을 세롭게 비평했다.1505년 수도회에 들어간 루터는 신학원의 교수의권고로 유명론 신학에 탐구하였고,유명론의 교의신학에 의하면 계시된 성경만이 신앙의 원천을 이루고 인간의 이성은 무력하여 사람은 신앙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고 구원될 수 있으며 인간의 본능은 무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만이 만물의 근거가 된다.이렇게 오도된誤導된 신사조新思潮를 받아드려 성서만이,은총만이,신앙만이라는 3유일사상을 내세웠다.유명론의 구원관은 인간 노력을 강조하며 선행을 쌓아 구원을 성취할 수 있기에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루터는 영신적인 신학적인 문제들을 성경에서 찾았다.루터는 "의인은 신앙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롬1:17]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해석했으며  구원의 은총은 하나님과의  대면[신앙체험]에서 얻어진다고  강조한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아 7가지 성사[세례 성사,견진 성사,성체 성사,고해성사,병자 성사,성품 성서,혼인 성사]를 거부하면서 성사란 인간의화의 수단인 신앙을 일으키는 외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그 후로도 사제직,공로,수도생활,교계제도,고해성사를 거부했다.그는 계속 해서 과격파와 달리 중도적 개혁운동으로 전개해 갔으며,교황은 그에게 마즈막 교서를 보내면서 그의 주장을 철회하라고 명령을 한다.이 위기의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의 신학을 정리하고 재 점검하는 기회로 삼고 집필에 열중한다."독일국가에 보내는 공개장,"교회의 바벨론 포로""크리스챤의 자유"등이다.이 논문에는  일곱가지 성례전 가운데  미사 대신에 최후만찬 을 사용하면서 "세례"와 "성찬"[양형]성체와 성혈 만이 진정한 성례전이라고  주장을 한다.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는 루터파에게 황제의 명을 따를 것을 명하지만  그들은 계속 저항을 했다.그들을 저항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렀다.당시 3편의 논문은 카톨릭교회를 향한 마르틴 루터의 신학적 결별 선언이었으며, 그 행동으로 바텐베르크 대학 문앞에서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황교서를 공개적으로 불살라 버렸다.이후 신교파는 제후들은 황제에 맞서 세력을 증대하고 루터파는 종교로 확산되었으며,그의 신학은 그의 깊은 종교심은 기도,훈화,설교에서 나타나 있다.루터의 신학사상은 카톨릭 전통에 속하여 있으나 카톨릭 신학이 투터의 성경관을 거치면서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은 신학적 개혁이라고 불리고 있다.


 


 

 

국민일보 기획연재

신학박사 박준서 교수/연세대 신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