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어떤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나? (고린도전서 8: 1-3)주일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9. 3. 22. 22:10

 

 

담임목사 김종웅

어떤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나?

고린도전서 8: 1-3

2019 3 17일 주일 낮 예배

                                                                                                                                           No. 410

1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아멘

 

신학자, 목사들이 313년 로마제국이 기독교 공인한 것이 기독교의 큰 전환점으로 삼은 것이 맞는지? 아닌지? Explo 74 [Billy Graham]을 초청해서 성장한 것이 긍정적이지만 잃은 것은 없는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복음으로 교회답게 하려는 것이 고린도전서다.

 

개혁주의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이 되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구원의 사건이 우리 가운데 재현되도록 해야 됩니다. 개혁을 하려면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선입견들을 비판할 줄 알아야 되요. 저는 많은 신학자들이나 목사님들이 313년 로마제국이 기독교 공인한 것을 굉장히 큰 사건으로 기독교의 큰 전환점으로 삼는데, 저는 어떤 의미에서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함으로 말미암아 그때 진정한 교회는 죽었다, 생명력을 잃게 되었다. 이렇게 봅니다. 왜 잃게 되었는가? 그 다음부터 교회는 로마제국 하고 같은 교회가 되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교회에 교구라든지 구역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로마제국에 행정 체계와 똑 같아요.

 

1.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 구원사 속에서 나타난 교회는 무엇인가? 한국 교회는 교회라기 보다 재벌과 기업화로 나가게 되었다. 이런 것을 인식해야만이 교회가 교회다워 지고, 교회에 성령의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 1980년대 교회마다 특징을 살려 수만 명 모이는 교회가 생겼다.

 

예전에 교회는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이런 것이 직급이 아니었는데 로마제국에 있는 많은 관리 체계와 같이 되어져 버린 거에요. 로마의 원로원과 같은 것이 당회가 되어져 버렸고요, 그래서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의 그 생명력을 잃어버린 거에요. 그러다 보니까 교회를 통해서 우리가 천국을 맛보아야 되는데 우리가 죽어서 가야 할 그 천국을 교회를 통해서 맛을 보는 거에요, 그게 신앙 생활이에요. 그러지 못하고 많은 교인들이 인생의 짐도 무거운데 종교적인 짐까지 지면서 허덕이며 살아가는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런 비판 의식을 가지고 그렇다면은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 구원사 속에서 나타난 교회는 무언가? 이런 것 아셔야 됩니다.

 

역시 우리 한국 교회 역시 많은 한국에 있는 목사님들이 Explo 74 [Billy Graham]을 초청해서 여의도 광장에 100만 명이 모임으로 말미암아 한국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많은 교회의 성장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은 교회로서의 생명을 그때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렇게 봐요. 그래서 그 이후에 한국 교회는 교회라기 보다 재벌과 기업화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런 것을 인식해야만이 교회가 교회다워 지고, 교회에 성령의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 이래 봅니다. 얼마 전에 여러분 우리나라가 이게 국가냐? 라고 참 많은 사람들이 촛불 혁명을 들 때 물론 25%는 그런 것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마는 여러분 이게 국가냐? 이게 교회냐? 이런 문제 의식에서부터 신앙 생활이 출발 되어져야 교회가 교회 다와 지는 겁니다.

 

1980년대 제가 신학을 다닐 때에 한국 교회는 이런 소문들이 많이 났습니다. 어느 교회는 총동원 주일을 해서 교회가 3배가 되었다 해, 몇만 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다 해, 그래서 인천에 어떤 교회는 굉장히 유명한 교회가 되었고, 그 유명세를 따라서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들어서 수만 명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새벽기도로서 유명해 져 가지고 세계의 방방 곳곳에서 목사님들조차도 그 교회의 새벽 기도회를 구경하러 온다고 해서 그 유명세 때문에 교회가 수만 명이 되어졌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여러분 그 주에 들어온 헌금을 그 주에 다 쓴다고, 구제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유명 해져 가지고 상가에 있든 교회가 큰 교회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었고, 또 어떤 교회는 선교로 유명 해져서 전주에 있는 교회나 과천에 있는 교회는 또 그 선교회 특징 때문에 교회가 많이 성장을 했는데 여러분 그렇게 성장하고 세워 진 교회가 진짜 교회가 세워 진 것인가? 아니면은 목사님에 의한 종교적인 아성 바벨탑을 쌓았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그 실체를 서서히 보기를 시작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도 금년에 우리 교회가 고린도전서를 쭉 묵상하면서 작년에 이어서,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입니다. 그 문제가 많은 교회를 복음으로 교회답게 하려고 하는 것이 고린도전서에요. 그래서 8 1절에 금년에 우리 교회의 주제 성구를 해서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라고 저 말씀을 붙들고 나가는데 저 말씀의 의미를 예배 때마다 내가 저 말씀을 가지고 선포할 때, 여러분들이 이런 마음 가져야지요. 우리 교회가 교회다워 지려고 해야 된다, 몸부림치는 교회이구나 이 마음이 전달 되어져야 되요.

 

2. 덕을 세운다는 말은 여러분 영어 성경에도 있지만 빌드업 [Build up]을 말한다. 목적어가 생략이 되어 있다. 구현조차도 구원사에서 세워 진 교회가 오늘날 우리의 신앙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세워 져 가야 되는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이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계시해 주셨다.

 

왜 저 말씀 속에 그런 것이 있느냐 하면은 덕을 세운다는 말은 여러분 영어 성경에도 있지만 빌드업 [Build up]을 말해요. 목적어가 생략이 되어 있어요. 그 말은 뭐냐 하면은 교회를 세운다, 이런 말이에요. 먼저 여러분들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뭔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되는데, 교회를 세우는 것은 교회가 성장하고 커지는 것이 교회 성장도 아니고요, 교회를 세우는 것은 선교를 통해서 교회를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구제를 많이 해서 교회를 세우는 것도 아니고, 지역 사회의 영향력을 끼쳐서 교회가 좋은 평판을 받는 것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에요. 교회가 교회다워 져야 되는 것이 뭐냐 하는 것은 교회는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속에서 세워 진 그 교회의 모습을 구현하는 거에요.

 

구현조차도 구원사에서 세워 진 교회가 오늘날 우리의 신앙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세워 져 가야 되는가? 하는 것이 목회이고, 신앙 생활의 목적이 되어져야 되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잖아요, 예수님은 구약의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어요, 오셔서 많은 병자를 고치고 기적을 일으키셨어요. 그 의미도 쉼이 있는 잔치에서 말씀을 드리지만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어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이 왜 우리에게 구원의 사건이 되는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은 무엇을 말하는가? 다음주에 더 2절과 3절을 중심으로 해서 더 자세히 말씀을 드리겠지만은 십자가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사건이에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유대교가 랍비들이 말하는 여호와가 구약에 여호와가 아니라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이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계시해 주신 거에요.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하면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교회가 천국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유대교와 같이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계시되는 그 하나님을 받아 드려야 되요. 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계시되는 그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에요. 여러분 제가 말씀을 드렸잖아요, 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 동해 물과 백두산이 하느님이 보우하사, 옛날에는 하나님이었는데, 쓸데 없는 논쟁이에요. 다 여러분 [Storge] 철학의 영향이에요. 그런 이론의 것이 아니에요.

 

성경은 창세기 1 1절에 보면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 인간을 창조하셨다. 여러분 이럴 때에도 진화론이 맞느냐, 창조가 맞느냐, 의미 없는 논쟁이에요. 말싸움해서 이길 필요가 뭐 있어요. 교인들도 무슨 이야기하면 그저 자기 주장이 옳니 내 주장이 옳니 말싸움해서 이겨서 뭐해요, 사실은 하나인데, 더 중요한 것은 창조의 하나님을 믿는 것은, 또 이것도 다음주에 이야기 하겠지만은 안다 야다 지식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요, 창조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를 74억 인구 중에 하나가 아니라,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하지 않는 분이구나, 그 하나님의 사랑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되요. 그것을 받아 드리는 것이 신앙의 출발이에요.

 

3.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제까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안 했든 이상한 공동체가 하나 생긴다, 그것이 교회다. 헬라어에 Ecclesia 는 마을 공의회였다. 헬라시대의 존재했든 그 의미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혈연을 넘어서는 놀라운 성령의 공동체라는 이미지를 거기에 부여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창조주이기 때문에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의 외형적인 삶을 통해서 가치 평가를 해요. 많이 가진 사람은 가치가 있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치가 없고, 많이 배운 사람은 가치가 있고, 배우지 못한 사람은 가치가 없고, 윤리적으로 제대로 사는 사람은 가치가 있고, 윤리적으로 잘못된 사람은 그것은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사람이고, 여자는 예뻐야 되고, 남자는 뭐 능력이 있어야 되고, 전부 인간이 만든 가치관들이에요. 창조주 하나님 앞에는 그 모든 가치가 무너져 버려요. 온 우주 만물하고 어느 누구하고도 나를 바꾸지 않는 하나님. 십자가에서 그 하나님을 예수님이 계시해 주신 거에요.

 

여러분 여러분들의 어머니 앞에서면은 왜 여러분들이 참 모든 것이 치유가 되고 좋아요. 어머니 앞에 가면은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치관으로 나를 안 보거든요, 완전히 다르게 보거든요, 비록 노숙자일지라도 대통령하고 바꾸거든요. 장애로 태어난 아이라서 모든 사람들이 저 집에는 저 아이만 없어도 행복할 건데 하는데, 그 아이를 낳은 엄마는 어떤 건강한 사람하고 자기 아들하고 안 바꾸거든요, 여러분 낳은 부모가 그런데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보다 더한 사랑이 성경에 계시되어져 있는 거에요. 그것을 십자가에서 계시 해 주신 거에요. 예수님은 계시해 주시고 난 뒤에 성령을 보내어 주셔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것을 깨닫게 하리라 라고 할 때에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면서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 대라, 예수님의 그런 윤리적인 가르침을 받아 드리는 것인 줄 알아.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린 것이라고 하였든 예수님의 그 놀라운 기도의 응답이 성령이 오시면은 깨닫게 되고,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전부 주관적인 해석이에요. 성령은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십자가에서 그 창조주 하나님을 계시해 주신 것을 비로서 깨닫게 될 거라는 거에요, 어떻게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제까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안 했든 이상한 공동체가 하나 생겨요, 그것이 교회에요. 그래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아버지 이신 것을 창조주로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비로서 십자가에 그 하나님을 깨닫고 알게 될 것이다,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그래서 이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 [Ecclesia] 라고 이야기를 하지만은 여러분들이 성경에 있는 용어는 절대로 헬라어 사전을 찾아서 의미를 알면은 성경을 모르는 겁니다. 헬라어에 Ecclesia 는 마을 공의회였어요. 헬라시대의 존재했든 그 의미를 차용을 해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혈연을 넘어서는 놀라운 성령의 공동체라는 이미지를 거기에 부여한 거에요. Ecclesia 라는 단어가 가장 설명하기 좋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이 행하신 여러 가지 일들 하나님의 구원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초월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 세상에 단어가 없단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언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성육신 초월의 세계가 지상으로 왔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가, 지상에 있는 단어 가운데 제일 가까운 것을 차용해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에 의해서 의미를 부여한 거에요. 그런 교회를 여러분들이 사도신경에 고백할 때에 거룩한 공회, 거룩한 공 교회, 거룩하다는 것은 신령한 것이라는 말이 아니에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안 했든 하나님적 교회라는 말이에요. 그 교회가 탄생했다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세워 져야 되는가? 큰 교회? 구제를 많이 하는 교회?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교회? 다 인간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거에요.

 

4. 74억의 인구 가운데 나를 대신하지 못하고, 외모로 나의 가치판단 하지 않고, 온 우주 만물과 나를 바꿀 수 없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교회 가족의 교회다. 교만하게 된다는 말은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을 교만이라 그런다, 헬라어 에서는, 실체가 없다 이 말이다.

 

어떤 교회인가? 74억의 인구 가운데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하지 못하고, 외모로 나의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온 우주 만물과 나를 바꿀 수 없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교회 가족의 교회에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신앙 생활은 부모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그런 교회는 목사님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선포한 것을 여러분들이 받아 드릴 때에 그런 교회가 되어지는 거에요. 우리 교회가 그렇지 않다면은 여러분들이 종교적 신앙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인을 볼 때에 얼마나 종교적인 외형의 모습을 잘하느냐 그것으로 평가 안 해요. 얼마나 다른 사람을 볼 때에 그 사람의 엄마와 같은 눈으로 보는가? 여러분 엄마 앞에 가면은 모든 사람들의 가치 평가가 다 힘을 잃어버린 다고요.

 

교회 오면은 모든 세속의 가치 평가가 힘을 잃어버려야 되요. 그런 목사님이 복음적인 목사님이요. 그래서 고린도전서에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유 자나 종이나 구분이 없다. 이런 교회가 되어야 되는데, 종교개혁 이후 여러분 기독교의 공인 이후, 산업화 이후의 교회는 얼마나 교회의 성장의 유익이 되느냐에 따라서 교인을 가치 평가 하기를 시작했다고. 그래서 교회는 점점 기업화가 되고, 재벌화가 된 거에요. 다시 돌아가야 되요. 그러려면은 여러분들이 저기에 지식은 교만하다고 했는데, 지식이 뭔지를 알아야 됩니다. 지식이라는 말은 헬라시대에 구원의 수단이에요. 헬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지식을 통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을 하는 거에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 한국에서의 지식은 뭔가? 돈이에요, 지식을 얻는 것이 뭔가, 돈을 많이 가져서 부유하게 되는 것이 지식을 말하는 겁니다. 성경적 지식, 사회적 지식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헬라에는 그런 지식을 가지면은 자유 하게 되고,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했든 거에요. 그래서 헬라시대에는 철학이 발달을 하고, 수사학이 발달을 하고, 논리학이 발달을 했습니다. 왜 그 지식을 얻으면은 자유를 얻게 되고, 자기를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하게 되고, 평안을 누리는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한국에는 모든 사람이 돈을 많이 가져야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래서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면은 내 삶이 안전 해지고 행복해 질 거라 생각하는 거에요. 그래서 교회도 교인의 숫자가 많고, 재정이 많아 지면은 교회는 안전해 지고, 행복한 교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요. 교만하게 된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을 교만이라 그래요 헬라어 에서는, 그 말은 뭐냐 하면은 실체가 없다 이 말입니다, 모양만 있다 이 말입니다. 풍선에 여러분들 꽃 모양 하트 모양 여러 모양을 가지고 후 불면은 그 모양이 나타나요. 그런데 그 모양은 실체만 있는 거에요. 바늘 하나면은 사라지는 모양이에요. 여러분 여러분들이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부자가 되면은 내 삶의 안전과 행복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모양만이에요.

 

5. 하나님의 구원의 실체가 있는 교회? 사랑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성령이 오셔서 세우신 교회를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적 행위를 행하였든 그 십자가에서 계시되는 그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랑이다. 아카페에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를 규정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은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수단이라면은 부자가 될수록 더 생명의 안전과 행복을 가져다 주어야 되는데, 우리가 보잖아요, 부자가 행복합니까? 부자는 안 죽습니까? 부자는 안 망합니까? 실체가 없는 것을 좇아 다녀요. 그래 교회도 많이 성장해서 재정만 많으면은 교회는 영원하리라고 생각하고, 사회의 평판만 좋으면 교회는 영원하리라고 하는 것은 실체가 없는 신기루라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실체가 있는 교회는 뭐냐? 사랑이라고 말하는 거에요. 경건 조차도 그래요. 디모데전서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다 라고 말을 하면서 그 앞에 경건의 모양은 있고, 경건의 능력이 없는 것은 열심히 신앙 생활해요.

 

주일 성수 안 빠져요, 11조 생활 잘해요, 그런데 디모데후서에 보면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해서 하는 거에요. 그래서 모양이 없는 실체가 없는 것이라는 거에요. 그렇게 신앙 생활하는 것은 행복할 수 없다는 거에요.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은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가 없다는 거에요. 종교적인 과업은 성취가 되지만, 무엇이 예수님이 세우신 성령이 오셔서 세우신 그 교회를 세우는가, 사랑이라고 말을 해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복 받으려고 교회 다니지 말고, 사랑하려고 다니세요. 결혼도 잘 살아 보려고 결혼하는 게 아니고, 사랑하려고 해야 됩니다. 4 6일 날 운비 주례를 내가 하는데, 그때 그것을 말해 줄 거에요. 첫 단추가 잘못 끼워 진 거에요.

 

그래서 행복이 없고, 그리스도의 구원이 없는 거에요. 자녀를 낳아서 판사 검사 만들고, 대기업 취직하고 잘 되려고 하는 것도 전부 보면은 월급 많이 받고 많이 벌어서 자신의 삶에 안전함과 행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나 교회가 제대로 알아야 되요, 사랑이 뭔가? 교회 오면은 사랑하자고 이야기하는데, 사랑이 뭔지를 모르는 것 같아 내가 볼 때, 그저 와서 이해 해주는 말하고, 함께 울어 주는 게 사랑인 줄 알아요, 그것 사랑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좋은 감정가지는 게 사랑인 줄 알아요. 편들어 주는 게 사랑인 줄 알아요. 상대방의 마음을 다스려 주는 게 사랑인 줄 알아요. 사랑 아니에요 그것.

 

여러분들이 자녀에게 모든 것 쏟아서 다 해주는 것, 자녀 죽이는 것이지, 자녀 사랑하는 게 아니거든요. 진짜 사랑하는 것은 아프지만은 네 스스로 일어나 봐, 여러분 사랑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되요. 제일 가슴 아픈 게 목사님 우리 교회는 사랑이 없다고, 자기가 생각하는 사랑이에요. 저는 우리 교회에 사랑이 충만한데, 목사님 사랑이 없다고, 자기가 생각하는 사랑이 없는 거지요. 성경적 사랑이 뭔지 알아야 되요. 그래야 교회가 세워 져요. 사랑을 좀 더 고차원적을 말하는 목사들 가운데는 사랑은 헬라어에 아카페가 있고, 에로스가 있고, 필레오가 있고, 스톨개가 있는데 아카페의 사랑을 해야 된다고, 조건 없는 사랑을 그것 아니에요 여러분.

 

그렇게 하면 헬라 세계의 공동체가 되어 버려요. 성경에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그 어떤 인간에게도 볼 수 없었든 하나님이 이 지상에 오셔서 하나님적 행위를 행하였든 그 십자가에서 계시되는 그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랑이었어요. 그래서 아카페 스톨개 필레오 에로스 중에 어느 것이 그 사랑일까? 아카페가 제일 가까워서 그 아카페에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를 규정한 거에요. 그러면 이 하나님의 사랑에 규정한 것에 반대가 뭐냐 하면은 인간의 사랑, 인간의 행위, 그것이 에로스에요. 그런데 그 에로스 조차도 헬라어에서 이해하는 대로 남녀간의 사랑인 줄 알아요. 육체의 사랑이 에로스의 사랑이 아니에요.

 

6. 지식의 에로스를 느끼게 해주면 지식을 가지려고 하는 공부를 학습이라는 것을 한다. 아카페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에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기의 주고자 하는 욕구, 존재하지 않는 욕구다. 영원한 창조주만이 있는 욕구이다. 고린도전서 13 4절에서 7절에 나오는 사랑이다.

 

그 에로스를 차용을 해서 인간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가, 하나님 사랑에서 반대의 개념으로 성경은 사용을 해요. 그 반대의 개념이 에로스는 뭐냐 하면은 무엇의 가치를 느껴 가지고 그것을 취하려고 하는 욕구와 그 욕구가 만들어 낸 행위를 에로스라 하는 거에요. 다시 말하면은 인간은 지식의 가치를 느끼면은 지식에 대한 욕구가 생겨요, 에로스가 생겨요. 그래서 그것을 가지려고 해요. 우리 부모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그저 공부하라고 닦달 하면 되는 줄 아는데, 공부하라고 닦달 하는 게 아니고요, 그 얘에게 지식의 에로스를 느끼게 해주면은 지식을 가지려고 하는 공부를 학습이라는 것을 해요.

 

돈의 가치를 느끼는 사람은 돈을 가지려고 하는 욕구가 생겨요. 그래서 그 에로스가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행동을 해요. 여러분들 남편이 돈을 안 버는 사람은 돈의 에로스가 없는 사람이에요. 구제를 많이 하는 것, 그것은 구제의 가치를 느낀 사람입니다. 그래서 구제의 에로스를 느껴서 구제의 행위를 많이 해요. 그런 게 여러분 그 차인표 같은 이런 사람들이에요. 그는 그런 것도 다 인간적 행위에요. 그 에로스가 교회를 세우는 것은 아니다 이 말입니다. 선교회 가치를 느끼고 구제의 가치를 느끼고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가치, 전부 가치를 느껴 가지고 하는 행위가 교회를 세우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80년대에 선교나 새벽 기도나 이런 교회들이 지금 그 실체가 없어져 가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여러분들에게 선교회 가치를 느끼는 것이나, 구제의 가치를 느끼는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느끼는 그런 가치를 느끼도록 제가 설교 안 해요, 목회도 안 하고, ? 그런 것은 유한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끝나 버려요. 아카페의 가치를 느껴야 되요, 아카페는 뭔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에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아니하고, 취하려고 하는 것이나 자기의 것을 주는 행위, 주고자 하는 욕구, 인간 속에 없는 거에요. 유한한 인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 욕구에요. 영원한 창조주만이 있는 욕구에요.

 

우리가 그 어떻게 가지게 되는가, 그것도 다음주만 하겠지만 하나님과 연합이 될 때, 어떻게 연합이 되는가? 다 그래서 좀 자세히 설명을 하려고 그래요. 어찌하였든 오늘은 여러분들이 가치 있는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요, 그게 구제든 정의든 뭐 돈이든 성장이든 이런 게 아니고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것에 내 모든 것을 내어 주는 마음 그 마음이 나타나는 행위, 그것이 고린도전서 13 4절에서 7절에 나오는 사랑이에요. 그 사랑을 이번에 고난 주간 새벽 기도회 때에 제가 다시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 교회가 교회 다와 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7. 교회를 세우는 것은 아카페다, 그 아카페도 헬라어 사전에 나오는 개념이 아닌, 그 개념을 차용을 해서 구원사의 사건에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아카페로 하면 어떤가? 모든 사람이 부모의 눈으로 보는 것이 신앙 생활이다. 그 시각이 있는 구원사의 교회가 세워 진다는 것이다.

 

왜 교회가 교회 다와 져야 되는가? 종교적인 과업의 성취가 아니라, 우리가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맛이라도 볼 수 있는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세웠든 그 구원사의 교회, 창조 이후에 존재하지 안 했든 그 교회를 맛보면서 신앙 생활 하도록 여러분 그래서 오늘 8 2절에도 보면은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한다. 자기는 안데, 모르는 거에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느니라. 이랬지만 하나님을 아는 것이 뭔가? 다음주 제가 다 말씀 드릴 거에요. 여러분들이 오늘은 뭐냐 하면은 교회를 세우는 것은 에로스가 아니라, 아카페다, 그 에로스와 아카페도 헬라어 사전에 나오는 개념이 아니라, 그 개념을 차용을 해서 구원사의 사건에서 의미를 부여한 것을 알아야 되요.

 

오늘부터 자기편 안 들어 준다고, 자기 마음 안 헤아려 준다고, 사랑 없다 하거든 이 사람은 아직까지 어리거나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구나, 이러면 되요.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할 때에 모양 있는 실체 에로스에요. 아카페로 하면은 어떤가? 모든 사람이 이런 것을 그 부모가 보는 눈으로 봐주는 거에요. 그게 신앙 생활이에요. 그 시각이 있는 교회가 세워 진다는 거에요, 구원사의 교회. 목사님이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 옆에 있는 사람에게 그 엄마가 보듯이 봐주는 거에요. 그러면 그 사람의 외형의 가치로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안 해요. 그럴 때 성령 받은 자고 그것이 구원이 일어나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렸잖아요 부모의 시각은 다른 사람의 시각하고 완전히 달라요. 또 반복할게요, 목사님도 이래 봐주어야 되요.

 

8. 십자가에서 당한 그 고난의 주님이 계시는데, 주님만 있으면 되는데, 그렇게 옛날에 가치 있고 원했든 것들이 의미를 가지지 않는 자, 그게 성숙된 자다. 내 마음에 내 귀에 즐거운 소리가 아니라, 내 가슴에 찔림이 되는 말씀 들어야지 된다.

 

제가 대학 교회에 목회를 하고, 요사이 개척 해서 큰 예배당 지으면서 시작을 하니까, 친구들은 우리 친구 대단해 이러는데, 내 부모는 네가 경상도 사람이기 때문에 우짤라고 그러나, 그 짐 어떻게 지려고 하느냐, 그게 부모 시각이에요. 누군가가 여러분 잘 되어져 있으면은 그 사람 대단해 안 해요. 부모는 잘 되어져 있는 것 대단해 해 가지고 열매를 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잘 되기까지 고생하는 아들의 그 고생의 삶의 자국이 보이는 것이 부모에요. 여러분들의 시각이 달라져야 되요. 저는 여기에서 오늘도 성가대 하는데, 쭉 보니까 31명 지휘자하고 33명 하는데 쭉 보는데 참 죄송합니다만 우리 김명훈 이 집사님이 저기 앉아서 성가를 하는 것 너무 감사하고 좋아요. 아마 부모라면은 몇 명 이게 보이는 게 아니고, 아픈 손가락 보일 거에요.

 

기업이 되면은 얼마나 이익이 되느냐, 유익이 되느냐 기여를 하느냐 이것으로 봐요. 그래서 기여를 해서 얼마나 큰 바벨탑을 쌓는가, 80년 이후에 한국 교회에 잘못된 어그러진 길로 간 거에요. 예전에는 여러분 큰 교회, 작은 교회, 작은 교회가 성경적이 이것 아니에요, 가정 교회가 성경적인 이런 게 아니에요. 두 명이 모이든 만 명이 모이든, 그런 사람들로 모여 있는 교회가 구원사의 교회라는 거에요. 성숙 되어져야 되요 여러분들이, 성숙이 뭡니까 여러분, 했든 설교 그대로 하는 겁니다. 얘가 어릴 때에는 엄마 왜 철수 엄마는 스마트폰 바꾸어 주는데 엄마는 안 바꾸어 줘 이래요. 크면은요 바꿔 줄까 해도 괜찮아 엄마, 우리 엄마가 고생하는데, 나는 엄마만 있으면 돼.

 

여러분들이 교회가 성숙되려면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되요. 하나님 왜 나에게 복 안 주고, 내 자녀 잘 안 되게 하고, 전부 유치원 생 신앙이에요. 십자가에 당한 그 고난의 주님이 계시는데, 주님만 있으면 되는데, 그렇게 옛날에 가치 있고 원했든 것들이 의미를 가지지 않는 자, 그게 성숙된 자에요. 그래야 교회가 교회 다와 져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영성이라는 것은 예수의 마음을 가지는 거에요. CEO의 마음이 바뀌어야 되요. 왜 고부간의 갈등과 집안의 갈등이 있습니까? 며느리를 친정 엄마의 눈으로 안 보거든요. 제 누님도 엄청 고생했어요. 훌륭한 권사인데 종교인에게는, 그런데 며느리를 딸같이 안 봐요.

 

여러분 기독교의 영성, 신앙 생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고, 부모의 마음으로 보는 거에요. 여러분들 가정에 무슨 불화가 있다, 이 복음으로 여러분들이 비판 해봐야 되요. 시어머니가 못되어서, 며느리가 못되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며느리를 친정 엄마의 눈으로 보고, 모든 것을 그 시각으로 볼 때 가정 교회가 이루어져요. 이것이 교회의 구원 사만이 아니에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신문 뉴스에 보니까 구직을 단념한 사람이 뭐 50 몇만 이라는데, 예수 믿는 기업가들이라도 구직을 단념한 그 사람들이 자기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면은 달라지지요. CEO 의 눈으로 봐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안 해요.

 

어찌해야 되는가? 설교가 달라져야지요. 여러분들이 듣고 싶은 것 듣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해야지요. 내 마음에 내 귀에 즐거운 소리가 아니라, 내 가슴에 찔림이 되는 말씀 들어야지요. 오늘도 이 설교를 하면서 여러분들이 예수의 마음이 여러분들 속에 조금씩 성장해 나가서 모든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부모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진정한 교인이 되어서 참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여러분들이 그러잖아요, 뭐 부 교역자들이나 뭐 교인들은 목사님 왜 그렇게 합니까, 버릇없게 하는데, 부모의 눈으로 보면은요 버릇없는 게 아니에요. 무슨 이유가 있는 거에요. 그럴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보는 목사 더디면서 우리 교회가 이렇게 가는데, 그 짐은 내가 지고 있지요.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아멘 

 

◈봉헌 기도◈

 

우리를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 성경 말씀대로 재물 얻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었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재물을 얻는 능력을 주어서 얻은 소득 10 9는 내가 누릴 수 있도록 주님 허락해 주시고, 10 1은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주님께서 황금률로 배분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해 주심을 믿음으로 10 9을 쌓다가 죽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누릴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고 10 1을 나눌 수 있는 믿음의 부유함을 더하여 주어서, 떡을 강물에 던지는 것이 헛된 낭비가 아니요,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알아서, 오늘도 지혜로운 마음 더하여 준 주님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아니하고, 가치가 없는 것에 강물에 떡을 던지듯이 11조를 드린 것이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날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많아져서 능력에 지나친 구재와 나눔이 아니라 능력에 걸 맞는 일들을 하려고 하는데, 그 능력이 점점 성장해서 어려운 자들에게 더 큰 힘이 되고, 없는 자들에게도 더 멋진 부유함을 누릴 수 있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어져서 주님 만나는 그날 내가 주님 몰랐더라면은 육신의 내 생애가 어떻게 될 번 했습니까?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안 했더라면 인생의 짐도 무거운데, 종교적인 짐까지 허덕이면 지다가 천국에 가서 후회할 수 밖에 없었는데, 주님 무엇이관대 복음을 듣게 하시나이까? 이런 감격이 올바른 신앙 생활 속에 날마다 경험 되어지고, 고백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교회가 무슨 이런 것이 교회냐가 아니라, 주님이 세우신 구원사의 그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가는 수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재물 얻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유대교의 랍비들의 잘못된 신관으로 인하여 종교적인 과업 성취를 위해서 하나의 수단과 도구가 되어 학대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은 74억의 그 누구도 대신 하지 아니하고, 천하 하고도 바꾸지 않고, 외형으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는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을 계시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마지막 피한 방울 까지도 쏟으신 우리의 구원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창조한 자이기에 완악한 자도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하는 그자도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지금도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기다리시며, 주의 재림을 연기하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인간의 듣기 좋은 소리, 인간의 마음에 맞는 유괴범과 같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한 자이기에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하지 아니하는 그 하나님을 받아 드리게 한 또 그 하나님의 마음이 그 속에 좌정해서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게 하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내면에 들리는 성령의 그 음성에 귀 기울여서 만인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죽어서 가야 할 그 천국을 땅에서 맛보도록 선물로 준 교회 위에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