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내 이럴 줄 알았으면…(고린도전서 7: 25-40)주일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9. 3. 8. 16:59

 

 

담임목사 김종웅

내 이럴 줄 알았으면

고린도전서 7: 25-40

2019 3 3일 주일 낮 예배

                                                                                                                                                      No. 408

32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첫째는 성경이다 조직 신학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울이 썼다고 해서 바울의 말이 아니고 원저자는 성령이라고 한다. 성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 구원의 핵심이 그 속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너희들에게 적용의 말씀을 설교 한다.

 

오늘 여러분들이 25절부터 40절까지 본문을 좀 주의 깊게 읽으면은 성경이 뭐 이래, 이런 생각이 들어야 됩니다. 우리가 한번 보면은 이런 말입니다. 25절에 보면은 처녀에 대하여 말을 하면서 26절에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처녀들보고 시집 안 가고 혼자 사는 것이 더 좋다, 성경이 이렇게 말을 해요. 그러면서 27절에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네가 장가 갔느냐 그러면은 이혼하지 마라. 또 이혼을 했거나 헤어졌느냐 다시 장가 갈려고 하지 말라. 그러면서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일들은 육신의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1. 약혼녀와 결혼을 하는 것이 죄짓는 것이 아니다.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서 화가 날 성경이지요, 인구가 줄어드는데 ㅎ ㅎ. 성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구원의 핵심이 그 속에 있다.

 

시집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은 아닌데, 육신의 고난을 겪는 일이다, 이런 말씀을 하세요. 참 희한한 말씀이잖아요. 그리고 또 처녀들만이 아니고, 여러분 36절부터는 여러분들이 초대에 배경을 알아야 되는데 영혼 결혼식이 유행을 했었고요, 또 결혼 전에 약혼을 하고 정혼을 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 또 때로는 이 본문이 처녀의 대한 본문이다 라고도 말을 하는데, 그런 논쟁은 신학자들에게 맡겨 놓고, 우리나라 번역은 제대로 된 것 같아요.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약혼녀와 결혼을 하는 것이 죄짓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결혼하게 하라 타동사이기 때문에 이것이 또 부모에 대한 말이라고도 생각하고, 처녀라고도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결혼하는 것도 죄짓는 것이 아니니까 결혼 시켜도 좋다, 이러면서 37절에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결혼 안하고 약혼의 상태로 계속 가는 것도 잘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38절에는 더 이상한 말을 합니다.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우리나라 여러분 보건복지부에서 화가 날 성경이지요, 인구가 줄어드는데 ㅎ ㅎ.

 

그러면서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39절부터는 이혼을 당했든지, 사별을 했든지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을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되도록이면 혼자 살아라, 요즘 우리 교회에도 젊은 분들이 구역 예배 드리면서 그런데요, 주말 부부는 3대에 걸쳐서 덕을 쌓아야지 될 수 있는 거라네 ㅎ ㅎ ㅎ 부부의 삶을 살면서도 자유롭다는 그런 말이겠지요, 여기에 보면은 그렇게 말해요. 남편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남편에게 매여 있지만 죽으면 자유로워 지는데 네가 시집가도 되는데 되도록 이면은 예수 믿는 사람하고만 결혼을 해라. 라고 말을 하면서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

 

뭐 시집갈 것 뭐 있나, 이러면서 나도 또한 하나님이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한다, 이렇게 말을 해요. 여러분 이 말씀을 결혼의 규정이나 원칙으로 받아 드리는 것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거에요. 그래서 성경은 아무나 해석하면 안 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다니면서 올바른 성경의 해석을 듣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요. 이 말씀은 먼저 여러분들이 아셔야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은 첫째는 성경이에요, 조직 신학에,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고린도전서를 바울이 썼다고 해서 바울의 말이 아니에요. 성경에 여러 기록자가 있지만은 원저자는 성령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성찬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예전 정도가 아니고, 성례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구원의 핵심이 그 속에 있어요. 그리고 설교도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경을 비판하면 되지 않고, 성경을 여러분들의 생각으로 판단하면 되지 않고, 순종하려고 성경을 읽어야 하듯이, 설교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이 설교에 대해서는 성경과 성례와 어떤 차이의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는 것을 먼저 아셔야 됩니다. 오늘 여기에 보면은 25절에 처녀에 대하여는 라고 말을 한 것은 이것이 결혼의 원칙이나 이런 것을 결혼 생활에 규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요,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질문한 거에요.

 

2. 하나님의 말씀에서 설교는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을 여러분들의 상황에 맞도록 적용해 주는 것이 설교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고린도 교회의 너희들에게 맞는 적용의 말씀을 한다 설교다 이런 말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진리에 대한 속성을 알 따름이다.

 

처녀는 어떻게 해야 되는데, 혼자 사는 혼자된 여인은 어떻게 해야 되는데, 약혼의 상태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는데, 라고 질문을 했어요.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하면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참 중요한 것이 결혼의 문제잖아요.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는 그 결혼에 대해서 사회적인 통념이라든지, 여러 가지 자기의 신앙을 따라서 생각하는 것이 참 많이 달랐어요. 그래서 헬라 사상으로 결혼을 보면서 혼자 살아야 된다. 결혼한 사람도 이혼을 해라.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서 질문을 한 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은 그 질문의 대한 대답이라는 것을 봐야 되요. 그러려면 이 말씀을 왜 했는가 하는 것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되어져요.

 

이해가 있을 때만이 이 말씀 이런 말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되어지고, 이것이 규정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어져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그런 사회적인 통념을 가지고 그것이 진리이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은 의견에 대립이 생겼어요. 그런데 32절 오늘 본문에 보면은 이렇게 말해요.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왜 혼자 사는 것이 좋으냐 하면은 시집가고 나면은 어떻게 하든지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지, 주를 기쁘게 할까 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거에요. 또 장가가도 아내를 기쁘게 할까, 세상의 염려가 되어서 주를 기쁘시게 할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는 거에요. 이럴 때에도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그대로 적용을 해서, 장가 가면은 주를 기쁘시게 해야지, 아내를 기쁘게 하면 안돼, 언제까지 가정에 매여서 살아야 돼, 이래 버리면은 이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서 주신 말씀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먼저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 하려면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설교는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을 여러분들의 상황에 맞도록 적용해 주는 것이 설교에요.

 

그래서 설교는 제가 다른 교회 가서 설교를 할 때에는 그 교회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원리만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설교는 자기 교회의 상황에 맞는 그 설교를 듣는 것이 좋은 것이지, 좋은 말 듣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오늘 장로님이 기도하실 때에도 듣고 싶은 말 듣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할말을 들어야 된다, 들어야 할 말이라는 것은 내 상황에 맞춤에 적용된 말씀, 그런데 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려면은 25절에 보세요.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결혼에 대해서 시집가지 않은 자가 시집을 가야 되느냐 안 가야 되느냐 하는 것은 예수님이 가르친 것이 없다. 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그러면서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없지만은 내 의견에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고린도 교회의 너희들에게 맞는 적용의 말씀을 한다 설교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이 말씀에 정말 중요한 내용은 35절을 보세요. 앞에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 하여 어찌하여 주를 기쁘시게 하고 장가간 자는 세상의 일을 염려하여 아내를 기쁘게 할까 마음이 갈라진다 이러면서 35절에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여러분들이 이 말씀이 중요해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 속에 적용이 될 때에 교인들에게 유익이 되어져야 되요. 그래서 제가 어느 것이 진리냐 아니냐는 우리는 모른다 그랬어요. 우리가 아는 것은 진리에 대한 속성을 알 따름이에요.

 

3. 사람의 능력에 맞도록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행해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 설교다. 내가 내 의견을 말을 하지만은 설교는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내 안에서 성령이 말하게 하는 것이다. 바울의 말은 바울의 말이지만 성경이 된 것이다.

 

진리에 대한 속성의 어긋나면은 진리가 아니에요. 여러분 왜 그러면은 그런 것들이 교인들에게 유익하냐, 라고 이야기 할 때에도 설교 말씀이 여러분들 개인에게 유익한 게 아니에요.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말씀이 되어야 되요. 그래서 들어야 할 말이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다.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디에 가서 내 마음에 꼭 드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손해가 되면은 그것은 진리가 아니에요. 나에게는 좀 부담이 되고, 손해가 되지만은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말씀 그 말씀이 진리에요. 여러분 정말 중요한 이야기에요. 우리 한국에는 개인에게 유익된 말씀만 전해요. 모두에게 유익된 말을 전하지 않는다 말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아닌 설교들이 많은 거에요.

 

그러면서 또 이렇게 말을 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다. 설교는 교인들에게 올무를 놓는 게 아니에요. 여기에 올무라는 말은 개의 목줄을 말하는 거에요. 개의 목줄을 채우는 이유는 어디에 있어요, 주인이 마음대로 컨트롤 하려고 그래요. 설교를 가지고 교인들이 목사님이 원하는 대로 컨트롤 하려고 설교를 하면은 그것은 설교가 아니다 이런 말입니다. 심각한 말이지요. 어떻게 하면은 올무를 놔요, 내 말 잘 들으면은 복 받고, 못 들으면은 벌받아, 올무에요.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해서 교인들이 그 말씀을 깨닫도록 기다려 주고, 그래서 그 사람의 능력에 맞도록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행해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 설교다 이런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 주를 기쁘시게 하라 라고 하는 이 말씀이 아내를 기쁘게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에요.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하다가 주를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 개인에게만 유익이 되고, 모두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또 40절에는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하면서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한다. 내가 내 의견을 말을 하지만은 설교는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내 안에서 성령이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의 이 말은 바울의 말이지만은 성경이 된 거에요.

 

여러분 오늘도 설교는 첫째는 하나님의 영이 목사님 속에 계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려면은 무엇이 있어야 되는가 하면은 교인들을 올무를 놓아서 자신이 원하는바 대로 교인들을 끌어 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 개인 개인에게 유익이 아니라, 때로는 개인에게는 손해가 되고 힘이 들지라도,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그런 말씀을 선포해서, 그것도 상과 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으로 잘 양육이 되어져서 그 말씀의 필요를 알게 되어지고 유익을 알아서 그 사람의 능력에 맞도록 행할 수 있도록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도록 기다려 주는 그런 설교가 될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말씀이에요.

 

4. 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에 내 아내만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기쁨이 되는 결혼의 삶이 된다. 3.1절을 맞이하여, 독립 운동을 하면서 만세를 했든 것은 여러분들이 그것을 보면서 주권 국가의 국민이 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하는 생각을 새롭게 해야 된다.

 

그러면 오늘도 이 말씀에서 여러분들이 결혼을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이런 말이 아니고요, 왜 결혼을 해야 되는가 이게 없으면은 아내만 기쁘게 해요. 왜 결혼을 해야 되는가를 알지 못하면은 남편만 기쁘게 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결혼을 여러분들에게 주를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에 내 아내만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기쁨이 되는 결혼의 삶이 된다 이런 말이에요. 이런 삶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에요. 대가가 지불되어야 되요. 이번에 우리가 3.1. 절을 맞이하면서 저는 저 병천 목천 저기에서 유관순열사가 독립운동 한 것을 재현해서 한복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수 천명의 행진을 퍼포먼스 를 행하는 것도 TV에서 보여 주고,

 

외국에는 유관순열사의 뭐 조카인가 뭐 되는 사람이 나와서 또 그렇게 하는 것도 보여 주고, 이럴 때에 참 한편의 마음 속에는 그런 것들을 그냥 기억하고 회상하고 재현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 되면은 정말 3.1 운동의 그 정신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거에요. 성찬식을 행할 때에 단순히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회상만 하면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교회를 통하여 천국을 맛보는 신앙 생활이 되지 못하는 게 문제에요. 여러분 그럴 때에 이런 부분 봐야 되요, 그래서 TV에도 보면은 독립 운동가의 후손에 대한 것들 친일파의 후손에 대한 이야기를 쭉 하는데, 화가 나잖아요, 어떤 화가 나요?

 

독립 운동을 하면서 만세를 했든 것은 여러분들이 그것을 보면서 주권 국가의 국민이 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하는 생각을 새롭게 해야 되요.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신앙 생활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인가 하는 것을 새롭게 하는 것이 성찬식이고 예배가 되어야 되는 거에요. 여러분 꽃다운 나이에 나라에 주권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 놈에게 끌려가서 위안부의 삶을 살아야 되요. 탄광 막장에 끌려가서 징용 가 가지고, 봉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 많은 고난 속에서 그냥 죽어져 갔든 수많은 우리 징용 자들, 조선으로 태어난 것 때문에 일본에 항상 열등의 대접을 받아야 되는 것들,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가 하는 것을 알 때, 오늘 우리에게 주신 대한 독립 자유 독립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새롭게 하는 마음이 없다면은 그 퍼포먼스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성찬식이나 예배를 드릴 때마다,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만들어 진 이 교회를 통해서 죽어서 가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한 선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저 나만 복 받고, 내 체면만 살고 이렇게 본다면은 이 예배나 성찬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에요. 여러분들 귀에 즐거운 소리만 설교를 한다면 그것은 설교가 아니고 사람에게 마음을 사는 잘못된 말들이에요.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것만을 아는 것이 아니고, 독립운동 하는 분들 이번에 많이 보셨지요, 그 수많은 재산을 팔아 가지고 신흥무관학교 세우고 독립 자금 대고, 이랬든 후손들은 거지꼴 못 면하고 살아요. 친일을 한 사람들은 지금도 떵떵거리고 살아요.

 

5. 구원사에서 모든 것을 봐야 된다. 대통령이 나라를 생각하는 반만큼, 모든 가정의 자녀들이 부모가 생각하는 것 반만해도 좋아진다. 목사님이 교회를 생각하는 반만 교인들이 해도 하나님의 나라로 점점 나아간다. 독립 운동가들과 같이 교회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독립 운동은 누가 하는가, 죽기밖에 더하겠어, 저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나아, 나 혼자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의미가 없어. 이런 사람이 독립 운동하는 거에요. 여러분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려면은 이 세상과 달리 여러분들이 교회를 통해서 천국을 맛보려면은 여러분들 생각 속에 나 하나만 잘 되어서 뭐해, 구원사에서 모든 것을 봐야 되요. 그러지 아니하면은 교회가 교회다워 지지 안 해요. 여러분 나라의 문제가 대통령의 책임입니까? 저는 그래 생각 안 해요. 모든 국민이 대통령이 나라를 생각하는 만큼의 반만해도 우리나라 참 좋아집니다. 모든 가정이 자녀들이 부모가 가정을 생각하는 것 반만해도 가정은 살아나요.

 

모든 교회가 목사님이 교회를 생각하는 것 반만 교인들이 해도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로 점점 나아가요. 오늘 여러분 여러분들 속에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친일파들은 자기 이익과 자기 후손 자기 가족 자기 아내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한 거에요. 왜 조선이 망했습니까? 대한제국 말기에 그 모든 일파들이 자기와 자기 가족들만 잘 살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나라가 망한 거에요. 여러분들 가정이 자녀들이 자기의 입장만 생각한다면은 가정은 해체 될 수 밖에 없어요.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러분들의 삶만 생각한다면은 교회는 의미가 없어져요.

 

누가 독립 운동 합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안 해야지요. 누가 주를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망하는 것, 죽는 것, 두려워 안 해야 되요. 목사의 길은 그 길이에요, 그 싸움이 여러분들 속에도 절반은 있어야 된다고 봐요. 우리 교회가 모든 교인들이 행복해 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까? 목사님 설교가 좋아야 라고요, 목사님이 만들어야 된다고요, 천만에요, 여러분들이 독립 운동가들과 같이 자기 생각에 앞서서 교회를 생각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요. 거기에서 여러분들이 이 삶을 살려면은 바울이 오늘 여기에도 다음주에도 제가 재림에 대한 확실한 이야기를 한번 더 할 것인데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회의 통념이나 시대 정신으로 무엇을 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결혼에 대한 것,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는 것을 그 시대의 정신 헬라시대의 통념으로 바라보면서 싸웠든 그들에게 구원사로서 지금 보도록 만든 거에요. 그 구원사가 뭐냐 하면은 사도신경의 고백할 때에 예수님이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심,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 승천, 성령을 보내어 주심, 다시 오심, 이 시각으로 결혼을 보고 모든 것을 봐야 되요. 이 시각으로 보면은 결혼 생활에 내 아내만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지 안 해요. 내 아내의 기쁨이 되게 하려면은 나라와 모든 것이 잘 되어 질 때 진정한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져요. 내 아내의 기쁨만 바라보는 것은 친일파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어요. 때로는 자녀가 거지꼴 못 면하고, 자기 아내는 남의 집의 식모살이로 갈 수 밖에 없는 처지를 두고도 전 재산을 팔아서 가는 것은 여러분 죽기를 각오 안하고 어떻게 가겠어요.

 

6.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속에 닥쳐올 미래의 확실성 때문에 죽기밖에 더하겠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느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이 서로 살려고, 서로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할 때, 나하고 죽으러 가자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와 함께 죽으러 가자 이랬습니다. 왜 우리가 그래야 되는가, 세상의 일은요 나라의 독립 운동한 사람들은 세상일이잖아요. 아마 그분들이 다시 환생해서 오늘 우리 한국을 본다면은 저는 어떤 생각을 할까? 생각해 보니까,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안 그랬을 건데, 이럴 것 같아요. 3.1 절 맞이하면서 그런 생각 한번 해 보셨어요? 독립 운동가들이 내 이럴 줄 알았으면 내 전 재산 팔아서 내 손자가 지하 단칸방에서 기초생활수급 가지고 근근이 라면 먹고 사는 줄 알았으면은 내가 안 하고, 친일파 같이 살았을 건데, 그게 세상일이에요. 그 세상일을 극복할 수 있는 게 뭔 줄 아세요? 재림이에요, 예수님의 재림이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친일파와 같이 자기만을 위해서 안 살아요.

 

분명히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그 하나님의 나라를 언제나 우리 속에 닥쳐올 미래의 확실성 때문에 죽기 밖에 더하겠어? 신앙의 결론은 내 이럴 줄 알았으면, 내 그래 안 살았을 건데, 그래 목회 안 했을 건데, 여러분 바울은 지금 이 고린도전서 에베소서 쭉 보면은요. 이제는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들과 싸움을 앞두고 있는 앞두고 있으면서 에베소서를 써요. 그 사자의 먹이 거리가 되어지고, 검투사의 칼날에 죽어 지는 그 죽음을 극복하면서도 주님을 기쁘시게 교인들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었든 것은 로마서에 그래 말해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느니라.

 

그러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며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것은 교인들이 죽으려고 예수 안 믿어서 그래요. 죽으려고 예수 안 믿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눈으로 보지 않고, 전부 현재 이 땅의 시각으로 봐요. 그래서 이 우리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이 사회적인 통념으로 바라본다고, 나 하나 살아서 우리나라가 변하나? 전부 자기 아내와 자식을 기쁘게 하면서 사는데, 나 혼자 나라 위해서 사는 것 무슨 의미가 있나? 저는 독립 운동가의 후손들을 바라볼 때에 혹시 그 프로를 보면서 애국심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그래 살면 뭐해? 이 생각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세상은요 그래 살면은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이래 안 해, 그것을 이기게 하는 것이 재림이에요. 그래서 신앙의 결말과 세상의 의의 차이는 그곳에 있어요. 여러분 정말 저도 목회를 하면서 걱정이 되지요 세상의 일이, 아내와 자식을 기쁘게 하고 싶지요, 이래 살면 되겠나 할 때에 죽기밖에 더하겠어? 그 순간에 저 그 생각합니다. 죽기밖에 더하겠어 했을 때에 그 다음에 그 결론이 뭐요? 혼자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닌데, 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 했을 건데, 이것 이겨야 되요. 어떻게 예수의 재림이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이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우리 교회가 천국을 맛보는 교회가 되는 것은 구호가 아니고, 실제가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이 서로 살려고, 서로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할 때, 나하고 죽으러 가자 이랬습니다. 우리 교회에 등록하셨다면은 저하고 죽으러 가야 되요. 그럴 때에 교회가 제가 교회의 뿌리를 오순절로 가져가려고 하는 이유는 그래요. 목사님이 만든 교회, 장로님이 만든 교회가 되면은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안 그럴 건데, 이런 후회가 있어요, 우리나라가 보세요 여러분,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대한 독립 만세, 그것은 세상이에요. 교회도 그때에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목사님들이 강단에서 그 소리만 외쳤어요. 예수 믿으면 잘 살게 돼, 이것만 외쳤다고, 세상이 잘 살아 보세라는 시대 정신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교회는 왜 잘 살아야 되는데, 그 질문을 하게 했다면은 오늘 우리나라 이 번영에서 후회하지 않는 오늘을 맞이 했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7. 십자가를 지고, 남들이 걸어가는 반대의 좁은 길, 모든 사람이 걸어가는 사회적인 통념과 거슬러 가는 복음의 정신으로 걸어갈 때, 하나님의 위로가 있다. 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래 안 했을 텐데, 그 소리 안 하려면 재림을 믿고,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반대의 길이라.

 

세상은 잘 살아 보세요, 대한 독립 만세만 이지만은요, 세상은 결혼을 통해서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유대교의 종교는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이런 싸움을 할 때에 바울이 지금 하는 말은요 왜 결혼해야 되는데, 무엇이 진정 네 아내의 기쁨인데, 무엇이 진정 네 후손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인데, 이 질문한 거에요. 여러분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사는데 후회해요? 정치가들 책임 아닙니다. 세상은 잘 살아 보세에요, 잘살자 힘써 하자, 아이 캔 두, 그럴 때 왜 해야 되는데? 그랬을 때에 잘 삶이 진정한 행복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아무에게나 주는 게 아니에요. 십자가를 지고, 남들이 걸어가는 반대의 좁은 길, 모든 사람이 걸어가는 사회적인 통념과 거슬러 가는 복음의 정신으로 걸어갈 때,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거에요.

 

예수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너스가 아니에요. 그것은 사탄이 주는 사탕이에요. 제 싸움은 그 싸움이에요. 죽기밖에 더하겠어? 이럴 줄 알았으면 내 그래 안 할건데, 그것 극복해야 되거든요. 어제 우리 교회에 10년 전에 이사 가셨어요, 인사 왔더라고 아들 데리고, 10년 전에 중학생이었든 아이에요, 엄마가 은행 다녔어요, 남편이 사업하다가 신용 불량자 되니까, 엄마 은행 못 다니는 처지가 되었어요. 그래서 가정이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교회의 겨자씨 헌금 이런 것을 통해서 그 어려운 위기를 넘겨 가지고, 멀리 이사를 가서 자그마한 자기 사업을 시작을 했습니다. 그 상처받은 아이를 제가 안고 네 안에 예수님이 있는 것 같아, 내 이말 한마디 해 주었는데 그러면서 10년 있다가 우리 다시 보자고 했는데, 얘가 10년 동안 그 생각하고 살은 거에요.

 

내 안에 목사님이 예수님 있다고 했는데, 10년 되니까 딱 10년 되어서 인사 온 거에요 엄마하고, 목사님 감사합니다, 잘 자랐어요 요만했든 얘가 1미터 80이 넘게 컸더라고, 그게 하나님의 위로에요. 그래서 그 아빠도 우리 교회에 나왔었거든요, 우리 교회 오기 전에 교회에 굉장한 상처를 받은 분이에요. 그래도 우리 교회에 와서 나왔다가 거기에 가서는 또 교회에 안 나가고 산에 약초 캐러 다닌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랬더니만 그런 이야기 하더라고, 우리 얘 아빠가 세상에 존경하는 목사는 둘이 있데요, 한 분 있고, 또 나래, 그래 뭐 내가 존경 받을 목사도 아닌데 이랬더니만 우리 교회에 잠깐 다닐 때에 목사님의 설교는 일반 설교하고 달랐대요, 목사님의 목회의 방향은 일반 목사님들의 목회의 방향하고 달랐대요.

 

그 일반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에 반대의 길을 걷는 것은 죽기로 각오 안 하면은 못 갑니다. 내 이럴 줄 알았음이라는 생각을 극복 안 하고는 못 가요. 그게 재림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 교회에 저하고 이 뜻이 같아야 되요. 개인적인 취미를 위해서 여러분들과 제가 만난 게 아니잖아요. 저는 그래 생각합니다. 무엇이 다르냐? 많은 교회 목사님들이 큰일 하려 그러고, 교회 크게 지으려고 하고, 좋은 일 많이 하려는데, 목사님은 교인들 행복한 것을 좋아한대요. 여러분 정치가와 CEO는 큰일 하려고 그래요, 여러분들 부모는 여러분들이 행복한 것이 소망이에요. 우상은 바벨탑을 쌓으려고 하지만, 창조하신 하나님은 여러분 우리의 행복이, 내 행복이 아니에요, 우리 교회 다니면서 내가 행복해 지려 하지 마세요. 모두의 행복이에요.

 

너희의 유익이지 너의 유익이 아니라고 바울이 지금 말하는 겁니다. 정말 우리 2019도에는 여러분들이 정말 저와 함께 죽으러 가세요. 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래 안 했을 텐데, 그 소리 안 나오도록 하는 게 목사의 할 일이에요. 그 소리 안 하려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확실히 있음을 믿으면서 세상사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그 길이 아니라, 반대의 길이라, 아내만을 기쁘게 하는 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행복을 통해서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겁니다. 주님 재림은 확실합니다. 다음주에 왜 확실한가, 목사님 계시 받았습니까? 성경의 계시가 뭔지를 말씀 드릴 거에요. 아멘

 

◈봉헌 기도◈

 

이 세상이 즐기는 재물로는 내 근심과 고초를 못 면하리, 또 숨질 때 위로를 못 얻으며 저 천국에 갈 길도 못 찾을 줄 알아서 주님 앞에 예물을 드립니다. 이 예물이 종교인에게만 어느 특정한 자에게만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귀한 예물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 교회를 부유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자산이 늘어나는 교회가 아니라, 교인들의 행복의 지수가 늘어나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 교회를 축복하여 주시기를 원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내 이럴 줄 알았으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재림의 확실한 증거와 약속을 보여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우리를 사랑하셔서 불의한 세상을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자신의 이익만이 아니라,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입으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죽기를 각오하기를 원하는 그 마음을 불어 넣어 주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세상은 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삶의 결론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결론은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며 소망 중에 바라보는 참된 믿음을 소유한 권속들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선물로 주신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