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획일성과 다양성
고린도전서 7: 15-16
2019년 2월 17일 주일 예배
No. 406
15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아멘
○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이루어지는데, 선입견, 사회적인 통념, 가치관이 무너지는 것이 힘든다. 깨어진 안식을 회복하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문자는 죽이고 영은 살린다는 말은 그 문자를 기록해 한 하나님 성령의 의도를 알 때 생명을 더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양성이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할 때에 참 힘든 것은 남들은 다 놀로 가는데, 주일날 교회에 오는 것 이런 게 힘든 게 아닙니다. 생활은 정말 어려운데 헌금하는 것 이런 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그런 것은 종교 생활의 어려움입니다. 우리가 정말 신앙 생활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경험 되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려면은 무엇이 힘든가 하면은,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여러 가지 선입견들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사회적인 통념이 우리 한국 사람들의 가치관이거든요. 그 가치관이 무너지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요. 여러분들이 신앙적 선입견 종교가 만들어 낸 기독교가 만들어 낸 선입견들이 있거든요.
1. 유대교의 선입견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하나님의 말씀 복음이 진리일 때 아멘 이다. 하나님을 믿고, 진정한 신앙 생활 하려거든 너 자신이 부인 되어져야 된다. 빙산 밑에 있는 거대한 빙산이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엄청난 배경의 말씀이 이 속에 있다.
이런 선입견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 여러분들이 그런 선입견을 무너트린다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가 하면은 구약성경을 보면서 하나님 잘 믿으려고 하는 유대교의 선입견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거든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을 그들이 볼 수도 없었고, 그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였기 때문에 유대교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안 했다고요. 우리가 성경을 진리라거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러분들이 정의 내리는데 그러면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지 안 해야 되요.
진리의 말씀이구나, 그래서 아멘 이라는 것은 내 생각에 맞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동일하네요, 그럴 때 아멘이 아니에요, 내 생각이 틀렸군요, 하나님의 말씀 복음이 진리이군요, 이럴 때에 아멘 이에요. 그런 이런 신앙의 삶은 정말 얼마나 힘든가 하면은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이 말은 뭔가 하면은 그냥 기독교인이 되려거든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거든 그런 말이 아니에요. 너희가 정말 내가 계시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고, 진정한 신앙 생활 하려거든 너 자신이 부인 되어져야 된다. 네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종교적인 선입견이나 여러 가지 삶의 선입견이 무너지지 아니하면은 결코 나를 따를 수 없다.
왜 우리가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복음 안에서 거해야 되는가 하면은 그래야만이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있는 교회가 되기 때문이고, 또 그런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어서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확대 되어져 갈수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면서 정말 야 이 교회는 세상과 다르구나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있구나 맛을 보는구나, 이러면은 지금 여러분의 생각대로 믿어도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은 여러분들 생각을 포기하고 복음과 설교 말씀의 순종하고 자기를 부인해 보세요. 지금 한국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서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대 되어져 가는데 사용 된다면은 이대로 믿어도 좋아요.
그렇지 못하다면은 내가 지금 잘못 믿고 있구나, 성경을 잘못 보고 있구나, 라고 생각을 해야 된다고요. 오늘 성경 본문도요 너무나 간단하고 쉬워요. 뭐라는 가 하면은 이렇게 말해요,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 자매들에게 이런 일에 구애 받을 것이 없다. 이 말은 잘 믿은 가정을 말하는 거에요. 어느 한편은 신앙 생활하고, 어느 한편은 신앙 생활 하지 않을 때,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교회에 안 나오는 사람이 이혼하려 하거든 이혼 해 줘라, 이런 말이에요. 그리고 12절에 보면은 교회에 안 나오는 남편이나 아내가 함께 살기를 원하거든 이혼하지 말고 같이 살아라. 이게 왜 성경이고 이 말씀을 따르면은 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가, 이 말씀을 하는 데에는요, 빙산 밑에 있는 거대한 빙산이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엄청난 배경의 말씀이 이 속에 있는 거에요.
2. 영은 살린다는 말은 그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그 성경을 기록해 하셨던 성령의 의도를 알아야 된다. 마태가 왜 예수님의 수많은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 바다를 먹물 삼아서 기록해도 다 기록할 수 없는 말씀과 사역 중에 기록을 했는가, 그런 것이 신학적 훈련 속에서의 해석이다.
이런 것을 알지도 못하고, 거저 문자 주의에 빠져서 문자 그대로 나는 내 남편이 교회에 안 나오는데, 그가 이혼 하려고 하면은 이혼해 주라고 이야기 해 버리면은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겠지요? 또 여러분들이 함께 살기를 원하는데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는 형편에도 성경에 함께 살아라 했기 때문에 산다고 생각하면은 얼마나 많은 문제가 발생해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을 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뭐냐 하면은 문자 주의에 빠져서 기계적으로 그대로 적용을 하는 것을 잘 믿는 거라 생각해요. 여러분 원수를 사랑하라, 목사님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 안 했습니까,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으로 돌려 대라고 하지 안 했어요? 왜 그런 사랑을 실천 안 하세요?
여러분 그 말씀도 여러분들이 그런 상황을 알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적용을 해 버리면은 살인마 어금니 아빠 알잖아요, 아내를 자살로 죽음으로 내몰았든 그런 남편도 사랑해야지, 그러면 안 되지, 이래 버린다고요, 600만 유태인을 학살했든 히틀러도 사랑해야지, 어금니 아빠가 아내에게 몹쓸 짓을 해도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 대야지, 성경이 그러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고린도후서 3장 6절에 가보면은 문자는 죽이고 오직 영은 살리느니라 이렇게 말을 해요. 문자는 죽인다는 말이 뭐냐 하면은 그렇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다고 해서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 대라고 한다고 해서 어금니 아빠가 아내에게 몹쓸 짓을 하는데 그래도 사랑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죽인다는 거에요, 문자 주의라는 거에요.
영은 살린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그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그 성경을 기록해 하셨던 성령의 의도를 알아야 된다 이런 말이에요. 부모가 자식을 향하여 말 안 듣는다고 나가 죽으라고 이야기할 때에 나가 죽으면은 문자 주의에요. 부모가 너 그러면은 나가 죽어 이럴 때에는 참 내가 얼마나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면 그럴까? 내가 이제는 좀 달리 생각해야지, 살리는 일이에요, 그게 영은 살린다는 말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성경 해석을 지난 번에도 이야기 했지만은 많은 신학적 훈련 목회적인 연륜이 있어야 제대로 성경을 해석하는데, 그저 몇 마디 아는 것 가지고 성경 몇 번 읽은 것 가지고 이야기를 해 버리니까 머리 아프다 이 말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도 보면은 예수님이 안식일 날 밀밭 사이고 걸어 가는데 제자들이 안식일 날 밀이삭을 따먹었어요. 그것을 보고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안식일을 어겼다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도모했든 거에요. 또 12장에 보면은 회당에 손 마른 자가 있는데 예수님이 그 병 손 마른 자를 고쳐 주니까 안식일 어겼다고 유대교 종교적인 율법에 어긋난 짓을 했다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든 유대교에요. 그들은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 거룩히 지키라는 것을 문자적으로 기계적으로 적용을 했든 사람들이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지만은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했든 영은 뭔가 성령의 의도는 뭔가 이것 아셔야 되요.
이런 것을 모르고 유대교는 롯데 Tower 가 118층인데 주일날 버튼을 누르는 것을 일이라고 해 가지고, 버튼 누르면 안 된다고 하는 이런 신앙 생활 사회를 마비 시키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에요. 여러분 살다 보면은 젖 먹는 아이에게 우유를 준비 못했을 때에 안식일 날 사지 마라고 한다고 해서 마트에 가서 분유를 사지 않는 것, 아이를 죽이는 거에요. 그게 문자 주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왜 그런 일을 했고, 마태가 왜 그 예수님의 수많은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 바다를 먹물 삼아서 기록해도 다 기록할 수 없는 예수님의 여러 말씀과 사역 중에 딱 기록을 했는가, 그런 것이 신학적 훈련 속에서의 해석이에요.
3. 깨어진 안식을 회복하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이런 말이다. 자기가 모든 진리의 잣대가 아니다 하나님이시다. 내가 했지만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그것을 고백하는 날이 주일 성수다.
그런 것을 알지 못하면은 예수님은 손 마른 자를 고쳐 주듯이 오늘도 예수 믿는 것을 병 고치는 것이 예수님의 구원 사역인 줄 안다고요. 그 말씀의 의도는 하나님의 안식이 깨어졌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왜 이 세상이 이렇게 어렵고 힘들고 교회가 존재해야 되는가 하면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안식이 깨어졌기 때문이에요. 이 깨어진 안식을 회복하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이런 말이에요. 어떻게 회복했는가? 유대교는 죽은 종교는 안식일 날 밀이삭을 따먹고 배고픈 것을 해결하면은 안식일 어기는 거라는데, 그런 게 아니라는 거에요. 일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의미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을 이르게 한 것은 뭐냐, 여러분들 왜 안식이 깨어지는가 하면 인간이 피조물이에요.
자기의 삶의 주인이 자기가 아니에요. 자기가 모든 진리의 잣대가 아니에요 하나님이에요.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소득을 얻고, 여러분들이 또 다음 주일도 이야기 하겠지만 자영업을 하든지, 아니면 직장을 다니든지 아니면은 전문적인 일을 하든지 그 모든 일들의 이면에는 하나님이 하게하신 거에요. 이 부분은 다음주 더 자세히 말씀 드릴게요, 그래서 내가 열심히 일을 해서 내가 그 일의 대가로 얻은 소득을 가지고 먹고 사는 거에요. 그게 인생의 삶이에요. 그래서 창세기에 보면은 범죄한 인간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리라 하면서 일을 한 거에요. 그래서 일이라는 것은 타락한 인간이 주체가 되어서 경제적인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려고 하는 거에요.
하나님이 없으면은 그 일을 절대시하는 거에요. 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지키는가 안 지키는가는 주일 날 일하는가, 주일 날 예배에 오는가, 이런 부분을 가지고 판단을 해 버리면은 기독교는 종교가 되는 거에요. 무얼 가지고 하는가, 이 사람이 일을 하는데,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는 거에요, 그 일을 절대시하는 거에요. 그것을 절대시하면은 하나님이 없으면은 사람은요, 죽도록 일하다가 죽는 거에요. 그 일을 해서 얻은 소득 돈을 절대시하는 거에요. 그래서 돈을 못쓰고 발발 그려요. 돈을 많이 모으는 것이 지혜롭고 잘 사는 거라 생각해요.
이런 것이 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삶 속에서 나타나는 깨어진 안식의 상태라고요. 이런 것을 못보고 그냥 주일 날 일 안 하는 것이 주일 성수라 생각한다고. 그러면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께서 나다 하나님이다,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내가 열심히 일을 하는데, 우리 타락한 인간은 일을 해서 먹고 살수밖에 없는데 내가 했지만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거에요. 그것을 고백하는 날이 주일 성수에요. 일이 쉰다는 것은 일을 그저 그만둔다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일을 하지만은 이 일에 주체는 하나님이다 라는 고백을 하는 거에요. 이런 사람들은 일을 절대시 안 해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런 것은 또 듣고 또 듣게 해야 되요. 그래도 자기 생각 안 끊는데 뭐.
4. 성경은 전도서에도 네 수고의 분복을 누릴 줄 알아라. 하나님께서 주신 불량 이상을 생각하지 말라. 그게 안식일 법이다. 하나님의 사랑, 내 머리털까지 세심바 되시는 하나님을 내가 몰랐더라면은 오늘도 죽도록 일하다가 죽을 것이다.
저는요 여러분들에게 안식일 성수는 뭐냐, 일하기 위해서 쉬는 게 아니에요.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행한가, 일하기 위해서 쉬는 거에요. 휴가도 일하는데 에너지 얻으려고 휴가 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휴가가 휴가가 아니라 더 스트레스에요.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은 쉬기 위해서 누리기 위해서 일하라는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이제는 삶의 가치관이 달라져야 되요. 내가 왜 일을 하는데, 누리려고요, 내가 왜 돈 버는데, 누리려고요 수고의 분복을, 그래서 성경은 전도서에도 말한다고, 네 수고의 분복을 누릴 줄 알아라. 하나님께서 주신 불량 이상을 생각하지 말라. 그게 안식일 법이에요. 주일날 문 닫고 교회 나와서 예배당에 와 가지고, 하나님 내가 예배 드리고 하나님에게 잘 보였으니까 하나님 나에게 복 주십시오. 이것은 일을 절대시하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가 수고한 것 써도 못하고 모아 놓고 죽는다고 인생이. 이번 주에도 제가 좀 드라이브도 하고 답답해서 갔는데, 어떤 한 분이 아는 사람이 그래요, 아 제주도 그 땅 내가 사라 할 때에 그때에 땅 사 놨으면은 참 끝날 건데 이러더라고. 저도 부산 광안리 호메르스호텔 남양음양자리 14만원에 샀어요 평당. 지금 1억이 넘어요. 다 팔았는데 있는 줄 알고 눈이 둥그래지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 사람보고 그랬어요. 그것 가지고 있어 봐야 당신이 좋은 게 아니고 얘들이 좋네요, 자기는 그것 가지고 있어도 못써요, 아버지 돌아가시면 얘들 팔아 가지고 마음껏 쓰는데 그것 얘들 쓴다고 해서 얘들이 행복한가, 얘들 인생 망칠 수도 있어요. 생각을 달리 해야 되요.
또 조금 있다가 말씀 드리겠지만 여러분 돈은 왜 버는가 쓰기 위해서 벌어요. 모으기 위해서 버는 게 아니에요. 그게 안식일의 법 하나님의 나라 라는 개념 속에 다 있어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런 것을 모르고 이 문자에 뭐 잘 믿은 가정에 예수 안 믿는 남편이 갈라서려거든 이혼해라, 라는 말 정도로 생각해 버리니까, 문자 주의지 기계적인 적용이지요. 우리 교회 다니면서 여러분들이 이런 말씀을 다니면서 주일날 탁 일어날 때 아 내가 참 예수님을 통해서 계시되는 그 하나님의 사랑, 내 머리털까지 세심바 되시는 하나님을 내가 몰랐더라면은 오늘도 죽도록 일하다가 죽을 것인데,
그 하나님 몰랐다면 맨날 그 땅 안 산 것 후회하며 살 것인데, 그 하나님을 몰랐다면 맨날 통장에 액수만 바라보면서 혼자 즐거워하며 살 텐데, 그 하나님 때문에 내가 쉴 수 있구나, 오늘도 그 하나님의 품에 가서 내가 쉬어야지 한 주간 고생한 나에게 보너스 주어야지, 이러고 주일 맞이하고 교회에 와 보세요, 이 자리가 얼마나 행복한 자리인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준비 찬양 하는데 참여 해 보세요, 한 주간의 삶이 고통의 삶이 아니라, 행복이 되는 거에요. 여러분 카이로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알아요.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절대적인 빈곤 일대에는 저축하는 것이 미덕이에요. 3만불 소득 되면은 소비가 미덕이에요.
5. 헌금이 아깝지 않는 교회되게 하는 그런 모습을 통해서 세상의 빛이 되는 것, 하나님께 한만큼 부모, 형제에게도, 친구,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어 썰 줄도 알고, 이게 안식일 법에 있는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의 배경 속에서 한 말이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법을 주신 영이 살리는 일이다.
그것을 가지고 지금도 저축 왕 상을 주고 있으니까, 역사적인 통찰력이 있는 목사 눈에는 한심한 거에요. 미국 가서 제대로 배워 와야지요, 미국에서 버린 쓰레기를 가지고 와 가지고 머리 담아 와 가지고 이 나라의 뭐 장관 되고 머 되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에요. 제가 미국에 동부 여행을 하는데 장로님 가정에서 잤어요, 그 장로님이 방이 12개더라고, 가족은 별로 없는데, 마트를 해요, 하루에 뭐 만불 정도 오르는가 그렇데요, 그래서 내가 장로님 이렇게 큰 집이 뭐 필요해요 이러니까 하시는 말씀이 그러더라고, 미국은요 내가 많이 벌어서 안 써 버리면은 세금 다 내버리는 거에요. 쓰게 만든다는 거에요.
그러면 나중에는 어떻게 되는데 이러니까, 미국은 세금 많이 내면은 나중에 연금도 많고, 큰 집도 준데요, 이런 것 배워 와야 되요. 그래서 이 나라가 세금을 많이 내는 세금을 아깝지 않는, 세금 내는 것이 아깝지 않고, 나에게 결국 돌아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나라를 만들려 해야 되요, 그게 안식일 법이에요. 그게 천교도 정신 교회에서 나간 거에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헌금을 억지로 하게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헌금이 아깝지 않는 교회되게 해야 되요. 그런 모습을 통해서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 교회의 존재의 이유이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법을 주신 영이 살리는 일들이라 이 말입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고 일하는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해서 10의 1은 하나님께 드리고, 10의 1은 부모와 형제들 나누고 함께 쓰고, 10의 1은 친구들과 어려운 사람들 누나고, 나누어도 내가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는 그런 삶을 위해서 얘들 키워야 되고, 공부 시키고 열심히 일해야 되요. 그런데 교회에 헌금만 많이 하기 위해서 사업을 해 왜 하나님이 복 더 준다고, 그건 죽은 종교에요. 그러니까 예수 안 믿는 남편이 뭐라는 가 하면은 그런 이야기 하는 거에요. 너는 하나님만 보이지 부모는 안 보이느냐고, 잘못된 종교인 목사가 가르친 거에요. 그게 고르반에이요 유대교에.
한국의 기독교가 그런 종교가 얼마나 많아요. 하나님께 한만큼 부모에게도 할 줄 알고, 형제에게도 할 줄 알고, 친구들과 나누어 썰 줄도 알고,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어 썰 줄도 알고, 이게 안식일 법에 있는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의 배경 속에서 한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는 저축상 주면 안 되요, 소비상 주어야 되요. 지금 아이들 키우면서 설날 용돈 주어 가지고 저금통 땡그랑 넣으면은 이놈아 그러면 안 돼, 그 돈 가지고 얼마는 저축을 하고 얼마는 너를 위해서 쓰고, 얼마는 엄마와 형제를 위해서 쓰고, 얼마는 친구하고 쓸까, 계획을 세워 소비의 계획을, 이것을 가르쳐 주어야 되요.
6.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원리로 이루셨지만 실제는 재림 이후에 있는 것이다. 그 원리를 어떻게 우리가 적용하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양성이다, 획일성은 사탄의 나라다.
그저 하나님께 바치면 복 받는다고 해 버리니까 돈과 일을 더 절대시하는 기독교인이 아니냐 말입니다. 오늘 여기에 여러분 문자 주의가 아니에요, 문자는 죽이고 영은 살린다는 말은 성령은 살아난다 뭐 이런 소리 하지 마세요. 그 문자를 기록해 한 하나님의 의도 성령의 의도를 알 때에 그 규정이 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에게 생명을 더하는 것이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서 그 뒤에 보면은,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요 말씀도 여러분 잘 아셔야 되는데, 너희를 화평 중에서가 아니라 너희를 화평 속으로 부르셨느니라 이 말인데요, 배경을 이야기하면 자꾸 길어 지니까 제가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이것은 해석이 두 가지에요.
신학자들에게 팽팽하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화평 속으로 불렀다는 말은 예수를 안 믿는 남편이 예수를 믿는 아내에게 주일날 예배 가고, 그 다음에 헌금하고, 교회 일한다고 해서 집안에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계속 분란이 일어나, 그럴 때에 결혼의 원칙은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하거든요, 이 결혼의 원칙을 깨트려서라도 화평을 누리라, 이런 의미다, 문법적으로 그런 의미가 되어져요. 그래서 이혼하려거든 이혼을 해라 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또 하나의 해석은 12절에 있는 말씀과 이 말씀을 연관해서 하면은 예수 안 믿는 남편이 계속 살기를 원하거든 계속 살아라, 이런 말이거든요.
그러면 이 말은 뭐냐 하면은 예수를 안 믿는 남편이 그렇게 핍박을 해도 그런 불신자와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어야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너하고 너에게 원수 된 자도 평화를 할 수 있어야 돼 이런 말이고요, 또 앞의 그 말은 그런 사람들하고 평화를 감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거야, 차라리 평화를 위해서 모른 척하고 헤어져, 이 두 개가 어느 것이 진리냐고 신학자들은 지금도 싸우고 있어요. 그러나 목회자는요 여러분 이 말씀이 뭐냐 하면은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두 가지 해석을 가능케 한 거에요. 하나님 그것 모르겠어요, 몰라서 애매하게 말씀하셨겠어요?
여러분 이게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원리주의자가 되지 않는 거에요. 어금니 아빠 같은 남편 보세요, 이런 사람하고 또 평화하고 살아야 되느냐, 자기가 어금니 아빠하고 안 산다고 해서 성경 말씀 원수 사랑하라고 했지 않느냐고 같다 붙이지 말라 이런 말이에요. 또 교회에 맨날 헌금하고 교회 와서 봉사하고 이런다고 해서 불신 남편이 당신은 예수밖에 모르고 뭐 목사님하고 뭐하냐 이런 소리할 때에 그런 사람 남편하고도 함께 살면서 평화롭게 할 줄 알아야 된다. 상황에 따라서 다른 거에요. 성경은 원리가 아니에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원리로 이루셨지만 실제는 재림 이후에 있는 거에요. 그 원리를 어떻게 우리가 적용하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른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작년에 제가 중직 자 세미나 할 때 했잖아요, 하나님의 나라는 다양성이다, 획일성은 사탄의 나라요, 좋은 교회, 안 좋은 교회를 여러분들이 보면서 우리 교회는 목사님이 한번 결심하면은 다 따라가, 그게 교회입니까 군대지, 그게 목사입니까 CEO 지요, 군대는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순간 빳다에요, 요즘 그런 것도 … CEO 의 말에 불복종하는 순간 불이익을 당해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은 불이익을 당한다고 하면은 하나님은 CEO 가 되고, 군대 상관이 되는 겁니다. 부모는 이 자식은 이래서 있어야 되고, 저 자식은 저래서 있어야 되요, 지난주에 이야기 했지요, 가인은 갑에 있을 때만 측은지심을 가져요. 부모는 그런 게 아니에요.
7. 교회 진리 논쟁은 하나님께 맡겨 놓고, 목회적인 Mind, 부모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신앙 이다. 교회가 그래야 세상이 변할 수 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CEO 의 마음으로 목회 안 해요. 군대 상관의 마음으로 목회 안 해요. 열심히 헌신하는 사람도 귀하고, 그저 자리만 지키는 사람도 귀하고, 제가 이야기 하잖아요 우리 교회 앉아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여러분들도 목사를 부모의 마음으로 봐야 되요. 이게 피차에요. 이 말씀 속에 이런 거대함이 있다는 거에요, 있는 거에요. 화평 속으로 왜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이혼을 해서라도 화평을 누리라고 이야기하든지, 아니면은 그런 사람과도 화평을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안 하고,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해석이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싸움 박질 하게하는가, 그건 신학자들같이 진리 논쟁은 신학자들에게 맡겨 놓으세요.
교회 진리 논쟁은 하나님께 맡겨 놓으세요. 목회적인 Mind, 부모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신앙 이에요. 교회가 그래야 되요. 그래야 세상이 변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도 지금 여러분 참 어제도 뭐 보니까 잠이 안 와서 TV 잠깐 보니까 그런 게 나오더라고, 오늘도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설교도 준비하고, 이러다가 켜 보니까 인혁당 사건 가지고 나오더라고, 박정희가 죄 없는 사람을 얼마나 죽였는가 이러는 것, 그 사건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살인마라고 그러고, 어떤 사람은 박정희가 오늘 우리 이런 번영을 이루었다고 하고, 그 논쟁 지금 옳고 그러고 하면 뭐해요, 하나님이 그때는 그런 것을 통해서도 우리나라의 번영을 이루셨구나, 이제 번영된 우리는 그 때와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잘 살 수 있도록 해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야지요.
오늘 잘 살게 되었다고 박정희가 그렇게 열심히 한 것을 부정해서도 안 되고, 또 그것을 하기 위해서 일어난 부작용을 가지고 나쁘다 해서도 안 되고, 그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요, 그럼 그때는 그랬는데 오늘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서로 다 잘 살려고 최저 임금 올려 줘야지요, 최저 임금 올려 줄 때에도 제가 이야기 하잖아요, 왜 자영 업자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리느냐고, 써빙을 받은 소비자가 그 대가를 지불해야지요. 그게 성경이에요 오늘은. 그러면 여러분 최저 임금 만원 되도 거기에서 부과세 포함하듯이 써빙료 부과하면은요 편의점 알바 해도 살기가 걱정이 없는 나라가 된다고, 누가 그럴 수 있는가, 부모의 마음과 다양성이지요.
화평 속으로 를 하나님은 이혼을 해서라도 화평을 하라든지, 아니면 그런 자들과도 화평 하라든지, 진리 논쟁에서 그것을 판가름 나지 않게 하는 것은 이런 경우도 있고, 저런 경우도 있단다. 너는 어금니 같은 남편을 두지 안 했다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로, 같다 부치면 안 돼 이런 말이에요. 어릴수록 한가지 생각만 해요. 지난 주일도 설교를 마치니까 우리 교회 어떤 분이 목사님 나보고 한 말씀 같습니다. 이번 명절에 제가 언니를 가인의 마음으로 봤습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안 봤습니다 이러더라고, 제가 대답을 안 했어요, 왜냐하면은 지금 상황에는 그 깨달음이지만은 그게 또 족쇄가 되어 가지고, 언니는 계속 갑 질하고 이러는데, 나는 맨날 부모의 마음으로 그러면 사람 죽이는 거지요 그것은, 이해 되세요?
8. 하나님의 말씀 그 깨달음은 그 때에 그 상황에서 받아 드리세요. 이것을 원리로 모든 것에 적용하면은 그 말씀이 또 나를 죽인다고, 지금 다양성이 그런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율성이다, 타율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로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그 깨달음은 고 때에 고 상황에서 받아 드리세요. 이것을 가지고 원리를 해 가지고 모든 것에 적용해 버리면은 그 말씀이 또 나를 죽인다고, 지금 다양성이 그런 말이에요. 우리나라가 왜 힘든가? 다양성을 인정 안 해요. 그리고 그 뒤에 보면은 아내 된 자여 내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이 말이 뭐냐 하면은 참고 살다 보면 남편도 언젠가는 너 때문에 예수 믿게 되고, 아내도 예수 믿게 돼, 이런 말이 아니에요. 억지로라도 데리고 와서 교회에 앉혀 놔 놓으면은 성령께서 그를 예수 믿게 할거야, 구레네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다가 나중에 예수님 믿지 안 했나? 종교인 부흥 사가 하는 말이에요.
성경은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헌금도 세전 11조를 내야 되느냐, 세후 11조를 내야 되느냐 이것은 죽은 종교가 하는 논쟁이에요. 여러분들의 헌금이 자원하는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하는가, 인색하고 억지로 하는가, 한 달에 1억씩 11조를 해도, 인색하고 억지로 하는 것은 헌금 하나님이 받는 거룩한 예물이 아니에요. 부모에게 공양할 것을 가지고 하나님 헌금 안 하면은 내가 어려워 질까 봐 두 눈 딱 감고 부모는 지금 굶어 죽을 지경인데 11조 하는 것은 헌금 아니에요. 지금 이 말씀 속에 선택권을 상대방에게 준 것은 뭐냐 하면은, 신앙의 하나님의 나라는 자율성이에요. 타율이 아니라니까요. CEO 는 불이익을 줘서라도 하게해요.
군대는 불이익을 줘서라도 하게해요. 부모는 언젠가는 하겠지, 기다려 줘요. 어릴 때 자식을 둔 젊은 부모들은 지금 요것 버릇 안 고치면은 큰일날 것 같아서 얘를 닦달해요. 다 키워 본 할머니는 놔 둬라 내가 키워 보니까 얘들이 크면서 열두 번도 더 변하더라. 알아서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그냥 유기하고 내팽개치는 게 아니에요.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지요. 우리나라 세금은 누가 그러데요, 무덤에 들어가야지 탈세의 문제는 해결이 된데요. 법정 시효가 없데, 그건 나라지요. 헌금을 그래 해서 되겠어요, 나라가 그래서 끝까지 세금을 추정해서 거두는 것이 좋은 나라인가? 미국에서 쓰레기만 수입해 온 자들의 생각이에요. 미국의 천교도 정신의 세워 진 하나님의 복음을 수입해 와서 그것을 보면은 그래 국민이 세금을 내면은 세금이 아깝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야지. 낸 만큼 나에게 이익이 된다는 생각에 국가 경영을 해야지, 그게 자원하고 기쁨 속에 있는 거에요.
헌금 안 하면 여러분들 사업 하나님이 진노하면 끝나 CEO 와 같지요. 내가 교회에 헌금한 것이 나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복된 거야. 이런 교회를 통해서 교인들이 헌금하는 것이 기쁨이 되게 하는 것이고, 이게 자율성이에요. 헌금 안 하면 혼난다고 하는 것은 금방 여러분들에게 사고의 셋팅만 시키면 할 수 있지만은 그것은 오래 기다려야 되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로 말하는 거에요. 저도 젊은 시절에는 아이들을 CEO 가 되어 가지고 닦달을 할 때 제 어머니가 옆에서 하시는 말씀이 놔 둬라, 너도 그랬다. 커다 보면 열두 번도 더 변한다. 열두 번도 더 변해서 죽어도 목사 안 된다 한 내가 목사 되어 있잖아 ㅎ ㅎ ㅎ 하나님의 신묘막측함을 믿어야 되요.
9. 하나님의 나라는 창조주 마음을 가지고, 성경이 기록되어 있다. 부모 눈에는 이 자식이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린다.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잘 더불어 사용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성결이 되도록.
지금 오늘 이 말씀이요 이 짧은 두절을 그저 불신 남편이 이혼하려거든 이혼 해 주어라, 같이 살려 하거든 같이 살아라. 이 정도의 피상적인 말씀, 그것을 문자적으로 기계적으로 적용을 해 버리니까 종교 원리주의 때문에 여러분들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그 말씀을 하게 되는 배경 속에 하나님의 나라는 창조주 마음을 가지고, 성경이 기록되어 있는 거야, 그래서 다 똑같지 안 해, 부모 눈에는 이 자식은 이래서 좋고, 저 자식은 저래서 좋고, 부모 눈에는 이 자식이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어요. 여러분 그런 이야기 들었지요 어릴 때에 얘들이 가서 넘어지면은 쫓아 가서 아이구 우리 새끼, 얘 죽이는 줄 모르고 그게 사랑인 줄 알아요. 서양의 부모들은 뭐라고 그래요? 네가 한번 일어나 봐. 안아 주고 얼러 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네가 스스로 일어나 봐, 그게 진짜 사랑이에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전부 내가 볼 때에는 CEO 의 사랑과 군대 지휘관의 사랑 정도로 다 만들어 놔 놓고 그게 사랑이고 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얼마나 힘이 드는 신앙 생활 하는지 모른다고요. 오늘도 여러분들, 정말 이 자유를 주시고 이 기쁨을 주신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들 속에 주님의 마음이 점점 커져 가서 내 생각대로 모든 것을 조정하려 하지 말고요, 이면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믿어서 교회 다니기 때문에 이제는 쉬기 위해서 일하기 때문에 일이 힘들지 않고, 돈 벌기 위해서 일하기 위해서 쉼으로 말미암아 휴가가 휴가 되지 않는 그런 어리석은 삶, 하나님의 안식이 깨어진 율법주의 삶을 살지 말고요, 많이 모으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분복을 잘 더불어 사용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성결 대한민국은 소비를 하고 나면은 보장이 안 되는 이 나라가 이런 설교 때문에 점점 경제 성장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고, 국민들이 소비의 미덕으로 살아도 노후를 걱정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가려고 하는 사명감을 가질 수 있고, 그 쎔풀이 교회가 되어야 되요. 헌금이 아깝지 않는 교회가 되어야 되요, 왜 안 되는가, 우리 교회 아직 어린 사람이 너무 많아요. 몫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 안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 볼 때마다 기다려요. 내 다음 대의 목사 때는 하겠지, 탓하지도 말고요,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아멘
◈봉헌 기도◈
탈세는 무덤에 들어가야 끝난다고 합니다. 교회의 헌금을 그러한 강요로 헌금하게 하는 종교가 되지 아니하고, 나라의 경영이 잘 되어서 세금을 하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안식일의 계명이요, 주님의 마음이듯이 헌금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교회의 경영이 오늘 중직 자 세미나에서 이 고민이 있는 세미나가 되게 하시고, 미국의 쓰레기를 수입해 온 이 나라가 미국의 참된 복음의 가치가 뭔지를 교회가 보여 줄 수 있도록 이 나라에 목사님들이 복음 위에 서게 하시고, 진리의 논쟁이 아니라, 이 시대의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성결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잘 적용해서 깨어진 안식에 허덕이는 주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회복된 안식을 누리는 신앙 생활이 되도록 이 헌금의 제도와 헌금의 정신이 살아 움직이는 교회 되게 하심을 감사 드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세상을 마음에 다 채워도 채울 수 없는 큰 마음의 공간에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서 참된 만족을 누리도록 십자가에서 우리를 존재하게 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계시 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창조자이기에 억지로 인색하게 신앙 생활 하지 않고,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신앙 생활하도록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오늘도 참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그리스도가 이루신 그 하나님의 나라가 재림의 실제 될 것을 믿으면서 이 세상에서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성결한 마음으로 가치판단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도록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 드리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세상에 나가서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때 다양한 경우 스스로 모든 일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오늘도 아버지의 눈으로 창조주의 눈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하며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성결의 마음으로 가치판단하며 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깨어진 안식의 세상의 회복된 안식이 무엇인가, Sample 로 삼기 위하여 선물로 주신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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