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복음과 혁명(고린도전서 7: 17-24)주일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9. 2. 28. 23:39

 

 

 

담임목사 김종웅

 

복음과 혁명

고린도전서 7: 17-24

2019 2 24일 주일 예배

                                                                             

17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아멘

 

성경에 의해서 사람의 가치판단이 목적이 완전히 달라져야 된다. 자유인이라도 그리스도의 종이고, 노예 인이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다. 빌레몬도 오네시모도 바을 때문에 예수를 믿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무슨 일을 하는 것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분의 차등을 두지 않는다.

 

어제 토요일 날 우리 교회 중보기도 팀이 여러 가지 기도 해주고 이랬다고 감사 하다고 교역자들과 함께 점심을 이렇게 사는데 식당에 갔는데, 그 주인이 자기가 미국에 가서 교회의 모습을 참 보니까 너무나 좋아서 이제 교회 반쯤 전도 되었다고 이러더라고, 그러면서 자기 딸이 또 저 수지에 큰 교회에 다니는데 딸하고 맨날 싸운대요. 그래서 나는 너 때문에 교회 안 간다.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가 이 식당을 이렇게 쭉 해 왔는데 연세가 좀 있더라고요, 그래서 돈 이렇게 만날 돈만 벌어서 되겠느냐고 좀 쉬고 누리라고 했더니만 자기는 이제 돈 버는 것이 왜 버는가 자녀들 주려고 하는 게 아니고, 오늘날 까지 자기를 이렇게 잘 먹고 잘살게 해준 분들이 손님들이래요.

 

그래서 자기가 텔레비에 자기 식당을 나오기도 했는데, 바쁘고 돈은 많이 되었는데 자기가 그 동안에 단골들 오늘이 있기까지 하게한 분들에게 너무 미안 하드래요, 그래서 이제는 TV에서 와서 소개를 하라 해도 안 받습니다 이러더라고, 왜 내가 고마운 사람은 오늘까지 자기를 있게 한 자기 식당에 단골들인데 그 사람들에게 이제 모든 것을 돌려주고 싶다고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런 이야기 했습니다. 교회 안 나와도 되겠네요. 교회 나와도 그 생각하도록 교회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이러니까 반쯤은 자기가 이제 전도는 되었다 이러더라고,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

 

1. 속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기독교인이 되는 종교적인 변화가 아니고, 완전히 가치판단이 달라지고, 사는 목적이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행하고 살아라. 목사님은 높고, 장로님은 높고, 전부 유교다. 예수 믿고, 거듭나게 되면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도 우리 졸업 예배인데 교회 학교 성경 지식을 아는 게 아니에요. 성경에 의해서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고, 또 판단이 달라져서 그 사람의 삶이 완전히 달라져야 되요. 그런데 우리 한국에는 제가 이래 보면서 느끼는 것은 뭐냐 하면은 상투 털고 양복 입은 것하고 같은 모습이 너무나 많아요. 그저 기독교 옷만 입은 거에요. 내적인 변화는 없어요. 그러면은 어떻게 되는가,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안 해요. 또 그렇게 하면은 천국에 갈 수 없어요. 속 사람이 변해야 되요. 속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기독교인이 되는 종교적인 변화가 아니고요, 완전히 가치판단이 달라지고, 이제 사는 목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는 거에요.

 

왜 그러지 못한가, 성경 말씀을 너무나 피상적으로 보기 때문이에요. 오늘 말씀도 여러분들이 보시면은 뭐냐 하면은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행하고 살아라 이렇게 말해요. 그 말은 뭐냐 하면은 이 성경에 기록된 고린도 교회는 종교적으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안 했느냐, 이런 것이 유대교의 영향에서 큰 문제가 되어졌어요. 그래서 그런 차별과 차등을 강요하는 그들에게 네가 무 할례 시에 예수 믿게 되었나? 그러면 할례 받을 필요 없다. 이렇게 말해요. 네가 할례를 받았느냐? 무 할례 자가 되지 말라. 할례나 무 할례나 아무것도 아니다. 여러분 어쩌면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나, 세례나 이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네가 어떤 가치 판단을 하면서 사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계명을 지킬 따름이다 이런 겁니다.

 

헬라 시대에는 사회의 신분에서 자유인과 노예 그룹이 있습니다. 그래서 네가 노예로서 구원을 받았느냐, 네가 자유인이 될 수 있으면 자유인이 되데, 자유인이나 노예의 신분이나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가 사회에서 자유인이라도 그리스도의 종이고, 사회에서 노예 인이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다. 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 하셔서 여러분의 신앙의 고백대로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각자가 성령이 우리 안에 있는데 성령이 있으면 어떻게 되어지는가? 사회적인 여러 가지 인간이 만들어 낸 신분에 이런 것들이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거에요. 여러분들 속에 그런 게 있느냐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왜 믿는가? 또 예수를 믿는 것이 뭐고,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 이유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기 신분의 상승을 꾀하려고 예수 믿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요. 이것은 유교입니다. 교회에도 여러분들이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뭐 교인들이 이래 있는데, 목사님은 높고, 장로님은 높고, 전부 유교에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고, 거듭나게 되면 그런 것들 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목사는 목사의 일이 있고, 장로는 장로의 일이 있고, 집사는 잡사의 일이 있을 따름이에요. 그런데 저는 왜 한국의 교인들 보면은 여러분들에게는 정말 충격이 되어야 되요.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기의 신분의 상승을 꾀하려고 신앙 생활하는 게 아니에요.

 

2. 일에 따라서 신분의 차등을 두는 것이 유교다. 기독교가 뭐 20% 30%니 자랑하지 말고, 그래 되었으면 우리 사회가 이제는 신분의 따라 하는 일에 대한 차등이 많이 철폐 되어야 된다.

 

복음이 들어가면은 사회의 그 동안 신분에 모든 차별과 차등이 의미가 없게 되어져요. 여러분 우리 교회 다니면서 제가 하는 것을 잘 보시라고요. 목사는 가르치는 일을 하는 거에요. 장로는 뭐 하는가, 교인을 돌보는 심방의 일은 원래 장로의 일이에요. 집사들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이에요. 그러면 목사는 귀한 일이고, 뭐 장로는 귀한 이런 게 아니에요. 그저 일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에요. 그래서 제가 우리 부 교역자들이 무슨 소리 하면은 그것은 알아서 해라는 거에요. 나는 말씀을 가르치는 이 일이 내 고유의 일이고요, 이일 외에는 제가 전문가가 아니에요. 각자의 자기일, 우리는 그런 것들에 의해서 일에 따라서 신분의 차등을 두는 것이 유교에요.

 

여러분들이 제가 왜 갓 쓰고 양복 입은 것하고 같다고 하는가 하면은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좀 보세요. 언어에서부터 달라요. 그 사람들은 대통령도 Mister 고요, 역전 지게꾼도 Mister 에요. 우리는 대통령 하면은 그 다음에 님 자 붙어요. 제가 어릴 때에는 각하라 그랬어요. 벌써 신분의 차등 전부 유교적인 관습이에요. 여러분 언어에서부터, 우리는 뭐 급 존칭, 존칭, 영어에서 무슨 급 존칭 그런 게 있어요. 그냥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단어에는 그런 것 없거든요. 왜 우리가 우리나라에 살면서 어려운가 하면은 하는 일에 따라서 신분의 차등이 너무 많은 거에요. 우리가 기독교가 뭐 20% 30%니 자랑하지 말고요, 그래 되었으면 우리 사회가 이제는 신분의 따라 하는 일에 대한 차등이 많이 철폐 되어야 되요.

 

왜 그러지 못한가, 복음이 뭔지를 모르는 거에요. 예수 믿는 게 뭔지 모르는 거에요. 성령이 왜 오셨는지 모른다고. 성령 받으면 어떤 것인지 몰라서 그런 거에요. 오늘도 성경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에요, 자유인이나 종이나, 왜 우리 사회가 이렇습니까 전부, 교회가 이래 많고, 예배를 이래 많이 드리는데, 뭐 뭐 하는 일에 따라서 신분의 차등이 너무 심하잖아요. 왜 출발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상투를 자르고 이제는 우리 사람이 바뀌고 양복을 입어야 되는데, 사람은 그대로인데 양복만 입어 가지고 와서 예배 드린다고요. 그러니까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없다고요. 여러분 우리 한국에 처음에 선교사들이 들어왔을 때 오늘날 기독교는 복음 때문에 이렇게 왕성하게 된 거에요.

 

3. 전북 지방 문화제로 지금 지정이 되어 있는 교회가 금산 교회다. 태이트 선교사가 왔을 때의 이야기. 머슴을 신학교 가는데 지주가 자기 돈 들여 가지고 다 목사 만들어 가지고 자기 교회의 목사님으로 모셨다. 신분의 차등이 전혀 없는 그런 교회 지금도 금산 교회라고 김제에 있다.

 

전북 김제에 가면은 금산 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 자 형태의 교회에요. 남녀 칠세 부동 석 이라고 예전에는 교회가 기억 자 형태에요. 목사님만 남자 여자 다 볼 수 있었지, 들어오는 출입구도 달랐어요. 중간에 커튼, 그게 전북 지방 문화제로 지금 지정이 되어 있는 교회에요. 그런데 그 교회에 여러분들도 알고 있는 조세형 국회의원 삼선 지낸 분이지요 전북에서, 그분의 할아버지가 조덕삼 이에요. 그 김제 지역 그 금산 교회가 있는 데가 용화 마을이라는 곳인데, 사금이 나는 곳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왕래가 있었는데, 그 지역에 제일 부자가 조덕삼 이에요. 그 사람 땅 밟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부자였다고요.

 

태이트(Tate L. B.)선교사가 왔을 때 거기에 이 조덕삼이가 왜 이 가난한 조선에 서양의 선교사가 왔느냐, 물으니까 하나님 사랑 때문에 왔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집에서 교회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조덕삼씨가 마흔에 예수를 믿었어요. 그런데 그 집에 머슴이 하나 있었어요, 이자익 이라고, 경남 남해 사람이에요. 6살 때 조실부모하고 먹고 살길이 없어 가지고, 옛날에 뭐 경상도는 정말 먹을 것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김제 그 넓은 평야를 따라서 그 조덕삼 집에 와서 머슴을 살았다고 마부 노릇 하면서, 열살 어렸어요, 두 사람이 같이 교회에 다녔어요, 서른 살 지금은 나이가 더 높아졌지만 옛날에는 서른 살 되면 장로 투표를 해요, 자격이 주어져요.

 

지주하고 머슴하고 교회에서 투표를 했는데 이자익이가 장로가 된 거에요. 여러분들이면 어떻게 하겠어요? 조덕삼씨가 나와 가지고 우리 교회가 참 좋은 교회 입니다. 신분을 따라서 여러분들이 투표하지 않고, 내가 봐도 교회에서는 내가 이자익이 만큼 열심히 하지도 못했고, 본이 못되었다고, 정말 훌륭한 분을 뽑은 우리 교회가 자랑스럽다고, 그래 가지고 머슴이 장로가 되었어요. 지주는 옛날에는 영수라는 게 있었어요 영수에요. 태이트 선교사가 자리를 비우면은 머슴이 설교를 하는 거에요. 지주인 조덕삼이는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렸대요. 교회에는 자기보다 열살 어리고, 머슴인 그 이자익을 깍듯이 장로님이라고 공경을 하고, 또 집에 가면은 또 머슴은 머슴의 자리로 가고, 사회적인 신분이 전혀 개의치를 안 했든 거에요.

 

그래 가지고 이 이자익이 아주 뛰어난 우리 기독교의 정말 훌륭한 목사님이요. 신학교 가는데 자기 돈 들여 가지고 다 목사 만들어 가지고 자기 교회의 목사님으로 모셔 가지고 평생 그 목사님을 모시고 목회를 했어요. 6.25가 났을 때에 이 좌익들이 첫 번째 타켓이 지주와 교회잖아요. 그런데 그 금산 교회가 아직도 지방 문화제가 될 수 있었든 것은 그 좌익 활동하는 사람들도 금산 교회는 우리 교회라는 거에요. 머슴을 지주를 제치고 머슴을 장로로 만들 수 있는 교회, 신분의 차등이 전혀 없는 그런 교회, 이런 교회는 있어야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그 교회가 지금도 보존되고 있는 거에요. 이게 놀라운 능력이에요. 여러분 이게 복음의 능력이에요. 왜 이런 것들이 없는가, 교회는요 사회의 이런 신분의 차등을 제도나 체제로 가지고 바꾸는 그런 혁명이 아니에요. 복음의 능력이라는 것은.

 

지금도 보면은 여러분 우리나라의 정권을 바꿀 때에 정권만 바꾸면 되는 줄 알지만 우리가 수없이 바꾸어 봤잖아요. 제 책에도 기록을 해 놓았지만, 속 사람의 변화가 없으면은 기득권층의 변화만 일어나요. 군부가 기득권층이었다가 교수가 되었다고, 재야가 되었다고, 386이 되었다고, 복음은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그러니까 교회가 뭣이 우리는 여기 줄 서고 저기 줄 서고, 여러분 교회는 기득권층을 바꾸는 게 아니에요. 장로님 백날 바꾸어 보세요 교회되는가? 달라져야 되요 사람이. 뭐 그런 하는 일에 따라서 신분이 차등이 없어져야 되요.

 

4. 오네시모가 네 집에서 돈을 훔쳐 가져 왔는데 그 돈을 내가 대신 갚아 줄게 이를 형제로 받아 드려라. 둘 다 예수를 믿고 나니까 주인과 종이라는 신분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것이 복음의 혁명이다.

 

신약성경에 보면은 빌레몬 이라고 하는 빌레몬서가 있어요 한 장 밖에 없어요, 바울이 빌레몬 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보낸 사신 개인적인 서신이에요. 이게 왜 성경인가? 제가 우리 교회에서는 강해를 한번 했지요. 빌레몬은 자유인이었어요, 그 집에 오네시모 라고 하는 종이 있었어요. 이 종은 그 당대에 가치관으로 보면 몹쓸 놈이에요. 주인의 돈을 훔쳐 가지고 도망을 간 거에요. 이것은 잡으면 처단을 당해야 되요. 그런데 빌레몬도 바울 때문에 예수를 믿고, 오네시모도 바을 때문에 예수를 믿었든 거에요. 예수를 믿고 뭐 천당 간다 이게 아니에요. 이제 믿었으면은 오네시모와 빌레몬은 화해가 일어나야 되요.

 

그래서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개인적인 편지를 써서 보낸 거에요. 오네시모가 네 집에서 돈을 훔쳐 가져 왔는데 그 돈을 내가 대신 갚아 줄게 이를 형제로 받아 드려라, 사회는 여전히 노예 제도가 존재해요. 인간이 만든 제도 가운데 가장 사악한 제도가 노예제도에요. 사람이 사람을 부리고, 사람이 사람을 소유하는 그 사회의 노예제도를 없애라, 성경은 한마디도 말하지 안 해요. 네가 종의 신분으로 있느냐, 그 신분 그대로 유지해라 이래요. 그러나 둘 다 예수를 믿고 나니까 주인과 종이라는 신분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어요. 그게 복음의 혁명이에요

 

예수를 영접하는 게 뭔가? 성령이 나를 지배하는 게 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교회는 영적인 가족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것이고, 성령은 받게 되면은 혈연을 넘어서서 가족으로 받아 드리는 것이 예수 믿는 겁니다 라고 말을 하잖아요. 여러분 가족 사이에 신분의 차등이 있습니까? 우리 한국은 왜 가족이 힘들어요? 가부장적 가족이기 때문이에요. 왜 가부장적 가족이에요? 유교가 만들어 낸 가족 제도에요. 그래서 아버지가 제일이라, 얘들과 엄마는 아무 것도 아니야, 그것도 얘들 중에 아들은 남자로 태어난 것이 특권이야, 그래서 예전에 밥상 차려도 밥하고 나면은 대부분 보리쌀 요즘 보리쌀은 맛있잖아요.

 

쌀 조금 있고 보리쌀 위에 쌀 이래 해 가지고 하면은 걷어 가지고 엄마가 아버지 밥 쌀밥 푸고, 그 다음에 훅 섞어 버리면은 그것 보고 있다가 저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요 왜냐하면 그 때 보리밥은 목에 넘어갈 때 까칠해, 고기 반찬 달걀은  아버지만 드려, 왜 돈 벌어 오니까, 하는 일에 따라 신분이요, 서양에는 그렇지 않잖아요. 기독교의 가치는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아버지가 하는 일이나 어머니가 하는 일이나, 자식이 공부하는 것이나 똑 같이 봐요. 제가 여러분들 우리 한국의 기독교 교회가 왜 힘든가? 하는 일에 따라서 가치가 틀린다고 보는 거에요.

 

5. 하나님은 세상에서 하는 것에 따라서 신분의 차등을 두지 않으신다. 금산 교회, 좌익이 우리 교회라고 보호했든 교회에요 왜 머슴이나 지주나 차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문화는 위급한 상황에서 약자인 얘들과 노인과 여자를 먼저 구한다.

 

목사님은 귀하고 장로님은 귀하고, 집사는 허드레고 아니에요. 왜 이런 변화가 없는가, 유교적 가정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내가 볼 때, 본 어개인 되지 못한 거에요. 성령이 여러분들을 정말 예수님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면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버지 되시고, 성령을 보내어서 우리가 오순절에 그 구원의 사건을 받아 드리게 되면은 하는 일에 따라서 사람의 신분을 차등하지 안 해요. 제가 이야기 하잖아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부모는 이 자식은 판사라서 귀하고, 이 자식은 역전 지게꾼 이라도 판사하고 가치를 차등 두지 안 해요.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에 무슨 일을 하는 것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분의 차등을 두지 안 해요. 종교인들이 그래 만들어 버린 거에요.

 

신분의 차등을 둔다면은 그것은 교회 아니에요. 여러분 금산 교회 보세요, 좌익이 우리 교회라고 보호했든 교회에요 왜 머슴이나 지주나 차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정말 유학 갔다 온 이런 분들 보면은 그런 생각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살면 자기도 모르게 또 젖어 들어, 회사에도 미국에서는 일할 때에는요 사장이나 위에 있는 사람에게 깎듯 하지만은 일 마치고 같이 저녁 회식할 때에는 다 Mister지 뭐 거기에 뭐 사장님 뭐 님이니 뭐 있어요, 우리가 전도를 하고, 복음화 시켜야 한다는 것은 이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되고요, 교회는 그래야 되요.

 

한국에도 제일 큰 교회 보면은 뭐 장로 하려면은 뭐 1억 내야 되고, 안수 집사 3천 만원 내고 전부 성직 매매지 뭐 그게 뭐요. 그래서 내가 1억 내고 장로 되고 나면은 그 값 하려고 굴림하고, 또 칭찬 해주고 띄워 주고. 서양인들의 의복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요, 자리를 나타내는 거에요. 파티 자리 갈 때 옷하고, 일할 때 옷하고 다른 것이지, 내가 신분에 따라서 옷이 다른 게 아니에요. 여러분 정말 예수님 믿습니까? 오늘부터 예수님이 이루신 그 가족의 눈으로 보세요, 이 세상에 일에 따라서 차등을 두는 것이 유교적 문화에요.

 

자본주의는 그 사람의 효력적 능력을 따라서 가치 평가해요. 기독교의 문화는 빠져 죽어 갈 때에 배에 있으면은 얘들과 노인과 여자를 먼저 구해요 약자를, 심각하게 생각 해봐요. 나는 눈 떴을 때 천국에 있겠는가 지옥에 있겠는가? 양복 입었다고 백인 되는 게 아닙니다. 상투 자르고 속 사람이 달라져야 되요. 그러면 참 자유가 와요. 참 내 예수 잘 믿었지.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헌금의 드리는 액수에 따라서 교인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 교회 되게 하심을 감사 합니다. 사회의 하는 일에 따라서 사람의 신분을 차등하지 않는 교회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그런 헌금 액수를 따라서 교인의 가치를 차등을 두는 한국 교회를 부끄럽게 할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우리가 진정 속 사람이 거듭나서 큰일하고, 많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더 차등과 차별이 없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것을 부러워 할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오늘 우리 한국이 하는 일에 따라서 얼마나 많은 차등이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이 힘들어 합니다. 가족에서도 돈 벌어 오는 아버지는 귀하다고 생각해서 엄마들이 다 돈 버니까 가족이 힘듭니다.

 

돈을 버는 것으로 수입이 있는 것으로 가치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다 하나님 안에서 가장 귀한 존재, 그가 무엇을 하든지, 그의 신분이 뭐든지, 70억 인구 가운데 그 사람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하나님의 눈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어져서, 금산 교회의 지주인 조덕삼이 머슴인 이자익을 장로로서 철저히 순종하고 섬기고, 집에서는 머슴이 또 주인을 잘 섬김으로 인하여 한국 교회의 표상이 되었든 그러한 복음의 초창기의 능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서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는 존귀한 자로 부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창조한 하나님께는 어떤 인간도 70억의 인간 중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귀한 자인데,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하는 일에 따라서 서로 신분의 차등을 두었을 때, 창조주 하나님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야, 라는 것을 계시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도록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불어넣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창조주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보게 하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유교적 가치관 위에 기독교의 옷을 입은 자가 아니라, 옷은 한복을 입더라도, 속 사람은 그리스도로 변화 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하는 일에 따라서 차등이 있음으로 신음하는 세상에 어떠한 신분의 차등도 없는 세상을 부끄럽게 하도록 선물로 주신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