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거룩과 성결
고린도전서 7: 12-14
2019년 2월 10일 주일 낮 예배
No. 405
12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아멘
○신앙 생활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서 천국을 경험하도록 복음을 전한다. 성경은 기록자가 어떤 의미에서 기록을 했는가? 하나님의 마음은 창조주의 마음 물리적으로 거룩하다. 가인의 후손의 부조리한 세상도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칠 때에는 덮어 버린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이유는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땅에서 경험하기 위해서 입니다. 또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 하늘의 평안을 누리면서 신앙 생활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전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기독교 세력의 확장을 위해서가 아니고요, 이 세상도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더 이루어져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천국을 경험하며 살도록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생명을 교회가 왜 잃어버렸는가,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고, 또 예배는 우리 한국에 있는 교인들만큼 열심히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세상에 별로 없는데, 제가 볼 때는 많은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인생의 짐이 우리나라가 참 무겁잖아요.
1. 신학자들의 글들을 분별할 수 있는 그런 분별력을 10년 정도 해서 가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선포 되어지면은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도 누릴 수 있고, 또 교회는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경험하기도 하고, 불의한 세상을 이 교회가 구원해 나가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간다.
정말 내 노후가 어떻게 될까? 자녀를 어떻게 기를까? 이런 인생의 짐이 참 무거운데, 교회에 다니면은 종교적인 짐까지 짊어져서 허덕이는 모습이 너무나 많아요. 그런데 왜 신앙 생활하는가, 이래 보면은 신앙 생활 안 하면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까 봐 두려워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에게 잘 보여서 복 좀 받으려고, 또 아니면은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이런 짐을 감당해야 된다 하는 생각으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성경을 잘못 이해해서입니다. 성경을 잘못 이해한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성경에 기록 되어져 있는 여러 단어들의 개념을 성경의 기록자가 어떤 의도에서 어떤 의미에서 기록을 했는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세상에 내가 가지고 있는 세상의 개념으로 그 단어를 이해 해 버리기 때문에 그런 생명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설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설교를 하기 위해서 목사가 되는 과정은,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는 과정만큼 굉장히 힘이 들고 오랜 수련이 필요합니다. 대학 4년을 졸업을 하고, 또 신학 대학원에 가서 3년을 해야 되고, 그리고 난 뒤에 설교의 자격을 부여하는 강도사 자격 시험을 치릅니다. 마치 의사들이 의대를 졸업을 하고 난 뒤에, 의사 고시를 치르는 거와 같은 그런 과정을 거칩니다. 정상적으로 강도사 고시를 치르려면은 정말 저도 한 한달 동안 밤을 세워서 기도원에서 해서 공부를 했듯이 다 공부를 해야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도 1년 동안 설교를 어떻게 하는가 목회를 어떻게 하는가, 훈련을 받아서 1년 뒤에 이 사람은 목사로서의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또 목사의 고시를 치르고 안수를 받습니다.
왜 이러한 긴 과정이 필요하냐 하면은 성경이 우리가 한글로 읽는 이런 본문이 다가 아니고, 정말 이 성경의 내용이 정확하게 알려면은 그런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저도 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목회자이기 때문에 그런 많은 것들을 알지 못하지만 그런 신학자들의 도움을 받고, 신학자들의 글들을 분별할 수 있는 그런 분별력을 10년 정도 해서 가지게 되는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경을 알려면은 먼저 구약을 알려면은 고어인 수메르어나 아랍어 정도도 알아야 되고요, 히브리어는 기본이고, 또 그리고 신약을 하려면은 헬라어 지금 사어가 되어 있지만 코인의 헬라어도 알아야 되고, 그리고 이 성경을 해석해 가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동안 라틴어로 모든 것들이 되어져 있어요.
그래서 제대로 된 신학자가 되려면은 라틴어도 공부해서 자기 모국어같이 할 줄 알아야 되요. 그리고 독어도 해야 되고, 영어는 기본이고,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언어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훌륭한 신학자가 나오지 못하는 거에요. 그래 목회 동안 10년 동안 목사님 그런 공부 다 하셨습니까? 아니에요, 10년 동안 공부를 하고 난 뒤에는 그런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들이 올바른가 바르지 않은가, 하는 정도의 분별력을 가지는 겁니다. 이런 분별력을 가져서 성경을 가지고 올바로 해석을 할 때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선포 되어지면은 여러분들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도 누릴 수가 있고, 또 교회는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경험하기도 하고, 불의한 세상을 이 교회가 구원해 나가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는데, 요즘은 목사 되는 과정이 속성 과정이 너무 많아요.
2. 너 때문에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거룩해 지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 오늘 나타난 본문 속의 말이다. 예수를 믿는 아내나 남편을 거룩하게 하려면은, 자기의 생각이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된다.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대한 올바른 분별력이 없는 것 같아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본문을 읽어 보면은 한글로 읽으면 너무나 간단해요. 믿지 않는 남편이 믿는 아내와 살 때에 믿지 않는 남편이 함께 살려고 하면은 살아라, 그렇지 아니하면은 이혼해도 좋다 이런 의미로 받아 드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와 믿는 아내와 남편이 같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너 때문에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거룩해 지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 오늘 나타난 본문 속의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말을 이런 신학적인 깊이가 없이 피상적으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이래 이야기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제대로 잘 삶으로 말미암아 안 믿는 남편이나 안 믿는 아내가 너 때문에 예수 믿고 교회 나오도록 해라. 그래서 옛날에는 네가 고집을 세우고 이래 살았는데 예수 믿고 난 뒤에 네 삶이 달라져야 된다. 이래서 기독교인 만드는 본분인 줄 알아요. 왜 이런 일들이 있는가 하면은 여기에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믿는 남편이나 아내 때문에 거룩해 진다 라고 이야기 하는 이 거룩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오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에 특히 이런 오해가 많아요. 거룩을 신령한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예배당 천장 고가 높고, 파이프 오르간으로 쾅 하면은 아주 신령한 느낌을 드는 것을 거룩 이라고 생각을 해요.
또 목사님은 큰 소리쳐서도 안 되고, 화를 내서도 안 되고, 뛰어 다녀서도 안 되고, 마치 화장실도 안 가는 신성과 같이 눈은 반쯤 감고, 어 하고 사는 것이 거룩 인줄 알아요. 이런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 만들어 낸 신령한 생각들이에요. 그런데 여기 이 거룩 이라는 것은 레위기에 보면은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제물이 거룩한 것이 되어져야 된다고 하고, 제물은 거룩한 것이고, 하나님을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할 때에,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 자체를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거룩해 진다는 것은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 교회에 다닌다든지 예수를 믿는 다든지 이런 외형적인 종교의 변화가 아니고,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예수를 믿는 아내나 남편을 거룩하게 하려면은, 자기의 생각이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같은 생각이 뭔가? 이런 것을 아셔야 되겠지요. 바로 고린도 교회에는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상의 영성이 기독교의 영성을 오염시켰기 때문에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거에요. 왜 예수를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예수를 믿는 남편이나 아내와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면은 갈라서도 된다, 함께 살려면 함께 살아라. 라고 말을 하는가 하면은요, 지금도 여러분들이 동일한 생각이 있는 거에요, 잘못된 생각들.
3. 인간을 존재하게 한 창조주의 마음이다. 이것은 피조물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거룩한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재하였기 때문에 어떤 인간에게도 보이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룩하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가 지금 미투 운동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를 전체로 덮었다가 지금 거치어 지고 있는데, 왜 미투를 하는 여자들이 용기를 내야 되는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혼자 숨기고 살아야 되는가, 잘못된 사회적 통념 때문에요. 특히 우리 사회는 유교가 만들어 낸 잘못된 거룩한 것, 속된 것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에요. 이런 것들이 다 성경에 있는 거룩한 생각으로 바뀌어져야 되요. 다른 말로 한다면은 미투 하는데 용기를 내야 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여자가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은 몸이 더러워졌다라는 생각을 가지지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들어내기를 부끄러워해요.
그것은 여러분 오늘도 여기 성경에 보면은 왜 갈라서라고 하는가 함께 원하면 살라는가 하면은 교회 안에도 당시에 극단적 금욕주의 자들, 헬라사상에 의해서 잘못된 자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가 하면은 부부지간에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에요. 그런데 불신 남편과 아내가 있는데 불신 남편과 아내가 부부의 관계를 가지면은 믿는 자의 몸이 더러워진다는 생각을 했든 거에요. 그래서 그런 관계를 회피하는 거에요. 여러분 성경은 남자나 여자나 7장 앞에도 말하고 있지만 동등하게 생각해요. 여자는 성폭행 당하면 몸이 더러워졌는데, 남자는 더러워지지 안 했다. 잘못된 얼마나 우리가 잘못된 생각 편견 속에 살아가고 있어요.
오늘도 여기에 이 모든 것들은 거룩에 대한 생각이 잘못된 거에요. 거룩은 그렇게 더럽혀 지는 게 아니에요. 거룩은 종교적인 진영을 만들어 낸 물리적인 여러분 어떤 그런 화학적인 현상이 아니에요. 성경은 물리적인 거룩을 말하는 거에요. 이 말이 뭐냐?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의 부부를 예수 믿게 만든다든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안 다니는 사람들을 예수 믿게 만드는 것은 교회 다니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냐 하면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자주 이야기 하지요, 창조주의 마음이에요. 인간을 존재하게 한 창조주의 마음이에요. 이것은 피조물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거룩한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에게 쉽게 이야기하면은 예를 들어서 이야기하면은, 물론 잘못된 부모 밑에서 학대 받고 살은 사람 말고요, 제대로 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의 개념으로 이해를 해야 되요. 여러분들 부모는 여러분들을 존재하게 했지요. 그래서 어떤 형제들과는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이 부모에요. 이것 아셔야 되요. 하나님은 우리를 존재하였기 때문에 어떤 인간에게도 보이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룩하다는 거에요. 거룩은 하나님께 속한 자, 하나님께 바쳐 진 자라는 말인데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말은 이제는 형제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마음을 가지고 그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는 거에요.
4. 아담에게 그가 자식을 낳았다, 그 자식이 가인과 아벨이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라 칭함을 받았다. 거룩한 자는 내 아닌 다른 사람이 좋은 일이 있을 때, 자기 일과 같이 기뻐해 주는 사람,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고 거룩이다.
우리 사회가 왜 여러분들 이렇게 힘이 들고 어렵고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여러분들이 예수 믿어도 하늘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가 하면은, 이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성경에요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시면 창세기에 죄가 들어왔어요, 아담에게 그리고 그가 자식을 낳았어요. 그 자식이 가인과 아벨 이에요. 가인과 아벨에서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는 것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거룩한 자의 삶은, 거룩한 예배는, 하나님께 속한 예배는 아벨의 예배라는 거에요. 우리의 믿음의 선지는 아벨 이라는 거에요. 히브리서에서 뭐라는가 하면은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라 칭함을 받았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가 죽음으로서 그 믿음을 우리에게 증거한다 라고 말을 해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은 가인은 형제 아벨에 대해서 형제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든 거에요. 아벨은 형 가인에 대해서 하나님의 마음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든 거에요. 제사가 달랐다는 거에요. 이런 것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교리적 설교를 가지고 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사였고, 아벨은 정성을 다해서 드린 제사라서 하나님이 받으셨고, 전부 자의적인 해석이에요. 히브리서 11장의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그것을 보면은 가인은 똑 같이 제사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을 열납했어요. 그러니까 분노해요. 시기와 질시해요. 상대방을 자기와 같이 생각 안하고 남으로 생각하는 거에요. 이게 우리 세상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셔야 되요.
이 거룩 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려면은 거룩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은 이것을 알게 되는 거에요. 여러분 이번 명절에도 형제들끼리 만났겠지만은 형제하고 부모의 차이가 거기에 있어요. 형제는 어렵고 힘든 형제를 보면은 마음이 안스럽고 도와 주려고 그래요. 측은지심이 있어요. 인간에게는 측은지심이 있어요 동정심. 부모는요 측은지심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어요. 저는 어려운 사람에게 대해서 측은지심을 가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이래 봐요. 목사가 힘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울어 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목사 아니라도 할 수 있어요. 진짜로 여러분들이 거룩한 자는 내 아닌 다른 사람이 좋은 일이 있을 때, 자기 일과 같이 기뻐 해주는 사람.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고 거룩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에게 받쳐 주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다른 사람의 어떤 일의 가치 판단에서나 선택에서 좋은 일이 있을 때, 내가 당한 것 같이 기뻐하는 것, 성경에 하나님이 그 하나님이에요. 여러분 여러분들 속에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정말 내가 좋은 일이 있을 때, 나보다 더 좋아하는 이는 형님이나 누나가 아니에요. 부모님만이에요. 형제 지간에는 좋아도 하면서 질시 가인의 마음이 있어요. 왜 예수님 영접해야 되는지, 왜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의 죄를 위한 십자가라고 믿어야 되는지, 그 십자가에 나를 받치는 게 뭔데요? 가인의 마음을 받치는 거에요. 가인은 아버지에게 유산을 잘 받았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시절에 농사의 유업을 받았고, 아벨은 목축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아벨을 도와 줄 수 있었어요.
5. 가인은 동생이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질시한다. 아벨은 자기가 죽어도 형이 잘 되면 좋아한다. 예전에는 형제의 마음과 남의 마음을 가지고 살든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자로 만들어야만이 세상이 구원받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동생을 질시해요. 아벨은 내가 죽어도 형이 잘 되면 좋아해요. 그래서 그는 죽음으로 자기의 믿음을 우리에게 증거한다 그래요. 여러분 목사가 거룩하냐 아니냐, 교인이 거룩하냐 아니냐, 자기에게 이익이 되고 좋을 때에 하나님 교회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내가 힘이 들고 내가 손해가 되고, 내가 어려울 때에 교회가 우선적이고, 다른 사람이 먼저고, 내가 죽더라도 그게 거룩 이에요. 우리나라가 왜 지금 힘든가? 예수를 영접하는 게 그런 거에요. 우리나라가 3만불 소득이 넘었대요. 그러면 우리나라 4인 가족이면은 연봉 1억 2천 만원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되요. 1억 2천 정도 벌어야 우리나라 중산층이 될 수 있어요. 왜 그러지 못해요? 경제 일곱 번째에요, 5천만 명 이상 되는 나라 속에.
왜 살기 힘들어요? 목사가 성경을 몰랐어요. 여러분 경제인들은 자기 회사 잘 되려고 해야 되요.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되요.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으려면은 뭔가 후려치기 해야 되요. 직원들에게 봉급 적게 주고라도 기업 살리려 해야 되요. 그건 기업인의 의무에요. 정치가는 그런 기업인들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되요. 그런데 왜 우리 사회가 이런가? 목사가요 교인들에게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게 해야 되요. 원청 업체가 하청 업체에게 하청을 하는 사람이 자기 아들이라고 생각 해봅시다. 단가 후려치기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내 아들이 나에게 하청 하는 회사의 사장이야, 내가 어렵더라도 아들 잘 되게 해야지, 그것 누가 만들어요? 목사가 만들어야지, 어떻게 목사가 만들어요? 설교 제대로 해야지요.
어떻게 설교 제대로 해요? 성경의 거룩 제대로 알아야지요. 아버지가 하청 업체야, 원청 업체가 아들이 해, 원청 업체가 휘청거려, 아버지는 어떻게 하겠어요? 스스로 단가 낮추겠지요, 이것이 세상을 구원하는 길이에요. 죽어서 천국 가는 게 아니라니까요. 예수 잘 믿어서 복 받는 게 아니라니까요, 오늘도 여러분 여기에 예수를 믿지 않는 남편이 너로 인하여 거룩해 진다는 것은 예전에는 가인의 마음을 가지고 살든 사람이 아벨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고, 예전에는 형제의 마음과 남의 마음을 가지고 살든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자로 만들어야만이 세상이 구원받는다는 말이에요. 이게 여러분 얼마나 힘든 일이에요.
예수를 아무나 믿을 수 없는 거에요. 모세를 보세요 모세,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어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차이가 뭡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좋으면은 모든 게 좋아요. 모세는 이스라엘의 공동체가 좋아야 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대를 당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내려가서 너희를 구원하리라, 출애굽기에서 말해요, 그러면서 모세를 불러서 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함께 구원 해내라. 내가 어찌 합니까?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거에요. 어떻게 함께 하는가? 홍해를 가르고, 반석을 쳐서 물 내는 능력, 그런 능력이 아니에요. 모세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게 함으로, 홍해를 가로막고 있을 때 원망할 때에 지팡이를 내밀 때에 홍해가 쫙 갈라졌어요.
6. 예수님을 따라가는 그 길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것이다. 십자가에 여러분들이 연합을 해야 되는데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받쳐 진 거룩한 자가 되어야 되는데, 가만히 있으면 가인의 마음 가져요. 어떠한 죄도 하나님의 은혜는 덮고도 남는다.
두려움에 떨던 백성들이 춤추며 홍해를 건너갔어요. 삼일 길 걸어가서 물 없으니까 애굽의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에 와서 죽이려고 하나, 먹을 것이 없으니까, 만나를 먹으면서도 고기가 먹고 싶으니까 애굽에 있을 때는 가마솥 곁에서 있었는데, 마늘과 부추를 먹었는데, 기력이 쇠하여 죽겠구나, 므리바 반석에서 왔을 때에 모세 때려 죽여라, 그럴 때 모세가 뭐라 해요? 하나님 내기 이 백성을 낳았습니까? 내가 창조자도 아닌데, 내가 이들의 부모도 아닌데, 왜 내가 부모와 같이 살아가야 합니까? 차라리 나를 대려 가소서. 이게 예수님 걸어가신 길이에요.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그 길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거에요.
어떤 사건이나 어떤 사람을 볼 때에 우리는 인간의 마음은 가인의 마음과 같아요. 나보다 못한 사람이 어려우면 측은지심 가져요. 그런데 나보다 잘되는 것은 꼴을 못 봐요. 원청 업체가 하청 업체가 자기보다 잘되는 것을 꼴을 못 봐요. 가인의 마음이에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게 뭔데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게 뭔데요? 내 죄가 뭔데? 가인의 마음을 장사 지낸 거에요. 여러분 부모는 암만 힘들어도요 힘들다 안 해요. 자식은 조금만 힘들면 힘들다 그래요. 여러분들의 삶에 불평이 있는 것은 거룩하지 못한 연고에요. 여러분들 남편이 아버지가 회사에서 양진호 같은 놈 만나서 갑 질 당하면서도 그걸 힘든 줄 모르고 일하고 와서 가족들에게 생활비 대요.
먹는 자식은 고마운 줄 몰라, 왜 우리 아버지는 못나서 양진호 같이 안 되고, 을질 당하는 자가 되느냐고, 가인의 마음이에요. 우리나라 오늘도 일부 예배 마치고 김상범 장로하고 우리 그 앉아서 식사를 하는데, 우리나라에 대해서 뭐 이야기하는데, 참 정말 요즘 프래티늄이나 뭐 산업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더라고, 그렇게 이익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법이 따라가면서 지켜야 되는데, 국회의원들이 대통령 자리 청와대만 보이니까, 그런 게 안 보이는 것 같아, 왜 부모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가 국회의원 되어야 되는데, 오늘도 여러분들 왜 이 자리에 와야 되는데요, 와서 십자가에 여러분들이 연합을 해야 되는데 왜 연합을 해야 되는데,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받쳐 진 거룩한 자가 되어야 되는데, 가만히 있으면 가인의 마음 가져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가져요. 이 사람이 나보다 잘 되면은 시기하고 질시해요. 죽어 지면은 아벨의 마음을 가지게 되요. 나보다 남 잘 되는 것을 즐거워해요. 내가 힘들더라도 나라가 잘 되는 것을 기뻐해요. 내가 좀 힘들더라도, 다른 사람이 평화롭고 좋은 것을 즐거워해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로마서는 그렇게 말해요. 죄가 더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한다. 이 말을 목사 단기 과정 거친 사람들은, 죄가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더 은혜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가지고 내가 왕년에 이래 살다가, 하나님 때문에 이래 바뀌었다 이러는 것인 줄 알아요. 간증 그게 아니에요. 어떠한 죄도 하나님의 은혜는 덮고도 남는다.
7. 자식의 어떠한 잘못과 죄도 부모의 은혜는 덮는다. 가인의 후손이 만들어 내는 어떠한 부조리한 세상도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칠 때에는 덮어 버린다. 새 계명을 너희에 주노니 그 하나님의 마음 성령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부음바 되는 것, 이게 신앙의 첫걸음으로 본다.
자식의 어떠한 잘못과 죄도 부모의 은혜는 덮어 버려요. 이 세상에 가인의 후손이 만들어 내는 어떠한 부조리한 세상도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칠 때에는 덮어 버리는 거에요. 이 하나님의 은혜의 물결이 교회로부터 세상으로 나가야 되는 거에요. 누가? 목사가 성경 해석 할 줄 알아야지요. 어느 해석이 올바른 해석인가? 알아야지요.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했어요. 저는 아버지가 목사에요, 죽어도 목사 안 된다 했어요. 왜 옆방에 당회에서 하는 소리를 듣고 컸거든요. 저게 뭐 당회야? 그런데 복음을 알았습니다, 교회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성경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은 쉼이 있는 잔치 이번에 나오는 책 있지요, 그것이에요, 그게 지식이에요. 알았는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부모의 마음을 가진 자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예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식은 알았는데, 사랑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89년도 이태원 대성교회 있을 때, 일년 동안 밤마다 삼각산에 올라갔습니다. 비닐 한 장 뒤집어쓰고, 얘들은 부산에 있고요, 내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영하 12도에도 비닐 한 장 뒤집어 쓰고 갔어요. 해답이 마태복음 9장 36절에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는(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주님이 민망히 여겼대요. 민망히 여기는 마음이 뭘까? 부모의 마음이구나, 하나님의 마음이구나, 내가 사랑하는 게 아니구나, 내가 교인에 대해서 부모가 되는 거구나.
내가 교인에 대해서 창조주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거구나. 부모는 자식이 아프면은 더 아파요. 주영이가 폐렴에 걸려 있을 때 장대상 집사와 김은정 집사는 더 아팠을 거요. 오늘 주영이 만나서 너무나 반갑더라고, 꼭 안아주면서 주용아 괜찮니 괜찮아요. 민망히 여기는 마음이 그 마음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이 그 마음이에요. 여러분들이 거룩해 지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측은지심이에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마음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라는 거에요. 가인은 자기가 갑 일 때 을인 동생을 잘 돌본 사람이라 봐요. 동생이 더 잘되니까 시기심이 폭발하고 죽였어요.
여러분 거룩해 지세요. 그래서 저는 내가 사랑하는 게 아니구나, 얻은 답이 그것이에요. 교인을 자녀와 같이 보자, 세상에 있는 사람을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자, 어떻게 나를 위하여 삽자가를 지신 그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이 나에게 부어 질 때 그래서 제가 우리 교회에 제일 처음 예배 드릴 때, 마태복음 13장 34절 새 계명을 너희에 주노니 그 하나님의 마음 성령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부음바 되는 것, 이게 신앙의 첫걸음이구나,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일하라 하지 않는 거에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보라는 거에요.
8. 인간의 탐욕을 다스릴 수 있는 제도와 법은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봐야만 된다. 미워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부모 마음을 가진 자만이 가능하다. 십자가에서 자기의 생명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물 붓듯이 부어 지는 것은, 성령이 임하는 사랑을 경험해야 된다.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가 더불어 살아가려면은 내 자식이 원청이고, 내 자식이 하청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되요. 그럴 때 우리는 3만불 소득의 풍요로움을 함께 누리는 사회가 된다고요. 경제인이 변해야 정치가가 변해야 어떻게 변해야 되는데, 거룩하게 바뀌어야 되요. 이 빨리 변하는 산업 속에서 인간의 그 탐욕을 다스릴 수 있는 제도와 법을 만들려면은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봐야만이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을 수 있지요. 부모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목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스도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에요.
“사명” 주님이 홀로 가신 그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따라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 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기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 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나는 사랑하겠소. 나를 미워하는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부모 마음을 가진 자만이 가능한 일이지요.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나를 사랑한 당신. 이 작은 나를 받아 주오. 나도 사랑하오. 누가 자식에게 내가 죽더라도 자식을 살리고 가정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습니까? 내 부모가 나에게 그러했는데 나는 그 부모에게 돌려 드릴 길 없네, 이것 알고 나니까 부모 계시지 않네 이 땅에. 이 진리를 아는 자만이 진정한 한 가정에 가장이 되고 엄마가 되는 거에요.
부모 은혜 알고 보니까 갚아 드려야 되는데 안 계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부모가 하는 말씀이 내한테 잘할 것 없다 네 새끼에게 잘해라, 그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하나님에게 잘할 것 없다 다른 사람을 제 자식과 같이 보고 사랑해라. 그래야만이 세상이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맛보는 세상을 변화될 거다. 이런 복음의 진리가 성경에 있는대도 기독교 세력의 확장을 위한 선교만을 하고 있어요. 사회의 모든 책임을 정치가와 경제인에게 돌리고 있어요. 그들에게 부모의 마음을 가지게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게 해야 하는 것이 목사의 사명이고 그리스도인의 사명인데, 오늘도 정말 여러분 이 예배 시간에 가인의 마음에서 아벨의 마음으로 형제의 마음에서 부모의 마음으로 돌아서도록 원망하고 불평하는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기의 생명을 내어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여러분들에게 물 붓듯이 부어 지는 것은 성령이 임하여서 교회를 통해서 그 사랑을 경험해야 되요.
지식 복음을 머리로 알았지만은 사랑할 수 없었어요. 마태복음 9장 36절과 로마서 5장 5절을 보면서 내가 사랑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거구나, 내 자녀를 보듯이 교인을 보는 것이구나, 주님이 홀로 가신 그길. 아멘
◈봉헌 기도◈
항상 갑의 자리에서 을에게 동정을 베풀려고 하는 가인의 마음을 가졌기에 나보다 더 잘 되면은 죽이고 싶은 질투의 마음이 샘솟는 인간 사회 속에서 언제나 나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악어의 눈물과 같은 동정심을 가지고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악어의 먹이 거리가 되는 아우성 있는 세상 속에서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세상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드릴 길이 없어서 세상에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창조자인 약한 자들에게 빚 갚으라고 헌금의 제도를 주신 것 따라서 드린 예물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께 받쳐 진 예물이 되는 줄 믿습니다. 받쳐 진 예물만이 나보다 잘 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이 모인 천국의 그 모습을 세워 나가는 교회 위에 수단이 되는 줄을 믿습니다.
우리가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은 내가 죽더라도 교회가 세워 지고, 내가 망하더라도 교회가 세워 지고, 내 명예의 먹칠을 당하더라도 교회가 세워 지고, 내 기업은 사라질지라도 대한민국은 영원하고, 성령은 이러한 마음을 지금도 불어넣어 주고 있건만, 속성 과정에 거친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성경을 피상적으로 해석해서 불신 아내 불신 남편을 교회 데리고 오는 것만이 목표가 되는 세상에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와 진정한 선교와 전도를 위해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를 이곳에 세우심을 믿습니다. 드린 예물이 종교적인 과업의 성취와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의 확장에 쓰이지 아니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나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수단이 되기를 원하오며 오늘도 우리 성도들의 생업을 복 되게 하사 자기가 벌은 자기가 얻은 재물이 남 잘 되는데 사용하면서 기뻐할 수 있는 부모의 마음을 가진 자로서 이 전이 차고 넘쳐 나서 세상과 다른 거룩한 몸 된 교회를 세워 나가는 은혜의 시간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지명하여 불러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가인의 마음을 가진 우리에게 아벨의 마음을 가지도록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을 부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자기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있고, 따뜻한 옷이 있으면은 만족하고 헤헤 그리다가도 조금 힘이 들면 부모 원망하고 자기보다도 다른 형제가 좀 더 잘되면은 사랑이 질시의 마음으로 변하는 그런 형제들에게 대해서도 내가 죽더라도 가정을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온갖 수모를 겪는 부모와 같이 자신을 원망하는 자녀를 위해서 일생에 젊음을 다 바친 부모와 같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유대인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하여 저어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 해 달라고 하며, 창조주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을 십자가에서 계시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필요에 따라서 사람을 가치를 평가하는 세상에 대해서 창조주 하나님이기에 부족하고 죄 많고 쓸모 없는 나를 70억 그 어떤 인간도 나를 대신 할 수 없는 유일한 자로 여기는 나를 이 땅에 창조하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가인의 마음과 같이 나보다 약할 때 측은지심을 가지고 동정하다가,
나보다 잘 되면은 질시의 마음으로 속에 품었든 칼을 빼 들 수 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도록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도록 성령님을 하늘에서 보내어 주신 예수님께서 보내어 주신 그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 지게 하시는 성령의 감동과 역사와 충만하심이 오늘도 이 땅에 모든 사람들과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가인의 시각이 아니라, 아벨의 시각으로, 인간의 시각이 아니라, 창조주의 시각으로 자식의 시각이 아니라, 부모의 시각으로 가치 판단하고, 선택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죽어서 가야 할 그 천국을 땅에서 맛보면서 가인의 생각으로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도록 사명을 주신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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