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험담과 칭찬 (잠언 3: 1-8)주일 예배 설교문(담임목사 김종웅)

차주희 2019. 1. 26. 00:42

 

 

 

담임목사 김종웅

험담과 칭찬

잠언 3: 1-8

2019 1 20일 주일 낮 예배

                                                                                                                                       No. 402

1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4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5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8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 예수님 안에서 얻은 구원은 그런 모든 차별과 인간의 계층을 다 무너트리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되는 만남을 구원으로 주셨다. 이스라엘은 신앙의 가장 기초에서 쉐마 이스라엘.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오늘 우리 찬양 예배를 드리는데 정말 이 찬양이 되려면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우리에게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그것을 깨닫고 체험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진정한 찬양과 영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영광이라는 것인 뭔가? 여러분들이 좀 이런 부분들 알았으면 싶어요. 우리 교회는 매월 셋째 주가 되면은 만나 주일이라 그래요, 이 만나 주일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인간의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주제로 해서 이 셋째 주일날에는 우리가 예전적 예배보다 성도들 사이에 아름다운 교제를 통해서 천국을 맛보기 위한 주일이 만나 주일입니다. 우리는 만남이라고 이야기할 때에 의리가 좋은 것을 좋은 만남이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동호회와 같이 만날 때마다 재이 있는 것을 좋은 만남이라 하지 않습니다. 또 동창회와 같이 만날 때마다 즐겁고 이런 만남이 아닙니다.

 

1. 특별히 우리의 신분의 표시로서 인간에게만 유일하게 있는 것이 의복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그 어떤 사람도 차별이 없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구원을 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셨다.

 

진정한 만남이라는 것은 인간의 모든 사회적인 신분, 또 그리고 그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다 배제하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만남은 저는 그런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동문회도 서열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언제나 서열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도 있고, 또 이 공무원 사회에는 급수가 이렇게 있습니다. 옛날에는 벼슬을 따라서 옷이나 모든 것이 달랐지요. 특별히 우리의 신분의 표시로서 인간에게만 유일하게 있는 것이 의복이라고 생각을 해요. 동물들에게는 의복이 없지만, 우리는 의복을 입는데, 그저 우리가 따뜻하고 우리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기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서 있는 옷이 의복들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돈이 좀 있으면은 괜히 명품을 걸쳐서 자기를 과시하려고 하고, 또 직급을 얻으면은 그 직급에 걸 맞는 의복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얻은 구원은 그런 모든 차별과 인간의 계층을 다 무너트리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되는 만남을 구원을 주셨어요. 그런데 교회가 존재하면서 자꾸 조직화 되어지면은 교회도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있고, 평신도에도 직분 별로 구분을 만들어 가는 것이 교회가 사석화 되어 가는 것이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예배 때마다 특별한 예전이 있지 않으면 Gown 을 입지 않습니다. 가운도 신분을 나타내는 거잖아요.

 

어떤 목사님이 모든 종교의 Gown 을 연구를 해 봤는데 원시 종교일수록 이 Gown 이 화려하더랍니다. 여러분들도 보시다시피 기독교의 그래도 Gown 은 아주 Simple 하지만은, 또 어떤데는 얼마나 화려한 Gown 을 걸칩니까, 그런 것은 내면이 없기 때문이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Gown 을 벗어 버리고, 예배를 드릴 때 어떤 분들은 목사님이 덜 경건한 것 같은 것은 그 동안에 우리가 잘못된 신앙에 젖어 있기 때문이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출발에서 제가 목회를 하면서 언제나 매월 셋째 주일은 만나 주일을 해 왔는데 제가 담임이 되면서는. 그래서 우리의 신분을 보장하는 모든 의복을 Casual 하게 입음으로 말미암아, 그런 것들 다 계급장 땅에 내려놓고 만나자, 그 만남이 진짜 만남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나 주일을 제정[制定]한 겁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사회에 나가면은 다 계층이 있잖아요. 회사 가도 과장이 있고 부장이 있고, 요즘은 뭐 그것도 좀 무너트리려고 팀장이니 뭐니 해도, 그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계층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교회에 오면은 그 모든 차별과 계급이 다 없어지고,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이런 만남이 주어졌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감사해야 되요. 그저 예수 믿고 구원 얻은 것을 천국의 Ticket 딴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그 어떤 사람도 차별이 없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구원을 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성령을 보내 주셨다는 것. 여러분 이것이 감격이 되어져야 됩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의 진정한 사랑은 그런 신분을 벗어 버리는 만남, 그것만이 교회를 세운다. 경험이라는 것은 순종할 때 겸손한 자의 경험만이 진정한 지혜를 얻게 된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신앙의 가장 기초에서 쉐마 [Shema] 이스라엘 듣는 교육이다.

 

저는 목사가 되면서 목사가 특별한 신분이 아니고, 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사람이 된 이 감격을 저도 여러 가지 사회적인 것에서 남들보다 출세하고, 성공하려고 하는 이런 야망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니까 너무나 편안하고 감사해요.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교회에 있습니다. 교회에도 지나다 보면은 알지 못하게 교회도 그러한 신분의 계층이 생기는데, 매월 셋째 주일마다 저도 이렇게 Casual 하게 입으면서 목사의 신분 벗어 버리고, 자연인 김종웅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 여러분들을 만나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구원을 아는 자만이 오늘 드리는 이 찬양이 진짜 감격과 하나님 앞에 받으시는 온전한 찬양이 되는 겁니다.

 

우리 이런 것들은 그래서 성경은 오늘 잠언서를 제가 선택했는데요, 잠언서를 지혜서라 그럽니다. 우리나라는 지혜보다는 지식을 소중히 여겨요. 그래서 자식에게 많은 학문을 집어 넣으려고 하는데, 지혜가 없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그래서 저기 있는 대로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 그것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 왜 목사님들이 자꾸만 박사 Gown 을 입고 강단에 서느냐? 교만하거든요.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것은 사랑은 교회를 세운다는 거에요. 그 사랑이라는 것은 뭐냐? 우리의 신분을 벗어 버리고, 자연으로서의 만남이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방에 대한 좋은 감정은 좋았다가도 나빠지고요, 수시로 변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진정한 사랑은 그런 신분을 벗어 버리는 만남, 그것만이 교회를 세운다는 거에요. 그러지 아니하고 세워 진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바벨탑이 되는 겁니다. 언젠가는 무너지는 겁니다. 오늘날까지 그런 마음으로 해 온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 여러분들이 그 지혜를 위해서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옛날 목사님들이 잠언서를 아이들에게 한 달에 한번은 읽게 만들었어요. 31장까지 있었는데 1일은 1장을 일게 했고요, 오늘은 20일이면 20장을 읽고, 또 잊어 버려도 오늘 안 읽어도, 내일은 21장을 읽게 했어요, 왜 지혜에요. 그러면 이런 지혜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지식은 책을 보면서 알지만은, 지혜는 경험을 통해서 얻는 겁니다. 굉장히 중요한 요인입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경제가 휘청거리는 것도 지식만 있었지 지혜가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저는 그렇다 이래 봐요. 여러분 경험이라는 것은 순종할 때 겸손한 자의 경험만이 진정한 지혜를 얻게 되어져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신앙의 가장 기초에서 뭐라는가 하면은 쉐마 [Shema] 이스라엘. 여러분들이 이스라엘 교육을 쉐마 교육이라고 하는데, 쉐마 이스라엘, 우리가 신명기 6 1절부터 있는 그 쉐마의 말씀은 우리나라는 이스라엘아 들어라, 이러는데 원래 원문은 쉐마 이스라엘, 들어라 이스라엘, Shema 교육은 듣는 교육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교회가 참 분쟁이 많고, 파당이 많습니다. 또 우리가 정치적으로나 어디에나 분당이 많고, 파당이 많은 것은 왜 그럴까? 쉐마가 없기 때문입니다.

 

3. 솔로몬이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은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며 평강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지 안 해요. 어려서부터 부모는 자식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 얘는 이제 돌도 안 지났는데 말을 해 이런다고요, 정말 지혜로운 부모는 자식에게 듣게 합니다. 듣는 것을 귀하게 여겨야 되요, 왜냐하면은 오늘 본문에 솔로몬이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은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며 평강을 얻게 하리라. 누가 지킵니까? 듣는 사람이 지켜요. 그래야 장수한다는 거에요. 그리고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누가 새깁니까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라고 말을 해요.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듣기 위해서 그 다음에 뭐라는 가 하면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우리 모든 인간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옛 이야기 중에도 그런 게 있잖아요. 우물 안 개구리라고, 개구리가 우물 안에서 우물을 통하여 보는 세계가 다인 줄 알고 하늘이 다인 줄 알지만은 자기가 보는 것보다 훨씬 광활[廣闊]한 하늘과 세상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게 되면은 그 넓고 광활[廣闊]한 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들으려고 하지 안 해서요. 쉐마[schema]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의 이런 여러 파벌이냐, 우리 정치냐, 이런 모든 파벌은 저는 부모들의 책임이라 생각해요.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자기 주장 말만 하려고 했지, 들으려 하지 안 했다고요. 그래서 어디에 가도 이기고 오라고, 기죽지 말라고, 그 결과가 오늘날 이런 것들을 낳았다고 봐요.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저도 상당히 제 주장이 강한 사람인데, 목사가 되고 세월이 지나면서 경험이 될수록 주장이 줄어들고, 들어 지더라고요. 어려서부터 여러분들이 듣게 해서 정말 발걸음 닫는 곳마다 귀중한 사람이 되어지고, 하나님 앞에 정말 자기의 명철 자기가 보는 것이 다인 줄 아는 것이 아리고, 큰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그 넓고 오묘한 세계를 맛 보아서 예배를 올 때마다 하나님 아니면은 내가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감격이 여러분들과 제 속에 있어야 될 줄 압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리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주장을 하면은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한다고 잘못된 가르침을 너무나 많이 받았어요, 떼를 쓰라는 거에요, 줄 때까지 떼를 쓰라는 거에요. 성경은 인정하라는 거에요. 그래야 하나님이 지도한다는 거에요.

 

저도 어릴 때에는 하나님 앞에 떼쓰고, 어쨌든 간에 그러면은 주는 하나님일 줄 알았는데, 제가 신학을 해보니까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것은 목사님들의 주장이었더라고. 그래서 이룬 것은 많지만은 평안은 없었든 겁니다. 그리고 뭐라고 합니까,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건강한 것은 듣는 데에서부터 출발입니다. 우리 신앙에도 많은 오류가 있지요. 병에 걸리면은 하나님 앞에 끝까지 낫도록 떼를 쓰면은 하나님이 주시리라, 그러기 하기 위해서 교인들에게 열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큰 병에 걸렸을 때 구 천 구백 구십 구명이 죽고, 한 명이 그렇게 떼를 써서 낫은 것을 가지고 일반화에 오류를 일으키는 그런 진리가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4. 성령이 지배를 하면은 들으려고 한다. 지혜는 듣는 대서부터 출발을 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하려면은 하나님 앞에 주장하는 자세보다, 하나님 앞에 듣는 신앙이다.

 

여러분 정말 성경은 지는 자가 이기는 자다 그러더라고요. 우리가 우리 자신이 지배를 하면은 주장하고 말하려고 해요. 성령이 지배를 하면은 들으려고 합니다. 지혜는 듣는 대서부터 출발을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저도 뭐 당뇨도 있고, 혈압도 있고, 많은 성인병이 있어요. 제가 좀 돌아보니까, 젊은 날에 내가 너무 내 주장이 강했든 것 같아요. 그래서 골수가 윤택하지 못했든 것 같아요. 이천수 교육부 차관을 지내다가 대학 총장 하신 분, 하고 이래 같이 점심을 먹는데, 자기가 잘아는 분이 우리나라 국립암센터 초대원장인 박재갑씨래요 일산에 있는, 그분이 그러더래요, 암과 싸우면은 이기지 못한다고. 사람이 어떻게 암을 이기느냐고, 그래서 평생 같이 살려고 달래며 살아라.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거든 암보고 암아 잘 잤니, 나 죽으면 너도 죽어, 성질 부리지마, 이래 살아라 해요.

 

오늘도 여러분 이 말씀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왜 우리가 오랜 경험과 연륜이 더 해 가면서 지혜롭지 못한가? 듣지 않으려고 해서. 한국은 너무나 하나님 앞에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는 것을 잘 믿는 거라 하는데, 잠언서는 신명기는 듣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의 관계도 저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수만은 설교와 성경을 듣지 않습니까, 그런데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기 때문에 들어오지를 않는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여러분들의 마음을 낮추어서, 여러분들의 말씀이 들리어져서 어제의 모습과 오늘의 모습이 점점 더 성장해 감으로 말미암아, 저는 신앙 생활의 구원은 그런 거라 생각해요.

 

나 참 예수 잘 믿었지, 나 예수 안 믿었으면은 어떻게 되었을까? 큰일은 했을지 몰라도, 평화는 없어, 일은 하지 못해도 언제나 내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 그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하려면은 하나님 앞에 주장하는 자세보다, 하나님 앞에 듣는 신앙, 어릴 때부터 여러분들의 자녀를 지혜롭게 키우기 위해서는 말하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듣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쉐마 [Schema] 교육인 이스라엘의 교육임을 알아서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지혜로서 상상이 되지 않는 하나님의 그 신묘막측 [神妙莫測] 하신 그것을 목도한 자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경외라는 말이 뭘까 저는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사전 찾으면 나오는 거지만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든 것인데, 경외는 뭔가? 내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내 머리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그분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믿는지 몰라도, 내 머리로 도저히 측량되지 않는, 내가 아무리 지혜를 짜 내도 이해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내 생각에 주물러 지는 하나님이 아니고, 내 생각에, 그럴 때 이 하나님의 이 약속의 축복이 우리 안에 임하는 것이, 그럴 때 아 나 예수 잘 믿었어, 여기에 찬양의 출발이 있다. 저는 그래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 잘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왜 헌금이 예배의 중요한 요소입니까? 내 능력으로 이 재물을 벌어 드렸다고 하는 것, 하나님 앞에 거지 동냥하듯이 주는 예물이 아니고, 나는 망할 짓만 했지만,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하셨다고 하는 신앙의 고백의 표현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 주장하지 않고, 자기 의를 내 세우지 않고, 바리새인들과 같이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는 마음이 아니요, 주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내 어떻게 감히 주님 앞에 설 수 있습니까? 자기 주장이 포기되어 하나님 앞에 정성스럽게 드리는 이 예물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귀한 예물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앞에 권리 주장하지 않고,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서 귀한 성도들의 손길을 통하여 주님 앞에 드립니다.

 

헌금 드린 돈 가지고, 자녀에게 학원 하나 더 보내면은 지금보다 성적이 더 좋을 것 같은 자기 주장도 포기 되어지고, 이 헌금을 드리지 아니하고 모아 두면은 내 노후가 보장될 것 같은 자기 주장도 포기 되어지고, 하나님 앞에 드린 예물로 내 사업을 하면은 사업이 더 번창할 것 같은 내 주장도 포기하고, 하나님, 하나님이 내 생명을 책임 지실 것을 믿고, 마음을 재물에 두지 않고, 하나님에게 둔 자만이 드릴 수 있는 예물임을 믿습니다. 주님 열납해 주시고, 오늘도 아무리 쌓아도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한치 앞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기에 불안 속에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을 주님의 몸 된 공동체를 통해서 국가가 복지를 해서 먹을 것 마실 것은 책임지지만 노후에 내가 아파서 큰 돈 들면 어떻게 하지,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아, 하나님이 계시지, 교회가 있지, 이 생각이 들도록 이것이 예배의 요소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배의 요소에 허락하심이 바로 그런 것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이 헌금을 드린 손길들을 통해서 교회가 한걸음 한걸음 든든히 세워져서 정말 내 늙어서 큰 병들어서 병원 갈 때, 그때 어떻게 하지, 그런 염려가 들 때마다, 아 참 교회가 있지, 가족이 있지, 이런 생각의 교회를 만들어 갈수 있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당회가 되게 하시고, 우리 모두의 생각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원하옵기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 성도들이 이제는

꾸는 자가 아니라, 나누어 주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의 분복의 최선을 다하고, 아버지 하나님 어느 누구도 수고의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억울함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삶의 처소에 은혜와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에게 이 예물을 드리도록 하늘 보좌에서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아버지 하나님 나는 망할 짓만 하는데, 하나님이 되게 하셨군요! 이 생각을 들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네가 메시아냐,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메시아를 증명하라고, 주님에게 침 뱉고 손가락질하는 유대인들에게 아버지 하나님, 저들이 알지 못하여 저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 해 달라고, 자기 주장하지 않고, 처절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만든 신이 아니라, 인간을 만든 신은 어떤 신인가? 십자가에서 계시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인간이 만든 신이 아니라, 인간을 만든 신이기에, 인간에게 자기 주장하지 않고, 잠잠히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인간이 만든 신이 아니라, 우리를 만든 신임을 십자가를 통하여 계시되는 그 하나님을 받아 드리도록 교회를 선물로 주신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세상은 말하는 것부터 가르치는데, 듣는 것부터 가르치는 쉐마의 이스라엘 교육을 따라서, 자기를 주장하기보다, 듣기를 속히 하고, 사람이 무엇으로도 길들일 수 없는 그 혀 앞에서 마음에 상처받지 않고, 하늘의 평화를 누리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온갖 말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어떤 말들도, 잘 새겨 들어서 그 말들이 상처가 되지 않고, 축복이 되게 하는 성령이 운행하는 교회 위에 예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