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삼위일체 하나님
고린도전서 8장 6절
2019년 4월 7일 주일 낮 예배
No. 413
6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아멘
● 삼위일체 하나님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하지 말고, 계시론과 구원적 측면에서 이해해야 된다. 성부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원론과 계시론 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 하나님이 만드신 카오스의 세계가 코스모스의 세계로 되어 진다.
저는 교수도 해보고 목회도 해보는데 교수는 쉽습니다, 왜냐하면은 늘 대상이 바뀝니다. 그래서 자기의 전공 지식을 가지고 늘 말을 해도 대상이 바뀌니까, 별로 문제가 안 되는데, 설교는 동일한 대상에게 평생 설교를 해야 되기 때문에 참 힘이 듭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교인들이 있습니다. 왜 목사님은 그렇게 반복을 많이 하시느냐고, 제가 설교 때 그런 이야기를 한번 했더니만 어떤 분이 편지를 보내 왔어요 예전에, 한식의 기본이 밥과 국 김치듯 우리 교회의 기본 말씀이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주일마다 새 반찬을 하나씩 더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에 우리 대부분 성도는 맛있게 먹고 소회시켜 삶 속에서 실천하도록 노력하고, 돌이키는 삶을 통해 회개하며 살아갑니다.
그분 성도보다는 목사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 받는 성도들이 더 훨씬 많다는 것을 아시고 힘내시고 파이팅 하십시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편지가 왔는데 오늘 내 설교가 반찬 하나 더하는 것이 뭘까? 생각 해보니까 여러분들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우리 밥과 국입니다. 반찬은 뭐냐 하면은 새로운 반찬은 그 삼위일체 하나님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하지 말고, 계시론과 구원적 측면에서 이해해야 된다. 이 내용이 너무나 중요해요. 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고, 또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는가 하면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대부분 존재론적으로 이론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리고 제 삼위이신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전체적으로 정리한 것이 사도신경이다. 구원론적 계시론적, 측면에서 보는 것은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다.
우리가 구원을 경험하려면은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에요. 그래서 기독교에는 예배 때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을 하고, 또 그 신앙의 고백에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로 마치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고백은 처음부터 된 것이 아니고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는가 하면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것이 로마서 1장 3절과 4절이고,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6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삶이 달라지고, 그 사람이 어떤 거듭남과 변화가 있는가에 따라서 그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가, 이루어지지 않는가? 가 결정이 됩니다.
그래서 이 신앙의 고백이 정착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제일 처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하다가 오늘 또 고린도전서 읽은 본문은 우리가 이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다 그래요. 그것은 뭐냐 하면은 성부 하나님과 제이위인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러다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리고 제 삼위이신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전체적으로 정리한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하는데, 이 신앙의 고백이 교인들에게 그저 습관적으로 하기 때문에 문제이고, 또 이 신앙의 고백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존재론적으로 어떻게 3위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정말 구원론과 계시론 측면에서 하나님을 알 때 나타나는 구원이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오늘 새로운 반찬으로 인식을 해야 되요.
그러면 존재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우리가 양태론적 설명이 대부분인데요 전부 이단이 거기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인데 빛이 자외선이 있고, 적외선이 있고, 감마선이 있는 거와 같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있다. 아니면은 나무가 있다. 한 나무이지만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고, 잎이 있는 거와 같이 한 하나님이지만은 성자 하나님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인간의 용어로 해설하고 설명하려고 하니까 전부 자기 주장에 대한 대립과 갈등만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면은 구원론적 계시론적, 측면에서 보는 것은 뭔가 하면은 먼저 6절에 보면은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이래 놨습니다.
이 말씀이 굉장히 중요한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인데요, 우리 성부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은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그 가운데 창조에 대해서 성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존재하게 하고 창조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하는 것이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러면 이런 부분에서 제가 늘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듯이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나를 만드셨어, 그 지식을 가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진화론이 아니야, 이런 싸움을 하다 보니까 성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성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성도들이 듣지 못하는 것이 문제에요.
2.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행동을 했든지, 온 천하보다도 그 사람은 존귀하다 라는 것이다. 나의 존재의 이유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것. 창세기의 온 우주 만물을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의 통치의 영역이 있는 것을 들어내도록 인간을 만드셨다.
히브리적으로 제가 생각해야 된다고 했지요.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은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하지 못하는 존귀한 자로 여긴다, 이 사실을 받아 드리는 자가 성부 하나님을 아는 자다 이 말입니다. 또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신 자이기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나의 외모가 어떻든지 나의 성격이 어떻든지 나의 행동과 상관없이 온 우주 만물보다 나를 존귀히 여기는 분이다, 이것을 받아 드리는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살면서 여러분들이 정말 존귀한 자라는 자기의 가치가 인정이 되면서 여러분들의 삶의 어느 환경 속에서도 여러분들을 불행하게 하지 못하는 놀라운 구원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성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인간도 그 사람을 대체할 수 없고, 무슨 일을 하든지 성격이 어떻든지 그가 어떤 행동을 했든지, 온 천하보다도 그 사람은 존귀하다 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교회 와서 바로 그런 말씀을 듣고, 여러분들이 그 말씀을 받아 드릴 때에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남의 시선 자기 비하, 이 모든 것들이 해결이 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린다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보면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이런 말인데 그 다음에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이 말씀도 굉장히 중요해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나의 존재의 이유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인생의 존재의 이유가 타락을 한 것이다 이 말입니다. 전부 하나님마저도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는 신앙으로 바꾸어 버렸어요. 그래서 창세기 1장 27절에 가보면은 이런 말씀을 하는 겁니다. 우리 인간을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라고 말을 해요. 그러면 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내 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이다 이런 말이 아니고요, 이 성경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상황 속에서 이해를 해야 되요. 그러면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형상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그돌라오멜왕이 자기가 요만한 지역을 통치를 해요.
그러면은 내가 통치하는 영역의 표시로 자기의 형상을 가져다 놓습니다. 그러면 이 형상이 주는 메시지는 뭐냐 하면은 이곳은 그돌라오멜이 통치하는 지역이야 이런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었다고 하는 창세기의 말씀은 온 우주 만물을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의 통치의 영역이 있는 것을 들어내도록 인간을 만들었다 이런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은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십일조 많이 하고, 내가 좋은 일 많이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이런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종교인들이 만든 이야기 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은 나의 이 존재 내 삶을 통해서 어떤 사람도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존귀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임을 들어내는 거에요.
3.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재창조 했느냐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의 에이젠트였다. 구원의 수단이었다. 이것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도 천하 만물 보다 더 존귀히 여기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는 자가 되는 것이고, 이런 신앙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가 온 우주 만물에 나타나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했다는 신학 속에 있는 창조 신학의 중요한 메시지에요.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그런 우리들이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어요 타락해서, 타락해서 잃어 버린 것은 뭐냐 하면은 그 다음부터는 모든 사람이 자기를 위해서 존재해야 되는 거에요, 신마저 자기를 위해서 존재해야 되는 거에요.
그리고 모든 것을 자기에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를 가지고 가치 평가해 버려요. 인간이 만든 사회의 공동체의 기준으로 사람의 선악을 판단해 버려요, 가치를 판단해 버려요. 그래서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가 하면은 카오스 혼돈이 일어난다는 거에요. 원래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 코스모스는 질서의 세계는 정말 귀한 것 인간이 존귀한 것이고, 어떤 인간도 또 그곳에는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질서의 세계가 있었는데 이것이 타락을 한 거에요.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재창조 했느냐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신앙의 고백이 바로 이런 부분이에요.
그 밑에 보면은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이 말씀 저를 보세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어떻게 창조했는가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의 에이젠트였다. 구원의 수단이었다. 이것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에요. 이것이 그러면 무엇을 말하는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에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어떻게 계시해 주셨는가 하면은 은혜의 하나님으로 계시해 주신 거에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인간과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계시해 주신 거에요. 이 계시 속에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는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성자 하나님으로 믿는 것은 뭐냐 하면은 이런 것이다 이 말입니다. 오늘 내가 존재하는 것이 내가 잘나서, 내가 옳은 일을 해서, 내가 올바른 종교 생활을 해서 하나님이 복 주었다. 전부 율법과 자기 의의 신앙이에요. 내가 오늘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성자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창조한 것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다. 그 다음에 뭐라는가 하면은 그래서 내가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지만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신앙의 고백이 있는 거에요.
4.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하셨는가, 은혜로 창조하였는가 하면은 그래야만이 이 세상이 카오스가 아니고 코스모스인 하나님의 질서가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이 고백이 왜 중요하고 왜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하셨는가 하면은 은혜로 창조하였는가 하면은 그래야만이 이 세상이 카오스가 아니고 코스모스인 하나님의 질서가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은 이 세상을 구원 하는 신앙의 고백이 되는 거에요. 이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좀 더 설명을 한다면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세상 카오스에요, 혼돈이라는 말입니다. 이 카오스라는 말은 빌립보서의 용어대로 하면은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귀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가치가 전도된 거에요.
왜 우리가 이 세상에 여러분들이 힘든가 하면은 이 세상이 참 한 인간보다 더 존귀한 것이 없는데, 인간보다 돈을 더 귀하게 여겨요. 자기만을 존귀하게 생각하고, 모든 게 자기를 위해서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 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혼돈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다가 가끔 돈이 있어야 사는 줄 알고 돈을 최고로 여기다가 건강을 잃어버리는 순간 인간들에게는 무엇이 로고스가 생겨 나는 거에요. 어떤 지식이 생기는가 하면은 돈보다 건강이 중요해, 이게 이제 혼돈에서 카오스로 들어가는 거에요.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그저 내가 이익이 되면은 좋았다가, 손해가 되면은 원수가 되었다가 하다가 살다 보니까 친구 이상이 없는 것 같아.
엄마 이상이 없는 것 같아. 피는 물보다 진해. 로고스를 가지게 되는 거에요. 질서의 세계 코스모스로 들어가게 되는 거에요. 이런 사람들이 많을 때에 이 세상은 구원이 일어나는 거에요. 이러한 신앙의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속에 주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왜 우리기 이 세상이 혼돈과 카오스인가? 질서가 뒤바뀐 거에요. 하나님의 질서는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잖아요. 좀 여러분들에게 강하게 각인 되도록 제가 정말 시중의 말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거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종 노릇 해 주시는 분이라고 창조자는, 성경을 여러분들이 보시면은 그것을 보셔야 된다고요, 우리가 하나님에게 종 노릇 하는 게 아니라 말입니다.
천국에 가면은 하나님은 왕이시고 가장 우리를 존재하게 한 일이지만은 모든 인간의 종 노릇 해 주시는,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종 노릇 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인데, 이 세상은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지배하고, 힘 없는 자가 힘 있는 자의 종 노릇 하는 이런 질서가 뒤 바뀌었기 때문에 힘든 거에요. 여러분들이 가족에게 들어가면은 그래도 샬롬 평화를 누리는 것은 가정에는 거꾸로잖아요. 회사는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의 종 노릇 해 주지만은, 집에 가면은 부모가 자식의 종 노릇 해, 그러다가 부모가 연세가 드셔서 이제 점점 힘을 잃어 가면은 힘있는 자식이 부모에게 종 노릇 해 주어요. 이게 코스모스라는 거에요. 이게 어떻게 이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가 하면은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5. 창조자이기에 나를 존재한 자이기에 은혜로 나를 이곳에 있게 하였구나, 이 신앙의 고백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계시 은혜에 대한 계시가 우리의 삶에 구원 코스모스로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존재하게 한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아니하고, 창조자이기에 나를 존재한 자이기에 은혜로 나를 이곳에 있게 하였구나, 이 신앙의 고백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계시 은혜에 대한 계시가 우리의 삶에 구원 코스모스로 이끌어 간다는 말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삼위일체는 삼이 하나가 되는 것 이런 것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것에 대한 자기 계시의 사건이고, 이것을 제대로 알 때에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기를 시작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 다니면은 여러분들이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면은 뭐 이런 교회가 있어 이렇게 생각한다고. 종교적인 관점에서 우리 교회를 보면은 이 교회는 뭐 이래 이런다고요. 그러나 삼위일체론의 이 구원론 관점과 계시론 관점에서 보면은 야 정말 이런 교회가 있나 이런다고요. 그 가운데 하나를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은 어제 같은 월초 예배를 드리고 우리 봄맞이 대청소를 할 때, 제가 진심으로 광고를 뭐라고 했는가 하면은 급한 일이 있어서 청소를 못하고 가는 분도 뒤 꼭지가 시리지 않는 교회 되어야 됩니다. 당당히 가세요. 여러분 이것이 나의 진심이고,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되어야 된다는 거에요.
내가 뭐 좀 한다고 해서 어깨 힘줄 것 없고, 못한다고 해서 미안할 것도 없고, 그래서 여러분 이번에 장로님들이 교회의 차를 구입을 했지만은 제가 안 띠워 주는 거에요, 왜 그것 했다고 해서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어요, 왜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 준 은혜를 조금 내놓은 것인데, 앞으로는 여러분들이 뭔가 하고 찬조한 것 명단에 안 넣을까 생각을 해요. 자기 의 거든요. 그러면은 그렇게 열심은 해서 많은 것은 이룰지 몰라도 못하는 사람에게 죄책감을 준다는 거에요. 그러면 혼돈의 세계가 되는 거에요. 이런 생각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면은 삼위일체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의 고백 속에서에요, 못하는 사람도 하는 사람과 그 가치가 조금도 차이가 없는 교회.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 어떤 사람이 필요에 의해서 가치 평가 되지 않는 교회. 이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성경을 통해서 계시해 주시고, 그 계시를 통한 구원의 역사가 이런 것이다 이 말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왜 중요한가,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여러분 이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어떻게 경험하는가, 성령 받으면 방언을 통해서 하고, 뭐 병 고치는 것 아니에요. 성령 하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의 그 십자가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였든 그 에이젠트 예수 그리스도가 통해서 하나님이 은혜인 것을 들어내도록 우리 각자의 심령 가운데 거하시고, 그 은혜를 받아 드려서 교회가 교회 되도록 교회를 만드신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성령님은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 구원의 은혜라든지, 기도의 응답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해요. 이 기도의 응답을 가지고, 내가 열심히 기도했더니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셨어, 전부 우상숭배적 기도 응답입니다. 성령에 의한 기도의 응답 성령 하나님이 왜 이 땅에 오셔서 교회를 만드신 것을 알 때에 그 기도의 응답은 달라져요. 여러분들이 교회에 와서 왜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려고 하고, 여러분들이 착하게 살려고 하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가 하면 자기의 존재의 가치를 들어내기 위함이거든요. 내가 돈이 없으면 무시 당해요, 내가 무시당하면 어떤 사람도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안 해요. 그래서 나도 돈 좀 있어야 되겠다.
6.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원론과 계시론 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그 하나님이 만드신 그 카오스의 세계가 코스모스의 세계로 되어지며, 그 코스모스가 될 때에 내가 얼마나 존귀한 자인가, 사람이 천하보다도 더 귀한 자인가, 이런 구원의 경험을 하게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기도의 제목을 가만히 보면은 전부 소유를 통해서 자기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는 거에요. 그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삶의 죄악 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자에게 나타나는 삶이에요. 그런데 성령님을 통해서 나의 나 됨이 하나님의 은혜이신 십자가를 통해 내 자신이 발견이 되어지고 나면은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교회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은 내가 이제는 돈이 없어도 우리 목사님 앞에 가면 돈 없다고 무시 안 당해, 우리 교회 가면은 내가 좀 못한다고 해서 우리 장로님들은 나를 무시 안 해, 내가 좀 허물이 있고, 잘못이 있어도 우리 권사님들은 그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내 자신의 존재를 귀하게 여겨, 모든 기도의 응답이 그런 결과로 나타난다 이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부족한 부분들 유한한 인간 속에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노릇 해주고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 아버지라고 하지만은, 또 내가 급한 병에 들었을 때에 실비 보험도 안 들었다, 큰 돈 들어갈 때, 하나님 내 이 병을 고쳐 주시는데 병원비 주셔야 됩니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역사 하시는가, 주의 영이 거하시는 교회,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원사 에서 만드신 그 교회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져요. 이게 기도의 응답이에요. 제가 옛날에 대학 교회에 있을 때에 여러분 이야기 했잖아요, 왜 기도의 응답이 없는가, 하나님의 영이 있는 자, 하나님의 영이 있는 교회가 하나님의 노릇을 안 해주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신앙 생활이 아니고, 타락한 인간의 종교로서 소유가 목적이 되기 때문이에요.
우리 교회의 여러분께서 지금 같은 경우가 바로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고, 장례식이나 결혼식을 통해서 여러분들 속에 참 그 은혜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서부터 살면서 10년에 한번쯤은 교회를 통해서 그런 경험을 하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내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원론과 계시론 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그 하나님이 만드신 그 카오스의 세계가 코스모스의 세계로 되어지며, 그 코스모스가 될 때에 내가 얼마나 존귀한 자인가, 사람이 천하보다도 더 귀한 자인가, 이런 구원의 경험을 하게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 속에 또 신앙의 중요한 종말에 대한 소망이 바로 그런 부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요즘 시사 프로에 보면은 옛날에 독립 운동한 사람들의 후손은 전부 거지꼴 못 면하고, 친일파 자식들은 자자손손 잘 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금 나라를 위해서 내가 희생해야 할 이유를 못 찾는, 옛날에는 애국, 나라 잘살면 내가 잘사는 것이 확실했는데, 이제는 나라 산다고 내 손해 봐 버리면은 내 후손은 거지꼴 못 면한다 하니까 이제 자기 살길 찾아가잖아요. 그게 인간이 만든 국가 속에의 계획이라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정말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교회에서 내 자리 지키고, 내 삶 잘 지켜 나가고, 헌신 하면은 교회가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고, 상처도 받게 되는 거에요.
7.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의 재한 속에서 당하는 이 고통이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것을 계시를 통해서 우리는 알게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 신앙의 고백의 집대성 하면서 나타난 것이 고린도전서 15장에 바울이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다.
그저 자기 입장 차리고 욕심 차리고 살아도 교회 생활 잘하고, 장로 되고, 권사 되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이런 분들을 보면서 이게 도대체 뭔가, 여러분 이럴 때에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하면은 천국을 맛보는 거에요. 이 천국을 맛보는 신앙이 종말의 소망을 이루는데 그게 뭐냐 하면은 우리가 어떤 교인이 어려울 때에 1억이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 교회가 전체적으로 1억을 만들어서 주는 것은 그것은 자기 의에 신앙 입니다. 다른 교인들이 큰 Damage 를 입지 않고, 힘써 해도 5백 만원 정도밖에 안 돼, 그러면은 우리가 5백 만원 주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기다리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5백 만원을 줌으로 말미암아, 그래도 남보다 성령이 진하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천국을 맛을 보는 거에요.
그 맛을 보면서 우리 속에 소망을 주는 것이 뭐냐 하면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의 재한 속에서 당하는 이 고통이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것을 계시를 통해서 우리는 알게 되는 거에요. 이것을 믿는 자만이 자신이 모든 것을 행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분량을 따라서 내 몫에 태인 십자가 지고 살아가는 거에요. 했다고 해서 자랑할 것도 없고, 한 것에 대한 결과가 나오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것도 없고,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 걸어가는 거지요. 어떤 권사님이 목사님 저는 옛날에는 참 열심히 다른 교회에서는 했는데, 이 교회 와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자리만 지켜요.
전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는 자괴감이거든요. 제가 뭐라 했는가 하면은 존재 자체가 얼마나 귀한 것인데, 권사님 과거의 그 교회에서 했고, 우리 교회 와서는 이제는 쉼과 그 수고의 열매를 먹는 것을 당당히 생각하세요. 왜 주님의 재림의 그날 우리의 제한으로 인하여 당하는 많은 고통이 해결될 것을 믿기 때문에 교회의 이런 모습을 통해서 주님 빨리 재림하시옵소서. 종말에 대한 소망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그 삶을 살아가게 하는 거에요. 이런 삼위일체 신앙의 고백의 집대성 하면서 나타난 것이 고린도전서 15장에 바울이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 내가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바울의 걸음 걸음마다 자유가 있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든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런 것 이렇게 까지 설명해야 되는 것이 어떤 때에는 자괴감이 올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예배를 마치면 추어탕을 먹게 되는데 그 추어탕을 준비한 사람 칭찬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 행복하게 하려고 지난번 추어탕보다 훨씬 맛있는 추어탕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추어탕이 있기까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과정을 모르면은 오늘 교회 밥 맛있네로 끝나요. 그러나 그 추어탕이 있는 원인을 알게 되면은 참 감사하네, 행복한 점심이 되는 거에요.
8.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하늘 영광 권세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인간도 지지 아니할 그 십자가를 지셨나이까? 이 고백이 존귀하고 거룩한 교회에 대한 감사가 있다, 그래서 성 하나님이신 그분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해 주셨다.
집사님이 어제 내 카니발 가져가서 가락 시장 가서 다 준비 해와 가지고 밤 11시까지 다듬고 고아서 아침 5시에 일어나서 해서 교인들 맛있게 먹는 꿈을 그리면서 수고를 했다 말입니다. 그 수고의 손길을 여러분들이 알게 되면은 그 음식이 여러분들을 행복하게 하고, 야 내가 이런 교회 잘 다녔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성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주시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어 주어서 그 하나님의 은혜를 알도록, 그냥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는 은혜를 만들었다 하면 되는데, 왜 그러셨는가? 나의 나 됨이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께서 나를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고 어떤 누구도 나를 대신 할 수 없는 존귀한 자로 알게 하기 위해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인간의 연약함을 친히 경험하시고, 가장 흉악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 은혜의 하나님을 계시해 주신 것을 내가 알게 될 때, 내가 예수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 되고 천국을 유업으로 얻는 것이 그저 오늘 감사하다가 아니고 감격이 되고 내가 행복이 되는 거에요.
그 과정을 위해서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교회를 선물로 준 것을 생각할 때에 이 교회가 당연시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나올 때마다 주님 어디에서 맛볼 수 없는 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당신이 하늘 영광 권세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인간도 지지 아니할 그 십자가를 지셨나이까? 이 고백이 존귀하고 거룩한 교회에 대한 감사가 나오는 거에요. 그래서 성 하나님이신 그분이 성자 하나님으로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해 주신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신앙의 목적이 이 혼돈의 세계 속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여러분들의 신앙의 목적이 될 때,
여러분들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여러분들을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함을 누리고, 교회를 통하여 하늘의 그 평화를 맛보는 복된 신앙의 걸음을 걸어가다가 도에 지나친 헌신도 하지 아니하고, 남들이 어떤 말을 할지라도 세상의 풍조는 나날이 갈리어 갈지라도 내 믿음을 지키는 한 사람, 그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이루어져 간다고. 오늘도 여러분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그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구원을 이루셨나? 그 이루신 그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들의 존재의 이유와 신앙의 목적이 되는 복된 생애로 살도록 주님이 우리에게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주신 거에요.
그 기도문마저도 기도 응답의 주문으로 바꾼 사악한 종교인들의 말에 넘어가지 말고요, 여러분들이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이 혼돈의 세상을 코스모스로 만들기 위하여 은혜로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은혜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교회를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그 고난을 겪으신 그 감격이 날마다 내 마음 속에 넘치는 신앙의 고백이 되시고, 그 신앙의 고백의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내 발걸음 닫는 곳마다 위대한 인간의 영웅의 발걸음이 아니라, 어떤 인간도 어느 누구와 대체할 수 없는 존귀한 자.
사람은 필요에 따라서 가치가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인 것을 알아서 한다고 해서 어깨에 힘줄 것 없고, 못한다고 해서 부끄러울 것도 없는 그런 평안한 하나님의 나라를 교회에서 경험하다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여러분들의 영원한 종이 되시는 왕 되신 하나님의 품 안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카오스의 세계가 코스모스의 세계가 되도록 만나의 법칙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인데 우리는 평생 먹을 것 쌓다가 좀이 나고 곰팡이가 쓸고 썩어 문드러 지는 만나가 되는 이 현실을 알지 못하고, 더 많이 쌓으려고 그러면 내 생명의 안전과 내 삶이 든든해 질 것이라고 하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서 오늘도 우상숭배적 신앙을 하면서도 하나님이라 하고 예수라고 부르는 얼마나 많은 왜곡된 신앙이 존재합니까, 우리가 무엇이관대 성경에서 계시하는 그 삼위일체 하나님을 통하여 그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깨닫게 하여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가치의 측도가 아니라, 얼마나 유익이 됨이 가치의 측도가 되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선물로 주셔서 죽어서 가야 할 그 천국을 맛이라도 보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오늘 양식을 주신 하나님이 내일 주실 것을 믿는 자에게 10의 1을 구분하여 드리기도 하시고, 또 우리 모두가 안전한 신앙 생활을 하도록 우리 집 헌금에도 동참하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그저 사도신경을 예배의 한 순서로 습관을 따라 고백을 하지 않게 하시고, 주문으로서 주님의 주기도문이 아니라, 주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기도가 되어져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우리의 강력한 소망이 되게 하시고, 그 소망이 십자가에 남은 고난을 내 인생에 자국을 만들어 가는 생명 있는 자의 삶을 사는 원동력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천국을 경험하도록 교회를 선물로 주시고, 은혜의 하나님을 말이 아니라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간의 저주를 받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계시해 주시고, 구원을 이루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가 행복하도록 나를 존재하게 하신 그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창조하심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높고 높은 보좌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그 어떤 인간도 지지 않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해 주시고, 우리에게 천하보다도 존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을 알게 하도록 성령을 보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창조한 자이기에 나를 온 천하보다도 존귀히 여기시며 오늘도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도록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참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좌절하고 절망할 때마다 재림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그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존재론적이 아니라, 계시와 구원론적인 관점에 알아서,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함을 누리고, 교회를 통하여 하늘의 평화를 맛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의 Sample 되시는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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