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 강단

이 감사를 세 곳에 채우라. (시107:1-8)

차주희 2011. 11. 16. 16:45

 

 

 

 

 

 

 

 

 

 

 

 

 

 

 <소명의 강단>  

 

 

이 감사를 세 곳에 채우라. (시107:1-8)

 

 성경을 근거로 하면 감사는 세 곳에 채워야합니다. 구원하신 주님을 모신 내 심령(마음)에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하는 입술에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전에 채워야합니다. 성경의 가르치심대로 감사를 채우는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첫째, 구원하심과 축복을 감사해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토지소산의 만물을 거두어들인 후 처음 익은 열매를 광주리에 담아 그것을 여호와의 성소로 가지고 가서 하나님 여호와 앞에 드리라고 하셨습니다.(신 26:5-9) 이 고백적인 감사의 노래는 조상이 겪은 역경과 여호와께 부르짖음, 그리고 구원과 가나안 땅으로 정착하도록 인도하심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에 들어가서 그 땅에서 얻은 열매로 추수감사절을 노래하면서도 추수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여호와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는 고백을 하였을까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추수한 기쁨에 도취되어 감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 전체의 표현이었습니다.(시136:10-25)

 

  둘째,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감사입니다.

 청교도들의 추수감사는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간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감사였습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감사하라는 권면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사도 바울의 생활을 보면 그 생활 자체가 감사의 생활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감격으로 사무쳤고 그의 하루 생활은, 아니 일생의 생활은 은혜를 감사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어떻게 바울이 이러한 감사를 할 수 있었을까요?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좋은 환경이나 평안한 생활로 인해서 감사하는 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감사도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감사이어야 합니다.

 

  셋째, 주신 평안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바울은 매를 맞고 몇 번이나 감옥에 갔고 몇 번이나 파선을 당하고, 에베소, 고린도, 로마에 가서도 대부분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몸이 건강하거나 가정이 화평하면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의 감사는 몸의 건강이나 가정의 평안에서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심령 속에서 우러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로 죄에서 구원을 받은 것,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같이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도 순경이나 역경이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언제든지 감사로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결론: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의 영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우리들의 매일 매일의 삶과 일상의 생활이 하나님께 감사로 채워야 하겠습니다. 아멘

 

(2011, 11. 20 . (추수감사) 청주소명교회 진범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