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 강단

아담아! (창3:3-8)

차주희 2013. 8. 13. 21:40

 

 

 

 <소명의 강단>

 

 

아담아! (창3:3-8)

 

 하나님께서 아담을 버리실 마음이 있으셨다면 아마 호통을 치시며 "네가 여기 숨었느냐? 이 배신자야, 이제 무서운 징벌을 받으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호통 치시는 음성이 아닌 부드러운 음성으로 사랑의 음성으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부르셨습니다.

 

  첫째, 심령을 깨우치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죄는 사람의 심령을 무디게 합니다. 그래서 죄를 범하면 가슴을 칠 줄을 모릅니다. 눈물을 흘리지도 아니합니다. 도리어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내게 무슨 허물이 있느냐. 약점이 있느냐' '나는 이만큼 의인이다.' 오히려 자기의 의를 내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수술 시에 마취주사를 맞으면 통증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고통을 잘 이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범하면 심령이 무디어집니다. 양심의 가책도 없고 어둠의 마을에 살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씀은 "너는 죄의 삯이 사망 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심령을 깨우치는 부르심입니다.

 

  둘째, 사랑의 질문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다른 말로 바꾸면 "아담아 네 꼴이 무엇이냐, 왜 벌벌 떨고 있느냐, 왜 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려고만 하느냐" 이러한 뜻입니다. 자녀들이 잘못되었을 때에 슬퍼하는 부모의 심정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불행을 외면하시지 아니하십니다. 나의 고민을 모르시는 체 하지 아니합니다. 내가 범죄 했을 때에 방치해 버리시지를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날이 서늘할 때에 아담을 찾아주신 것처럼 나를 구원해 주시려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범 죄 한 아담이 동산나무 숲 사이 깊이 들어가 숨었습니다. 오늘 인생들이 어디로 숨습니까? 쾌락이라는 숲 속으로 숨습니다. 자기라는 숲 속으로 숨습니다. 재물이라는 숲 속으로 숨습니다. 하나님은 숨어버린 아담을 구원해 주시려고 찾아오시고 사랑으로 부르셨습니다.

 

  셋째,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죄를 범하고서 수풀 속에서 떨고 있는 아담. 어쩌면 내 모습 일지 모릅니다. 아담에게서 세 가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두려움입니다. 책임전가입니다. 멀리 멀리 떠났습니다. 아담이 불행해진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용서받지 못하면 두려움과 형벌이 따릅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28:13)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를 찾아주십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믿음 있는 친구를 통해서 찾아오시고, 경건한 어머니의 기도를 통해서 찾아오시고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에게는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부르시는 사랑의 음성 듣는 귀가 열려야합니다.

 

  결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음성을 듣고 숨어있는 나의 동굴 속, 수풀 속에서 빈 손들고 나와야 합니다. 나오면서 "내가 범죄 하였나이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나와야 될 줄 압니다. 이제 빈 손들고 예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2013년 8월 18일(주일) 청주소명교회 진범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