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엄청난 착각 2 - 누가복음 15장 11-24절(주일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5. 11. 13. 13:16

 

 

담임목사 김종웅

 

 

엄청난 착각 2

누가복음 15 11-24

2015 11 8일 주일 낮 예배

                                                                                                                                                          No. 235

우리 하나님의 말씀 누가복음 15장입니다 11절에서 24절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 말씀을 하셨는가 헤아리면서 여러분들이 들으시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은 좋겠습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멘

 

●한국 기독교인들의 두 가지 착각 / 구원과 구원받은 자의 삶 즉 신앙 생활.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만 하면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신 구원을 표현하는 것인데, 본질적인 표현은 알지 못하고, 형태만 붙잡고 지키는 줄 알고 있다.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 중에는 정말 엄청난 착각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두 가지 착각이 심한데 하나는 예수 안에서 일어난 구원에 대해서 착각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저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인 줄 알고, 또 기도하면은 하나님이 부자가 되게 하는 줄, 또 기도하면은 병이 낫는 것, 이런 것이 구원이라 생각해요. 또 하나는 구원받은 자의 삶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고, 또 와서 조금 봉사하고 뭐 헌금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 이런 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인 줄 알아요.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하고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신 그 구원을 표현하는 것인데, 그 본질적인 표현은 알지 못하고, 형태만 그저 붙잡고 지키는 줄 알아요.

 

1. 구원을 제대로 알면 눈을 감아도 하나님 예수님 생각만 해도 좋고, 신앙 생활하게 된 것이 내 인생에 가장 큰 기쁨인 것을 느끼면서 신앙 생활 할 수 있어야 되요.  탕자가 아버지에게 상속받아서, 아버지의 품을 떠나 자기 힘으로 능력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탕자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무엇이 문제냐 하면은 정말 예수 믿고 얻은 구원이 얼마나 좋은 것인데, 정말 우리가 그렇게도 원하고 바라든 삶인데, 그러지 못하고 너무 무미건조한 신앙 생활을 한다 이 말입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이 구원을 제대로 알면은 눈을 감아도 하나님 생각만 해도 예수님 생각만 해도 좋고요, 신앙 생활하게 된 것이 얼마나 내 인생에 가장 큰 기쁨이고, 다행인가 하는 것을 느끼면서 신앙 생활 할 수 있어야 되요. 왜 그런가 하면 그 두 가지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저도 뭐 스마트폰을 쓰는데, 그냥 스마트폰에서 폰만 생각하는 거에요. 전화 오는 것 받고, 걸면 되는 줄 알아요. 그러다 보니까 스마트에 대한 관심이 없으니까, 그 스마트 안에 얼마나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누리지도 못하고 그저 호주머니만 무겁게 하는 것.

 

그게 여러분 똑 같아요. 스마트폰의 그 내장된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는 거나, 그래서 호주머니만 무겁게 하는 것이나, 교회의 신앙 생활하는 것이 여러분들의 삶의 또 다른 짐이 되는 것이나, 다를 게 뭐 있나 말입니다. 정말 오래 믿어도 구원 모르는 사람 많아요. 그 구원에 대해서 탕자의 비유에서 아주 정확하게 설명 해주고 있어요 예수님이. 여러분 그 탕자의 비유에 이래 보면은 사람들이 또 목사님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많아요. 탕자를 윤리적인 타락한 사람이라든지, 종교 생활 하지 아니하고,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 되는 것을 탕자고 타락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라고 하고 다시 교회 나와서 신앙 생활 하는 것이 회개고 구원이라 생각해요.

 

그 정도 아닙니다 여러분, 탕자는요 그러면은 기독교는 윤리가 돼 버려요, 그런 것이 탕자고 돌아오는 것이 회개라고 생각하면 기독교는 종교가 됩니다 다른 종교와 같은. 예수님께서는 생명 없는 유대교 인들에게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굉장히 잘 그르쳐 주고 있는 거에요. 탕자는 뭐냐 하면은 창세기 3장 이후에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설명 하는 거에요. 인간이 하나님의 품 안에서 살아야 되는데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풍성한 삶을 살아야 되는데, 탕자가 아버지에게 상속받을 유산을 받아 가지고, 아버지의 품을 떠나서 자기 힘으로 자기의 능력으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탕자입니다.

 

그것이 창세기 3장 이후에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간의 실존이라 말입니다. 성경에서 죄인이라고 할 때에는 종교적인 규범을 어기는 것 그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사회적인 규범을 어기는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의 품 안에서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아버지의 풍성함을 의지하고 믿고 살아야 할 인간이 아버지로부터 상속을 받아서, 독립을 해서 자기의 힘과 자기의 능력과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며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죄인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세상사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 그런 거다 말입니다. 그 왜 이것이 중요한가?

 

2.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들은 우리가 분리되면서 받은 생명만큼 소진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탕자는 타락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간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누리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구원의 기쁨이다.

 

왜 우리가 이런 인간의 실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고, 왜 이것이 중요하냐 하면은요 그 속에 구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인간의 모든 고난이 그러한 실존에서 볼 때에 정확하게 이해되기 때문에 치유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탕자가 아버지에게 유산을 받아서 멀리 떠나서 살아갈 때에 자기가 가지고 아버지에게 받은 상속분만큼은 살아갈 수 있는 거에요. 우리가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 선언한 인간들은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생명만큼은 살아가는 거에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로부터 끊임없는 공급을 받지 못하는 탕자는 상속받은 것을 소진하며 살듯이 우리의 인생도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들은 우리가 분리되면서 받은 생명만큼 소진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특히 우리의 생명과 건강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120세를 살아갈 수 있는 생명력을 상속해 주는 거에요. 그런데 살다 보면은 우리의 생명이 점점 소진해 지잖아요. 젊은 날에는 여러분 죽는다는 생각 한번도 못하고 살았잖아요. 천년만년 살 것 같이 살았잖아요. 왜 받은 상속이 아직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한 60세가 넘어가고 이러면은 이제는 자기의 인생을 카운터다운 해 진다고, 이번 주에도 제가 친구 목사에게 비 오는 석선산과 빗소리를 동영상에 담아서 보내면서 인생 카운트다운 하게 되네 이러니까 우리가 그런 나이가 되었네 이러던데, 여러분 그러면서 사람은 점점 이제 우울해 지고, 힘들어 지는 거에요.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은 지혜 뭐 아무리 많아 봐야 200 IQ 이상안 되거든요. 뭐 조금 더 받은 사람은 200이고 또 덜 받은 사람은 두 자리 숫자겠지요. 그런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소진 해져요. 우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총명해 져야 되는데, 점점 더 소진해 지잖아요. 그래서 젊은 시절에는 그렇게 모든 것 기억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다 보면은 여러분 가스렌지에 물 얹어 놓은 것도 모르고 외출하는 것. 다 우리의 지혜가 소진해 가는 거에요. 옛날에는 조그마한 거만 봐도 아 정말 아름답고, 어떻다고 하다가 나이가 들면은 좋은 거나 안 좋은 거나 이제 무덤덤해 지는 것도 우리의 감정이 소진해 져 가는 겁니다.

 

여러분 이런 인간의 실존이 왜 중요하냐 하면은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정말 우리가 누리며 살아야 되고, 나누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생이에요. 불안하니까 쌓다가 만 사는 것이 인생이에요. 여러분 예수 믿고 얻은 구원 어디에서 내가 예수 잘 믿었다 이런 것이요, 기도 응답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나는 내 수고를 누리고, 그 누림이 나 혼자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누리는 정말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구원의 기쁨이 되야 되요. 누가 그런 삶을 사는가? 종교 생활 하는 사람 아닙니다. 구원을 모르니까 교회 나와서 하나님에게 잘 보여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가지면은 또 그것이 축복이라고 하는 착각 속에서 산다고요. 그게 빈곤의 삶인데 그건 왜 그래 사는가? 하나님 품 떠났기 때문입니다. 어제도 제가 9시부터 10시 반까지 EBS 우리 교인이 보라 해서 내가 봤는데, 제목이 한국의 없는 부자들의 이야기였어요. 참 그 보니까 정말 우리나라는 그만하면 되었는데, 누리도 못하고 얼마나 많이 쌓고 살아갑니까, 그래서 애로스라는 것을 제가 이야기 할 때 남녀간의 사랑 말하는 게 아니에요. 애로스는 무엇의 가치를 느껴서 그것을 가지려고 하는 죄인들의 욕구를 말하는 거에요. 왜 가진 사람이 더 합니까? 돈에 대한 가치를 알거든요. 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왜 공부하려고 합니까? 지식의 가치를 알거든요. 그래서 애로스의 욕구가 강하다 말입니다.

 

3. 애로스가 우리의 삶을 부유하게 하지는 않는다, 아카페 입니다. 죽음 앞에서 이제는 하나님 천국을 소망하는 것이 회개이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그 받은 몫을 가지고, 자기가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타락이고 죄. 구원의 잘 못된 생각을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로 무너뜨려야 된다.

 

그런데 그 애로스가 우리의 삶을 부유하게 하는가? 아닙니다. 아카페 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우리가 구원과 우리가 어디에서 구원이냐 하면은 하나님의 그 풍성한 부유함에서 우리가 유산을 받아서 독립했기 때문에 우리는 누리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고 산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성령이 우리 속에 주시는 마음이에요. 여러분 이 탕자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제는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것 다 소진했으니까, 이제는 아버지 집으로 가야 되겠다 그것이 회개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죽음 앞에서 정말 이제는 하나님 천국을 소망하는 것이 회개이거든요.

 

여러분 정말 죽음의 순간에 와서 후회하는 게 뭡니까? 내가 왜 그렇게 살았던가?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너무나 많아요. 왜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저 교회 다니고, 그저 여러분 와서 뭐 봉사 좀 하고, 선교하고 뭐 이러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제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탕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는 인간의 실존과 그 실존에서 구원을 탕자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윤리적으로 타락한 것 회개하라 그러면 기독교는 윤리입니다, 그 윤리라는 것은 그 시대에 만들어 낸 인간이 만들어 낸 규범이잖아요 언제나 변해요. 

 

종교적인 규범을 지키지 않는 타락, 그 규범도 사람이 만든 거에요. 우리의 타락은 하나님에게 붙어서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부유함을 누리면서 살아야 할 인생이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하나님 내 몫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그 받은 몫을 가지고, 자기가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타락이고 죄입니다. 이 근본적인 것을 모르고 그저 유교적인 규범과 윤리 속에 교회를 봐 버리니까, 여러분 오늘도 우리 교회 신앙 생활 하면서 신명기 강해 끝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읽으라고 놓은 게 아닙니다.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신앙 생활 하면서 왜 해야 되는가? 왜 우리 교회 다녀야 되는가? 야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나와 같이 구원을 얻은 백성이 누구일까? 이런 감정이 있어야 되요.

 

그러려면은 여러분들이 그 동안 잘 못된 구원에 셋팅 해 놓은 생각을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로 무너뜨려야 되요. 그리고 여러분들 탕자가 아버지 집에 왔어요, 우리가 천국을 바라는 게 그러잖아요 천국을 영원의 세계라는 것이 뭡니까? 그곳에는 소진 해 감이 없는 거에요. 이제는 우리의 생명이 120년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영원이에요. 그곳에는 우리가 사랑이 부족해 가지고, 다른 사람을 미워할 일도 없어요. ? 충분한 사랑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실존을 아는 사람은 천국을 바라본다고, 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것은 이제 내가 정말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고,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해 주는 그 평안한 곳에 들어가야 되겠다, 이것이 신앙의 시작이 되야 됩니다.

 

4. 예수님이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다 내게로 오라는 것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였든 존재의 본질인 그 하나님에게로 오라는 것이다. 그 사랑하는 아버지의 품에 이제 맡기고, 내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해 주심을 믿고 살아야겠다. 이것이 신앙의 출발이고 믿음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집니까,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수능시험 치는 자식의 그 수능이 여러분들에게 수고의 짐이 되는 이유는 그 수능의 결과에 대한 지식이 없잖아요. 또 그 내 자식이 수능의 점수를 내가 조금이라고 더 높게 해 줄 능력이 내 속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수능이라는 수고의 짐이 우리에게 턱 짊어진다고요. 왜 직장 다니면서 여러분들이 스트레스를 받습니까? 내가 먹여 살리려고 하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간의 실존 때문이었거든요.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버지 품으로 오라는 거에요. 이제는 너희들이 만든 그 신의 품이 아니고, 예수님이 계시 해주신 그 하나님의 아버지, 우리를 존재하게 하였든 존재의 본질인 하나님 그 하나님에게로 오라는 겁니다.

 

왜 하나님이 창조의 하나님이어야 됩니까? 제가 책에도 써 놓았지만, 창조의 하나님을 알아야지 천국 간다고요, 그건 정보고 지식입니다. 성경은 그런 게 아니에요. 히브리적으로 창조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입니다. 왜 자식 낳습니까 사랑하기 위해서 낳습니다. 자식 때문에 내내 먹을 것 안 먹고, 내가 쓸 것 안 쓰고, 자식이 행복한 걸 보면서 행복 하려고 하는 것이 부모이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행복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휘황찬란한 왕궁에 있는 그런 신을 그리는 모든 종교에게 예수님은 오셔서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었다. ? 우리를 위해서. 그 사랑하는 아버지의 풍에 이제 맡기고, 이제는 내 힘으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해 주면서 살아야 되겠다. 이것이 신앙의 출발이고 믿음입니다.

 

거기에 쉼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자 그러면은 또 하나의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되는 것이 탕자가 아버지의 집에만 오면 다 끝납니까? 아버지의 집에 와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다시 한번 아버지에게 잘 보여서 나머지 유산을 또 받아 가지고 내가 나가서 멋있게 살아 보자, 그러면은 아버지의 부유함을 못 누리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의 교인들이 그런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해 놔 놓고, 교회 와서는 다시 뭐하게 됩니까? 하나님으로부터 한 몫 받아 가지고, 내가 원하고 내가 내 마음대로 살아 보려고, 하나님 돈 주세요 권력 주세요 한다고요. 그런 사람은 결코 아버지 집에서 부유함을 못 누립니다.

 

우리 한국의 교인들의 빈곤함이 그런 겁니다. 그런 그들에게 성경은 뭐라고 그래요? 부하려고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에 걸린다. 그런데도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 예수 믿으면 권력 가진다, 다시 가출 준비하는 것이 신앙 생활인 줄 안다고. 여러분 그런 것 아니에요, 이제 그런 것에 속지 마시라고요. 이제 아버지 집에 왔으면은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을 기대하며 살아야지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수없이 설교한 내용입니다. 부모님에게 상속받으려고 부모님의 호주머니를 노리려고 효도하는 것은 효도가 아니잖아요. 부모님 때문에 행복하지 않잖아요. 부자 부모님의 호주머니 때문에 행복한 거잖아요. 진짜로 자식은 치매가 걸린 엄마도 살아만 있어 줘, 엄마 때문에 행복합니다.

 

5. 진정한 구원과 회개는 아버지 노릇 해 줄줄 알고, 그곳에 거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살 때 행복과 부유함이 있다.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오용하지 말라 했다. 존재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내 힘으로 산다면 더 큰 인생의 짐을 진다.

 

탕자가 아버지 집에 가서는 이제는 아버지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려고 해야 진짜 아버지의 아들의 지위로 들어가는 겁니다. 참 우리 교회가 그래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구원을 아니까 정확하게 목표를 가는 거에요. 어제도 제가 들으니까 나는 저 아직까지 모아미래도 사는 줄 알았더니만 그러더라고 아니에요 9단지에 왔는데, 우리 교회 연세 드신 분입니다. 아들이 그렇게 찾아와서 인사하고 살갑게 하다가 팔아 가지고 주고, 임대로 오니까 그 다음에 안 온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울증 걸렸다고. 여러분 그것이 효도가 아니에요. 우리 교회 여러분 지금 어린이 집 하는 분이 몸이 안 좋아요. 그런데도 애들 급식 좀 더 해서 그런 것 나누어 주겠다고,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또 하나님께 아버지에게 한몫 받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진정한 구원과 회개는 아버지 노릇 해 줄줄 알고, 그곳에 거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그곳에 아버지 집에 거하려면은, 이제는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생각을 버려야 되요.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해야만이 아버지 집이 진정 행복하고 부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여기 와서도 자꾸 아버지 집에 와서도 자기 주장을 하면은 아버지 집은 불편할 따름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은 아버지께로 돌아간 것을 모르고, 아버지 집의 부유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릴 때에 그랬다 하잖아요, 제 아버지가 저에게 규제가 참 심하니까, 정말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제일 부러웠든 아이가 고아였다고, 그런데 그 고아가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삶입니까? 불상이 여겨야 될 겁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고아입니다, 지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고, 그러나 교회 다니는 사람은 아버지의 회초리가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주신 규범이 우리의 가정을 든든히 하고, 나의 삶의 울타리가 되게 하는 것인 줄 알고, 그 규범 안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오용하지 말라고요. 그리스도가 주신 자유를 가지고 다시 종 노릇하지 말라.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에 와서 여러분 어쩌면은 부자가 되려고 하고, 잘 되려고 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부유함을 누리려면은 많은 교인들이 그런 이야기 합니다. 목사님 교회 와서 뭔가 그런 것을 못 느끼겠다고, 그건 뭐냐 하면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교회에서 얻어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삶의 안전의 울타리 역할을 해 줍니다. 그래서 아버지 집에 오면은 형님한테 양보하는 것도 있어야 되고요, 개임하고 싶은 것 안 해야 되고요, 나 혼자 살 때는 양치질 안 하고, 세수 안 하고, 발 안 씻고 자도, 아버지 집에 오면 다른 가족 위해서도 그런 것들도 하고, 그래야 아버지 집이 참 편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정말 이런 부분들 아셔야 됩니다. 오늘도 여러분들 아무리 여러분들이 많이 가지고 있어 보세요, 존재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내 힘으로 살아가려면은요 더 큰 인생의 짐을 지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아버지 노릇 하는 것을 믿으면 살아가려면은 가정 안에서의 평안함을 누리는 신앙 생활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두 가지가 하나 있어야 되겠지요. 왜 교회를 선물로 주었는가? 가정이 그 가족의 구성원의 삶의 안전의 울타리가 될 때에 사람들은요 욕심 부리지 아니하고, 아버지 노릇 해 주심 속에 평안을 누리는데, 이 가족의 울타리가 가정이 자기의 가족의 구성원들의 필요를 외면할 때에는 안 되잖아요. 중요한 이야기 입니다.

 

6. 교회는 구원 받으려고 아버지 품에 온 성도들의 가정과 같은 삶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이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교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그런 가정이 되고, 국가가 그런 국가가 되고, 회사가 그런 회사가 되게 하는 것이 선교이다.

 

교회가요 왜 설립의 목적이 어디 있는가? 이번에 장로님 되실 분들 당회원들 꼭 들으셔야 되요.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체면 때문에 직분 가지는 것이 아니에요. 당회는 교인들이 아버지 품으로 온 이들에게 삶의 울타리 역할을 해 주려고 교회를 세웠구나 이것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더 이상 종교의 기관이 아니고, 구원 받으려고 아버지 품에 온 성도들의 가정과 같은 삶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 좋은 가정은 아버지와 엄마와 형님이나 누나가 더 희생하는 겁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더 희생하지 않고, 아버지가 내가 번 것 내가 쓴다고 하면은 그 가정은 엉망진창 되는 거지요. 장로님들이 교인들 보다 더 헌신하려고 하는 이유는 더 성숙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그래야 되고, 권사님이 그래야 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헌신만 요구를 했지, 그 헌신을 이룬 교회를 가지고, 교인들의 삶의 울타리로서의 교회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돌아는 왔는데, 하나님 아버지 노릇 해 주실 기대를 가지지 못하게 한다고요. 선교와 전도가 뭔지 아세요? 이런 그리스도의 구원이 교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그런 가정이 되고, 국가가 그런 국가가 되고, 회사가 그런 국가가 되게 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여러분, 제국적 선교 지배와 확장이 아니에요. 그거는 제국주의가 범람하는 19세기 20세기의 선교 방법이었다고요. 소금과 빛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가 왜 여러분 복음화 되야 됩니까? 저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봤는지 몰라도 지뢰에 발목이 나가는 그런 사건이 있었잖아요 북한군이 와 가지고, 우리 교회에 어느 집사님인가 권사님 아들도 그때에 제대 안 하겠다고 해 가지고, 롯데인가 어디에 취직이 되가 있다고 하더라고, 학교에 이제 아직 더 가야 되는데, 면접하러 갔더니만 그러 더래요 이제 학교 공부할라 하지 말고, 실컷 놀다 오라 취직은 정해 졌으니까 ㅎ ㅎ ㅎ 그런데 그 사람들이 80명 정도래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인가 하면 왜 80명만 그래야 되고, 왜 그런 아이들에게는 미래를 보장해 주는 그런 일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애국심을 고취하려고 해야 되는 그런 나라인가, 이 생각이 들더라고.

 

7. 국가가 다음 세대에는 대학을 못 가도 잘살 수 있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된다. 몇 명의 헌신을 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가지고, 교회 사랑 하나님 사랑 고취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는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와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 국가가 우리 아이들이 오늘도 수능 시험치는 아이들에게 제가 기도를 하니까 우는데 그 우는 게 뭐냐 하면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서 제가 기도 그래 했거든요, 이 아이들이 지나고 다음 세대에는 대학에 안 가도 잘살 수 있는 나라가 되도록, 이 아이들이 우리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 했거든요. 교회가 예수 믿는 사람의 자녀는 서울 대학 좋은데 보내 준다고 이렇게 해 버리니까, 더 탕자를 만들어 내 버리는 거지요. 저는 여러분 우리 국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가 그곳에 있고, 대통령이 예수를 믿어야 할 이유가 그곳에 있는 겁니다.

 

그렇게 무턱대고 애국심을 나타내는 사람 몇 명을 모범적으로 특권을 줘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조장을 하는데, 국가가 자기의 기능을 통해서 그래 안 해도, 그런 특권이 부여되지 안 해도, 나라가 없으면 내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는 그런 국가를 젊은 사람들에게 준다고 하면은 김정은이가 핵을 가지고 와도 걱정 안 하게 되겠지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명의 헌신을 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가지고, 교회 사랑 하나님 사랑 고취하면 안 됩니다. 교회가 성도들에게 하나님 노릇해 주시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도록 그래서 자신이 누리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누리며 살아도 자신의 삶의 안전의 걱정이 없는 노릇을 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잘 쳐야지요.

 

저는 우리나라가 선교 복음이 그런 거라 생각해요. 그런 모습을 우리 교회가 국가에서 보여 줘야지요. 여러분들 자녀들 가운데 대통령이 나오면은, 그 다음에 대통령은 그런 자녀들에게 취직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렇게 되었을 때에 나라 없는 개인이 어디 있습니까? 내 후손을 위해서라도 저는 제대 안 하고 나라 지키겠습니다. 절반쯤은 젊은 사람들이 그래야 된다고 봐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로 2천년 동안 유리방황 (流離彷徨) 한 결과, 육일전쟁에서 가잖아요 아랍은 도망가지만. 여러분 구원을 그냥 천국에 들어가는 티켓 따는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은 내재적 자원이 소진해 가기 때문에 누리지도 못하고 나누지도 못하는 정말 다른 사람들과 영원한 생존 경쟁 속에, 파멸해 가는 세상 속에 예수님이 오셔서 너희들의 진정한 구원은 남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는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와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 삶을 살도록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교회라는 울타리를 우리에게 만들어 준겁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이 세상의 국가가 여러분들의 회사가 바뀌어 져 가야 됩니다. 저는 회사 어떤데 가보면은 모든 직원들은 가족과 같이 이럴 때에, 임금을 착취하기 위해서 가족의 그런 slogan 내세우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그리스도 인이라면은 여러분들이 정말 선교하고 전도하는 사람이라면은 여러분들이 직장 생활해서 여러분들의 직원이 회사 망하면 나도 없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런 회사가 구성원의 삶의 안전이 되도록 그게 신앙 생활입니다. 이 구원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에서는 멀리 떠나서 종교 생활 하고 있는지 오늘 한번 돌아봐야 됩니다. 당회는 분명히 그렇게 해서 교회 설립의 목적인 줄 알아야 되고, 여러분들은 이제 생각을 바꾸세요. 하나님에게 잘 보여서 복 받으려고 하지 말고요, 독립 선언 하려고 하는 겁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을 믿으면서 수고의 짐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사는 신앙 생활 하세요.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그 가정의 테두리 위에 건강을 위해서 주신 법, 자신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는 그 법의 테두리가 지식이 아니고요 여러분들이 구체적인 가치의 판단이나 삶의 선택에서 그 법에 의해서 살아가야 됩니다. 오늘날까지 이런 부분 몰랐다면은 여러분 우리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을 믿지 못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해서 내 마음대로 살려고, 인생의 무거운 짐을 졌든 자들이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것이 구원과 회개인 줄 알아야지요. 하나님 한번 믿어 보세요. 구원을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경이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그 구원을 제대로 알아서 이제는 교회가 여러분들의 짐이 아니고, 신앙 생활이 여러분들의 짐이 아니고, 교회가 천국 가는 대기소가 아니고, 하나님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교회만 생각해도 걱정 근심이 사라지는 그런 신앙 생활이 맛이라도 보아 지는 삶의 출발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드린 헌금입니다. 조금 드리고 더 많은 것 받아서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우상숭배적 복의 마음이 제하여 지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든든히 세워 져야만이 하나님 노릇 할 수 있고, 교회가 하나님 노릇 해야만이 나의 인생의 수고의 짐을 내려놓을 줄 알아서 남들이 하지 않는 헌신의 마음으로 주님 드립니다. 열납 해 주시고 이 예물이 건강한 교회 든든한 교회가 되어져서 아버지 품을 떠나고 생명의 존재에서 분리되어서 아무리 가져도 만족과 행복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그런 세상 속에서 또 그런 세상을 주님이 이루신 구원 주님이 이루신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부끄럽게 할 수 있는 지극히 적고 미미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 당회에 복을 주시고, 우리 교인들에게 헌신의 마음 주시고, 이제 우리 나라도 애국심을 조장하기 위해서 몇 명의 헌신 자들에게 보상하는 그런 국가가 아니오, 국가가 위기가 처했을 때에 젊은이들이 분연히 생명을 걸고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그런 국가를 성경적 토대 위에서만이 말들 수 있음을 알게 하여 주시고, 이제 우리의 회사나 나라의 재벌들이 말 안 들으면 생존의 위협이 있다는 것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같은 유기체적인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받은 사명임을 알도록 교회가 그들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도록 주님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고, 구원과 신앙 생활을 분명히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 대로 살아갈 수 있는 한국 교회로 삼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잘 못된 믿음으로 인생의 짐 위에 종교적인 짐까지 지고 살아가는 유대 교인들에게 우리를 창조하시고,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이 살아가지만, 자기의 창조물들은 가장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을 몸소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가 아버지의 품에서 참된 평안과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우리의 삶의 울타리가 되도록 교회를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오셔서 우리 모두를 교통케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이제는 회개와 구원이 천국 들어가기 위한 티켓이 아니오, 내 힘으로 내 자원의 능력으로 살아가려고 하든 사람이 하나님의 부유함을 의지하며 살기를 원하는 삶으로 돌아서는 것이 회개이고, 아버지의 부유함을 누리며 사는 것이 구원인 줄 알아서 예수님이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깨닫고, 그 구원의 삶을 만끽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