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친구 예수님 (요한복음 15장 9-17절 (1-27절) 주일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6. 9. 16. 14:28

 

 

 

 

담임목사 김종웅

   

친구 예수님

요한복음 15 9-17(1-27)

2016 9 11일 주일 낮 예배

                                                                                                                                                             No. 280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하버드 대학 연구 논문: 서로 소통하고 화해하며 산 사람이 행복한 생애를 살더라는 결론. 하나님은 농부고, 예수님은 참 포도 나무고, 제자들은 가지다. 가지에 열매가 맺으려면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서로 사랑하게 된다.

 

지난 주일 정말 우리가 이 설교의 중요한 시간에 조양규 장로님이 보내어 준 영상 한 12분짜리를 여러분들이 봤습니다. 하버드 대학 성인 발달 연구원에서 75년 동안 729명의 삶을 추적해서 어떤 사람이 행복한 생애를 산 사람인가? 그것을 연구하는 논문이었지요, 75년 참 귀합니다, 왜 그랬는가 우리는 잊어버리고 또 우리는 무엇이든지 다 경험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경험하면은 이미 지나가서 후회하기 때문에 그렇게 길게 다행히 지금까지 연구가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요 행복한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행복한 것을 그 논문에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은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면은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가지면 행복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어쨌든 간에 더 많은 부자가 되려고 노력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유명해 지면은 행복해 질 거라고 생각해서 어떻게 하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인정을 받으려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목표한 것이 이루어지고 성취가 되면은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서 자기가 어던 목표를 세워서 그것을 이루는데 전심전력하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논문의 결과는 뭡니까? 많은 돈을 가지게 된 사람이 행복한 사람도 아니고, 또 유명하게 된 사람이 행복한 사람도 아니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잘 소통하고 화해하며 산 사람이 행복한 생애를 살더라. 하는 결론을 내렸지요.

 

1. 성경에도 너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할 때에 좋은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행복 해지는 것이다. 인생에는 Rewind가 없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려면 나의 계명을 지켜라, 그래야지 너희가 열매를 맺을 것이다.

 

성경에도 이미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지식이 아니라 바꾸어야지요. 이제 예수를 믿었으면은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그 노력만큼이나 다른 사람과 화해하고, 소통하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행복해 집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이 좀 그런 생애를 살아가기를 가랍니다. 성경에도 너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할 때에 좋은 관계 속에 있다는 거지요, 그럴 때 그 좋은 관계라는 것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관계가 아닙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나하고 다르고 그 사람 사귀면 손해가 될지라도 그런 사람을 용납하고 화합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행복한 생애를 살아간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남들에게 인기가 있고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만큼 다른 사람과 나하고 다른 사람과, 내가 사귀면 손해가 되는 사람과, 내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소통하고 화합하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지 행복해 진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발견된 어떤 것들을 성취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만큼 그런 인간관계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행복 해지는 겁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런 관계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그러고, 천국에 가면은 우리가 모든 사람을 다 이해하고 알게 되어져서 완전한 소통과 화합이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지, 여러분 큰 멘션이 있고, 이런 곳이 아니라고 말씀 드렸고, 성경은 그렇게 증언하고 있어요.

 

우리가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사랑이라는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지난주일 여러분들에게 참 말씀을 드려도 아마 별로 그렇게 순종을 안 했기 때문에 큰 변화가 없이 더딘 변화가 일어납니다. 독서의 계절인데 여러분들에게 두 권의 책을 읽으라 그랬지요. 풀꽃도 꽃이다, 또 소금이라는 책도 읽어 보라고 그랬지요. 저는 이번 주에는 또 제가 썼지만은 박집사에게 보내는 편지 목사님들의 모임이 있어서 욕지도에 이 책을 들고 가서 다 읽었습니다. 배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가야 되는 그 순간에 또 오면서도 읽고 했는데, 읽어 보면서 야 내가 이런 말을 했구나 ㅎ ㅎ 정말 주옥 같은 말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야 이것 한번들은 사람이 이 내용대로 알고 살겠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설교하고 기록한 나도 이걸 보면서 새롭게 느껴 지는데, 여러분 이 말씀은 성경을 주석한 것이거든요, 다시 한번 읽어 봐서 정말 사랑이 뭔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뭔지를 여러분들이 발견 해서 그대로 순종함으로 가장 행복한 생애 우리가 인생 다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테이프는 여러분 음악 테이프는 rewind가 있어도, 인생은 rewind가 없잖아요. 후회하지 않는 생애를 살아가서 마지막 순간에 참 내가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다님으로 말미암아 행복했노라 하고 주님 앞에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야 되지 않겠어요, 한번 읽어 보시라고요. 오늘 말씀이 그런 말씀이에요.

 

오늘 1절에 보면 뭐라는 가 하면은 농부는 하나님이래요, 예수님은 참 포도 나무에요, 우리는 가지래요, 그 농부가 포도 나무를 가꾸는 것은 가지에 열매를 맺기 위함 이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가지가 열매를 맺으면은 나무에 붙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거에요. 그런 나무는 모아서 불살라 버린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뭐라는 가 하면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려면은 나의 계명을 지켜라, 그래야지 너희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서 교회에 얼마나 열심히 다니는가, 얼마나 헌금을 잘하는가, 봉사를 잘하는가, 이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에요. 그건 형편에 따라서 다 다르잖아요.

 

2.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만나면 손해지만, 그런 사람들과도 끝까지 소통하며 산 사람들은 내가 참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생애를 살았다고 마지막에 말할 수 있다. 서로 사랑하라고 이야기 한 것이 진리다. 마음에 들지 안 해도 서로 화합하고 소통하는 것이 진리를 고수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봉사하려 해도 시간이 없는 분이 있는가 하면은, 봉사가 남는 시간 때우는데, 중요한 일이 있는 사람도 있다고요.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화합하며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거에요. 그 열매가 없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그대로 들으셔야 됩니다,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요즘은 별로 그런 일도 없지만은 임종 많이 지켜 봤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말하는 것이 참 진실된 말입니다. 열심히 살아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이루어 간 사람이 나 후회 없고 행복한 생애를 살았다고 안 해요.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죽는 사람 너무나 많이 봤어요.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 내가 이것 써 보도 못하고 죽어서 억울하다고 하고 죽는 사람 참 많이 봤습니다. 남에게 인기를 인정을 받아서 인기 있는 것을 살려고 했든 사람이 왜 내가 남의 눈의 시선에 그렇게 좌지우지하며 살았는가, 그런데 정말 후회 없이 행복한 생애를 살았다고 하는 사람은 내가 예수 믿고 그 원수 같은 남편을 용납하며 화해하며 살은 사람 다른 사람과 내 마음에 들지 않지만은 만나면 손해지만은 그런 사람들과도 끝까지 소통하며 산 사람들은 내가 참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생애를 살았다고 하고 죽는 것 많이 봤어요. 우리 이제 기준 바꾸어야 되요. 저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그런 이야기하는 겁니다.

 

왜 우리가 소통하지 못하고 우리가 화합하지 못하는가, 일하려고 하다가 그래요 그래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고 내가 이야기하는 겁니다. 회사에서 결코 좋은 관계의 직장 동요가 되지 못하는 것은 사람보다 일이 우선인 것이 회사이기 때문이거든요. 교회는 그러면 안 된다고요, 어떤 성과와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 능력만큼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이거든요 그게 교회에요. 그것을 주님이 세우신 거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산업화의 지배 받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그런 가치관들이 우리를 지배해 가지고 교회에서도 그저 일을 하려고 그러고 여러분 어떤 성과를 내려고 하고 그러다가 얼마나 많이 싸우고 지지고 볶습니까, 우리 한국 교회의 모습이 그런 것 아니에요?

 

자기하고 다르다고 진리를 고수한다고 싸워요, 얼마나 교파가 많습니까, 진리를 고수하는 것은 싸우지 않는 것이 진리를 고수하는 거에요. 나하고 다르더라도, 택도 없는 말을 하더라도, 분리되지 않는 것이 진리를 고수하는 거에요.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이야기 한 것이 진리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진리를 고수한다고 바르게 믿는다고, 나하고 다른 것을 배척하는 한국 교회잖아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진리를 고수하는 것은 나하고 다르고 내가 이익이 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안 해도 서로 화합하고 소통하는 것이 진리를 고수한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그 진리의 잣대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나누어 지는 것은 진리를 고수하는 게 아니에요.

 

좀 이익이 되면은 그저 온갖 환영을 다했다가, 좀 손해 보면 언제인 것 같이, 좀 유익이 되면은 그렇게 호들갑을 떨다가 조금 손해가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둥 예수 믿는 사람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이 저는 그래 생각해요, 사랑이라는 것 정리할 때 그랬잖아요.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참아 주는 거라고, 손해가 될지라도 참는 정도가 아니라 친절을 베푸는 거라고, 신앙의 연조가 더 해 갈수록 그래야 되요.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 보면서 참 그렇게 하나하나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 감사하다, 라고 생각을 하는 거에요. 아무런 일이 없는 게 아니에요.

 

3. 우리는 사랑이 유한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일정 부분 사랑하다가도 미워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하셨다. 유대교는 종교적으로 완벽하게 행했다. 모두 랍비에게 순종했으나 왜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요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교회는 자꾸 사랑하라고 그래요, 자 이말 잘 들으셔야 됩니다. 내 힘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인간은 사랑할 수 없어요. 왜 우리는 사랑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정 부분 사랑하다가도 미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지식이 유한하고 보는 것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보는 것 자기가 아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니까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억울한 거에요, 오해가 일어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고백이 먼저 있어야 되요.

 

오늘도 그 뒤에 보면은요 13절부터는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그러면서 뭐라는 가 하면은요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이말 잘 이해하셔야 되요. 종은요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 게 종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왜 사랑해야 되는가, 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려야 되는가 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무조건 하나님의 사랑 받아 드려, 사랑해, 그러면 복 받아, 그러면 행복해 져, 이것은 종입니다. 유대교가 그랬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거에요. 유대교는 얼마나 종교적으로 완벽하게 행했는지 몰라요. 랍비가 하는 말에는 다 순종했어요. 그런데 왜 해야 되는지 몰라요 알지 못하고 순종해요. 알지 못하고 순종하기 위해서 뭘 하게 하는가 하면은 주인은요 보수와 대가를 지불하는 겁니다. 종은요 보수를 받으려고 일하는 자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하게 하려고 사랑하면은 천국 가, 사랑하면은 복 받아, 사랑하면은 행복해 져, 라고 만 이야기한다면은 종이에요, 그런 대가가 아니라 말입니다. 이것 한번 읽어 보세요 이 속에 있어요, 너희는 너희를 친구라 하였는데 내 아버지께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알려 함이라 그래요.

 

친구에 대한 오해도 참 많아요. 친한 사이를 친구라 생각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친하게 오래 지낸 사람 아니에요. 우리는 막 대하는 것이 친구인 줄 알아요. 그래서 친구에게 상처가 많고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친구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됩니다. 저는 사실은 부부지간이나 그 다음에 친구 사이에 말을 놓는 것은요 친한 증거가 아니에요. 저도 뭐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어차피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대학 때부터 사귄 친구 중에 서로 말 높이는 친구가 있는데 아직까지 40년 지기지만은 싸움 한번 없이 좋은 관계에 있습니다. 친구는 뭔가 오늘 이 본문에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박경택이가 말한 그런 친구가 아니에요.

 

4. 백살 먹은 사람이 스무 살 먹은 사람을 이해하고 한 시각으로 보면 친구가 될 수 있다. 소금이라는 박범신씨의 글에 남편의 시각으로 이해하고 보는 것이 사랑이다. 그래야 화합이 일어나고 소통이 일어난다. 너희가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라는 것이다.

 

친구는 내 아버지가 말한 것을 알게 함 안다는 것은 연합이거든요, 많이 알게 되면 이해 되어지고 이해되면 그가 나와 한 몸이 되어서 같은 시각으로 보는 게 친구에요. 그래서 부부는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보는 거라는 말이 이런 말이에요. 친구는 나이가 같은 게 친구가 아니고요 백살 먹은 사람이 스무 살 먹은 사람하고 친구가 될 수가 있어요. 백살 먹은 사람이 스무 살 먹은 사람을 이해하고 그와 한 시각으로 보면 친구고, 스무 살 먹은 사람이 백살 먹은 사람과 같이 그것을 이해해서 함께 바라보면 친구가 되는 거에요,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 말씀이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지난 주일날 풀꽃도 꽃이라는 조정래씨의 소설을 읽어 보라 한 것은 여러분들의 자녀의 친구가 되게 함이에요. 얘들의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살로 몰고 있잖아요. 제가 소금이라는 것을 읽어 보라고 한 것은 여러분들이 남편이 어떤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을 어떤 마음인가 하는 것을 잘 들어 내놨어요 박범신씨가, 그걸 이해하게 되면은 남편의 시각으로 남편을 보게 되요, 그게 사랑이에요. 그래야지 비로서 화합이 일어나고 소통이 일어나는 거에요. 자녀들에게 여러분들의 시각으로 암만 이야기를 해 보세요 소통이 일어나는가, 그들의 세계는 다른데요, 내가 경험 해봤다고 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은 벌써 20-30년 전의 일인데, 시대가 얼마나 급속하게 바뀌는데요, 여러분 친구는 그래서 이해하라는 거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종이 되어져서 보수 때문에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순종하라는 게 아니고 친구가 되려면은 이해해서 그래서 내가 아버지께서 말한 것을 너희에게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한다고요. 그래서 너희가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라는 거에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라는 거에요, 저는 이 책을 보며 깜짝 놀랬어요, 월삭 예배 때 여러분들에게 설교를 했는데 안 나온 분들이 많으니까 다시 재탕하게 되는데 재탕을 듣는 분들은 복인 줄 알아야 되요. 두 번 듣는 게 복입니다. 왜 사랑을 해야 되는가, 제가 그런 이야기 했잖아요. 인간의 가치는 사랑하게 되면은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고요 이 책에 있어요. 사랑하는 자 앞에 가야 자기의 가치가 발견된다는 거에요.

 

우리 그렇잖아요, 세상에는요 조두순이 이놈이 곧 나온대요, 참 나쁜 놈이지요 흉악범이지요, 그런 놈은 사회에서 영원히 매장 되야 될 놈이지요. 그런데 그 엄마 앞에 가 보세요 테레사 수녀 하고 아들하고 안 바꾸어요 그게 사랑입니다 그게 낳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이용하기 위해서 쓸모 있는 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낳았기 때문에 사랑해요. 창조했기 때문에 사랑해요. 그래서 우리가 어머니 앞에 가면은 우리의 자존 감이 회복이 되는 겁니다. 행복해 지는 겁니다 왜 내 가치를 인정해 주는 분이기 때문이에요.

 

5. 하나님은 너희를 창조한 자라는 것을 알게 한 것이다, 예수님이 그러셨다 죄인을 부르러 왔지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다고, 가치의 눈을 하나님의 눈으로 부모 노릇, 목회, 신앙 생활 해야 된다. 장애인 조차도 자기 어머니 앞에 가면은 세상에 제일 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상은 돈이 있어야 인정받아요, 부자에게 숙인다고 해서 그 사람 나한테 돈 한푼 안 주는데, 세상은 인기가 있어야 인정을 해요, 세상은 심령을 가지고 자기가 하는 일을 투철하게 잘 해내는 사람을 가치 있게 생각해요, 교회도 그러면은 세상입니다. 여러분들의 어머니는 어떤 분들이에요, 여러분은 또 어떤 부모냐고요, 여러분들의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에요, 여러분은 어떤 아버지에요, 여러분들은 교회에서 어떤 한 교인이냐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사랑을 계시해 준 것은 내가 너희를 창조한 자라는 것을 알게 한 거에요, 그걸 알게 되면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욕하는 그를 가장 세상에 누구하고도 바꾸지 않는 하나님이세요.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죄인을 부르러 왔지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안 했다고, 우리 살면서 왜 힘들어요, 인간이 정해 놓은 인간의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지요, 그 가치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지요. 잘 가지는 못하지만 예전에 힘들면은 저는 아버지 엄마 무덤에 가요, 가면 참 좋은 게 삼남 이 녀 가운데 가장 애먹인 나를요 그 어떤 자식보다도 귀하게 여겼거든요, 내 가치를 알아주었거든요, 여러분 그 하나님 믿는 거에요. 사랑해서 복 받는 게 아니에요. 사랑하면 행복하게 되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계시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리는 순간 예배 때 저는요 여러분들이 그 하나님의 사랑 앞에 서기를 설교하는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얼마나 귀하다 하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고요, 여러분 우리 엄마들이요 자기가 낳은 자식이 가장 귀하다고 하면서 공부 못한다고 공부 1등 하는 아이에게 가치를 부여하니까 얘가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은 거에요. 정말 새벽에 나가서 또 급식 차하고 또 낮에 자기 일하고 해서 열심히 해서 생활비 벌어다 주는데 옆집에 철수 아버지는 팬대 굴려 가지고 천 만원씩 갔다 주는데 그 가치 인정하니까 살맛 안 나는 거에요, 빨대 꽂고 산다는 거에요, 그 철수 아버지가 절대로 생활비 안 줘요. 1등 하는 그 아이가 나에게 고맙다 안 해요. 여러분 이제는 가치의 눈을 정말로 하나님의 눈으로 부모 노릇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목회 해야 되요. 하나님의 눈으로 신앙 생활 해야 되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몇 주 전에도 했잖아요, 부모의 눈으로 교인을 좀 보라고, 가장 비천한 일을 하는 그 사람도 대통령하고 못 바꾸는 게 그 부모입니다 이게 사랑이에요. 하나님은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거에요. 그래서 우리를 친구라고 한 것은 예수님하고 막 먹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 예수님이 계시 해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려서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 것을 아라는 거에요. Paralympics 브라질에서 진행되는데 우리 모두가 관심이 없지만요 그 장애인의 엄마는 요즘 대세인 송준기 하고 안 바꾸어요 자기 아들, 장애인 조차도 자기 어머니 앞에 가면은 세상에 제일 귀한 사람이 되는 거에요. 이 사랑을 성령으로 부음바 되어서 너희가 하라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려고 해야 되요, 이번에도 욕지도에 목사님들이 모였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요, 목사님 손주 봤다며, 아 이쁘지요 이러더라고 나도 모르게 툭 튀어 나오는 게 나는 교회 얘들이 더 이뻐요 이랬거든요, 그래 이 사람들이 뭔 소리냐고 그리고 내 자신을 말을 해 놔 놓고 돌아보니까 뭔가 하면은 이얘가 서씨라서 그런가, ㅎ ㅎ ㅎ 나도 어찌할 수 없는 한국 사람인 것 같아, 딸 시집가서 놓으니까 김씨가 아니더라고 서씨더라고, ㅎ ㅎ ㅎ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혈연을 넘어선다 했잖아요, 사실 저는요 설교 시간에 제가 빈말 해서 되겠습니까 교회 아이들이 너무 귀해요.

 

그래서 아이들 보면 쓰다듬어 주고, 주고 싶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요 저한테 와서 기대요, 어제도 주영이 이빨 하나 뽑았는데 그게 너무 이쁘더라고 그래 내가 주영아 이빨 하나 빠지면 뭔 줄 아냐, 개오지다 이랬더니 쫓아가다 나만 보면 와서 개오지 이래요. 사랑의 눈으로 보면 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눈이 그런 눈이에요. 뭐 핏줄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저는 우리 교회에 함께 쭉 해 왔던 보민이나 지환이나 강현이나 그 세월이 긴 아이들이 내 마음에 깊이 남아 있어요, 여러분 여러분들이 목사님 탓하면 그 사람은 목사님 사랑 안 하는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면 다 귀하게 보이거든요. 저도 교인들 다 귀하게 보일 때는 하나님의 눈으로 교인을 볼 때지만 뭔가 자꾸 거슬리는 게 보일 때는 내 눈으로 보는 거에요.

 

기도하면서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눈으로 보려고 해야 되는 거에요, 행복 해집니다. 여러분들이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서 그 사람의 허물을 이야기하거나 탓을 하거든요,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않는 어린아이구나 이래야 된다고요 우리 교회는. 또 자기 스스로도 내가 죄인의 눈으로 보는 거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은요 죄인의 엄마의 눈으로 봐도 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 아이가 그렇게 귀한데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저 집에 저 자식만 없어도 걱정이 없을 터인데 하는데 부모는 자식 때문에 잠 못 자요, 잘난 9아들이 필요 없어요, 이게 사랑의 힘입니다. 오늘 사랑이라는 것이 이런 말이에요.

 

6. 예수님 때문에 내가 부자로 못살아도, 인기는 없었더라도, 하는 일들마다 하나도 이룬 것이 없이 다 실패했더라도 참 행복한 생애를 살았노라고 할 수 있다. 삭개오는 사회적인 정한 규범 가지고 전부 몹쓸 놈이라 했는데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있는 예수님은 새리 삭개오가 귀했다.

 

제가 교회에서 여러분들에게 일보다 사람이 보이세요, 어떤 성과와 잘하는 것 보다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눈으로는 이해도 안 되니까 부모의 눈으로 보세요. 여러분들의 엄마가 여러분들의 바라보았든 그 시각으로 보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목사님 우리 엄마는 나를 어떻게 했는데 왼수중의 왼수인데 이런 엄마 말고, 그건 또 지가 이해하는 엄마에요. 그래서 우리가 참 저는 하루하루 목회를 하는 게 살아가면서 여러분들과 함께 행복을 만들어 가는 거에요 점점 더. 그러다가 우리가 죽을 때 참 예수님 때문에 내가 부자로는 못살아도 내가 인기는 없었더라도 나는 하는 일들마다 하나도 이룬 것이 없이 다 실패했더라도, 참 행복한 생애를 살았노라.

 

불행이라는 것은 자기의 존재의 가치를 못 느끼기 때문이고, 그것은 사회적인 통념으로 자기를 보기 때문이에요, 이해를 못해서 그래요 친구가 아니에요, 친구는 예수님이 말하잖아요,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 아버지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너희에게 알게 하려 하였음이라, 친구는 누구보다도 그 사람을 잘 알아서 그와 한 몸이 되어서 그와 같은 시각으로 본다면은 나이를 떠나서도 친구고요, 하는 일을 떠나서도 친구, 목사와 교인이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누구의 시각으로 봐야 되겠어요, 목사님의 시각으로 한번 보세요. 가정에서는 부모의 시각으로 무엇이든지 봐 보라고요, 그러면 참 행복해 집니다.

 

오늘 친구 예수님이라고 제가 설교 제목 정한 거에요, 우리는 사랑하자 이게 아니에요, 그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고,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주일 성수를 주셨는가 왜 우리에게 헌금을 주셨는가, 왜 이런 것을 주었는가를 알게 되면은요 참 그 하나님의 사랑에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 인가하는 것을 알아요. 삭개오는 사회적인 정한 규범 가지고 전부 몹쓸 놈이라 했는데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있는 예수님은 그 어떤 험 잡을 때 없는 바리새인보다 새리 삭개오가 귀했어요. 그래서 그 집에 들어갔어요, 저는 그게 교회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는 그런 사람 집에 들어가면 안돼, 사귀면 안 돼,

 

여러분들이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다녀야 이유를 다시 정하세요. 부하려고도 하지 말고, 인기 얻으려고 하지 말고, 무언가를 여러분들이 원하는 바를 함께 이루어 나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사랑 앞에 여러분들이 가장 귀한 존재가 되고,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말거나 그 사람이 나에게 가장 귀한 사람이 되어지고, 또 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귀하게 여기는 그런 생애를 살다가 우리 육신을 벗어 버려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이게 다음에 16장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예수님이 어떻게 그걸 만드셨나 하는 것을, 주께 두손모아 찬양합시다. 아멘

 

◈봉헌 기도◈

 

종으로 드리는 헌금이 되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친구로 드리는 헌금이 되도록, 이 헌금의 제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나의 나 됨이 하나님의 은혜고, 내가 이 재물을 얻는 능력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재물 얻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만인의 빚진 마음을 가지고 내 수중에 있는 것 까지도 주님을 위해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인정받는 생애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옳다 인정함을 받는 쉼과 회복이 있는 가족이 되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가 가지지 못해도 무시당하거나 작아 지지 않고, 가져서 많은 것을 이룬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 위에 굴림 하거나 내 세울 것 없는 그런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 가는 주님의 은사가 되고, 선물이 되도록 주님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기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자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내어 줌으로 천하 만물보다 존귀한 인생을 알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임을 알도록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기의 말을 잘 들어야 복을 주는 그런 분이 아니라, 자신이 창조하였기에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아무런 쓸모가 없을지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줄만큼 사랑하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서 가장 고귀한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오셔서 예수님이 이루신 그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 드려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부자가 되려고 발버둥치는 만큼 더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화합하게 하려고 하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세상사는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하나님은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고 70억의 인구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 나 하나만을 주시하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서로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천국을 맛보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