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뫼비우스의 띠
요한복음 16장 1-4절, 33절
2016년 9월 18일 주일 낮 예배
No. 281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아멘
●예수님에 대한 유대교의 태도 1-4절. 성령을 보내 주신 이유/우리에게 유익이기 때문 5-32. 예수님의 구원은 교리가 아니라 실존이다. 교리와 종교적인 규범과 인간의 사람은 유리될 수 없는 하나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면서 왜 하나님의 일이라 했는가?
16장 1절에 보면은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다. 그러면서 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만 아니라, 때가 이르면은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무엇을 두고 말하는가 하면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 유대교가 출교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핍박하고 순교의 제물로 삼았어요,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뭐냐 하면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한다고 그래요. 앞으로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될 때에 내가 미리 말하는 것은 기억나게 하려 함이다, 라고 말씀을 하세요. 이러한 상황이 예수님 때나 1세기만 있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참 많이 존재하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유대교에서 출교 하고 그들을 또 돌로쳐 죽이면서 하나님의 일이라 했는가, 그들의 모든 신앙의 기준은 교리였고, 그들이 정한 종교적인 규범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정한 교리의 맞지 아니하고 그들이 정한 종교적인 규범을 어긴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어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사는 제자들에게도 그들의 교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또 그들이 정한 종교적인 규범을 어긴다고 그들을 죽였어요. 그러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일이다 라고 생각한 것이 유대교 입니다. 오늘날도 어떻게 보면은 참 우리 안에 이런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1. 교리와 너희들의 종교적인 규범 안에 정말 본질과 내용을 담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이 이루신 그리스도적 사건이다. 그 동안 비유로 말했든 것을 실존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든 바울은 성령이 오셔서 그의 신앙을 완전히 새롭게 했다.
모든 신앙의 기준이 종교가 되어지고 또 교리가 되고, 우리가 정한 종교적인 규범이 되어져서 그 규범의 잣대로 신앙의 선악을 판단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정한 종교적인 규범을 어기는 사람을 우리가 정죄하는 것, 또 그렇게 해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는 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여러분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너희의 교리와 너희들의 종교적인 규범 안에 정말 본질과 내용을 담아야 된다는 거지요, 그것이 예수님이 이루신 그리스도적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 아바아버지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는 역사적인 사실이고요, 그분이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교회를 만드셔서 그 교회는 성령을 함께 나누어 가진 영원한 가족이 되게 하신 것도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 드리는 것이 신앙이다 이말 입니다. 이런 것들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14장에서부터 16장 17장에 이르기를 뭐라는 가 하면은 내가 십자가에 죽고 난 뒤에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어 주시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성령이 이루신 그 교회라는 한 교회를 보면서 우리는 예수님이 이루신 그리스도적 십자가의 사건을 비로서 깨닫게 되기 때문에 성령님이 와야 진리 가운데로 인도 될 거다, 성령님이 오면은 너희가 죄가 뭔지 알게 될 것이다. 성령님이 오시면은 오늘 본문에는 내가 그 동안 비유로 말했든 것을 실존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요.
그래서 우리가 이 성령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되는데, 여러분 고린도전서 12장을 한번 펴 보세요, 고린도전서 12장 277페이지 입니다. 1절에 보세요 유대교의 교리와 종교적인 관습에 메여 살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든 바울은 성령이 오셔서 이루어진 초대의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신앙을 완전히 새롭게 했어요. 그 가운데 고린도 교회가 성령에 대한 혼돈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한다. 유대인들이 항상 알기를 바란다고 하는데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런 표현은요 굉장히 강조하는 말입니다. 반듯이 알아야 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 신령한 것은 뭐냐 하면은 우리나라 말로는 신령한 거라 했지마는 성령에 대해서 분명히 알기를 바란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성령이 와서 우리에게 이루신 것이 뭔가, 그래서 우리가 성령에 충만함이 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는데 우리 한국 교회는 제가 이래 가만히 보면은 성령의 충만함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저 성령충만 함이라는 것은 성령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다, 사전 찾아서 나오는 말만 하는 거에요. 성령이 지배하면은 은사를 받는다, 성령 충만하면은 뭐 능력을 받는다 이런다고요, 성령은 그런 영이 아니에요, 여러분 오늘 여기에 보면은 성령님이 오시고 난 뒤에 만드신 것이 교회고 그리스도의 몸인데 17절에 보세요.
2.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지체가 되다.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것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세 맡는 곳은 어디냐? 우리 몸에는 참 필요 없는 것 같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요긴하다. 사랑이 뭔가 그 사랑을 하도록 성령을 보내어서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만드신 것이다.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은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것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세 맡는 곳은 어디냐? 몸은 하나인데 여러가지 지체가 있다는 거에요. 발도 있고 손도 있고 눈도 있고 코도 있는데, 너희 모두가 눈이면은 무엇으로 냄새를 맡을래 이런 말입니다. 너희 모두가 코라면은 무엇을 가지고 보겠느냐는 거에요. 그러면서 21절에 보세요,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발이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지 못하리라. 우리 몸이 온전해 지려면은 눈도 있어야 되고, 발도 있어야 되고, 손도 있어야 되고, 그 모든 지체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이고 그 지체 모든 것은 너무나 소중한 거에요. 성령 받으면은 우리가 이런 것들을 알게 되는 거에요.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만드신 것을 제가 믿으라 하는 것은 그렇게 되면은요 우리의 생각이 달라져요. 저는 군대에서 사고가 나서 한쪽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쪽 눈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장애자인 줄 몰라요, 그런데 한 눈이 없으면은요 그건 장애인이에요. 손가락 하나 없어도 장애인이에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 같지만은 그 모든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몸을 이루어 가는 유기체라고요. 그래서 하는 말이 뭐냐 하면은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다. 우리 몸에는 참 필요 없는 것 같지만은 그것이 우리에게 요긴하다는 거에요.
눈썹은 필요 없는 것 같지만은 미용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에요, 어떤 분들은 눈썹을 밀어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나면은 아름답게는 보이지 만은요 여름에 땀을 가려 주지 못하기 때문에 눈이 힘들어 지는 거에요, 정말 쓸모 없는 것 같아도 요긴한 것이 몸의 지체라는 거에요.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그렇게 생각 안 했거든요, 바울이 귀하다, 아볼로가 귀하다, 게바가 귀하다 한 거에요, 내가 받은 은사가 더 중요하다 한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요한복음을 16장 와서 우리가 31번째 듣는데 그 듣는 이야기가 뭔가 하면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거에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복 받으려고 잘 되려고 다니지 말고 사랑하려고 다녀야 된다는 거에요.
이것이 여러분들의 신앙의 출발이 되어져야 되요. 그 사랑이 뭔가 그 사랑을 하도록 성령을 보내어서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만드신 거에요. 오늘 제가 설교의 제목을 뫼비우스의 띠라고 해 놓았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뭐 처음 듣는 말도 있겠지만 요즘은 이런 지식은 인터넷 몇 자만 치면 다 알아요, 뫼비우스의 띠가 뭡니까, 우리 긴 띠를 한번 꼬아서 붙이면은요 겉면과 속이 구분이 없어져요. 여러분 이 말씀이 오늘 제가 성령과 결부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 뭐냐 하면은 서양 속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대요, 그런데 신은 우리를 생각한다는 거에요.
3. 하나님은 공동체 모두를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을 성령을 보내어 주셨는가?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결코 눈이 코를 대신 할 수 없는 것을 안다, 약하게 보여도 중요하다.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의 사건에 영향을 받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이다.
죄인인 인간은 나와 상관 있는 연관 있는 것들만을 생각하는데 신은 하나님은 공동체 우리 모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왜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만들었는가 하면은 사람들은요 자기와 관계된 것만을 중요시 여겨요. 그런데 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구원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려면은 내 개인이 중요한 만큼 공동체도 중요한 것을 깨달을 때 개인과 공동체는 다른 것이 아니고 겉과 속이 아니고요, 한 면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성령님이에요. 이 중요한 성령의 구원의 역사를 우리는 은사라든지 능력 때문에 노치고 있다고요,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는 겁니다.
여러분 뫼비우스의 띠를 가지고 겉과 속을 구분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리석은 거에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유기적인 관계로 만드셨어요, 개인과 공동체를 구분하는 것은 어리석은 거에요, 그런데 죄인들은 언제나 자신만을 중요시 여기거든요, 저는 성경을 쭉 보면서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을 보내어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셨는가, 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중요시 여겨요, 이것이 성령의 지배함을 받는 거에요. 여러분 이 진리를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은 저도 참 이걸 알고부터요 참 기쁨과 평안이 넘쳐요. 그러면서 여러분 우리 교회가 참 다니면은 편안하고 좋다고 그래요.
33절에 너희에게 평안을 준다고 했는데 왜 그런 줄 좀 여러분들도 좀 알고 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자고 이 설교를 드리는 거에요. 저도 옛날에는 여러분들에게 고백을 하면은 우리 장로님들을 이래 볼 때에 한 개인 개인 장로님을 보면서 왜 저 장로님은 예배를 잘 안 드리지, 저 장로님은 왜 모임을 안 나오지, 왜 저 장로님은 경조사에 참여 안 하지, 왜 저 장로님은 헌금을 안 하지, 이래 생각했어요. 그런데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으로 교회를 만드신 하나님의 그 눈으로 바라보니까 이 장로님은 이래서 귀하고요, 저 장로님은 저래서 귀하고, 장로님 개인 하나하나가 아니라, 당회안에서 한 지체로서의 장로님이 보이더라고, 여러분 절대로 우 장로님이 이택영 장로님이 우장로님을 대신 못해요.
우장로님은 우장로님의 자리가 있고, 조 장로님은 조 장로님의 자리가 있고, 오장로님은 오장로님의 자리가 있고, 이택영 장로님은 이택영 장로님의 자리가 있고, 김상범 장로님은 김상범 장로님이 있어서 이 모든 자리가 하나의 당회를 만드는 것이 성령의 오심이에요.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것을 개별화 해 가지고 비교하는 습관이 있거든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제가 성령이 오셔서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만드신 것이 예수님의 구원이고, 그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의 사건에 영향을 받는 것이 그 사건의 눈으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이고 성령의 지배하심이라는 것이 이런 거에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다니면서 여러분들이 이 사람은 이래서 좋고 저 사람은 저래서 좋은 거에요. 유기체라는 게 이런 겁니다 여러분.
그런데 인간들은 그 하나님께서 이루신 그 유대교 이스라엘 그리고 또 심지어 고린도교회 조차도 점점 조직화 되가 이게 없어진 거에요. 그래서 바울이 그런 말 하는 겁니다. 너희가 성령을 좀 알아라, 그래서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은 결코 눈이 코를 대신 할 수 없는 것을 안다고, 너희가 모든 몸이 눈이면은 무엇으로 들을래, 너희가 모두다 귀가 되면은 무엇으로 냄새를 맡을 수 있냐 말이에요, 손더러 너는 쓸데 없다 하지 마라, 발아 너는 지저분하다 하지 마라, 정말 우리 몸에는 약하게 보이는 것이 귀중한 거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의 발 얼마나 지저분하고 더럽습니까, 손으로 신발에 넣기가 힘들잖아요, 그런데 발이 없으면은 여러분들이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어요.
4. 우리라는 관점 속에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정말 그 자리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깨닫고 그것을 우리가 인식하며 살아가는 그런 신앙 생활이 되야 된다. 서로 인정해 주는 그런 아름다운 신앙 생활이 되야 된다. 싸드 문제는 미국과 우리, 중국과 우리의 관계는 각각 다르다.
이것을 인식하도록 한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이에요. 저도 예전에는 유대인들과 같았든 것 같아요. 전부 개별화 시켜 가지고, 이 장로님의 왜 저렇지, 저 장로님은 왜 저렇지 이럴 때에는 내가 이 목회해야 되나 하고 내가 실족하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이해하면서부터 참 그렇구나, 이제는 한 개인의 장로님만이 아니라, 그 장로님들이 모여서 이런 당회의 눈으로 보는 거에요. 저는 이런 관점에서 오늘 설교를 뫼비우스의 띠라고 한 거에요. 세상은 자꾸 개인을 시키려고 해요. 여러분 오늘 우리 장로님들 중에는 너무나 바빠서 공식적인 예배도 잘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은 어떤 분들은 시간이 있어서 다 참여할 수도 있고요,
멀리 있어서 못 나오는 분이 있는가 하면은 우리 임종호 장로님은 가까이 있어 가지고 아침 새벽에서부터 저녁 늦게까지, 이번 추석에도 교회를 돌보는 이런 장로님도 있다고요, 그러면 임종호 장로님 한 분의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모든 당회원의 눈이 보여져야 된다고요 이게 지배하심이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성령의 지배하심,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냄으로 말미암아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라는 관점 속에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정말 그 자리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깨닫고 그것을 우리가 인식하며 살아가는 그런 신앙 생활이 되어져서 세상은 획일화 시키려고 하고, 모든 것을 개별화 아니면 집단화 해서 생각하는 이 세상 속에 참 교회 오면은 나의 존재의 가치가 인정을 받고, 서로 인정해 주는 그런 아름다운 신앙 생활이 되야 되요, 참 신비 하잖아요 여러분. 뫼비우스의 띠는요 절대로 겉과 속을 나눌 수가 없어요, 한 바퀴 돌면은 겉이고, 한 바퀴 돌면 속이에요 같은 면이요, 우리 모두는 하나이라는 거에요. 또한 여러분들에게 구체적으로 좀 말씀을 드리려면은 언제나 좀 약간 추상적으로 하니까 이론이 되는 것 같아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이번에 제가 명절에 한 2년 전에 싸드라는 책을 읽었어요 김진명의, 그때는 싸드가 그렇게 Issue가 되지 않아서 읽기는 읽었는데 그렇게 중요한걸 몰랐어요.
그래서 이번 명절에 내가 무슨 책을 볼까 책꽂이를 보니까 싸드가 있어서 다시 꺼내서 읽어 봤어요, 그 싸드를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이 그래요, 김진명의 시각이 옳다는 게 아니에요, 결론이 그런 것이더라고, 미국은 싸드를 우리가 이곳에 배치해야 하는 것은 미국과의 의리 때문이라는 거에요. 또 우리가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나라의 경제적인 실리[實利]를 생각하면 안 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참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절묘한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우리가 뫼비우스의 띠라는 것이 뭐냐 하면은 미국은 왜 의리가 중요하냐 참 그 사람들은 6.25때 우리나라에 와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돈을 쏟았어요, 오늘에 우리가 좀 잘살게 되었다고 우리가 미국을 생각 그렇게 하면 안 되거든요, 그건 사람이 아니잖아요.
과거에 우리나라에 와서 흘린 그 피를 생각해야 그것 때문에 오늘 우리 속에 있잖아요. 그런데 미국은 의리를 중요시 여긴다는 나라에요. 여러분 참 우리가 이런 부분에서도 좀 생각해야 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왜 이런 사건 있었잖아요, 공항에서 누가 비행기삯 공짜로 태워 준다고 해서 짐 좀 옮겨 달라 했는데 그 짐이 마약이었잖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지금도 중남미나 저 필립핀에 가면은 그 일 때문에 감옥에 가 있는 사람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외교관에게 물으니까 우리나라가 우리나라의 범죄들 까지도 보호해 줘야 되느냐, 외교관이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개인이 저지른 범죄까지도 나라가 보호해 주고 책임져야 되는, 해서 면회도 안 가고 변호사도 안 사주는 거에요.
그런데 미국은요 무엇을 중요시 여기는가 하면은 범죄자도 미국인이기 때문에 보호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거에요 굉장히 생각이 다르지요. 그게 미국이라는 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미국은 우리 편이냐 남의 편이냐 의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싸드를 안 받으면은 우리는 그들의 적군이 된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 Dilemma 에요. 그런데 저는 그걸 보면서 그러면 한 면이 뭘까 생각했어요, 우리 사회에서 지금 그것 때문에 딱 나뉘어져 있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뭔가 하면은 왜 그 일을 대통령이 함부로 결정했느냐는 거에요. 국민들과 다 합의를 해서 절차를 잘 거쳐서 배치를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분 우리가 신앙 생활 할 때도 저는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참 우리 교회 안에도요 다양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는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선과 악이 결정이 되는 거에요. 신뢰의 관점에서 보면은 싸드는 배치를 안 해야 되요. 의리의 관점에서 보면 해야 되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이 그 일에 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게 중요한 거에요. 저는 목회를 하면서도 여러분들에게 좀 이 마음을 알아서 장로님들이 교구와 인원을 잘 끌어 가고, 여러분들도 그래 되기를 바라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결정해야 할 많은 것들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한 바퀴 돌면은 다른 거에요 한 면인데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그 모든 결정에 내가 참여해서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 거에요.
그래서 이번에도 여러분들에게 추석 명절 빨간 날 예배를 드리느냐 안 드리느냐, 목사님 결정하지 말라는 거에요, 예배 위원장이 구역장들과 모여서 결정하는 겁니다. 그뿐만 아니에요 여러분들의 모든 것들이 내가 위원장이기 때문에 나를 따르라 이게 아니거든요. 구역장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잘 들어서 최대 공약수를 찾아서 가는 것 이게 여러분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에요, 참 더디 갈지라도 하나됨의 역사는 이 절묘함에 있어요. 저는 여러분들이 참 이런 것들을 알면서부터 참 예수님이 이 성령을 보내어 주신 것이 참 모든 인간에게 기쁜 소식이구나, 미국이 중국을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 이방이 마음을 합쳐서 인류를 번영해야 할 이웃으로 본다면은 얼마나 아름다움이 우리 속에 있겠어요.
5.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섬기며 손잡고 나아가야 할 대상임을 보게 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셔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이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을 만드신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 드려서 세상을 보며 감사함이 있어야 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섬기며 손잡고 나아가야 할 대상임을 보게 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 거에요 가족은 그런 것이잖아요. 사분 오분 민족으로 연고로 성향으로 찢기고 나뉘어 진 이 세상 속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셔서 하나님이 우리의 한 아버지 이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가 한 가족임을 만드셨어요, 우리가 성령 받는 것은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 드려서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요 내 힘으로 그래 보지 아니하고 성령님께서 내 속에 그러한 시각을 준 것을 생각할 때에 참 감사해요. 다시 한번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자면 예전에 나는 왜 이 장로님은 예배 안 드려, 이 장로님은 왜 헌금 안 해, 이 장로님은 왜 경조사에 참여 안 해, 이 장로님은 왜 모임에 안 해, 회개 했어요.
그런 나를 모든 장로님이 우리라는 관점 속에 보게 하신 그 성령님이 나를 지배하게 되니까 이 장로님의 이 모습은 다른 장로님이 대신 할 수 없어요. 여러분들도 장로님을 한 통으로 보셔야 되요. 우리 교회를 한 통으로 봐야 되요, 우리가 한국의 모든 교회를 하나 우리라는 관점에서 봐야 되요. 심지어 예수를 안 믿는 모든 사람들까지도 우리를 하나로 볼 때에 우리는 정말 사람이 귀해 지고 그 속에 겉과 속이 한 면인 것을 알게 해요. 이 신비함이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 속에 감격으로 와 닿아서 예전에는 모든 것을 보면서 개별화해서 귀하고 귀하지 못하고 선하고 악한 것을 봤든 여러분들의 시각이 정말 모든 것을 귀하게 볼 수 있는, 저는 싸드를 보면서 그 책에는 안 나왔어요, 얼마 전에 신문에 나왔든 그 기사.
우리나라 외교관들은 개인이 범죄한 것까지도 어떻게 내가 책임져야 되느냐, 라고 말을 하고, 미국의 외교관들은 범죄한 그 사람도 미국 사람이라는 거에요. 미국이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는 생각이 그 생각이에요, 거기는 다 민족 사회잖아요, 다민족 사회잖아요, 검은 것, 흰 것, 노란 것, 노리탱탱하고 온갖 것이 미국이라고 하는 이름 안에서 하나 우리가 되기 때문이에요. 누구든지 견디지 못해요, 조금 더 나아가서 올 명절에 그런 기도를 좀 들어 봤어요, 미국이 미국 사람만 우리가 아니고, 중국 사람도 우리로 보여 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성령이 그들 속에 지배한 것이잖아요.
너무 먼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여러분들은 그 정도까지 안 가더라도 저는 교회 안에서 좀 이런 생각들 이제 다른 사람이 사람을 개별화로 보지만 그 개인 개인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는 하나님의 절묘한 뫼비우스의 띠의 모습이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 속에 이루신 구원임을 깨달아서 오늘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여러분들에게 이 구원이 여러분들의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 경험되며 살다가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갔을 때 아 김종웅 목사가 이야기 했든 것이 이런 거구나, 뫼비우스의 신비가 이런 것이구나, 밝히 깨닫게 되는 그런 귀한 주님의 재림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봉헌 기도◈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 예수님이 이 땅에 가져오신 천국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일성수를 주셨고 11조의 제도를 주셨고 우리에게 여러가지 봉사의 직분을 주심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선악의 기준과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의 하나가 되는 놀라운 구원의 은총보다는 판단하고 분열의 요소가 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 드린 이 헌금이 너와 나가 하나임을 확인하는 복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되고,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표현하는 예배의 모범이고 구원의 겉으로 들어 나는 표현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이곳에 성령의 임재하심과 교통하심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내 능력으로 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재물 얻는 능력을 주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능력을 주신 것은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라고 주신 지체로서의 은사임을 믿습니다. 종교화 되어져 가고 조직화 되어져가는 이 땅에 기독교에서 한줄기의 흐르는 물이 되기를 원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눈은 귀하고 귀는 덜 귀하다고 서로의 은사를 자랑하고, 서로의 자기가 따르는 지도자를 자랑하는 고린도 교회에 성령이 오셔서 만드신 교회는 더 귀하고 덜 귀한 것이 없느니라, 너희가 생각하는 약하다고 하는 것이 더 요긴한 것이다. 모두가 눈이면은 무엇으로 냄새를 맡고 모두가 귀면은 무엇으로 보겠느냐 라고 하는 그리스도안 에서의 우리 모두가 하나되게 하신 놀라운 그 구원을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친히 제물이 되시고, 지금도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조직화 되어져 가는 종교 기관인 교회에 유기체가 되도록 성령을 보내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모든 사람은 자신들이 정한 기준으로 죄인을 판단하는 그런 세상 속에서도 쓸모 없다고 하는 그 자신 까지도 하나님이 지으신 한 인간임을 들어내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자신만을 보는 인간에게 우리를 보게 하도록 아름다운 교회를 창조하신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인간이 만든 종교적인 규범을 가지고 판단하여 죄인이라고 정죄한 그도 하나님 안에서는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임을 받아 드리도록 성령의 지배함을 받은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이 몸 버려 세우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제사장의 중보기도(요한복음 17장 1-2,11,15,23)주일 예배 설교문 (0) | 2016.10.07 |
---|---|
상전벽해(桑田碧海), 용인 동백(마태복음 20장 1-16절)주일 예배 설교문 (0) | 2016.09.29 |
친구 예수님 (요한복음 15장 9-17절 (1-27절) 주일 예배 설교문 (0) | 2016.09.16 |
하나님을 한번만 보여 주소서(요한복음 14장 7-14절)주일 예배 설교문 (0) | 2016.09.08 |
하나님을 흉내 내는 삶(요한복음 13장 31-38절)주일 예배 설교문 (0) | 2016.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