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대제사장의 중보기도
요한복음 17장 1-3, 11, 15, 23
2016년 10월 2일 주일 낮 예배
No. 283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멘
●대제사장으로서 모든 인류를 위한 중보기도 /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삼위일체로서 하나이듯이, 우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영생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또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 모두가 영원한 가족이 되게 하시는 그리스도적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기 직전 마지막 밤에 대제사장으로서 모든 인류를 위한 중보의 기도의 내용이 오늘 요한복음 17장입니다. 여기 보면은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라고 하고, 또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이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또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해요. 그러면서 그 영화로움이 뭐냐 하면은 11절에 가보면은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우리가 세상사는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많이 한다든지 출세해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나이듯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이래요, 우리 생각을 좀 바꿔야 되요. 이제 우리가 출세하려고 또 그리고 우리가 뭐 착한 일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이듯이 우리도 하나가 될 때 우리의 삶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1.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 위함이 아니고 그들을 세상에서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기 위해서 왔다. 유일하다는 것은 one 이 아니고, only 그것 외에는 없다는 말이다. 유일하신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다. 영생은 뭐냐 하면 하나님적 삶, 영원한 존재로서의 삶, 아는 사이의 삶이다.
참 우리 생각하고는 많이 다르지요. 그러면서 또 15절에 보면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다, 그들을 세상에서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기 위해서 왔다. 우리는 자꾸만 죽어서 예수님이 우리를 천국에 데려 가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마지막 밤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도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악에 빠지지 않고, 보존되게 하려고 오셨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악에 빠지지 않고, 보존되는 것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과 같이 하나 됨이다.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할 때 자꾸만 뭐 많이 빌면은 복을 주는 하나님이라는데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됨이에요.
그래서 이 세상에 인간이 만든 신들은 다 가짜 신이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 그래요. 유일하다는 것은 one 하나라는 말이 아니고, only 그것 외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유일하신 참 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다른 위격이지만은 한 하나님이듯이 그래서 기독교에서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다라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악에 빠지지 않고 보존되기를 원하는 것은 창세 이후에 범죄한 인간이 가인의 족속, 셋의 족속 그리고 또 내려와서는 함의 족속, 야벳의 족속, 수많은 족속이 이렇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도 보면은 김씨 이씨 박씨 많은 나뉘어 짐이 있다고요, 또 뭐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이래 나뉘어 짐이 있어요. 무슨 동창회 뭐로 각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악이라 말입니다.
그것에 빠지지 아니하도록 하나되도록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은 혈연을 넘어서고 연고를 넘어서는 하나 됨이 있다, 바울이 그것 알았거든요, 그래서 남자나 여자나 자유자나 종이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다. 그것을 되도록 기도하시고 그것을 이룬 것이 십자가에 죽으심이고 성령을 보내어 주심이에요. 그리고 23절에 보면은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연합해서 하나가 되게 하려고 하는 것은 왜 하는가 하면은 나를 사랑하심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고, 우리는 예수를 믿고 뭐 병이 낫고 예수를 믿고 자식이 잘되고 이런 것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것으로 세상사는 사람들에게 알게 하려고 하는 거에요 잘못된 거에요.
성경에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김씨 이씨 박씨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이래 나뉘어져 있고, 또 동창회별로 나뉘어져 있고 여러 가지 나뉘어 진 세상 속에서 교회 왔더니만 교회는 그런 구분이 없는 하나됨을 통해서 하나님이 교회를 참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세상사는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는 거에요, 이런 복음이 쉼과 회복이 있는 잔치에서 여러분들에게 설명 되어지는 거에요. 그리고 3절에 보면은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런 이야기 하지요, 예수를 제대로 믿으려면은 바르게 믿으려면은 성경에 있는 용어를 한국말로 이해 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요.
영생은 우리는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 그래요, 그래서 이단은 성경 말씀을 한국말로 이해한 거에요. 옛날에 영생교이단 교주는 뭐라는 가 하면은 자기는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산다고 했기 때문에 안 죽는다 했는데 죽었어요, 또 많은 이단들은 자기를 믿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거에요. 그래 성경에 영생이라 했으니까 예수 믿으면, 그런데 이걸 모르는 거에요 성경에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그랬어요. 그러면 이 영생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적 삶, 영원한 존재로서의 삶, 아는 사이의 삶, 이걸 말하는 거에요.
2. 죄악을 악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은 그러한 편리를 쫓아서 모르는 사이가 되지 않도록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셨다. 예화에 대한 이야기들. 그 사람의 정보를 아는 것이 그 사람을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잘 안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게 아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설교에서 제일 중요한 핵심이 뭐냐 하면은 안다는 것이 뭐냐는 거에요. 하나님을 아는 것이 뭐고, 우리가 영원한 가족이 된 것을 제가 지난주일 아는 사이가 되는 거라 했는데, 상대방을 아는 것이 뭐다 하는 것을 아셔야 된다고요. 여러분 우리 사회가 참 비정한 사회에요 그지요, 정이 없어요. 왜 없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에는요 촌락을 만들었어요, 프랑스시인 코페가 말 한데로, 그런데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말입니다. 옛날 용인은 촌락이었어요. 그런데 인간이 줄 몇 개 쭉쭉긋고 계획 세워지면 이런 도시를 만들었어요. 도시와 촌락의 차이는 뭡니까, 도시는요 굉장히 편리해요 그런데 나를 아는 사람이 없어요.
촌락은 좀 불편한데 나를 잘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거에요. 죄악은 악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은 그러한 편리를 쫓아서 모르는 사이가 되지 않도록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셨다 이렇게 말을 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안다는 것을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을 아는 것이라 생각해요. 또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을 아는 거라 생각해요, 나 하나님 잘 알지, 천지 창조를 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아브라함 복 주신 하나님 그건 하나님 아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아는 거에요. 예전에는 회복이 있는 잔치 쉼이 있는 잔치에서 제가 예화를 들어서 쭉 많이 설명했어요 왜 8주가 되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좀 지루하다고 해서 그런 예화를 제가 많이 줄여서 예전에 들은 분들은 이말 들었을 거에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는데 그 아는 것 뭔가, 제가 참 이것 아는 것이 참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나는 신학교 가서 공부하면 하나님 아는 거라 생각했거든요, 다른 사람 얼굴 알고 그 사람이 몇 살인가, 그 사람이 어떤가 하는 것을 알면은 나는 그 사람 아는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한번 더 들어 보세요 옛날 사람들, 제가 강도사 시절이었어요, 1989도였습니다 어디에서 했는가 하면은 대구에 가장 변두리 지금은 또 그기에도 상전벽해가 되어 가지고 전부 아파트촌이 되었는데 옛날에는 논밭이었습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은 반야월쯤 동 대구를 지나서 반야월 지나면은 나즈막한 언덕에 기와로 지어서 빨간 벽돌로 지은 예쁘장한 교회가 대림교회 라고 있었어요. 그 교회에서 제가 1년을 시무했었는데 그 교회에는 반야월이 지나면은 숙청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서씨집성촌이에요, 그 서씨집성촌에 장로님이 어릴 때에 예수를 믿는다고 집에서 쫓겨난 거에요, 그래 쫓겨나니까 그것도 그 장손이 예수를 믿으니까 얼마나 그 대구 같은데에는 아주 보수적인 동래입니까, 대구 약전 골목에 가서 약 짓는 것 심부름 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다가 이제 자기가 약방을 차렸어요, 지금은 약사 자격이 있어야 되지만 옛날에는 약사 자격이 있는 것을 약국이라 그랬고, 시골에 약사 자격이 없이 약을 짓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곳을 약방이라 그랬어요, 그래서 약방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요즘 말로 대박이 난 거에요, 거기에서 약을 지어서 제조를 해 가면은 암이고 뭐고 다 나은 거에요, 그래서 주일날은 약방문을 닫으니까 월요일 되면은 그 시골길에 영천 가는 그 길인데 지금은 굉장히 넓어졌는데 1키로 2키로 사람들이 약을 타려고 줄 서 있는 거에요. 실제로 들것에 실려 와 가지고 앉았다가 그 약 먹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걸어가는 일이 있으니까 일본이고 온통 사람들이 몰린 거에요. 제가 갔을 때는 그 장로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인데 그때에 이제 며느리가 약사로 들어와서 약국이 되었는데 그때도 월요일 되면은 한 백 명 이백 명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장로님이 돌아가시면서 교회에 한 200평 되는 대지를 가지고 있는 옛날 구옥을 교회에 바쳐서 제가 거기 살았거든요 그런데 참 불편했어요.
무엇이 불편했는가 하면은 우리 대열이가 좀 공부를 안 해서 그런지 못해서 그런지 옛날은 부엌이 푹꺼져 있고 또 마루에서 있는데 맨날 마루에서 툭 툭 떨어져 가지고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드는데 ㅎ ㅎ ㅎ 부엌이 불편하고 화장실이 불편해요. 그런데 모든 옛날 집에는 그 마당 한편에 수도가 있었다고요, 그 수도 가에 조그마케 이렇게 관리 집사님에게 해 가지고 샤워를 할 수 있는 샤워장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토요일 날에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초인종을 눌려요 그래 가만히 보니까 위에 하얀 와이샤츠를 입고 까만 바지를 입은 분인데 교인은 아니라, 그래서 슬레프를 끌고 반바지로 떠벅떠벅 나갔더니만 옛날은 좀 권위적이었고 또 그때만해도 토요일 날은 주5일 근무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분명이 이 사람이 나를 젊은 사람이 집에 있으니까 토요일 오전에 실 장사인 줄 알았어, 실 장사가 뭔지 모르지요 실업자를 좋은 말로 실 장사라 그래요.
그래서 사람을 이래 아래 위로 훑어 보더니만 왜 이 집에 불법 건축물을 지었냐는 거에요, 그래서 지은 게 뭐요 이랬더니만 수도 가에 지은 그걸 가지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이분이 태도나 말씨가 영 아니라 그런데 그날 89년도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난 게 현대자동차는 수백만평의 불법 건축물을 가지고 수년 동안 탈세를 했다는 것이 났어요, 나는 그때 알았는데요 우리가 건물을 지으면은 구청에서 허가를 받아서 등기를 하는 것은 가옥대장에 올리고, 그것을 등기소에 올려야 온전히 집이 되고 세금을 내요, 그 등기만 안 하면 세금을 안 내는 것 같더라고, 아마 그렇게 되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가 뭐 이런 것 가지고 이러느냐고 현대자동차는 수백 만평 불법 건축물 했는데 이러니까 이분이 한다는 소리가 현대자동차는 빽이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때에 제가 지금은 성화가 많이 되었지만 그때는 강도사잖아요, 강도를 전문하는 막 이렇게 뻐처 오르더라고 그래서 내가 뭐라 했는가 하면은 빽 이러면서 당신 내가 누군 줄 아느냐고 이랬어요, 제가 또 눈에 힘주면은 제법 세잖아요, 그러니까 이분이 약간 주춤하면서 누군데요 이러더라고, 내가 김씨다 이랬다고 이 사람이 어이가 없는지 김씨가 뭔데요 이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러면 알아 먹어야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아느냐고 이러니까 이분이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 뭐뭐 이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부산서 왔다 이랬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놀린다고 화를 내는 거요 그래서 내가 당신 놀리는 게 아니고 내가 김씨에다 부산서 왔으면 알아먹어야지 내가 김영삼이 잘 안다 이랬거든요, 지금하고 그때하고 세상이 많이 다른 때였어요, 89년도에 뭐 김종필하고 합쳐서 3당 민자당을 만들어서 김영삼이가 대표최고위원 때에요, 지금은 당 대표가 되도 별 것 없더라만은 그때는 제법 힘이 셌거든요, 그러니까 김영삼이를 안다 하니까 요즘 같으면 큰일납니다, 이분이 쑥 줄어들면서 뭐라는 가 하면은 구시렁 구시렁 하면서 앞으로 여기에 벽돌로 쌓으면 안 됩니다 하고 그렇게 이제 가르쳐 주고 가더라고, 그래 내가 뒤에 대고 하는 소리가 그랬거든요, 나는 김영삼이를 잘 아는데 김영삼이 나를 모른다.
왜 김영삼이 잘 알지요 경남고등학교 2회에요, 서울대 철학과 나왔어요, 어릴 때 대통령 될 거라고 벽에 붙여 놓았어요, 아버지는 김홍조공이에요, 어머니는 6.25때 공산당에 의해서 순교를 당한 분이에요, 그 부인은 손명순씨에요, 또 그분은 그때 대통령 할 때에 멸치 파동이 나니까 사람들이 전부 김영삼이 아버지 멸치 값 올렸다고 난리를 지켰어요, 절대로 그분은 경제는 못 살려요, 갱제는 살릴지 몰라도, 그분에 대한 정보를 내가 잘 안다고 해서 그분을 아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잘 안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게 아니에요. 얼마나 교회에 하나님의 정보를 완벽하게 알고 있는데 영생은 없어요.
3. 아는 사이가 무엇인가?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심 정지당한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도와 주려고 한다, 안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영생이라는 것이 이런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한 몸 되게 하시고 가족과 같이 알게 하셨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지난주일 이야기 했잖아요, 신앙 생활이 뭐라는 게, 참 인생은 비정해요. 어제도 뉴스 났지요, 택씨를 타고 가든 어떤 여자가 심 정지를 당했는데 내버려두고 가 버려서 심장 마비로 죽었어요, 대낮에 칼부림을 당해도 사람들은 그냥가요 이게 도시에요, 그런 도시에 생명이 뭐에요, 도덕 교육 시킨다고 되겠어요, 심 정지당한 사람을 보니까 내가 아는 사람이라 열일 제쳐 놓고 그 사람 도와 주려고 하겠지요, 안다는 것이 이런 거에요. 영생이라는 것이 이런 삶을 사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안다는 것을 정보를 아는 정도로 아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참 힘이 드는 거에요. 여러분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면은 또 그 정보가 공유되면은 사람 사이에 화젯거리 밖에 안 되요. 조롱 거리 밖에 안 되요.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알고 이웃을 아는 것이 내편 되는 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가 되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정보를 알기 때문에 구역 예배 마치면은 누구네 집사 있지 자기 정보를 내놔 놓고 조롱하고 화젯거리로 삼아요 불편해요. 대한민국이 다 아는 대통령은요 참 불편해요, 추석 상머리에는 전부 그게 하나의 화젯거리거든요, 연예인이 되어서 그 사람의 정보를 많은 사람들이 알면 더 많은 사람들이 화젯거리로 삼아요. 우리를 그렇게 아는 사람으로 만든 게 아니고, 하나님을 그런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성경이 아니고요,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한 몸 되게 했어요, 가족과 같이 알게 된 거지요.
히브리어에 야다라는 말은 성적인 결합에 쓰는 용어에요, 한 몸 되는 것을 말해요, 내편이 되는 거에요.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저와 여러분은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서 같은 편이 되는 겁니다. 또 다른 교회하고 같은 편이 되는 거에요. 예수 안 믿는 사람도 같은 편이 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는 것을 알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저는요 예전에 복음을 알기 전에는 참 함께 지낸 사람들은 불편해요, 그래서 성경에 예수님이 원수는 집안에 있다는 말을 제가 참 실감해서 알아요, 꼭 나의 정보를 아는 사람이 나에게 상처 줘요, 나도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에게 늘 상처를 줘요, 인간에 흠 없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못 견디고 안 만나게 되요. 새로운 사람이 참 좋아요.
4.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했다는 것은 그 하나님 때문에 그 원수 같은 그를 주일날 만난다. 그래서 좋은 것 나쁜 것이 세월이 지나고 나면은 진짜 하나되는 때가 있다, 주일날 예배가 그런 것이다. 교회의 지체가 싸웠더라도 회개하고 눈물의 기도가 감동이 된다.
그래서 날마다 인간관계를 새롭게 하는데 그 새로운 사람도 역시 또 사귀어 보면 그 인간이 그 인간 아이에요, 그럼 또 이래 되어져요. 성경은 그런 게 아니에요 가족은 그런 게 아니에요, 가족은 아무리 싫어도 만나야 되요, 가족이 가족답게 되는 것은 부모가 생존 해 계시는 거에요. 요양원에 있어도 어머니 아버지가 있을 때에는 원사 같은 가족도 만나지만 부모가 돌아가시면 별로 만날 일이 없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했다는 것은 그 하나님 때문에 그 원수 같은 그를 주일날 만나잖아요. 그래서 좋은 것 나쁜 것이 세월이 지나고 나면은 진짜 하나되는 때가 있거든요, 저는 주일날 예배가 그런 거라 생각해요.
이번 국민일보에 서울에 있는 어떤 목사님이 칼럼을 하나 썼더라고, 젊은 시절에 부산에서 목회할 때에 에피소드를 해 놨던데 부산 국제시장에서 장로님하고 그 교회에 이제 새로 와서 등록한 협동안수집사 하고 시장에서 온 시장이 알도록 대판 싸웠다는 거에요, 문제는 그 다음날 주일이 그 장로님이 기도라, 그러니까 온 그 국제시장 온 동래가 다 아는 싸움을 했으니까 장로님이 기도 하려니까 도저히 못하니까 목사님 보고 나 내일 기도 좀 빼 주세요, 이러니까 또 목사는 젊을수록 원칙 주의자가 되거든요, 그러더라도 안 된다고 맡은 것 해야지, 하고 하니까 장로님이 평생 30분 전에 오는데 그날 따라 예배 시간 가까이 와서 딱 앉았는데 고개 푹 숙이고 죽을 맛으로 있더라는 거에요.
그래 기도의 시간이 되니까 올라와서 탁 2분 3분 동안 아무 소리 안 하다가 펑펑 울면서 하나님 이 죄인입니다, 이말 한마디 자기 일생에 그런 감동의 기도 못 봤다는 거에요, 여러분 그 집사님과 그 장로님의 방에는 저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마는 후일담은요 틀림없이 잘 지내는 관계가 되었을 거에요, 그 주일날 장로님이 기도를 안하고 그 집사님이 그것 때문에 떠났다면은 그 길로 남남이 되는 거에요, 예배의 힘이 저는 이런 것이라 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살다 보면 상대방의 정보를 보게 되요, 그래서 우리가 그 이면을 제가 월삭예배 때 이야기 한대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는데 이면을 못 보거든요 처음에는, 드러난 행동에 정보만 보고 우리는 화젯거리로 삼아요.
그런데 한번 두 번 정말 외면 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지면 나중에 점점 그 사람의 이면이 보이거든요, 그때 되면 누가 그러면은 변명해 줘요 그런 게 아니야 그래서 하나가 되는 거에요. 가족이 그런 것이고 예수님이 이루신 것이 저는 그런 거라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주일날 예배에 올 때에는 정말 어떤 때는 보기 싫은 사람도 있을 거에요, 저도 뭐 어떤 얘기 들렸을 때에는 주일날 그것 보는 게 그렇게 괴로움이에요, 그래도 하나님 때문에 봐야지요. 그게 10년 20년 가면은요 참 하나가 된다고, 이게 아는 거에요.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기도가 이런 거라 말입니다.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려움이 있을 때에요 내편 들어 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자살 안 한다 하잖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정보를 알고 그 정보를 가지고 화젯거리를 삼는데 그 화젯거리 돌멩이 던지는데 개구리는 맞아서 죽는 거와 같이 죽고 싶다고, 그런데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의 이면은 그 사람과 얼마나 오래 지내봐야 아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지난 주일날 운동회라는 것은 삶을 공유하는 경험이다, 상대방에 좋게 보인다는 것은 아직 그 사람을 모르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저를 존경한다면 아직 나를 모르는 거에요, 나를 알면은 실망하지만은 목사님으로 받아 드리는 거에요. 그게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했든 이번에도 이 책이 천 권 했는데 다 나가서 우리 이병영 집사님이 주도하고 또 오장로님 조장로님도 좀 협력했다 하더라고, 천 권 다시 냈습니다.
5. 사랑은 실망스럽고 마음에 안 들어도 근본적인 관계에 대한 흔들림이 없는 거라 한다, 그래서 알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한 몸 되는 것이라 한다. 중보 기도를 하면 경험을 동일하게 하게 된다, 기도를 그래서 성령의 교통 하심이고 통로라 한다. 신비한 것이 기독교에 있는 여러 예식이다.
사랑은 오래 참는 거래요, 사랑은 실망스럽고 마음에 안 들어도 근본적인 관계의 대한 흔들림이 없는 거래요, 그래서 알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한 몸 되는 거래요.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의 정보가 화젯거리가 될 때 그 이면을 이야기해 주세요, 편들어 줘야 되요, 그래야 가족이에요, 그런 것을 위해서 우리 운동회를 한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그런 것들을 빨리 당기는 것이 중보 기도라 생각해요. 나가실 때 이 책도 가서 다시 한번 읽어 보고요, 그래서 여기 나가실 때 양쪽 편에 중보기도 제목을 올려 노라 했어요, 상대방을 위해서 여러분 입시 생을 위해서 한번 기도 해보시고 환우를 위해서 기도 해보시면요 그 사람을 자꾸 하나가 되게 해요. 기도하다 보면 옛날에 그것 가지고 화젯거리로 삼았든 게 부끄러워져요, 위대한 기도의 힘이에요.
기도를 그래서 성령의 교통 하심이고 통로라 그러는 거에요. 저는 여러분들이 그런 운동회는 시간 없어서 참여 못할지 몰라도 또 쑥스러워서 못할 수도 있어요, 그 가서 또 모르는 사람들과 안면이 없는 사람들하고 오래 앉아 있다는 것은 괴로움이거든요, 그것 극복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기도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거든요,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이거든 그것을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해 보세요, 그러면 그분의 이해가 되어진다고, 그래서 중보 기도가 많은 교회에 사랑이 넘쳐요, 아는 진실한 관계가 되어져요. 우리 수요일 날 그런 중보기도 하고 목요일 날 중보기도 하는데 중보 기도하는 분들은 벌써 몇 년을 하니까 교인들 욕 안 해요, 화젯거리 안 삼아요 그 아픔이 와요.
여러분 자식이 이렇게 죽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그런 것들을 또 화젯거리로 삼습니까, 그런데 자식을 잃어 본 사람은 그 말하는 사람 욕해요, 그런데 우리 다 경험 못하잖아요. 자식을 읽은 자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를 할 때에 자식을 잃은 거와 같은 경험을 동일하게 하게 되는 거에요. 신비한 것이 기독교의 있는 여러 예식이에요. 여러분 어려움도 그 어려움을 진심으로 이해 해주는 내편 한 사람이 있으면은요 얼마든지 딛고 일어서지만, 즐거움도 그런 거에요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했잖아요, 의정부 고아가 열심히 공부해서 1등 했어요, PD가 무엇이 힘드냐 하니까 내가 1등을 했는데 이 성적표를 보여 줄 가족이 없기 때문에 힘들다는 거에요. 전교 1등 누구나 좋은 거라 하지만은요 그것을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이 없을 때에는 그것이 기쁨이 절대 안 되요.
여러분 우리는 죄인들은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뭔가를 해 줄 수는 있는데 다른 사람의 기쁨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것은 형제도 아닌 것 같아요, 부모의 마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장로님들이나 구역장들에게 교인을 부모의 마음으로 보세요 라고 해요. 저는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래요, 주일날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안 드리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어차피 예배를 드리러 와서 그 순간적인 감정으로 원수 될 사람을 그 딛고 일어나서 정말 아는 사람이 되고, 교회의 운동회나 여러 수련회를 통해서 삶이 공유되어져서 그 사람의 말과 사건의 이면이 있는 그것이 보여 지고, 정말 교회에 주보에 교우동정에 났을 때 그 일이 나의 기쁨이 되어져서 축하해 줄 수 있는 이런 삶을 살도록 예수님이 우리를 천국에 데려 가기 위함이 아니고 악에서 보존하기 위해서 영생은 그런 앎이라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아마 최옥남 권사님의 부음의 소식은 그 권사님과의 공유된 삶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남다를 거에요. 그분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는 사람은 그분을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느낌이 남다를 거에요. 우리가 이런 아는 사이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지난 주일 체육대회를 좀 보면서 참여한 사람이나 여러 가지 여건으로 참여하지 못한 사람이 체육대회를 함께한 삶의 공유의 시간을 우리 한 4분 가지고 또 여러분들이 나가시면서 이 책도 읽어 보시고 읽고 좋아서 다른 사람에게 주세요, 주고 좋으면은 독후감 한마디 쓰면은 또 다른 책을 준다고 그러세요. 그리고 중보기도 제목 가서 여러분 처음에는 기도해 보면 나도 그래요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자꾸 하다 보면은요 그 사람의 마음이 점점 내 가운데 와요.
6. 아이들이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아도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나라가 되기를 여러분들이 이런 중보가 모일 때 우리 사교육이 바뀌겠지요. 우리 자녀들의 다음 세대는 입시 때문에 고통 당하는 세상이 안 되겠지요. 중보 기도의 힘이다. 수많은 episode가 화젯거리가 상처 준다.
저는 우리나라가 입시 제도 지금 앞두고 있는데 지난 수요일 날 입시 생들 위해서 기도했는데 처음에는 기도하면은 우리 집사님 장로님 자녀 시험 성적 좋게 해 달라고 나오다가요, 어떤 마음이 드는가 하면은 왜 이 아이들이 이 좋은 나이에 이래 살아야 되는가, 왜 우리나라는 수학 잘하고 공부 잘하는 암기력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살만한 세상이 되어야 되는가, 판사 검사는요 재판 잘하는 공의로운 자가 되야 되는데, 암기력 뛰어난 사람이 된다고요. 우리 사회는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다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는 사회라고요. 그래서 자기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 이제 60년 이상 살아온 내가 대한민국을 보는 안타까움이에요. 여러분들 고3을 다 지난 엄마들의 기도가 왜 우리 나라가 이래야 되는가?
우리 아이들이 자기가 잘하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아도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나라가 되기를 여러분들이 이런 중보가 모일 때 우리 사교육이 바뀌겠지요. 우리 자녀들의 다음 세대는 입시 때문에 고통 당하는 세상이 안 되겠지요. 중보 기도의 힘입니다. 오늘 한번 보시고 정말 우리 그런 아는 사이 정보를 아는 자가 되어서 상대방의 아는 정보가 조롱 거리가 되고 화젯거리가 되는 교회가 아니라 그 앎이 아픔을 함께 나누는 가족과 같은 내편이 되는 그래서 중보기도가 좀 활성화 되어지고 거기 참여 못하는 분들은 한 달에 한번쯤은 이것 내려고 그래요, 가지고 여러분들의 자리에서 기도해서 좀 그런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금년 체육대회는 아마 임장로님이 우리 머리 속에 많이 남을 거에요, 달리기를 하다가 그냥 그 어떻게 잡았는데 넘어졌어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우리가 아는 거잖아요, 이런 것이 화젯거리가 될 때 본인이 좀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잖아요, 저는 40대 때 교회 체육대회 때 신영광 교회에서 옛날 생각하고 뛰었거든요, 열심히 목회만 하고 이러다가 공부만 하다가 체육대회 때 옛날 마음으로 뛰었는데 야 지구가 그렇게 무른 줄 처음 알았어요, 휭 꺼지며 넘어졌는데 그리고는 제가 심장이 또 약하잖습니까, 얼굴이 하야히 간 거에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제 등산을 해서 제가 한국의 명산 한 40-50개는 했어요, 요즘 무릎 때문에 못할 것 같아,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장로님이 넘어졌을 때 민망한 마음 또 여러 가지 마음이 느껴져요, 여러분들이 정보를 아는 것 하고 그것을 함께 공유하는 감정은 다른 거에요. 여러분들이 그런 감정을 가지지 안 해도 중보 기도를 하면은 그 사람의 민망함과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을 이해하게 되어져요,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애피소드가 물론 이건 별 것 아닌 애피소드에요 그런데 우리 인간이 사는 수많은 애피소드가 화젯거리가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 굉장히 많아요. 그러지 아니하려면은 기도 해야지요.
◈봉헌 기도◈
가족끼리 열심히 일해서 벌은 소득을 가지고 한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음으로 같은 운명 공동체가 된 것과 같이 우리가 각자 처한 장소에서 열심히 일한 것 가지고 주님 앞에 예물을 드려서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가 되게 하시는 헌금의 제도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드린 예물이 우리 가운데 연약한 자의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 주님의 은혜의 수단이 되게하여 주시고 누군가의 그 영광스러움이 모든 사람의 즐거움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의 예물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비정한 세상에 정이 넘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비정한 세상 속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지으신 한 가족임을 알도록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아버지 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상대방의 정보가 화젯거리나 조롱 거리나 비난 거리가 아니고 상대방의 그 모든 앎이 되어져서 한 몸이 되고, 그래서 한 편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우리가 믿음 안에서 영원한 가족 아는 자의 삶을 더욱 깊이 알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 행사에 참여하고 또 내가 상대방에 대한 경험을 내 경험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 아픔에 동참하기 위해서 중보 기도 자가 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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