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영적 탁월성
요한복음 18장 1-11절
2016년 10월 9일 주일 낮 예배
No. 284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2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히11:1절“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물질의 세계와 영의 세계. 물과 말의 의미. 사건과 배후. 예수님의 체포의 의미. 내가 그다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을 용납하라. 유다의 착각과 베드로의 착각.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고 사탄은 이용한다.
가을을 맞이하면서 여러분들에게 특별히 중고등학생을 둔 부모들은 조정례씨의 신간소설 풀꽃도 꽃이다라는 것을 읽어 보라 했습니다. 우리 사춘기의 아이들이 어떻게 몸살을 하는지, 또 학교의 생활이 뭔지, 아주 표면으로 드러난 것들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한 주간 읽었든 책이 화풀이 굉장히 유명한 소설이지요, 또 4천 만부가 팔렸고 전세계 60개 국어로 번역이 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인데요, 한 권만 쓰셨어요 그분이.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을 제가 쭉 읽는데 참 지루한데요 조금 있으면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하게하고, 재미 있구나 하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보면서 조정례씨의 소설과 대비되어서 생각나는 것은 자전적 소설인데 7살부터 9살까지에 있었든 일들을 회상을 해서 이렇게 소설로 만든 겁니다.
보너스는 주제는 정의가 뭔지 그리고 진정한 용기가 뭔지,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한 억울한 흑인의 재판을 통해서 잘 들어내는데요 보너스는 참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잘 묘사하고 있어요, 말은 한마디도 안 하는데, 정말 인격적으로 하지 말라는 소리는 한번도 하지 아니하고, 또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철저하게 어른에게 순종하게 하는 그런 교육의 법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드러나는 말 드러나는 사건은 잘 보는데 그 이면에 보는 눈이 좀 약한 것 같아요, 한국의 목사님들의 설교도 보면은 좋은 말들이 참 많은데 외국에 좀 명성이 있는 목사님들의 설교집을 보면은 좋은 말이 아니라, 뭔가 깊이 있게 생각하고 또 되씹게 하는 그런 요소들이 있습니다 아미 교육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1.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거기에 구원이 있음을 말한다. 요한복음은 굉장히 영적인 복음이라고 한다. 내가 그다라고 할 때 이 사람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다고 한다, 마태복음에 없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다고 하셨다.
우리는 그저 사지선단형의 교육이지마는 거기는 대화를 통한 이런 교육을 는 산물이 아닌가 이런 생각 하는데, 참 그러다 보니까 교회에서도 신앙 생활이 얕아요, 그저 주일 성수 잘해라, 11조 잘 해라, 뭐 사랑하라, 그저 이런 행동 드러난 말과 행동에 대한 지적이 목사님들의 설교에 많은데, 히브리서 11장에 보면은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고 그래요. 또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그래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거기에 구원이 있음을 말해요,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물질의 세계도 있지만은 안 보이는 정신의 세계도 있거든요, 또 여러분 우리가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되는 말이 있는가 하면은 그 말 이면에 있는 말의 의도나 의미가 있거든요.
어떤 사람이 행하는 행위나 사건 드러나는 행동이 있는가 하면은 그 행동의 배우도 있거든요, 더 중요한 것은 이면이거든요 믿음으로 보는, 우리는 사랑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정말 성경의 믿음은 사랑이 뭐냐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요, 여러분 사랑하는 삶은 사랑이 뭐냐에 따라서 삶이 굉장히 달라집니다. 그저 우리는 사랑이라고 하면은 상대방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진다든지 아니면 상대방이 어려울 때에 뭔가 좀 도와 주는 걸 사랑이라는데, 그러다 보니까 사랑의 삶이 굉장히 단순하고 뭔가 좀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랑의 의미를 알면은 그 삶의 깊이가 굉장하거든요.
오늘 성경 본문이 참 이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체포를 당하는 장면이에요, 그런데 마태복음의 있는 내용하고 요한복음의 있는 내용하고 함께 비교하면서 읽어 보면은요 요한복음의 내용이 얼마나 깊이가 있는가, 그 이면이 얼마나 깊은가 하는 것을 알게 되요. 그래서 우리는 요한복음은 굉장히 영적인 복음이라고 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에게 잠깐 말씀을 드리면은 예수님께서 감란산에서 이제 잡히시기 마지막 전날 제자들과 함께 갔어요,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룟유다가 사람 이제 군인들을 데리고 와서 내가 입을 맞추는 자가 예수다 그를 잡으라.
그래서 예수님에게 와서 입을 맞추고 하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은 랍비 안녕 하옵십니까, 하니까 예수님이 친구야 네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행하라. 이러니까 군인들이 와서 예수님을 체포했어요. 옆에 서 있는 베드로가 칼을 가지고 말고의 귀를 잘랐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귀를 다시 붙여 주면서 칼을 칼집에 꽂으라, 칼을 사용하는 자는 칼로 망한다 마태복음에는, 이래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체포의 장면 하면은 가룟유다가 떠오르고, 베드로가 떠오르고, 말고의 귀를 자른 것이 떠오르고, 그러면서 유명한 교훈을 얻으려고 해요, 칼을 사용하는 자는 칼로 망한다, 그래서 절대로 무력이나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만 생각을 해요.
그런데 똑 같은 내용을 오늘 여러분들이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여러분들이 깨닫지는 못했지마는 가룟유다가 데리고 온 그 자리에 있었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은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해요,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이러니까 이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다 이래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내가 그다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그 말씀을 내가 그 다고 할 때 이 사람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다고 해요, 마태복음에 없는, 그리고 난 뒤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 물으니까 그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하니까 내가 그니라 라고 말을 하면서, 그 다음에 중요한 말씀을 하는데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을 용납하라, 너희가 나를 잡으러 왔으니까 나를 따라다녔든 제자들은 가도록 내버려둬라, 라고 말을 하면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다 라고 말씀을 해요.
2.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네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예수님은 지금 체포를 당하고 십자가에 지는 것을 자기가 마시는 잔이라고 이야기를 하신다. I am 이라는 것은 보어가 없이 I am 이시다, 이게 하나님의 별칭이라 한다.
그리고 난 뒤에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잘랐을 때에 예수님께서 칼을 칼집에 꽂아라 라고 말을 하면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네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예수님은 지금 체포를 당하고 십자가에 지는 것을 자기가 마시는 잔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말을 요한복음은 안 해요. 그러면 이 말씀에 요한의 깊은 의도는 뭐냐 하면은 여러분들은 지금 한국 사람이니까 이 말씀을 잘 이해를 못하지만은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이해한다고요, 내가 그다라고 하는 예수님의 자기의 주장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주장이에요, 제가 요한복음을 하면서 여러분들에게 그런 이야기 했지요.
요한복음은 끊임없이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 내가 그니라 라고 말을 하는데 이 말은 헬라어로는 에고에이미 지만은 영어로 말하면은 I am 이에요, 여러분 I am 다음에는 보어가 있어야 되잖아요, 어떤 인간의 행동 다음에는 목적어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보어가 없이 I am 이래요, 이게 하나님의 별칭이에요. 하나님은 보어가 필요 없는 스스로 있는 자다 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 모세가 하나님 당신은 누구입니까? 내가 뭐라고 이야기 해야 합니까 하니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자존 자라는 거에요. 여러분 이런 것들을 아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아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지만은 정말 우리 한국의 교회 신앙 생활 하면서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도 못하고,
또 예수를 믿으면서 더 신앙이 여러분들을 얽어매는 정말 신앙은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하는데, 이런 생활을 하지 못하고, 지난 주일 말씀 드렸지마는 하나님에 대한 정보만 아니까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신상의 정보를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은 굉장히 불편해요, 나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니까 교회에는 여러분들의 신상을 아는 사람들이 정보를 알아서 많은 이야기가 되니까 교회에 오면은 괜히 남에게 허물 잡히지 않을까? 뭐 이런 두려움이 있고 힘든 일이 있다고요, 그래도 천국은 가야 되니까 억지로 신앙 생활하는 이런 경우가 너무나 많아요,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이번 가을에도 인간이 만든 신 인간을 만든 하나님 책값 안 받잖아요 읽어 보세요, 여기에 보면은 인간이 만든 신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믿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요, 인간이 만든 신은요 우리의 구미에 딱 맞아요. 우리 암 못 고치잖아요, 그런데 40일 금식 기도 하면 암이 낫는데 이런 횡재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사업 잘 일으킬 수 없어요, 그런데 교회 열심히 다니고 봉사하면 사업 잘 된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나님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고 하니까 우리 속에 얼마나 구미에 맞는 이야기에요. 이건 인간이 만든 신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신을 믿으면은 종교적인 목적은 잘 이룰 수 있어요, 큰 예배당도 지을 수 있어요, 선교도 많이 할 수 있어요, 구제도 많이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신앙의 자유는 없어요, 하나님 때문에 평안은 없어요.
3. 인간을 만든 하나님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를 만드신 그 하나님은 성경에 말할 때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시고 인도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표적을 말한다. 예수님의 행위를 통해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계시해 주는 것이다.
인간을 만든 하나님을 성경은 말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내가 그니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말하는 거에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 하는 정보를 아는 것이 신앙이 아니에요, 이 책에 보면은 제가 그렇게 써 놓고 있어요, 여러분 우리를 만드신 그 하나님은 성경에 말할 때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그 다음에 보면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을 가는 것을 용납하라 라고 말을 하면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에게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이 말은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마시게 하는 그 십자가의 잔과 예수님의 체포의 과정에서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를 어느 한 사람도 버리지 아니하고 보호 하시고 인도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표적을 말하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 앞으로 이런 하나님으로 좀 바꾸셔야 되요. 여러분 제가 이야기 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요 사람을 이용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인간이 만든 유적문화 거대한 것들을 만들어 내요. 여러분 여러분들이 회사를 다니는데 여러분들이 회사를 다닐 때 여러분들이 고용하는 사장은요 여러분들을 칭찬하고 잘한다고 격려하면서 봉급을 더 줘요, 뭐 하려고 이용해서 뭔가를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 회사를 크게 하려고 해요, 그게 세상입니다. 모든 세상의 지도자들은 그래요. 인간이 만든 신도 축복을 약속해서 종교인들이 원하는 종교적인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교인들을 생각해요.
여러분들도 이제 뭐 아시는 분들을 아시지마는 우리 사돈이 66세에 돌아가셨어요, 은행장을 지내다가, 그런데 제가 이야기를 들으니까 돌아가시기 전 3년은요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살인적인 schedule 을 감당했대요. 이게 over가 되니까 백혈병에 걸려서 돌아가셨다 말입니다. 은행장 하면 뭐해요, 그리고 여러분 열심히 왜 은행장 연봉 많고 좋지요, 그래서 그 은행이 1등 은행이 되었어요 은행장 할 때, 그런데 이용한 거에요. 그 아버지가 구순 넘어서 살아 계세요, 어떤 마음이겠어요, 부모는요 자식을 이용하지 안 해요. 내가 죽어도 자식은 살리려고 해요, 지금 말씀이 그 말씀이에요. 너희들은 유대교에서 믿는 그 하나님은 너희들 이용해서 위대한 예루살렘을 만들고 위대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 아니야 구약에 있는 그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계시되는 그 하나님은 자기가 죽을지라도 내가 체포되는 그 자리에도 내가 죽으면서 한 사람도 상하지 않게 하는 것, 그런 하나님이에요.
예수님이 그 행위를 통해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계시해 주는 거에요. 믿음의 눈으로 여러분들이 이것을 보셔야 되요. 여러분 어느 부모가 자식을 이용하고 어느 부모가 자식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해요? 아니잖아요. 악한 부모도 그런데 하물며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를 이용해서 종교적인 위대한 목적을 이루려고 하시는 하나님 아니에요, 사명을 그래 가져가면 안 되요. 예수님은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을 용납하라는 거에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했다. 요한복음의 이면에 있는 이 중요한 메시지에요.
4.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 돌아오도록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비를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해야 된다
여러분 요한복음 15장에도 우리가 봤잖아요,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버리느니라.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니 뭐니 다 아니 이런 것 생각하지 말고요, 그 이전의 하나님의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그 하나님이에요. 구약에 예레미야애가에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우리가 이 세상에 고난을 당하고 우리가 힘든 일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고 그래요.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인데 너희들이 누구를 탓하느냐? 라고 말을 하면서 이것이 아침마다 새롭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고요. 베드로도요 베드로 후서에서 이렇게 말해요.
검을 가지고 말고의 상대방의 귀를 잘랐든 그 베드로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의 강림을 경험하고는요 우리 하나님은 한 영혼이 돌아오도록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이 이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요, 마태복음에 보면은 산상수훈 산에서 행한 가장 위대한 교훈중에 이런말을 해요 이는 이 눈은 눈, 이것을 동해(同害)복수 법이라 그래요, 우리는 야 성경 잔인하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 제일 처음 설립예배 드릴 때 내가 이 설교 했어요. 새 계명을 가지고, 이는 이 눈은 눈이라는 말은요 다른 사람에게 해만 안 끼쳐도 세상은요 참 좋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내가 당했는데 당한 만큼만 갚아 줘도요 그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는 이걸 이 법이 실행이 안되니까 힘든 거에요. 세상의 법은요 내가 사람에게 10만원 손해 끼쳤으면은 10만원만 갚아 주라고 그래요, 그런데 이것도 잘 안 하는 사회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은 이런 말씀하세요, 그건 세상이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너희에게 말하는데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래요,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된데요, 그러면서 또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이런 말을 해요, 누가 너희에게 5리를 가자 하면은 10리를 가라, 눈가 너희 왼뺨을 치거든 오른 뺨을 돌려 대라, 겉옷을 달라거든 속옷까지 줘라,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가 온전해야 된다.
너희가 이제까지는 이렇게 들었지, 마태복음 5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원수를 미워하라,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원수를 사랑하고 그 다음에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너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비를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해야 된다. 왜 여러분들이 교회 생활이 힘들고 예수 믿는 기쁨이 없는가 하면은 내가 만든 신을 믿는 거에요. 그래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목사님들이 말씀하는 그 규례를 열심히 지켜서 복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당은 크게 지어 지고 뭐 세계 모든 곳에 선교사도 파송 하는데 교회 가면 그저 내 흉보지 않을까, 내 잘못 드러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된다고요.
5. 창조하신 하나님은 죽을지언정 모든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가족은 상처를 받았더라도 그걸 되돌려 주어야 할 빚이라 생각지 않는다, 누가? 엄마.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있으면 그런 삶을 흉내를 낸다. 바란다는 것은 상대방의 변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위대한 일을 하려는 그 하나님이 아니에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기가 죽을지언정 자기가 지은 모든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에요. 주의 영이 있는 사람들은 저는 이래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독교는 사랑이라고 하는데, 사랑이 뭔지를 몰라, 여러분 이 책도 읽어 보세요, 여기에 사랑에 대한 정의를 제가 고린도전서 13장 잘 해 놨어요,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래요, 여러분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는데 그걸 뭐라고 제가 여기 설명 해 놨는가 하면은 상대방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내가 상처를 받았더라도 갚아 주어야 할 빚으로 생각해서 카운터다운 하지 않는 것이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거래요, 여러분 부부지간에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아요, 오늘 여기 가족이 계시지만 가족끼리도요 함께 가족이 된다는 것은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에요, 차라리 모르면은 그런 것 없지요.
그런데 가족은 뭐냐 하면은 상처를 받았더라도 그걸 되돌려 주어야 할 빚이라 생각해서 카운터다 하지 않는데요 누가 그래요? 엄마지요.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어머니는 아버지는 참 우리가 얼마나 가슴에 못박는 말들 행동 많이 합니까, 그래도 그것을 갚아 주어야 할 빚으로 생각해서 카운터다운 하지 안 해요. 그런데 그 엄마 아버지는 언젠가는 우리 곁에서 떠나요, 우리 하나님이 그런 분이에요.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있으면은 그런 삶을 흉내 내요. 여러분 교회의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와 여러분들의 신앙 생활이 더해 갈수록 어떻게 되야 되는가 하면은 더 큰 상처를 받았더라도 갚아 주어야 할 빚으로 생각해서 카운터다운 하지 않는 그런 모습도 점점 변해 가야 되요.
사랑은 바람이라 그래요, 바란다는 것을 뭐라고 그랬어요? 실망스러운 일을 하는 상대방에게 변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자녀들은 부모들에게 실망스러운 일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그래도 남들은 저 자식 못쓰겠어 안 되겠어 이러는데도 우리들의 엄마는요 우리들의 아버지는요 우리 자식이 변화될 것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거에요. 그 하나님을 말하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그러한 삶을 살도록 하신 거에요. 저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참 감사해요, 제가 함께 신앙 생활 할 때에 우리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이나 구역장들은요 그렇게 교회에 출석에 열심이지 안 해요, 그렇게 헌금 뭐 많이 안 해요, 그런데 어떻게 변화되는가 하면은 이런 모습으로 조금씩 변화 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감사해요.
무슨 소리를 들어도 갚아 주어야 할 빚으로 생각해서 카운터다운 하지 않는 모습이 언뜻 언뜻 죄인의 모습이기 때문에 들어 나지만 이런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은 좀 달라져요. 아무리 실망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도 변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요. 그게 부모이고, 왜 부모는 그래 사는가? 그 결심해서 그래 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에요. 여러분 오늘날부터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카운터다운 하지 말고 여러분들에게 어떠한 실망을 한 사람도 여러분들은 그 사람에 변화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마십시오 이래 안 한다고요, 그게 사랑의 삶인 것을 알게 될 때에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신 것을 그 예수님이 이루신 그 구원을 받아 드릴 때에 이제 그런 마음이 하나하나 싹 터가요.
6.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그게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 지금 자기를 잡아 온 사람들에게 내가 그니라고 하면서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은 가도록 용납하라. 가르침을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으로 함께하라는 것은 영적인 탁월성을 말한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자랑스럽게 나는 일곱 번 용서 했습니다, 몇 번 용서해야 됩니까? 보통 사람 일곱 번 용서 안 하잖아요, 한번 잘못하면 그 다음에 되로 받고 말로 주어 버리잖아요. 그럴 때에 예수님이 그런 말씀하세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그게 하나님이라는 거에요. 예수님이 지금 자기를 잡아 온 사람들에게 내가 그니라고 하면서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은 가도록 용납하라,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하나님께 나에게 준 자식들 하나도 잃어버리지 안 했습니다. 칼집에 칼을 꽂아라,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지 않겠느냐, 우리 교회에 과연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 하면서 이 싸움을 영적인 싸움을 해 봤느냐는 거에요.
14년도 2014년도 갈라디아서 강해를 했는데 여러분들 또 다 잊어버렸을 거에요, 갈라디아서 6장 6절에 보면은 가르침을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으로 함께 하라고 그랬어요, 저는 어릴 때에 그 말씀의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부흥회를 하면은요 언제나 목사님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교인들을 가르쳐요, 너희들끼리만 좋은 것 먹지, 성경 봐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 함께 하라 하지 안 했어? 목사님 갖다 드려, 이래서 그 어려울 때에요 이북에서 아들 하나 업고 건너온 가난한 권사님이 소고기 생기면 우리 집에 가져왔다고요 아버지가 목사님이라서, 저는 이해가 안 되었어요, 그런데 그 말씀이 아니에요, 가르침을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으로 함께하라 할 때에 그 좋은 것은 영적인 탁월성을 말해요.
여러분 자식은요 신발 벗고 쫓아가도 부모 못 따라가요, 가족을 생각하는 면에서는, 자식들은 자기도 가족을 위해서 아버지를 위해서 일한다고 하지만은요 나중에 자기가 아버지 되어 보고 엄마 되어 보세요 신발 벗고 쫓아가도 부모 못 따라가요, 어떤 가정이 좋은 가정이냐 하면은요 자식들이 가족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려고 하는 그 가족들은요 좋은 가정 되요. 목요일 날도 목사님들 모여서 제가 여기 성경공부 할 때에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은요 어떤 헌신된 교인도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목사님 못 따라가요. 교인은 주일날 와서 당화할 때 제직회 할 때 교회 생각하지만, 목사님들은 24시간 교인 교회 생각 하더라고요.
교인을 이용해서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그런 목사 말고요, 교회에 뭔가 이루어지지 안 해도, 내 죽더라도 교인 살리려고 하는 사람, 교인들의 행복이 목회의 비젼인 사람, 죄송한 이야기지만은 1994년도 중국이 개방되고 중국에 제일 먼저 갔는데 심양에 명련부에 있는 명련교회 갔을 때 저 충격 받았습니다, 100세 이상 사시면서 한국 교회에 큰 목회 하면서 제일 존경 받다 돌아가신 목사님을요 그렇게 쌍 욕을 해요, 그 사람들은요 중국이 공산화 되고, 94년도 까지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왜 욕하는가, 우리 버리고 도망갔대요, 목사가 그를 수 있느냐는 거에요, 무엇이 목사인가, 무엇이 장로인가, 무엇이 권사인가, 무엇이 구역장인가?
7. 손양원 목사님은 아들 죽인 자를 양아들 삼은 것뿐 아니라, 여수에서 한센 병자들과 생활 했다. 6.25 때 어떻게 나만 혼자 살려고 가겠냐며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그런 신앙이 오늘의 한국 교회를 이룬 것이다. 내가 죽더라도 다른 사람 살리려고 하는 그 마음이 부음바 되야 된다.
손양원 목사님은 큰 교회 목회 안 했어요, 여수에서 한센 병자들과 함께 생활 했어요, 6.25가 나서 그 아들 죽인 아들 양아들만 살리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는데, 그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6.25가 나 가지고 여수에 공산당이 밀려 오니까 그 한센병 환자들이 우리 목사님은 살아야 된다고 여수항에 배 갔다 대고 목사님 등 떠밀었어요, 목사님은 내가 여러분들을 놔두고 내가 나 혼자 살려고 어떻게 가겠느냐고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신앙이 오늘의 한국 교회를 이룬 거에요. 여러분 우리 교회 와서 큰일 하려 하지 마세요, 이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가져야 되요. 내가 죽고 교인 살리려고 하는 것, 내가 교회에서 그런 사람 예수님 재림 전에는 안 없어져요.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들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에게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하지 말고, 카운터다운 하지 않으려고 신앙 생활해야 되요. 여러분들이 볼 때에는 저건 절대로 안 될 놈이라고 하는 그 사람에 대해서도 변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신앙 생활해야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는 교회 됩니다.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것은 소고기 사서 갖다 주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적인 탁월성에 동참하라는 것, 우리 하나님은 자기 말 잘 듣는 자에게 복 주고, 안 듣는 자에게 벌 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악인이나 선인에게 골고루 비를 주시는데 구약의 하 나님은 그 하나님인데, 유대교의 랍비들은 이상하게 가르쳐요, 율법만 잘 지키면 복 주고, 우리나라 세계 일류나라 되겠다고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표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너희가 찾는 그이가 내다, 이 사람들은 가도록 용납하라,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나에게 맡긴 자를 한 명도 잃어 버리지 안 했습니다, 보복을 하려고 하는 이는 이로서 눈은 눈으로서 감당하려고 하는 베드로에게 그렇게 가르쳤지만 칼과 뭉치와 횟불을 가지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유대인에게 그에게 무력으로 대항하는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아라, 오늘 여러분 여러분들 속에 그게 남편이 되었든 아내가 되었든 자식이 되었든 목사가 되었든 장로가 되었든 권사가 되었든 받은 그 상처를 돌려주려고 하는 빼낸 칼을 칼집에 꽂으세요, 그리고 나에게 주는 잔을 마시지 않겠나? 내가 죽더라도 다른 사람 살리려고 하는 그 마음이 부음바 되야 되요.
오늘 최옥남 권사님 유족들이 여기 와 있는데 우리 교회 입관 예배 때 제가 말씀 드렸어요, 참 힘들 때 권사님이 힘들기 직전에 오셔 가지고 1년 신앙 생활 하면서 힘들 때 권사님이 넘어 지셨어요, 입관 예배 드릴 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왜 했는가 아시는 분들은 몇 명 안 되겠지만 키가 굉장히 작으셨어요, 그런데요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헛소리하고 돌아다니면은요 권사님이 혼내요, 그런데 권사님이 목사님과 교인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 말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분 한 분 계셨어요, 최권사님이 계셨으면 저분이 저렇게 마음대로 떠들고 다닐까 이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면서 여러분 참 우리 교인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우리 교인들이 많이 간 정안 교회가 열 몇 명이 있는 적은 교회 큰 건물은 큰데 집 옆에 있으니까 자기가 다니지 않는 그 교회도 김장 다 해주는 거요.
8. 교인들은 억울한 말 듣더라도 어떠한 실망스러운 구역원도 변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때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져 가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실망스러운 일을 할지라도 내가 변화될 것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 하나님이시다.
저는 우리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구역장님들이 무엇을 보아야 되는가 하면은요 열심히 신앙 생활 그분은 시간이 있으면 할 수 있어요, 돈만 있으면 헌금 많이 할 수 있어요, 그것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가 억울한 말 듣더라도 여러분 장로 되어 보세요, 안 들어야 할 말을 듣는 게 장로에요, 권사 되어 보세요 집사 때 안 들어야 할 말을 듣는 게 권사에요, 구역장 되어 보세요 구역원일 때 안 듣든 그 말을 듣는 것이 구역장 되는 거에요. 마시는 잔을 가져야 되요. 목사 되어 보세요 더 많은 말 들어요. 카운터다운 하지 않아야 되요. 어떠한 실망스러운 구역원도 변화에 대한 기대도 저버리지 않을 때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져 가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요.
교회 이야기만 하고 그칠까 하다가 하도 답답해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기도하자고 이야기 하는 거에요, 저는 우리 대통령이 위안부 할머니들 돌아 가시기 전에 그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막 급히 서둘면서 일본하고 협상하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에 어떤 마음에 어떤 마음이 드는가 하면은 왜 우리 대통령은 위안부의 문제는 저분들의 문제일까? 왜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왜 위안부의 할머니의 문제는 그분들의 가족의 문제입니까, 우리 국민의 모두의 문제이지요, 그 할머니들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그 자손들이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피해를 잊어버리겠어요? 여러분 대통령이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그런 것이에요, 자기를 위해 표를 찍은 사람만이 대통령이 아니라, 반대하는 그 국민도 내가 죽을지언정 살려야 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알아야 되요. 영적인 성숙은 그런 거에요.
장로님 권사님 구역장들 자기에게 좋아하는 사람만 내가 목양해야 할 대상이라면은 그게 뭔 장로고 권사고 구역장이에요, 나를 반대하는 그 사람도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죽어야 할 대상이에요. 참 힘든 십자가의 길이지만은요 이 걸음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후회 없는 생애를 사세요. 교회 와서 큰일 하려 하지 말고요, 뭔가 화려한 일 하려 하지 말고, 예수님이 마셨든 그 잔을 마시려고 해야 되요.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 하나님이에요. 내가 그렇게 하나님 원망하고 하나님 탓하고 이래도 하나님은 한번도 나에게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해서 카운터다운 한적이 없고요, 내가 암만 실망스러운 일을 할지라도 내가 변화될 것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 하나님이에요. 우리 모두가 그런 아름다운 연합을 위해서 성령님이 오셨어요, 우리 영원한 사랑 찬양 하겠어요. 아멘
◈봉헌 기도◈
신명기에 믿음으로 보라고 너희가 짓지 않는 집에서 거하게 되고, 심지 않은 포도원에서 먹게 될 때에 내 능력으로 이런 것들을 얻었다 하지 말라, 재물 얻는 능력을 내가 주었노라, 믿음이 있는 자만이 이 신앙의 고백을 하고, 이 신앙의 고백이 있는 예물을 주님은 받으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너희 가운데 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해라, 그것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는 하나님의 목적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우리는 교인들이 이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 얼마나 자존심 상하며 억지의 웃음을 웃으며 일찍 일어나 늦게 누어야 되는 그 수고의 분복으로 드리는 이 예물에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해서 목사님 유명 해지고 교회 유명 해지고 더 많은 교인들이 모여서 더 많은 일을 감당하지만 진정한 자유와 평안이 없는 이 땅에 일부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까, 이 예물이 인간이 정해 놓은 사회의 틀에 적응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사회 낙오자들 위하여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물질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당한 만큼만 갚아 주어도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공의로운 세상에 자기가 죽을지언정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요, 그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불어넣도록 체포의 그 순간에도 말고의 귀를 자른 그에게 칼집에 칼을 꽂아라,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지 않겠느냐 하며 친히 우리에게 잔을 마시라고 하기 전에 자신이 마시고 그 마신 잔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가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서 나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해서 카운터다운 하지 않게 하시고, 아무리 실망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변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내가 만든 그 신을 버리고 나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리는 그 순간에도 버리지 아니하고 찾아오시는 그 하나님을 알아서 그 하나님의 마음에 부음바 되어서 종교적인 열심 이전에 그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교인들을 바라보기를 원하는 내 육신의 자녀를 바라보는 눈으로 이웃을 바라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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