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홍은동 할머니 (요한복음 18장 33-38절)주일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6. 10. 27. 17:43

 

 

 

 

담임목사 김종웅

 

홍은동 할머니

요한복음 18 33-38

2016 10 23일 주일 낮 예배

                                                                                                                                                            No. 286

33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35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38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아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으로 보는 본문은 예수님에 의한 종교개혁이다. 가이사를 선택한 유대인들 가이사를 선택한 빌라도. 예수님의 종교개혁 십자가. 한국 교회가 추구해야 할 종교개혁. 인적 쇄신의 정치적 개혁이나 교리의 변화를 통한 구습을 타파하는 종교적 개혁도 아니다.

 

우리 다음 주일에는 우리 기독교에 가장 중요한 절기 종교개혁 기념 주일 500주년이 되는 그런 중요한 시점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여러 가지 신학 강좌도 하고 또 세미나도 하고 또 이 시대에 개혁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참 정확하게 알아야 되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그 개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은 어떠한 논의도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저 지난주에 여러분들에게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거라 그랬잖아요. 오늘 성경에도 보면은 예수님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십자가 처형에 판결을 받는 장면이 눈에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할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1. 우리는 구습을 타파하고 올바른 종교적인 전통과 예전을 회복하는 것을 종교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그런 개혁이 아니다, 예수님의 개혁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를 이루는 새로운 언약을 채결하셨다,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게 하신 것이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고 개혁이다.

 

그 메시지는 예수님에 의한 개혁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종교개혁 하면은 교리를 재발견해서 구습을 타파하고 올바른 종교적인 전통과 예전을 회복하는 것을 종교개혁이라고 생각해요. 예수님은 그런 개혁을 한 것이 아니에요. 유대교의 교리를 개혁한 것도 그들의 구습을 타파한 것도 새로운 예전을 만드신 것도 아니에요. 오늘 설교를 제가 이번 주에 3번에 걸쳐서 새로 작성하고 작성하고 했습니다 왜냐하면은 내용이 너무나 방대해요, 그래서 두주에 걸쳐서 좀 나누어서 해야 되겠다 생각해요, 1차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기존의 교리를 개혁해서 그 교리가 가져온 구습을 타파하고 또 전혀 새로운 전통 새로운 예전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이말 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이 개혁 주일에 생각해야 되는 것은 우리가 장로계 교리를 고수하고 또 그 동안 우리 교회 있는 여러 가지 악습이나 구습을 타파하고 또 그 동안 변형된 잘못된 것들을 새로운 전통으로 새로운 예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개혁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어떤 개혁을 하셨는가 하면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관계를 이루는 새로운 언약을 채결하신 거에요.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은 다음주일 또 왜 하셨는가 하는 것은 제가 다음 주일 성경 전반에 걸쳐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릴 거에요. 오늘은 먼저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새로운 언약을 채결하셨는데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제가 늘 이야기 하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 부름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영원한 가족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게 하신 것이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고 예수님이 행하신 개혁이다 이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야 되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가 그것을 그냥 믿고 아는 것 정도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우리 한국에는 지금 왜 이 부분이 이래 중요하냐 하면은 저는 우리는 500년 동안 유교라는 그 가치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또 우리가 지금 현재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삶의 모든 형태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사회적인 질서와 형태다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중요시 여기는가 하면은 전통을 중요시 여겨요, 그리고 또 충성을 중요시 여겨요. 그래서 공동체에 충성하고 전해 온 전통을 잘 지키는 것이 신앙 생활 잘하는 거라 생각해요. 여러분들에게 쉽게 이야기하면은 그 동안 한국 교회가 만들어 놓은 그 전통에서 벗어나면은 이단이라 생각하고 잘못된 거라 생각해요, 이 유교적 기독교에요.

 

또 자본주의라는 것은 여러분 뭐냐 하면은 자유가 덕목인데 그 자유가 만들어 내는 것이 뭐냐 하면은 능력이 있는 5% 95%를 먹여 살리는 사회의 구조에요.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 있는 사람이 최선이에요. 능력이 없는 사람 공동체에 기여가 되지 않는 사람은 도태 시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꿩 잡는 게 매다라는 진리 속에서 사는 거에요. 제가 뭐 그렇게 정치적으로 폄하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가치관을 잡자고 내가 하는 이야기에요.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고 아주 서열 높이는데 뭐 때문인가 하면 잘 살게 했잖아요. 그게 모든 것을 덮어 버리는 거에요.

 

그건 자본주의 가치관이고 유교적 가치관이에요. 우리가 잘사는데 행복합니까, 잘 살게 되었는데 옛날보다 평안 합니까, 이 질문이 여러분들 속에 있어야지요. 사회는 그렇더라도 교회도 그러는 거에요. 우리 한국의 교인들은 어떻게 하든지 교회에 충성되게 하는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요, 또 교회에 뭔가를 기여를 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교회 오면은 성가대쯤 앉아야 교회 기여하는 것이고, 또 교사나 아니면은 헌금이라도 많이 하든지 아니면 몸으로라도 봉사를 해야지 그 사람이 선한 기독교인이라 생각해요. 여러분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도태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5%만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부를 가지고 전체가 먹고 사는데 암만해도 5%는요 5%안에 있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5% 가 되면 누군가 그 5% 에서 탈락이 된다고, 그래서 우리는 뭐라는 가 하면은 그런 능력 없는 사람들은 도태해야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다고 하는 거에요. 여러분 이런 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하고 전혀 상관 없는 거에요. 여러분 여기에 대한 먼저 인식이 있어야 되요. 우리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분 참 젊은 날에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충성되게 하다가 나이가 들면은 쓸모 없다고 도태해 버리니까 이 비극 아닙니까 여러분. 그러니까 은퇴하고 난 뒤에는 회사에 대한 배신감이 가득 찬다고, 교회에도 이런 것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어쨌든 간에 내 자식은 능력 있는 자가 되어서 사회에 기여해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그런 선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5%라 말입니다.

 

2. 2천년 동안 기독교의 가치관 속에 세워 진 문화, 하나님과 우리와 백성 된 신앙인들은 하나님과의 맺은 언약에 충실한 것이 신앙이다, 그 언약을 저버리는 것이 배신이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어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교회도 여러분 이런 게 얼마나 많아요. 저는 참 제일 저에게 마음 아픈 인사가 뭐냐 하면은 목사님 저는 이 교회에 와서 아무것도 기여하는 것이 없다고, 그러면 우리 교회가 주식회사라 말입니까, 우리 교회가 세상이 만든 자본주의적 사회라는 말입니까, 공자기 추구했든 이상향의 국가라는 말입니까 아니에요, 그러나 여러분 기독교의 2천년 동안 기독교의 가치관 속에 세워 진 문화, 서양을 한번 보세요 서양은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배신자가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왜냐하면은 하나님과 우리와 백성 된 신앙인들은 하나님과의 맺은 언약에 충실한 것이 신앙이거든요, 그 언약을 저버리는 것이 배신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서양에 보면은 단테의 신곡 같은 경우도 보면은 지옥의 제일 밑바닥에는 누가 있는가 배신자 가룟유다가 있다는 거요, 우리나라 지옥의 제일 밑바닥에는 가족에게 짐 되고, 국가에게 짐 되고, 교회의 짐 된 자들이 가는 것인 줄 알아요. 그래서 우리는 부루투스는 맞아 이런 게 서양의 모든 문학의 기조가 아닙니까, 우리나라는 월하의 공동묘지 해 가지고 남에게 원한진 사람은 죽어서도 그 원한을 갚는 것 그런 원수를 갚는 문학이 많아요. 그래 서양을 보세요 로미오와 쥴리엣 남남 라이벌의 집안 서로 극복해야 할 그런 대상 그게 로미오와 쥴리엣이 사랑을 함으로 남이 아니라 하나가 되게 하는 우리가 되게 하는 성경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잘 묘사 되어져 있는 거에요.

 

오늘 여러분들의 속에 개혁을 그저 교리를 새롭게 하는 것이나 종교적인 전통을 고수해 나가는 것이나 이런 개혁이 아니고요, 예수님이 우리 모두가 예전에는 남남이었는데 하나가 되게 하는 우리가 되게 하신 그리스도의 그 구원을 받아 드리고 내 속에 언제나 능력 있는 자가 되어서 기여하려고 하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 자아를 말씀으로 극복을 해서 정말 이제는 배신하는 세상 속에 그 배신자를 용서하고 또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게 하는 우리라는 것에 대한 여러분들의 정신 개조가 있어야 되요. 여러분 오늘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어달릴 때에 유대교는 자기네들의 교리에 맞지 않다고 예수님을 못박았어요.

 

자기네들의 전통에 위배되는 것을 한다고, 이단자라고 거짓 선지자라고 못박았어요. 그런데 오늘 여기에 보면 중요한 말을 해요, 빌라도가 그런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너희 왕이냐 하니까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우리의 왕은 가이사 밖에 없데요, 굉장히 무서운 말이에요.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이 언약의 관점에서 보면은 19 15절은 너무나 중요한 말이거든요, 출애굽기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언약을 맺어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거에요.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배반하는 유대인들을 끊임없이 지키고 보호해 가시고 자신의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을 성경은 그리고 있어요.

 

그런데 왜 유대인들이 이래 되어졌는가 그들은 그들의 교리에 위배된다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기 위해서 우리의 왕은 가이사 밖에 없다고 그들이 시내산의 언약을 저버리는 거에요. 그래서 그들은 말은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가이사의 백성인 것을 스스로 자인한 말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우리가 교리라든지 전통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지 몰라요. 그런 개혁 필요 없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남남인 우리들이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하나되게 하신 하나님의 그 구원 그 언약을 새롭게 하신 예수의 구원을 받아 드려서 배신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 우리는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랑을 가져야 되요.

 

3.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하나님을 닮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잘 드러난다. 어떻게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그들을 저들이 알지 못하여서 저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할 수 있었던가?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을 가지고 있었든 예수님이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요 하나님을 닮았다는 말이에요. 여러분들은 예수를 믿으면은 이제 하나님의 닮은 것에 출발이 되어져야 되요. 하나님의 마음이 뭔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잘 들어나 있어요.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유대인들에게 저들이 알지 못하여 저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거에요,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우리는 배신을 그렇게 중요시 여기지 안 해서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한국 사람이니까 배신의 아픔도 어떻게 보면은 굉장히 주관적인 그리고 그 배신도 쉽게 넘어가요. 그런데 진짜로 여러분들이 믿었든 사람에 대해서 배신을 해보세요 배신을 당해 보라고요, 면도칼로 간을 찌르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것 당해 봤거든요, 잠을 못 자겠더라고, 가슴이 아파 뭐가 쳐 오르더라고.

 

우리가 이 문제가 해결 되어져야지요 좋은 세상 되지요. 목사님들 중에요 제가 은퇴한 목사님들 우리가 김종대 목사님도 계시지만, 제가 잘 모시지 못해요, 그래도 잘 모시려고 하는 것은 이런 것 때문에요, 제 아버지도 목사였고 장인도 목사였고 저는 수많은 은퇴한 목사님들 이래 대해 보면은요 교인들 진짜로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 목사님들은요 나중에 배신감 때문에 화병이 걸리는 분들이 많아요. 차마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 는 못하고 목사가 되가지고, 내가 교회를 어떻게 사랑했는데, 내가 교인을 어떻게 사랑했는데, 화병 걸린 목사 많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교회를 이용하고 교회를 이용해서 교회를 잘 세워 나간 사람들은요 교인을 이용을 잘하는 사람은 목회도 잘해요.

 

마치 회사 직원을 잘 이용하는 사람은 회사를 잘 키우는 거와 같이, 그런 사람들은 후회도 잘 안 하더라고, 또 후회 할만큼도 안 해요 챙겨 버리니까, 합동측같은데는 요즘 웃기더라고, 목사님 은퇴하면은 20년 동안 목사님 생활비를 책임 져 줘요, 그런데 목사님들은 교회를 못 믿어 가지고 일시불로 받는데요, 그래 가지고 일시불로 받는 목사님들이 많아 지니까 이제는 합동 측 교회에서는 일시불로 받을 때에는 15년치 준다 비극이지요. 여러분들이 지금 우리 교회도 연세 드신 분들이 있지만은 회사에 그렇게 충실히 했는데 나이 들어서 쓸모 없다고 헌신짝같이 버릴 때 그 회한이 많이 있잖아요 그 세상이에요. 그런 세상이라고 우리가 그러면은 나도 이용하면서 살아야 되겠어요? 내 것 챙기면서 살아야 되겠어요? 그러면 이세상은 엉망진창 되잖아요. 아마 사회에 성실하게 산 사람일수록 인생에 대한 회한이 크리라고 생각해요 그 세상이에요.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셨는가 예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거에요. 이 문제가 해결 되어져야 여러분들에게 평안이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배신이라는 것 잘 경험 해보지 못했을 때에는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당연히 용서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도 예수를 닮아서 용서를 해야 된다고 원수를 사랑해야 된다고 설교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정말 배신이 내 마음 속에 싹트니까요 용서가 어디 있어요, 기도가 어디 있어요, 화밖에 안 나는데, 그때 제가 여러분 경험입니다. 하나님 이 뭐 하는 짓입니까, 할 때에 이 말씀이 생각나요 예수님께서 그래서 내가 어떻게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그들을 저들이 알지 못하여서 저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할 수 있었던가 예수님도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을 가지고 있는 분인데, 그 문제가 해결이 되니까 원수를 미워하지 않게 되더라고.

 

4. 하나님은 배반하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그가 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되는 그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신 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배신하는 인간도 사랑할 수 있었다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다. 성령을 받는 것이 그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준 책들 그냥 하지 마세요, 정독을 하면서 생각을 하면서 목사님이 어떤 의미로 썼는가 하면서 한번 읽어 보세요. 어제 사무실에서 그러더라고, 미국에 있는 분들도 그 책을 읽고 고맙다고 전화도 오고 이런데요. 1권에 보면 인간이 만든 신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편 창조주 하나님 편에 제가 그래 놨어요. 하나님은 배반하는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그가 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은 이 세상은 진화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머리로 알고 우리가 성경적 지식을 가지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여러분 이것 아셔야 되요.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되는 그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신 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배신하는 인간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들이 성령을 받는 것이 그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거에요. 그래서 로마서 5 5절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음 바 됨이니 저는 이 말씀을 너무 진리로 생각하고 살아요, 성령은 병 고치는 능력 가지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을 아바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부르게 하고 우리 모두를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게 하는 것인데 그 성령은 어떻게 하게 되는가, 하나님의 사랑 창조주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음 바 됨이요, 배신하는 인간을 사랑을 하는 하나님. 우리는 그 하나님조차도 월하의 공동묘지와 같이 보복하는 하나님 내가 힘이 부족하니까 나 대신에 보복해 주기를 바라는 하나님, 내가 회사 나왔는데 회사가 더 잘되면 저놈의 회사 나 잊어버리고 있는데 저것 망하지 않나 하는 망하게 하는 그 하나님이 있잖아요 우리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 속에 세운 계획이 있어야 되요. 제가 홍은동 할머니라고 오늘 설교 제목을 했는데 설교 제목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고 교역자 회의도 했어요, 뭐 진리에 속한 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든데 언뜻 내가 홍은동 할머니라 하자 했어요, 왜냐하면은 제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저 북가좌동 중앙 고등학교 뒤편에 있는 신영광교회를 섬겼어요. 그때인데 tv 고발 프로에 어떤 프로가 나왔는가 하면은 그때 홍은동이 개발될 때에요 여러분 그 개발 비정함 알잖아요, 공권력의 힘 알잖아요, 비정함 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공권력, 용산 철거 사건 잘 아시잖아요, 그걸 고발하는 프로였어요.

 

여러분 이 세상에 제일 보기 흉한 것이 뭐냐 하면은요 세 가지가 있데요 하나는 영혼 떠난 인간 저는 최진실이가 제일 예쁜 줄 알았는데 영혼 떠나면은요 흉해요, 또 한가지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 흉가래요, 또 하나는 성령 없는 그리스도인 종교인 성령 없는 교회, 성령 없는 교회는 뭐냐 하면은 교리를 고수하기 위해서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서 타인을 정죄하는 교회에요, 성령은 정죄하는 것이 우리라는 것을 알게 하는 영이거든요. 그 흉한 모습 카메라를 비추는데 다 창문이고 다 부수어 졌는데 한집에 연세 많은 할머니 한 분이 계셔요, 그래서 pd가 가서 묻는 거에요 왜 수도도 안 나오고 전기도 없는 컴컴한 이곳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이곳에 계시느냐고 이분이 한다는 소리가 나는 갈데가 없다고, 친척도 없느냐고 나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그런데 카메라를 비추는데 벽에 그 집에 형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진이 하나 있었습니다.

 

빨간 쎄단에 늘씬한 젊은 여자가 썬그라스를 끼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 밑에 뭐라 적혀 있는가 하면은 엄마 내차야, 카메라가 그리로 돌아가는 순간 그 할머니는 그 사진을 자기 품에 팍 안는 거에요, 그래서 pd가 누군데 어떻게 되느냐 물으니까 처음에는 말을 안 하다가 말을 하는 거에요, 자기가 딸 하나를 평생 키웠다는 거에요, 그래서 숙명여대 나왔대요, 미국 유학 보냈대요, 가서 훌륭한 가문의 집안에 시집을 갔대요, 그래서 미국에서 우리 딸은 이렇게 잘 산다는 거에요, 왜 사진을 품었느냐 하니까 엄마가 이렇게 사는데 딸의 얼굴이 사람들에게 드러나서 욕먹을까 봐, 그게 엄마에요.

 

5. 하나님의 사랑이 부음 바 될 때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생긴다. 예수님은 악을 선으로,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 바울은 이것 알고 사랑에 대한 정의를 바꾸었다. 라도는 예수님을 보호해 주려고 했으나 유대인들의 말이 예수를 풀어 준다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 했다.

 

여러분 얼마나 그 가슴속에 배신감이 있겠어요, 차라리 중학교 보내 가 공장 보냈으면 같이 살 거에요, 그 딸 하나 믿고 평생 노년에 내가 뒷바라지 다할 거라고 했는데, 딸은 지 잘산다고 자랑하는데, 엄마는 물도 나오지 않고 전기도 끊어진 곳에 갈 곳 없이 마지막 남아 있어요. 그런데 그 배신감을 극복하는 힘이 뭐에요, 낳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배신하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창조했기 때문이에요 이것 아셔야 되요. 회복이 있는 잔치에 와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이해하게 되고,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 뭔가 정보를 알게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음 바 될 때에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거에요.

 

저는 교회 20 30년 다니고 여러분들이 뭐 권사 장로 되고 목사 되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종교적인 교리를 잘 알고, 전통을 잘 고수하는 것 유대교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내 속에 그 하나님의 마음이 싹터 나가야 되요. 그래서 제가 우리 장로님들과 권사님들과 구역장들에게는 교인을 내 육신의 자녀 보듯이 보라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는 세상은 배신의 세상이에요. 그 배신의 세상에 우리가 되로 받고 말로 주려고 하기 때문에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지요. 그런 세상에 예수님은 악을 선으로 갚으래요,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래요, 바울은 이것 알고요 사랑에 대한 정의를 바꿉니다. 박집사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온유하며 라는 말이 뭐라고 그랬어요, 사랑이 가득하면은 사람이 부드러워 진다는 말이 아니에요. 

 

온유라는 말은 민수기에 나오는 모세의 온유함이 모든 사람보다 성하더라 했는데, 모세가 얼마나 성질이 얼마나 괴팍 했는데요, 얼마나 다 열질 이었는데요, 모세는 온유는 자기를 배신한 사람, 자기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 오히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이게 수양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결단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 너 사랑해야 된다, 이런 말 안 하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이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리는 순간 그렇게 그 놈 때문에 잠 못 잤는데 그 마음이 하나하나 누구러뜨려져요, 저는 우리 교회가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죄인들이 사는 교회에요. 그래서 우리 교회도 배신이 난무해요, 그런 것에 사랑하라 용서하라 하면은요 억울한 감정에 기름 끼얹는 거지요. 한번 배신당해 보세요, 그 사람에게 용서하라는 것은요 불붙는데 기름 떠 얹는 거요,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게 아니에요.

 

배신하는 인간을 위해서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면서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주셨고, 그 마음을 주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어서 우리에게 그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시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설교를 듣고 교회 와야 하는 이유는 와서 성경의 정보와 지식을 얻는 것 뭐 의미가 있어요, 목사님이 새로운 지식을 여러분들에게 날마다 제공하는 것이 뭔 의미가 있어요, 이 생명의 말씀이 여러분들 속에 싹터 나가야지요 하나님의 마음이, 저는 우리 교회가 배신과 배반이 없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지 안 해요, 그것은 불가능한 거에요, 그런 일을 당했을 때에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한 가족임을 알아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씩 교회 다니며 키우자는 거에요. 저도 친구 목사에게 당하지 말았어야 할 배반을 당했을 때 그 행위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친구라는 것을 보니까 친구라고 생각하니까, 잘되기를 바래 지더라고.

 

제가 대학 교회에서나 이곳에 와서나 교역자 부 교역 자들에게 하는 이야기를 그래 합니다. 여러분들은 나를 밟고 일어서라, 그게 어른이고 담임이지요. 부 교역자를 이용하면 안 되겠지요, 우리 교회 와서 여러분 겨자씨나 여러분들이 모르는 사랑의 손길을 많이 베풀었어요, 그런데 하나같이 떠나고 원망해요. 순간 순간 제가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하면은 역시 인간은 안돼, 그 때 이 마음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지금도 여러분들이 어려우면은 내일같이 생각해서 해 주려고 하고, 또 다른 이유를 나를 공격하고 떠날지라도 그는 영원한 나와 함께 가족이라 생각하면 그 이겨 나가고 해 나가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500주년이에요 종교 개혁 주일이, 교리를 새롭게 하거나 전통 썩어빠진 구습을 개혁하는 그런 개혁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이루신 그 구원 쉽지 안 해요, 빌라도는 예수님이 말하는 진리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진리가 무엇이냐 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예수님에게 가시 면류관을 쓰면서 분노한 유대인을 다스리려고 그런 것도 했어요 보호 해 주려고, 그럴 때 유대인들이 뭐라는 가 하면은 우리의 법대로 하면은 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해서 죽여야 된다고 하는데 19장에 가보면은 그 말을 듣고 빌라도는 두려워해요,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있었어요, 예수님을 편들어서 예수님을 보호해 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유대인들이 뭐라는가 하면은 반역자 예수를 풀어 준다면은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닙니다.

 

그래서 재판 석에 앉아서 십자가 판결을 내려요, 여러분 여러분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할렐루야 은혜 받고, 하나님 하면은 내가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려고 나는 어쨌든 간에 교회를 사랑하고, 성경 지식 잘 알고, 회복과 쉼이 있는 잔치에서 복음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그런다고 해서 하나님 편이 아니에요, 우리 얼마나 그래요. 그저 하나님 하나님 하고 교회에 막 하다가도 요만한 이익이 되지 않고 요만한 상처만 되면은 언제 봤느냐 빌라도와 같은 신앙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이 그 속에 없는 거에요. 홍은동 할머니의 딸을 향한 마음이 없는 거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서 자신이 죽어요, 딸을 낳은 엄마는 그 딸 덕 보려고 하다가 지 혼자 잘 살고, 자기는 그 폐허가 된 동래에서 이사 갈 집 없는데도 딸 얼굴 알려질까 봐 사진 안는 거에요.

 

성령으로 그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속에 새롭게 되어지는 종교개혁이 되야 되요. 다시 한번 이야기 합니다 우리 교회에 상처 받으러 왔어요. 새로운 교인이 오면은 목사님 상처 주려고 오는 거에요. 그런데 사랑해요. 왜 그가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할 가족이거든요, 상처를 준 자지만 친구거든요. 우리 찬송가 549장 합시다. 아멘

 

◈봉헌 기도◈

 

능력 있는 자들이 사회에 도태되지 않고, 나도 능력 있는 자에 들어가기 위해서 능력이 하나님에게 잘 보이려고 드리는 종교적인 예전의 헌금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받을 자격 없는 자가 받은 것에 감사해서 주님 앞에 드리는 열납하는 예물이 되게하여 주시고, 이 예물이 목사의 명성을 높이는 교회의 성장의 수단이나 인간의 바벨탑인 교회의 건물을 높이 쌓는데에 사용 되어지지 않게 하여 주시고, 교회의 조금도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 자를 위해서 예수가 이루신 그 구원의 가족을 이루는데에 잘 사용 되어져서 배신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끊는 이 땅에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수단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교회마저도 자본주의와 같이 5%의 능력 있는 교회가 교인이 95%를 바치는 구존데 능력이 없는 자는 도태되어야 그래서 모든 사람을 능력 있고 헌신 자로 만드는 20%의 제자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 가는 주식회사와 같은 교회가 되지 않도록 가장 짐이 되는 자도 하나님이 지으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우리 모두가 인식하며 십자가에서 주님이 마셨든 그 잔을 마시는 신앙 생활이 되는 종교 개혁 주일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자신들의 교리에 위배된다고 자신들의 전통에 어긋난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서 가이사를 선택하는 유대인들에게 저들이 알지 못하여 저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모든 사람은 능력이 없는 자는 퇴출시켜야 한다고 하는 세상에서 어떠한 영혼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고, 세상은 흉악범은 사라져야 된다고 하는 세상 속에 그를 창조한 하나님은 그가 변하기를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망극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 창조자의 마음 낳은 자의 마음을 가지고 배반하고 손해가 되는 자를 사랑하게 하시도록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손해 본 것 당한 것 보다는 그 사람이 하나님에 서 함께 지음 받은 가족임을 보면서 보복하는 마음 누르고 사랑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배신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그 사람이 함께 천국을 유업으로 받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받은 그 상처가 하나님으로부터 회복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