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아버지의 닮은꼴
요한복음 20장 24-31절
2016년 11월 6일 주일 낮 예배
No. 288
24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왜 믿어야 하나? 첫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기 위해서이다. 둘째 그의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다. 예수님께서 진짜로 부활하셨나? 빈무덤, 증인들의 순교. 요한복음은 표적의 책이라고도 한다. 7가지 표적이 기록이 되어 있다. 기록되지 않은 표적도 많다.
여러분들 대화하다 보면은 상대방의 말하는 의도를 알지 못하고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과 대화하면 참 답답합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성경도 똑 같아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으면서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참 답답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쓴 의도를 알아야 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이제 요한 복음은 20장까지 마쳐요. 21장은 부록입니다. 마치면서 요한은 뭐라고 말 하는가 하면은 자기가 요한복음을 기록한 의도가 이런 의도다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그 말씀이 뭐냐 하면은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다. 요한복음을 우리는 표적의 책이라고도 해요. 왜냐하면은 7가지의 표적이 기록이 되어져 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아는 가나혼인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한 것이나,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 준 것이나, 소경 된 자를 고쳐 준 것이나, 또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를 오 천명을 먹이신 것이나, 또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 이런 것들이 기록되어져 있지요. 이런 것들 외에도 그런 표적을 정말 많이 행했는데 왜 행했는가, 31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오직 이것을 기록한 것은 앞에 있는 이런 표적들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다. 왜 예수님이 가나갈릴리 혼인 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했는가, 너희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도록 그랬다는 거에요.
1.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이 기쁜 소식이라는 것이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신탁이다, 네 몸에서 날 자식은 내 아들이다 성전을 건축하게 되고 그 왕위는 영원하리라고 약속하셨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내가 왜 기록을 했는가 너희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도록 기록했다는 거에요. 이런 것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되는데 이상한 것 그 뒤에 보면은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이러니까 그런 교회 다니지 마세요, 수지산성교회 같은데는 제가 이름을 말해서 미안하지만 이 의도를 모르는 거에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친다, 그래서 예배 마치고 나면은 축사 같은 것 한다고, 교인들끼리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 사탄아 물러가라, 베뢰아 신학이라고 잘못된 신학이에요. 왜 잘못되었는가, 의도를 알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믿는 게 잘 믿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예수님께서 병고치고 이런 것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기 위함이다라는 것을 아셔야 되요.
마가복음 1장 1절에도 보면은 뭐라는 가 하면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이 기쁜 소식이라는 거에요. 요한복음을 마치면서 여러분들이 한번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 나에게 참 기쁜 소식인가, 아니면은 예수를 믿고 내가 복 받은 것이 기쁜 소식인가, 예수님 기도해서 우리 아들이 수능시험 잘된 것이 기쁜 소식인가 여러분들 이런 것들을 한번 반성해 봐야 되요, 왜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 나에게나 주변에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인 것을 알지 못하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하나님 하면은 신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은 신의 아들이라 생각해요. 또 우리가 신이라고 하는 믿는 신들은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말 잘 듣고 자기에게 잘하면은 복을 듬뿍 주고, 또 자기 말을 잘 안 들으면은 화를 내어서 벌을 주는 것 그게 우리 한국 사람들이 고래로부터 가져온 신관이에요. 이 신관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그대로 적용을 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니까 예수님에게 잘 보이면은 복을 받고, 그러지 아니하면은 벌을 받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 생각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누가 하는 소리같네, ㅎ ㅎ ㅎ 여러분 예수님이 한국 사람에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안 했다고요, 유대인들에게 그 말 하셨어요.
그러면 유대인들에게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 드리느냐 하면은 여러분들이 회복이 있는 잔치 때 했지마는 사무엘하 7장 12절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배경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 말씀에 의하면은 그 말씀은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신탁이에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네 몸에서 날 자식은 내 아들이다, 그리고 그 아들은 성전을 건축하게 되는데 그러면은 사울의 왕위와 같이 당대에 끝나지 아니하고, 너의 왕위는 영원하리라 약속을 해 주셨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언제나 다윗의 아들이 왕이 되어야 되고, 왕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나중에 뭐 사상가들이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이나 이런 것들이 다 그래 나온 거에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나중에 나라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는 것도 비극이었지만은요 포로로 잡혀 가서 여호아하스가 죽임을 당할 때 이제 다윗의 후손가인데 마지막 왕이 죽임을 당할 때 대성통곡하는 것이 시편에 있어요. 왜 하는가 하면은 이제는 더 이상 나단의 신탁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왕위를 계승할 자가 없다는 절망감에서 한 거에요, 그 절망감 속에 어떤 생각들을 했는가 하면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했고, 언젠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다윗의 왕국을 재건할 것을 믿었다고요.
2. 하나님의 아들이 다윗의 왕국을 재건하기 위해서 성전을 건축하는데 돌로 지은 예배당이 아니고 3일만에 짓겠다고 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다고 믿는다.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말은 구약성경에 왕, 제사장, 선지자 에게 기름을 붇는다.
그러면 그 하나님 아들이 다윗의 왕국을 재건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 뭐냐 하면은 성전을 건축하는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다윗의 후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데 유대인들은 돌로 지은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이 성전이라고 생각했든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돌로 지은 예배당이 성전이 아니고 3일만에 짓겠다고 이랬다고, 그러니까 예루살렘성전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고 생각했든 당대의 제사장의 눈으로 보면은 이건 거짓 선지자였다고요,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먼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면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건축하실 분이구나 이래 믿어야 되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유대교가 되지 아니하려면은 돌로 지은 예배당이 성전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것이다라고 믿어야 되요. 그래야 기독교인이에요.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잘 보이면은 복 받고, 못 보이면은 벌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적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생각이고, 또 예배당을 잘 지으면은 복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유대교에요. 그래서 옛날에 목사님들이 그랬잖아요, 참 목사들의 책임이 커요, 그래서 목사님들은 뭘 해야 되는가 하면은 성경을 잘 풀어서 설명해 줘야 된다고 하잖아요.
피리 소리인 성경을 양의 소리로 바꾸어서 해 주는 게 목사의 역할이라 했잖아요. 옛날에 안 그랬어요 여러분 오래 믿은 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부흥사들이 와 가지고 집사는 사람 집 팔아 가지고 교회 헌물 해라, 전세로 옮기고, 전세 사는 사람 월세로 옮기고, 그것도 없는 사람은 대출 내 가지고 서로 보증서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 된다, 그래야 복 받는다, 하면서 어떤 사람이 성전을 그래 건축하는데 자기집 팔았더니만 그 사람 집 두 채 생겼다. 부끄럽지만 우리 한국 교회 역사잖아요.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돌로 지은 예배당이 성전이 아니에요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이 성전을 건축하는 거에요. 이걸 아셔야 되요.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신 일이 그리스도 이심이다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그러면 그리스도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여러분들에게 우리 교인들은 이제 다 알지요, 그리스도란 말은 헬라어에요,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메시야를 헬라어로 번역을 하면서 구약은 히브리어잖아요. 나중에 70인경이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을 하면서 그리스도라고 번역을 한 거에요. 또 기독교가 중국에 전례 되면서 그리스도라는 말을 기독이라고 한자어로 번역을 한 거에요. 그래 우리는 그 말을 그대로 따서 예수 그리스도 할 때 그리스도를 기독이라고 읽는 거에요.
요즘 우리가 바로 번역을 했다면 기독교가 아니고, 그리스도교라 이랬겠지요, 그러면 그 그리스도란 말은 사전을 찾아보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이런 말입니다. 우리 목사님 뭐 기름 붓는다 장로안수 기름 붓는다 이런 이야기하는데 성령의 기름 부음 받아야 된다 잘 들으세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말은 구약성경에 왕에게 기름 부어요, 제사장에게 기름 부어요, 선지자에게 기름 부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왕이시고, 제사장이고 선지자이신 것을 믿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 여러분들이 예배에 오면 왕이신 나의 하나님 이러고 찬양하며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은 나는 이 세상에 살면서 대통령이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고, 하나님이 왕이신 것을 믿습니다.
3. 성전은 하나님의 거처 지로서 성전의 기능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속죄 제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제사장이 되어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림으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케 하신 것이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 교회는 목사님이 다스리는 교회가 아니고, 장로님이 다스리는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는 거에요. 나는 그 찬양할 때에 하나님 이 교회에 주인과 다스리는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그 보좌를 하나님 앞에 맡기며 나아가는 거에요. 그리고 예수님이 제사장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이 성전이라는 것은 성전은 하나님의 거처 지로서 성전의 기능은 제사를 드리는 거에요. 구약의 그 제사에는 중요한 제사가 있어요. 속죄 제가 있고, 속건 제가 있는데 레위기에 성전에서 그 제사를 드리는 거에요.
속죄 제를 왜 드리는가 하면은 속죄 제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의 왕 되시고 아버지가 되심을 회복하는 것이 제사에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뭐라는 가 하면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제사장이 되어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림으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케 하신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심을 믿으세요 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아버지가 되시고, 창조주가 되신 것은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는 역사적인 사실이에요. 그걸 받아 드리는 것이 그의 이름을 힘입는 거다 이런 말입니다.
많은 착각을 해요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홍길동이가 서모 밑에서 태어나도 홍대감의 아들이에요, 형님의 동생이에요, 그런데 아버지나 형들은 홍길동을 아들이라 하지 않고, 동생이라 안 한 거에요. 그러니까 홍길동이가 억울해 가지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부르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아들이 아닌 것 아니에요. 사회적인 관습이다 이 말입니다. 세상에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도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하나님이 안 지은 자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백성이에요, 그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이 지으시고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하시는데도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좀 이래 말하면 욕될 가 봐 조심스럽지만은 호로 자식이다 이런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가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게 되면은 그 다음에 우리 속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이 된다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주일날 왜 교회 와서 예배를 드려야 되는가 하면은 우리는 세상에 살다 보면은 이 세상에 산다는 말은 이세상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아버지 되도록 만드신 구조가 아니에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 진 사회의 틀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요, 그래서 목사는 사회생활을 안 하니까 그것을 모르지만 여러분들은 사회에 가면은 인간이 만들어 낸 틀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반듯이 내가 능력을 인정받아야지 내가 살아갈 수 있고, 상대방은 언제나 내 생존경쟁의 대상 자가 되는 사회라 말입니다.
4. 교회에 오면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는 틀을 유기체를 만들어 놓았다. 내가 이렇게 능력 없는 것은 알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 줄 알아서 실패가 곧 성공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이다. 실수조차도 선용하심을 믿는 것이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의 기능이고 힘 입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능력도 없으면서 내가 모든 것을 이끌어 가려고 남 이기려고 하니까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가 우리 속에 있어요, 그래서 주일날 와서 다시 교회에 오면은 교회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는 그 틀을 만들어 놓은 거에요 유기체를. 그래 이곳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아니지 내가 산 것이 아니지 하나님이 내 삶을 인도한 것이지 해서 이번 한 주간 내 삶이 잘 되었으면은 지 잘났다고 거들먹거리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인 줄 알고 왜 나에게 이런 복된 삶을 주었는가 살펴보면서 우리 문기옥집사 같이 쌀도 나누고 여러분 이런 거에요, 이게 예배에서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라 말입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내가 2부에도 우리 시험 안 드는 장대상 집사를 가지고 이야기 했지만, 회사 같이 다니면 옆에 동료는요 반듯이 경쟁의 대상이에요. 내가 저 동료보다 더 좋은 프로젝트를 해야만이 회사의 인정을 받고 내 자리가 든든해 지고 승진해요. 그래야 주영이 주성이 또 엄마까지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그래서 경쟁의 대상이라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그렇게 경쟁의 대상에서 이기면은 살아남는 줄 아는데 그런다고 해서 살아남을 것 하나도 없어요. 누구만 좋은가 하면은 최태원이만 좋은 일 시킨다고요. 그래 여기 와서 어떤 생각을 가지는가 하면은 내 동료가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이라 생각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상대방하고 함께 나누어서 정말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어 가는 일이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예비해서 일어나는 일들이라 말입니다.
지난 한주 간의 여러분들이 사업이 잘 안 되었을 때에도 무언가 잘 안 풀렸을 때에도 참 내가 이렇게 능력이 없는 것은 알지만은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인 줄 알아서 이 실패가 곧 실패가 되지 않는 성공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는 거에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요즘 우리나라의 이런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이 왜 그러셨을까, 우리나라 참 사랑한다는 거에요, 저는 이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면은 작금의 상태는요 이승만 시대의 이기붕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사건하고 똑 같아요, 다른 사건이 아니에요. 이기붕은 자식이 없었잖아요, 그걸 역사적으로 여러분들에게 한 시간은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거와 이것의 유사점은.
그러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면은 우리 국민들이 투표를 잘못해서 그렇구나 이것 자각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한 단계라고요, 그래 생각하면은 우리가 좌절할 일도 없고, 절망할 일도 없고,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말입니다. 개인의 삶에도 마찬가지에요. 이게 하나님이 왕 되심과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우리가 다시 회복함으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저 나쁜 놈 우리가 저런 놈 뽑고 어떻게 했나, 또 뭐 사이비에 빠졌니 이래 하지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되는가 하면은 그것 까지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알아서 인간의 실수조차 선용해서 아름답게 이끌어 가시는 그 하나님을 믿으셔야 되는 거에요. 그게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의 기능이에요. 여러분 이렇게 힘 입는 거에요. 그 예수님이 제사장이라는 것이 그런 거에요.
그래서 제사는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 인간이 왕의 자리에서 내려앉고, 그러다 보면 옆에 있는 사람을 경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섬김의 대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고 예수님이 친히 제사장이 되어서 성전에서 자기의 몸을 제물로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신 그것이 받아 드리는 것이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 드리는 것이 힘입는 거에요. 그러면 그것에 힘입어서 그 다음에 뭐라는 가 하면은 생명을 얻게 한다는 거에요.
5.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우리의 육신적 생물학적인 생명을 주려 오셨다. 예수님이 영원한 가족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셔서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자를 통해서 역사 하신다. 풍요로운 삶은 부유할 때 남들의 작은 실수에도 너그러움이다.
여러분 오늘 이제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록만 남아 있는데 금년에 여러분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여러분들이 금년에 요한복음을 강해하면서 여러분들이 이제는 여러분들의 생명을 얻어야 되요. 그러면 그 생명이라는 것도 뭐 죽어서 가는 생명 이런 것 아니에요. 첫째는 우리의 육신적 생물학적인 생명을 주려 오셨어요. 어떻게 주는가 제가 요즘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잖아요, 옛날에 우리나라는 대가족 제도였기 때문에 나 하나 부도나도요 또 형님이나 아버지 때문에 먹고 살았지만 이제는 우리는 사촌은 가족 안된 것은 옛날이고, 형제끼리도 원수잖아요.
그래서 내가 죽으면은 돌보는 형제가 없기 때문에 위험하잖아요, 그런 세상 속에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영원한 가족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셔서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자를 통해서 역사하세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는 교회 왜 주었는가, 굶어 죽게 되었을 때 굶어 죽지 않도록 예수가 교회 선물로 준거에요. 이제 이 생각을 해야 되요. 왜 목사 혼자만 그 생각하면서 목회해야 되요? 여러분들 좋은 가족이라는 것은 부자 형님하고 동생하고 재산 함께 합쳐 가지고 1/N 하는 게 아니라 말입니다. 문기옥 집사 추도 예배도 가보면 잘사는 형도 있고 뭐 다 다르지만은 언제 가족이 힘써야 되는가 하면 그 중의 하나 굶어 죽게 될 때 굶어 죽지 않게 해야 되는 거에요. 그 능력을 덧입는 거에요.
가난한데 왜 안 도와 주나 이게 아니에요. 길거리 나앉아서 얼어 죽지 않도록 그래도 눈비 피할 자리를 마련 해주는 것이 가족이 해야 할 일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제가 이야기하는 거에요. 우리 교회 안 다닐 때 누구하고 싸워서 안 다니고 하지 말라고요,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구역장이 나 지금 굶어 죽겠는데 외면하거든 우리 교회 다니지 마세요. 우리 교회 왜 외면 안 하는가 문귀옥 집사 있잖아. 그 쌀 주면 되지요 뭐, 여러분 정말 길거리 나앉게 되었으면 겨자씨 하잖아요 그러세요, 굶어 죽게 되었거든 구역장에게 이야기하세요. 그런데 참 아픈 것은요 정말 고운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면은 아프면 아프다 해야 되는데 그 말도 안 하는 게 참 아파요.
길거리 나앉게 되었거든 그렇다고 이야기 하라고, 그러면 우리 한번 힘쓰잖아요, 그래서 생명을 얻게 되는 거에요, 그것 하라고 온 거에요. 유대교는 그런 것을 안 한 거에요. 그저 돌로 지은 예배당만 잘 지으려고 했지, 더 풍성히 얻는 삶이 뭔가? 오만 원짜리로 수표 가득 넣고 툭툭 뿌리는 것이 풍성한 삶인가? 그건 졸부에요 예수님이 우리의 졸부 만들려고 온 게 아니라 말입니다. 인간의 풍요로운 삶은요 부유 해졌을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게 뭐냐 하면은 남들의 작은 일에 실수에 너그러운 거에요. 그래서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아버지의 닮은꼴 한 것은 여러분들이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은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 주셨다 했잖아요.
6. 그리스도적 사역을 행한 것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준다 했다. 하나님 닮은 것은 우리를 지은 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배신을 해도 실망시키는 일을 해도 용납하시고 품어 주시는 분이시다. 나를 실망시켜도 용납하고 품는 자가 하나님 닮은 자다.
그 이름을 믿는 자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적 사역을 행한 것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준다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은 부자 아버지 빽 믿고 거들먹거리는 것을 자녀라고 생각해요. 마치 대통령 덧입고 칼 휘두르면서 사는 것 같은 그런 것은 잘못된 자녀의 생각이에요. 제가 직접 알지는 못하고 건너서 아는 분이 몰라요 소문은 일격을 가지고 있데, 그래 우리 딸들에게 물어 봤어요, 그분 이름 대니까 아빠 끝내 줘 이래, 아들이 우리 은행장 지점인데 은행장도 그 아들 못 건드려요, 그런데 그 아버지가 뭐라는 가 하면은 그런데 왜 그 아들 지점 은행 다니냐 이러니까 아버지가 은행 안 다니면 재산 한 푼도 없다고 그랬다고 아버지가, 잘하는 것이지요.
부자 아버지라고 Ferrari 자동차 사 줘 가지고 지 마음대로 그러는 게 아니거든요. 아버지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야 되는 거에요.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아 가지고 하나님 빽 믿고 거들먹거리는 것이 예수 믿고 얻은 권세인 줄 알아,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닮은 거에요. 하나님 닮은 게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지은 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배신을 해도 우리가 어떠한 그분을 실망시키는 일을 해도 우리를 용납하시고 품어 주시는 분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모습은 어떤 모습이냐 하면은 나를 반대하고 나에게 손해가 되고 내가 실망스러운 일을 할지라도 그를 용납하고 품어 주는 자에요.
목사님은 거룩한 것은 할렐루야 이런 게 아니에요, 꾀질이 한 옷을 입고 궁상 떠는 것도 경건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닮은 자는 뭐냐 하면 자기를 싫어하는 자도 품어 주는 자가 하나님 닮은 자에요. 여러분 대통령이 어찌해야 되는가, 자기에게 표 안 찍어 주는 사람, 자기 말 안 듣는 사람, 바른말 하는 사람도 내 백성이지, 우리 국민이지, 하나님 닮은 대통령이에요, 장로 대통령이 하나님 닮은 대통령이 아니고, 여러분들 속에 하나님 닮은 자는 어떤 자냐 하면 그런 거에요. 내 마음에 들지 않고, 손해가 되고 내가 좀 싫어도 그를 한 가족인 것을 받아 들이는 사람, 그런 삶이 풍성한 삶이에요.
저는 어떤 사람 앞에 가면은 위축 되는가 하면은요, 돈 많은 사람, 권세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제가 고개 안 숙여요, 대학 교회 있을 때 고개 안 숙이는 것을 좋아하다가 나중에 또 신격화되니까 안 숙이니까 싫어하더라고, 어떤 사람에게 해야 되는가 그렇다고 해서 자기 나는 돈의 권세 이거는 자기 주관이지요, 참 자기를 욕하고 자기에게 싫어해도 껄껄 웃는 사람 앞에 가면 내가 작아져요 그게 하나님 닮은 자에요. 그런 사람이 무한하게 크게 보이잖아요 우리가, 우리 안에 하나님을 들어내는 것이 그런 거다 이 말입니다. 그저 이익이 되는 거기에 줄 서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교역자들에게 뭐 봉투 주고 이런 사람에게 줄 서지 마라는 거에요, 그 훈련이 되야 되는 거에요.
7.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범죄함으로 그 하나님의 완전함이 우리에게 훼손 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고 심히 좋아하셨다. 우리는 재림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지 않고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다. 못 믿는 우리를 믿으라는 표적으로 부활을 하셨다.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얻는 풍성함이 그거에요, 왜 나 싫어하는 저것도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걸 주려고 하는 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거라고요, 지난 주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는데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에요. 우리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의 완전함이 우리에게 훼손 된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좋았더라, 좋았더라, 인간 만들고 심히 좋았더라 이래요. 그래서 지난 주에 자뻑의 하나님이라 한 거에요. 여러분들은 하나님 믿고 나면은 앞의 이야기대로 우리는 아직까지 재림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지는 안 했어요.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어요.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어요.
이 우주 만물은 물리적인 공간이에요. 이 속에서 우리가 하늘 시민권을 둔 자의 삶은 먹고 마시는 문제를 제일 중요시 여겨요. 오늘 먹을 것이 있고 내가 오늘 비 피할 곳이 있으면은 자족하는 삶이에요, 그 사람이 하나님 닮은 거에요. 오늘 먹을 것이 있고, 오늘 피할 굴이 있는데도 나는 여전히 배고파 거짓의 아비 마귀를 닮은 거에요. 먹을 것이 있고 비 피할 곳이 있는데도 염려하고 더 가지려고 하는 자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었다라고 해요, 그 풍성한 삶을 살도록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 제사장이 되신 거에요. 제사장이 되어서 자기의 몸을 제물로 드려서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게 하신 거에요. 이것은 우리가 믿으나 믿지 않으나 역사에 일어난 거에요.
못 믿는 우리들을 위해서 믿으라는 표적으로 부활을 하신 거에요. 예수님 진짜 부활했는가, 지난 주 쉼과 회복이 있는 잔치 때 금요 반에 이번 주에 한다고 그랬지요. 그것까지 설교 안 하려고 해요 저는, 진짜 부활하셨어요, 그 부활하신 것은 왜 부활하셨는가,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신 것을 우리에게 믿도록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은, 그분이 돌로 지은 예배당을 지으려고 이 땅에 오신 교주가 아니라, 자기의 몸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의 역할을 하려고, 그래서 하나님이 아버지 왕 노릇하게 하시고, 그 십자가에서 인간과는 전혀 다른 자기를 못 박는 자를 향하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든 창조주의 그 하나님은 풍랑을 다스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런 분이구나, 하나님을 계시해 주신 선지자에요.
오늘도 우리 요한복음을 마치면서 다시 저 말씀보고, 여러분들이 이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여러분들 생애의 가장 큰 행복이고,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받아 드려서 이 지상에 어떤 사람도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어떤 사람도 얼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교회가 역할을 감당하고요, 나아가서 교회 때문에 나라가 그렇게 되어지고, 또 우리가 그런 생명이 보장되면은 풍성한 삶, 아버지 빽 믿고, 돈 자랑하고 돈 물 쓰듯이 쓰는 그런 것이 아니고, 제가 아는 목사님은 개척 교회 목사님인데 10년 더 되었네요, 좌회전 신호 대기 하려고 봉고를 몰고 다 떨어진 봉고를 몰고 딱 서 있는데 뒤에서 Ferrari 가 와서 딱 받은 거에요,
그래 내려가서 딱 하니까 새파란 젊은 게 호주머니에서 딱 내더니만 수표 두 장을 주고 싹 가 버리더래, 그래서 수표 하니까 한 20만원 주었는가 해서 차가 워낙 고물이니까 공이 두 개 더 있더래요, 내 횡재 했다는데 나는 2천 만원 받은 거요, 새 차 살 값, 나는 그걸 들으면서 슬펐습니다, 우리가 그런 게 얼마나 많겠나,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 빽 믿고 돈 마음대로 쓰려고 하는 그것을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땅에, 하나님 닮은 사람은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도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인 줄 알아서 품어 줄 줄도 알고, 그저 먹을 것이 있고 집 피할 곳이 있으면은 자족할 줄도 알고, 돈벌이 잘 되거든요 큰집에 옮기세요, 차도 좋은 것 타세요.
그러면서 나의 부유함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공유되는 삶. 산속에 가서요 최고의 요리사 쉐프가 칠순도 곧 드실 쉐프가, 이번주에 제가 스테이크를 먹어서 하는 이야기에요, 어느 권사님이 해 주어서 ㅎ ㅎ, 차려 주는 것 혼자 산에 앉아서 공기 좋은데 짤라 먹는데 부유함 느끼겠어요, 좋은 친구들과 함께 먹을 때 얼마나 그 스테이크가 더 맛있고 기쁨이 넘쳐요, 이런 교회가 되려고 예수님이 오셨구나 하는 것이 목사 혼자의 생각이 되지 않고, 여러분들의 생각이 함께 되어져서 이제는 그게 우리의 생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저 요만큼 맛이라도 보면서 살다가 주님 앞에 가는 그런 교회가 되도록 1년 동안 요한 복음 강해 해 온 거에요. 아멘
◈봉헌 기도◈
인간이 자기만 살아남으려고 만들어 놓은 사회의 틀 속에서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살아가려고 하는 우리들은 참 좁고 험한 길입니다. 그 가운데 얻은 물질을 내 능력으로 벌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번 것인 줄 알아서 주님 앞에 구별하여 드리는데 이 예물이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굶어 죽는 것 걱정하지 않는 이 땅의 삶을 사는 교회가 되도록 선물로 사용하여 주시고 얼어 죽는 것 걱정하지 않는 생명을 부여한 예물이 되게 하여 주시고, 우리 가운데 어떤 한 사람도 나는 가난하지만은 교회의 나의 장로님 형제, 권사님 자매가 부유하고 잘 살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도 기죽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교회를 만들어 가는 복된 예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가는 그날까지 재림의 그날까지 권세 자들이 부르짖는 사자요, 먹을 것을 아침까지 두지 않는 저녁 이리와 같은 세상에서 교회가 한줄기의 소망이 되고 빛이 되기를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안다고 해도 해결할 능력이 없는 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내일 때문에 오늘 행복하지 못하고, 내일 때문에 섬김의 대상을 경쟁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과 우리 모두가 영원한 가족임을 알도록 자신이 제사장이 되어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자신이 지은 자이기에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 백성들이 한 사람도 멸망 당하지 않고, 아버지께로 돌아 오도록 천 년을 하루같이 지금도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굶어 죽는 일 없도록 얼어 죽는 일 없도록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만드신 성령의 교통하심이 오늘도 예수님이 이루신 이 구원을 받아 드려서 땅에 사는 날 동안 내일 때문에 오늘 쓸 돈 쓰지 못하고, 내일 염려 때문에 오늘 불행한 삶을 살지 아니하고, 주신 분복을 누리며 나를 반대하고 나를 싫어하는 자도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자인 나의 가족임을 알아서 용납하고 용서하는 나의 타락한 감정까지도 말씀의 능력으로 눌려서 세상사는 사람들이 볼 때에 참 큰 사람이구나, 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이 우리의 큰 마음을 보고 좁은 우리의 마음이 우리 안에 거하는 큰 하나님을 드러내며 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이러한 삶을 살도록 우리의 보호막인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한숨의 소리 분노의 소리가 높은 이 땅이 민주주의 학습의 대가라고 받아 드려서 오늘의 이 고통이 더 나은 나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대한민국이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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