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더하는 삶(요한복음 18장 28-32절)주일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6. 10. 20. 13:00

 

 

 

 

담임목사 김종웅

 

더하는 삶

요한복음 18 28-32

2016 10 16일 주일 낮 예배

                                                                                                                                                             No. 285

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아멘

 

●성경의 고전 관념. 베드로의 부인[否認]만 부각되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이다.

 

참 우리 그 신앙 생활 하면서 경계해야 되는 것이 저는 고전 관념이라 생각해요. 오늘은 제가 그 앞에 산헤드린 법정에서 재판하는 그런 과정인데 예수님을, 읽지 아니한 부분 왜냐하면 별로 안 중요해서 안 읽었습니다. 그런데 별로 안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다루어 버려요. 앞에 내용이 뭐냐 하면은 여러분들이 고전 관념 중에 하나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난하다 이러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요한과 야고보의 아버지 세베데는요 그 안에 살로메는 굉장히 부자였어요, 예루살렘에도 자녀 교육을 위해서 집을 한 채 더 가지고 있을 만큼, 예수님의 제자들이 12명만 아니고, 마태복읍에는 70이 있고 그보다 훨씬 많아요.

 

그 사람들이 3년 동안 먹고 사는 일을 거의 세베데 살로메가 다 댔습니다. 왜 나중에 정권 잡으면은 아들 오른쪽 왼편 앉히려고 치맛바람의 원조였지요. 오늘도 그 부분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에 산헤드린에게 잡혀 들어가는데 요한은 대제사장과 잘 아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그냥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못 들어가고 문밖에 서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날 청와대나 국무총리 공관에 누가 들어갑니까, 잘 알아야 들어가거든요, 요즘 청와대에 보니까 별로 아닌 사람도 잘 아니까 막 드나들어서 문제가 많이 생긴 것이 나오던데 서가 있으니까 요한이 이 성경에 요한은 자기 이름을 쓰지 않습니다.

 

1. 베드로는 저 재판 받는 예수님의 제자다 이러니까 나는 아니라 그랬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것 봤다고 제자라고 하니까 나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 하고 있어 내가 조금 전에 동산에서 이 사람 봤는데 하니까 나는 아니다 라고 하고 나니까 닭이 울더라.

 

또 다른 제자 이러고 자기를 숨기는데 밖에 나가서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면서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인데 같이 들어가야 되겠다 하니까 그냥 보내어 주었어요. 요한은 좋은 자리에 있었는데 베드로는 그 자리에 가지 못하고 얼쩡 그렸어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뭐라는 가 하면은 이 사람도 저 재판 받는 예수님의 제자다 이러니까 나는 아니라 그랬어요, 그리고 실무시 어디로 피했는가 하면은 종가 아랫사람들이 추운고로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는데 그 불가로 가서 자기도 불 피우면서 예수님의 재판을 이래 지켜 보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중에 또 한 사람이 뭐라는 가 하면은 이 사람 내가 동산에 있을 때 봤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것 봤다고 제자라고 하니까 나는 아니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또 옆에 있는 동산 감람원에서 베드로가 칼을 가지고 말고의 귀를 자를 때 그 귀 잘린 사람이 말곤데 그 말고의 친척 되는 사람이 무슨 소리 하고 있어 내가 조금 전에 동산에서 이 사람 봤는데 하니까 나는 아니다, 라고 하고 나니까 닭이 울더라,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것을 보면서 주로 뭐라는가 하면은 베드로같이 부인[否認]하면 안 된다. 어떤 순간에도 예수님을 부인[否認]해서는 안 된다 이런다고요. 중요한 내용이지만은 입으로 부인[否認]하는 것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저는 아니라고 봐요. 옛날에는 그것 부인하다가 순교도 당하고 이랬든 것이 그러다 보니까 이 말씀을 굉장히 중요시 여겼어요.

 

여러분들이 어떤 순간에도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밝힌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까?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말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은 오늘 32절에 보니까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이라는 것이 말씀을 응하게 하는 것이다 라는 거에요. 그러면서 빌라도 법정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말해요.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산헤드린에서 빌라도 법정으로 가서 뭐라는가 하면은 이 사람은 행악자이기 때문에 죽여야 된다 이래요. 그 행악자라는 말은 로마에 대해서 독립운동을 하는 아주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이래요.

 

그러니까 빌라도가 뭐라는가 하면은 너희에게 법이 있으니까 너희 법대로 처리 하라고 그래요. 그러자 여기에 뭐라는가 하면은 우리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기 때문에 당신이 해야 된다 해요. 그런데 이것 거짓말이에요, 왜냐하면은 사도행전헤서 보면은 스데반은 돌로 쳐죽이 잖아요 신성모독죄로, 얼마든지 돌로 쳐죽일 수 있는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메어 달리게 하기 위해서 빌라도에게 온 거에요.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게 하는 것이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다 라고 말을 해요. 여러분 왜 이것이 이렇게 중요하냐 하면은 예수님이 요한복음 3장을 할 때에 여러분들에게 이미 말씀을 했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자 외에는 하늘로 올라간 자가 없다.

 

2.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다. 들린다는 것은 지상에서 들리는 것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간다 이런 말이다.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불뱀이 나와서 다 물어 죽였다.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다 살았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다, 라고 말을 해요. 인자도 광야에서 뱀이 들린 것 같이 들려야 되는데 왜 그것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기 때문이라는 이 말에 의미를 잘 아셔야 되요. 제가 지난주일 여러분들에게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히브리서 11 1절에서 3절 이야기할 때에 자꾸 믿음의 정의만 이야기해요. 바라는 것의 실상이 뭐며, 믿음은 구원 얻는 믿음이 있고, 복 받는 믿음이 있다, 복 받는 믿음은 큰 게 있고 작은 게 있고 구원 받는 믿음은 큰 믿음 작은 믿음이 없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다 이러는데 그 말이 아니에요.

 

그 다음에 보면은 히브리서 11장에 에녹의 믿음 그 다음에 아벨의 믿음, 노아의 믿음, 아브라함의 믿음, 모세의 믿음, 기드온의 믿음 수많은 믿음을 이야기하는데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11장은 믿음의 영웅들의 이야기다 이런다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속에 정말 진정한 믿음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자유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도 이루어 지지도 않는다고요, 우리도 그들의 믿음의 영웅과 같이 믿어 가지고 하나님 때문에 복 받자 이런다고요. 거기에 중요한 것은 지난 주 말씀 드린대로 아벨이나 에녹이나 노아는 당대에 다른 사람들하고 바라는 것이 달랐어요.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달랐다 말입니다. 왜 달랐는가 그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보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지금 여러분들이 교회 생활이 힘이 들고 예수 믿고 행복이 없는 것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 바라는 것하고 같기 때문이에요. 왜 그런가 하면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을 말해 주지 않거든요.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나 절에 다니는 사람이나 기도의 내용은 똑 같다고요. 여러분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제가 요한복음을 할 때에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어요, 들린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내 몸이 지상에서 들리는 것을 말하는데 그 보이지 않는 의미는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간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그것을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말하면서 민수기에 놋뱀 사건을 말했는가, 여러분 구약성경에 배경이 있어야 성경 잘 알거든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불뱀이 나와서 다 물어 죽였어요.

 

그럴 때 모세에게 하나님이 뭐라는가 하면은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끝에 높이 매달아라, 그리고 이것을 보는 자마다 다 살리라 이런 거에요. 그래서 그때에 사람들이 놋뱀을 쳐다본 사람들은 다 살았어요, 불 뱀에 물렸어도. 그러면 이 사건이 민수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그 이후에 놋뱀이 그들의 우상이 되었다고, 부적이 되어 그것만 보면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씀의 의미는 뭐냐 하면은 불 뱀에 물려서 다 죽음의 병에 걸려 있을 때 인간이 만든 방법이나 자기가 생각하는 것대로 치료하려 하지 말라는 거에요. 하나님이 제시한 방법 얼마나 웃기는 거에요, 얼마나 간단한 겁니까, 놋뱀을 달아 놓고 쳐다보는 것 그것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고요, 내가 살아가려고 하고 발버둥 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제시한 방법을 바라보는 거에요. 이게 믿음이에요. 그래야 산다 영원한 생명 하나님적 삶을 살게 된다 이런 말이에요.

 

3. 실제로 창세기에 말하는 아벨의 제사의 제물은 히브리어로 민하라 그런다, 민하는 감사 제의 제물을 말하기 때문에 감사제에는 피와 상관이 없다. 아벨은 가인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그래서 아벨은 가인과 다른 것을 바라본 사람이다. 동생 때문에 제사를 안 받았다고 동생을 죽였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이름을 뭐 부인하고 이런 것 보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셨어요. 그 십자가 보면서 여러분들이 울 필요 없어요, 거기에는 인간과 다른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행위가 있다고, 그것을 쳐다보는 자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는 것, 그게 믿음이에요. 그래서 오늘 성경에도 보면은 이렇게 말해요, 대제사장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은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든 자다. 대제사장은 백성의 대표에요. 그가 말하는 것 행동하나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전체의 대표자로서 하는 말인데, 한 사람 죽여서 모두 살자 라는 거에요. 굉장히 중요한 말이지요. 예수 하나 저것 자꾸 사회 혼란 일으켜서 로마군대 와서 우리 다 죽는데 저것 하나 죽이고 우리 살자는 거에요. 세상은 그런 세상이지요.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해서 하나 죽여야 된다고 해요.

 

저놈만 없으면은 우리 가정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우리 교회는 저 사람만 없으면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저런 사람만 없으면 우리나라 산다고 해요. 그런데 그 말씀은 속죄 제에요, 굉장한 역설이 있습니다. 이것을 볼 줄 아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이에요. 아벨의 믿음이 그런 믿음이었어요. 여러분들은 아벨의 믿음 하면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하면은 피의 제사를 드려야 된다고, 속죄제는 피가 있어야 된다고, 그래서 예수님 앞에 드릴 때에 우리는 구원받는 것은 보혈의 피다 아니면은 실제로 창세기에 말하는 아벨의 제사의 제물은 히브리어로 민하라 그러거든요, 민하는 감사 제의 제물을 말하기 때문에 감사제에는 피와 상관이 없는 거에요.

 

이것을 알고 난 뒤에는 뭐라는 가 하면은 양의 첫 새끼를 아벨은 드렸고, 가인은 농사물 중에 아무렇게나 드렸다 그래서 우리는 아벨과 같이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드려야 받으신다. 그래서 예전에는 그렇게 되면 유교가 되버리는 거에요. 제가 어릴 때에는 새 옷 사도요 교회에 갈 때 먼저 입고 난 뒤에 입어야 되요. 새 신발 사도 먼저 교회 하나님께 드려야 되요. 헌금도 다리미질해서 했어요. 여러분 그건 유교에요. 그런 정성이 아니라고, 예전에는 교회 늦게 나오면 서서 예배를 드렸어요, 모자 쓰면 큰일 났어요, 그런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집니까, 아벨의 제사는 어떤 예배냐 하면은 아벨의 믿음은요 가인의 믿음과는 다른 거에요.

 

아벨은 가인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그래서 아벨은 가인과 다른 것을 바라며 산 사람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여러분 이런 거에요, 가인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는데 그 제사를 안 받았어요 하나님은, 그러니까 화가 났어요 동생 때문에 안 받았다고, 동생을 죽여 버렸어요. 무엇을 못 봤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못 봤고, 아벨을 못 본거에요. 오늘로 치면 뭐냐 하면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 내가 기도를 하면은 내 기도를 응답을 해 줘야 되는데 기도 응답이 없으면은 화가 나는 것하고 같은 거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목사님 왜 순응을 앞두고 특별 새벽기도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교인들 다 빼앗긴다고, 이러는 말도 듣고 또 이러는 사람도 있어요.

 

왜 안 하는가? 특별 새벽 기도회를 안 하지요 기도는 합니다 제가, 또 중보 기도도 해요, 왜 내 자녀 순응 잘 쳐서 좋은 대학 가게 해 달라는 것은 또 다른 사람의 자녀들을 뜨러 지게 하는 거에요. 저게 죽어야 내가 되는 거에요, 가인의 제사입니다, 그래서 특별기도 했는데 순응장에 나오는 아들이 뭐라는가 하면은 시험 망쳤어 화가 나지요, 하나님 특별기도 했는데 이게 뭔 일입니까, 하나님, 하고 목사님에게 가서 이러면 목사님이 정성이 부족해서, 봉투 너 만원밖에 안 넣었잖아, 이런 것 안 된다고, 얼마나 많아요. 여러분들 바라는 게 달라야 되요. 그래서 가인은 동생 죽여 버렸어요.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 되기 바래요.

 

4. 기도할 때에 응답은 yes만 아니라, 내가 기도 이래 했는데 들어 준 것 만이 감사가 아니다, no wate 기다리는 것도 change 도 감사다.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 하심이라 하면서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서 (그 믿음은 아벨의 믿음이다.)지금도 말하느니라.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에 응답은 yes만 아니라 들었잖아요, 내가 기도 이래 했는데 들어 준 것 만이 감사가 아니에요, no도 감사에요, wate 기다리는 것도 감사에요, change 도 감사해요. 절에 다니는 사람은 yes만 감사해요. 가인은 죽은 신, 자기가 만든 신에게 드렸기 때문에 안 들어 준다고 화나서 동생을 죽여 버렸어요. 아벨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오늘도 여러분 히브리서에서 보면은 이렇게 말해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 하심이라 하면서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서 (그 믿음은 아벨의 믿음으로서 입니다, 정관사가 붙어 있어요)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는데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셨어요, 그런데 형님이 자기를 죽여 버렸어요. 자기가 죽을 때에 형님에게 대항 했다는 말 없어요. 자기가 죽으면서 하나님에게 화내는 것 하지 안 해요, 그냥 죽었어요 순교자에요. 그래서 아벨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표상으로 보는 거에요. 예수님이 자기를 죽이는 자들에게 저들이 알지 못하여 저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 해 달라고 죽으셨어요,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고난주간에 가상칠언 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 여러분들이 다시 한번 들어 보세요. 예수님의 죽음이 그런 죽음이에요. 그 믿음의 차이가 뭡니까? 가인은요 자기보다 받으신 그 아벨이 자기 동생인 줄 몰랐어요. 하나님이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자기를 죽이는 그 가인이 내 형이라 그래서 가인의 행동을 본 것이 아니라, 관계를 본거에요. 예수를 믿고 예수님이 이루신 것은 우리에게 어떤 행위를 하라는 게 아니라 그런 관계를 만드신 거에요. 여러분 그래서 탕자의 비유도 그런 거에요, 우리는 탕자의 비유도 뭔가 하면은 아버지의 품에서 떠나서 예수 안 믿으며 허랑방탕 해 가지고 다 쫄딱 망해 가지고 천부여 의지없어서 손들고 오네 아니에요, 탕자는 돌아왔을 때 형이 뭐라는가 하면은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말아먹은 아버지의 자식이 돌아오니까 잔치 열어 주고, 아버지 집에 종 노릇하고 내가 평생 일한 나에게 해준 것 뭐 있소 이런다고, 그럴 때 아버지가 뭐라는 가 하면은 죽었다가 살아온 네 동생이 돌아옴에, 우리는 탕자와 같이 언제나 타인을 남이라 보는 거에요. 그게 죄인이에요.

 

5.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서 성령을 보내어 주신 것은 네가 이겨야 할 그 대상이 남이 아니고 네 형이야, 영원한 가족이야, 이걸 말하는 것이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겠나? 세리도 그런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하나님은 남이라 보지 않고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동일한 자녀로 보는 거에요.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에요, 형제들끼리는요 타락한 우리들은 형과 동생은 남이에요, 아버지가 보면은 다 같은 자식이에요. 다 같은 자식을 만들었는데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이 인간들이 남으로 경쟁의 대상으로 삼아요. 그래서 저놈이 죽어야 내가 살아요, 저 집의 자녀가 떨어져야 내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 옆집의 가게가 망해야 내 가게가 잘 된다 생각 했어요 함께 공멸 해 가요,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서 성령을 보내어 주신 것은 네가 이겨야 할 그 대상이 남이 아니고 네 형이야, 영원한 가족이야, 이걸 말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교회 와서 그것 느끼셔야 되요. 예수를 믿고 성령 받으면은 충만하게 여겨 지면은 이제는 다른 사람이 극복의 대상이 아니고요 섬김의 대상으로 봐야 되요.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이 이거에요. 그저 베드로 부인 이런 것 중요한 것 아니에요. 오늘도 김평준 장로님이 아침에 여러분 이런 예의는 있어야 될 것 같아, 오늘 감기가 독하게 걸려서 2부 예배만 드리고 가는데요 용서하세요 이래서 제가 카톡에 몇 개 있는 게 있거든요, 이영애 사진을 제가 보내면서 사진의 딸이 문안 인사 드립니다, 안 오셔도 괜찮아요 이랬어요, 이상한 목사지요. 여러분 예배는 다음주도 드릴 수 있습니다 오셨더라고 잘 하신 거에요 오신 것이 그래야 되요.

 

여러분 우리가 그것 아셔야 되요. 우리는 남에게 말 한마디 듣고는요 그 다음에 말로 줘 버려야 되요. 다른 사람이 나에게 뭐 한가지 잘못하면은 꼭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해요. 나눔이에요 교회는요 더해야 되요, 그래서 산상수훈에 보면은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지난주에도 말했지만,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겠나? 세리도 그런다, 너희가 네 형제에게만 문안하면은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도 그렇게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이 온전도 그저 윤리적인 모범이나 교회 종교 생활에 완벽하라고 생각해요, 아니에요. 하나님의 온전함 같이 너희에게 온전 하라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도 사랑하는 것이 온전함이에요.

 

네 형제에게만 문안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도 문안하라는 것이 온전함이에요. 나와 관계 있는 사람, 나하고 친한 사람을 챙기는 것은 남도 해요. 그래서 제가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 구역장님 늘 하는 이야기가 나하고 친하고 관계 있는 사람만 챙기지 마세요. 나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은 세리도 그런다고 그래요. 여러분 저는 그래 생각해요, 오늘 예수님이 하시는 이 말씀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말한다, 이것 만든 거에요.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그러면 나도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문안해야지,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해야지, 그것 결단하는 것이 설교 듣는 것 아니에요. 그렇게 하도록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자녀 만든 거에요.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성령의 교통해서 가족이 되게 한 거에요. 이 사실을 받아 드리면은 아벨과 같이 살게 되는 거에요. 이것을 받아 들여야지 그 마음이 이제 생기는데 내가 결심해 버린다고, 안 되면은 죄책감 가지고 목사님이 지난번 설교 그래 했는데 그래 살아 이런다고. 여러분 우리가 사회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성경적 비판이 있어야 되요. 신문에 논조나 다 믿으면 안 되요, 여론을 조성해 가는 게 참 많아요. 우리나라 해경에 보트가 중국 어선에 침몰 당했어요, 화가 나더라고, 그런데 중국 대사가 우리나라 와서 하는 이야기가 뭔가 하면은 한국은 이성적으로 대하여 주면 좋겠다 이래 놨더라고, 나 그럴 때에요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왜 우리나라는 저래 안 될까 이래 생각 했어요. 그래서 중국이구나.

 

6. 교인이 잘못했다, 어떤 교회 참 나쁘다, 그런데 그것도 우리 다 주님의 교회다, 이것 이루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더라도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하지 않고 카운터다운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다, 상처 안주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기도 해 봤습니다 여러분 그 말의 의미를 보세요 한국은 이성적으로 대하여 달라는 것은 자기네의 사람이 잘못한 것을 분명이 안다는 거에요. 그런데 막 대하지 말아 달라는 거에요 우리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나라는요 우리 장로님 이창호 장로님도 대사로 퇴직을 하셨지만 참 나는요 화가 나는 게 어떤 거냐 하면은요 우리나라 국민이 다른데 가서 범죄를 해 가지고 재판 받고 있어요, 외교관이 뭐라 했는가 하면은 이랬어요, 우리 범죄한 사람들까지 우리가 보호해야 되느냐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 할 일이 얼마나 많은 게 뭐요, 정부에서 고위 관리 오면은 잘 섬기는 일도 지금 힘든데 범죄한 사람들까지 그래야 되느냐 이랬어요. 자 그것 보면서 왜 우리나라가 이럴까? 기도 하니까 내 속에요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이라서 그래요.

 

우리는 모두가 우리는 단일 민족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잘했나 못했나를 따지는 거요, 그 잘못한 사람이 우리 사람이냐를 안 따진다고요, 그런데 미국이나 중국은 미국은 여러분들이 각국의 모든 사람이 모여 있는 다민족 사회잖아요, 중국은 수많은 소수 민족으로 이루어진 집합체에요, 그래서 중국은 중화사상이 중요해요, 만약에 미국에 있는 외교관이 자기 미국 사람이 범죄했는데 우리가 범죄한 미국인 까지 보호해 줘야 된다면은 내가 미국 사람이 될 이유가 없는 거에요. 중국이 중국에 있는 사람이 잘못했을 때 잘못한 사람까지 보호 안 해 주려면은 중국의 변방으로 있을 이유가 없는 거에요. 중국은 다 용서를 하는데, 중화민국에서 탈퇴하는 것은 용서 못해요.

 

저 우리나라가 이것 있어야 된다고 봐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다녀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지적 질 당하려고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잘못한 것 분명히 잘못했어요 그런데 누가 잘못했는가 하면 우리 교인이 잘못했어요, 어떤 교회 참 나빠요, 그런데 그것도 우리 다 주님의 교회에요, 이것 이루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거에요. 좋은 교회는요 내 마음에 들고 나를 참 좋은 관계가 있는 사람들 상처 안 받는 그런 교회 좋은 교회라 생각하지 마세요, 없어요. 여러분들이 보면 좋은 교회 처음에 우리 교회 처음에 우리 교회 와서 좋은 교회라는 것은 아직 상처를 안 받았다는 이야기에요,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많아져 간다는 이야기에요.

 

좋은 교회는요, 여러분들에게 제가 해 놨잖아요, 이 뒤에 보면 사랑 다음주에 코팅해서 다 줄 거에요, 성경에 꽂아서 읽어 보라고, 교회가 사랑이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써요, 그런데 사랑이 뭔지를 몰라, 사랑이 사랑의 삶을 만들어 내는데,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이랬어요, 무슨 말이냐 상처를 받았더라도 갚아 주어야 할 빚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카운터다운 하지 않는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더라도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하지 않고 카운터다운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에요, 상처를 안주는 교회가 아니고, 누가 나에게 어떤 말을 했어 누가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잘못했어, 화나요 여러분들에게 정말 죽을 때 내가 해야 할 간증하나 있어요, 이 말씀 아니었으면 저는 거시서 아마 어쩌면 자살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여러분 이 말의 힘이 그거에요, 누가 어떤 말을 하고 잘못했을 때에 갚아 주어야 할 빚으로 생각해서 카운터다운 하지 않는 것 이런 삶은 누구에요 가족이에요 그걸 만든 거에요 예수님이.

 

오늘도 여러분 사랑하자 결단 하는 것 아니거든요, 그것을 받아 드려야 되요, 그래서 상처받았을 때에도 그것을 되돌려 주지 않는 이런 모습이 있을 때 이 세상에 평화가 오지 않겠어요? 예수님의 평화는 자기가 죽어서 만든 평화에요. 구호가 아니에요. 오늘도 참 우리나라는 부인하지 말자, 뭐 그 말 한마디 살려고 부인 해 가지고 나중에 더 잘 믿으면 되잖아요. 그 말 하려고 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지금 사는 것이, 절에 다니는 사람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았을 때 더할 수 있는가, 여러분 우리는 단일민족 이라서 우리란 개념이 아예 없이 말에만 있어요. 미국이나 중국은 내가 잘못했을 때에 우리나라가 보호 안 해 준다면은 내가 미국 사람 될 이유와 우리 소수족인 중국에 속해 있을 이유가 없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서로 상처받고 힘들 때 우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용납을 하지 않는다면은 우리 교회 다녀야 할 이유가 뭐 있어요? 천진데 뭐 교회가, 다른 교회가 잘못했을 때 분명히 잘못했지만 우리 교회에요 모두다, 이 개념이 없으니까 한국 교회는 침몰하고 있는 거에요. 아멘

 

◈봉헌 기도◈

 

우리의 죄성이 가인과 같이 하나님께 드리면은 하나님이 더 좋은 것으로 주셔야지, 주지 아니하면 화가 나는 것이 본성입니다. 그래서 잘된 사람을 세상의 말로 우리는 씹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아벨의 믿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자기를 죽이는 그 형이 죽이는 행위를 보지 않고 나와 피를 나눈 형제로 보았든 그 믿음이 예수를 믿는 것이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성령의 교통 하심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남 죽여야 자기가 사는 세상 속에 힘이 좀 능력이 부족한 우리가 살아가기가 참 힘든 적은 소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자고 주님 앞에 10 1을 구분하여 드린 예물들입니다. 이 예물이 우리라는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데에 귀한 수단이 되고 통로가 되어져서 인간이 만든 사회의 틀에서 따라가지 못해서 뒤쳐진 자들에게 일으키는 주님의 사랑의 도구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정말 나쁜 짓 한 그 사람도 하나님이 지으신 자식임을 알도록 십자가에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어떠한 악인도 한 명도 지옥 가지 않도록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언제나 자신과 관계된 자들만 바라보는 우리의 피를 성령의 보혈로 정결케 하사 주안에서 남이 없는 우리만 있는 아름다운 인류의 공동체를 만드신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혹시 내가 살면 다른 사람이 죽는 일은 없는가를 살피면서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