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상전벽해(桑田碧海), 용인 동백(마태복음 20장 1-16절)주일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6. 9. 29. 18:01

 

 

 

 

 

 

담임목사 김종웅

 

상전벽해(桑田碧海), 용인 동백

마태복음 20 1-16

2016 9 25일 주일 낮 예배

                                                                                                                                                    No. 282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아멘

 

교회 체육 대회의 준비. 상전벽해 용인시 / 프랑스 詩人, 신은 촌락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체육 대회가 아니라 운동회, 영국 6위까지 포상. 운동회는 온 동네 잔치였지 경쟁이 아니었다. 천국의 상급 먼저 온 자들과 나중 온 자들의 노임이 한데나리온씩 똑 같았다.

 

이번에 체육 대회를 하면서 우리 교회도 이제 성년기에 접어 들었구나 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제가 보통 목사님들이 목회를 20년을 하는데 7년은 유년기 또 7년은 성년기 그 다음에 7년은 장년기 저는 이렇게 구분해서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했는가 하면은 정말 전 교인 체육 대회를 기획인의 중심으로 해서 아주 계속 회의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회의가 저래 많나, 회의가 많으면 회의적인 교회가 되는데 이랬더니만 그 회의를 해서 어제는 우리 안수 집사님들과 남자 집사님들이 여러명 오셔서 미리 모든 준비를 차에 완벽하게 해 놔 놓고 준비를 다 하더라고요, 장로님은 아무도 안 오셨는 줄 알았더니만 우리 기회 위원장이 아침에 와서 또 회의를 주제하고 가셨다 더라고 여러분 장로님들이 앞에 나가서 일하는 분 아니거든요.

 

1. 전교인 체육 대회가 예수님의 구원사 적인 사건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또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예배로 와 닿아야 될 것인가 그것을 교인들에게 잘 주지해야 되는데 라는 생각.

 

 

우리 집사님들이 어떻게 일을 잘 하게하느냐 이런 어떤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교회에도 하나하나 정착 되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참 감사하다 이런 생각을 가졌어요. 또 그런 반면에 이번 한 주간은 저는 계속해서 고민이 뭐냐 하면은 전교인 체육 대회가 예수님의 구원사 적인 사건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또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예배로 와 닿아야 될 것인가 그것을 교인들에게 잘 주지해야 되는데 라고 생각을 하면서 여러가지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그래서 우리 용인은 어떤 곳이고 동백은 어떤 곳이고 또 오늘의 체육 대회는 어떤 의미냐 이런 생각을 할 때 오늘 설교 제목도 상전벽해라 그랬는데 제가 80년도 중반에 신학을 했습니다.

 

부산에서 올라와서 고속터미날 강남 고속터미날 내려서 또 그곳에서 학교가 준비한 버스를 갈아타고 양지에 있는 총신대학원을 다녔어요. 그때에는 서울에서 이래 올라오고 또 양지를 가다 보면은 전부 시골이에요, 달래미고개를 넘으면 이제 그대부터 건물이 보이고 서울에 들어오는구나 이랬다고요. 성남이나 죽전이나 동백이나 이 어디에도 도시의 냄새는 없는 그런 시골이었습니다. 그저 죽전 휴개소만 덩그렇게 고속도로변에 있었는데 이제는 건물들에 파묻혀서 죽전휴개소의 건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 우리 고사성어에 뽕나무밭이 변해서 푸름 바다가 되었다는 상전벽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참 우리 동백은 인근에 있는 여러 신도시들하고 비교해서 여러가지 자본주의적인 면에서 경제적인 가치의 면에서는 좀 부족함이 많은 것 같아요. 뭐 분당은 천당 밑이 분당이라니까 놔두더라도 새로 생긴 판교라든지 광교라든지 동탄이나 이런 도시에 비하면은 아파트 가격이 그렇게 높지를 못해요. 왜 그런가? 제가 생각을 해볼 때에는 여러가지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이지 않는가, 참 살기는 좋은 동래인데 그 신분당선 이라는 것이 뭔지 둘리자마자 광교는 신판교 라는 말이 있고 또 GTX 라는 출발점이 동탄에 생기면서 동탄이 아주 뭐 강남같이 떠오르는 그런 도시가 되었다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모든 것들을 무슨 잣대에서 보는가 하면은 편리성 때문으로 보거든요.

 

국가의 정책에서 고속도로를 어디로 놓느냐 또 지하철을 어디로 뚫느냐 그 지하철이 뭐냐에 따라서 땅값이 요동을 치는 것이 인간이 사는 세상인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런 것들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목사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때 내 생각 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은 10년 전 우리 교회가 개척을 하고 또 스키켐프를 하고 그 다음에 체육 대회를 하고 여러가지 또 아이들에 대한 과외 공부도 하고 이런 것들을 시키면서 제가 그런 설교를 한적이 있습니다. 교회는 사회의 영향력이 있어야 된다고, 저는 강남 방배동에서 10년을 살았는데 그 방배동이나 강남의 집값이 비싼 이유는 단지 이유 하나는 뭐냐 하면은 살기 좋아서가 아니라, 학군이 좋아서 좋은 학원이 있어서 그래서 그곳에 가면은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대학을 가면은 사회에 지도층으로 살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는 거로 치면은 강남에 있을 때에는 하루에 하얀 와이샤츠 입으면 저녁에 가보면 이 목덜미가 새까매요 그런데 동백은 이틀 삼 일을 입어도 별로 검지 않거든요. 훨씬 사람 사는 곳이 좋은데 왜 그런가 그러면서 제가 그런 설교를 했든 기억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동백에 사는 사람하고 강남 사는 사람하고 사교육을 시킬 때에 경제에서 도저히 안 된다, 그러면은 이기는 방법은 공동체다 1:1로 강남 사람하고는 못 이기겠지만 우리가 함께 공동체로 모이면은 절대로 지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그런 방향으로 쭉 또 한 1년 동안 애써본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가지 여건이 맞지 않는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지, 또 그런 것들이 좀 허지부지 하게 되어서 다 이래 되어져 버렸어요.

 

2. 프랑스 시인 코페는 신은 촌락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것, 신은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사는데 촌락을 만들었는데 그 촌락을 도시로 만드는 것이 인간이다. 영국 속담에는 도시는 사막이다 라는 것은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하다는 것, 편리할지는 몰라도 생명이 없다는 것.

 

그 생각이 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인간이 살기 편리한 곳이 가치가 있는 곳이고 좋은 것인가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편리라는 것은 언제나 변하거든요, 그러면은 정말 가치 있는 것이 뭔가를 생각할 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주에도 제가 유림이라는 과거에 읽었든 책을 다시 한번 쭉 일고 있는데요 그 책에도 그런 것들이 나오는데 프랑스시인 코페라고 하는 사람이 뭐라고 말했는가 하면은 신은 촌락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대요,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사는데 촌락을 만들었는데 그 촌락을 도시로 만드는 것이 인간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면은 신은 촌락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대요,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사는데 촌락을 만들었는데 그 촌락을 도시로 만드는 것이 인간이다 않지요.

 

영국 속담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도시는 대 사막이다 그 말은 뭐냐 하면은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곳이 도시라는 거에요 편리할지는 몰라도, 생명이 없다는 거지요. 정말 우리가 얼마나 상막한 동래에 살고 있습니까, 요즘도 우리가 신문을 보면은 물론 중국의 일이고 한국에도 가끔 나타나는 거지만은 대낮에 대로에서 여자가 칼에 찔리는데도 누구 하나 그것을 말리는 법이 없는 그런 사회에 살거든요, 금년에 우리 교회가 주제성구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에게 생명을 얻게 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모습을 보면은 정말 사람이 살만한 곳인가, 그저 교통에 좀 편리함 때문에 도시라는 것이 그래 좋은 것인가?

 

판교나 동탄이나 광교가 신분당선이 있어서 좀 서울 가기 편리하다고 좋은 도시가 되고, 땅값이 올라가야 되고 가격이 높아야 되는가, 동백은 참 살면서 고립감을 느껴요 좀 섬이라는 느낌을 가져요. 그래서 동백은 집값이 안 오르는가, 교회도 성장이 한계가 있는 것인가, 그게 나쁜 것인가, 이번 한 주간에 그런 생각들을 쭉 하면서 지냈습니다. 여러분 참 우리가 그런 신문지상에 말만이 아니고, 또 우리가 뉴스에도 보잖아요, 사람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데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안 해요, 그냥 지나가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가는 바람에 그 사람이 죽었다는 이런 텔레비의 기사도 보면서 이런 동래가 사람이 사는 생명이 있는 동래인가?

 

단지 편리라는 이유 때문에 이런 동래가 가치가 있어야 되는가, 이런 생각을 해 볼 때에 정말 우리 교회가 동백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좀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봤어요. 여러분 만약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나 칼에 찔리는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은 그래도 그랬겠느냐 말입니다, 내가 가족이라면은 나하고 친한 사람이라면은 그냥 지나쳤겠는가, 쓰러져서 죽어져 가는 사람도 처음에는 지나치다가 언뜻 지나치다가 보니까 어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면은 그래 못했을 거에요. 도시의 편리성은 익명성이거든요 모르는 것이 우리에게 참 편한 것 같지만은 그것이 우리의 외로움의 문제고 우리가 생명을 죽이는 문제가 아닌가?

 

저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동백에 신분당선과 같은 지하철 정분화 대통령이나 정책을 맡은 사람에 기대하기 전에 우리 교회가 이곳에는 좀 그런 동래하고 달리 특화 시켜서 생명을 불어넣는 그런 것이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에 존재의 이유가 되지 않겠나, 어떻게 생명 불어넣는가,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는 일들이 사람을 아는 사람 되게 해야 되겠구나,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이 체육 대회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체육 대회는 경쟁을 유발시키는 명칭이거든요, 인간들은 1 2 3등 등수를 매기기를 좋아 합니다, 1등은 한 사람밖에 없는데도 모든 자기는 1등 될 거라고 착각하며 달려간다고요, 무한 질주를 한다고요.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3. 운동회와 올림픽의 차이는 뭔가, 운동회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꼭 1등 되게 안 한다, 올림픽은 능력에 따라서 1 2등이 정해 진다. 돈 몇 푼 명예 중요한 게 아니지요, 조금 벗어나면 우리 정말 생명 있는 삶이 우리 속에 있거든요, 저는 교회가 이래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는 체육 대회라 하지 말고 운동회라 해야 되겠구나, 우리 시골의 운동회는 등수가 그래 중요하지 안 했거든요. 경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온 동래의 잔치였거든요, 그래서 전 교인 체육 대회가 아니고 앞으로는 쉼과 회복이 있는 운동회라 해야 되겠구나, 운동회와 올림픽의 차이는 뭡니까, 운동회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꼭 1등 되게 안 하거든요, 올림픽은 능력에 따라서 1 2등이 정해 진다고요, 운동회는 여러분 그러지 안 했어요 옛날에 시골에서, 열심히 뛰어서 1등을 갔다가 노인 쪽지를 주었는데 누구하고 같이 달려오라고 했는데 그 사람이 제일 멀리 있거나 뭐 못 뛰는 사람이면은 내가 아무리 잘 뛰어도 꼴찌가 되어요. 얼마나 참 멋있는 것이고 아름다운 겁니까.

 

인간들은 도시에서 자기의 능력을 극대화 하려고 하지만은 저는 옛날에 그 운동회에서는 능력이 필요 없는 거에요. 사람들은 그걸 운이라고 하는데 운도 아니에요.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인 것 같아요, 오늘 여러분들이 이 운동회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우리 기회 위원회에서는 상품이나 또 함께 협조하고 우리 교회 얼마 되지 안 한 분도 어제 자기는 이번 주에 부모님에게 가야 되는데 자기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러한 상품을 또 내놔 놓고 갔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여러분들이 그 상품을 타는 것보다 이곳에 와서 아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아닌가, 오늘도 우리 이대준씨가 오전 2부 예배가 11시 출근이기 때문에 9 30분인 줄 알고 왔더라고, 제가 마당에 서 있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왔느냐 하니까 9 30분인 줄 알았대요 11시 출근해야 되는데 그래서 오늘 운동회다 이랬거든요, 그러면서 이제 30 갓 넘은 우리 둘째 딸하고 나이가 같아요, 결혼을 했는데 아 그 나이에 프로골프 선수에서 은퇴를 하고 지금 드레곤에서 지금 레슨을 하는데 얼마나 자기의 꿈을 접은 것에 대해서 좀 회한이 없겠나 싶어서 제가 슬쩍 물었어요, 그랬더니 목사님 너무 편해요, 긴장하지 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하냐고 그래 그 돈 몇 푼 명예 중요한 게 아니지요, 조금 벗어나면은 우리 정말 생명 있는 삶이 우리 속에 있거든요, 저는 교회가 이래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전교인 체육 대회가 아니라 쉼과 회복이 있는 운동회가 된다면은 그것이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어 주신 그리스도적 사건을 실행시키는 것이고,

 

그 체육 대회는 능력에 따라서 등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면, 우리 지호도 여기 왔는데 힘이 센 아이에요, 그래서 다른 유치원에서 아이들 좀 때리고 이랬다고, 그런데 뭐라는 가 하면은 목사님 제가 원일유치원 옮겼습니다, 아이가 너무나 좋아요, 그게 뭐냐 하면은 안다는 것이 그런 거에요. 물론 문전도사님이 훌륭하셔서 원장이지만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안에서 안다는 아이가 왔기 때문에 특별한 느낌을 가지게 되거든요. 참 이런 말씀을 하기도 여러분들에게 좀 조심스럽습니다마는 우리 윤승복 집사님이 이번주에 저에게 카톡을 보냈어요, 보낸 게 뭐냐 하면 목사님 암 세포가 안 보인데요, 눈물이 날라 하더라고, 그게 안다는 거에요.

 

4. 우리 모두가 아는 사람이 되어서 누군가가 길거리에 쓰러져 있을 때에 귀찮은 일 그것 때문에 내가 당할 불이익 때문에 그냥 지나가지 말고, 그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고 가족이라면 지나가려다가 다시 돌아온다, 가족은 세상의 어떤 가치와 질서를 가지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게 가족이다.

 

금요 중보 기도회 때 와 가지고 정말 그러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기도하고 예배 참여하고 했는데 검진을 했더니만 또 뭐 좀더 그래야 된다 하지만 의사가 암이 안 보인다고, 그게 왜 내가 눈물을 흘려야 되는 겁니까, 성령의 교통 하심이고 안다는 거지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우리 교회는 정말 익명성 있는 수많은 큰 교회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런 아는 사람이 되어서 누군가가 길거리에 쓰러져 있을 때에 귀찮은 일 그것 때문에 내가 당할 불이익 때문에 그냥 지나가는 것이고, 그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은 지나가려고 하다가 다시 돌아오거든요, 이것이 신앙 생활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보통 설교는 제가 본문을 쭉 묵상하면서 이 말씀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 인가인데, 이번에는 이 말씀을 하고 이 말씀에 맞는 말씀이 뭔가 좀 거꾸로 했는데 마태복음의 말씀이 그런 말씀이에요.

 

이른 아침에 품꾼을 불렀고, 9시에 왔고, 11시에 왔고, 1시에 왔고 5시에 왔고 이런 각 사람들에게 나중에 품삯을 줄 때 꼭 한데나리온씩을 주었거든요, 1시간한 사람 한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면서 먼저 온 사람들이 하루 종일 우리는 얼마나 많이 줄까 했는데 똑 같이 한데나리온 주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종일토록 수고하고 더위를 견디었는데 왜 같이 받아야 됩니까, 이게 인간이에요 그게 죄인이라고,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다고 하느냐?

 

저는 한번씩 우리 교인들이 목사님 그렇게 하니까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 참 우리는 정말 이 선악의 기준이나 가치의 어던 평가가 너무 왜곡되어 있는데 성경을 보고 새롭게 되어지면은 여러분 얼마나 우리가 이 자본주의 사회나 경제 사회에서 볼 때 이건 불공평한 겁니까, 공정하지 못한 것 같은데 똑 같이 주는 것을 하나님은 선이라고 그래요. 우리 가족들에게 그런 것 있지요, 우리 청년들에게 제가 설교를 하려고 했든 것이 이건승 집사님 가정과 그 동생의 이야기를 좀 하려고 했어요. 언젠가는 여러분들에게 하겠지만 청년들에게 좀 더 필요한 이야기라 하겠지만, 참 우리는 가족은요 세상의 어떤 가치와 질서를 가지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게 가족인 것 같아요.

 

그 신비함이 예수님의 구원 성령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선물로 준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체육 대회에 우리 인간이기 때문에 좋은 것 타면 좋아요, 이기면 좋아요,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되요, 그 무엇이 뭐냐 하면은 우리 모두는 아는 사람 때문이에요, 아는 사람은 똑 같은 어려움을 봤을 때 다르다고요, 우리 동백에는 동탄이나 광교나 판교의 편리성을 가지고는 절대로 이길 수 없어요, 여러분들이 집의 가치가 올라가려면은 그 도시에 없는 아는 사람이 되어져야 되요. 그래서 앞으로는 이 운동회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조금만 능력을 허락한다면은 우리 교인들만이 아니라, 동백에 있는 사람들의 운동회가 되야 되겠구나, 그런 일들이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이구나,

 

아마 장년기에 되면은 그래야 되지 않겠는가, 동백이 왜 힘든가? 제가 이런 이야기 들었어요, 동백에는 동백만 카페가 권력이래요, 거기에서 칭찬 하나면 장사가 모이고 거기 한번 찍히면은 살아 남지를 못한대요. 그런 정보의 공유가 권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있기 때문에 동백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라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그런 것이 우리가 잠시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이 의식적인 예배보다 예수님의 구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되지 않겠어요?

 

오늘 여러분 체육 대회는 체육 대회가 아니라 우리 시골의 운동회가 되어져서 우리 교회도 벌써 수백 명이기 때문에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서로 함께 부딪기면서 아는 사람이 되어져서 생명을 함께 나누어 가고, 이것이 좀더 성장 되어져서 판교나 동탄이나 광교 같은데 그 정부에서 찍하나 거어가지고 신분당선 만들어 가지고 아파트 가격 올라가는 것은 여러분 코페의 이야기대로 도시에요 도시 인간은 도시를 만들어요. 하나님은 촌락을 만들어요. 우리 동백 얼마나 좋아요, 예전에는 섬과 같은 고립 감이 참 동백을 답답한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종종 그런 생각 합니다. 고립 감이 아니라 나는 독립 감이다, ㅎ ㅎ ㅎ.

 

우리 동백의 독특한 그런 문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좀 허락하신다면은 우리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확산되어 가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교회 안에서 아는 사람이 되어져서 누군가가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면은 눈물이 나고요, 또 말썽쟁이 지우도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유치원에 감으로 말미암아 얘가 더 안정되고 좋아지고 이게 예수님이 우리에게 불어넣은 생명이고 성령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운동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드린 예물이 인간이 만든 도시 무한 질주만이 있고 옆을 보지 않는 속도만을 강조하는 도시 속에 신이 만든 하나님이 만든 촌락을 만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이 운동회가 서로 몰랐든 사람들이 상대방을 아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표현인 귀한 운동회가 되기를 소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편리를 위해서 사람을 끓어 모음으로 말미암아 서로가 서로에게 알지 못하여서 생명보다 돈을 중요시 여기는 사막화 되어져 가는 이 땅 위에 우리 모두를 하나님이 만드신 촌락을 만들기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주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 우리 저 기억에서 아득히 멀리 있는 시골에서의 그 운동회의 모습으로 재현함으로 말미암아 바쁜 세상 속에 서로의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짧은 시간 속에 이제는 우리가 느린 삶, 서로를 아는 귀한 운동회가 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