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결과 너머(로마서 1: 16)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8. 11. 22. 13:22

 

 

담임목사 김종웅

결과 너머

로마서 1:16

2018 11 18일 주일 낮 예배

                                                                                                                                              No. 393

14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아멘

 

헬라시대에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헬라인이냐 야만인이냐 이렇게 구분했다. 바울은 네가 나에게 구원의 채권자다, 나는 구원의 채무자다, 나에게 자랑이고 면류관이다. 바울은 살아생전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미말의 처한 종, 만삭되지 못한 팔삭둥이 사도라고 했다.

 

우리 오늘 3부 예배 때 온 가족 찬양 축제가 있는데 기독교의 아주 특징이 찬양이 있는 겁니다. 기독교의 찬양은 다른 것하고 다릅니다. 구원받은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있는 감사와 기쁨 때문에 그 감사와 기쁨의 원천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겁니다. 그런데 참 불행하게도 오늘날 한국에 보면은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이 있어요, 찬양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 차이를 여러분들이 정확하게 알고, 신앙 생활 하면은 예수를 믿으면서 여러분들의 삶의 구원으로 인한 기쁨 또 구원으로 인한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저는 참 교인들을 볼 때에 안타까운 것이 뭐냐 하면은 구원 받은 자에게는 이런 기쁨과 감사가 있는데 이런 구원받은 자의 기쁨과 감사를 알지 못하고, 그저 심리학 적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삶을 보면은 참 안타까워요.

 

어떻게 해야 우리에게 그런 구원 받은 자의 삶이 있고 그 삶으로 인한 찬양이 흘러 넘치는 삶인가, 오늘 본문이 아주 정확하게 말 해주고 있어요. 오늘 본문은 바울이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헬라시대에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헬라인이냐 야만인이냐 이렇게 구분했습니다. 그 다음에 보면은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 그들은 지혜 있는 자 철학자 이런 자들은 아주 가치 있게 생각했고, 그런 지혜가 없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로 하는가 하면은 모든 인간에게 이런 말입니다. 모든 인간을 통칭해서 이렇게 말했는데, 그 다음에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다 내가 빚진 자다.

 

1. 바울은 자기의 정체성이 구원을 정확하게 알므로 만인에 대해서 빚진 자라는 생각을 가졌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복음을 전했다. 교회 교인들이 나에게 자랑이고 면류관이다, 사도는 생전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자와 부활을 목격한 자여야 된다.

 

여기에 엄청난 구원의 비밀이 있어요. 그저 이 말을 피상적으로 암송을 해서 자기의 겸손을 들어내기 위해서 내가 빚진 자입니다 이러는 것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자기에 대한 정체성이 구원을 정확하게 알므로 말미암아 내가 만인에 대해서 빚진 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되요. 구원받은 자라면 최소 한도로 이런 자기의 정체성 때문에 감사하고 기쁨의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바울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가 인사말이 아니에요. 바울은 자기가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이방인 들에게 교회를 개척하고 또 교회를 섬겼습니까, 그러면은 우리가 세상적 가치관 내가 구원 받기 전의 예수 믿기 전에 나의 가치관은 내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그들은 나에게 구원에 관한 한 채무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은 세상의 가치로 보는 거에요. 거듭나지 못한 자의 생각이에요. 여러분들이 누군가를 도와 주면은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은 나에게 채무자가 되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이 만들어 낸 구조고 생각이에요. 그래서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데 네가 나에게 그럴 수 있어, 이러면은 이 사람은 거듭난 자가 아니에요. 교회에도 이런 생각들 때문에 진정한 구원의 기쁨과 감사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대표적으로 지금 너무나 확연히 드러나서 하는 이야기지만은 양진호 같은 사람은 내가 너에게 월급 주어서 너 먹고 살잖아, 그런데 감히 네가 나에게 그럴 수 있어, 갑의 자리에 가잖아요, 이런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자의 대표적인 생각이에요. 이런 생각들이 거듭나지 못하고 교회 안에도 아주 만연 되어져 있어요.

 

목사님들이 내가 세례 주어 가지고 예수를 믿었는데 네가 그럴 수 있어, 내가 안수 해서 장로가 되었는데 내한테 이럴 수 있어, 전부 거듭나기 전의 가치관을 가지고 모든 것을 바라보는 거에요. 바울은 사도로 부름을 받았어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자는 보냄을 받기 위한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을 인식하는 자에요. 나 천국 가고 하나님 자녀 되고 좋다 이런 게 아니에요. 그래서 자기는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어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복음을 전했어요, 그래서 그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은, 네가 나에게 구원의 채권자다, 나는 너에게 구원의 채무자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의 모습이에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가 하면은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사도로 삼아 주신 것은 복음을 전하라고 그랬는데 만약에 네가 없었으면은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부르셨겠나, 사도로 부르셨겠나, 너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나는 그 좋은 하나님의 자녀와 사도의 신분을 가졌는데 너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했기 때문에 네가 없으면은 나는 그 자리에 없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비록 너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전해서 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네가 나에게 구원의 채권자야, 나는 채무자야,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말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기는 아주 겸손하게 보이고 하나님 은혜 아래 있는 거와 같이 나타내기 위한 그런 말이 아니에요. 이런 깨달음이 자기 속에 있어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바울은 교인들에게 갑 질 하지 안 했어요. 데살로니가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교회 교인들이 나에게 자랑이고 면류관이다. 그러면서 교인들에게 얼마나 자기는 채무자의 삶을 살았는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가 고린도전서에 보면은 자기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격을 해요. 바울은 사도로서의 세상적 기준으로서는 한가지가 결격이 되어 있어요. 사도는 살아 생전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자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여야 되요.

 

2. 바울은 구원의 빚진 자이기 때문에 너희 때문에 내가 감사한다. 너희가 존재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다. 자기를 반대하고 자기에게 폄하하는 그들을 위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복음 안에 있는 자에게는 너희들은 나의 면류관이다 이랬든 것은 은혜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살아생전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고, 부활의 목격만 했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맨 마지막에 사도가 되고 사도의 문을 탁 잠그는데 미말의 처한 종이라는 말이 그런 말이에요. 그러면서 내가 만삭되지 못한 자다 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개척하고 자기가 복음을 전해서 세운 교회 교인들이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바울은 사도로서의 자격이 없어서 선교 비 달라 못해, 베드로는 수석 사도이기 때문에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서 선교 비를 받고 생활비를 받았잖아,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살리라는 예수님의 원칙을 따라서 그런데 바울은 어디에 가서도 선교 비 달라 소리 안 하잖아, 못하잖아.

 

왜 그런 줄 알아, 그는 사도로서의 자격의 결격이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하는 소리가 나는 만삭되지 못한 팔삭둥이 사도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바울은 자기가 세운 이방인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가 다른 교회가 될까 봐 여러분 바울은 이방인에게 부름을 받은 자에요. 이 사건이 없었다면은 바울 교가 되었을 거에요. 기독교가 안 되었을 거에요.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울 때에 바울은 그것을 여러분 헌금의 종류도 여러분들이 그것을 알아야 되는데 반듯이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 도와 주는 것은 너희들이 잊지 말라. 내가 가기 전에 준비해 놓아라 했든 이유는 자기가 세운 교회가 자기 교회가 아니고 예수님의 교회가 되도록 예루살렘 유대인의 교회와 이방인의 교회는 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하나의 교회가 되려고 그렇게 헌금을 열심히 하게했든 거에요.

 

그런데 자기가 세운 교회 교인들이 고린도후서에 가보면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이런 말을 해요. 다 오해가 풀리고 난 뒤에 또 헌금 하라니까 오해를 해 가지고 바울은 돈만 아는 자다, 돈을 밝히는 자다, 이러는 그들을 향해서도 바울은 자기가 구원의 빚진 자이기 때문에 너희 때문에 내가 감사한다. 너희가 존재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다. 자기를 반대하고 자기에게 폄하하는 그들을 위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복음을 왜곡하는 갈라디아 교회에는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다. 완전히 여러분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관하고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요.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해요, 나에게 잘해 주면은 좋은 사람이고, 못해 주면은 나쁜 사람이고 이런 생각이 우리 속에 만연해 있잖아요. 바울은 자기에게 잘해 주고 자기에게 못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수 없는 그들을 복음 안에 있는 자에게는 너희들에게 감사한다. 너희들은 나의 면류관이다 이랬든 것은 바로 은혜라는 것을 제대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도로서의 자격이 없는 자인데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를 사도로 삼아 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내가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이 나에게 구원의 채권자다 이런 삶을 살아갔어요. 이런 삶이 구원의 영역만이 아니고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의 하나님의 은혜가 편만하게 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거에요.

 

3. 우리가 은혜로 하나님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생각의 변화가 가져온 자기의 정체성을 가질 때에 구원이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일의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보면은 항상 기쁘며 감사하게 된다. 이게 예수 믿는 힘이고 이것이 성령의 능력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실상을 보면은 이 은혜를 너무나 모르는 거에요. 그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은혜라고 그러고 사람들에게 자기가 좀 겸손하고 괜찮은 사람인 것을 들어내기 위해서 말한다고요. 이 은혜가 나 자아에 대한 정체성이 되어져야 되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그래도 여기 와서는 차별을 안 받는 것 같고, 여러분들이 나름대로의 자기의 자존 감을 가지고 신앙 생활 할 수 있는 것은 이 은혜를 설교에서 전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그러잖아요. 뭐 헌금 많이 하고, 신앙 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에게 추켜 세워서 가치를 부여하고 이러지 않잖아요.

 

어쩌다가 점심을 내면 뭐라고 그래요, 먹어 주는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내가 점심을 낼 때에 내는 돈이 내 속에 있는 것은 교인들에게 점심 내라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인데 너희들이 안 먹어 주면은 나는 그 돈도 내가 가질 수 없었던 거야, 이런 정체성이요 십자가에서 은혜를 받으면은 우리 속에 나타나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 교회는 내가 뭐 이 교회에 뭐 건축할 때 뭘 하고 뭘 하고 이러면은 완전히 정신병자 취급 받잖아요. 왜 복음 안에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이 우리가 은혜로 하나님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생각의 변화가 가져온 자기의 정체성을 가질 때에 구원이 나타나는 거에요. 내가 했다는 것은 자기 의이고 이것은 사단의 일이에요.

 

여러분 이런 은혜는 어떻게 해서 가지게 되는가, 결과의 너머를 볼 줄 알아야 되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일어나는 여러 가지 것들 사건이나 말 그 이면을 보는 것이 영적인 눈이잖아요. 그래서 바울은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잘나서 된 게 아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된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잖아요. 여러분들이 말로만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지 말고 어떤 일이 일어나면은요 그 일의 너머에서 역사하는 손길을 봐야 되요. 그렇게 되면은 감사와 기쁨이 생겨요. 바울이 데살로니가 5 16절에서 18절에 그러잖아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을 가지고도 항상 쉬지 말고 기도를 하면은 기쁨과 감사가 생겨, 전부 행위 구원으로 설교를 보는 거에요.

 

그 말이 뭔지 아세요, 어떤 모든 일의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보면은 항상 기쁘게 되어져 있어요. 범사 어떤 환경에도 감사하게 되어 있어요, 이게 예수 믿는 힘이고 이것이 성령의 능력이에요. 어떤 사건과 말의 이면에 하나님의 역사의 손길을 볼 줄 알아야 되요. 그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을 통해서 또 역사하세요. 왜 그러는가 구원자의 빚진 자의 삶을 삶으로 이 사회가 갑 질이 없는 사회가 되도록, 아 정말 답답할 때 많이 있어요. 이번에도 양진호 얼마나 갑 질 많이 했어요. 그 이면에 또 목사가 있더라고, 어떤 목사가 양진호에게 너 큰 부자 된다는 예언을 했대요, 그 목사 아니지요, 진짜 목사라면은 네가 부자가 될 때에 네 힘이 아니야, 네 직원들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야, 그러면 그 직원들에게 내가 월급을 주지만은 을의 자리로 가요.

 

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자리에 있기까지 사람들을 동원했다,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바울은 세상의 조롱 거리요 만물의 찌꺼기와 같았지만은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었든 것은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 구원의 빚진 자의 마음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추수 감사절에 해야 하는 이유는 갑 질 하기 위한 갑이 되려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요, 갑의 자리에서 을질 하려고 추수 감사절을 맞이해야 되는 거에요. 은혜 알면은 그렇게 되는 거에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릴께요, 그냥 보면은 사람들은 평가가 생겨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점심때 정말 맛있는 떡국을 먹게 될 건데 그냥 그 사건의 이면을 못 보면은 오늘 떡국 맛있네 끝나 버려요, 목사님 맛있다 해 놔 놓고 먹어 보니까 별 것 아니네, 이런 평가가 나와요. 그런데 그 너머에 보면은요 그 떡국 한 그릇이 감사가 되어져요. 여러분들은 그 자리에서 먹지만은 이금희 권사님이 일주일 내내 사골을 고았어요. 어떤 교역자들보다 일찍 나와 가지고, 4 5시까지, 교회에서 월급 주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 손길의 열매로 내가 떡국을 먹을 때에 맛있다 맛없다가 아니고 감사하구나, 좀 이금희 권사님 미안 하지만은요 여러분들에게 이런 게 있어야 되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에요. 모든 일의 이면에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이 자리에 있게 했어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에요.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갑 질이 난무해요, 그런대도 하나님 앞에 감사 하다고 내 갑 질 하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감사 헌금 몇 푼 내고는 자기에게는 푼돈이고, 없는 사람이 큰 돈인데, 그것 냈다고 또 목사는 장로 시켜 주고 권사 시켜 준다고, 이게 무슨 교회에요. 이게 무슨 추수 감사절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정말 이 마음을 한번 가져 보세요.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다. 받을 자격 없는 나에게 이 자리에 있게 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때에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게 되어져요. 바울은 내가 사도로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만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했기 때문에 내가 전해서 이 사람들이 교인이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었는데 너희들이 나에게 구원의 갑이야. 너희들이 나에게 구원의 채권자야 이 말이에요 여러분. 이게 어떻게 목사의 설교로 여러분들을 설득할 수 있겠어요. 성령께서 십자가에서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불어넣어 주셔야지요.

 

저는 우리 교회에 어떤 사람도 다 용납해요, 그러나 내가 뭘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용남 안 해요. 왜 갑 질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어요. 감사조차도 감사하면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준다는 행위 구원 쪽으로 가요. 항상 기뻐하라 하지 안 했나, 바울은 자기는 세상의 조롱 거리요 만물의 찌꺼기와 때와 같았지만은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었든 것은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 구원의 빚진 자의 마음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갑 질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힘듦이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갑 질을 해요. 을의 을을 생각하지 않잖아요.

 

5. 바울이 내가 헬라인이나 이방인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에게 다 구원의 빚진 자라고 하는 성령으로 그 은혜의 마음이 저와 여러분들 속에 주어져서 감사 조건이 없는 세상에서 감사가 넘침으로 찬송이 일어나고, 기쁨의 조건이 없어도 변치 않는 희락이 우리 속에 충만 하도록.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렸잖아요, 하나님 잘 믿어서 복 받았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오늘날 삼성 LG 모든 것들이 어떻게 해서 있게 된 거에요. 이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설교이고 이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구원이라 이 말입니다. 우리 초등학교 때 강제 저금 시킨 것 전부 그 쪽에 다 갔다 놓았잖아요. 기업이라는 것이 자본 노동력 기술 세가지 아닙니까, 옛날 우리나라에 무슨 자본이 있어요, 기술이 있었어요, 노동력만 있었지요, 그 자본이 뭐해요, 외국에 차관 들어왔을 때 우리나라가 보증을 서 가지고, 차관 들어와 가지고 주었잖아요. 국민들이 전부 강제 저금 시킨 것 80년대 까지만 해도 사업자 등록증 없으면 은행에 내 아파트 잡혀도 대출 안 내어 주었어요.

 

그래서 사채로 이부 삼부 썼다고요, 그 돈 가지고 했어요. 그래서 정주영이나 김우중이나 기업의 일 세대들은 노동자들에게 자기가 우월 의식이나 특권 의식 가지지 안 했어요. 같이 막걸리 먹고, 같이 한번 살아 보자 했습니다. 이 세대에게 물려 주니까 하나님의 그 역사를 모르는 거에요, 아버지가 주었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래서 나는 아버지 잘 만났기 때문에 아버지가 생각하는 대로 기업을 키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아버지는 자기 회사의 노동자들과 노동자들이 빚진 마음으로 기업을 했는데 삼 세대 가니까 완전히 그것이 굳어져 버린 거지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노블리지 오블리제 Nobeulliji obeullije)가 생기지 않는 거에요.

 

나는 태어나면서 금 수저로 태어났다는 거에요. 그러면서도 나는 구원받은 장로래요, 지옥 갑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런 복음을 복음도 아니지요, 그런 엉터리 천사도 저주받는 그런 가짜 복음을 전하면은 교회는 세상을 구원할 힘이 없습니다. 이 추수 감사절에 여러분 바울이 내가 헬라인이나 이방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에게 다 구원의 빚진 자라고 하는 성령으로 그 은혜의 마음이 저와 여러분들 속에 주어져서 감사 조건이 없는 세상에서 감사가 넘침으로 말미암아 찬송이 일어나고요, 기쁨의 조건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변하지 않는 희락이 여러분들 속에 충만 해지고 우리가 가는 사회는 없어도 기죽을 것이 없고, 있어도 힘줄 것이 없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는 그런 추수 감사절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축도◈

 

능력도 없으면서 갑 질하고 싶은 사람들의 가치관 때문에 갑과 을로 나뉘어서 탄식의 소리가 높은 이 세상에 차별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낮은 자의 자리에 질과 고통이 많은 삶을 살아감으로 창조자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친히 보여 주시고 십자가에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땅에서도 누리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계시 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우리를 창조한 자이기에 우리를 낳은 부모가 자녀에게 언제나 빚진 마음을 가지고 살아 가듯이 창조한 자이기에 하나님을 향하여 욕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들에게 까지도 돌아오도록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참고 기다리시는 그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불어 넣어 줌으로 말미암아 채권자의 삶을 돈키호테와 벌거벗은 임금의 삶인 줄 알아서 채무자의 삶을 살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내가 조그마한 일을 했더라도 어떤 일의 결과에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보면서 채무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이 모여서 차별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 보여 주기를 원하는 교회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