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그리스도인의 몸(고린도전서 6: 13-20)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8. 11. 10. 14:11

 

담임목사 김종웅

그리스도인의 몸

고린도전서 6: 13-20

2018 11 4일 주일 낮 예배

                                                                                                                                              No. 391

13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14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아멘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려면 성경의 단어 개념과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너희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고린도는 아가야 지역 로마 제국의 수도다. 이 도시에는 아프로디테 신전과 포세이돈 신전이 있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주께서 너희를 값으로 샀기 때문이다.

 

우리 2부 예배 때에 봉헌 송하고 또 폐회송을 우리 김현호 선생이 독창으로 했어요. 왜 했는가 그 전주에 봉헌 송을 이렇게 하는데 곡의 해석이 달라요 제가하는 것 하고, 전문가가 역시 다르더라고요,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성경을 이렇게 읽고 볼 때에도 여러분들의 해석하고 전문가인 목사의 해석은 달라요. 여러분들이 전문가의 해석을 받아 드려서 살아가게 될 때에 정말 그 동안에 여러분들이 구원의 기쁨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했든 그 기쁨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이 정말 중요한 말씀이에요. 이 말씀대로 살면은 여러분들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분명히 경험 되어져요.

 

1. 너희는 주와 하나가 된 영이다. 그래서 너희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이다. 고린도는 아가야 지역 로마 제국 가운데 아가야 지역의 수도이고 항구다. 그리스도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회도 있었고, 또 바울파, 게바파를 지지하는 교회도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러지 못한가, 비 전문가일수록 우리가 노래를 부를 때에도 음계라든지 박자에 신경 쓰지만은 전문가들은 그것을 뛰어 넘어서 그 곡의 표현과 해석이 달라요. 오늘도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보면은 창녀와 음행 하는 자는 창녀와 한 몸이 되기 때문에 절대로 음행 하지 말라. 너희는 주와 하나가 된 영이다. 그래서 너희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라는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이 말 문자적으로 보면은 창녀와 음행 하는 것은 그와 하나되는 것이다, 그래서 해서는 안 된다. 이래 버리면은 율법주의 밖에 안 됩니다. 또 이 말씀은 여러분들을 전부 남자들은 잠재적 성범죄 자라 취급을 하는 말이 되어 버려요.

 

또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은 어떤 이해가 되는가 하면은 그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욕구대로 살면 안 돼, 그래서 예전에 정말 이런 것을 잘 모를 때에는 부부 관계도 해서는 안 된다 하는 이런 금욕주의적인 삶을 살았어요. 여러분들이 정말 그런 성 잠재적 성범죄 취급을 하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설교를 받아 드리고 있어요. 그러면 이 말씀은 뭐냐, 여러분들이 이 말씀의 모든 내용을 알려면은 첫째는 그 말씀이 주어진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되요. 그리고 그 말씀에 있는 단어들을 한국말이 아니고, 구원 사에서 그 단어를 어떻게 사용했는가, 구원 사적 의미를 아실 때 야 그래 성경은 진리야, 이 말씀에 순종하게 될 때, 이전에 느껴 보지 못했든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돼.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된다고요.

 

오늘도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이해를 하려면은 고린도 지역에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되요. 그래서 제가 고린도전서를 강해하면서 제일 먼저 고린도는 어떤 교회인가, 어떤 지역에 있는가, 하는 것을 말씀을 드렸어요. 그때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릴 때에 고린도는 아가야 지역 로마 제국 가운데 아가야 지역의 수도에요. 그리고 항구 도시입니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아프로디테 신전 하고 포세이돈 신전이 있습니다. 그 아프로디테나 포세이돈 신전에 경연제로 큰 운동경기가 열려요.

 

그러면 그 일대에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운동경기를 하고, 아프로디테 신전에 가서 진탕 먹어요. 제사를 드린 음식 고기를 가지고, 그리고 그 아프로디테나 포세이돈 신전에는 여 사제들이 있어요. 좋은 말로 여 사제지 그 신전에 있는 창녀들이에요. 그래서 오늘 여기에 말하는 것은 그 성창 창녀들 이런 말이에요. 그들과 함께 성적 관계로서 엑스타시 현상을 경험하는 것이 고린도 지역에 있는 일반적인 삶의 풍속이고 예전이었어요. 그래서 대부분 고린도교회의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삶을 일상적인 삶을 살았어요. 그래서 그 당대에 고린도 사람과 같다는 것은 뭐냐 하면은 굉장히 음란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일컫는 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젖어 살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으면서 예배를 드리기를 시작했든 거에요. 그래서 고린도 지역에 교회가 생겼는데 고린도 교회 하니까 여러분들이 교회가 하나인 줄 알지만 고린도 지역에는 그리스도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회도 있었고, 또 바울파 적인 지지하는 교회도 있었고, 게바를 지지하는 교회도 있었어요. 그리스도파의 교회는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린 데로 헬라 사상이 복음을 많이 왜곡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든 교인들이고, 게바파 교회는 유대주의에 그 잔재가 복음을 왜곡하면서 남아 있었든 그런 교회에요. 오늘도 여기에 그리스도파 교회의 교인들이 어떻게 했는가 하면은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예배를 드려도 그 운동이 열리는 그 해에는 그 운동장에 가서 운동도 참여하고.

 

2. 헬라는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생각을 한다. 영혼과 육체가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 구원은 영혼만 구원받는 거다, 육체는 구원받지 못한다. 바울은 뭐냐 하면 너희들의 근본적인 사고가 헬라적 이분법에서 된 것인데 그 이분법적인 사고 속에 욕구에 대한 문제다.

 

그 다음에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난 뒤에 술과 포도주와 고기도 진탕 먹고, 또 그곳에 있는 여 사제들과 성적인 관계를 하면서 엑스타시 경험을 경험하면서 오는 거에요. 와서 그 잘못 되었다 하면은 아니다 나는 자유를 얻은 자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그 자유 그들의 그런 생각은 헬라적 사고방식 때문이에요. 헬라는 제가 계속 이야기하지요,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생각을 해요. 영혼과 육체가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 구원은 영혼만 구원받는 거다, 육체는 구원받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는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 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우상에게 바쳐 진 고기를 먹는 것이 신앙적 자유 구원을 얻은 증거라고 생각을 했고, 또 그곳에 가서 아프로디테 신전니나 포세이돈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그들의 모든 것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육신 구원받은 것 아니야, 예수가 영혼을 구원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래 사는 것이 구원 받은 자이고, 그리스도인의 자유야 라고 생각을 하는 그들이었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바울은 그냥 너희들이 그 예배에 참여하면 안 돼, 우상숭배하면 안 돼, 음행 하면 안 돼, 라는 게 아니고, 왜 안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에 복음의 근거에서 말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주일 성수 해야 돼, 십일조를 해야 돼, 무엇을 해야 돼 라고 이야기를 할 때에 그것 안 하면 하나님 복 안 줘, 이러는 것 아니에요. 그것이 구원 사에서 왜 그러한 예전과 구원의 표현이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면은 주일 성수가 짐이 되지 않고, 11조가 짐이 되지 않게 된다고요. 그래서 쉼이 있는 잔치를 하면서도 이번에도 피드백을 받아 보니까 이제는 자유 함을 얻었다. 내가 왜 신앙 생활해야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는 이러한 고백들이 있는 거에요.

 

이제는 그런 것들이 나를 얽어 매지 않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은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말씀 속에 복음은 바울은 뭐냐 하면 너희들의 근본적인 사고가 헬라적 이분법에서 된 것인데 그 이분법적인 사고 속에 욕구에 대한 문제에요. 그래서 오늘도 13절에 보면은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파들의 구호에요. 우리는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것들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 라고 하는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바울이 그러나 그것은 유익한 것이 아니다 얽어 매는 것이다. 라고 12절에 말을 하고 있는 거에요.

 

3. 심리학자 중에 매슬로우 라는 심리학자가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었다. 매슬로우 이런 것들, 복음을 알게 되면은 어떠한 인문학도 종교적인 교리도 유치하게 보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식욕을 주어서 먹고 살게 했는데 이 욕구를 자기만 위해서 쓰는 것은 타락이다.

 

그러면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런 말씀을 보면서 참 설교를 듣는데도 답답한 것이 뭐냐 하면은 인문학적인 성경을 해석을 해요. 인문학적인 해석을 하면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이런 말이에요. 심리학자 중에 매슬로우 라는 심리학자가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어요, 첫째 단계는 생리적 욕구, 식욕, 성욕, 뭐 이런 배설 욕 이런 것들은 생리적 욕구라는 거에요. 그 위에는 안전에 대한 욕구 여러분들이 아이들은 그저 지 입에 들어갈 것만 있으면은 아무 걱정이 없지만은, 어른들은 내가 먹고 싶은 것도 참아요, 왜냐하면은 자신의 삶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그래서 인간에게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이 근실 해져 간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또 인간은 소속에 대한 욕구가 있는 거에요. 내가 아무리 잘 먹고 이러더라도 내 혼자 가지고 안전을 확보하지 못하니까 인간의 소속에 대한 욕구가 있는 거에요. 저는 우리 한국 교회에 보면은 소속에 대한 욕구로서 교인들을 얽어 매기도 해요. 그리고 그 위에는 뭐가 있는가 하면은 존경에 대한 욕구 이런 것들이 있고, 제일 위 단계는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 그래서 사람이라면은 그저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상 자기의 꿈을 이루어야지 이런 고귀한 욕구를 추구해야지, 설교도 지금 이런 말씀을 가지고 교회에서는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를 하는 것이 고차원적인 교회야.

 

그래서 우리 교회 교인들은 예수 믿고 복 받았다는 것보다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인 욕구 이런 줄 알아, 안 그러면은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는 이런 자기 의의 욕구를 추구하는 좋은 교회 이런다고요, 그러면 인문학이 되어 버리는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 이 말씀에서 여러분들이 아셔야 되는 것이 매슬로우 이런 것들, 복음을 알게 되면은요 어떠한 인문학도 유치하게 보여요. 복음을 알게 되면은 어떠한 종교적인 교리도 유치하게 보여요. 교인들 중에 뭐 법정스님이 뭐 어떻고 저떻고 하면은 복음을 몰라서 그렇구나, 뭐 상담학 심리학에 어떠니 할 때 보면은 복음을 몰라서 그렇구나, 그러면은 복음적 입장 구원적 입장에서 매슬로우를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면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욕구를 주셨어요.

 

이 욕구가 타락을 한 거에요 그게 타락이에요. 어떻게 타락했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식욕을 주어서 먹고 살게 했는데 이 욕구를 자기만 위해서 써요, 그게 타락이에요. 구원받은 자는 아담은 나만 먹는 것이 아니라, 내 욕구도 채우지만은 내 욕구 충족을 위해서 다른 사람은 어떤가, 이 생각하는 거에요. 공동체는 어떤가, 자아실현에 대한 제일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하면은 여러분 그분들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강하게 실현한 사람들이에요. 자기가 대통령이 되려고 했든 그 욕구들 우리나라의 No 1이 되려고 했든 욕구들, 실현했어요 어떤 방법으로든, 그런데 그 욕구들 속에 뭐가 있었어요,

 

4. 기본적인 욕구가 매슬로우는 그런 현상에서 잘 정리를 했지만은 복음적으로 볼 때에는 그 타락이 그 심리에 어떻게 역사 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 구원을 헬라 사상이 왜곡을 했고, 유대주의가 왜곡을 했든 것이다. 그게 게바파고 그리스도파다.

 

여러분 대통령이 되려고 할 때에도 교회에 오면은 어떤 말을 들어야 되는가 하면은 왜 대통령이 되어야 돼, 내가 원하는 바를 실현도 하지만은 이 자아실현이 타인의 자아실현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가, 국가에 해가 되지 않는가, 이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설교다 이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여러분 재벌들에게 교회에 장로님들 많이 있지만은 자아실현 했잖아요. 부자가 되려고 했잖아요. 그래서 교회 헌금 많이 하잖아요. 선교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어느 장로님 같이 부자 되어 가지고 종교 생활 잘해 가지고 선교하는데 돈 많이 하고, 교회 짓는데 헌금 많이 해, 질 낮은 거에요.

 

여러분 오늘날 우리나라가 지금 여러 가지 힘든 일들 좌파는 뭐에요, 나누자는 거에요. 우파는 성장하자는 거에요. 다 나름대로의 명분을 가지고 있는데 그 균형을 교회가 잡아 주어야 되는 거에요. 목사님들이 이 복음을 몰랐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금 이 모양이에요. 전부 교인들에게 예수 잘 믿어 가지고 부자만 되라 했는데, 자아실현을 하라 했는데, 뭐 안 했어요, 그 자아실현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것이 없었기 때문에 , 지금도 여러분들이 교회에 와서 제가 이야기하잖아요, 왜 부자가 되어야 되요, 그게 어디서 듣는 이야기여야 되요, 복음에서 듣는 거에요.

 

왜 인간에게는 매슬로우가 이야기했든 기본적인 욕구들이 있는데, 기본적인 욕구가 매슬로우는 그런 현상에서 잘 정리를 했지만은 복음적으로 볼 때에는 그 타락이 그 심리에 어떻게 역사 했는가를 아는 것은 목사와 신학자들의 몫이지요.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아실현의 욕구적인 신앙 생활 해야 돼, 이러면 안 됩니다. 그것이 무엇을 위한 건가, 그래서 맨 마지막에 주의 영광을 위하여 주께서 너희를 값으로 샀기 때문에. 주의 영광이라고 이야기할 때에도 그저 내 생활은 없고 내 욕구는 없고, 그저 하나님과 교회만 위해서 바울 봐라 그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또 다른 게바파의 금욕주의로 가는 거에요.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자기를 소중히 여기게 되어 있어요. 아담이 타락 전에는 그랬다고요. 그런데 하와의 가치도 귀하에 여겼어요. 그래서 온전한 공동체 한 몸인 공동체가 되었어요. 사탄의 유혹을 깨어져 버린 거에요. 이런 말씀의 배경을 가지고, 이 성경을 봐야 되는 겁니다. 그 말씀 그 깨어진 그것을 헬라는 이분법적으로 구원하려고 그랬든 거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그 구원을 헬라 사상이 왜곡을 했고, 유대주의가 왜곡을 했든 거에요. 그게 게바파고 그리스도파에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보면은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음식 배 이런 것들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먹는 것 마시는 것, 이래 버리면 안 되요. 이 말씀의 의미는 식욕을 말해요. 배도 욕구를 말해요.

 

다시 말하면 무슨 말이냐 하면은 세상에 이런 사람들 있잖아요, 언제나 논쟁이 먹기 위해서 사나, 살기 위해서 먹느냐, 그게 철학자들이 싸우는 거에요. 헬라인들은 먹기 위해서 산다는 거에요. 게바파들 금욕주의자들은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거에요. 그래서 거친 음식을 먹어야 된다는 거에요. 그게 절 입니다. 마음껏 잘 먹기 위해서 산다는 것은 그것은 그리스도파에요. 성경은 둘 다 부정을 안 하고,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나, 살기 위해서 먹는 사람이나, 먹는 거나 너희들의 삶은 언젠가는 없어져, 그런데 이 없어지는 것도 그리스도파는 없어지기 때문에 육체는 마음대로 살아야 돼, 게바파는 없어지기 때문에 먹는 것에 탐해서는 안 돼 이래 버린다고요.

 

5. 성경은 몸은 여기에 몸이라는 말은 육신을 말하는 게 아니고 인간은 우리의 자아를 말하는 것이다.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그리스도가 부활하였듯이 너희 몸도 부활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는가 하면은 몸은 여기에 몸이라는 말은 육신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인간은 우리의 자아를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 뒤에 몸이라든지 여러분 영이라든지 혼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헬라적 이분법으로 가지고 인간은 혼과 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래 버리면은 헬라사상이 되는 거에요. 히브리적 사고, 기독교는 우리는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지만은 이것이 이루어진 이 연합된 자아가 나에요 그게 인간이에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런 이야기도 하잖아요. 물은 분명히 h2o로 이루어져 있지만은 직류 전기를 흘리면은 분열이 일어나요. 그러면 수소고 산소가 되지 물이 아니에요.

 

인간은 분명히 영혼과 육신으로 이루져 있지만은 거기에 하나님의 전류가 흐르면은 나뉘어져요. 어떻게 하나님의 전류가 흐르는가, 어떤 사람에게는 병으로 오고 어떤 사람에게는 교통 사고 나서 죽음이라는 전류가 오면은 나뉘어 지잖아요. 그러면 나뉘어 지면은 몸은 더 이상 자아가 아니에요 내가 아니에요. 영혼도 인간이 아니에요. 이게 같이 있을 때 인간이에요. 몸이라는 말이 그런 말이에요. 몸이라는 것은 이것을 배에 대비해서 쓰는 말이에요. 예수를 믿고 나면은 헬라사상이나 게바파의 유대이즘은 전부 그것을 나누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여러분 지금 이 몸은 우리 자아는 여러분 이 육신은 죽잖아요, 하나님의 전류가 흘러서 영혼이 분리가 딱 되는 순간 대통령도 비행기 타면은 여객 칸에 못 타고 화물칸에 타요. 물건이 되어 버리는 거에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에요. 그걸 사람이라고 

 

그렇지만은 우리의 몸도 소중한 거에요. 여러분들의 자아의 몸과 영혼이 다 있어야 되는데 지금 게바파나 이 그리스도파에는 이 몸 욕구에 대한 중요성을 모른다는 거에요. 그래서 너희들이 그 뒤에 보면은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이 말은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생리적 욕구 가운데 식욕하고 성욕은 다른 거야 이런 말입니다. 식욕하고 성욕은 그 뒤에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하나님께서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왜 그 뒤에 창녀와 합해서는 안 되는가, 라는 말은 성욕적인 그러한 관계는 그와 연합이 일어나는 거라는 거에요.

 

그게 결혼의 신비한 제도고, 또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그랬든 것들은 바로 그 여사제들과의 그런 관계가 아프로디테와 연합이 일어나는 그러한 엄청난 일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리스도파 너희들은 그 몸은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그렇게 사는 것이 자유의 표현이라고, 아니야 식욕하고 그것하고는 달라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오늘도 여러분 왜 다른가, 나중에 부활할 때에 영만 하는 게 아니에요. 너희 몸도 부활되는 거에요. 그리스도가 부활하였듯이 너희 몸도 부활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말씀에서 얻어야 되는 것이 뭐냐 하면은 우리의 육신도 참 중요해요.

 

6. 예수를 믿으면 육신과 삶을 소중히 여긴다, 그렇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파 헬라의 사상과 잘 못된 유대이즘이 복음을 왜곡한 결과다. 시간과 공간과 타락한 욕구에 매이지 않는 육신으로 재림의 날 완성한다. 다른 사람도 공동체도 귀하게 여기는데 욕구를 써는 것이 기독교의 윤리다.

 

또 다른 말로 하면은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옛날에 그랬잖아요, 죽어서 천국 갈 건데 뭐 이 땅에 것에 매여 살아 이러잖아요. 이 지상의 삶도 굉장히 소중하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한 천국의 상급은 다음주일 쉼이 잔치에서 하는 거에요. 예수를 믿는 사람은 자신의 육신과 이 땅에서의 삶을 소중히 여겨요, 이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파 그것은 헬라의 사상과 잘 못된 유대이즘이 복음을 왜곡한 결과다 이런 말이에요. 그 때에 부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육신이 어디에 흩어져서, 화장을 했든 흩어졌든 새로운 육신으로 만드는 창조적 능력을 가져야 되요. 더 이상 시간과 공간에 매이지 아니하고 우리의 타락한 욕구에 매이지 않는 그런 육신으로 재림의 날 완성할 거에요.

 

그래서 오늘의 삶이라든지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생리적인 욕구의 삶,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살면서 정신적인 가치 자아실현의 이런 욕구들도 다 중요한데, 주를 위하여 산다는 말은 그런 말이에요. 주인 되신 그분이 너를 귀하게 여기듯이 다른 사람도 귀하게 여기고 공동체도 귀하게 여기는데에 욕구를 써, 이게 기독교의 윤리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난 뒤에 그리스도를 받아 드릴 때에 우리의 이러한 욕구가 생리적 욕구가 자아실현의 욕구로 해 나간다면 그것은 인문학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것에 열광을 해요. 그래서 저는 tv에서 인문학 강의를 할 때 보면은 참 유치하기 짝이 없는 거에요. 이 구원의 관점을 모르니까, 영원의 시각을 모르니까.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보면서 여러분들의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져야 되요. 타인도 소중하게 여겨져야 되요. 공동체도 소중하게 여겨 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 그래야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잖아요. 그래야 좌파 우파가 균형을 가지고 날잖아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잖아요. 용인 어느 초등학교에서 운동회 할 때에 장애인 아이가 뛰는데 다 손잡고 뛰는 거에요, 이것은 좌파에요. 그것을 칭찬하고 있다고, 나는 그 기사를 보면서 한숨이 나는 거에요. 우리 목사님은 좌파 생각을 가지고, 자기 수준에서 나를 보는 거에요. 제가 뭐라고 그랬어요, 뛸 수 있는 자는 열심히 뛰어서 결승전에 먼저 도착해요.

 

그 다음에 도착해요. 장애인이 마지막에 와요. 손잡고 결승선 통과해요 이게 공의에요. 이게 좌파와 우파가 함께 공존하는 거에요. 거기에는 뭐가 있는가, 내가 아니라는 거지요, 나를 주님의 소유된 것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 없이 누가 그 삶을 살아요. 그 장애인이 내 동생이라는 생각이 없이 누가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요. 2천년 전에 이미 이루신 거에요. 그래서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여기에 이럴 때에도 19절에도 가보면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이럴 때에도 우리 몸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고 우리 몸이 성전이라 이야기하면은 이 말을 한국말로 이해한 거에요.

 

7. 바울이 몸이라는 것은 자아를 말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된 구원의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라. 그래서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 알지 못하느냐, 그리스도의 몸 된 내 안에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 나도록.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바울이 여기에서 몸이라고 이야기할 때 우리 자아를 말해요. 우리의 육신이나 우리의 정신 세계나 모든 것들, 그런데 여기에 여러분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다가, 또 어떨 때에는 교회 성도들의 모임이 하나님의 전이라고 하잖아요. 그것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되는 거에요. 어느 때에 교인들의 모임인 교회를 성전이라고 하고, 어떨 때에는 너희 몸이 성전이라고 하는가 하면은 이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까 헛갈리는 거지요. 교회가 분열이 되어져 감리교 침례교 무슨 분열이 될 때에는 교인들의 모임이 성전이야, 하나가 중요한 거야 이런 말도 그리스도파 게바파 바울파 나뉘어져 있을 때에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성전이야 이러고, 너희 몸이 성전이라고 할 때에는 우리 욕구를 잘못 사용할 때, 그때는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된 구원의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 이런 말이에요. 그래서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 알지 못하느냐, 이것을 가지고 부흥회 때 어떤 분들은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지체의 입이야, 집사들은 손이야, 그러면 입이 말하는 대로 집사들이 움직여야 몸이 제대로 되지, 집사들을 학대하는데 쓴다고요. 그런 말이 아니에요. 나는 그리스도의 몸 된 내 안에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 나도록. 저는 교인들을 볼 때에요 얼마나 그 사람이 열심히 하고 봉사하느냐 안 봐요. 그 사람의 속이 얼마나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 나느냐에 따라서 성숙을 진단하는 거지요.

 

그 하나님의 성품은 여러분 육신의 부모도 그렇잖아요. 자식은 형제들끼리는 자기가 잘나야 돼, 부모는 아픈 손가락 때문에 눈 못 감는 거에요. 교회에서도 지 혼자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정신박약 영적 박약아에요. 한국 교회 그런 것 많잖아요. 뭐 천명쯤 모이고 나면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그럴 때에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은 천명 목회하는 너보다 열명 목회하는 그 때문에 울고 계시는 하나님이 보여야 성숙한 그리스도 인이에요.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다니면서 아무 부족함이 없이 편할 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면은 박약아에요. 내가 편할 때에 울고 있는 교인이 보여져야 되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성숙된 교인이라는 것은, 저 어떤 교회 가보면은 아이구 우리 이번에 장로님 예수 잘 믿더니만 이번 시험에서 아들이 서울대학 합격했어요, 막 광고하고 목사님 설교하면서 장로님 같이 믿어라 이런다고요. 그건 뭐냐 하면은 굉장히 저급한 신앙인 것을 알아야 되는데, 우리 교회는요 자기 자식 좋은 대학 가도 떨어진 사람 때문에 말을 안 해요. 그게 부모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지요,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너희 몸이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말은 그런 말이에요. 그 다음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8. 자신의 욕구를 자기와 타인과 공동체의 균형 잡힌 삶, 그것을 위해서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몸을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영광은 하나님의 본질이다. 너희들도 하나님의 본질이 들어 나도록 하라.

 

식욕은 밥을 먹는 것은요 먹는 것으로 끝나지만은 성욕은 그게 아니라는 거에요. 그 욕구 속에는 하나됨이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네가 아프로디테 신전에 가서 여 사제들과 그런 것은 네가 우상과 하나 되는 것이고 그와 하나 되는 것이다. 그게 창세기 2장에 두 몸이 하나 되는 것이다. 여러분 그 하나 되게 하는 아름다움을 통해서 부부가 탄생하는 거에요. 그래서 부부는 결혼을 하고 나면은 남편은 열심히 벌어 가지고 아내가 좋은 옷 입고 나가면은 괜히 자기가 좋아해, 희한하게 한 몸 된 증거잖아요. 자기는 다 떨어진 옷을 입고도, 놀라운 하나님의 그런 욕구들이 왜 너희가 그래서 그 다음에 뭐라는가 하면은 음행을 피하라고 이야기할 때에 이런 말을 가지고 자꾸만 뭐 부부 관계도 하지 말고 이런 것은 게바파에요.

 

옛날에 어느 권사님 예수 믿고 난 뒤에 남편이 밤에 가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했다고, ㅎ ㅎ. 여기에 음행을 피하라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도망하라 이 말인데요, 아프로디테 신전에 얼씬거리지 말라 이런 말입니다. 포세이돈 신전에 얼씬거리지 말라. 그 향수를 알기 때문에 가고 싶잖아요, 또 그 고린도 사회에는 거기에 소속이 되지 아니하면은 많은 불이익이 있어요. 그런데 얼씬거리지 말고, 이말 속에 괄호 안에는 교회가 하나되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 가라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예전에 함께 놀든 친구보다 교회 안에서 만난 것이 훨씬 아름다운 만남으로 이끌어 가야 되요.

 

그런 복음적 가치가 여러분들 속에 있어야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은 자신의 욕구를 자신만의 욕구 충족으로 사용하지 않고, 자기와 타인과 공동체의 균형 잡힌 삶, 그것을 위해서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거에요. 그래서 너희 몸을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내 몸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왜, 타락의 극치입니다. 내가 번 돈 가지고 내 마음대로 쓰는데 지옥 갈 사람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겁니다. 은혜는 어떤 결과의 이면에 있는 것을 보는 게 은혜에요. 조금 있다 설명 드리겠지만,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소유된 백성 되게 하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사탄에게 치르고 하나님께 소유되게 한 거에요.   

 

너희들이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너희들 그 신전에서 우상과 연합된 너희들을 예수님이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사서 하나님의 소유로 이전했는데, 예전의 그런 욕구의 삶을 추구해,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말씀도 교회에 와서 열심히 봉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든지, 돈 많이 벌어서 하나님의 일 큰일 한다고 이런다고요. 하나님의 영광은 여러분들 제가 우리 교회 오면서 그러잖아요, 여러분들 능력 필요 없어요, 하나님의 능력만 있으면 되요. 여러분들에게 순종만 있으면 되요. 내가 우리 교회에 돈 벌어 가지고 뭔가 우리 교회에, 필요 없어요, 나중에 자기 교회라고 주장하게 되요.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봐야 되요.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이에요. 너희 몸 너희들도 하나님의 본질이 들어 나도록 하라. 왜 너희는 이제는 하나님께 속한 자 이기 때문에 이런 말입니다. 앞의 말로 하면은 자기만 편하고 좋으면 좋다고 하든 사람이 부모는 그러잖아요. 추석에 아이들 이래 오면은 잘난 놈 그 놈보다 와서 풀 죽어 있는 그 놈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해요. 그 마음을 가지라 이말 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은. 여러분들이 이 말을 가지고 율법적인 설교, 음행을 피하라 뭐 하지 말라 쉬운 말 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과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을 때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나오는 거에요.

 

9. 순종 해봐야 그때 구원의 기쁨과 예수 믿는 맛이 이런 거구나 한다. 성숙되고 나면은 오늘 내 게 밥 먹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가 보이는 순간 그 밥이 감사로 된다. 이런 게 신앙 이다. 이게 복음이다. 이게 구원이다.

 

우리 교회에 가끔 나와서 하는 소리가 뭔가 하면은 목사님 설교 참 어렵습니다 어렵지요, 그런데 그게 어려운 게 아니고 생소한 거에요. 영어 어려워요 미국 가니까, 다섯 살짜리도 영어하고, 학교 문턱도 안 갔든 사람도 영어 하든데, 익숙한 거에요. 복음이 익숙해야 되요. 그저 율법에 매여서 설교 듣고 살았으니까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에는 힘들어 보여요. 여러분들이 오늘 이 말씀을 제대로 알아야 되요. 지금 필요한 게 이런 거에요. 예전에 영화 중에 부시멘이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그 부시멘에 보면 비행기에서 콜라병이 떨어져, 그래서 이 콜라를 가지고 뭐 하는 것인지 이러는데 그 부시멘에게 콜라는 탄산 음료야, 네가 먹는 물하고 달라, 하고 콜라를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부시멘이 이해하겠어요 못하겠어요, 전혀 이해 못해요.

 

야자수 먹고 껍데기 가지고 물 퍼먹는 그릇만 생각하지, 탄산수 담긴 콜라를 이렇게 만든 유리 제품 이해가 안 되는 거에요. 뭐해야 되는가 먹어 봐야 알아요. 먹어 보면은 지가 냇가에서 떠먹는 밍밍한 물하고는 전혀 차원이 다른 맛을 보게 될 거에요. 처음에는 그물 먹으면은 액하고 토해 낼 거에요, 지하고 먹는 물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 물을 한번 먹으면은 얼마나 시원한가 하는 것을 알게 되어져요. 오늘날 교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복음의 콜라병을 던져 주었는데, 그 동안 유대교의 먹든 물만 먹는 거에요. 하라 하지 말라, 하는데 그렇게 오늘날 한국 교회에 익숙해 있는 교인들에게 내가 자꾸 콜라를 주니까 액하고 안 먹으려고 그래, 아이구 뭐 이런 게 있어 이런다고, 그 맛을 보려면은 한번 먹어 봐야 알거든요.

 

순종 해봐야 되요. 그때 구원의 기쁨과 예수 믿는 맛이 이런 거구나 하는 거에요.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콜라 설명만 해 달라는 거에요. 그 설명도 지가 이해할 수 있는 야자수 껍질에 먹는 물과 같이 설명해 달라, 한번도 경험 안 해 봤는데 어떻게 그 말을 이해 해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그 맛을 보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뭐 이금희 권사님 제쳐 두고도요, 어제도 오늘 여러분들이 추어탕 먹을 거에요, 참 맛있게 먹지요, 그냥 먹으면서 맛있다, 이런 사람은 은혜를 잘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 추어탕이 내 목에 들어갈 때에 이면에 누군가의 수고가 생각이 나는 순간 맛있다가 아니고 감사하다가 나와야 되요. 감사는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더 감사의 요건을 줘, 이러면은 율법이 되어 버려요. 그런 말을 하는 자는 복음을 모르는 자에요.

 

감사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면은 내가 이것을 먹을 때에 그 이면에 있는 자들, 여러분들이 어릴 때에는 밥을 그냥 먹잖아요, 맛있다 안 맛있다만 해요. 그런데 성숙되고 나면은 오늘 내 목에 밥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가 보이는 순간 그 밥이 감사로 와요. 이런 게 신앙 이에요. 이게 복음이에요. 이게 구원이에요. 이런 복음을 얼마나 모든 교회가 선포를 해야 되는데, 전부 옛날 먹든 맹물만 먹인다고. 어제 저녁에 7시에 이병령 집사가 그 전날 내 차 가지고 가서 자기 차도 없어요, 홍제동 살아요, 가락 시장 가서 미꾸라지 많이 사 왔어요, 온갖 야채 다 사 왔어요, 백권사님이 오셨어요. 10시까지 고어고 삶고 했어요. 그래서 5층에서 잤어요, 내가 물었어요, 우리 교회 오면서 처음에 와서 왜 왔는가 하면은 감옥소 갔다 왔어요 10개월 산림 훼손 법으로, 거기 가서 사람 되어 와 가지고 우리 교회 온 거에요.

 

10. 복음은 우리 욕구 충족 자아실현의 위대한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이것 아니다. 그 실현이 너와 이웃과 교회와 국가에 어떤 유익이 되는가,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이 구원 받은 삶이고 천국의 삶이다. 욕구가 자신과 타인 공동체에 적절한 균형일 때 비로서 이것이 예수의 구원이구나.

 

와서 교회 밥을 먹어 보니까 교회 밥이 엉망이더래, 그래서 자기가 옛날에 감옥소 있을 때 생각이 났는데 감옥소 밥이 한끼에 천원하고 천이 백 원 정도인데 그 정도만 들면은 교인들이 잘 먹겠다 싶어 가지고 자기가 매달 첫째 주 자기가 그 돈 내 가지고 그 밥 준비하는 거에요. 어떨 때는 돈가스도 하고, 추어탕도 하고, 여러분들에게 뭐 냉면도 하고, 그런데 그게 지금 몇 년째인데 한번도 그러지 않고 와요. 내가 어제 물어서 이제 그만할 때 안 되었나 안 힘드나 하니까 목사님 얼마나 기쁘고 좋은데, 내가 이렇게 수고해 가지고 300명이 그 밥을 먹는 것은요 내입에 밥 들어가는 것보다 더 즐겁다는 거에요. 이게 구원의 기쁨이에요.

 

여러분 이름도 모르는 이병령이나 신진호 집사 우리 교회에 신진호 집사 와서 은행 지점장 했든 분이에요. 25인승 자기 운전 하려고 대형 면허 따 가지고 주일마다 7시면 교회 와서 함께 밥 먹다가 2부 예배에 버스 운행하고 이래요, 여러분 이게 구원의 기쁨이고 이게 부시멘이 콜라를 맛보는 것인데, 많은 교인들은 콜라 설명만 해 달래요. 그래 한번 먹이면은 이런 것이 있나 옛날 맹물 줘 이런다고, 목사님 그런 것 말고, 그냥 뭐 예수님의 은혜 믿으면은 음행 피하라 했다가 뭐 이것 하면 복 받는다 뭐, 자기의 욕구의 충족만을 요구해요. 여러분 복음은 여러분들의 욕구 충족 자아실현의 위대한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이것 아니에요.

 

그 실현이 너와 이웃과 교회와 국가에 어떤 유익이 되는가, 그러니까 목사님 어렵습니다 그저 고차원적으로 선교 열심히 하고, 예수 열심히 믿어라 소리 해, 나 그것 먹기 싫어요, 이런 사람들이 우리 교회 딱 두 서너 사람 보여 ㅎ ㅎ 오늘부터 여러분 정말 오후에도 제가 강의 시간에 하겠지만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이 구원 받은 삶이고 천국의 삶이에요. 그것을 모르는 매슬로우는 그저 생리적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그 다음에 뭐 소속과 존경과 자아실현의 고차원적인 삶을 살아 이러는데 전혀 다른 차원,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파는 그 욕구대로 마음대로 먹어도 돼, 아프로디테 신전에 가서 여 사제들하고 그래도 돼, 게바파는 그러면 안 돼, 철저히 금욕주의로 살아야 돼.

 

그 양극단에 아니야 사람에게 욕구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런데 그리스도가 아버지 되시고, 하나님이 아버지 되시고 이웃을 영원한 가족 되게 하고 난 뒤에는 그 내 욕구가 나 자신을 위한 것과 타인과 공동체에 적절한 균형을 가져갈 때에 비로서 아 이게 예수의 구원이구나, 누가 이런 삶 살아요, 대한민국의 살길이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이면을 봐야지요 재벌들이, 오늘 대기업이 있기 까지는 백혈병 걸렸든 직원들의 희생이 있었구나, 내 휴대폰을 사주는 대한민국 국민의 애국심이 있었구나, 이게 보이는 게 은혜라니까요. 그냥 말로 은혜를 이해하려 하지 마세요. 크고 나면은 입에 밥 먹을 때 아버지가 직장에서 자기보다 어린 자에게 모욕당하며 벌어 온 돈이구나 그때는 맛있다가 아니고 맛 없다가 아니고, 감사하다. 오늘 말씀이 그런 말씀입니다. 예수에게 속한 것이 그런 삶이에요.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복음을 알기 전에는 하나님도 나를 위해서 존재해야 하고, 부모님도 나를 위해서 존재해야 되는 어느 누구도 나를 위해서 존재해야 되는 그런 죄 성의 욕구에 사로잡혀 살았든 우리들인데 우리가 무엇 이간대 나를 창조한 자이기에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주고도 탓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하여 저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였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부터는 나의 존재의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나의 존재의 너머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하나님께서 동원한 그 손길이 발견되면서부터 내가 이제는 내가 아니오 하나님의 소유된 것임을 알아서 나에게 유익이 되는 만큼 타인에게는 해가 되지 않는가, 내가 편 하려고 하다 보면 공동체에 해악이 되지 않는가, 하나님의 마음이 내 속에 싹터 감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이 헌금이 부시멘이 맹물 먹듯이 많이 드리면 복 준다는 생각 감사하는 자에게 더 감사하게 된다는 부흥사들의 그 맹물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기에 나의 존재 자체가 감사가 여겨지고, 그 감사 때문에 주님 앞에 구분하여 9는 나를 위해서 쓰고 1은 타인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그래서 우리의 공동체가 허물어지지 않고, 재림의 그날까지 지속되게 하도록 귀한 제도를 허락해 주심을 감사 합니다.

 

게바파는 9를 타인을 위해서 쓰고 1을 너를 위해서 쓰라고 그러고, 그리스도파는 왜 네가 수고한 것 남과 나누어 다 쓰지 라고 하는 그들에게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9는 너를 위해서 사용할 줄도 알고, 1은 타인을 위해서 사용할 줄도 아는 이 놀라운 황금 비율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오늘도 이 마음으로 드리는 이들은 내가 드린 것 때문에 우리 교회의 누군가가 즐거워하는 것을 생각하며 춤추는 그런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사는 신앙의 삶이 이 예물 속에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이 성경을 인문학 적으로 재단해서 갈기갈기 복음을 찢어 버리고 죽은 종교로 만들어 버린 이 땅에 다시 한번 생명의 복음이 하늘에서 부시멘에게 콜라 병 떨어지듯이 2천년 전에 하나님이신 그 분이 이 땅에 던져 놓은 이 복음이 보전 되는 데에 우리 교회의 사명이 있음을 믿습니다.

 

이제는 더웁게 하라 따뜻하게 하라, 중보기도 하는 교회가 아니라, 더웁게 해 줌으로 배부르게 해 줌으로 말미암아 교회에 임재 하신 하나님 우리 가운데 임재 하신 하나님이 타인에게 경험되는 교회가 되어져서 더 이상 콜라를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먹어 봄으로 말미암아 그 시원함을 아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이 몸 버려 세우신 교회를 내가 선택하고 내가 이끌어 가려고 하는 자만을 내려놓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이 주신 이 고귀한 선물 잘 보존 될 수 있도록 복음을 이해하기보다 순종하려고 하는 교인들의 숫자가 늘어나서 자그마한 귀퉁이에 있는 이 교회이지만 그 뿌리가 2천년 전 5순절에 임하였든 구원사적인 교회가 재현되는 귀한 은혜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단의 권세에 매여서 자신의 욕구만을 위하여 살든 우리들에게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셔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서 자신의 욕구에만 매여 있었든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되게 하시려고 자신의 생명을 값으로 치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가 창조한 자이기에 잘난 만 명보다는 죄인 된 한 명이 돌아오도록 창 타락 이후 지금 까지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도록 교회를 교회되게 하시고, 부시멘에게 콜라를 먹이듯이 우리의 삶에 그 동안에 세상의 가치와 전혀 새로운 가치의 삶을 맛보도록 교회를 전물로 주신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오늘도 이제는 복음을 설명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한번도 맛보지 못한 그 구원의 기쁨을 맛보려고 복음에 굴복하고 순종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죽어서 가야 할 그 천국을 땅에서도 맛보도록 성령의 강림으로 인한 하나님의 선물인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