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무엇이 중헌디? 우리가 누군데…
고린도전서 6: 1-8
2018년 10월 14일 주일 낮 예배
No. 388
1너희 중에 누가 다른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3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아멘
● 예수를 믿는 이유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함을 얻는 것. 불의한 자라는 말은 윤리적 개념이 아니고, 종교적인 개념 언약적 개념이다. 예수님의 재림의 날 세상은 심판을 받는데, 주심 하나님이시고 우린 부심으로 참여할 자들이라는 것. 교인들과 송사하는 자체가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는가,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늘 주일마다 있어야 됩니다. 왜냐하면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면서 언제나 세상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도 복음으로 세워 진 교회가 세상의 영향으로 늘 시끄러웠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이유는 우리를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함을 얻으려고 해야 되요. 우리가 하찮은 돈에서 자유 함을 얻고 알량한 자존심에서 자유 함을 얻으려고 그래요. 그런 자유 함을 얻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있을 때에 교회는 먹고 사는 문제의 걱정이 없는 평안이 비로서 임합니다. 그래서 개인에게는 자유요 공동체를 통한 평안을 누리며 사는 것이 신앙 생활인데, 그러지 못한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1. 교회 밖에 세상의 법정에 있는 사람에게 고소 고발 하느냐? 우리 모두는 세상을 심판할 고귀한 신분이라는 것이다. 너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에서의 칼날을 피하여 야곱이 루스 땅에서 돌 베개하고 잘 때에 사닥다리로 천사들이 밤새도록 오르락 내리락 했다.
고린도 교회도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은 6장 1절에 보면은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여기에 다른 이는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이지,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툼 돈 때문에 싸우는데 이런 말입니다.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않느냐, 여기에 구태여 라는 성경 원문에 말은 감히 이런 말입니다. 어떻게 교회에서 서로가 돈 때문에 고소 고발을 감히 할 생각을 하느냐 이런 말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돈 때문에 송사하는 문제 때문에 교회가 굉장히 시끄러웠어요. 그래서 오늘 지금 하는 말이 상상하지 못할 일이라는 거에요. 그러면서 여기에 보면은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않느냐, 이 불의한 자라는 말은 윤리적인 개념이 아니고, 종교적인 개념 언약적 개념입니다.
교회밖에 있는 세상의 법정에 있는 사람에게 고소 고발 하느냐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신앙 생활하면서 교회가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무엇이냐 이말 입니다. 여러분들 속에는 어떤 일이 상상하지 못할 일인가,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돈 때문에 고소 고발 하는 것은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왜 우리가 이런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 교회에 그런 것들이 버젓이 존재하고, 고소 고발하고도 얼굴을 빳빳이 들고 신앙 생활하는가, 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너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
교인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것이 무엇이냐, 우리 모두는 세상을 심판할 고귀한 신분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그날 세상은 심판을 받는데 그 심판대에 저와 여러분들이 주심 하나님이 계시고 부심으로 참여할 자들이라는 거에요. 심지어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은 천사들마저도 너희가 심판해야 할 사람이다. 우리가 지금 이런 것들을 잃어버린 거에요. 한국 교회가 세속화 된 것은 바로 성도의 고귀한 신분 그 신분으로 인한 자존심, 이런 것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오는 거라 말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왜 그런가 신학이 없어서 그래요.
여러분 유대인들이 보면은 선민 의식이 있고, 유대인들은 어디에 사나 참 나름대로의 어느 지역에 살든지 사회적인 위치가 높은 위치에 살아요. 왜 그런가 구약 성경을 또 보고도요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신학으로 성경을 해석을 합니다. 물론 그 가운데 잘못된 것, 그것을 교정한 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말씀인데 창세기 28장에 보면은 이런 말씀이 있지요, 에서의 칼날을 피하여 야곱이 도망을 가다 루스 땅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자요. 그럴 때에 그 자리와 하늘이 사닥다리로 연결이 되어서 천사들이 밤새도록 오르락 내리락 했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고 성경적인 팩트에요.
2.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때문에 천사들도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야곱의 얼굴을 못 봤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정사와 권세와 나라를 주어 세상을 다스릴 자다. 다니엘 시대가 바벨론 포로의 생활인데, 온 세상을 심판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식민지로 있다.
그 사실을 가지고 랍비들은 어떻게 설교 하는가 하면은 이렇게 설교해요, 야곱이 누군데 야곱의 또 다른 이름이 이스라엘이고 그들이 민족적 이름이 이스라엘 아닙니까, 우리 야곱은 어떤 자냐 하면은 왜 사닥다리가 하늘로 연결이 되어서 밤새도록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가 하면은 하나님 보좌 천상에는 온 우주 만물과 영계를 다스리는 보좌가 있는데, 청와대와 같은 자리가 있는데 그 보좌에 앉은 하나님 옆에 누가 있는가 하면은 야곱이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 보좌는 여러분들이 구약성경에 보면은 빛나고 높은 보좌를 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때문에 천사들도 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야곱의 얼굴을 못 봤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 천사들이 소망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얼굴과 야곱의 얼굴을 한번 보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라는 거에요. 저도 군대에 있을 때에 청와대에 뻗치기도 하고 이래 섰는데, 참 그때만 해도 그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지존의 자리로 영광의 자리에요. 그래서 대통령 아들을 영식이 영애 이랬다고, 둘째 딸 근령이는 참 사고를 많이 쳤습니다. 우리가 뻗치기 서가 있으면은 그 일본 차 도요다 그것 타고 휙 저녁에 도망을 가면은 비상이 걸려요. 그런데 우리 모두가 한번 뭐냐 하면은 근혜 근령이 지만이 얼굴 한번 보는 것이 굉장히 영광이고, 그들은 우리와 다른 별세계의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천사들이 야곱을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감히 천상에서는 야곱의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한 천사가 지상에 내려와서 루스 땅에 돌 베개 베고 있는 야곱의 얼굴을 본 거에요,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래서 사닥다리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서 천사 동무들에게 저기 저기 하나님의 의자에 함께 앉은 야곱의 얼굴을 보려면은 지상으로 내려와 봐라 해 가지고 밤 새도록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했다는 거에요. 이렇게 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누군데 라는 거에요. 우리가 비록 세계에 흩어져서 땅 한 평 가지지 못하는 유대인이지만은 우리는 장차 하나님과 온 세상을 심판해야 할 존귀한 신분이야, 천사들도 우리의 판단을 받아야 할 자야, 라고 설교를 하는 거에요.
그것이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에요. 여러분 이 아이덴티티는 여러분 그 어두운 그림자는 다음에 설명하더라도 다니엘서 예수님에게로 계속 계승 되어져 왔어요. 다니엘서에 보면은 여러분 다니엘 시대가 바벨론 포로의 생활인데, 정말 온 세상을 심판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그들이 심판을 해야 할 바벨론의 식민지로 있다 말입니다. 식민지로 있으면서 사람 사는 데에는 똑 같잖아요. 그 바벨론 정권에 빌붙어서 돈 몇 푼 때문에 신앙 양심 팔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통해서 환상을 통해서 7장에 뭐라는가 하면은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정사와 권세와 나라를 너희들에게 주어서 세상을 다스릴 자다, 다니엘 7장에 왜 그런 말씀을 하는가 하면은요 인자가 보좌에 앉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하는 이유는 너희들이 바벨론 살면서 빌붙어서 돈 몇 푼 때문에 신앙 양심 팔고 신앙인으로서의 자존심 잃지마 이런 말입니다.
3. 세상밖에 있는 판사에게 고소하고 고발해서 판단을 받으려고 해, 있을 수 없다, 목사의 자존심 잃지 말고, 돈 때문에 이력서 넣지 말라, 월급 얼마 더 준다고 교회 옮기지 말라. 목사로서 자존심 상할 일들이 교인들 사이에 많이 있더라도 그런 것 때문에 알량한 자존심 상하지 말라.
여러분 이런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그대로 가져 오셔서 마태복음 여러분 19장 28절에 가면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성 올라가기 전에 제자들에게 그래요, 인자가 보좌에 앉을 때 너희들이 열두 보좌에 앉아서 온 세상과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될 거다. 왜 제자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는가 하면은 우리 예수님은 장차 재림의 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온 우주 만물과 천사마저도 심판할 자입니다. 그 심판에 우리는 부심으로 참석해서 함께 심판할 자이기 때문에 돈 몇 푼 때문에 신앙적 양심을 팔지도 말고,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너희들의 자존 감도 파괴되지 말아라 이런 말씀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고린도 교회가 돈 몇 푼 때문에 교회 안에서 서로 송사를 하는 이들을 보면서 지금 이런 배경의 말씀을 가지고 너희가 누군데 그런 짓을 하느냐, 어떻게 감히 교회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 말이에요.
너희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세상을 통치할 자이고, 천사들마저도 심판할 자들인데 너희들이 세상밖에 있는 판사에게 고소하고 고발해서 판단을 받으려고 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여러분들의 가치판단이 달라져야 되요. 저도요 목사가 이렇게 되려고 할 때에 제 아버지가 저 참 돈 좋아했거든요 젊은 시절에, 제가 신학을 가면서 보따리를 싸가지고 올라갈 때에 하시는 말씀이 지금도 떠나지 안 해요. 웅아 목사는 사자다, 하이에나로 살면 안 된다, 그 말씀이 뭐냐 하면은 사자는 배가 고파도요 죽은 고기 안 먹습니다. 사자는 배가 고파도 풀을 뜯지 않습니다. 사자는 배부르면 사냥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자가 어흥 하면 초원이 조용해 집니다. 하이에나는 먹다 남은 죽은 고기 쓸어 먹는 게 하이에나 입니다. 목사의 자존심 잃지 말라는 거에요. 돈 몇 푼 때문에 이력서 넣지 말라는 거에요. 월급 얼마 더 준다고 교회 옮기지 말라는 거에요. 돈 때문에 그런 것 하지 말라는 겁니다. 목사로서 자존심 상할 일들이 교인들 사이에 많이 있더라도 그런 것 때문에 알량한 자존심 상하지 말라는 거에요.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들이 누구냐는 거에요. 오늘날 교회들 가만히 보면은 하이에나에요. 돈 몇 푼 때문에 우리가 판단해야 할 그 판사에게 고소 고발하고, 그래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떳떳한 것 같고, 그런 것을 보면서도 교인들이 어떻게 교회가 그럴 수 있느냐고 상상하지 못할 일이라고 하지 않고, 그 사람이 옳다 이야기 하고, 얼마나 우리가 성경에 멀어 져 있어요, 왜 이런가?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를 하지 안 해서 그래요.
우리 부른 찬송에도 보면은 너 성결키 위해 늘 기도하고 너 주안에 있어 늘 성경보고, 예전에 우리 어머니들 얼마 전에 여러분 돌아가신 김화옥권사님 둘째 며느리가 저에게 쓴 편지에 보면 제 어머니는 늘 일어나면은 성경을 보시고 기도하는 것, 그것이 하루의 일과였다고, 여러분 정말 우리 교회에서 별로 존재가 없었든 김화옥 권사님 연세도 많고 혼자 왔는데 뭐 사람들이 그랬겠어요, 그러나 그 모습 속에 사자의 모습이 있었든 거지요. 옛날에 우리 어머니들은 호롱불 켜 놔 놓고 성경 보면서 세상의 가치가 자기를 지배하지 않고 성경대로 살려고 했다고요. 성경이 뭐냐 여러분들에게 돈 몇 푼 때문에 신앙적 양심 팔지 말라는 거에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얼굴 붉으락 푸르락 하지 말라는 거에요.
4. 이런 자부심이 믿지 않는 자들을 비하 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해야 된다. 세상의 판사가 교회에 교인의 눈으로 보면은 보잘것없는 하찮은 자라는 것이다. 그 하찮은 자에게 네가 판단을 받을래, 돈 몇 푼 받으려고, 너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 판사에게 고소해 이런 말이다
지금 고린도교회가 성도들 안에 돈 때문에 고소 고발할 때에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고, 너희가 누군데 이럴 수 있느냐고, 이런 자부심이 믿지 않는 자들을 비하 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해야 되요. 여러분 예전에도 제가 여러분들에게 한번 이야기 했지만은 이번에도 미국에서 목회하다 온 친구하고 밥을 먹는데 내가 자기한테 한 이야기를 그대로 하더라고, 여러분 유대인들은 어디에 가도 당당하게 살고 잘 살아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유대인들은 13세가 되면은 성인식을 합니다, 회당에서 성인식을 해 주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열두 살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바로 그런 거에요.
그때부터 율법에 대한 의무를 가집니다. 신명기를 다 외워야 되요. 그런 의식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13세가 되면은 회당이 한 200-300명 모여요 보통 회당은, 회당에서 이 아이에게 거두어 주는 돈이 2억에서 3억입니다. 그것은 어느 유대인이나 그런 거에요, 제대로 된 유대교라면, 그 2-3억을 왜 거두어 주는가 하면은 우리 유대인이 누군데, 세상을 심판해야 할 자들인데, 그들에게 돈 때문에 자존심 굽히며 살아야 돼, 이것 네가 종자돈이 되어져서 세상을 지배하는 당당한 삶을 살아라, 여러분 오늘날 교회에 그런 것 있습니까, 우리가 말로만이 아니에요, 저는 목회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들이 돈 몇 푼 때문에 얼마나 우리가 울고 웃어요.
남이 하는 몇 마디 때문에 얼마나 우리가 붉으락 푸르락 합니까, 그런 것에서 자유 하라고, 어떻게 자유 하게 됩니까, 우리 아버지가 누군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신데, 여러분들에게 제가 돈에 매이지 말라고 하는 것이 그 신분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없으면 비굴 해지고, 있으면 오만 해지는 그런 삶 살지 마세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거에요.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가, 예수님이 왜 죽으시고, 왜 교회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는가를 모르니까 교회 안에서 돈 몇 푼 때문에 고소 고발하고도 떳떳한 거에요. 그 고린도 교회에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참 800억 천 억 때문에 자식 위해 교회 물려 주는 것 상상할 수 없는 일이요. 그 몇 푼 된다고, 예수 믿으면은 여러분 천억이 몇 푼 되지 않게 여겨져야 되요.
그 신분을 주려고 그 신분의 삶을 살라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거에요. 여러분 부자가 지갑에 돈 비었다고 어깨 처지겠습니까 정신 차리세요, 무엇이 상상하지 못하는 일인가, 예수 믿고도 그저 한끼 어떻게 먹고 살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되는데, 왜 교회가 존재해야 되는가, 왜 내가 12년 동안 이 고생하며 여기 와야 되는가, 여러분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왜 그게 안 되는가, 설교 이래 했는데, 자기 마음대로 생각해요. 설교마저도 자기 생각으로 판단해요. 그래서 그 다음에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를 세우느냐.
세상의 판사가 교회에 교인의 눈으로 보면은 보잘것없는 하찮은 자라는 거에요. 그 하찮은 자에게 네가 판단을 받을래, 돈 몇 푼 받으려고, 너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 판사에게 네가 고소해?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다니면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의 바탕에 있는 판사들은 존경해야 되지만은 우리가 요즘 재판부 사법부 파동 보잖아요. 얼마나 하찮은 것들이에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여러분이 부러워한다는 것은 내 속에 영이 죽어 있다는 증거에요. 저는 뭐 그 판사들 이런 것 보면서 야 정말 쓰레기구나, 그런데도 여러분 그 쓰레기 되게 하기 위해서 아이들 신앙 죽여 가면서 생명 없는 거지요.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형제간의 일을 판단 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더냐?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너희가 돈 몇 푼 때문에 고소한 것 그 자체가 이미 실패하고 패배한 거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돈 때문에 고소 고발하고도 고개 떳떳이 들고 다닌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라고. 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부끄럽게 좋게 표현해서 너희에게 수치감을 주려고 내가 하는 말이다. 왜 수치감 주려고 해요, 그들 자존심 상하게 해서 이제는 진짜 자존심이 뭔가 알도록, 우리 사자입니다. 풀 뜯어 먹으면 안 되요 배고파도, 배고프다고 죽은 고기 남이 사냥한 것 먹으면 하에나가 되어 버리는 거에요. 교회에 하이에나가 우걸 그려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이에나 짓을 하고도 떳떳하게 돌아다니니까 주님 재림의 날이 그렇게 멀지 않은 것 같아요.
여러분 부끄럽게 하려고 한다는 거에요. 목사님 모처럼 교회 왔더니만 위로 받으려고 왔더니만 그런 말씀하느냐고, 그런 자들에게 지금 이런 이야기하는 거에요. 형제적으로 고발할뿐더러 믿지 아니한 자들아. 5절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형제간의 일을 판단 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더냐? 1장에서 서로 지혜롭다고 자랑했거든요. 그래서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게바파다, 자랑 해 놔 놓고, 조그마한 송사 하나도 판단할 자가 없어서 세상 법정에 해, 지금 이런 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우리가 판단해야 되요. 왜 우리가 세상의 판단 받아야 됩니까,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여러분들이 설교에서 여러분들 판단 받아야 되요. 여러분들이 설교를 판단하는 게 아니에요. 제 설교를 가지고 이야기 할 때 내가 침묵하지요, 모르는 사람에게 이야기 해 주어 봐야 뭘 알아 듣겠어요. 지금 바울이 그런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때까지 지혜 있다 해 놔 놓고, 그것 하나 판단할 지혜가 너희 가운데 없어서, 하찮은 판사에게 고소해, 너희가 누군데 하이에나냐, 사자지, 옛날의 목사님들은요 저의 때까지 그랬어요, 목사님 사례 얼마입니다 하면 기분 나빠서 안 가려 했어요. 뭐 5백 만원 천 만원 준다고요, 내 가치가 그것밖에 안 되요, 측량할 수 없는 가치인데, 여러분들의 그 마음이 성령이 여러분들 속에 주시는 마음이에요.
참 목사님도 여러분 뒤에서 얼마나 많이 헤치려 해요, 저도 사람이거든요, 어떨 때는 화가 나서 내가 변호사에게 이렇게 이렇게 하는데 어찌할까 이러니까 목사님 곧 톡 떨어지는 명예 훼손이니까 고발하세요, 그럴 때 그 다음 말이 있습니다. 7절에 보세요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은, 너희가 돈 몇 푼 때문에 고소한 것 그 자체가 이미 실패하고 패배한 거라는 거에요. 고소해서 내가 이기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고, 고소한 그 자체가 너희에게는 이미 실패한 거라는 거에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해요,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속는 거라 해 놨는데 원문에는 차라리 강탈당하고 말아라, 차라리 사기를 당하고 말아라, 고소해서 찾으려고 하는 자체가 패배다.
6. 주님과 함께 심판 주심의 자리에 주님 앉고, 부심에 앉아서 천사들마저도 심판을 받아야 된다. 돈 때문에 울고 있는 자나 자존심 때문에 잠 못 자는 게 아니고, 큰 사람 네가 누구냐, 손해가 될 때 차라리 사기 당하라, 하나님의 복이 사자를 사자답게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되요. 돈 많고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을 중히 여기지 마세요.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데요. 곧 여러분들에게 옵니다. 저도 세상 살아 보니까 10년 20년이 그냥 지나가요. 얼마 있지 않으면 주님과 함께 그 심판 주심의 자리에 주님 앉고, 부심에 앉아서 천사들마저도 우리의 심판을 받아야 되요. 여러분 이 창세기 28장에 그 말씀을 가지고 유대에게 했는데 바벨론 포로 생활 하면서 얼마나 비굴한 놈 많겠어요, 미스터 선샤인 봐서 아시겠지만, 이완익이 같은 자에게 하는 이야기에요. 다니엘 선지자의 환상을 통해서 네가 누군데, 일본 놈 밑에서 일해, 자존심이 있지.
우리 교회에 여러분들이 사자가 되어야 되요. 하이에나가 되지 마세요. 우리 교회에 여러분 앞으로의 자녀들은 사자가 되도록 키워야 되요. 돈 몇 푼 때문에 울고 있는 자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잠 못 자는 그런 것이 아니고, 좀 큰 사람으로, 그러면 누구에요, 네가 누구냐는 거에요. 손해 볼 일이 있을 때 차라리 사기 당하고 말지, 저는 이때까지 그래 왔든 것 같아요. 그래서 제돈 많이 떼였어요. 모욕을 당하고 조롱 거리가 되어도 명예 훼손 고소해 본적 없어요. 왜 사자이기 때문에, 제 선친의 평생의 노하우로 저에게 하신 말씀 아니겠어요, 웅아 이제 너는 사자인데 하이에나가 되어서는 안 돼, 세상이 왜 어지러운가, 사자인 그리스도인들이 어흥 하지 아니하고, 전부 하이에나가 되어 가지고, 끽끽끽끽 하고 돌아다니는 거에요. 그래 이 세상이 엉망진창이지요.
그런데도 그런 하이에나들을 보면서도 감히 상상할 수 없구나 생각 안 해요. 그 사람이 억울해서 그렇데, 하나님보다 더 의롭고 하나님보다 지가 하나님 위에 있는 사람이에요. 한 영혼이 천하보다도 귀하데, 그런 말 아니에요. 그런 죄악은 누룩을 제거하라 그래요. 우리 교회의 여러분들이 저는 여러분들에게 정말 헌금을 하는 여러분들의 눈물과 땀이 보이지만은 하는 여러분들은 몇 푼 때문에 손 부들부들 떨지 않는 사자가 되어야 되요.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유대교보다 못해서 되겠어요. 사자 새끼들을 하이에나와 같이 되도록 방치하지 말자고요. 나는 그래 살았더라도, 여러분들의 자녀가 이 교회에 다녀야 할 이유가 그것이에요.
여러분들의 그 수고와 여러분들의 그것이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사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종자돈이 되고, 씨앗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그들이 오늘 나의 나 됨이 회당의 은혜다, 하나님의 은혜다가 교회의 은혜이구나, 그래서 교회에 빚진 자가 되어져서 자기도 그 다음 세대에 자녀들이 성인식 할 때 하이에나로 살지 못하도록 사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종자돈 주어야지요. 우리는 그것 모르고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복 주어서 세계의 경제를 쥐고 흔들어만 이야기한다고. 하나님의 복이 뭔데요, 사자를 사자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이 하나님의 복이에요. 유대인들의 문제는 자기들만 그런 것인 줄 알아요.
7.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영광의 보좌를 모르는 것이다. 돈 몇 푼 때문에 신앙 양심 팔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사람 만들어 내는 게 교회다, 그것 하라고 교회 선물로 준 것이다, 그 사명 하지 못하면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참 제 아버지 시대에 합동측에 정치1번지 장로 있었어요, 쥐고 흔드는 목사 밑의 오른팔 하면서 대학의 이사장 뭐하고 다 하다가 제 선친이 계획에서 이기니까 오더래요, 당신은 저편인데 왜 왔나 이러니까 나는 이기는 자의 편이지 그 사람 편이냐는 거에요, 그게 하이에나에요. 여러분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어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하잖아요. 죽기밖에 더하겠느냐고, 그 마음 없으면 절대로 예수님 못 따라 갑니다. 사자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순간 하이에나 됩니다. 왜 죽음을 두려워해요,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거에요. 죽음 이후의 영광의 보좌를 모르는 거에요. 십 월 십일 날 우리 윤성복 집사님 일주기였는데 거기 가서 내가 설교한 내용이 그거에요. 윤성복 집사님 죽은 것 아니다.
내가 여행한 중에 제일 아름다운 곳이 뉴질랜드 남섬 이더라고, 그보다도 더 좋은 곳에서 그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고 있는 거야, 곧 만나게 되어져, 엄마가 좋은 곳에서 여행하고 있는데 여기 앉아서 울고 있으면 웃기는 것 아니겠니, 옛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런 여유가 그런 멋이 있었어요. 80년대 돈 조금 대한민국이 만지면서 교회가 조금 재정적인 여유가 있으면서 전부 하이에나로 변하더라고. 교회가 800억 가지고 있으면 그게 몇 푼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데, 가난해도 비굴하지 마시고요, 있다고 오만하지 말고, 우리 모두는 사자 입니다. 우리 자식들을 사자 새끼 되도록, 하이에나가 되지 않도록 교회를 선물로 주신 겁니다.
교회가 판사 검사 만들어 내는 게 아니고요, 돈 몇 푼 때문에 휘둘리지 않는 판사 검사 만들어 내는 것이고요, 돈 몇 푼 때문에 사람 생명 하찮게 여기는 의사 안 만들어 내는 것이고요, 돈 몇 푼 때문에 신앙 양심 팔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사람 만들어 내는 게 교회에요. 그것 하라고 교회 선물로 준 겁니다. 그 사명 하지 못하면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엇이 중한데, 내가 누군데 기도 좀 하세요, 성경 좀 제대로 보세요, 저도 미래가 걱정이 되어지고, 저도 한 소리 들으면은 속에서 울컥 불컥 할 때에 내가 하는 말이에요. 무엇이 중한데, 나하고 운동 해본 사람들 있지요, 저는 국가 유공자가 되어서 2만원만 내면 골프 칠 수 있는데 이기려고 그러면 내가 뭐라고 그래요, 그것 잘 해서 뭐 하려고, 그것 이겨서 뭐 하려고 무엇이 중한디, 어디 가서 이런 소리 들어요 교회 와서 들어야지요.
교회가 세상에 물어뜯고 찢고 핥는 하이에나가 가득한 세상에 사자 한 마리쯤 풀어 놔야 안 되겠어요. 12년 목회 하면서 그래도 설교 말씀 가지고 말씀 나누고 기도하는 분들 보면은 사자로 점점 변해 가더라고, 12년 동안 자기 생각으로 설교를 듣는 사람은 안 변해요. ♬손에 있는 부귀영화. 아멘
◈봉헌 기도◈
천사도 흠모 할만한 존귀한 직분을 주었는데 돈 몇 푼 때문에 신앙의 양심을 팔고,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고소 고발하고 하이에나로 변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다시 우리를 우리가 어흥 소리 한번 하면은 초원이 잠잠 해지는 사자를 만들기 위해서 그 중한 고난을 졌는데도 이 복음도 알지 못하고, 더 많은 수확 더 많은 착취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하는 썩은 제물만 드리는 이 땅의 교회에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를 주셔서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누군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심을 감사 합니다. 어제까지 돈 몇 푼 때문에 울고 웃고 신앙 양심을 팔았다면 오늘 이후로는 사자의 존엄을 회복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신분만 변화된 것이 아니라, 신분에 걸 맞는 환경을 위해서 성령을 보내어 주시고, 교회를 선물로 주심을 감사 합니다.
생명 잃은 종교가 회당이요 유대교라고 이야기하면서 회당과 유대교보다도 못하기에 사자를 길러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의 수고와 나의 헌신이 육신의 자녀에게 사자로 길러 가지 못하도록 내 자녀가 뿌리를 박지 못하는데도 슬퍼할 줄도 모르고 당당한 얼굴로 신앙 생활하는데 수치를 알도록 주신 말씀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이 드린 예물이 사자 새끼를 길러 나가는 유대교 회당 보다는 더 큰 사자의 존엄을 지켜 나갈 수 있는데 씨앗이 되도록 우리 성도들의 믿음 주시고, 당회의 책임감 주시고, 부족한 종에게 지혜 주시옵소서. 내가 고소 고발하는 것은 이미 패배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차라리 사기를 당하고 차라리 강탈 당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바울의 이 음성이 우리의 심장 폐부를 찌르는 시간이 되도록 성령님 종의 모습 속에 있는 인성 감추어 주시고, 주님의 영광의 광채만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명하여 불러서 온 세상이 조용하도록 사자로 변모시켜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돈 몇 푼 때문에 울고 웃는 고귀한 신분의 자녀들을 하나님과 함께 천사마저도 심판해야 할 존귀한 자임을 알도록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들어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지금도 하나님 보좌에서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며 우편 자리를 비워 놓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이 고귀한 신분임을 알게 하여 주시고, 하이에나와 같이 이익이 된다면은 양심마저 저버리는 그러한 비열한 짓을 하지 않도록 자녀로서 고귀한 신분의 자존심을 더하여 주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내가 누군데 무엇이 중한데 하이에나가 아니고, 사자가 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이 사자의 품위를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존귀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선물로 주신 몸 된 교회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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