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그리스도 안의 자유
고린도전서 6: 12
2018년 10월 28일 주일 낮 예배
No. 390
12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나도 무슨 일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지배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라고 하시면서 오다. 주시다. 들어가다. 받다. 라는 동사를 사용하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의로움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의 삶을 의미한다, 의존하는 삶을 말한다.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하면서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 말씀이 마음에 새겨 져 있어야 되요. 그래서 삶의 가치판단에서나 선택에서 이 말씀의 영향을 받아야 됩니다. 왜냐하면은 예수 믿고 얻은 구원은 개인에게는 참 자유 함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야 난 참 이런 자유를 모르고 살았구나, 이런 감탄이 여러분들 속에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들은 먹고 사는 일에 참 편안 해져야 되요. 그러려면은 뭐해야 되는가 하면은 여러분들이 모든 것에서 자유 하게 되어지고, 평안은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공동체가 세워 질 때 참 평안 합니다. 개인의 생각으로 편안 해지는 것은 관념적 종교로 잘못 만드는 겁니다.
1. 종교적인 개혁이 예수님에 의해서 유대교의 억압을 당하는 유대인들에게 모든 인간에게 자유를 가져다 준다. 공동체를 통해서 평안을 가져다 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다. 바울은 예수를 믿는 자들은 모든 것이 허락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가하나 허락 맞다 이렇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교리도 아니고요, 우리의 삶의 실존이에요, 예수님이 개인에게는 자유를 주셨고, 또 공동체를 통해서 평안을 가져다 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입니다. 왜 우리에게 이런 구원을 주었는가, 우리가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인들이 사는 세상에는 무엇이 일어나는가 하면은 억압이 일어나요, 그래서 우리가 고통스러운 겁니다. 그 억압에는 대충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정치적인 억압이에요. 힘을 가지고 있는 자가 힘을 가지지 못한 자의 자유를 빼앗아요. 그런 것을 정치적인 자유라고 그래요. 그 정치적인 자유는 힘있는 자에게 힘이 없기 때문에 참고 견딥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못 참게 되면은 들고 일어나요, 없는 사람들끼리, 그게 혁명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분 있었지요, 그리고 경제적인 억압이 있습니다.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를 가지고 사람에게 목줄을 걸어서 억압을 합니다. 그것도 목이 포도청이기 때문에 어쨌든 간에 좀 얻어먹을까 싶어서 참고 살다가 이래 살아 가지고는 도저히 안 되겠다 하면은 폭발합니다. 그게 이제 노조를 만드는 것이고, 파업이고 이래서 자기 몫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힘든 것은 종교적인 억압입니다. 이 종교적인 억압에는 사람들이요 그 억압을 당연시 여깁니다. 우리가 대표적으로 보는 것이 지금 피지에서 얼마나 정말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거기에서 헤어날 생각을 안 합니다. 운명 주의에 빠져 버립니다. 그것이 구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것이 그런 이단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에 있었고, 전통적인 교회 안에도 참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에 한번 있었지요, 종교개혁 종교개혁은 한마디로 말하면은 종교적인 억압에서 자유 함을 얻는 겁니다. 그 종교적인 개혁이 예수님에 의해서 유대교의 억압을 당하는 유대인들에게 모든 인간에게 자유를 가져다 준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했는데 현미경을 가지고 오늘날 한국 교회의 교인들을 가만히 보면은 자유 함 보다는 오히려 종교적을 얽어 매여서 사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와서 다른 것 얻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참 자유 얻은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되요.
우리 교회 다니면서 신앙 생활 하는 사람들 가운데 예전에는 그렇게 내가 얽어 매여서 살았는데 자유 한 것에 대한 기쁨이 넘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에 대해서 오해를 하는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로 그런 오해를 했고, 또 오늘 우리 교회에도 이 자유에 대해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어요. 고린도 교회는 어떤 오해를 했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자기들에게는 모든 것이 허락이 된다, 그 말이 오늘 12장 12절에 나오는 모든 것이 가하나 이 말은 나에게 모든 것이 허락이 된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자는 여기 헬라 사상에서 온 자유입니다.
또 그리고 그리스도파들의 생각인데 허락이 된다는 말도 있지만은 나는 모든 것에 할 수 있다. 또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은 모든 것이 합법적이다 이런 말입니다. 이게 고린도 교회의 그리스도파의 생각입니다. 이것은 지난 주일 제가 여러분들 헬라사상이 복음을 왜곡한 것이다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울은 일단 그들이 예수를 믿는 자들은 모든 것이 허락 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가하나 허락 맞다 이렇게 말을 해줍니다.
2. 다음 두 가지 논평을 한다, 다 유익한 것이 아니다, 교회에 다녀도 술 먹어도 된다, 그런데 유익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유를 누려야 된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 나와 다른 사람에게 교회에 공동체의 유익이 되지 않는 것은 안 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 다음에 뭐냐 하면은 두 가지 논평을 합니다.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다 유익한 것이 아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것을 가슴에 새겨야 된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다녀도 술 먹어도 되요 자유에요, 그런데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아셔야 되요. 여러분들이 담배 피워도 되요, 그러나 그것이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여러분들이 고린도 교회에는 좀 자꾸 입에 담기는 뭐하지만은 계모를 범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든 거에요. 그것을 구원의 증거라 했어요, 잘못된 자유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찬식을 하기 전에, 있는 사람들이 음식을 싸 와서 진탕 먹고 술이 취해서 성찬식에 참여했습니다.
노예들, 없는 사람들은 배가 쫄쫄 굶어 가지고 그렇게 참여합니다, 그래도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에요. 왜 그렇지 않는가 하는 것을 오늘 여러분들이 깨달아서 언제나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에 얻은 자유에 대해서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유를 누려야 됩니다. 그게 그리스도 안의 자유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이 유익이라는 것이 뭔가, 고 뒤에 고린도전서 8장1절을 한번 보세요. 1절에 보면은 나중에 또 이런 부분에 대해서 8장에서 더 자세히 말씀 드리겠지만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느니라.
여러분 요 말씀 그 때가서 자세히 말 하겠지만은 교만하게 한다는 것은 풍선에 바람을 넣어서 부풀게 한다는 거에요. 그리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할 때에 이 덕을 세운다는 것은 빌딩 교회를 세운다 이런 말입니다. 성경을 천 독하고 교리를 잘 알고 신학을 하는 것은 간 에 바람만 넣는 것이고, 사랑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유익한 것은 뭐냐 하면은 여러분들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은 어떤 생각을 해야 되는가 하면은 첫째는 나에게 유익해야 됩니다. 그리고 나에게 유익한 것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유익해야 되요. 그리고 공동체에도 유익해야 됩니다. 그런 자유를 가져야 되요.
여러분 술 취하고 담배 피우는 것 나에게 유익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못하는 게 아니에요 안 하지요, 술 내가 못 취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안 해요. 주일날 놀러 가는 것 나 할 수 있어요 예배 안 드리고, 그러나 안 해요. 자꾸 그것을 못한다고 하니까 문제에요. 안 하게 되는 것이 왜 안 하게 되는가, 그것 복음을 아는 거에요. 일단은 여러분들이 그것 알기 전에 무엇을 해야 되는가 하면은 나는 예수 믿고 이제는 못한다 소리 하지 마세요 다해요, 그런데 안 해요. 왜 나에게 유익이 안 되기 때문에, 또 나에게 유익이 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것은 안 해요. 그리고 교회에 공동체의 유익이 되지 않는 것은 안 해요. 이런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지요.
3. 성숙되면은 다니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도록,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덕을 세운다는 고린도전서 이 말씀은 빌딩 교회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어린 사람들은요 자기한테 유익만 하면 되는 거에요. 교회에도 보면은 자기한테 유익이 된다고,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유치원 생이요. 성숙되면은 내가 이 말을 하면은 나는 괜찮은데 상대방은 어떨까, 내가 이말 하면은 교회를 세워 나가는 것인가 교회를 허무는 것인가, 이 생각하는 거에요.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자유 주셨는데 무슨 말인들 못하겠어요, 산 짐승이 어디든지 못 다닐 데가 어디 있어요. 점점 성숙되면은 여러분들이 다니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도록, 오늘 그 생각하면서 신앙 생활 해야 되요. 그래야 우리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서 여러분들에게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거에요.
지금 우리 교회에는 여러분들에게 저는 자유를 많이 주어요, 그런데 지금 제일 안타까운 것이 여러분들에게 평안을 못 주는 거에요, 왜 공동체가 부유하지 못하기 때문에요. 공동체가 부유해서 우리 손민성 집사가 신장 이식해도 교회 생각하면 걱정이 없어야 되어져요. 그게 왜 안 되요, 여러분들이 유익에 대한 자유를 생각하지 안 했기 때문이에요. 자기에게만 유익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헌금 생활이나 모든 삶에서. 저는 목사로서 여러분들에게 우리 교회가 가난 한 것을 자랑해요.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의 교인들의 삶이 부유한 것이 좋지요 뭐, 교회가 부자인 것이 뭐 그래 중요해요. 교회가 능력 안 되면 안 하면 되지 뭐.
오늘도 여러분 이제는 여러분들 속에 이제 성숙 되어져서 특히 우리 장로님들 권사님들 교회의 중직 자들은 어느 것이 교회에 유익한 것인가, 이 생각이 집사들보다는 좀 많아야 되요. 지금 바울이 하는 말이 그런 말이에요. 그래야지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참 이제 자유 하게 되어지고,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요. 이제 여러분들 속에 평안 까지도 누릴 수 있는 그런 신앙 생활로 나아가야 되지 않겠어요. 두 번째로 바울이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그 뒤에 한번 더 봅시다, 10장에 23절 한번 더 보면 고린도전서 10장 23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유익한 것은 아니라.
그러면서 덕을 세운다는 말을 자꾸만 남에게 좋은 일 한다는 게 아니라 덕을 세운다는 이 고린도전서 이 말씀은 빌딩 교회를 세우는 것을 말해요. 여러분들이 이제는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에도 이게 교회에 유익한가,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한가, 이 관점에서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되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래 말씀하셨잖아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자유가 여러분들에게 주신 자유, 우리 교회에서 제가 목회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주었든 그 자유가 정말 유익이 되어져서 자기를 헤치거나 타인을 헤치거나 교회를 허물지 아니하고 세워져서 정말 교회 때문에 여러분들 삶의 평안이 넘치는 그런 신나는 신앙 생활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지배 받지 않으리라, 술에 지배 받는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가, 예수님이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들어 준 고귀한 자유 의지는 그런 것이라는 것이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지만은 행함은 여러분들이 해야 된다 했잖아요. 그래야 그런 교회되고, 예수님의 구원을 맛보게 됩니다. 그 동안에 우리 교회가 서서히 자유 하면서도 평안이 좀 넘치는 것은 예전보다 내 얼굴이 참 많이 편안 해졌잖아요, 그만큼 된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들이 조금씩 조금씩 성숙되었다는 거에요. 그 성숙되었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이제는 좀 유익한 생각을 한다고, 우리 육신적으로도 그렇잖아요, 어릴 때에는 지만 생각해, 자기에게 유익만 되면 되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고 철 들어갈수록 가정에 유익이 되는 것을 선택하잖아요. 이런 성숙이 어찌 일어나는가, 오늘 우리 김은규 집사가 기도하면서 기도한 것이나 내가 설교할 때 한대로 설교를요 듣고 싶은 것 들으려 하지 마세요. 들어야 할 말 들어야 되요.
두 번째로 바울은 그 뒤에 우리 다시 한번 6장으로 와서 12절 암송해야 되니까 한번 더 같이 읽어 봅니다 시작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모든 것이 내가 허락되고 내가 하는 일은 모든 것이 합당해요. 바울 그것 인정해요 예수 믿고, 다른 말로 하면 지금 하는 말씀이 술 먹어도 돼, 담배 피울 수 있어, 주일날 놀러 갈 수 있어, 돈 마음대로 쓸 수 있어, 그러나 그 다음에 뭐라고요, 유익한 것이 아니다 그 다음에 뭐냐 하면은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이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지배 받지 않으리라 이런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자 되기를 바라잖아요, 그 부자 되기 바라는 것은 부자 되지 말라는 게 아니고요,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되는 순간 돈에 얽매이고 돈에 지배 받는 자가 된다고요. 예수를 믿으면은 어떤 것에서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가 있어야지요. 그러려면은 하나님에게 매여야 되요. 부자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돈의 지배를 받는 거에요. 이런 것 아셔야 되요. 어떤 사람은 자존심 굉장히 강하잖아요, 그 사람은 자기 명예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에게 지배를 받으면은요 자기 명예는 별로 중요하지 안 해요. 교회에 다니면은 오만 이야기 다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제 묘비에 뭐라 적어라 했어요, 교회와 교인의 걸레와 때가 된 목사라고 적어라 했잖아요. ㅎ ㅎ
저를 아무리 씹어도 인간적으로는 좀 그렇지만은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은 하나님에게 매이면은 지 입만 더러워지지 이래요. 그래야 교회가 덕이 되는 거에요. 여러분 다른 사람이 여러분들에 대해서 평가하고 말하는 것 그것 어떻게 막을 거에요. 찢어진 입이라고 자기가 말하는데 그것 가지고 영향 안 받으면 되는 거에요. 안 받으려면은 내가 내 명예의 너무 지배 받지 말아요. 그런 말을 우리는 옛날에 어른들은 그냥 하나님이 알면 되지 이랬다고요. 요즘은 이런 게 전혀 없어, 여러분 이 말씀은 죽은 글이 아니에요, 오늘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삶의 모습을 말하는 거에요 성경은, 시대를 초월해서. 여러분 술 취하는 것, 우리 서상율 집사 어제 재미있었어요, 식당 갔다 온 것, 이제 술에 지배 받지마 ㅎ ㅎ ㅎ 하나님께 지배를 받아.
그 술에 지배 받는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해요. 여러분들이 뭐 이런 것 할 때에 담배 한대 피우는 것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해요, 그런데 내가 이것에 지배를 받는 내 자신을 비참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되요, 자존심은 그런 거에요. 예수님이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들어 준 고귀한 자유 의지는 그런 것이라 이 말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서 나쁜 버릇에 사로잡혀서 살면서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다 이랬든 거에요. 그러니까 바울이 하는 이야기가 그것은 자유가 아니고 네가 그것에 노예가 된 것이고, 그것에 지배 받는 거야. 나는 그런 것에 지배 안 받아, 어찌해야 안 받는가, 하나님께 매여야 되요.
5. 하나님은 왜 우리를 불렀는가 하면 자유를 위해서,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악을 가리는데 쓰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과,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위배되는 일 안 한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도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 우리가 하나님은 왜 우리를 불렀는가 하면 자유를 위해서,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무서워서 하는 게 아니에요. 부모가 자식에게 종 노릇 하는 게 사랑으로 하는 게 부모이고 성숙된 자이기 때문이잖아요. 이런 성숙이 있어야 되요. 그러려면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아는데 바르게 하나님 알아야 되요. 너희는 베드로전서에도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데 쓰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는 거에요 뭐 악 가리는데 그런데 써, 그것은 하나님께 맡겨 놓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내 지옥 갈 요량하고 이것은 고쳐야 돼, 이런 짓 하지 말고, 종 노릇 하라는 거에요, 그런데 쓰라는 거에요. 이러면 교회 세워 지겠어요 안 세워 지겠어요 세워 지지요.
교회가 든든히 세워졌을 때 목사인 나는 내 명성, 내 이름에 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매이게 하면은 교회를 통해서 좋은 일 하려 안 해요. 교인들 편안하게 하려고 하지요. ㅎ ㅎ 여러분 오늘날까지 우리 교회가 쭉 가는 방향이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에요. 우리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데요,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할 때에도 제가 1권 “인간이 만든 신 인간을 만든 하나님” 해 놨잖아요. 참 못된 것들은 돌의 역학이라고 거기에도 써 놨지만 유명한 말이 있어요, 신은 하나님은 들 수 없는 돌을 만들 수 있을까, 없으면은 전능하지 안잖아요. 또 만들어 놔 놓으면 그것을 못 더니까 그 신은 또 전능하지 안잖아요. 요렇게 나쁜 놈들 많아요.
또 하나님은 영화로도 나왔지만 과거에 일어난 일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이 할 수 있을까, 우리 교인들이 하나님이 선악과 왜 만들고, 왜 악을 만들고 전부 이런 것들은 바로 이런 허접한 이야기들이에요. 그 후에 대한 답은 하나님은 자기의 성품에 위배되는 것 안 해요. 하나님은 합리적이고 논리 적이기 때문에 논리에 위배되는 일 안 해요. 그런데 오늘날 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을 폭군으로 만들려고 그래요 자꾸, 자기만을 위한 폭군, 그래서 내한테 잘못한다면 다 죽여야 되고, ㅎ ㅎ ㅎ 나한테 잘한 사람은 복 주어야 되고, 그건 전부 뭐 목사님들이나 유대의 랍비들이 만든 이야기지요.
우리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에 위배되는 짓 안 해요.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왕도 그렇잖아요, 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왕은 폭군이잖아요. 그래서 왕은 무치라고 그런다고, 그 말은 뭡니까 지존 자라는 말이거든요, 왕에게는 수치가 없어요. 어떤 짓을 해도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니에요. 그것에 지배를 받는 자는 자기의 욕망의 지배를 받는 것이고, 유익을 모르는 자유를 가지고 있는 자가 폭군이에요. 왕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백성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안 하는 왕이 선한 왕이에요. 왕은 법 위에 존재하지만 법에 매여 있는 왕이 좋은 왕이에요. 그런 왕이 세종대왕 같은 사람이지요.
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물 붓듯이 부어 와야지 남의 평가에 신경 안 쓰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이 자기의 생명을 내어 주셨다, 그 생명이 오늘까지 나를 존재하게 했다, 예수님 안에서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 나에게 매인 것에서 자유를 누려야 된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왕 적 신분을 가지고 연산군 같은 왕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목사님들 중에서도 얼마나 많아요. 여러분들도 전부 그러고 싶잖아요. 하나님 나 이 돈 주면은 내가 이렇게 선한 일 할 것인데 자기 합리화지요. 하나님 보니까 아직 너 멀었어, ㅎ ㅎ ㅎ 아직 돈에 매여 있어 이러거든요, 참 내 호주머니에 얼마 들어 있는가 생각 안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자유로운 사람이에요, 남의 평가에 신경 안 쓰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그러려면은 뭐해야 되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물 붓듯이 부어 와야지요, 어떻게 부어 오는가, 오늘 3강 때 이야기할 거에요.
여러분들 제가 한말 또 하는 것 쉬운 거에요. 어릴 때에는 왜 우리 부모는 나에게 나이키 안 사 줘, 노스페이스 왜 안 사 줘, 왜 스마트폰 최신형 안 사 줘, 전부 자기 중심에서, 그러다가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이시고, 나를 존재하게 하시고, 나 때문에 자기 먹을 것 안 먹고, 자기 입을 것 안 입고, 그래 살았든 부모 알게 되면은 스마트폰 바꿔 줄까, 엄마 괜찮아, 나 그것 없어도 돼, 친구한테 기 안 죽겠니, 우리 엄마가 이건데 내가 왜 기죽어, 그런 철이 들잖아요. 영적인 철도 그렇게 들어야지요. 없다고 기죽고, 있으면 거들먹거리고, 교회에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많아요. 자기보다 작은 교회에 목사 만나면은 무시하고, 큰 교회 만나면은 기죽고, 전부 유치원 생 정도에요.
여러분 이제 자유 하세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자기의 생명을 내어 주셨어요. 그 생명이 오늘까지 나를 존재하게 했어요. 미래에 대한 걱정 나에게 매인 것에서 자유 하세요.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ㅎ ㅎ ㅎ 그래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이름만 쉼과 회복이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에게 정말 목사가 주는 게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또 여러분들이 돈에 매여 가지고 할 헌금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에게 매여 가지고 봉사 못하는 자 없어서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서 여러분들에게 선언합니다. 내 다음 목사도요 절대로 목표 지향적인 사람은 제가 목숨 걸고 안 받을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을 이용해요. 교회의 부유함이 좋은 과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을 행복하게 하는 겁니다.
나는 끊임없이 여러분들에게 자유를 주었다면은 다음 세대는 여러분들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그런 교회 세워져서 정말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이 찬양이 절로 나올 수 있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더 많은 복을 받으려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돈에 매이게 하는 헌금이고, 하나님 때문에 자유를 얻어서 자신의 능력에 맞는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고, 타인에게도 유익이 되고, 교회에도 유익이 되는 헌금은 주님이 열납 하는 헌금임을 믿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더 성숙 되어져서 이제는 11조를 드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얼마를 드려야 되나, 이런 고민이 아니고, 자기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는 하나님께 매인 자 된 헌금 드려서 교회가 평안 하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중보 기도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배부르게 하고 더웁게 해 줌으로 말미암아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그런 평안을 맛보다가 주님 재림 맞이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자신과 자신의 욕망과 부질없는 자신의 명예에 매여서 지배해야 할 물질에 매여서 허덕이는 우리들에게 참된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나를 존재하게 하시고, 존재하게 하셨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도 아깝게 여기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친히 계시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마지막 남은 피한 방울 살점 찢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창조한 자이기에 완악한 자 돌아 오도록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지금도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하나님의 성품에 매이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정결함 되어져서 자신을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함을 얻은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에게 하늘의 평안,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는 평안을 주시기 위하여 선물로 주신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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