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형제보다 존귀한 자
역대상 4: 9-10
2018년 11월 25일 주일 낮 예배
No. 394
9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아멘
○세례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과 같다. 부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의 야베스의 기도가 한국 교회의 공전의 히트를 쳤다. 야베스는 형제보다 존귀한 자다, 사사시대에 자기 소견대로 살았지만, 야베스 만큼은 그래 안 살았다, 자기의 지경을 넓히는 기도했다.
기독교의 제일 중요한 예식이 세례입니다. 침례교에서는 침례를 주는데 세례냐 침례냐 이런 논쟁은 종교인들의 기득권에 의한 논쟁이지, 중요한 것은 세례를 받았든 침례를 받았든 그 사람이 얼마나 가치관이 변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례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을 취득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으며 백성다운 삶을 사는 것이 세례를 유효하게 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이야기를 하면은 세례를 받고 나면은 노는 물이 달라야 됩니다. 옛날에 세상에 살든 가치관 다 벗어 버리고, 종교적인 선입견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자아의 의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됩니다. 그래야 종교인이 아니라 진정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1. 야베스의 기도는 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를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진리를 판단할 때에 속성적인 면에서 판단을 해야 된다. 진리의 속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유익성이다.
우리 한국 교회는 종교인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하고, 교회가 세상의 한줄기의 빛이 되지를 못합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본문 야베스의 기도라고 유명한 본문인데요, 제가 인터넷에는 내 이름이 나오나 싶어서 다음에 제가 이름을 쳐 보니까 김종웅 목사라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들어가 봤더니만 내가 2013년도 3월 3일 3.1절 기념 예배에 한 설교가 야베스의 기도인데 이 기도문이 그대로 있더라고요, 교회와 목사님은 내가 아니고 우리 교회가 아니에요, 아마 내가 생각할 때에 우리 교회의 설교를 2011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차주희 권사님이 토시 하나 틀리지 아니하고 녹취해서 올립니다.
아마 그것을 다운 받아서 자기 교회의 홈페이지에 올려 놓고 교인들에게 보게 했든 것 같아요. 그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여러분들과 세례의 의미를 되살리려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목회를 하면서 제일 힘든 것이 뭐냐 하면은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선입견과 싸우는 겁니다. 그저 자기가 그 동안 보고 믿어 왔든 것이 진리라고 생각을 해서 진짜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도 보면은 과거의 관습과 전통을 버리지 못하고 교회 생활 하다가 떠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 분이 있을 때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정말 떠난 분들이 내가 보고 있는 이 복음이 옳다는 것이 열매가 맺어 지고 증명이 되어져서 정말 나중에 후회하고 땅을 치도록 해야 되겠다.
그 결심이 12년을 저를 버티고 이곳까지 오게 했다는 것도 여러분들이 좀 알았으면 합니다. 이 야베스의 기도가 그 동안에 교인들은 목사님들에게 이런 설교를 많이 들었고, 또 부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의 야베스의 기도가 한국 교회의 공전의 히트[hit]를 쳤습니다. 왜 그랬는가 인간의 구미에 너무나 딱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그 내용이 뭐냐 하면은 야베스는 형제들보다 귀중한 자다, 존귀한 자다, 그래 여러분들이 야베스와 같이 형제들 가운데 존귀한 자가 되려면은 야베스와 같은 기도를 해야 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 야베스의 기도는 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를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를 했는데, 여러분들은 나에게 복을 주시려거든 내 지역을 넓혀서 내가 큰 사람이 되어 지고 하나님의 손이 나를 도우사 환난과 근심을 면하게 해 달라고 기도 하라고, 그렇게 되도록 환난과 근심이 있을 때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그가 허락하는 것을 허락하였듯이 여러분들에게도 그러한 기도를 허락 할 것이다.
그러면서 부루스 윌킨슨[Bruce Wilkinson]은 제가 지난번 설교에는 그 내용을 여러분들에게 자세히 말했는데 정말 기도를 안 해서 환난과 근심이 있는 것이지, 기도를 하면 다 면한다고,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그런 것으로 기도를 착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이 맞느냐 이 말씀이 맞느냐 성경을 동일한 성경을 보면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할 때에 우리는 어느 것이 맞느냐는 알지 못하지만은 우리는 어느 것이 진리의 속성의 합당한가 하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언제나 진리를 판단할 때에 속성적인 면에서 판단을 해야 됩니다. 진리의 속성 가운데 제가 판단하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유익성입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이 왜 이래야 되는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자각하도록 느헤미야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기록을 한다, 그게 역대기이다. 야베스에게는 주석이 달린다, 형제들보다 존귀하고, 주님께 기도해서 복을 주시려거든 나를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게 하소서.
앞에 기도하면은 하나님의 손이 나를 도우사 나를 환난과 근심을 면하게 한다는 것은 자기에게 굉장히 유익한 거에요. 그러면 거기에는 타인의 유익과 공동체의 유익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설교하는 설교를 여러분들이 들어 보면은 이 본문은 나에게도 유익이 되고, 타인에게도 유익이 되고, 공동체의 유익이 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제가하는 설교가 진리다 이 말입니다. 먼저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정확하게 이해 하려면은 역대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됩니다. 역대기는 에스라가 기록을 하였습니다. 언제 기록을 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포로 생활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서.
그래서 그들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는 세월이 꽤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도무지 하나님의 백성다운 정체성은 없이 여전히 그때까지만 해도 페르시아의 식민지와 헬라의 식민지와 로마의 식민지를 앞으로 쭉 받게 됩니다. 왜 우리 민족이 이래야 되는가, 하나님의 백성이 왜 이래야 되는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자각하도록 느헤미야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기록을 합니다. 그게 역대기 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기록을 할 때에 누구를 중심으로 하는가 하면은 열두 지파 가운데 다윗의 열두 아들을 중심으로 해서 기록을 합니다. 이 열두 지파가 각각 남이 아니고, 한 뿌리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가운데 유다지파 다윗왕조를 중심으로 해서 역사를 새롭게 재편합니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성경이 있는 시대나 여러분들이 언제나 남의 지배를 오래 받다 보면은 식민지 근성이라는 게 생깁니다. 우리나라도 제가 이래 볼 때에 제일 큰 문제가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기 위해서 우리 민족에게 심어 놓은 식민지 근성이 제일 큰 문제라고 봐요. 여러분들이 지금도 신문지상에 일어난 여러 뉴스를 볼 때마다 이것이 어디에서 뿌리를 두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볼 줄 알아야 된다고요. 저는 우리나라의 이런 것 보면은 식민지 근성이 일본에 뭡니까, 우리는 조샌징 조져야 말 듣는 민족이라는 생각과, 언제나 우리는 우리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에 붙어 살아야 되는 사대주의 사상과, 그리고 모든 것을 우리의 탓으로 돌리게 하는 식민지 근성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뉴스를 보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홀대 받는 외교나, 미국의 부통령하고 만날 때에 30분이나 기다리면서 있어야 하는 그것을 볼 때에 많은 사람들의 정치가의 논쟁이 대통령이 저런 비굴한 외교를 한다고 이래요. 다 우리 탓으로 돌려요. 이런 것이 식민지 근성입니다. 저는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은 저것 중국 놈들 저것들 우리 대통령을 이래 봐? 우리가 하나가 되어서 강대국이 되어서 중국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는 나라로 만들어야지, 저는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미국 부통령이 우리나라 대통령을 30분 기다리게 해? 이런 양키 같은 새끼들이 어디 있어, 여러분 이래야 되는 거에요. 이게 자주 국민의 백성의 자존심이고 생각인데, 우리는 우리 대통령 탓한다고, 왜 그러니까 우리를 만만히 보는 거에요.
이런 것이 역대기 시절에 만연 되어져 있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냐, 우리 모두가 야곱의 뿌리에서 열두 지파가 난 자들이요. 우리 민족이 한때는 유다지파 다윗 왕조를 둔 왕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를 호령하였든 민족이야,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세운 것이야, 이런 민족적 자존심을 위해서 이 말씀을 쓴 겁니다. 여러분 오늘도 이 역대기에 보면은 그래서 쭉 뭐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들 하다가 이 야베스에게 와서는 주석이 달립니다. 형제들보다 귀중한 사람이고 이 야베스는 주님께 기도해서 주께 복을 주시려거든 나를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게 해서 내게 근심이 없게 하소서 기도를 했다는 이 주석을 왜 넣었는가 하면은요 이 이유를 아셔야 되요.
3. 사사시대에는 자기 살길만 찾았지만 사사시대의 야베스는 달랐다. 야베스라는 말은 무엇이냐 하면은 고통을 불러오는 자라는 말이다. 야베스를 엄마가 복 중에 있을 때에 아버지가 전쟁에 가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유복자로 태어났다. 모든 형제 가운데 존귀한 자라고 그랬다.
고 밑에 13절에 가보면은 이 야베스 시대에 그나스의 아들들은 옷니엘과 스라야요 옷니엘의 아들은 하닷이라 그럽니다, 옷니엘이 누구냐 하면은 사사시대의 사사입니다. 그러니까 이 야베스는 사사시대의 사람인 것을 알게 되어져요. 그러면 이 사사시대의 야베스에게 특별한 주석을 달아서 지금 백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뭐냐 하면은 사사시대는 한마디로 이야기를 하면은 여러분들 끊임없이 반복되는 소리가 뭐냐 하면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자기에게 이익이 되어야 행하였더라, 자기 살길만 찾았더라 이게 사사시대에요. 그러면 오늘 여기에 야베스에게 이 말씀을 왜 기록했는가 이 사사시대의 야베스는 달랐다는 거에요.
야베스라는 말은 무엇이냐 하면은 고통을 불러오는 자라는 말이에요. 여러분 유대인이나 우리나라나 아들을 낳았을 때에 이름을 지을 때에는 아들을 잘 되기를 바라는 축복을 담아서 짓는데 그 이름대로 그 사람의 생애가 가요. 그런데 이 야베스 라는 이름은 고통을 불러오는 자라는 말이에요. 어느 부모가 자식을 낳아 가지고 고통을 불러오는 자라는 이름을 짓겠느냐 말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연구를 해보니까 3가지 정도 이야기를 합니다.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부모에게 아픔을 가져다 주는 자녀다. 저는 그 해석을 받아 드리지 안 해요. 왜 장애인은 부모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는 자녀입니까, 자녀 자체로서의 얼마든지 기쁨을 또 다른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는데, 우리가 자본주의 논리 인간적인 생각으로 고통을 불러온다는 거지요.
또 다른 하나는 뭐냐 하면은 이 사사시대에는 전쟁이 많은 시대이기 때문에 이 야베스를 엄마가 복 중에 있을 때에 아버지가 전쟁에 가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유복자로 태어났다는 거지요. 그래서 이 야베스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은 남편 없이 자녀를 기를 것을 생각하니까 고통을 불러오는 자라는 야베스 라는 이름을 지었든 거에요. 이렇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은 흑 수저로 태어난 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모든 형제 가운데 존귀한 자라고 그래요. 여러분 이 존귀한 것에 대한 가치가 변화되지 아니하면은 천국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귀하고 귀중한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생각이 변화 되지 아니하면은 세례가 무효입니다.
인간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지만은 죄성은 타락한 우리들은 무언가 큰 것을 위대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여러분 설교 했지만은 그랜드캐니언을 보면서 와 하는 것은 크기 때문이지, 그 계곡 때문이 아니에요. 그랜드캐니언은 여러분들이 모형을 만들어 놔 놓고 와 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백두산 천지에 가서 와 하고 탄성을 부르는 것은 천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지. 여러분 오늘도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대통령 하면 와 하고 제가 이래 표현해서 죄송하지만 역전 지게꾼 하면은 가치 없게 보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가치로 사람을 보는 겁니다. 교회에 만 명 목회하는 목사님은 크게 보이고, 한두 명 가지고 평생 목회하면은 지질한 목사로 보는 것은 세속의 가치로 판단하는 거에요.
4. 케네디 [Kennedy]는 뉴프론티어 [New Frontier] 정신을 할 때에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까 생각이 아니고, 내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은 극도의 자본주의 개인주의가 만연한 미국의 필요한 뉴프론티어[New Frontier]의 정신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되요. 여러분 우리나라도 정말 일제의 잔재 이후의 우리가 신탁 통치라든지 6.25 라든지 60년대 자유당 정권에 얼마나 혼돈의 시대였어요. 그러다가 박정희가 정권을 잡았을 때에 이 나라를 하나로 묶기 위해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나아가는 이 민족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 이순신을 모든 국민학교 동상을 만들어서 이순신을 본받으라 그랬습니다. 그 이름을 충무공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통영인 가장 한국의 아름다운 도시인 통영을 충무라고 바꾸었다가 다시 통영으로 돌렸다고요, 여러분 충무공 이순신 만입니까, 진주 김시민 장군도 충무공이고, 이 나라의 충무공이 곳곳에 있는데 왜 이순신만을 충무공으로 해서 세웠는가,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자는 거지요.
여러분 이런 생각이 오늘날 우리나라를 강한 나라로 만들었어요. 그러나 이런 생각은 유교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아셔야 되요. 유교는 개인은 없고 공동체만 있습니다. 여러분 자본주의는 뭔가, 개인주의에요. 그래서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해요, 그래서 강한 미국을 위해서 케네디 [Kennedy]는 뉴프론티어 [New Frontier] 정신을 할 때에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까 생각이 아니고, 내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은 극도의 자본주의 개인주의가 만연한 미국의 필요한 뉴프론티어[New Frontier]의 정신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유교의 생각으로 나라를 위해서 내가 희생해야 되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고요. 신앙 생활도 그렇게 생각해요.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내 자신이 없어지고 희생하는 것이 올바른 경건이고 올바른 신앙 생활이라고 해요. 그것은 유교적인 가치관이에요. 여러분 기독교의 가치관은 나라가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내가 나라를 위해서 존재하는 유기적인 관계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면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지체가 몸에 붙어 있어야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이 몸에는 손이 귀중하고 발이 귀중하다 할 수 없다는 거에요.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는 거에요. 모두다 눈이면은 무엇으로 네가 숨쉬겠느냐 이야기 해요, 모두다 입이면은 네가 무엇으로 걸어 다니겠느냐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래서 기독교 예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것은 개인과 공동체의 유기적인 관계 여러분 이것이 생각이 나야 되요.
이 관점으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야 된다고, 야베스는 존귀한 자라고 이야기했든 것은 그 흑수저에 태어나서 세상에 있는 모든 야베스 시대의 사람들은 사사시대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거에요.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말하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가고, 공동체는 상관이 없고, 남은 어떻게 되든지,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세대에 야베스는 달랐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는 존귀한 자라는 거에요. 자기의 지역을 넓히기를 원했다는 겁니다. 자기는 성공하기를 원했다는 거에요. 그 성공을 자기의 힘이 아니라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의 환난과 근심이 면하게 해 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5.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셔서 옷니엘을 보내어 구산 리사다임[Cushan Rishathaim]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통하여 하고자 하는 말씀이다. 이 나라를 성령의 한줄기의 생수로 제도와 법이 실천 되도록 해야 된다.
그 %EA%B5%AC%EC%82%B0%EB%A6%AC%EC%82%AC%EB%8B%A4%EC%9E%84말은 뭐냐 하면은 내 혼자 성공해서 내 자식과 내 가족만 자자손손 환난과 근심이 없고, 잘 먹고 잘사는 그런 생애를 살겠다는 것이 아니고, 나의 성공이 나를 세워서 이 나라가 든든히 세워 지고 이 나라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내 후손들 나의 환난과 근심이 세워 진 공동체를 통하여 면하게 해 달라고 했든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셔서 옷니엘을 보내어 주어서 구산 리사다임[Cushan Rishathaim]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했다는 이 역사적인 사실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통하여 하고자 하는 말씀이다 말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보면서 유교적인 가치관으로 성경을 보면 안 되고요, 그리스도의 눈으로 봐야 되요.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나의 삶을 책임지고 인도해 오심으로 말미암아 지난주일 설교하고 오늘 기도한 장로님의 기도의 내용대로 나의 오늘 성공 나의 존재가 그 결과의 너머의 손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동원한 그 손길들이 나를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사람들에게 빚진 자 되어져서 나의 이 성공이 공동체의 유익이 되어져서 많은 사람의 환난과 내 환난과 근심을 면하게 되는 삶, 이것이 기독교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다 이 말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목회를 하면서 내가 잘나서 오늘날까지 이 교회가 이만큼 오게 된 것이 아니라, 받을 자격 없는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이 자리에 있게 하셔서 이 자리까지 오늘 우리 교회에 왔기 때문에 우리 교회와 우리 당회의 존재의 이유는 교인들의 환난과 근심을 면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은 이런 교회를 세워 나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 스스로가 해결하지 못하는 환란과 근심을 공동체를 통해서 해결하자는 겁니다. 오늘 우리 신용재 선생님 교회 와서 세례를 받는 것이 혈연의 가족 신용재 한보영 집사가 다섯 명 낳았는데 부모로서 얼마나 큰 걱정이에요. 내가 이제 나이 들고 병들었는데 저 자식들 손자들 어떻게 키우느냐고, 교회가 그 짐을 대신하라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만드셨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교회를 세워 진다는 거에요. 우리나라를 세워 진다는 거에요. 이런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얼마나 세속의 가치로 평가하는지 몰라요. 목사님의 설교나 교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은 좌파적인 가치 우파적인 가치를 가지고 이러니까 우리나라가 지금 경제가 흔들려, 왜 경제가 흔들리는가 목사의 책임이고 저와 여러분들의 책임이라는 겁니다.
최저 임금이 왜 잘못 되었어요, 주 52시간 근무가 왜 잘못되었느냐고, 그래서 기업이 안 된다고요, 좋은 제도와 법이지만은 가치관을 바꾸지를 못하고 제도와 법을 해 놔 놓으니까 이게 트러벌이 생기는 거에요. 갓 쓰고 상투 틀고 양복을 입으니까 되느냐 이 말입니다. 누가 그 가치관을 만들어요 목사가 만들어야지요, 뭐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선포함으로, 여러분들이 만들어야지 뭐로 내가 그 동안 믿어 왔든 종교적인 선입견을 복음에서 굴복함으로 말미암아 썩어 폐수와 오수가 넘쳐 나는 이 냄세 나는 이 나라를 성령의 한줄기의 생수로 그 제도와 법이 실천 되도록 해야지요. 정치가는 제도와 법을 만들지만은 사람을 바꾸는 것은 목사의 일이고 교회 일이고 복음으로만이 가능하다 이 말입니다.
6. 오늘날 교회가 야베스와 같이 기도만 하면은 환난과 근심을 면한다고 이야기를 하지, 야베스와 같이 존귀한 자가 어떤 자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기독교 기업이라는 것은 기업이 커져 가면서 직원들에게 연봉을 가장 많이 주는 것을 자랑과 보람이 되는 기업이 기독교 기업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야베스와 같이 기도만 하면은 환난과 근심을 면한다고 이야기를 하지 야베스와 같이 존귀한 자가 어떤 자라는 것을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변해야 되요. 이제는 대기업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사회의 유익한 기업이 귀중하고 존귀한가를 생각해야 되요. 이제는 만 명 모여서 많은 선교사를 파송 하고 사회에 의로운 일을 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가 아니라, 얼마나 교인들을 행복하고, 내 교회가 성장함으로 말미암아 이웃 교회는 얼마나 눈물 흘리는가, 이 생각을 가지고 목회를 하는 교회와 목회 관만이 존귀하다고 생각하는 이런 변화가 야베스의 기도에서 일어나야지요.
오늘도 여러분 정말 세례 받는 여러분들에게 이 결단이 있어야 되요. 저는 청년 대학 부를 목회할 때에 그때 막 창업된 기업이 기독교 기업이 되었어요, 수십 명의 청년을 가르치는데 우리나라 괜찮다고 하는 대학생들이 전부 어디 가려는가 하면 어디 간데요, 내가 두손들고 말렸어요, 왜 거기 가느냐, 기독교 기업이래요, 이 기업은 선교 지상주의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세워 진 기업이래요. 그래서 자기는 좋은 직장 좋은 월급 버리고 이 기업에 들어 간데요, 잘못 생각하는 거라 했습니다. 기독교 기업이라는 것은 기업이 커져 가면서 직원들에게 연봉을 가장 많이 주는 것을 자랑과 보람으로 여기는 기업이 되어야 기독교 기업이요.
내 말 듣지 않고 갔든 얘들 다 후회합니다. 우리 교회 한시녕집사 초창기에 있었든 집사 그 회사의 부장 이었지만은 제가 회사 행복하냐 하니까 욕해요. 여러분 기독교의 기업이 뭔데요, 기업이 잘되는 것이 그 직원들이 잘되는 거에요. 이번 주에 제가 아는 분이 목사님 진짜 맛있는 추어탕 집이 있는데 한번 가시겠느냐고, 가자고 했더니만 좀 기다려야 될 거래요, 그래 기다릴 수 있다고 이러니까 저는 먹기를 탐하는 목사이기 때문에 12시 10분에 도착을 했는데 번호표가 181번이에요, 30분을 기다렸는데 그 일대에 모든 차가 그 집 차에요, 나도 뺑뺑 돌다가 어느 한자리에서 겨우 먹었는데 반찬 그릇이 놋그릇에 이만한데 주더라고, 그래서 내가 직원에게 물었어요, 손목 나가겠다고, 그것 들고 다니다가 내가 들어도 무거워요.
그러면서 내가 물어 봤어요, 이렇게 기업이 잘 되는데 식당이 잘되는데,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내가 식당이 잘되고 기업이 잘되면은 직원들 봉급 많이 주려고, 그래야 소득 주들의 경제가 실현되지요. 또 여러분 시급 만원 주면은 내 가게가 내 회사가 망할 것 같으면은 기독교인들은 우리 8천원만 받을게요. 법 고발 안 할게, 이게 야베스의 기도를 가지고 있는 존귀한 자의 삶이에요. 제도와 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가 이런 변화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에요.
7. 야베스의 기도 왜 야베스가 존귀한 자인가, 하나님께서 저에게 복을 주려면 나에게 지경을 넓혀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되 하나님의 손이 나를 도우사 나의 환난과 근심을 면하게 하는데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니라, 이 나라가 세워져서 나의 자녀와 모두 천국을 경험하도록.
여러분 제가 오늘날 주일날 성수도 여러분들에게 일을 상대화 하라는 것, 왜 사람이 일을 절대화해요, 생존이 자기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유한양행에 유일한씨 같은 분들 평생에 좋은 기업을 이루고 자식 안 주고 사회에 환원하잖아요. 그러면서 유한양행은 옛날에 80년대에요 연봉이 최고 높은 회사로서 유명했었어요, 그 기업 정신이 그 뒤에 무너졌지만은, 그게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그게 야베스의 기도에요. 여러분 일을 상대화하는 것이 그런 거잖아요. 저는 정문술 같은 사람 존경해요. 목사보다 더 존경해요.
미래 산업이라는 산업을 이루었는데 환갑 되면서 은퇴했잖아요, 자식에게 하나도 안 주고 사회에 환원하면서 은퇴하면서 뭐라 그랬어요, 그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가 생각하는 가치관 사람들이 왜 그 나이에 건강한데 그만 두냐 하니까 나 이 땅에 와서 미래산업 이라는 Game 을 좀 하다가 이제 실증 나면서 그만 두려는데 왜 나보고 난리냐고, 여러분 그것이 우리 주일 성수의 정신이에요. 목사가 죽을 때까지 뭐 강단 저버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여러분들이 기업하고 이런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하는 여러 가지 직업이나 이런 Game 과 같이 준거에요. 그래 즐겁게 일하다가 적당하게, 실증 나면 그만두면 되는 거지요.
그 게임을 자자손손 물려주고 또 거기에 주일 성수 엉터리로 하는 겁니다. 오늘도 여러분 이 야베스의 기도 왜 야베스가 존귀한 자인가, 하나님께서 저에게 복을 주려면 나에게 지경을 넓혀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되 하나님의 손이 나를 도우사 나의 환난과 근심을 면하게 하는데 나와 내 가족과 내 자식들만 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가 세워져서 나의 환난과 근심도 면하고 내 자녀들도 이제는 직업을 얻기 위해서 일하거나 직장 때문에 고민하지 않는 그래서 대학을 줄 서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되어져서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경험이라도 할 수 있도록 이 마음으로 사사시대에 산 거에요.
여러분 사사시대에 저마다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았다고 그래요. 자기 살길만 찾았다고 그래요. 그런데 야베스 만큼은 흑 수저로서 그래 안 살았다는 거에요. 정문술이 같이 살았다는 거에요. 유일한 같이 살았다는 거에요. 직원들 고혈 빨아서 선교하는 것을 뭐 하나님이 그렇게 기뻐하시겠어요, 교인들의 피눈물 흘리게 해서 거둬 들인 헌금을 가지고 기독교 세력 확장하는 것을 뭐 하나님 그렇게 기뻐하시겠어요. 우리 교회가 성장할 때 옆의 교회가 눈물 흘리는 것도 생각할 줄 아는 교회 이런 교회가 가치 있는 교회라는 거에요. 이 야베스의 이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가치관으로 오염시켜 놓은 거지요.
8. 복음은 나의 성공이 공동체의 유익이 되어져서 나와 내 자손이 환난과 근심이 면하게 되는 그런 것이 복음이다. 왜 개인의 번영이 공동체와 이웃에게 유익이 되어지게 세워 지는 교회는 나의 환란과 근심을 면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져야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 복음은 나의 성공이 공동체의 유익이 되어져서 나와 내 자손이 환난과 근심이 면하게 되는 그런 것이 복음이에요. 저는 우리 교회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지만은 앞으로는 여러분 교인 부리 먹기 위해서 장로하고 집사하고 교인 헌금 내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 성직 나누어 집니까, 충실히 자기의 역할을 감당하면은 돌아가실 때 저는요 명예 장로로 추대해서 할거에요. 권사로 추대 해서 장례식 해 드릴 거에요. 앞으로 우리 교회 장로는 자식이 교회 안 나오면 안 줄 거에요. 제가 고집을 세워서, 왜 안 주는가 그래 내가 세워져야지 내 자식이 환난과 근심을 면하는 교회를 통해서 면해야 된다고 할 때에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어요.
벼슬입니까 이것이 뭐 기득권입니까? 목사는 교회의 손님이에요, 여러분들이 주인이에요. 저는 언젠가는 이 자리에서 사라져야 되요. 제 어머니와 내 누님이 아버지 목회한 교회를 떠나지 못할 때 제가 욕을 하면서 떠나라 했습니다. 그게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거라고. 여러분 오늘날까지 제가 무슨 힘으로 버텨 왔겠어요? 이 복음을 알았기 때문에, 종교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자기 생각과 맞지 않다고 와서 교회 모든 것을 다할 것 같이 흔들다가 떠나는 사람 안 잡았어요. 왜 개인의 번영이 공동체와 이웃에게 유익이 되어지게 세워 지는 교회는 나의 환난과 근심을 면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것이 내 혼자의 생각이 아니고, 여러분들의 생각이 되어져야 되요. 그래서 떠난 그 사람들이 이를 갈며 후회하도록 왜 보복이 아니에요, 내가 보는 성경이 맞았다는 거지요, 그래야 이 세상이 폐수와 오염으로 썩어 문더러 지는 이 세상이 성령의 생수의 한줄기로서 교회가 존경 받을 수 있도록. 오늘날 여러분 교회가 이렇게 크고 기독교가 많은데 세상은 교회를 조롱해요. 유익하지 못하다는 거지요. 그러면 성경 해석이 잘못 되었다는 거지요. 오늘날 교회가 잘못 되었다는 거지요. 어느 것이 맞느냐는 진리는 어느 것이 유익한 가를 판단하세요, 보편성이어야 되요. 우리 교회 교인들에게만 아멘이 아니고, 옆의 교회도 아멘이 되어야 되고, 안 믿는 사람도 아멘이 되는 것이 복음입니다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기도했더니만 내 성공해서 나의 환난과 근심을 면하게 하셨어 벨리알 입니다. 그 벨리알의 복음이 한국 교회의 베스트셀러가 되니까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에요. 여러분 우리 교회 다닐 때 열심히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을 해서 그 일이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인 줄 알아서 나의 성공이 교회와 국가의 유익이 됨으로 말미암아 나의 환난과 근심도 면하고, 내 후손들도 그런 환난과 근심을 면하는 삶을 물려주려고 신앙 생활하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되요. 그런 좌파적인 생각을 하니까 기업들이 외국에 투자하지, 벨리알 입니다. 나라가 없는 기업이 살아날 것 같아요? 글로벌[Global] 기업이라고 하면서.
기업이 중국 가서 얼마나 폭 망한 것 보시잖아요. 기업이 한국 떠나면 살 것 같아요, 보호막 사라집니다 여러분. 한국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도 그래도 존재하는 거에요. 이것을 기업이 알아야 되요, 여러분 한국의 재벌들이 알아야 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앞으로 그런 것 때문에 해외 투자한다면 사지 마세요. 나라에 유익이 되지 못하는 기업이 뭐 우리에게 존재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여러분. 기득권층들은 항상 내가 안 풀면 너 어떻게 되는지 알지, 공갈쳐요. 하나님 살아 계심을 믿으셔 가지고 옛날에 여러분 교회는 강단에 태극기 놔두고 예배 드렸어요. 기독교의 복음이 국가관이 되어져야 되고, 여러분들의 인생관이 되어져야 되요.
교회와 국가와 정치를 분리하는 것은 헬라적 이분법이에요. 오늘도 여러분 이 암담한 한국의 현실과 한국 교회를 보면서 가슴이 먹 먹 해져서 정말 진짜 복음이 선포될 수 있도록 우리 교회가 여러분 북치고 장구치고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교회 성장하다가 옆의 교회 망할 가 봐 하는 생각이 한 켠에 있어요. 하나님 나라의 전체의 유익이 되어지고 여러분들에게 유익이 되는 그런 복음이 야베스의 기도에요. 흑수저인 야베스는 저마다 자기 살길을 찾는 사사시대에 저마다 살길을 찾는 바벨론 포로 70년 이후에 식민지 근성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에게 에스라가 달랐다는 거에요. 자기 성공이 국가의 성공이 되어져서 민족의 성공이 되어져서 자기가 자기 후손들이 환난과 근심을 면하게 했다고, 이 삶을 살자고. 에스라가 이 시대에 나타나면 이 설교에 한 표 줄 거에요. 아멘
◈봉헌 기도◈
복을 전제로 드리는 우상에 바치는 제물이 되지 않고, 오늘 내 수중에 있는 것의 너머의 하나님이 동원한 은혜의 손길이 보여져서 빚진 자의 삶을 살아가는 폐수와 오수로 넘치는 대한민국에 폐수와 오수가 생명을 오염시키는 강단이 난무하는 우리 대한민국에 한줄기의 생수로서 한줄기의 빛으로서 깜박이며 하늘을 향하여 물 밖으로 입을 내밀면서 허덕이는 물고기와 같은 이 나라의 민족들을, 이 나라의 교인들을 생수의 말씀으로 흘러 넘치게 하는데 예물이 사용 되어지게 하시고, 세워 진 교회를 통해서 개인이 확보할 수 없는 환난과 근심을 면하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더 이상 유교적인 가치관으로 성경을 오염하는 일이 없도록 자본주의적 가치관으로 성경을 오염하는 일이 없도록 성도들을 깨우쳐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도 유대교의 선입견에 처형을 당하였듯이 오늘날도 참된 복음은 종교적인 선입견에 처형을 당하고 있습니다. 수고로 인한 야베스와 같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생명 있는 고기와 같이 오늘도 새 힘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심을 감사 드리오며 나의 잘됨이 타인의 눈물이 되지 않는 삶을 사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들이 되기를 원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기를 원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각기 자기 소견대로 옳은 대로 행하다가 모래알 같이 공멸해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흑수저인 야베스의 그 수고로움이 공동체를 세워서 옷니엘을 통한 구산 리사다임[Cushan Rishathaim]의 손에서 건진 이 역사적인 사실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라고, 십자가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를 낳은 자이기에 심판하지 않고,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아직도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 나의 종교적인 선입견이 복음에서 무너져서 이 시대의 야베스로 만들어 가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야베스의 헌신과 수고를 통해서 자자손손 환난과 근심을 면하게 하였고, 옷니엘을 통하여 구산 리사다임[Cushan Rishathaim] 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 주셨고, 오늘도 미국과 중국 일본 세계의 열방의 틈바구니에서 먹이 거리가 되고 있는 대한민국에 복음으로 인하여 하나님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열광에 의지하지 않고, 자주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한 알의 씨앗이 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을 끝까지 지켜야 할 하나님의 손길인 하나님의 선물인 교회 위에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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